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놀 Bloghttps://blog.daybreaker.info/Daybreakin Things2018-01-09T00:18:33+09:00Textcube 1.10.10 : Tempo primo시스템 설계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8B%9C%EC%8A%A4%ED%85%9C-%EC%84%A4%EA%B3%842014-12-24T03:43:16+09:002014-12-24T02:43:22+09:00<p>올해 봄학기 마지막으로 조교를 맡았을 때 개강 전날 교수님과 한 학기 커리큘럼을 의논하면서 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전산학을 공부 + 연구해오면서 느낀 부분들이라 따로 글로 정리해본다.</p>
<blockquote>
<p>시스템을 설계하는 건 복잡성을 해결하는 과정이다.</p>
</blockquote>
<p>내 학번부터 KAIST 전산과의 졸업필수과목이 된 CS408 전산학 프로젝트(Capstone Project) 과목에서는 학생들이 팀을 이뤄 한 학기 내내 그 동안 배운 모든 지식과 기술을 동원하여 '적절한 수준의 복잡도를 지닌' 시스템을 설계·구현한다. 내가 이 과목을 수강했을 때 가장 불만이었던 부분은 과연 얼마나 복잡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 매우 주관적이었다는 것과, 실제로 그러한 복잡성을 해결하면서 시스템을 설계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거의 강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CS350 소프트웨어 공학개론 과목에서 모듈화의 개념이라든가 decoupling의 중요성 등 기초적인 원리를 일정 부분 가르쳐주기는 하지만, 실제로 프로그램을 작성할 때 이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전적인 지식은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p>
<p>이때 채우지 못한, 시스템 설계를 어떻게 "잘"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목마름이 내 대학원 생활에서도 상당히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라는 걸, 좀 늦게 깨달았다.</p>
<p>내 연구 주제인 패킷 처리 시스템 정도면 "매우 많이" 복잡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목표는 고성능 패킷 처리 프레임워크를 Linux 기반 환경에서 GPU와 갈은 보조프로세서를 활용해 구현하고, 여기에 CPU와 GPU로 패킷을 잘 배분해서 어떻게 하면 최적 성능에 다다를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푸는 것이다. 나는 사용자들이 새로운 패킷 처리 모듈들을 손쉽게 구현하고 추가·삭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단순히 특정한 종류의 application만 동작하는 prototype 프로그램이 아니라 어느 환경에서나 configuration만으로 프로그램 수정 없이 돌릴 수 있는 framework로 만들려고 했고 이를 위해 복잡도가 매우 올라갔다.</p>
<p>예를 들면 어떤 모듈을 실행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a href="http://www.read.cs.ucla.edu/click/docs/language">Click configuration language</a>를 모방한 별도의 DSL(domain-specific language)로 작성된 설정 파일이 있고 이를 해석하는 parser가 달려있으며, 어떤 하드웨어 리소스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embedded Python interpreter를 이용해 직접 시스템 정보를 전달해주고 사용자가 작성한 Python 스크립트가 자동으로 설정하게 했다. 네트워크 카드로부터 패킷을 입력받아 각 모듈들의 CPU 버전 코드를 실행하고 패킷을 출력하는 worker thread들이 여러 CPU 코어를 사용해 돌아가고 GPU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 패킷들을 모아서 GPU 전담 thread로 보내고 실제 GPU 관련 코드를 실행해주는 부분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은 polling과 event-driven model을 혼합하여 작성한 것이며 병렬화와 batch 처리의 효율성을 모두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코드를 작성했다.</p>
<p>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어떻게든 프레임워크를 돌아가는 상태로 만들어서 논문을 써놓고 나니, 추상화와 동작 여부 사이에서 trade-off가 너무 많았고(논문을 쓰려면 당연히 최소한 '돌아는 가야' 하니까) 추상화는 결국 내 스스로도 100% 만족하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논문 내용 자체를 framework의 우수성(?)으로 썼다가 여러 차례 학회에 재도전한 끝에 CPU/GPU load balancing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쓰고 framework는 들러리만 서는 형태로 논문을 제출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남들이 다 해놓은 거 짜집기한 것 아니냐'라는 내부 피드백을 넘어설 수가 없었고, 넘어설 수 없었던 이유는 설계 결과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왜 좋은가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잘 드러나게 할 만큼 writing skill이 좋지 못함과 동시에 현실과 타협한 부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p>
<p>사실 이게 바로 내가 대학원에 온 후로 계속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부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를 '새로운' 시스템 설계라고 논문의 형식으로 "잘" 주장하는 방법과 논문으로 썰을 잘 풀 수 있게 처음부터 고민하면서 시스템을 설계하는 방법을 나도 모르고 연구를 도와준 선배도 모르고 교수님도 잘 모르셨던 것 같다. (혹은 선배나 교수님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더라도 그걸 남도 할 수 있게 전달하는 방법을 몰랐거나.) 실제로 코드를 작성하면서 세밀하게 내린 여러 결정들을 다시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서 왜 그게 좋은지 이유만 잘 붙여도 꽤 그럴싸해보일텐데, 문제는 코드를 '돌아만 가는' 것을 목표로 작성하다보니 이유를 충분할 고민할 시간 없이 작성한 legacy가 너무 커져버렸고, 논문을 실제 쓰는 시점이 되어서야 그런 legacy들에 대한 근거를 찾다보니 시간이 부족하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며 시간을 너무 끌었다.</p>
