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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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상당히 심한 떡밥성을 지닌 글이 되겠지만, 내게 억지로 믿음을 강요하거나 무조건적 비판·비난만 아니라면 댓글은 대체로(?) 환영한다.

요즘...이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계속 고민해왔다. 어머니 쪽 집안은 개신교 쪽이고(정확한 종파는 모르겠음) 아버지 쪽 집안은 천주교 쪽인데 어머니가 천주교로 개종하여 명동성당에서 결혼하시고 나는 유아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걸 따지길 좋아하도록 타고난 기질 덕분인지, 아니면 어렸을 때 너무(?) 많이 본 각종 과학책 덕분인지 몰라도 오히려 어렸을 때는 무작정 대놓고 믿었던 기독교에 대해서 지금은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친한 친구인 lifthrasiir와 고등학교 시절 종교에 대해 토론해보았다든지, 그 녀석의 최근 글 기독교가 '아닌' 것이라는 글도 보고, 또 날개셋 입력기로 알게된 그 녀석의 절친한 선배인 용묵이 형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각종 신앙 간증 내용도 읽어보고, 또 주말마다 성당에서 미사를 하면서 신부님의 말씀도 들어보고, 대전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한 수녀님과 한참동안 이야기를 해봤다든지, 또 주변 친구 중에 열렬한 개신교 신자가 몇몇 있어 이야기 및 상담(?)도 해보고, 수원교구청 성서교육자 교육도 받으신 어머니와도 이야기해보는 등 나름대로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서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해봤다.

사실 나는 개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얻는다'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가톨릭에서는 그렇게 안 보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거꾸로 듣게 되어 놀랍기도 했고, 특히 근본주의파에 가까운 쪽에서는 가톨릭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는 걸 보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사실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으면 (논리적으로야 어찌됐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심각하게 교리적 차이에 대해 집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뭐 어쨌거나 나는 기독교 각 종파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차이는 제쳐두고 고민하는 부분들이 또 있다. 상당히 여러 사람들한테 물어봤지만 딱히 답이 없는 그런 질문인 것도 있고,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자명한데 왜 고민하나 하는 문제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내가 성서를 아주 주의깊게 숙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몰라서 생기는 것도 있을 것이다. (뭐 기독교인의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비판한다면 인정한다. 어쨌든 사실이니까.)

  •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혼이라는 자아의 개념에 대해서, 과연 사람만이 영혼을 가지는 것인지 궁금하다. 동물이나 식물,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도 영혼을 가질까? 가진다면 그들의 '죄'는 어떻게 정의될까? 가지지 않는다면 동물에 대한 어떤 인권(?)을 주장하는 것이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까?
    • 현재의 weak-AI가 아닌 strong-AI가 구현된다면, 즉 인간의 뇌를 완벽하게 모사하는 무생물 기계가 만들어진다면, 그것도 영혼을 가진다고 봐야 할까? (과학적으로도 이것이 100% 가능하다는 건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신앙적 관점에서는 '어쨌든 진짜 사람은 다르다'가 결론이겠지만, 어쨌든 철학적 질문으로서 궁금하다.)
  • 몇몇 사람이 나에게 말하길, 신앙이란 선택의 문제라고 하였다. 자기가 믿기를 선택하고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구원 못 받을 뿐이라고).
  •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나도 몇몇 생명공학 기술들은 사용되지 않아야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대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아무래도 공돌이적인 기질 덕분인지 어느 TV 성서 강좌에서 본 모 신부님의 말씀 '똑똑한 사람들은 이것저것 따지는데 그러지 않고 믿고 인정해야 합니다'라는 걸 나는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겠다. 나는 기독교를 더 잘 이해하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은데, 도무지 과학적 지식과 합리성에 기반한 사고로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게 죄인가?
    • 이에 대해 어느 수녀님은 아무리 인간의 지식이 발전해도 그 한계점이 있기 마련이고, 그 한계 너머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식의 말씀을 하셨는데 인간의 한계라는 부분은 나도 인정하지만 과거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인류 역사를 통해 조금씩 '침범'당해왔고 (낙천적 가정 하에) 앞으로도 그럴 텐데 이에 대해서 종교인들의 입장은 어떤지 궁금하다.
    • 이런 입장에 대해 일부는 '인간의 교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과학으로 신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 상태다. 다만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에서는 결론내릴 수 없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어떻게보면 불가지론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 분명히 논리적으로만 생각하면 기독교는 모순적이다. (신약 성서의 삶에 대한 좋은 가르침들은 논리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허나 신앙 행위를 할 때 나타나는 어떤 몰입 등 분명히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소위 신앙적 체험은 가능하다고 느끼고 있다. 뭐랄까, 그냥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문제라는 점은 나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데, 머리에서 받아들여주지 않는 그런 상황.
  • 애초부터 과학과 종교는 다른 영역이라며 이런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나도 그러고 싶다. -_- 하지만 내 안에 존재하는 두 개의 다른 체계가 충돌을 일으킨다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
  • 앞서 언급했듯 종파에 따라 세부적인 교리에서 차이가 나는데, 서로 인정하는 부분도 있고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하며 배척하는 부분들도 있다. 어느 종파에 속해있더라도 자기가 진심으로 신앙을 가진다면 나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신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뭐 어떤 특정 종파에서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행위를 강제적으로 시키거나 유도한다면 몰라도. 여기서 문제는 그 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겠다.)
  •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영혼이 존재한다면, 뇌의 신경 활동과 사람의 정신 세계, 그리고 영혼은 어떻게 연동되어 움직이는 걸까? (제발, 여기에 그런 가정 따위는 필요 없다는 식의 반론은..-_- 그냥 궁금하다는 거다. 궁금해하는 것도 잘못이라면 할 말 없고.)
  • 적어도 현재의 현실에서는 그리스도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세속 사람들과의 관계와 멀어진다. 주변 몇몇 사람을 통해 실제로 그런 경우를 보기도 했고. 물론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온전히 하느님께 헌신하면 하느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신다고 하지만, 그들 자신의 삶은 빛날지 몰라도 주변의 비기독교인 사람들과는 필연적으로 소원해질 수밖에 없고, 분명히 잃는 것들이 생긴다. 모든 기독교인이 그래야만 할까? 혹은,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래야만 할까?
    • 둘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아주 드문 사람들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한계도 있는 법이고, 자신의 능력 안에서 해야 될 것이다. 문제는, 정말 자기가 1분 1초도 아끼지 않고 그러한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을 때, (단순히 하느님이 채워주신다 이런 거 빼고) 그 사람의 삶은 피곤하지 않을까? 모두가 그러한 피곤을 감내하면서 살아야만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가? 사람이라면 아무리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 크더라도 잠도 좀 자고 휴식도 좀 취하고 즐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 이상적인 신앙인의 관점으로 금욕적인 생활이 반드시 좋은가? (종파에 따라 역시 요구하는 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욕구도 해소하면서 살아야지 안 그러면 기계 같은 삶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내가 보기엔 신앙인의 이상향을 심각하게 쫓아가면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뭐 본인들이 괜찮다면 할 말 없지만. -_-;
  •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적극적인 자세를 유지해야만 하는가? 마음이 진실하다면 하느님도 받아주실 것 같은데. 뭐 이것도 결국은 어떤 직업을 택하느냐와 같이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 아니, 하느님이 선택해주시는 건가?;
    • 문제는 나처럼 이러한 질문들을 품고 있는 사람은 그 '진실하다'에 다가가기 힘들다는 점.
  •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신앙을 가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녀에게 권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지만 그 자녀가 좀더 머리통이 커져서(...) 그 신앙을 부정하게 되고 가족과 마찰을 빚는다면, 사회적으로 봤을 때 온당한 일일까?
  • 가끔, 기독교 내에서 문화상대주의·윤리적상대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성서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고 곧 절대적 진리이기 때문에 그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종교전쟁도 좋게 보면 이러한 이유로 발생한 것이겠다.) 예를 들면 자신이 인류학자인 경우와 선교사인 경우를 생각하면 다른 입장을 취하기 쉬울 것이다. 이럴 때 어떡해야 하나? (위에서 말한, '내면의 두 세계가 충돌하는 경우'로 볼 수 있겠다.)
    • 윤리적 상대주의와 관련하여, 종교 없이 인간이 보편적인 도덕률이나 윤리관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종교는 왜 필요하지?
    • 지금까지 서구 사회가 형성해온 제정분리 사회에서 법률은 이러한 보편적 윤리관에 기초하고 있는데(비록 평등 사상의 뿌리가 기독교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할지라도), 다른 지역에 이러한 사상을 전할 때 종교적인 근거가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 다행히(?) 지금 서구 사회의 보편적 가치는 기독교적 가치와 거의(?) 충돌하지 않고 있지만, 만약 그 사회의 종교가 보편적 윤리관과 완전히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절대가치이니 따라가야 하는가? 대표적으로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같은 예를 들 수 있겠다.
    •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신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봐야 할까?
  • 종교 다원주의--여기서 각 종교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영역과 신앙을 가지고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종교 특성상 논리적으로 서로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특히 한국사회처럼 여러 종교가 화합(?)하고 있는 상황은 잘못된 것이다.
    • 초종교(?) 사상, 그러니까 모든 종교는 결국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식의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대표적으로 이슬람과 기독교가 있겠다. 단지 다르게 해석했을 뿐이다?
  • 사실 더 골치아픈 문제로, 결혼을 들 수 있다. 배우자가 같은 종교라면 좋겠지만, 자기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알고보니 전혀 다른 종교일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것,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해선 거의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좋은 가치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다른 종교의 배우자와 부부생활을 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앞으로 나는 배우자를 받아들일 때 꼭 기독교인 사람만 선택해야 하나?
    •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 적어도 내가 아는 한 헌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럴 때 가족끼리 서로 자기의 종교를 권한다면 아마 그 집안은...-_-;;;;

혹자는 이런 이상한(?) 질문들을 잔뜩 늘어놓는 나를 보고, '세상 좀 단순하게 살아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머리아프다. 누가 나와서 깔끔 명료하게 내가 이해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믿어라든 믿지 말아라(...)든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결론은 성서공부 열심히 하고 다시 생각하세요? -_-; 혹은 아직까지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 가지고 고민하지 마세요...인 것도 있을 수 있겠다.

가끔은, 세상을 살면서 생각해야 될 것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요즘 세상이 수많은 정보로 넘쳐나 정신없어 죽겠는데 과학의 발달(?)로 이런 고민까지 떠안고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차라리 내가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이딴 거에 관심 없었다면 애초부터 고민하지 않았겠지.) 무엇보다 종교의 특성상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것이 절대 가치가 되고 모든 것보다 우선하게 되기 때문에 그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 절대 가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서,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 답답하다. 애초부터 종교는 객관적이 아니니까.. 뭐 이런 식으로 말꼬리 잡고 늘어지면 한도끝도 없어서..;;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는 그 사슬을 끊기 위해 종교를 발명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냥 단순하게 '나는 앞으로 하느님을 믿겠다'라고 선택하고 모든 가치와 사고를 그에 따라 재정렬하면 되긴 하다. 심지어 일시적으로는 기독교인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해도 어떻게든지 논리를 돌려서 정당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국 자기가 순수한 의도를 가지기만 하면 되니까. (그게 말처럼 쉬운가는 제쳐두고.) 그래서 가끔은 무엇이 내가 그 선택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지를 고민할 때도 있다. 뭐 이게 흔히 말하는 사탄의 농간이라고 하면 할 말 없고-_-. 다만 나는 어쨌든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사상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최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고 싶고, 또 그렇게 과학과 다른 여러 사상·관점들을 대하고 싶다. 어느 한 종교에 스스로를 예속시키면 언젠가는 충돌이 나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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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일 블로그에서 아주 중요하고, 또 재미있지만 심각한 글을 찾았다. 나는 앞으로 뭐해먹고 살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그 일을 찾을 때 쓸 수 있는 질문들이다. 질문 자체에 대한 설명은 원글을 참고하기 바라며, 나는 내 경우에 비추어 생각해보았다.

1. 좋아하는가?

  • 다른 일을 하다가 힘들어서 쉬고 싶을 때,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기분이 왠지 울적할 때, 하기 싫은 일을 하다가 진절머리가 날 때 당신은 자발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하고 나면 기분이 유쾌해지고 살아있는 기분이 들던가요? 그걸 하면서 몰입하게 되나요?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아니 심지어는 내가 돈을 내고서라도 그 일을 하고 싶은가요?

나에게 이런 류의 일이라면 책 읽기, 피아노 치기 및 공연 관람하기, 그림 그리기, 내가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프로그래밍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정도. 동아리 프로젝트 같은 거 가끔씩 만지다보면 스스로 말려버릴 때가..;;

대학에 와서 전산 전공을 하면서, 또 흔히들 말하는 '한국 IT 업계의 현실' 뭐 이런 것들 때문에 프로그래밍에 대해 회의를 가져보기도 힘들어해보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생각의 체계를 실체화하고 그것을 정보라는 형태로 가공하여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원래부터 내가 게임을 할 때마다 꼭 맵에디터가 있는 게임만 했듯 실제 프로그램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내 맘대로 뭔가 해볼 수 있다는 것이 맘에 들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은 기본적으로 좋아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림 그리기나 피아노 치기는 뭔가 하다가 잘 안 풀려서 스트레스 받을 때 하는 류의 일들이다. 둘 다 아주 프로페셔널한 레벨을 스스로 원하는 건 아니고 다만 내 스스로 즐기기에 부족하지 않은 정도만 하고 있다.

대학에 와서 추가된 것이 하나 있다면 사람 만나기일 것이다. 아직은 내가 사람에 대한 경험이 적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을 파악해가는 것 또한 굉장히 재미있는 지적 활동이다. 좋게 유지된 케이스도, 안 좋게 끝난 케이스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나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 잘하는가?

  •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당신은 훨씬 진도가 빠르고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있었나요? 남들에게서 그 일로 찬사나 칭찬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글쎄, 프로그래밍의 경우는 대학의 전산과를 기준으로 본다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히 우열을 못 가리겠다. 하지만 내 스스로 판단하건대 중학교 때 별도 교육 없이 정보올림피아드에서 혼자 수상했던 점, 알고리즘 풀이 경험이 적음에도 구글 면접 때 차분하게 잘 대처할 수 있었던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어렸을 때부터 경시대회 등으로 단련된 아이들과는 다르게 빨리 적응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내가 볼 때 나는 알고리즘이나 이론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보다 사용자와 관련된 부분, 시스템적으로 바라보고 작업하는 부분에 강한 것 같다.

