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어제(..라고 쓰고 시계를 보니 12:00AM이 되어 그저께가 되었다) 스웨덴 중부에 위치한 인구 10만의 소도시 Västerås를 다녀왔다.1 인구 10만이면 한국으로 쳤을 때 김제나 보령 정도에 해당하는 작은 도시지만, 스웨덴에선 나름 6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스톡홀름에서는 직선거리로 약 80km 정도 떨어져있고, 스웨덴에서 3번째로 큰 Mälaren 호수에 맞닿아 있다. 전날 James D. Watson2의 강연을 보고 T-Centralen에서 미리 기차표를 예매해두었고, 이날은 바로 중앙역에서 만나 기차를 탔다. 옛날에 유럽 배낭여행할 때 기차를 타보긴 했지만 스웨덴 온 후로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2등석인데도 의자가 꽤 고급스러웠다. (특히 목받침) 공간은 새마을호 일반석과 비슷한 수준. 물론 기본 물가가 있기 때문에 철로로 110km 정도의 거리임에도 편도 표값이 2만원에 상당하는 금액이었지만 말이다. -_-; (참고로 서울-대전이 150km 정도임)

아무튼 땅이 넓고 인구 밀도가 높지 않은 스웨덴 특성상 인구 10만의 도시는 마치 무슨 '읍내' 같은 느낌이었다. 기차역에서 내리니 일단 큼직한 공원이 있었고, 인구에 어울리지 않게(?) 제법 큰 시청사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들은 1~2층 정도였고(호숫가의 현대적인 아파트 주거 단지와 두 개 정도의 빌딩 제외) 돌아다니다보니 도시는 작지만 상당히 예술에 집중하는 도시임을 느낄 수 있었다. 미술박물관에 현대 회화가 전시되고 있다든가 곳곳에 예술품 조각들이 놓여져 있었고 스톡홀름에서도 보기 힘든 전문 화방--유화 캔버스까지 있을 정도--이 있기도 했다.

Västerås Stadsbiblioteket

도서관 건물의 (뒷)모습

글의 제목에도 있듯이 이 도시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 도서관이었다. 사실 이 도시 자체는 그리 일반 관광객을 끌어들일 만한 요소는 별로 없고, 실제로도 관광객이 별로 없는지 동양인 남자 둘이 걸어가니 꼬마애들이 부모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도서관은 시내에서 가장 큰 성당(이건 꽤 볼만했다) 뒷편의 정원 옆에 위치해있는데, 정원은 각종 꽃과 허브 등을 종류별로 배치해 작은 식물원 같은 느낌이었다. 너른 잔디밭에 큰 아름드리 나무가 있어 그늘을 드리워주고, 그 바로 옆으로 2층짜리 시립도서관이 있다.

Västerås Stadsbiblioteket

어린이 도서관 모습

도서관에 들어가니 토요일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1층에는 지역주민 문화 행사용으로 쓰이는 듯한 세미나실과 어린이용 도서실이 있었다. 세미나실은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토론회 등에 적당하도록 꾸며져 있었다. 어린이용 도서실의 경우 단순히 어린이 책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키 높이에 맞춘 소파와 각종 장난감이 함께 배치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책들도 분야별로 다양해서 내가 어렸을 때라면 즐겨보았을 만한 과학에 관한 것부터 소설까지 다양했다.

2층은 본격적인 도서관인데(건물이 밖에서 보면 작은 것 같은데 안에 들어가서 보면 상당히 크다), 인구 10만의 소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한 서가를 갖추고 있었다. 스웨덴어 책이 주로 많았지만 영어책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인테리어도 뭔가 책을 찾아 읽고 싶은 느낌이 마구 든달까, 상당히 신경써서 한 것 같았다.

Västerås Stadsbiblioteket

도서관 2층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음악에 관한 컬렉션을 따로 만들어두고 있었다는 점인데(역시 예술의 도시?), 악보뿐만 아니라 음악 역사나 음악에 관련된 문학은 물론이요 음악 CD/DVD 및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까지 폭넓은 주제로 클래식에서 락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컬렉션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웬만한 클래식 음악들은 다 가지고 있었다. (스웨덴 피아니스트가 친 슈베르트 즉흥곡은 어떤 느낌일까?) 한켠에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헤드폰이 설치된 소파도 있었고 악보를 꺼내다 연주해보라는 뜻인지 작은 피아노까지 있었다. (도서관에서 피아노를 쳐도 되나 모르겠지만...-_-a) 또한 CD/DVD를 그 자리에서 재생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전자 기기들도 구비하고 있어 정말 완벽한 음악도서관이라 할 수 있었다.