<p>교수님과 개강 전날 책상에 네트워크·분산 시스템 분야의 여러 대가들이 써놓은 교과서를 주욱 늘어놓고 목차를 보면서 이번 학기 강의에는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야 할까 고민할 때, 눈에 딱 띄는 책이 있었다. MIT의 Jerome H. Saltzer 교수와 Fraans M. Kashoek 교수가 쓴 <a href="http://www.amazon.com/Principles-Computer-System-Design-Introduction/dp/0123749573/">Principles of Computer System Design: An Introduction</a>. 책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냥 목차만 봐도, 첫 챕터 첫 문단만 봐도 눈물이 나더라. 왜 이런 걸, 이렇게 체계화해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는가 안타까워서 말이다. 오죽했으면 교수님께도 CS408이 이런 내용을 가르치도록 개편되었으면 좋겠다는 건의사항을 그 자리에서 드렸을 정도다.</p>
<p>나의 안타까움은 여기서 다음 질문들로 바뀐다:</p>
<ul>
<li>코딩을 잘 한다 또는 못 한다의 기준이 뭘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소프트웨어 아키텍트의 차이는 뭘까? 내 느낌에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해 체계화된, 누구나 똑같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해주고 또 시스템 설계자로서의 역량을 키워주는 학부 교과목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li>
<li>전산학과 대학원의 목표가 엔지니어의 양성인가 아키텍트의 양성인가 아니면 논문쓰는 연구자의 양성인가? 물론 학부와 대학원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전산과 대학원에서도 모두가 교수가 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연구주제를 가지고 실제 시스템을 만들어 팔도록 창업을 독려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잘 키워내고자 한다면 논문을 잘 쓰는 방법보다는 시스템을 잘 설계하는 방법을 연습시키는 것이 맞지 않을까?</li>
<li>논문은 근본적으로 새롭지만 일반화(혹은 객관화)될 수 있는 결과를 요구한다. 하지만 시스템 설계 아이디어는 몇가지 핵심 원리와 요소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고, 매우 맥락(시스템의 목적, 만드는 사람의 '코딩 능력', 사용자의 경험·배경 수준, 설치·운영 환경 등)에 민감하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어렵다. 어지간히 썰 푸는 능력(맥락 자체의 중요성 설명)이 좋지 않으면 시스템 설계만을 가지고 논문을 쓰기는 매우 힘들다. (바로 내가 겪은 문제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꿔야 할까?</li>
</ul>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8B%9C%EC%8A%A4%ED%85%9C-%EC%84%A4%EA%B3%84?commentInput=true#entry1094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자기완결성 vs. 분산화 + 전문화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9E%90%EA%B8%B0%EC%99%84%EA%B2%B0%EC%84%B1-vs-%EB%B6%84%EC%82%B0%ED%99%94-%EC%A0%84%EB%AC%B8%ED%99%942014-11-12T20:41:46+09:002014-11-12T20:41:46+09:00<p>얼마 전 오랜만에 텍스트큐브 코드를 보던 중 <a href="http://forest.nubimaru.com">inureyes님</a>과 했던 얘기다. 내가 명색이(...) 텍스트큐브 개발자인지라 다른 블로깅 도구로 갈아타기가 좀 그렇고 그런데, 요즘 <a href="http://octopress.org/">Octopress</a> 같은 static page 기반의 블로깅 도구들이 좋아보이더라고 얘기했더랬다. inureyes님은 '결국 15년만에 제자리로 돌아왔군요.'라는 한 마디로 대답. 그 말을 들으니 지난 역사가 떠올라 한번 정리해야겠다 싶었다.</p>
<p>대략 15년 전이면 2000년, 내가 중학교 1학년일 때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막 ADSL이 보급되고 있었고, 너도나도 홈페이지 하나쯤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어찌어찌 HTML 공부해서 <a href="http://www.x-y.net">x-y.net</a>이란 웹호스팅 서비스에 가입하고 매번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나모웹에디터로 직접 HTML을 편집해서 올리곤 했다. 그때만 해도 사용자가 올리는 컨텐츠를 홈페이지에 반영해주는 CGI 같은 건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었고(PHP도 대중화되기 전이었음) 방문자 수 카운터, 게시판, 방명록 등을 gif/frame/iframe 형태로 홈페이지에 삽입해주는 서비스들이 많이 있었다. 대표적인 게 superboard.com으로, 아기자기한 게시판 템플릿도 여러 종류 제공하고 게시물 목록의 배경색을 그라데이션 느낌이 나게 줄마다 색깔을 다르게 넣어주는 게 일종의 최신 트렌드였다. 오랜만에 생각나서 찾아보니 구글 캐시에 일부 흔적이 보이고 회사는 망한 듯. 그때를 살펴보면 메인 컨텐츠는 홈페이지 운영자들이 직접 HTML로 만들어 올리고, 아무래도 관리나 구현이 귀찮은 상호작용 기능들을 외부 서비스에 의존하던 형태였다.</p>
<p>그러다가 PHP가 웹프로그래밍 언어로 뜨기 시작하고, 웹호스팅들이 MySQL 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하게 되면서 2005년 무렵에는 설치형 도구들이 대세가 되었다. 특히 제로보드가 크게 유행하면서 홈페이지를 만들려면 반드시 써야 하는 도구란 위상을 가졌던 시절이었다. 텍스트큐브의 전신인 태터툴즈가 나온 것도 2005년이고,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 2006년 4월이었다. 워드프레스도 비슷한 시기에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2007년 무렵부터 UTF-8 인코딩이 대세가 되었고, Firefox 사용자가 늘고 웹표준, Open API가 화두가 되면서 태터툴즈·텍스트큐브와 같은 블로깅 도구들은 OpenID 지원, 트랙백 지원, 스팸 차단 서비스 등을 추가해나가며 점점 CMS에 가까운 형태로 진화했다.</p>
<p>2007년 무렵부터는 블로깅 도구들이 크게 두 갈래의 길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계속해서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가동되며 사용자가 직접 자신의 호스팅에 설치해서 사용하는 설치형 방식과 다른 하나는 약간의 기술적 지식을 요구하는 설치형에 비해 가입만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가입형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네이버 블로그와 티스토리가 가입형의 대표주자였고 해외에서는 구글이 인수한 blogger.com과 워드프레스 개발자들이 직접 서비스화한 wordpress.com이 대세였다. 이때의 블로깅 도구들은 점점 세세하고 복잡한 기능을 탑재하면서(예: 웹브라우저에서 직접 사용하는 스킨 편집기) 한편으로는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문제점도 보여주었다. 2008년 9월에는 태터툴즈와 텍스트큐브를 함께 개발하고 서비스화했던 태터앤컴퍼니가 한국 스타트업으로는 최초로 구글에 인수되었고 약 1년 간 textcube.com 서비스를 유지한 후 blogger.com으로 흡수되었다.</p>