이 외에도 중학교 때 어떠한 선행학습이나 학원·과외 없이 1년 만에 시험 시스템에 적응하여 전교 1등을 해봤던 것이나 과학고 입시를 단 3개월 벼락치기로 통과했던 일 등은 '공부'라는 것에 소질이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때의 공부가 어떤 형태였는지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떤 자료를 읽고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것 같다. 참고로 초등학교 때는 공부라는 건 전혀 신경써본 적 없고 하루에 4시간씩 컴퓨터 게임만 하고 지낸 적도 있다. 근데 그 '나만의 언어로'라는 부분이 대학에 와서는 간혹 문제가 되기도 해서,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들은 굉장히 낮은 성적을 받기도 한다. (아직까지 이게 이루어지지 않은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NP 문제의 증명과 같은 걸 들 수 있겠다. 아, 알고리즘이랑 오토마타 언제 재수강하지-_-)

그림의 경우 어렸을 때 우연히(?) 강남구 어린이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입상한 것 말고는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냥 나만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어쩌다가 한 번씩 표현해보는 정도. 피아노는 어렸을 때 연습하라는 분량 다 안 하고 피아노 선생님 속여가면서(...) 한 것 치고는 진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사실 몇 년 먼저 배운 형이 치는 곡들을 따라서 쳐본 적도 있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피아노 선생님이 콩쿨에 나가보라는 제의도 하셨었다는데 나는 기억이 없다. 지금은 그냥저냥 아마추어 수준으로 치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 카이스트에는 나보다 잘 치는 사람이 너무 많다 orz; (리스트의 초절기교 같은 거 치는 사람 보면 좀 좌절스럽다)

한편 작곡의 경우 제대로 공부하지도, 배우지도 않았지만 피아노를 쳐온 경험으로 중학교 2~3학년 때 조금 시도를 했었는데, 중고등학교 음악선생님들한테 큰 칭찬을 들었던 적이 있다.

3. 지속 가능한가?

  •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 중에서 남들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걸 남들에게 가치있는 형태로 변환할 수 있나요?

'해먹고 산다'가 성립하려면 이 질문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 프로그래밍 : 저수준의 노가다부터 시작해서 고수준의 아키텍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사람들에게 가치를 줄 수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아직 약간 저평가받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적어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 없을 것 같다(?).
  • 그림 그리기 : 전업 화가나 디자이너가 되지 않는 이상 이걸로 돈벌어먹기는 힘들 듯-_-;
  • 피아노 연주/작곡 : 역시 전공자 레벨이 되지 않으면 힘들다. 어디 분위기 좋은 바에서 알바나 할 수 있을까 말까.; 취미로 계속 유지하다가 노후에(?) 개인 음반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 공부 : 이걸로 돈벌어먹고 산다면 한국에선 당연 학원강사가 짱.;;

글쎄, 일단은 프로그래밍을 두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자체도 굉장히 넓은 능력을 커버하기 때문에--시스템 수준의 분석에서부터 어셈블리 native speaking까지--또한 내가 가진 다른 방면의 능력들--특히 예술적인 면--을 활용하고 싶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석사 이후 어떤 분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지는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생각해온 것은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일해보고 싶다' 정도인데, 몇 년 전 생긴 문화기술대학원은 어떨까 싶기도 하고, 그냥 전산 석사하고 이쪽 커리어를 쌓으면서 취미로 할까 하는 생각도 있고, 아니면 전산을 베이스로 생물정보학이나 로봇공학 쪽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 아무튼 고민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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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 스포일 주의

지난 토요일에 라디오키즈님이 주최하신 블로거 영화모임이 있었다. 덕분에 내심 기대하고 있던 WALL·E를 볼 수 있었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컴퓨터 그래픽은 이제 더 새로울 것도 없을 정도였고, WALL·E와 Eve라는 두 캐릭터의 묘사와 '소비가 미덕'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거대 기업 BNL로 인해 쓰레기로 가득찬 지구와 이를 피해 도망간 인간들을 통해 시사하는 환경에 대한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뭐가 없을까 기대했었는데 그래도 좀 벙 찌게 만드는 것이 하나 나와서 기대를 실망시키진 않았다;; (보면 안다..ㅋㅋ) 또한 어떤 로봇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로봇 시스템이 부팅되고 나서 애플컴퓨터가 부팅될 때 나는 그 '짠~'하는 소리도 재미있는 패러디였다. (나는 잘 못 봤는데 크레딧에 스티브 잡스가 있다는 얘기도... -_-)

아무튼 WALL·E를 보고나선 형과 함께 예매해둔 다크나이트를 보러 갔다. (용인 수지의 집에서 서울 홍대에 갔다가 다시 수원으로.. 북에 번쩍 남에 번쩍..)

기존의 배트맨 영화 시리즈가 말 그대로 권선징악과 화려한 특수 효과로 무장한 '헐리웃 영웅'이 주는 이미지를 잘 표현하여 어떻게 보면 어린이용 영화에 가까웠다면, 이번의 다크나이트는 배트맨과 조커, 그리고 고담시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하비 덴트의 심리 묘사를 통해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문명인으로 포장된 사람의 내면이 드러났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 등에 대한 고뇌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조커 역을 맡았던 히스 레저의 연기가 가장 압권이었고, 예전에 조커를 연기했던 배우가 이게 배우를 잡아먹는 역할이니 조심하라고 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정말 그 역에 완전히 빠져서 연기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흉하고 미치광이스럽지만 또한 동시에 사람의 가장 추악한 내면을 여과없이 드러내어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조커. 조커가 '나는 배트맨이 있기에 완성된다'고 했듯 배트맨 또한 조커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얼굴의 반쪽을 화상으로 잃어버린 하비 덴트가 보여주는 양면성도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요소라 할 수 있겠다.

간만에 아무 생각 없이 즐겨본 하루였다. 위 두 영화는 어쨌든 영화 좀 본다 하는 분들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로 추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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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면접을 보고나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연락이 왔다. 그러나 결과는 아쉽게도 다음 기회를 노리라는 것. 리크루터 말로는 나름대로 팀에서 굉장히 고민을 했다고 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아 2차로 더 어려운 걸 물어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종합했을 때 약간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결정되었다고 한다.

뭐, 당연히 지원한 입장에서야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알고리즘 문제 풀이 쪽으로는 학교 수업 외엔 사실 별로 경험이 없었음에도 실제 면접에선 그래도 나름 만족스럽게 풀었기 때문이다. 구글 측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인해서 떨어뜨리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쪽도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절대 구글이 얘기해준 것이 아니며 내 자신의 평가임)로는:

  • 지금까지 주변에서 인턴을 했거나 하고 있는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이 경시대회 출전 경험이 꽤 있거나 상을 탄 경력이 있는, 알고리즘 문제해결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내가 약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안 좋은 평가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내 개인적으로도 나는 어떤 단시간의 알고리즘 문제해결 쪽보다는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에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학부 수업 성적을 봐도 프로젝트 과목들은 거의 A+을 받은 반면 그렇지 않은 과목들은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다.1
  • 면접 중 C++에 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문제는 아니었고), 내가 C++을 학교 수업이나 과제에서도, 또 개인적으로 참여했거나 혼자 진행한 프로젝트들에서도 한 번도 제대로 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를 뽑으려고 했던 팀에서 C++을 주요 언어로 많이 사용한다면 조금 주저했을 가능성이 있다.2 (비록 C, Java 등 비슷한 류의 언어를 많이 다뤘기 때문에 금방 배울 수 있기는 하겠지만.)
  • 첫 번째 면접 때, 어떤 한 문제에서 주어진 대상의 기본적인 정의를 하나 빼먹는 바람에 꽤나 삽질을 했고, 또 이것을 실제 코드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포인터 연산을 헷갈렸던 곳이 하나 있는데, 이런 것도 굳이 따지자면 감점 요인이었을 듯.

어차피 면접이라는 게 떨어질 수도 있는 거고 붙을 수도 있는 거고, 구글에서 인턴을 못한다고 해서 인생이 망하는(...) 것도 아니므로 크게 상심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세계 1위의 IT 기업 중 하나인데 들어가는 게 만만할 리는 없겠지. 사실 내 주변에 인턴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은 것도 KAIST라는 특수한 환경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KAIST를 벗어나서 생각해보면 인턴 지원할 엄두도 못 내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도 면접 진행과정에서 지원자를 잘 배려해주는 모습이나, 불합격 소식을 전하면서도 재도전하면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하는 부분 등은 인상적이었다. 역시 세계적으로 인재를 중시하는 기업다운 모습이고 또 한편으론 그만큼 자신있다는 뜻일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말로만 듣던 구글같은 기업에서는 어떤 식으로 인재들을 뽑는지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고, 한편으로는 내가 컴퓨터과학 전공자로서 어떤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야 하는지 알게 해준 셈이다.

다시 지원할 지, 어차피 휴학 예정이었던 가을학기 동안 무엇을 할 지는 좀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어쨌거나 결과가 나오니 후련하구나.


  1.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적이나 이력서는 정말 '수준 미달'인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한 정도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면접이라고 한다. 즉, 전체 성적이 조금 나쁘다고 해서 구글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 내가 알기로, 구글은 특정 언어를 잘 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특정 팀 단위로 뽑게 되면 각 팀에서 요구하는 세부 사항이 다를 수 있으므로 이런 가능성도 생각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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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기에 앞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 등에 대한 정보는 공유하지 않습니다. 아래 있는 내용은 이런 면접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 위주로 작성하였습니다. 괜히 잘못했다가 NDA 조항에 걸리면...(먼산)

스웨덴에 있을 때 지원서를 보낸 것이 5월 말, 연락을 받은 것은 6월 중순, 그리고 최종 면접 날짜는 오늘이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유수 IT 기업들의 면접은 소위 '기술 면접'이라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간단(?)한 알고리즘 문제를 주고 그 풀어가는 과정, 코딩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구글이 다른 회사보다 면접에 나오는 문제 난이도가 어렵다는 얘기도 들었고 해서 꽤 긴장하고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초를 충실히 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정도가 되겠다.;; 비록 경시대회 출전도 거의 안 해봤고 이런 종류의 알고리즘 문제를 푸는 게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카이스트에서 Problem Solving 수업을 들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1 위에서 말한 기초라 함은 학부생 레벨이라면 data structure만 확실하게 잡아도 반은 먹고 들어갈 것이다.

면접은 총 2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두 개의 다른 팀에서 한 명씩 나와 1시간씩 일대일로 면접이 이루어졌다. 꼭 정해진 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비교적 가벼운 이야기(이력서에 있는 내용 물어본다거나)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2개 정도의 알고리즘 문제를 푼 다음 구글에 대해 알고싶은 것 아무거나 질의응답하는 식이었다. 두 면접관 모두 첫 문제는 비교적 쉬웠고 두번째 문제는 비교적 어려웠다.

일단 첫번째 요구사항을 해결하면 점점 더 어려운 요구사항이 붙는데, 첫번째 문제들의 경우 모두 어느 정도 수준까지 레벨(?)을 올릴 수 있었으나, 두번째 문제들의 경우 다 완성하지는 못했다. 특히 첫번째 면접관이 냈던 두번째 문제의 경우, 기초적인 정의를 하나 빠뜨리는 바람에 그 정의를 찾느라 꽤나 오랫동안 삽질을 해서 시간 내에 다 풀지 못했다. (1차 끝나고 쉬는 시간에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까지는 답을 찾았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_-) 두번째 면접관의 두번째 문제는 쉽게 할 수 있는 걸 너무 어렵게 빙빙 둘러가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기본 접근 방법이 맞았기 때문에 힌트를 받고 잘 일반화해서 구체적으로 알고리즘을 설명까지 하고 끝낼 수 있었다. (원래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직접 구현까지 해야 하는 것인데, 음, 제한된 면접시간 내에 완벽하게 구현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였던 것 같다.)

이런 면접을 봤던 분들이 항상 얘기하듯 중간에 조금씩 막히는 부분이 있더라도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계속 말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설령 그렇게 튀어나온 아이디어가 틀렸다고 할 지라도 그게 어떻게 해서 문제가 되는 것 같다라든가 하는 것들을 잘 설명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_-; 그리고 자기가 남한테 뭔가 설명해주는 것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친구랑 같이 연습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충분히 문맥적으로 알아들을 것 같더라도 면접관들이 항상 확실한 설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느끼는 만족도는 70~80% 수준. 물론 면접관들이 어떻게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1. 수업이 굉장히 특이하게 진행되는데, 숙제로 내준 알고리즘 문제들을 수업 시간에 돌아가면서 자기가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하는 식이다. 오답이든 정답이든 모두 말로 풀어서, 칠판을 이용해서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이 알아듣도록 설명해야 하므로 이러한 면접을 준비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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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새 있었던 일이다. 지금 사는 집에 이사 온 게 1년 반이 되었는데, 이사올 때 전에 살던 집에서 쓰던 ISP를 그대로 옮겨와 쓰다가 그 업체가 하나로통신에 인수되었다. 계약은 그대로 유지가 되고 회사만 바뀌었는데, 3년 약정이 얼마 전에 끝났던 것이다. 사실 우리 집에선 특별히 문제가 있거나 이것보다 엄청나게 싸고 더 좋은 게 나오지 않는 이상 뭐든지 오래오래 쓰는 편이라서, 3년 약정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잘 쓰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어미니한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내용인즉슨, 지금 쓰고 있는 하나로통신에서 LG파워콤으로 바꾸면 서비스도 좋아지고 뭐 6개월 무료 혜택에 통장에 9만원 현찰 입금이 되고 어쩌구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이런 전화가 걸려오면 모든 조건을 아주 정확하고 세세하게 따지시기 때문에 꽤나 한참 동안의 전화 통화 끝에, "3개월 무료"란 말이 첫 3개월 연속 무료가 아니라 첫달 무료, 12개월 후 무료, 26개월 후 무료라는 것과, 처음 설명할 때 6개월 무료인 것처럼 얘기했던 것은 9만원 입금을 포함해서 얘기했던 것이며, 가격이 한달 2만7천원이라는 것은 반드시 롯데카드를 써야만 그렇고 일반 계좌이체로 하면 3만원이며, 결국 3년 약정을 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더라는 것을 알아내셨다. -_-;;

게다가 어머니께서 특히 화를 내셨던 부분은, 어머니가 이렇게 꼬치꼬치 따지고 들자 텔레마케터가 "6개월 동안 쓰신 후 본사로 전화해서 다른 걸로 바꾸겠다고 하면 가격을 더 낮춰서 쓰실 수 있습니다"라고 한 부분이다. 그래서 어머니 왈, "그럼 나처럼 그렇게 따지지 않는 사람들은 그만큼 더 내고 쓰는 것 아니냐. 당신이 책임지고 맡아서 해줄 수 있느냐"라고 하니 결국 "요령만 알려드리는 겁니다"라더란다. -_-;;;;

아무튼 한 번 바꿔보자고 해서 오늘 기사가 왔다. 전화 상으로는 무슨 모뎀을 설치하고 어쩌고 하는 것처럼 그러더니, 기사한테 내가 우리집이 어떤 구조로 인터넷을 연결해서 쓰고 있는데 그럼 정확히 어떤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냐고 물어보니 아저씨 왈 "어떤 회사를 써도 이 아파트에 결국 다 100M 회선으로 들어오는 건 맞고, 자기가 하는 건 어느 통신사로 연결되는지 선만 바꿔끼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6개월 후 본사에 전화하면 요금을 내릴 수 있다고 한 부분을 물어보니 절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 -_- 아저씨 말로는 파워콤이 더 장비가 최신이라 좀더 좋고 어쩌구...;; 하지만 내가 물어본 해외망 접속 속도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대답을 못하더라.