Västerås Stadsbiblioteket

음악 컬렉션이 있는 방

사서한테 물어보니 대략 50년 전에 클래식 음악을 위주로 하여 모으기 시작한 거라고 하는데, 자기도 처음부터 일한 건 아니라서 자세한 역사는 모른다고 해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스웨덴 전체에서도 손꼽을 만한 컬렉션이라고 했다. 나중에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일본 서적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서나 과학소설 전문 사서 등 분야별로 담당하는 사람이 있는 형식인 것 같았다.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이 도서관을 보고 나니 Cliomedia님이 생각났다. 최근에 쓰신 글처럼 좀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2007년 예산 보고에 관한 문서(pdf)를 찾을 수 있었는데 1년 예산으로 350만 크로나, 한화로 약 6억원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겉보기에는 작은 동네 도서관 같지만 실제로는 꽤나 큰 규모로 운영되는 도서관이라는 점. 다만 책 대출 시 하루 한 권당 1:- (약 170원)씩을 내야 한다는 점은 조금 특이했다.

내가 사는 용인 수지의 인구가 2008년 4월 기준으로 30만명3이다. 2004년에 수지도서관이 생겼는데 사실 과학고 다니던 시절이었던 데다 그 후로도 계속 대전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찾아가본 적이 없다. 수지도서관 홈페이지를 찾긴 찾았는데 IE 전용인지 맥에서는 볼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고 메뉴와 게시판·자료실 등은 모두 백지다. -_-; (모 도서관처럼 블로그까진 아니어도 좋으니 접근성은 제발...ㅠㅠ) 건물 규모로 봐서는 꽤 큰 것 같은데 장서 같은 경우 숫자로 써있는 것만으로는 감이 잘 안 와서 비교를 못하겠지만, 나름 잘 운영되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Västerås 도서관의 경우 대부분의 정보가 스웨덴어라서 장서 수가 얼마인지 모르겠다...;;) 개관 당시 7억원을 들여 최초 장서를 마련했다는데(원문 출처는 아쉽게도 보안상의 이유로 접근 불가능하고 구글 검색결과에 저장된 것을 이용) 매년 어느 정도 예산 투입이 이루어지는지, 얼마나 전문성을 갖춘 사서가 일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부분은 나보다 cliomedia님이 더 잘 찾으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뭔가 수지도서관이라든가 한국에서 내가 가볼 만한 도서관이랑 비교해서 그럴싸한 결론(...)을 내고 싶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 도서관이라고는 카이스트 도서관밖에 이용해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다.;; 참고로 카이스트 도서관의 경우 장서 구입은 '요청하면' 잘 해주는 편이지만 전문 사서도 거의 없는 것 같고 카이스트라는 이름에 비해서 운영은 상당히 부실하다. 학위논문이랑 저널·학술지 DB 서비스 빼고 나면 정말 거의 남는 거 없을 듯. (가끔 이런 DB 이용을 위한 교육 세미나 같은 것은 한다) 근처의 지역도서관이나 다른 대학 도서관들과 상호대차가 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 cliomedia님 글을 읽으면서 도서관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면서 새롭게 많은 걸 느끼고 있는데--사실 카이스트 정도 다니고 있으면 블로그로 접하기 전에 알고 있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주변에서 누가 체계적으로 알려준 적도 없고 당장 과제와 프로젝트 해결하기 바빴으니 좀 아쉽다--앞으로 도서관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지고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도서관들을 좀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겠다. 수지도서관은 나중에 한 번 가봐야겠지만 정말 내가 사는 동네에 Västerås 시립도서관 같은 곳이 있다면 자주 이용해줄 수 있을 듯.


  1. 사실 이 도시를 가게 된 건 lshlj님이 Uppsala를 미리 다녀오시는 바람에 같이 다시 가자고 하기는 좀 그래서 대신 Mälaren 호수를 보려고 했는데 근처 도시 중 스톡홀름을 제외하고 lshlj님이 가지고 계시던 론리플래닛 스웨덴편에 나온 곳이 여기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2. Francis Crick과 함께 X선 결정분석으로 DNA 이중나선구조를 처음 발견하고 노벨상을 받은 바로 그 사람. 위키백과 참조

  3. 용인시 통계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