<p>그러다가 2009년 11월 한국에 아이폰이 출시되고 2010년부터는 모바일웹이 대세가 되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데스크탑의 기능들을 그대로 옮기거나 혹은 아예 축소해서 정말 뷰어 용도로 쓰는 방식을 취하다가, 모바일 웹브라우저 기술이 무르익기 시작하면서는 데스크탑과 동일한(그러나 작은 화면 크기와 터치 인터페이스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을 추구하는 반응형 웹디자인이 뜨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점점 복잡해져만 가던 웹 디자인이 미니멀리즘으로 회귀하기 시작했고 그 트렌드는 2014년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p>
<p>홈페이지를 만드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특히 <a href="https://github.com/">GitHub</a>에서 프로젝트 소개 페이지를 운영할 수 있는 <a href="https://pages.github.com/">static page 호스팅</a>을 제공하자 static page들을 쉽게 관리할 수 있는 <a href="http://jekyllrb.com/">Jekyll</a>과 같은 도구가 나오고 이를 응용한 Octopres와 같은 블로깅 도구까지 등장한 것이다. 사실 개인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글이나 컨텐츠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과 사용자들의 코멘트나 방명록을 받을 수 있는 공간 정도만 있으면 되는데, 기존의 설치형 블로깅 도구들은 CMS를 추구하면서 지나치게 복잡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단순해서 오히려 기능이 많아지면 잘 못 쓴다. 그런 역효과가 다시 static page 기반의 홈페이지로 회귀하는 트렌드를 만든 것이다. 게시판이나 방명록의 위치는 SNS 계정을 활용해 댓글을 남길 수 있는 <a href="https://disqus.com/">Disqus</a>와 같은 서비스들이 차지하였다. <strong>결국 15년 전과 똑같아진 것이다.</strong> 물론 세부사항을 들여다보면 지금은 15년 전과는 많이 다르다. Open API라는 흐름을 거치면서 서비스 간의 인증이나 연동이 보다 강화되었고, AJAX 기술을 통해 외부 서비스이지만 마치 그 웹사이트의 일부인 것처럼 동작한다.</p>
<p>설치형 도구들은 그 자체로 모든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최대한 넣는 것에 집중해왔다. 바로 자기완결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반면, Open API와 AJAX 기술은 하나의 웹사이트가 여러 서비스의 조합(composition)으로 만들어지는 기반을 제공하였고, 각각의 전문화된 서비스를 이용해 원하는 목적으로 가공하도록 해주었다. 이것이 바로 분산화·전문화다. 15년의 사이클을 돌고 돌아 이 두 트렌드가 엎치락 뒤치락 했듯이, 컴퓨터의 발전 역사도 중앙집중식 메인프레임에서 개인화·분산화된 PC 환경으로 왔다가 다시 중앙집중식 클라우드로 가는 모양새를 볼 수 있다. 클라우드도 기존의 메인프레임으로는 상상할 수 없던 대규모 스케일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흐름은 반복되었지만 똑같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분산화된 서비스도 그 흐름은 반복되었지만 그 연결은 훨씬 긴밀해졌다.</p>
<p>inureyes님이 이어서 했던 이야기는 여러 주체의 서비스를 모아서 무언가를 구축하면 그것이 많이 쪼개져있을수록 시스템 전체의 불안정성이 올라간다는, 다분히 물리학자다운 이야기였다. A, B, C, ... 서비스를 엮어서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 하나라도 동작하지 않는다면 홈페이지는 완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나에만 의존할 때보다 여러 개에 의존할 때 각각의 실패 확률이 동일하다면 여러 개에 의존할 때 당연히 전체 실패 확률이 올라간다. 서비스의 분산화와 반대인 데이터의 중앙집중화는 정 반대의 문제를 야기한다. 모든 것이 클라우드에 있는 상황에서 내 데이터가 있는 데이터센터가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소실된다면 한번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적어도 자기 장비에 자기가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면 그 데이터의 운명은 자신의 운명과 동일하지만, 클라우드에 아웃소싱하는 순간 자신의 운명과는 상관 없어진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실패가 발생하면 더 쉽게 멘탈 붕괴에 빠질 것이다. 게다가 데이터센터는 매우 많은 사람과 서비스를 담고 있기 때문에 단 하나의 실패가 매우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는 "single-point-of-failure" 역할을 하게 될 공산이 크다.</p>
<p>IT의 흐름에서 자기완결성·중앙집중식 vs. 분산화·전문화·조합성의 구도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싶다.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기보다는 각기 장단점이 있는데, 하드웨어의 성능과 시장의 성숙도(기술적인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용자의 비율 차이)에 따라 그 선택이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 15년 후에는 어떻게 변해있을까?</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9E%90%EA%B8%B0%EC%99%84%EA%B2%B0%EC%84%B1-vs-%EB%B6%84%EC%82%B0%ED%99%94-%EC%A0%84%EB%AC%B8%ED%99%94?commentInput=true#entry1093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인터스텔라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9D%B8%ED%84%B0%EC%8A%A4%ED%85%94%EB%9D%BC2014-11-09T18:10:35+09:002014-11-09T18:10:35+09:00<p><span style="color: #ff0000;"><스포일러 주의></span></p>