결국, 다 필요 없고 지금 쓰던 것 잘 쓰고 있고, 그렇다고 서비스 품질이 월등하게 차이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격이 더 싸지는 것도 아니고(현재 하나로통신도 똑같이 2만7천원 납부 중), 지금 시점에서 새로 3년 약정하면 혹시나 나중에 해지할 일이 생겼을 때 위약금 물어야 하니 그냥 가라고 했다. 어머니의 말빨에 계약서 보여주지도 못하고 돌아갔다.;;

그 와중에 기사 아저씨의 설명을 들으니 어머니한테 전화했던 텔레마케터는 LG파워콤이나 하나로통신 어느 쪽의 소속도 아니고, 중간에서 고객정보를 받아 통신사에 가입을 시켜주고 그 가입시켜준 댓가로 한 가구당 10~15만원씩 받아먹는 중간 TM업체란다. 우리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3년 약정 초과를 귀신같이 알고 전화해서 다른 통신사로 바꾸게 하고 실적을 올리려고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기분나쁜 일이 아닐 수 없는 게, 우리 집이 가입할 때 제공한 모든 개인정보(어머니 휴대폰 번호부터 시작해서...)가 하나로통신과 TM업체와 LG파워콤 사이에서 다 맴돌고 있다는 뜻 아닌가. 게다가 LG파워콤은 정식 가입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6개월이 자꾸 나온 이유가, TM업체에서 가입시켜주고 나서 6개월 이내에 해지할 경우 TM업체가 그걸 변상해야 하는 구조라고 한다. 그래서 텔레마케터들은 어떻게든 오랫동안 쓰게 하려고 붙잡으려는 성향이 강하고, 따라서 3개월 무료를 첫달, 12개월째, 26개월째로 쪼개놓은 것도 다 그런 의도에서였던 것. 그렇게 해놓으면, 사실 26개월째 과금이 됐는지 안 됐는지 어떻게 다 일일이 기억하고 체크하고 살겠는가. 정말 활당할 노릇이다.

한국이 땅은 좁고 인구는 많고 뭐라도 해서 돈벌어 먹고는 살아야겠으니 TM업체니 뭐니 복잡한 유통·영업 구조가 자꾸 생기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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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고 있는 휴대폰이 몇 년 된 것이라서 바꿀까 말까 고민도 해보고 부모님도 하나 사주시겠다고도 하신다. 하지만 나는 아직 바꿀 생각이 없다. 이유는 iPhone 정도 되는 것이 아니면 살 생각이 아니라서다. 그 정도 아니면 문자와 전화로 족하다.

하지만 내가 iPhone에 열광하고 그걸 원하는 이유는 단순히 터치인터페이스라서라거나 하드웨어 스펙이 좋아서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의 삼성, LG 등에서 만드는 최신폰들이 더 나은 면도 있다. 바로 소프트웨어 때문이다.

AppStore, 개발자용 SDK, MacOSX의 개발로 다져진 실력을 발휘한 훌륭한 플랫폼, 거기에 OpenGL이 돌아간다. 지금까지 휴대폰의 기능을 사용자가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다고 생각해봤는가? 그것이 최초로 가능해진 것이 바로 iPhone이다. 물론 프로그래밍 능력이 없는 사람들한테야 먼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Firefox를 왜 쓰는가? 수많은 확장기능들로 내 입맛대로 바꿔 쓸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이제는 휴대폰에서도 그게 가능해진 것이다. 굳이 내가 만들지 않아도 이미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만들고 있는 iPhone용 어플리케이션들이 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왜 이런 아이디어가 한국에서 먼저 나오지 않았을까? 왜 이런 것을 한국에서 먼저 구현하지 못했을까?

여기에 대한 이유는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으로 인한 창의성 부재부터 시작해서 소프트웨어/통신 업계의 제도적 관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문제점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IT에서는 전통적으로 하드웨어를 중시해왔다. 삼성과 하이닉스로 대변되는 반도체 산업과 다시 삼성과 LG로 대변되는 LCD, 가전 산업이 한국을 전자기술의 강국으로 만들어놓았다. 2000년대 들어 시작한 초고속 인터넷 보급은 누구나 인터넷에 무제한 접속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IT강국이라고 스스로 외쳤다.

그러나 한국이 가장 약한 부분은 소프트웨어다. 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문 떡밥이지만 한국은 반쪽짜리 IT강국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충분히 애플과 같은 생각을 해낼 수 있는 자양분이 갖춰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한국에 공유·개방하는 문화가 널리 퍼지지 않아서라고도 하고, 휴대폰 유통을 맘대로 주무르는 독점이동통신사들의 횡포라고도 한다. 솔직히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한국의 IT시장과 인터넷 서비스들을 볼 때 아직도 폐쇄적이라는 점이다.

국수주의로써 국내 시장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애플 등의 제품에 대한 찬사를 또다른 사대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스웨덴에 나가 살면서 느낀 것을 한 가지 뽑으라면, 이미 세계는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적 물리적 국경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세계는 하나로 합쳐지고 있고 그것을 막는 장벽도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건 돈과 언어다.) 정말 해묵은 소리지만, 우리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한국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경 밖에 있는 것이다.

iPhone이 당장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애플의 하드웨어 솔직히 신뢰성이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미국이 지금의 세계 최강대국이 된 것은 이러한 창의성과 혁신적인 사고가 가능했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라는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그 바탕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미국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런 좋은 건 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을 가지고도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데, 애플은 그것을 누구보다 먼저 구현해냈고 어찌됐건 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트렌드는 앞으로 점점 심해질 것이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획일화된 제품에서 벗어나 입맛에 맞는 것을 찾게 될 것이고, 중학교 사회 책에도 나왔던 '다품종 소량 생산 시대'의 개념이 이제 휴대전화에도 도입되는 것이다. 누가 생산하는가? 소비자들이 생산하는 것이다.

한국에도 iPhone이 출시될 수 있기를 바라며, 또 그것이 한국의 닫힌 시장 환경을 하루빨리 열어주는 촉매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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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을 떠나 태국 수완나폼 공항에서부터 쓰기 시작했지만, 생각날 때마다 계속 덧붙이고 덧붙이고 하다보니 이제서야 올리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더 올릴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비행기

드디어 5개월하고도 일주일을 더 있었던 스웨덴 교환학생 생활이 끝났다. 지금은 태국 방콕의 수완나폼 공항에서 한 카페에 앉아 노트북 충전하며 글쓰는 중. AP가 잡히는 곳이 있고 안 잡히는 곳이 있으나 어쨌든 인터넷 접속은 아직?? (여기는 현재 오전 7시 40분인데 스웨덴 시간으로는 새벽 2시 40분..... 해는 중천인데 졸리다...OTL 사실 스톡홀름발 비행기에서 사람들이 꽉 차지 않아 자리는 여유있게 타고 왔는데 뒷자리에 조르륵 앉은 스웨덴 여학생 3명이 카드 놀이하면서 사람들 다 자는데 웃어제끼질 않나 음악 이어폰도 안 끼고 빵빵 틀어놓고 아주 난리굿도 아니어서 잠을 거의 못 잤다..ㅠㅠ)

수완나폼 공항 얘기 잠깐

스웨덴 크로나로 2020:-하고 동전 약간이 남았는데, 공항에서 면세점에서 선물도 좀 사고 카페 같은 데서 앉아있자니 태국 바트화가 필요하다. 근데 ATM은 태국에 입국을 해야만 접근할 수 있고, 체크카드가 되긴 되나 최소 결제액을 꽤 높게 요구하고, 환전소에 갔더니 스웨덴 크로나는 흔하지 않다며 잔돈이 없단다..ㄱ- 결국 500:- 짜리(한국 돈으로 8만5천원 정도)를 바트로 환전하니 무려 2600바트. 스웨덴에서는 상상도 못할, 앱솔루트 보드카 1L짜리(오리지날이 500바트, 향료 및 맛이 첨가된 것들은 550바트, 100도짜리는 1020바트)를 5병 사고도 남는 돈이 되었다. -_- 스웨덴은 술과 담배에 대한 세금이 엄청 센데다 국가 독점이라 굉장히 비싼데, 오히려 태국에 오면 엄청나게 싸게 살 수 있다. (스웨덴에서 앱솔루트 보드카가 한 병에 얼마인지는 사실 알아보지 않았는데, 비싸지 않은 보통 와인 한 병이 최소 200:- 넘으니까 보드카로 오면 얼마나 가격차가 날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도 불평할 정도라고 하니 뭐.

그나저나 지금 가지고 있는 화폐 종류가 유로, 스웨덴 크로나, 노르웨이 크로나, 러시아 루블, 에스토니아 크로나, 태국 바트까지 이건 뭐 집에 화폐 전시장 차려도 될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많은 종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돈이 그만큼 쪼개져서 결국 못 쓰는 돈으로 고정되어버린다는 점과 액수가 좀 되더라도 환전을 반복하면 환차손을 보게 된다는 단점도 있다.)

그리고 이놈의 공항 무진장 크다. 스웨덴 갈 때는 한밤중에 도착해서 환승 바로 연결된 상태로 연착해 도착하는 바람에 100m 달리기하느라 제대로 못 봤는데, 이번에는 거의 5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있기 때문에 천천히 걸으며 여기저기 둘러볼 수 있었다. 일단 스톡홀름발 비행기가 도착한 C1 gate에서 한국행 비행기가 뜨는 E9 gate까지 안 쉬고 걸어가는 데만 20분 족히 넘게 걸린다는 거. -_-;;; 예전에 환승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중간에 면세점 조금 두리번하다보면 30~40분은 그냥 갈 듯하다.

스웨덴과 교환학생

다시 교환학생 이야기로 돌아와서, 교환학생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법한 차례다. 사실 교환학생 하러 가면서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 '공부하러' 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운다든가 주변국 여행을 좀더 쉽게 해보려 한다든가 등등이 대다수. 내 경우, 평소에 듣고 싶었지만 카이스트에는 없는 전공 과목(parallel computation, artificial neural networks)을 듣고 싶었던 것도 있으나 사실 그건 지역을 결정한 다음에 알아봐서 그런 과목으로 고른 것이지 처음부터 그런 과목을 들으려고 교환학생을 온 것은 아니니 결국 후자에 속한다고 하겠다.

한 마디로 교환학생 생활을 통해 배운 것을 요약하면, "Why not"의 정신을 배웠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는데,

  • 내가 그동안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대받아온 삶의 모델에 개의치 않고 내가 내 스스로 미래에 할 일을 결정한다는 것
  • 기존의 개념이나 가치관에 의구심을 마음껏 제기하는 것
  • 사람들 눈치보지 않고 살기
  • 왜 한국에서는 이런 당연한 것이 안 되지? (예: Firefox로 인터넷 뱅킹하기)
  • 내가 좀 못하는 것이라도 왜 안 하나? 즐기면 되지.
  • 언제든지 주변 사람한테 물어보자. 모르고 앓느니 물어보는 게 낫다. 뭐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

스웨덴에 살면서 느낀 사람들의 삶의 태도랄까, 그런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삶의 방식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스웨덴에 사는 외국 사람들이 많이 하는 얘기 중 하나가 스웨덴 사람들은 부끄럼을 잘 탄다거나 친해지기가 함들다는 것인데, 스웨덴 사회 분위기 자체가 솔로잉을 하기에 매우 편하기 때문인 것 같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에서는 혼자 밥을 먹으면(그것도 음식점 같은 데서) 처량맞다고 여겨지는 생각이 있지만 스웨덴은 그런 거 전혀 없다. 시내 중심가 고급 레스토랑에 동양인 혼자 앉아서 시켜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다. (실제로 해봤다 =3) 하지만 그런 만큼 사람에 따라 사회 생활에 장애를 가져올 수도 있는데,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반어거지(?)로 어떤 형태로든 친구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한국과 달리 이곳은 그것이 철저하게 개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므로 오덕후(...)가 생기기 딱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쓰고보니 점점 일본과 비슷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_-) 얼마 전에 만난 어느 한국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스웨덴 대학생 중 1만명이 친구 없이 솔로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할 정도. (이성친구 말고 그냥 일반적인 의미의 친구 말이다.)

유럽 사회의 이런 전반적 풍토 때문인지, 서양 커플들은 대체로 애정 표현을 아주 과하게 하는 편이다. 공공장소건 아니건 하루에도 수십번씩 쪽쪽(...) 빨아댄다. 이것은 단순히 성적 욕구가 강하거나 성문화가 개방적이라서라기보다는 그만큼 솔로잉을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하나의 동료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욕망의 발로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더욱더 다양성이 보장되고 창의력이 발휘될 기회가 늘어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화적 차이

성문화

교환학생을 하면서 몇 차례 문화적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주로 성문화에 관련한 것인데, 우선 기숙사 같은 층에 남녀 커플이 한 방에 동거를 하고 있다든지(남녀가 같은 층에 사는 건 기본. 물론 화장실은 방마다 따로 있음) 하는 것들이다.

Lappis 고기 파티 때 한국인 여자분과 함께 일본 여학생 + 스웨덴 남학생 커플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남학생과 얘기를 해보니 연애를 하는 방식도 한국과는 매우 달랐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성인이 되어 연애를 함에 있어 성관계라는 것을 한국에 비해 훨씬 가볍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남녀가 사귀게 되면 본격적인 스킨십이나 키스가 이루어지까지도 시간이 꽤 걸리는 법인데(요즘은 좀 빨라졌으려나?), 그 친구 말로는 스웨덴에선 첫날밤 같이 자도 이상하지 않단다.;;;

하지만 이러한 지나치게(?) 개방적인 성문화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성교육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뭐 실질적으로 어떻게 성교육이 이루어지는지까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대체로 한국에 비해 훨씬 어린 나이부터 섹스에 대해 가르치고 피임 방법 등을 잘 알려준다면 이렇게 잦은 성관계에서도 원치 않는 임신 등으로 사회 문제가 될 확률은 확실히 낮아질 것이다. 한편으론 스웨덴 자체가 워낙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어머니로서 살기 좋은 나라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정도니 미혼모가 생기더라도 사회적 안전망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를 낳는다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라는 한국의 통념과 달리, 이곳에선 결혼할 경우 법적으로 그 관계가 엄격하게 구속되기 때문에 결혼보다는 동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새로운 일 시도하기

성문화 말고도 차이를 느낀 부분이라면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threshold가 훨씬 낫다는 점이다. Where the hell is Matt?와 같은 동영상을 찍는다고 생각해보자. 생판 모르는 장소에 가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춤을 춘다고 쳤을 때 한국에서가 쉬울까 스웨덴에서가 쉬울까? (물론 링크한 동영상을 보면 서울에서 사람들과 함께 찍은 게 있긴 하다) 스웨덴이 한국에 비해 길 가는 사람들한테 말을 걸고자 할 때 어떤 심리적 역치 이하의 분위기가 훨씬 더 많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것을 사회 전체로 확장하면 그만큼 사람들이 여유·자유롭다는 것이고 새로운 시도가 더 많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내심 강한 자동차 운전자들

스웨덴에 5개월 남짓 머무르며 끝까지 적응 못한(?) 것이 바로 도로 횡단이다. -_-; 왜 적응을 못했냐면, 한국에선 신호가 초록불이더라도 우회전 차선으로 밀고 들어오는 차가 없는지 등을 항상 사람이 조심하며 건너야 하지만 스웨덴에선 정반대로 사람이 자동차에게 양보를 해도 자동차가 끝까지(정말 끈질기게..) 사람이 먼저 건너도록 기다려주기 때문이다. 주요 간선도로나 고속도로처럼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니면 대개 현지인들은 자동차를 무시하고 건너는 경향이 강하다. 자동차가 알아서 감속하고 멈춰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호를 안 지키고 건너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횡단보도 신호등에는 버튼이 달려 있어, 그 버튼을 누르면 교통량에 따라 보행자 신호로 빨리 바뀌도록 하고 있다.

스웨덴의 운전 문화는 유럽 내에서도 놀라울 정도라서, 노르웨이나 핀란드조차 거칠게 운전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종교를 대하는 태도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가톨릭이나 루터교, 혹은 그리스/러시아 정교 등의 기독교 신자가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정기적인 미사·예배 참가율은 한 자릿수 대의 %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형식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종교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은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내가 다녔던 St. Jakobs Kyrka의 경우도 international service임을 고려하더라도 매주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 10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종교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은 그만큼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 사는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다면 굳이 신을 찾아 기도할 필요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불안하거나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종교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거꾸로, 유럽 국가들의 사람들이 종교 활동에 소극적인 것은 그만큼 사회 복지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경우 막대한 세금을 통해 확실한 복지 정책을 하고 있어서 특별히 가난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 스톡홀름에서 머무는 동안 음악을 연주하며 구걸하는 사람은 두 번 봤고, 진짜 아무것도 없이 생짜로 구걸하는 사람은 딱 한 번 보았는데, 단 하루만 서울을 나가도 볼 수 있는 지하철역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노숙자들과 구걸하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이다. 즉, 기본적인 삶의 욕구가 충족이 되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닫혀있는 한국

요즘 Apple의 iPhone이나 캐나다에서 만든 Blackberry 등 스마트폰이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있다. 또한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Web 2.0이라는 새로운 참여·개방의 트렌드가 인터넷 서비스들을 휩쓸고 있다. 그러나 스웨덴에 살아보고 한국에 살면서 느끼는 점이 한국 시장은 아직도 너무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비단 WIPI 의무화 정책에 따른 진입 장벽은 차치하고서라도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내수 시장에서 피터지게 이권 싸움하며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한국의 막대한 잠재력이 쓸데없이 내부에서 소모되고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듬을 부인할 수 없다. 그나마 반도체, 휴대전화, 조선 등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 시장을 두고 당당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이동통신이나 인터넷 환경 등은 아직도 너무나 내수만을 바라보고 있다.

일단 외국에 나가서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매우 느린 속도를 감수해야 한다. 특히 요즘 많이 생겨난 UCC 동영상 사이트들은 애초에 재생조차 불가능한 곳이 꽤 많다. 어떤 곳은 해외 사용 시 아예 유료 과금을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얼마 전 내가 사용하고 있는 서버호스팅 업체에서 공지 메일을 띄웠는데, 그 회사가 입주해있는 KT IDC에서 해외 트래픽에 대한 과금을 통보했고, 트래픽을 주요 무기로 사업을 하던 그 업체는 고객 서버를 다른 IDC로 이전하거나 추가 비용을 내거나 아니면 해외트래픽을 제한하거나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종용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내 사용 내역은 제한 대역을 초과하지 않아 별도 비용 부담 없이 해외트래픽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었지만, 해외를 타겟으로 하는 비영리 사이트들 같은 경우는 상당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또한 이런 포스팅에서 보듯 일반 사용자가 해외로부터 한국 인터넷에 접근할 때도 connection 별 트래픽 제한을 걸기도 하는 등 개방적인 인터넷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지리적으로 한국이 미국·유럽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해저케이블 등 외국과의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 우리의 우수성을 알리고 또한 해외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재빠르게 흡수하여 우리 것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선 IT 강국이라는 자칭 명성에 걸맞게 이러한 해외 인터넷 인프라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국내에서 전세계를 타겟으로 뭔가를 개발하여 서비스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환경이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국가 간 인터넷 인프라 구축은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힘들고 여러 국가들(일본, 미국 등)과 Google과 같은 대기업들이 함께 참여하여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진행한다면 큰 부담 없이 인터넷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노르웨이 여행갔다가 스웨덴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차에서 만난 한 청년이 보여준 영국의 디자인 잡지에 나왔던 서버호스팅 광고를 보니 그 물가 비싸다는 영국임에도 사양 대비 비용은 한국보다 저렴했다. 한국이 진정한 IT 강국이 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기 위해선 이러한 인프라 비용이 줄어야 한다. 값싼 웹호스팅들은 그나마 php, mysql을 옛날 버전으로 유지하고 있어 Textcube 뿐만 아니라 해외의 여러 혁신적인 웹프로그램들을 자유롭게 쓰기 힘들게 하고 있다.

또한 오래 전부터 지적돼온 인터넷뱅킹과 ActiveX 문제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에서 인터넷 뱅킹할 때 매킨토시에서 Safari를 이용하든 Firefox를 이용하든 그 어떤 환경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기숙사에 같이 살던 이탈리아 친구가 32인치 LCD TV를 모니터로 쓰면서 우분투 리눅스에 Firefox를 띄워놓고 웹서핑을 하고 있던 그 모습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리눅스만으로도 충분히 인터넷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증거이며, 따라서 MS의 독점으로 인한 폐해 또한 이미 먼 나라 이야기라는 것이다. 며칠 전 아버지께서 인터넷 뱅킹을 위해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으셨는데, 그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이것저것 설치해야 하는 것도 많아 옆에서 내가 도와드려야 했었다. (특히 굳이 설치할 필요 없지만 마치 설치해야 될 것처럼 떠서 결국엔 컴퓨터를 느리게 만드는 n모사 키보드 해킹 방지 프로그램은 설치하지 않고 넘어간다거나 등등.) 만약 스웨덴과 같이 인터넷 뱅킹을 했다면 아버지도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간단히 웹브라우저로 접속해서 아이디와 OTP 머신으로 비밀번호를 생성하여 입력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많은 ActiveX를 깔며 보안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아도 한편으론 너무나 보안에 허술한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다. 내가 사용하는 서버호스팅의 경우, 서버를 재부팅하거나 하는 작업 요청이 가능한 홈페이지 로그인에 아무런 암호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기껏 한달 전쯤 추가한 것이 자동로그인 방지를 위한 captcha인데 사실 이거 조금만 머리쓰면 패턴인식 알고리즘으로 뚫을 수 있다.) 유선 인터넷이면 그나마 낫지만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땐 불안하기 그지없다. 이런 기본적인 부분은 당연히 SSL로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 KAIST의 내부 서비스들도 마찬가지다. 포탈을 제외하고 포탈과 싱글사인온으로 연동되는 다른 사이트들은 생짜로 비밀번호를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포탈의 싱글사인온 서버와 정보를 주고받을 때 주민등록번호까지 그대로 날려 주고받는다. KTH의 경우 모든 서비스 로그인은 반드시 SSL로 보호가 되어 있어 웬만해선 비밀번호가 유출될 염려가 없다. 정말 IT 강국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런 면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힘써준다면 한국이 가진 잠재력이 확 피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경제 규모와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정치 수준이 아직도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선진국은 왜 선진국일까

Universal Design의 천국

내가 들은 유일한 산업디자인과 과목인 '디자인 문화와 기술' 수업에서 나왔던 주제 중 하나가 바로 universal design이다. 스웨덴에 가보니 여기가 바로 이것의 천국임을 알 수 있었다.

  • 모든 시내버스는 저상버스이다. 버스 기사가 항상 정류장에 가까이 차를 대주고, 차 문이 열리면 차체가 자동으로 기울어 정류장과 바닥 높이를 맞춰준다. 버스 내에서는 휠체어나 유모차가 2~3대 정도씩 들어갈 수 있는 공간과 차의 움직임에 따라 미끄러지지 않도록 묶을 수 있는 끈까지 잘 비치되어 있다.
  • 모든 지하철역에는 엘레베이터(hiss)가 제공되고 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무거운 짐을 나를 때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며 여행가방처럼 큰 짐을 들고 타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 상당히 많은 수의 건물에서, 주요 출입구에는 버튼을 누르면 전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 갖춰져있다. 보통은 수동으로 여닫는 문이지만 휠체어를 타거나 문을 열기 힘든 노인분들(스웨덴은 겨울 날씨가 춥고 바람이 센 탓인지 출입문이 상당히 무거워서 가끔은 잠긴 것으로 오해한 적도 있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있다.
  • 역시 web accessibility 또한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위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생활에 필요한 모든 웹사이트는 cross browsing을 제공하고 인터넷 뱅킹이나 각종 결제 또한 마찬가지다. 덕분에 오픈소스나 매킨토시 등 비윈도우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비율 또한 월등히 높고, 그것이 다시 이러한 웹접근성 향상에 영향을 주는 선순환 고리를 형성한다.
  • 자동차가 많이 다녀서 신호를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횡단보도엔 반드시 시각장애인용 소리 발생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

특히나 최근 광우병 문제와 의견 수렴 없는 추진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 나라가 잘 돌아가기 위해선 정부에 대한 신뢰, 정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처럼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대안이 없다며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정부가 알아서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정치에 무관심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정치에 무관심해보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각 개인이 비교적 합리적 판단을 통해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고, 감시체제가 잘 갖춰져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점에서 중국의 경우는 상당히 특별하다. 많은 중국인들이 정부의 경제·기술·산업 육성에 큰 지지를 보내고 있어도, 중국 정부는 아직까지는 투명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행히 국가 지도자들이 실리적 판단으로 중국을 부흥시키고 있지만 만약 그들이 다른 마음을 먹을 경우 그것을 견제할 장치가 없어보인다. 견제할 장치라고는 중국의 막대한 인구 정도? 그렇기에 앞으로 중국이 현재의 정치 체제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혹은 어떻게 유지해 나갈지 사뭇 궁금한 대목이다.

외국인으로서 살아가기

어쨌거나 저쨌거나 스웨덴에 있는 동안 나는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그곳 사회에서 살아갔다고 말할 수 있다. Official civic number도 없는 6개월짜리 비자였어도 은행에 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 경우를 제외하면 civic number를 요구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거의 아무런 불편 없이 살 수 있었다. (물론 직업을 구한다거나 하면 좀 달라질지 모르겠다.) 또한 어딜 가도 표지판이 잘 정비되어 있고, 사람들과 영어로 말이 통했기 때문에 스웨덴어는 대충 간판과 광고를 읽어 해석할 수 있을 정도만 하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스웨덴은 외국인으로서 살아가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라 할 수 있겠다.

거꾸로 한국을 생각해보자. 아직도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이 영어로 대화하지 못하는 건 그렇다 쳐도(그래도 기차역이나 공항 등의 표지판 시설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무슨 서비스를 한 번 이용하려면 주민등록번호에 휴대폰 번호를 거의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 힘들어보인다. 특히 휴대폰의 경우 외국인들은 자기 명의로 개설하기가 까다로워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야 하는 등의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한다. 한 가지 더 문제는, 표지판 시설 자체는 잘 되어 있으나 한글의 romanization과 관련된 이슈이다. 예전에는 McCune Reischauer가 제안한 방법을 썼고, 지금은 Revised Romanization이라는 방법을 쓰는데 이때 고유명사의 표기는 예전에 쓰던 것을 그대로 써도 된다는 조건이 붙어 한꺼번에 바뀌지 못하고 조금씩 바뀌고 있는 상태라서, 외국인들이 한국을 처음 방문하면 똑같은 지명을 두고도 서로 다른 장소로 오인하는 등의 사례가 많다. (한국을 방문해봤다는 외국인들한테 들은 내용이다.)