<p>거의 반년 동안 기다렸던 영화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호불호가 갈리는 측면도 있고 영상과 음향은 압도적이었지만 스토리는 다소 진부하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의 수식을 직접 다룰 수 있을 만큼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학부 때 물리학 부전공을 시도했을 만큼 관심이 많았기에 영화에 나오는 내용이나 설정 정도는 아주 가볍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 대중 상업 영화에서 이만큼이나 보여주고 설명해낼 수 있었다는 점에 감탄했다.</p>
<p>영상미의 측면에서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21세기 버전이라 칭함에 손색이 없다. 궤도 상의 우주선들이 도킹하는 장면이나 중력을 만들기 위해 회전시키는 장면, 그리고 아무 소리가 없는 우주 씬들과 순간순간 클라이막스마다 나오는 장엄한 음악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웜홀과 블랙홀에 들어가는 장면도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 기존의 SF 영화에서는 대체로 동그라미처럼 생긴 '구멍'이 우주선 앞에 만들어져 그 안으로 그냥 쑥 들어간다.. 이런 형태로 묘사된 반면 인터스텔라에서는 3차원의 구멍은 곧 구체라는 사실에 입각해 구체로 표현하고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표면(특이점)에 닿는 순간 이동이 이뤄진다는 형태로 묘사했는데 이러한 디테일은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생각해내기 어려운 부분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토성 궤도에서 웜홀이 생겼다는 점(소설에서는 토성이고 영화에서는 목성으로 나왔지만)이나 주인공들을 도와주는 인공지능 로봇들이 접혀있는 형상이 마치 monolith와 비슷한 인상을 풍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로봇들도 참 인상깊었는데 직육면체 모양의 몸을 여러 개의 기둥으로 쪼개서 극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보니 로봇공학의 최신 경향도 열심히 공부했구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p>
<p>개인적으로 꼽는 이 영화의 최대 명장면은 바로 머피가 '유레카! 유레카!! 유레카!!!'라고 외치며 중력방정식의 해를 프린트한 종이를 연구소 안에 여기저기 던지는 모습. 많은 물리학자들의 염원인 통일장 이론을 완성한 순간일까? 실제로 인류가 적극적으로 우주개발에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력 때문이다. 지구 궤도로 1kg의 질량을 올리기 위해 드는 비용이 너무나 비싸다. 만약 중력을 정복해 이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고, 더 나아가 중력 자체를 인공적으로(질량 대신 에너지를 사용한다든가) 만들어내거나 없앨 수도 있게 된다면 스타워즈에서나 보던 것과 같은 우주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죽기 전에 인류가 중력을 정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나의 소망이라면 소망이니, 머피가 중력방정식을 풀고 기뻐하는 장면을 보고 어찌 내가 기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물론 영화의 스토리 상으로도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플랜A를 성공시킬 수 있게 된 순간이니, 가히 클라이막스의 한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p>
<p>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좀 있는 것 같지만 이 영화가 과학적 측면에서도 정말 흥미로웠던 부분은 블랙홀 안에서 바깥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 중력이라는 설정이다. 왜 0과 1(모스부호)로만 정보를 표현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데, 이는 정보의 "encoding"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중력을 통해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중력 자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그걸 상대방이 알아볼 수 있는 어떤 유의미한 형태로 변환하기 위해서 책을 일정 순서로 떨어뜨리거나 모래가 모이는 위치를 바꾸거나 시곗바늘을 움직이는 식의 간접적인 형태로 표출한 것이다. 이때 가장 쉬운 방법은 0과 1의 2가지 상태만으로 정보를 표현하는 것이고 결국 binary 인코딩을 사용한 것.</p>
<p>또, 사람들에 따라서는 본격적으로 우주여행이 시작되기 전 초반 40여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다는 경우도 보이는데, 나는 오히려 그 부분이 굉장히 현실감 있고 좋았다. 뒤쪽의 우주여행에 대한 motivation을 만들어주는 부분이기도 하고. 흔히 나오는 디스토피아 영화들처럼 어떤 일순간의 사건으로 갑자기 세상이 종말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늘어나는 자연재해(영화에서는 황사로 묘사)로 점점 사막화되고 생존 여건이 나빠져가는 상황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심리적·사회적 변화를 너무나 잘 표현했다. 거시적인 모습보다는 한 가족이 접하는 일상의 장면들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p>
<p>스토리의 구성은 SF물을 많이 접했던 사람들이라면 '이건 어디서 따오고 저건 어디서 따오고 요건 어디서 먼저 시도했고...' 등등의 생각이 많이 떠올라 식상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작품이 오히려 (하드) SF물을 별로 접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라나는 10대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우주개발을 꿈으로 삼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하드 SF에 가까운 물리학적 관찰과 표현을 넘어 가히 철학적 SF라고 봐야 하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세련된 영상미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도록 풀어냈다는 점이 오히려 미국 헐리우드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내공이라고 할 만하다.</p>
<p>시간이 허락된다면 공대생(...) 친구들이나 가족들과도 한번 더 보고 싶다. 기왕이면 제일 큰 스크린의 영화관에서. 오래오래 상영했으면 좋겠다.</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9D%B8%ED%84%B0%EC%8A%A4%ED%85%94%EB%9D%BC?commentInput=true#entry1092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함께 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D%94%84%EB%9E%80%EC%B9%98%EC%8A%A4%EC%BD%94-%EA%B5%90%ED%99%A9%EB%8B%98%EA%B3%BC-%ED%95%A8%EA%BB%98-%ED%95%9C-%EC%84%B1%EB%AA%A8%EC%8A%B9%EC%B2%9C%EB%8C%80%EC%B6%95%EC%9D%BC-%EB%AF%B8%EC%82%AC2014-08-15T22:44:39+09:002014-08-15T22:29:48+09:00<h3>여정</h3>