교환학생을 하고 나서 바뀐 점

  • 모르는 사람한테 말 거는 게 더 대담해졌다. (특히 영어로.) 방금도 카페에 맞은 편 자리에 앉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일하러 간다는 어떤 영국 아저씨랑 잠깐 수다를.;;
  • 영어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물론 아주 유창한 발음을 구사한다거나 어려운 단어가 술술술 흘러나온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상 대화는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게 됐다. 스웨덴에 가는 비행기에서 스튜어디스들한테 영어로 뭔가 부탁할 때의 느낌과 이번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의 그 느낌은 완전 천지차이. 이제는 스튜어디스가 나보다 영어 못하네라는 생각을...;;; (아 물론 태국인이니까 더 그렇긴 하겠지만.) 근데 미국 유학하시는 분들 블로그 보면 미국 쪽 영어발음은 또 안드로메다인 것 같다;
  • 정치에 관심이 많아졌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치를, 민주주의를 잘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스웨덴과 같은 복지 사회를 보면서 한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그들의 환경과 한국의 환경 차이에서 오는 문제점들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와 같은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 나라가 좋다

스웨덴이 정말 선진국답게 모든 것이 깨끗하고 시골이든 도시든 어딜 가도 잘 정비되어 있고 다 좋았는데, 한 가지 결정적인 단점은 바로 음식 문화가 별로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여러 나라들과의 교류로 케밥, 피자, 스시 등 다양한 음식들이 보급되어 있긴 하지만 스웨덴 고유 음식은 기후 때문인지 정어리를 이용한 Herring을 제외하면 그다지 맛있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감자 굽거나 갈거나 튀긴 것에 고기 종류, 샐러드 정도가 전부다. 한국에 오니 집에서 어머니께서 기본적으로 만들어주시는 반찬들조차 그 맛과 풍미가 다채롭기 그지 없고, 사실 한국에서만 살면 잘 못 느끼지만 외국 나가보니 해산물과 육지 음식이 이토록 다양한 조합으로 요리에 활용되는 것도 한국을 따라올 만한 곳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지 음식 문화만큼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또,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의 자연 또한 매우 아름답다. 노르웨이의 피요르드나 스웨덴·핀란드의 울창한 침엽수림이 관광 자원이 되고 있지만, 사실 그 스케일이 클 뿐 우아한 아름다움은 없다. 주변의 산을 둘러보자. 습한 동아시아의 공기 속에 낀 하얀 연무로 인해 첩첩 쌓인 산들은 그 완만한 곡선과 함께 절로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이런 풍경은 한국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나도 전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스웨덴 학생에게 중국·한국·일본의 차이가 뭔지 설명해주다가 전통 건축물을 가지고 비교를 해주면서 한국의 기와 지붕이 산의 완만한 곡선을 닮아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건축을 공부하는 형이 말하길, 중국은 자연을 경외하였고, 한국은 자연 그대로를 즐겼으며, 일본은 자연을 극복하려고 했다고 하는데 이런 차이가 서양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외국에서 사실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 문화의 아류라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외교부에서 문서적 일만을 담당하지 않고 문화 홍보의 역할도 함께 겸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뭐 객관적으로 말해서 한국 문화가 중국 문화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한국만이 가진 독특한 점들--특히 고려청자나 전통 건축 스타일 등--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다만 외교부나 문화관광부 등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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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난 화요일(10일)부터 토요일(14일)까지 노르웨이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모토는 휴식과 기차였다. 특히 오슬로-베르겐 구간 철도는 세계적으로도 손꼽는 아름다운 코스라고 했고, 6~7시간씩 기차에 앉아서 옆자리 사람과 이야기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 기차로 가기로 한 것이다. 사실 스톡홀름에서 베르겐으로 바로 가는 저가 항공을 이용하면 기차로 두 단계 거쳐서 가는 것과 비슷하거나 더 싸지만, 어차피 노르웨이 수도인 오슬로를 놓치기도 아까웠고 풍경을 감상하며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었기 때문인 것도 있다.

아래 스크롤 압박 주의!

여행 준비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여행갈 때 절대 짐을 바리바리 다 싸들고 갈 필요가 없다는 것. 3박4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라면 대충 갈아입을 옷만 두어 개 챙기면 되고, 일주일 이상 되는 긴 여행의 경우에는 빨래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겨울의 경우 옷이 무거운 대신 덜 갈아입을 수 있으므로 사실 피장파장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여행 필수품:

  • 고무슬리퍼 : 샤워하거나 머리를 감거나 할 때 있으면 좋고, 숙소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나 숙소 내부를 돌아다닐 때 편하게 쓸 수 있다.
  • 비닐봉지 몇 개 : 임시 쓰레기통으로 쓰거나 묵은 빨래를 넣어둘 때 필요
  • 휴대용 수저 : 가끔 음식을 take-away했는데 포크 같은 걸 챙기지 않은 경우 난감할 때가 있다.
  • 페이퍼백 소설 : 지루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읽으면 좋다.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작은 페이퍼백으로 준비. (요즘 한국에서도 이런 책이 출판되고 있다고 하던데...) 이번 노르웨이 여행에서는 아서 클라크"A fall of moon dust"를 골랐다.
  • iPhone : 전화 로밍 + WiFi + GPS. 한국에 iPhone 3G가 정식 출시되고 핸드폰 락 같은 게 없어져서 한국에서 쓰던 핸드폰을 들고나와 그대로 쓸 수 있다면 상당히 편할 것 같다. 특히 아이폰의 경우 WiFi가 된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노트북은 어지간히 가벼운 것 아니면 들고다니기 귀찮다.

뭐 아프리카 오지를 탐험한다거나 치안이나 위생 조건이 열악한 국가에 간다면 다르겠지만, 유럽 국가를 여행할 경우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는 것 말고는 사실 크게 특별히 대비할 것은 없는 것 같다. 혼자 다닐 때 정신 바짝 차리고 적당히 경계를 하면서 다니는 건 기본이고.

오슬로(Oslo)

스톡홀름에서 오슬로로 가는 기차의 출발은 10일 오후 2시 35분 기차였다. 옆자리의 누군가와 수다 떨 것을 기대했으나 사람이 너무 없어서(...) 다들 자리 두세 개씩 차지하고 다리 쫙쫙 펴고 가는 그런 상황이라 그냥 혼자 경치 구경하고 Lonely planet이나 읽었다. -_-;

Stockholm to Oslo

스톡홀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차했을 때 찍은 사진.

오슬로 중앙역. "센트랄스타숑" 정도로 읽으면 된다;;

사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스웨덴 쪽은 노르웨이와의 북쪽 경계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평지(구릉 지대)라서 평화로운 농촌 풍경 말고는 별로 볼 것은 없었다. 스웨덴-노르웨이 국경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라서 안내방송 듣고 나서야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러시아 여행 갔을 때 울창한 침엽수림 속에 핀란드측과 러시아측 각각이 길게 철조망을 두르고 있던 것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사실 국경을 넘어가도 눈에 보이는 풍경이 똑같아서(집이나 마을 생김새도 그렇고, 표지판이나 언어마저 비슷하니...) 별다른 감흥(?)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뭐 여권 검사 이런 것도 없어서 여권 안 가져갔어도 됐을 정도다. (물론 호스텔 등에서 체크인할 때 신분증을 요구하기도 하니 당연히 갖고 다니긴 해야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의 신분 검사는 전혀 없었다.)

Buildings of Oslo

오슬로 중앙역에서 가까운 시내의 모습

아무튼 오슬로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둔 Anker Hostel이란 곳을 찾았다. 스톡홀름에 비해 현대적인 건물들도 많고(우리가 보기엔 아니지만 얘네들 입장에선 sky scraper라고 풀릴 만한 것들) 길거리도 복잡해서 처음에 방향이 살짝 헷갈렸지만 무사히 찾아갈 수 있었다. 다음 날 일어나 옆에 붙은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80 Kr 였는데 어차피 warm meal 먹으려면 밖에서도 비슷한 가격이라 그냥 호텔밥 먹음) 체크아웃한 후 중앙역 락커에 짐을 맡겼다. (유럽 여행 팁: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각 도시에 있는 중앙역 락커에 짐을 보관해두면 편리하다.) Tourist Information을 찾는데 표지판을 보고 따라갔더니 아무것도 없어서(마지막 장소에 표지판 하나가 지워져 있었는데 임시로 문을 닫은 것 같기도) 그냥 론리 플래닛에 의존하여 일정을 잡았다.

첫번째 방문한 곳은 비겔란드 공원(Viegeland Parken)이었다. 중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Majorstuen stasjon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가거나 트램을 이용하면 된다.

Viegeland Parken

비겔란드 공원의 모습

비겔란드 공원에서 다시 시내 중심가로 돌아와 오슬로 대학과 시청사를 둘러보고 페리 터미널로 향했다. Byødy 반도를 가기엔 페리가 가장 편리하고 또 일반 교통카드로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Byødy 반도에는 folk museum과 viking museum 등이 있는데 그 중에 viking museum만 둘러보았다. 이 박물관은 서기 900년대 당시 유력자의 무덤으로 땅 속에 묻힌 바이킹선을 발굴해 만들어진 것으로, 실제 바이킹선이 어떤 모습인지 볼 수 있다. 박물관 외의 지역은 일종의 부자촌을 형성하고 있는 듯했는데 잘 다듬어진 거리와 고급스런 주택들이 언덕을 따라 주욱 늘어서 있었다.

Oslo City Hall

오슬로 시청을 해안 쪽에서 바라본 모습 (보통 다들 정문 쪽만 찍길래 여기도..-_-)

Ski Jump!

Bygødy 반도로 가는 페리에서 찍은 스키점프대

Viking Museum

바이킹 박물관에 전시된 실제 바이킹선의 뱃머리

다시 시내로 돌아와서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Akershus fortress에 올랐다. 오슬로의 경치가 눈에 잘 들어오기도 했지만 다른 피요르드처럼 험한 지형을 가지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는 오슬로 피요르드도 대충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었다.

베르겐 행 기차가 오후 4시 7분이었기 때문에 3시 40분 정도까지 중앙역에 도착하면 되었으므로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이때 domkyrka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전면 보수공사로 2009년까지 출입금지라서 그냥 트램 타고 시내 한 바퀴 돌았다. 도중에, 교차로 가운데에 물로 채워진 작은 분수가 있고 차가 못 지나가는 그곳에 트램 라인을 놓아 물 위로 트램이 지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가

노르웨이가 물가 비싸다는 소리는 뭐 예전부터 들어왔지만, 실제로 가보니 장난 아니었다. 현재 환율은 대략 1 Kr1 = ₩200 정도라고 보면 되는데, 오슬로 시내 교통카드 1일 정액권이 60 Kr였던 것 같고 보통 길거리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으면 50 Kr, 좀더 제대로된 warm meal을 먹는다면 적어도 80~100 Kr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편의점이긴 했지만 프링글스 2통을 묶어서 50 Kr = 1만원에 파는 걸 보고 기겁했다...-_-) 커피 한 잔의 경우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15~25 Kr 범위에 있다고 보면 무리 없을 듯. 노르웨이 학생의 말에 의하면 대학 구내 카페테리아처럼 싸게 파는 곳에선 7 Kr 짜리도 있다고 한다. 스웨덴보다 대충 10 Kr씩 더 비싼데 화폐 가치도 더 높으니(1 NOK = 1.17 SEK) 물가가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사실 스웨덴도 비싼데 5개월 넘게 살았더니 적응이 되어버렸다. orz)

오슬로-베르겐 철도

여기는 말이 따로 필요 없을 것 같다. 사진으로 감상.

Oslo to Bergen

이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이 철도의 장점

Oslo to Bergen

해발 1222미터까지 올라가는데 대략 1000미터 정도부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Oslo to Bergen

최고 지점에 도착했을 때 열차 내부 모습. 열차가 굉장히 고급스럽고 깔끔하다.

Oslo to Bergen

다시 고도가 내려가며 진짜 피요르드를 감상할 수 있다.

Welcome to Bergen

오후 4시 7분에 출발하여 10시 35분에 도착. 그러나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환하다.

송네피요르드(Sognefjorden)

노르웨이 철도청이라고 볼 수 있는 NSB가 판매하는 Sognefjord in a nut shell 투어를 이용했다. 오전 8시에 출발하는 express boat를 타고 깊숙히 위치한 Flåm이라는 작은 도시에 내려 해발 800m 높이의 Myrdal까지 연결되는 Flåmsbana라는 별도 열차 구간을 이용하고 Myrdal에서 Bergen으로 가는 기차로 환승하는 방식이다. (Myrdal은 Oslo-Bergen 철도 구간 중간에 있는 역이다.)
베르겐부터 피요르드 초입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리므로 대충 눈을 붙이든지 해도 괜찮다.;;

Fjord Tour

피요르드 초입에서 배 뒷쪽 2층 갑판으로 나와봤다.

Fjord Tour

왜 이런 걸 볼 때마다 Total Annihilation이 떠오르는 걸까;;;

Fjord Tour

제법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Fjord Tour

너무 가파른 곳에는 나무가 그리 많지 않다.

Flåm에 도착해서 어느 독일인 아저씨·할아버지(부자 관계)와 앉아서 점심도 나눠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조금 하며 1시간 정도 쉰 후 Myrdal로 가기 위한 Flåmsbana에 올랐다. 이 철도는 194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20km 정도를 가는 동안 800m 고도를 오른다.

Fjord Tour

빙하가 녹아 흐르는 계곡은 작년에 송어 낚시하러 갔던 기화천만큼이나 맑다.

Fjord Tour

중간에 이 폭포가 있는 곳에서 잠깐 구경할 시간을 준다.

지형이 험하기 때문인지 터널이 많아서 사진찍기는 쉽지 않다. 저 폭포에서 5분 정도 시간을 주는데, 갑자기 노래소리가 들리며 성벽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가 나와서 안무를 하는 걸 보고 좀 황당했었다;;;

베르겐(Bergen)

베르겐으로 돌아오니 오후 6시 정도였다. 해가 지려면 5시간은 남아있었으므로 무엇을 할까 하다가 일단 호스텔에 들어가서 저녁을 차려먹기로 결정.
전날은 몰랐었는데 이때 보니 호스텔 리셉션 위에 커다란 동양화 같은 것이 있어 살펴보니 한국분이 남기고 간 혁필화였다.