<p>지난 4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한국 방문 결정 이후 각 성당에서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월드컵경기장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와 광화문 시복식 미사 참석자들을 등록하는 절차를 밟았다. 성가대 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아마 이 기회를 못 잡았으리라 생각하는데, 선착순으로 모집할 당시 청년부 회장을 맡았던 성가대 신입단원 분이 빠르게 연락을 취해주어 등록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한달쯤인가 지나고 나서 신원 확인을 위한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있었다. (그때는 주민등록번호 수집 법정주의가 시행되기 전이었음) 그리고 또 좀 지나서 청년들은 별도로 외신기자들 안내를 위한 영어 통역 자원봉사로 추가 지원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나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3주 전부터 매주 나오는 주보와 미사 후 공지시간을 통해 입장 방법과 반입 가능·금지 물품 등에 대한 안내, 성당 별 출발 시간 등에 대한 공지가 이뤄졌다. 주변에서 신자가 아닌 사람들 중에 등록비가 따로 있느냐 궁금해한 경우가 있어서 덧붙이자면, 등록에는 당연히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았고, 미사 일주일 전 방한 준비를 위한 특별 예물봉헌과 교황님이 사용하실 미사도구나 제대용품 등에 대한 별도 기부 형태로 약간의 fund raising은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비용은 이런 헌금과 교구 차원의 예산을 사용했을 것이다.</p>
<p>내가 활동하는 궁동 성당은 원래 새벽 3시 출발이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시간 배정이 새벽 6시로 변경되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인 나에게는 그나마(...) 희소식이랄까. ㅋㅋ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버스 등을 이용해 오므로 혼잡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월드컵경기장과 지리적으로 가깝다(약 2.6 km, 도보 40분)는 점을 고려하여 성당에 다같이 모여서 걸어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궁동 성당에서는 약 400명 가량이 참석하기로 하였고, 집이 본당 구역에 속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처럼 타지 생활하는 사람들이나 구역에 속하지 않은 청년들은 대충 20여명쯤 있었던 것 같다.</p>
<p>그래서 드디어 오늘,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5시 40분에 성당에 도착해 무사히 입장티켓을 배부받고 6시부터 사람들과 삼삼오오 무리지어 월드컵경기장으로 이동했다. 대전지역은 어젯밤까지 계속 비가 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들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비는 오지 않고 흐린 채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걷기에 딱 좋았다. 전날 대전지역 마트에서는 우비가 모두 동났지만 그 우비를 입은 사람은 결과적으로 아무도 없었다. (...) 경기장이 다가워오자 이미 다른 지역에서 신자들을 데려온 버스들이 사람들을 내려주고 주차해놓아서 엄청난 규모의 버스 주차장이 생겨있었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버스들을 볼 수 있었다. 유성IC 근처부터는 경찰들이 경계·교통통제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p>
<p>원래는 성당의 자리 배치에 따라 들어가는 출입구도 정해져있었는데, 다들 기억을 못해서 + 월드컵 경기장의 구조를 잘 몰라서 헤매는 사태가 발생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경기장의 동쪽 방향에서 걸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쪽 출입구로 들어갔는데, 처음부터 "직N문"(N은 자연수)으로 들어갔으면 쉬웠을 것을 그 위치를 몰라서 괜히 1층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잔디밭으로 내려가는 통로를 찾느라 경기장 관중석을 반바퀴 빙빙 돌아야 했다(W23과 W24 출입구 사이의 엘레베이터 옆 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었고 제대 뒷편 출입구로 나올 수 있었다).</p>
<p>입장할 때 공항과 비슷한 보안검색과 티켓·신분증 확인 절차가 있었으나 아주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사람들도 다들 잘 협조해서 무난하게 넘어갔다. 보안검색 절차를 거친 후 하나은행에서 협찬한 종이 선캡과 방한준비위 쪽에서 준비한 미사 예식 안내서, TV에서 다들 보았을 그 손수건과 수자원 공사에서 협찬한 대청호 수돗물을 담은 500ml 생수병을 받을 수 있었다. (참고로 영성체 때 신부님들마다 씌워드린 교황문장이 새겨진 노란색 우산은 우리은행에서 협찬한 것이었다.)</p>
<p>우여곡절 끝에 자리 찾아서 착석완료하니 오전 7시 20분이었다. 우리 본당은 제대를 앞에 두고 바라봤을 때 잔디밭의 왼쪽 앞 블록의 뒷쪽 열 일부와 오른쪽 뒷 블록의 앞쪽 열들을 배정받아 교황님의 미사 집전 모습을 바라보기 좋은 위치였다.</p>
<h3>문화 공연</h3>
<p>사전에 가수 인순이와 조수미씨의 축하 공연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확한 식순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7시 30분쯤 다들 자리잡고 나서는 교황님 미사 집전하시는 10시 반까지 뭘하며 기다리나(...) 이런 상태였다. 우리 본당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백설기를 나누어주셔서 배고프지 않게 기다릴 수 있었다. 8시가 되자 식순 안내가 나오고, 모 본당 출신의 사회자분과 평화방송 프로그램 진행자 분의 사회에 따라 축하공연이 시작되었다.</p>
<p>첫번째 공연은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은 소년소녀 성가대(?)의 노래 3곡이었다. 제목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내 고질병인데(...) 첫번째 곡은 박수와 율동으로 귀여운 느낌이었고 두번째 곡은 성가곡, 세번째는 아리랑이었다.