Footprint of Korean

어느 한국인이 남겨주고 간 혁필화

그 다음엔 호스텔 같은 방에 있던 홍콩 출신 친구와 잠깐 얘기를 하다가 저녁은 나중에 먹기로 하고 간단하게 초코렛과 음료수를 사서 케이블카에 올라갔다. 해발 300미터 고도에서 베르겐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풍경은 아래 사진으로...

Fløibanen

26도 경사를 오르는 케이블카 Fløibanen

Bergen

오르면 이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Walk down to city center

내려오는 산책길

내려올 때는 굽이굽이 나 있는 산책로를 이용했는데, 깔끔하게 다듬어진 길과 울창한 숲, 그리고 막 보슬비가 내린 산으로 비치는 바다에서 반사된 태양빛 등으로 아주 환상적이었다. 그 홍콩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정말 삼림욕을 했던 것 같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심지어 피요르드보다도.)

다음날은 저녁 10시 58분(...)에 출발하는 오슬로행 기차를 타기 전까지 딱히 정해놓은 할 일이 없었다. 일단은 체크아웃 후 짐을 중앙역 락커에 맡겨둔 다음 관광안내소에 가서 시내에 볼 만한 게 뭐가 있나 대충 봤는데, 베르겐 시립미술관과 Grieg 홀(Grieghallen), fish market 말고는 대부분 시내에서 멀리 나가야 하는 것들이었다. 혹시나 Grieg의 생가 옆에 지어진 실내악 공연장에서 음악 공연이 있으면 보러 갔을지 모르겠으나 평일이라 그런 것도 없어서 패스.

Bryggen

Bryggen의 오래된 목조건물 보존 지역.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것 같다.

Fish Market of Bergen

수산시장 모습. 연어와 캐비어 등을 주로 판다.
여기서 훈제연어 진공포장된 것을 사서 스톡홀름에서 맛있게 먹는 중;;

게다가 아래에도 썼듯 오전 내내 호스텔에서 어느 아저씨랑 수다를 떨었더니 Bryggen 경치 구경하고 수산 시장에서 간단하게 연어 샌드위키로 점심 때우고 시립미술관 보고 나오니 이미 어지간한 박물관은 다 문 닫을 시간이었다. 미술관에서는 노르웨이 낭만파 작가들의 그림과 뭉크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유명한 뭉크의 '절규' 그림은 오슬로 시립미술관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없었다. Grieghallen은 티켓을 따로 사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또 패스; 그래서 시립도서관(어째 요즘 시립도서관 찾아가는 맛들인 듯-.-)에 갔는데, 마침 론리플래닛 코리아편(.....)을 발견하여 들고 있던 스칸디나비아편과 비교를 해봤다.

Comparison of Lonely Planet Korea vs Scandinvia

론리플래닛 한국편 vs 스칸디나비아편. 자세한 비교는 플리커 참조.

노르웨이 사람들과 했던 이야기들

여행 중에 여러 노르웨이 사람들과 수다를 떨 기회가 있었다. 아래는 그것을 정리해본 것.

Oslo-Bergen 기차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청년. 북유럽 사람들의 식습관이 대륙 쪽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라든가--이쪽은 warm meal을 보통 하루에 저녁 한 번밖에 안 먹고 점심을 대충 때우는 경향이 있는데 그 청년이 프랑스에서 교환학생했을 때 보니 프랑스 애들은 점심도 다 warm meal로 먹더라는 것과 이쪽은 학생들도 집에서 샐러드 등으로 도시락을 많이 싸와서 학생 카페테리아 장사가 잘 안 된다는 등의 얘기--해발 고도 1000미터 지역을 지날 때 여기 물을 마셔도 되냐고 물으니 기본적으로 마셔도 되지만 10년 정도를 주기로 개구리 만한 크기의 노란색 생명체(노르웨이어로 이름을 말해줬는데 기억이 안 난다)가 급증하여 많은 개체가 죽기 때문에 그 사체로 물이 오염되어 마실 수 없는 해가 찾아온다는 것, Bergen에 거의 다다랐을 때 본 큰 피요르드에서 사실 건너편은 바닷물로 둘러싸인 내륙 '섬'이라는 얘기 등이 기억에 남는다. 또 노르웨이 사람은 스웨덴어를 알아듣지만 스우덴 사람은 노르웨이어를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거나, 자기 동네랑 윗동네랑 무슨 스포츠 경기를 매년 벌이는데 자기 팀이 몇십년 동안 계속 이겨서 자기 마을은 매우 좋아하는데 윗동네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 등을 했다.
특히 그 할아버지는 이 철도 구간을 많이 다녀봐서인지,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마다 얼마쯤 가면 탁 트인 곳이 나오고 얼마쯤 가면 몇 분 동안 터널이 계속되고 등등 아주 자세하게 잘 알고 있었다.

Oslo to Bergen

이 청년과 한참동안 수다를 떨었다.

Marken gjestehus에서 만난 베르겐 출신 아저씨. Bergen의 두번째 날은 그다지 할 일도 없고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오전 내내 숙소 식당에 앉아서 이 아저씨와 수다를 떨었다. Bergen에서 태어나고 자라 지금은 Oslo에 사는데 무슨 행사가 있어 잠깐 고향 방문 차 온 것이라고 한다. 가벼운 인사로 시작해서 마지막엔 철학에 관한 이야기까지 가버린 케이스.;; 한국과 북유럽의 문화 차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는데, 이 아저씨는 아직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없어서인지 상당히 흥미로워했다.

전공이 뭐냐고 해서 전산이라고 하고 이것저것 얘기를 하다가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하고 물리나 생명공학 같은 다른 학문에도 관심이 많다고 이야기하면서부터 주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Interdisciplinary한 부분을 해보고 싶다면서 내가 여러 다른 분야를 공부할 때 어느 정도 하다보면 결국 다 비슷한 어떤 접근이 가능하더라는 얘길 하니, 인간이란 존재는 '현상 아래에 존재하는 본질을 찾고자 하는 성향'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Bergen-Oslo 기차에서 만난 학생. 100 Kr 지폐를 한 장 들고 한국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로 노르웨이 물가에 대한 불평(...)을 해주니 역시 정작 노르웨이 현지인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단다. 웹디자인과 typography에도 관심이 있다고 해서 영어에 대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한글 글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주니 흥미로워했다. 마침 가지고 있던 몰스킨에 그려둔 내 그림 몇 개를 보여주니 스타일이 맘에 든다고 한다.;;

영국산 그래픽 디자인 잡지를 보여줘서 대충 읽어봤는데, 컴퓨터로 디자인 작업을 할 때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를 쓰는 것이 사실상 업계 표준이 되면서 모두가 똑같은 툴을 쓰는 것에 따른 부작용이 없는가, 새 버전에 새로운 기능이 생길수록 디자이너의 입지가 좁아지는가에 대한 몇몇 디자이너들의 토론이 재미있었다. 또, 어린 학생들이 웹디자인을 알바로 하면서 프로디자이너들에 비해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일종의 이익단체를 개설한 한 학생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공통점

  • 물가 비싸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20% 더 비싸다. (화폐 가치 + 프리미엄?)
  • 노르웨이어와 스웨덴어는 거의 사투리 수준으로 서로 비슷. 그러나 억양은 스웨덴어가 더 강하다. 스웨덴어에서 본 단어가 노르웨이어에서 나올 때 å -> o, ä -> œ/e, ö -> ø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buy라는 뜻의 köp은 kjøp으로, tåg (train)은 tog로 바뀌는 식.
    그러고보니 덴마크어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네;;
  • 둘다 화폐 단위를 kronor를 쓴다. (덴마크도 마찬가지. 그러나 화폐 자체는 달라서 환전해서 써야 함)
  • 농촌 풍경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차이를 거의 발견할 수 없다. 다 똑같은 철분 색깔의 붉은 색 페인트를 칠하고 흰색으로 강조한 목재 건물 투성이.
  • 호수의 형태는 다르지만 호수 자체는 무지하게 많다.

차이점

  • 지형은 한 마디로 말해서, 스웨덴은 평평, 노르웨이는 가파름.
  • 스톡홀름의 지하철 안내 방송은 여자 목소리로 상냥(?)하게 나오는 반면, 오슬로의 지하철 안내방송은 남자의 강건함이 느껴진다;
  • 스톡홀름은 오래되고 안정된 도시의 모습이라면, 오슬로는 좀더 현대적이고 복잡한 느낌이다.
  • 스웨덴에 비해 노르웨이가 빈부격차가 심한 건지는 몰라도,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훨씬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 스웨덴 꺼보다 노르웨이 기차가 더 고급스럽다.;;
  • 노르웨이의 도시들은 험한 지형 때문인지 큼직한 주요 간선 도로를 터널로 파서 땅 밑으로 다니게 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건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했던 특징.
  • 스웨덴이 노르웨이보다 국가적 색깔(노란색과 파란색)을 더 많이 활용하는 것 같다.

여행 총 평

짐 챙길 때 전에 러시아 여해과 에스토니아 여행 때 써먹었던 휴대용 칫솔·치약을 못 찾아서 한참 삽질했던 것 빼고(-_-) 완벽한 여행이었다. 예약한 거나 이런 것도 모두 기대했던 대로 잘 맞아들어갔고. 아무래도 말이 통하는 친구나 가족이랑 같이 여행하는 게 재미는 있겠지만, 혼자 여행하는 것도 나름대로 현지인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이 생긴다는 점에서 매력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피요르드를 구경만 했는데 실제로 거기서 낚시를 해본다거나, MTB를 탄다거나(몇몇 유명한 코스가 있는 듯하다), 하이킹을 한다거나 하는 실제 육체적인 활동을 못해봤다는 것이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가족과 함께 올 수 있다면 꼭 해볼 것이다. :)


  1. 노르웨이도 스웨덴처럼 크로네라는 단위를 쓰는데 국제통화기호는 NOK이지만 보통 Kr을 약자로 많이 쓰며, 현지에서는 ',-'을 원기호(₩)처럼 사용한다. 스웨덴은 ';-' 혹은 ':-'을 쓰는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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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라고 쓰고 시계를 보니 12:00AM이 되어 그저께가 되었다) 스웨덴 중부에 위치한 인구 10만의 소도시 Västerås를 다녀왔다.1 인구 10만이면 한국으로 쳤을 때 김제나 보령 정도에 해당하는 작은 도시지만, 스웨덴에선 나름 6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스톡홀름에서는 직선거리로 약 80km 정도 떨어져있고, 스웨덴에서 3번째로 큰 Mälaren 호수에 맞닿아 있다. 전날 James D. Watson2의 강연을 보고 T-Centralen에서 미리 기차표를 예매해두었고, 이날은 바로 중앙역에서 만나 기차를 탔다. 옛날에 유럽 배낭여행할 때 기차를 타보긴 했지만 스웨덴 온 후로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2등석인데도 의자가 꽤 고급스러웠다. (특히 목받침) 공간은 새마을호 일반석과 비슷한 수준. 물론 기본 물가가 있기 때문에 철로로 110km 정도의 거리임에도 편도 표값이 2만원에 상당하는 금액이었지만 말이다. -_-; (참고로 서울-대전이 150km 정도임)

아무튼 땅이 넓고 인구 밀도가 높지 않은 스웨덴 특성상 인구 10만의 도시는 마치 무슨 '읍내' 같은 느낌이었다. 기차역에서 내리니 일단 큼직한 공원이 있었고, 인구에 어울리지 않게(?) 제법 큰 시청사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들은 1~2층 정도였고(호숫가의 현대적인 아파트 주거 단지와 두 개 정도의 빌딩 제외) 돌아다니다보니 도시는 작지만 상당히 예술에 집중하는 도시임을 느낄 수 있었다. 미술박물관에 현대 회화가 전시되고 있다든가 곳곳에 예술품 조각들이 놓여져 있었고 스톡홀름에서도 보기 힘든 전문 화방--유화 캔버스까지 있을 정도--이 있기도 했다.

Västerås Stadsbiblioteket

도서관 건물의 (뒷)모습

글의 제목에도 있듯이 이 도시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 도서관이었다. 사실 이 도시 자체는 그리 일반 관광객을 끌어들일 만한 요소는 별로 없고, 실제로도 관광객이 별로 없는지 동양인 남자 둘이 걸어가니 꼬마애들이 부모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도서관은 시내에서 가장 큰 성당(이건 꽤 볼만했다) 뒷편의 정원 옆에 위치해있는데, 정원은 각종 꽃과 허브 등을 종류별로 배치해 작은 식물원 같은 느낌이었다. 너른 잔디밭에 큰 아름드리 나무가 있어 그늘을 드리워주고, 그 바로 옆으로 2층짜리 시립도서관이 있다.

Västerås Stadsbiblioteket

어린이 도서관 모습

도서관에 들어가니 토요일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1층에는 지역주민 문화 행사용으로 쓰이는 듯한 세미나실과 어린이용 도서실이 있었다. 세미나실은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토론회 등에 적당하도록 꾸며져 있었다. 어린이용 도서실의 경우 단순히 어린이 책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키 높이에 맞춘 소파와 각종 장난감이 함께 배치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책들도 분야별로 다양해서 내가 어렸을 때라면 즐겨보았을 만한 과학에 관한 것부터 소설까지 다양했다.

2층은 본격적인 도서관인데(건물이 밖에서 보면 작은 것 같은데 안에 들어가서 보면 상당히 크다), 인구 10만의 소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한 서가를 갖추고 있었다. 스웨덴어 책이 주로 많았지만 영어책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인테리어도 뭔가 책을 찾아 읽고 싶은 느낌이 마구 든달까, 상당히 신경써서 한 것 같았다.

Västerås Stadsbiblioteket

도서관 2층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음악에 관한 컬렉션을 따로 만들어두고 있었다는 점인데(역시 예술의 도시?), 악보뿐만 아니라 음악 역사나 음악에 관련된 문학은 물론이요 음악 CD/DVD 및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까지 폭넓은 주제로 클래식에서 락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컬렉션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웬만한 클래식 음악들은 다 가지고 있었다. (스웨덴 피아니스트가 친 슈베르트 즉흥곡은 어떤 느낌일까?) 한켠에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헤드폰이 설치된 소파도 있었고 악보를 꺼내다 연주해보라는 뜻인지 작은 피아노까지 있었다. (도서관에서 피아노를 쳐도 되나 모르겠지만...-_-a) 또한 CD/DVD를 그 자리에서 재생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전자 기기들도 구비하고 있어 정말 완벽한 음악도서관이라 할 수 있었다.

Västerås Stadsbiblioteket

음악 컬렉션이 있는 방

사서한테 물어보니 대략 50년 전에 클래식 음악을 위주로 하여 모으기 시작한 거라고 하는데, 자기도 처음부터 일한 건 아니라서 자세한 역사는 모른다고 해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스웨덴 전체에서도 손꼽을 만한 컬렉션이라고 했다. 나중에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일본 서적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서나 과학소설 전문 사서 등 분야별로 담당하는 사람이 있는 형식인 것 같았다.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이 도서관을 보고 나니 Cliomedia님이 생각났다. 최근에 쓰신 글처럼 좀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2007년 예산 보고에 관한 문서(pdf)를 찾을 수 있었는데 1년 예산으로 350만 크로나, 한화로 약 6억원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겉보기에는 작은 동네 도서관 같지만 실제로는 꽤나 큰 규모로 운영되는 도서관이라는 점. 다만 책 대출 시 하루 한 권당 1:- (약 170원)씩을 내야 한다는 점은 조금 특이했다.

내가 사는 용인 수지의 인구가 2008년 4월 기준으로 30만명3이다. 2004년에 수지도서관이 생겼는데 사실 과학고 다니던 시절이었던 데다 그 후로도 계속 대전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찾아가본 적이 없다. 수지도서관 홈페이지를 찾긴 찾았는데 IE 전용인지 맥에서는 볼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고 메뉴와 게시판·자료실 등은 모두 백지다. -_-; (모 도서관처럼 블로그까진 아니어도 좋으니 접근성은 제발...ㅠㅠ) 건물 규모로 봐서는 꽤 큰 것 같은데 장서 같은 경우 숫자로 써있는 것만으로는 감이 잘 안 와서 비교를 못하겠지만, 나름 잘 운영되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Västerås 도서관의 경우 대부분의 정보가 스웨덴어라서 장서 수가 얼마인지 모르겠다...;;) 개관 당시 7억원을 들여 최초 장서를 마련했다는데(원문 출처는 아쉽게도 보안상의 이유로 접근 불가능하고 구글 검색결과에 저장된 것을 이용) 매년 어느 정도 예산 투입이 이루어지는지, 얼마나 전문성을 갖춘 사서가 일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부분은 나보다 cliomedia님이 더 잘 찾으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뭔가 수지도서관이라든가 한국에서 내가 가볼 만한 도서관이랑 비교해서 그럴싸한 결론(...)을 내고 싶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 도서관이라고는 카이스트 도서관밖에 이용해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다.;; 참고로 카이스트 도서관의 경우 장서 구입은 '요청하면' 잘 해주는 편이지만 전문 사서도 거의 없는 것 같고 카이스트라는 이름에 비해서 운영은 상당히 부실하다. 학위논문이랑 저널·학술지 DB 서비스 빼고 나면 정말 거의 남는 거 없을 듯. (가끔 이런 DB 이용을 위한 교육 세미나 같은 것은 한다) 근처의 지역도서관이나 다른 대학 도서관들과 상호대차가 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 cliomedia님 글을 읽으면서 도서관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면서 새롭게 많은 걸 느끼고 있는데--사실 카이스트 정도 다니고 있으면 블로그로 접하기 전에 알고 있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주변에서 누가 체계적으로 알려준 적도 없고 당장 과제와 프로젝트 해결하기 바빴으니 좀 아쉽다--앞으로 도서관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지고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도서관들을 좀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겠다. 수지도서관은 나중에 한 번 가봐야겠지만 정말 내가 사는 동네에 Västerås 시립도서관 같은 곳이 있다면 자주 이용해줄 수 있을 듯.


  1. 사실 이 도시를 가게 된 건 lshlj님이 Uppsala를 미리 다녀오시는 바람에 같이 다시 가자고 하기는 좀 그래서 대신 Mälaren 호수를 보려고 했는데 근처 도시 중 스톡홀름을 제외하고 lshlj님이 가지고 계시던 론리플래닛 스웨덴편에 나온 곳이 여기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2. Francis Crick과 함께 X선 결정분석으로 DNA 이중나선구조를 처음 발견하고 노벨상을 받은 바로 그 사람. 위키백과 참조

  3. 용인시 통계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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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에도 언급하였지만, 국회의원들의 법안 제안 등이 실제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를 했었다. 촛불집회를 보는 주요 언론, 경찰과 검찰의 시각을 보자니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집회 과정에서 민주노총이라든지 몇몇 시민단체들의 도움이나 참여가 있기는 했어도, 그들 자신이 조직적으로 집회를 열었다기보다는 중고생과 20대·30대 사람들 사이의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자체 확대재생산으로 이렇게 많은 '보통' 사람들이 참여하게 된 것임을 왜 모를까. 여기에다 마치 배후 조직을 밝히려는 듯1 '엄정한 수사를 하겠다'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 발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회 참가자의 대부분은 스스로 접한 정보를 통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나선 것이지 누군가가 부추겼다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시민단체 웹사이트나 몇몇 개인 웹사이트를 통해 참여를 호소하는 곳들이 있긴 하지만 단체로 동원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른 목적으로 집회를 하던 단체들이 합류한 것은 다른 문제로 봐야 할 것이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불법 집회였으므로 경찰이나 검찰 입장에서는 단속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좀더 융통성이 있고 우리 젊은 세대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해나가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그렇게는 대응하지 않으리라 본다. 문제의 본질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법을 어겼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그동안 보여준 'only my way'의 소통 단절에 있는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현재 스웨덴에 있고, 따라서 한국의 TV 방송이나 신문은 거의 보기 힘든 상황이다. 주로 한국에 대한 정보는 포털(네이버 및 다음)의 인터넷 뉴스와 수백 개에 이르는 각종 구독 블로그를 통해 얻는데, 주요 언론이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정부의 압력이든 자기 이익 때문이든 뭐든 간에) 이미 언론을 통해 여과되지 않은 날 정보를 그대로 얻을 수 있다.2 사람들은 노트북과 웹카메라를 들고 나와 무선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를 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실시간 전송하는데 이미 이것을 본 사람들은 다들 '나도 나가야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사실 한국에 있는 내 부모님은 어떤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인터넷을 조금 하시긴 하지만 메일 확인이나 이 블로그 구독(!) 정도만 하시고 열성적으로 쓰시는 분은 아니고, 어머니는 컴퓨터를 거의 못 다루시기 때문에 아마 주로 주요 언론매체나 주변 사람들의 입소문 등을 통해서 정보를 접하고 계실 것이다. 내 짐작으로는 아마 내가 보고 듣고 접한 정보와 매우 다른 관점의 정보를 접하리라 생각한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면서 과장이 덧붙여지는 경우도 많다. 현재까지 제기된 여러 가지 의혹들 중 시위 현장의 핸드폰 신호를 차단했다든가 CCTV를 모두 껐다든가 하는 등의 이야기는 현장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들려오긴 하지만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는 힘든 부분이다. 그래서 나도 인터넷을 통해 접한 정보라고 무조건 신뢰하지는 않는다. 일단 개인의 해석이나 의견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빼두고 사실 그 자체를 바라보고 내 생각이 무엇인지 따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진과 동영상들은 이미 참고 참던 사람들의 호소가 결국 분노로 폭발했고 정부가 그것을 어떻게든 억누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런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일부 동영상이 이번 집회에서 찍힌 것이 아닌 예전에 있었던 집회 진압 장면을 찍은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그런 허위 정보는 빼고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이미 내가 형성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 상의 사람들이 주는 정보가 언론 매체가 주는 정보보다 신뢰 가치가 높기 때문에 언론에서 떠드는 것보다는 이 사람들이 전달해주는 것에 더 믿음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블로그를 꾸준히 읽으면서 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 개인의 의견을 배제하는 것도 보다 쉽고 또 보통 믿을 만한 사람들 것만을 선별해서 읽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 뉴스라고 해도 기사 자체에 오류가 있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에3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아직 블로그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전파되지는 않았지만, 꼭 블로그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핸드폰과 각종 UCC 웹사이트 등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가 현재의 10대·20대들에겐 주요 언론매체보다 더 신뢰할 수 있고 영향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런 문화적 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끝으로 정부 당국자나 이명박(-_-)이 이런 글들 좀 읽어봤으면 해서 링크.


  1. 시위 진행 과정에서 계속 청계광장 등에 남아서 시위를 하자고 한 사람들과 청와대로 진격하자고 주장·동조했던 사람들 사이의 의견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것을 두고 억지 해석을 하자면 배후의 선동 세력이 있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거꾸로 생각하면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 대부분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멀쩡히 있던 사람들이 왜 거기에 따랐는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시위나 집회라는 것 자체가 자기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하는 것이고, 다만 이번의 경우 새 정부에 대한 총체적 불신과 먹거리 안전 문제와 각종 정책에 대한 불만 등이 공통적으로 일반 국민들 사이에 나타나면서 극대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을 뿐이다. 사실 시위 나온 사람들 중에도 한나라당과 이명박을 찍었으나 후회하는 사람, 민주노총/민노당과 같은 단체가 끼어드는 걸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니 어느 한 집단의 조직적 배후 조종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집단들에 의해 시위가 더 격화되었다고 해도, 결국 그 인원을 구성하는 것은 일반 시민들이고 각자의 생각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단지 이번 사안의 경우 그러한 소위 좌파 단체 들이 주장하던 바와 그냥 일반 시민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이 일치함으로써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이념과 색깔론만 따져서 무엇하리요. 

  2. 만약 정부가 정말로 언론 검열, 매체 단속을 해서 인터넷을 차단하는 극악의 수를 둔다 하더라도--설마 경제를 살리자는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인터넷 전체를 차단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만--이미 인터넷 서비스의 사용 범위는 전세계적이다. 유투브와 플리커 등이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들의 서버는 해외에 있고 본사 법인도 해외에 있다. 하다못해 내가 그 정보를 퍼날라서 스웨덴 사람들이 쓰는 어떤 서비스에 올린다고 해도 이미 막을 방법이 없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인터넷 검열도 해외에 나와 살고 있는 화교 네트워크까지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또한 나처럼 별도의 개인 서버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경우는 특정 서비스에 종속되지 않으므로 게시 중단 요청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서버호스팅 업체에 압력을 넣어서 IDC 차원에서 차단하면 모를까, 이게 법적으로 가능한 건가? 만약 그렇게 해도 간단히 외국 호스팅 업체로 옮기면 된다. 사실 외국 호스팅업체가 국내에서 속도가 살짝 느려서 그렇지 더 저렴하고 기술력 좋은 곳 많다.) 

  3. 요즘은 네티즌들도 똑똑해져서 '어디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어디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과 같은 문구를 다 추적해서 원본문서를 찾아내고 번역 기사라면 어디가 틀렸는지, 어떤 점이 왜곡되었는지 다 지적해낼 정도다. 가끔가다 보면 정말 기사거리도 아닌 것을 엄청난 기사인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도 있고, 특히 과학 기사의 경우는 정말 오류투성이다. 그나마 요즘은 조금 나아진 것 같지만 심지어 단위조차 제대로 못 쓰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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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시차 때문에 이곳 시간으로 오늘(일요일) 낮이 되어서야 촛불문화제가 시위로 발전하여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인터넷 뉴스와 각종 블로그, IRC 등을 통해 그동안 쌓여온 불만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다 3개월만에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

지난 대선 당시 나는 대통령이 되기 힘들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일단은 나름 새로운 정치색을 가진 후보였던 문국현이를 찍었지만, 대부분의 예상대로 압도적인 지지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래도 일단 뽑혔기에, 문국현에 비해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으니 내각 구성 측면에서는 어떻게 보면 더 잘 할 것 같다는 일말의 기대도 했었다. (문국현의 최근 행보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모양인데 무턱대고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지만 주변에 사람을 끌어모으는 노력을 좀더 해야 될 것 같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선 대통령이었지만 그가 순수하게 노력을 했든 아니든 간에 이미 모든 경제 지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정말 이것이 국제적인 고유가와 달러화 약세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어쩔 수 없는 거라면 정부가 이러이러한 노력을 해서 앞으로 어떻게 개선시키도록 해보겠다라는 희망은 주지 못할 망정 점점 국민들의 불신을 얻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사실 광우병 자체는 냉정하게 봤을 때 약간 과장된 면은 없지 않으나, 이번 사태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행동 하나하나에 국민들의 의견 반영이 거의 되지 않았다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대운하를 봐도 그렇고 아무리 대선 공약이라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뜯어말리는데 굳이 추진하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다. (혹자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 경제를 살리는 방법 중 하나가 고용창출 효과가 큰 건설경기 부양이라는데 단지 그것 때문에? -_-) 이미 그동안 인터넷에서는 이명박을 두고 불도저니 컴도저니 하는 우스갯소리가 한참 전부터 유행했을 정도로 불신이 가득찬 상태였고, 그동안 16여 차례나 계속되며 목소리를 내던 촛불문화제가 결국 씨알도 안 먹혀든다는 생각이 들자 결국 시위로 번진 것이다.