두번째 공연은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잘 못 봤는데(...) 어른 성가대의 성가 곡들이었다. 음향조절을 잘 못했는지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좀 아쉬웠다.
세번째 공연은 가수 인순이의 공연으로 정말 이래서 가수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드는 파워풀하고 통쾌한 발성이었다. 특히 거위의 꿈을 부를 때는 다들 기분 업.
네번째 공연이 프리마돈나 조수미씨의 공연으로 역시 명불허전. 특히 아베마리아 부를 때의 그 성량과 울림은 대단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소오름....' ㅋㅋ
공연 스테이지가 제대를 바라봤을 때 왼편이었기 때문에 오른편에 있었던 나는 가수들을 직접 보기는 어려웠지만(그래도 보이긴 보였다 ㅋㅋ) 대형 LED 전광판의 화질이 매우 좋아서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자세히 볼 수 있었다.</p>
<h3>교황님 도착</h3>
<p>조수미씨 공연이 끝났을 때 대충 9시 30분 언저리였던 것 같은데 이때 교황님이 헬기 대신 KTX를 이용해서 오고 계신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처음에 일정 지연이 있을 거라고 했다가 갑자기 급 10분 뒤에 도착하십니다~ 하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화장실에 다녀오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 9시부터는 KBS 생중계가 이뤄지면서 KBS 아나운서들이 진행을 맡았는데, 공연 후와 교황님 도착 전의 빈 시간 동안 웬 응원연습(...)을 시켜서 다들 어색어색. 원래 천주교 신자들이 개신교하고 분위기가 좀 달라서 막 와와!! 이런 거 잘 못하는데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워보려는 사회자의 노력이 참 눈물났다. 그래도 월드컵을 치른 나라의 사람들이라 그런가 파도타기만큼은 또 잘 하더라. ㅋㅋㅋ 시키지도 않았는데 막 두번 세번씩 돌고.</p>
<p>LED 스크린을 통해 교황님이 도착해 쏘울에서 내려 무개차로 갈아타는 모습이 보여지자 슬슬 사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직2문으로 입장한다는 사회자의 안내가 있자 그 근처로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다. 교황님이 무개차를 타고 돌지 아니면 걸어서 입장하실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는데 아무래도 고령이다보니 무개차로 필드 가장자지를 쭉 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사실 사회자의 눈물나는 노력이 없었으면(...) 사람들이 대단하게 환호성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환호 소리가 조금 작아진다 싶으면 파도타기도 시키고 '비바 파파' 열창도 시키고... ㅋㅋ 통로 쪽으로 모인 사람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어서 안쪽의 사람들에게 전송해준 덕분에 먼발치에서만 교황님을 지켜보았지만 생생한 사진들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며칠 전에 카카오톡 업데이트로 사진 원본 전송 기능이 생겼는데 참 적절했다.</p>
<h3>미사</h3>
<p>열기를 가라앉히고 10여분 정도 제의 준비 시간이 있었다. 이때 교황님이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셨고, 사실 나는 나중에 나와서 뉴스보고 알았지만(LED 스크린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ㅠ) 세월호 노란리본을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하셨다.
나는 프랑스와 스웨덴과 영국에서 모두 미사를 본 경험이 있는데, 역시 평소와 동일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교황님이 말씀하시는 부분과 한두 마디의 짤막한 응답구들은 이탈리아어로 했지만(신자들이 말해야 하는 부분은 예식 안내서에 발음을 한글로 써놓았다), 통회의 기도와 사도신경, 주기도문, 그리고 성가 합창은 한국어로 진행하였다. 역시 다같이 성가 부를 때 경기장에 울리는 목소리는 감동. 어렸을 때부터 친숙한 한국 가톨릭 성가들을 교황님 앞에서 다같이 부른다는 것도 참 멋진 경험이었다.</p>
<p>봉헌은 평소 본당 미사처럼 실제로 헌금을 받지는 않고 공통 예물 봉헌 형태로만 진행되었고, 영성체는 수백(?) 명의 신부님들이 관중석과 잔디밭 곳곳에 배치되어 동시다발로 진행되었다. 참석자 수가 대략 5만명이었다고 하는데 모두 성체 받아모시기까지 20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p>
<p>미사는 거의 안내서에 써있는 순서대로 진행되었는데, 맨 마지막 삼종기도 부분이 좀 달랐다. 삼종기도 직전에 유흥식 라자로 대전교구 주교님이 특별 환영 메시지와 기도 요청을 드리고 나서 교황님께서는 삼종기도 강론을 말씀하셨다. 이때 월드컵 때처럼 중앙 관중석을 덮는 대형 환영 현수막이 펼쳐졌다. 그러고 나서 이탈리아어로 삼종기도를 했는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못 따라가서 단체 멘붕.... 안내서에 써있지 않은 기도였던 것 같은데 결국 이 부분은 교황님과 사제단하고만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되었다.;;</p>
<p>미사의 마무리는 평소처럼 강복과 파견성가로 진행되었는데, 파견성가 부르는 중에 자리를 먼저 뜨는 사람이 많았던 점은 좀 아쉬웠다. 사실 평소 본당 미사에서도 파견성가 때 먼저 나가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 습관 어디 안 가더라는...-_-;
근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던 부분이 영성체 타이밍을 전후해서 흐렸던 하늘이 쫙 맑아지는 기적(?)과 동시에 너무나 강렬한 햇빛이 쏟아지는 바람에 다들 빨리 나가고 싶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관중석 부분을 보면 햇빛이 직접 닿는 부분은 사람들이 젤 먼저 빠져나갔고 그늘진 부분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나도 고작 10여분 햇빛을 쬐었을 뿐인데 양팔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햇빛이 셌고 더군다나 다들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던 상황에서 선크림까지 바른 사람도 별로 없었을 것이기 때문.</p>
<p>미사 후에는 풍물놀이패의 신명나는 축하공연이 있었고 사제단 퇴장 이후 행사 종료가 선언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기념사진을 찍으러 제단 주변에 모이기 시작하더니 성모상과 제대초, 교황좌 등을 찍느라 시끌벅적. 나도 약간의 기념촬영을 한 후 성가대 멤버들을 따라 이동해 일정을 마무리하였다.</p>
<h3>강론 말씀</h3>
<p>강론 말씀 전문은 여러 언론에 공개된 것 그대로다. (<a href="https://gist.github.com/achimnol/24351f2d170e01485990">나중을 위한 스크랩</a>) 대충 한 문단 정도의 분량씩을 이탈리아어로 쭉 말씀하시고 옆에서 순차 통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내용은 통역을 통해서야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이탈리아어로 말씀하실 때도 특히 강조해서 말씀하신 부분들을 알 수 있었는데, 특히 아래 부분, 그 중에서도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실 때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흥분하셨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번째 문장은 교황님이 미사 후 <a href="https://twitter.com/Pontifex/status/500115204177268736">트위터에 남기신 메시지</a>이기도 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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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세례 때에 우리가 받은 존엄한 자유에 충실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하느님의 계획대로 세상을 변모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이끌어 주시도록 간청합니다. 또한 이 나라의 교회가 한국 사회의 한가운데 에서 하느님 나라의 누룩으로 더욱 충만히 부풀어 오르게 도와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쇄신을 가져오는 풍성한 힘이 되기를 빕니다. 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빕니다.</p>