앞으로 전면 재협상이라는 특단의 카드를 내놓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보인다. 임시소집한 17대 국회에서도 이미 야당 반발이 심하다고 하고, 미국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오바마가 한미FTA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어 시간적 압박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얼 하건 지금 최우선 과제는 광우병 그 자체가 아니라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스웨덴에 교환학생 와 있으면서 많은 중국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부 네티즌들은 무조건 중국 얘기만 나오면 짱깨라며 욕하고 걸고 넘어지는데, 중국 사람들도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그 중에 정말 중화 사상에 젖은 사람도 있지만,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는 것이다. (양쪽 케이스 다 만나봤다.) 북한 위쪽의 중국 북동 지역--말하자면 만주 지역--에서 왔다는 한 친구는 문화혁명 때문에 제대로 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 때문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여기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중국 전체 인구가 워낙 많기에 그들 중에 아주 조금이라도 이렇게 죽자 살자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숫자는 가히 엄청날 것이다. 중국을 얕볼 수 없는 이유다.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화교 네트워크를 생각한다면 정말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사실 국가는 우수한 엘리트 집단들이 사리사욕에 젖지 않고 잘 운영하는 것만큼 이상적인 게 없다. 이상적인 국가라고 볼 수는 없지만 프랑스에선 심지어 그랑제꼴 학생들만 열심히 공부하면 나머지 프랑스인들이 다 놀아도 나라가 돌아간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중국이 문화혁명의 상처를 딛고 지금 이렇게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중국의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 인구 뿐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지도부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올림픽이 대중들을 위한 선전용이라고 비판하는 중국 사람일지라도 중국 정부의 경제 발전 정책만큼은 신뢰를 가지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한국 정부를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높은 자리에서 활약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처리되는 법안들을 보면 (그래도 모든 법이 쓰레기는 아니지만) 현실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이 절실히 느껴진다. IPTV나 DMB 관련 법이나, 휴대폰에 걸려있는 WIPI 의무 규제 등--이명박이 경제 살리겠다고 규제 완화 어쩌구 하던데 이런 건 왜 안 건드리나 모르겠다--은 이미 아주 오래된 떡밥이다. 인터넷 뱅킹에 ActiveX 사용을 자제하고 표준화된 보안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이득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국회의원이 99.9%일 것이다. 당연히 모든 국회의원이 이런 기술적 지식을 해박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면 그것을 들을 수 있고 법에 반영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과 기본 소양은 있어야 할 것이다. 비단 IT 분야뿐만 아니라 문화유산 관리와 한국 문화의 관광 상품화, 중소기업들을 위한 인재 양성 풀 연계, 학문 발전을 위한 전문적인 공공도서관 운영, 중앙아시아와의 자원 외교를 위한 러시아 국제전문가 양성 및 활용, 인문학·수학 등 기초 학문에 대한 투자, 독도 분쟁과 중국의 동북 공정에 대해 외교적 우위를 점하는 것, 해외 거주 국민들의 투표권 행사 보장, 폐핵연료 저장·재처리 시설 건립, 안철수 씨 말처럼 규제 완화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감시 강화 등등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부지기수로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근본적인 국민의 신뢰가 무너져버렸으니 이제 어찌될 것인지 암담할 뿐이다.

정말 한국에 있는 모든 엘리트 최고 지성들을 모아 정책을 연구하고 그것을 실천에 바로바로 옮겨도 될까말까 할 것 같은데 집권 3개월만에 나락으로 추락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세계 여러 나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막 눈을 뜨기 시작한 나로선 불안하기 짝이 없다. 물론 대통령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에 의한 정책의 큰 방향 제시는 있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하지만 대통령이 모든 분야에 전문가일 수 없는 이상 전문가 그룹에 의한 정책 검토와 결정은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소수의 엘리트'만'으로 국가가 경영될 경우 부패의 온상이 되기 쉽다. 전문적인 의사 결정은 소수에 의해 이루어지더라도 당연히 국민들의 감시와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A와 B라는 두 가지 안이 있을 때 A가 더 국익에 우선하지만 어떤 이유로 국민들이 A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차선책인 B를 선택할 줄 아는 융통성도 겸비해야 한다. 아니면 하다못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혜와 대책이라도 있든가. 이명박 정부는 그 어느 것도 아닌 것 같다. 정말 제대로 된 전문가들에 의한 의사결정이었다면 지금처럼 무대뽀로 정책을 밀어붙이진 않았을 것이고(최소한 경부운하는 포기했거나 축소했을 것이다), 설령 그게 국익이 도움이 된다 판단되었다 해도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다면 왜 그런지 들어주고 왜 자신들의 이유가 타당한지 설명·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설득하지 못한다면 안 하는 것이 맞다. (물론 여기엔 국민들의 교육·의식 수준이 일정 정도 이상이어서 터무니 없는 반대나 제안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현재 한국은 그래도 그 정도는 된다고 본다.)

세계는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고 변하고 있다. 불과 몇 주 사이에 자원외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들릴 정도다. 그런 미래를 일정 정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며, 또한 항상 새로운 실험과 시도로 과감히 앞으로 나갈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이 소위 말하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ps. 사실 대한민국은 이미 사실상 선진국이다. 한국 안에서 보고 있자면 온갖 문제점들이 보이니 경제만 크고 완전 후진국인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그래도 세계 전체에 내놓고 봤을 때 상당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근대화의 역사가 그렇게 짧고 자원도 빈약한 가운데 일궈낸 경제 대국과 민주화의 그 위상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공허한 선진국화를 외치기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에 핵심을 맞추는 위정자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은 내가 봤을 때 우리가 당면한 문제점들을 잘 해결하기만 해도 충분히 우리가 염원하는(?) 선진국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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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제목은 거창한데 사실 그냥 요즘 느끼는 감상에 대한 포스팅.

미투데이에도 썼다시피 나는 메신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나한테 메신저로 말을 걸어본 분들 중 상당수(?)가 씹힌(...)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하필이면 내가 자리에 없을 때 말을 거셨던 불운한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내가 컴퓨터를 쓰고 있었음에도 고의적으로 무시한 경우도 없지 않다.

내가 IRC1에 익숙해진 탓일까, 나는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으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로그인해 있는 것과 그 사람이 실제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인가하고는 분명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메신저에 상태 설정 표시하는 기능이 있긴 하지만 깜빡하고 설정하지 않았을 경우도 있고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라도 하기 싫을 때도 있는 법이니.) IRC에서는 아예 프록시를 통해 무한 접속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2 특히나 로그인 상태와 실제 그 사람이 있는가하고는 전혀 별개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튼 그렇다보니 나 또한 내가 대답을 원치 않는 상황일 때는 그냥 씹어버리기도 한다.

또 하나, 대표적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예로 자주 언급되는 Facebook의 경우도 상당히 귀찮을 때가 있다. 무슨 말이냐면, Facebook 측에서 제공하는 훌륭한 API 플랫폼을 통해 마음대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게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등록해놓은 친구들이 자꾸 이런저런 잡다한 애플리케이션들을 들고와서 등록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친구라서'' 등록을 해줘야 할 것 같고, 한편으론 깔끔하게 유지하기 위해 무시해야 하는 갈등이 생긴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오, 이런 것도 있네~'하면서 몇 가지 추가해서 쓰기는 했는데 결국 내 관심이 지속적으로 가는 것 아니면 안 쓰게 된다.

다만 Facebook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이벤트를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 예를 들어 Lappis 바베큐 파티라든가 스톡홀름의 놀이공원인 Gröna Lund에 함께 놀러가기로 하고 예약자를 받아서 단체 예약으로 좀더 싼 값에 표를 얻는다든가 이런 부분은 굉장히 유용하다. 또한 사진에 친구들의 얼굴들을 태깅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단체 여행 등을 한 경우 내가 나온 사진을 찾는 데 유용하다.)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점점 더 실시간에 가까워지고 현실과 밀접해질수록 그만큼 귀찮은 경우도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항상 실시간으로 소통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해서 얻는 장점이 뭘까? 거창한 예를 들자면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나 긴급 상황시 주변 사람들에게 재빠르게 알릴 수 있다는 점이나 도움이 필요할 때 빨리 연락할 수 있다는 것이 되겠지만, 한편으로 일상 생활에서는 오히려 하나의 구속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뭐 그래서 나는 '동기화 서비스'인 메신저보다는 '비동기 서비스'인 이메일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가끔가다 메일로 실시간 답장을 주고받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 메신저로 이동한다. -_-)

이런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느슨한 소셜 네트워크"의 구현이 가능할까?


  1. Internet Relay Chat. 채팅 서버와 통신 방법에 관한 표준 프로토콜이 RFC 1459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HanIRC와 단군넷이 유명한 서버이며, mIRC나 Firefox 확장기능인 Chatzilla 등을 이용해 접속할 수 있다. 채널이라는 단위로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게 되어 있고, 채널은 아무나 만들 수 있고 아무도 없으면 자동으로 없어지나, 각 채널에서 옵(Op)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사용자들을 관리할 수 있다. 

  2. 원래는 채널 유지를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지만, 채널 유지 자체는 IRC 서버에서 재공하는 챈섭이나 빵글이(HanIRC의 경우) 등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긴 하다. 한편으로 자신의 로그인 상태를 일부러(?) 알 수 없게 하기 위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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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art.oriented님의 이 포스팅을 본 후로 만나는 native speaker마다 계속 물어봤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나처럼 교환학생 온 같은 과 학생과, 오늘 만난 미국에서 살다가 학부를 스웨덴으로 와서 현재 5년째 눌러살며 석사과정에 있다는 바로 아랫층(...) 사는 학생한테 각각 물어보았다.

발음 구분하기

일단 가장 궁금했던 것들부터.

  • can / can't
  • walk / work
  • war / wall
  • want / won't
  • have / haven't

이거 과연 어떻게 발음해야 하고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_-;

미국 영어 native speaker 왈, 같은 미국 안에서도 지방마다 사투리가 다 달라서 정답은 '그때그때 달라요'... (....) 뭐 어디서는 r을 빼고 발음하고 어디서는 '와'처럼 입을 좀더 벌리고 발음하고 등등 다 다르단다. 이 친구도 t를 거의 생략하다시피 발음해버리면 알아듣기 힘들다며 짜증난다고 했다.;; (이 친구 발음이 비교적 알아듣기 편했던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또렷하게 말하는 북부 사투리를 쓰는 게 아닌가 싶다.) 호주 native speaker의 발음으로 들어보건대 'can'은 a가 '애'에 좀더 가깝고 'can't'는 a가 '아'에 살짝 더 가깝게 느껴졌다. 호주 억양에서 'have been'할 때 been이 '비인'이 아니고 '베인'처럼 발음되기도 했다. 이 호주 친구가 빨리 얘기하면 거의 알아듣기가 불가능했다.

미국 영어 native speaker의 조언: probably를 pr'y[프라이]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함. -_-

Yes냐 No냐

"~, isn't it?"과 같이 물었을 때 한국인이 가장 실수하기 쉬운 Yes와 No의 용법 차이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는데, 일단 한국어에서는 그 개념이 반대라는 것에 다들 놀라워했고(그런 게 반대 개념이 있을 줄은 상상을 못해본 듯), 미국 native speaker는 자기네는 질문의 absolute value로 대답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그게 말이 쉽지-_-) 했다. 호주 친구의 경우는 별다른 코멘트를 붙이진 않았고 '음,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하고 넘어갔음.

I don't think...

"I think it would not work."와 "I don't think it would work." 중 어느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도 물어보았다. 호주 친구는 주저함 없이 바로 두번째를 골랐고, 미국 친구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번째를 골랐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첫번째도 틀린 것은 아닌데 그냥 보통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unless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특히 미국 친구한테 한국어의 subordinate 문법을 간단히 설명해주니 매우 신기해했다. (와 완전 반대네~ 뭐 이런 표정.)

나보고 비교적(?) 영어를 잘 한다면서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거나 원어민 교사한테 배웠냐고 물어보길래 그런 건 전혀 없었고 영어로 생활해본 건 여기 스웨덴이 전부라고 했더니 그만하면 잘 하는 거라고 했다. 내가 대답하기를, '12년이나 공부해서 겨우 이만큼 하는 거다'라고 했더니 영어교사하러 한국에 간 친구들이 몇몇 있는데 다들 몇 년씩 살아도 한국어 제대로 할 줄 아는 친구 못봤다면서 공감(?)했다. -_-;;;;

그나저나, 그 미국 친구의 경우 학부를 스웨덴에서 입학·졸업했기 때문에 스웨덴어를 아주 유창하게 한다. 사실 오늘 그 친구를 만난 것도 도서관 카페에서 인터넷하다가 바로 옆 자리에서 한 폴란드 친구한테 스웨덴어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을 보고 말을 걸게 된 것이었으니까. 분명히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native speaker인데도 5년 동안 스웨덴어를 배우고 살아서 그런지 간혹 영어 말하다가 막히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아, 아무리 영어 native speaker라고 해도 오랫동안 안 쓰면 굳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역시 한국에서 영어교육 삽질해봤자 실제로 안 써먹으면 말짱 헛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_-

아, 참고로 위의 발음 질문에 대해 듣고 있던 폴란드 친구한테도 영어 발음 어렵냐고 물어보니 자기한테는 그냥 자연스럽게 들린다고 한다. 역시 같은 언어권이라는 거 무시 못하는 변수인 것 같다.

그래서 이 포스팅의 결론: (한국인으로서) 영어 못한다고 좌절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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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수업 들으러 오는 길에 같은 수업에 가는 한 중국인 남학생을 만났다. 그런데 갑자기 티베트 사태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어제 한국에서 있었던 시위 때문인 듯?) 네이버 뉴스를 보니 중국측 시위대에서 폭력적으로 나온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일단은 '양쪽에서 물리적 충돌이 좀 있었던 것 같더라'까지만 언급했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티베트 시위대가 시위대 인원수를 늘리려고 돈 주고 사람을 산다. (1시간에 300유로?) BBC, CNN 등 서방 언론이 왜곡 보도하고 있는 거다. 중국은 티베트의 문화 유산들을 보호하고 있다.

내가 중국 정부의 현재 입장을 생각해볼 때--그 큰 국가를 통합된 체제로 유지하기 위해서, 또한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해서--티베트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티베트의 문화를 보호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자 지금 티베트 가보면 그 문화유산들 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뭐 유럽에서 있었던 시위에서 티베트 과격분자들이 시위대를 매수했을 가능성은 있지만(이 부분은 좀 확인해봐야겠다) 한국에서도 그랬을지는 의문이다.

언론 조작 혹은 여론 조작이란 게 이런 것일까? 다행히(?) 스웨덴은 성화 봉송이 이루어지지 않아 시위 같은 것은 없었지만 이런 사람들이 모이고 모이면 그렇게 되는 거 아니겠는가.

사실 티베트가 중요한 이유는 inureyes님이 언급하신 대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류가 어떻게 정신세계를 발전시키며 사회를 이루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며 그 다양성을 위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리 하드웨어적으로 눈에 보이는 문화 유산들(포탈라 궁이라든지 조캉 사원이라든지)만 보호하면 뭐하나. 이미 동화 정책으로 많은 티베트인들이 예전의 생활 방식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버렸고 그것이 앞으로 그들의 정신세계를 갉아먹을 거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곧 수업 시작이었기에 여기까지 얘기해주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또 다음 수업이 곧 시작하려 하기에 일단 여기까지만 써야겠다. (나중에 글 내용 추가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