</blockquote>
<p>이 대목에서 교황님의 사목 지향과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리고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어투를 쓰는 것 같으면서도 분명하게 날이 서 있는 뜻을 느낄 수 있었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p>
<p>신앙적으로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앞 부분의 2독서에 대한 설명이었다.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속박을 오히려 자유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 부분을 추상적이지 않고 오히려 아주 구체적이면서 짧고 쉬운 언어로 이토록 명확하게 설명해주심이 놀라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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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참된 자유는 아버지의 뜻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단순히 죄에서 벗어나는 일보다 더 크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자유입니다. 하느님과 형제자매들을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유이며, 그리스도의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는 기쁨이 가득한 희망 안에서 살아가는 자유입니다.</p>
</blockquote>
<h3>세월호 보듬기</h3>
<p>삼종기도 강론에서는 세월호에 대한 언급을 하셨다. 교황님이 세월호 특별법과 같은 실질적 이슈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실 수는 없었겠지만,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헌신적 모습을 바란다는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대화를 촉구하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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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우리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blockquote>
<p>특히 세월호 유족 2분의 도보 십자가 순례로 가져온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미사를 드리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아, 교황으로서 해주실 수 있는 최대의 모든 일을 해주시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세월호 사건을 단순히 시간 속에 잊혀지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p>
<p>시간이 지나면서 세월호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가 정치집단들 사이의 세력 싸움으로 변질되면서 사람들은 거기에 피로를 느끼고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특별법의 내용과 수사권·기소권 등의 세부 이슈에 대해서는 나도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그리고 유족들이 진짜 원하는 것과 이를 둘러싼 정치집단들의 이해논리가 어떻게 맞아떨어지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가 국민적 슬픔에 빠졌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기억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보여주신 '보듬음'은 현실적인 정치 이슈를 떠나서 이 사건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시는 것이라 본다.
교황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p>
<h3>마치며</h3>
<p>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보면서 가톨릭 신자로서도, 또 신자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으로 생각해도, 참으로 원래 예수님이 지키려고 했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과 회귀를 몸소 보여주시는 분이라는 게 절절하게 느껴진다.
교황이라는 매우 높은 수직권력 꼭대기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몸을 낮추시는 모습과 그것이 단지 상징적인 행위로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조치들이 함께 취해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분을 따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동안의 여러 연설과 강론을 통해, 또 오늘의 미사 강론을 통해서도, '아버지의 나라가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그분의 분명한 방향과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분과 동시대에 살고 있고, 또 가까이서 뵐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동시에, 이런 분이 그만큼 부각되고 주목받는다는 것은 현대 사회가 정신적으로 그만큼 더 피폐해있다는 하나의 반증이기에 또한 갈길이 멀다는 생각도 든다.</p>
<p>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이 세상에 어떠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통해 그 답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D%94%84%EB%9E%80%EC%B9%98%EC%8A%A4%EC%BD%94-%EA%B5%90%ED%99%A9%EB%8B%98%EA%B3%BC-%ED%95%A8%EA%BB%98-%ED%95%9C-%EC%84%B1%EB%AA%A8%EC%8A%B9%EC%B2%9C%EB%8C%80%EC%B6%95%EC%9D%BC-%EB%AF%B8%EC%82%AC?commentInput=true#entry1091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세월호 참사를 보며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84%B8%EC%9B%94%ED%98%B8-%EC%B0%B8%EC%82%AC%EB%A5%BC-%EB%B3%B4%EB%A9%B02014-05-08T15:13:55+09:002014-04-22T22:04:08+09:00<p>일주일 째 온통 뉴스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소식 뿐이다. 기분좋게 자전거 타고 퇴근한 다음 샤워까지 싹 하고 단골 커피집에서 커피를 한잔 사다놓고 마시다가도 뉴스를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 지난 주일이었던 부활절에도 평소 같으면 청년회 월례회의 후 신부님과 함께 전체 회식이라도 했을 텐데 추모하는 뜻에서 각 소공동체별로 자체적으로 식사 자리만 가졌다.</p>
<p>이번 사고를 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너무나 많다. 우선 어린 학생들이 대거 희생되었다는 점, 구조와 대피 안내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선장과 선원들,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들. 무엇보다도 국가와 정부, 나아가서는 이 사회 전반에 대해 어린 학생들부터 어른들까지 한꺼번에 신뢰를 잃고 있다.</p>
<p>냉정하게 말해서 이런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여러 개의 안 좋은 요인---대개 그 개별 요인으로는 큰 사고가 될 가능성이 적은---들이 확률적으로 모이면 사고가 나는 것이다. 다만 이 사고 수습 과정을 보면서 우리나라 정부는 정부대로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걸 불신하고,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정부를 의심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민간잠수사 행세를 했던 홍모 사기꾼 같은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아주 점입가경이다.<sup id="fnref:홍모씨"><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84%B8%EC%9B%94%ED%98%B8-%EC%B0%B8%EC%82%AC%EB%A5%BC-%EB%B3%B4%EB%A9%B0#fn:홍모씨" rel="footnote">1</a></sup>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감정적인 것인지, 정모씨 말마따나 국민성이 미개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sup id="fnref:정모씨"><a href="#fn:정모씨" rel="footnote">2</a></sup>, 여하간 사고 이후 뉴스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p>
<p>하지만 아무리 정부를 옹호하고 그 모든 노력을 인정해주고 싶어도, 기술적으로 구조 작업이 어려운 점은 이해하더라도, 사고 수습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모습은 모든 사람들의 신뢰를 잃기에 너무나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이었다. 게다가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정부의 행태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경우 알게 모르게 압력을 행사한다든지 하는 모습은 그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는 커녕 더욱 나락으로 빠뜨리고 있다. 설령 똑같이 한명도 생존자를 구조하지 못하는 결과를 보였다고 할지라도 일사불란하게 구조 작업을 지휘하고 모든 과정과 어려움을 소상히 설명하고 그런 자세를 사고 당일부터 보였다면 지금만큼 불신의 벽이 높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일부 사람들의 몰지각한 언행으로 <a href="http://www.podbbang.com/ziksir/view/560">이런 짤방</a>이 나돌 정도가 되었으니. 과연 내가 이런 일을 당한 입장이 되었을 때 어디까지 국가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분명히, 이 상황을 통제하고 수습할 수 있고 그래야 하는 건 국가인데 그 국가에 의지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다. 이런 국가를 만든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일까? 일부 정치집단의 무능함으로 봐야 할까?</p>
<p>한편으로는 별 것 아닌 일에 사람들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예를 들어, 나는 유족들 옆에서 총리가 의전용 팔걸이 의자에 앉아서 라면 좀 먹었다든가 이런 것까지 문제삼는 건 좀 지나치다고 본다. 총리의 입장에서보면 공무 수행 중에 주변 수행원들의 배려로 그리한 것인데... 물론 유족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행동이 정부의 구조 의지를 깎아먹는다고 해석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물론 나도 개인적인 정치적 입장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의 모든 언행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또 대통령이 직접 찾아와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면접촉까지 한 상황에서 청와대로 찾아가자는 것도 현실적인 접근은 아닌 것 같다.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심정적인 공감도 가고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책임자 추궁하겠다' 이러면서 은근히 한발 빼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현 대통령의 모습이 별로 마뜩치 않긴 해도, 대통령이라고 해서 뭔가 대단히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말보다 행동으로 다른 나라의 구조 지원을 좀더 일찍 받아들인다든가 이런 기지를 보여줬다면 약간의 플러스가 되었겠지만.</p>
<p>사실 나는 정부의 대응 문제보다 이 사고의 '구도'가 사회에서 느끼는 부조리함과 너무나 닮아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난다. '말 잘 듣는' 학생들과 구조에 총력을 다한 서비스 승무원들은 배에 남아있다가 수장되고 더 많은 정보와 권한을 가진 선장과 선원들은 도망쳐 전원 구조되는 이 모순적인 모습은 우리나라의 부조리한 부분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가슴아프게 보여준다. 이른바 교과서적인, 상식적인 행동을 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희생되었다는 점과 모든 잠재적 위험과 상황을 알고 먼저 도망쳐나온 선장·선원들은 전원 구조되었다는 이 극명한 대비... 위기의 순간에 다른 사람들보다 빠른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도망칠 여건(돈이 많다든지)이 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빨리 위기를 빠져나가고 정작 항상 제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뭔가 역사적으로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sup id="fnref:역사적 사례"><a href="#fn:역사적 사례" rel="footnote">3</a></sup> 막말로 북한하고 전쟁이 났는데 방송으로 '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집에 계십시오'라고 안내가 나온다면, 이젠 사람들이 이 말을 믿고 따를 수 있을까? 재벌총수들과 대통령부터 비행기 타고 외국으로 도망치지는 않을까 먼저 의심하게 되지 않을까?<sup id="fnref:여건"><a href="#fn:여건" rel="footnote">4</a></sup></p>
<p>사회에서도 보면 하라는 대로 말 잘 듣는 사람들은 '순둥이' 취급받으면서 오히려 더 많은 일을 떠안게 된다든지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이익을 나름대로 챙기며 '약게' 행동하는 사람들에 비해 손해를 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약삭빠른 선장·선원들과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켰던 다른 사람들... 그 결과가 단순히 좀 손해보는 정도가 아닌 목숨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제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이 다름아닌 우리가 지켜줘야 할 학생들이었다는 점에서 이 사고는 너무나 슬프다. 그리고 충격이 크다. 아무리 '어른들의' 사회가 부조리하고 부패해 있어도('세상은 원래 이런 거야'라고 체념했더라도) 자라나는 어린이나 학생들에게만큼은 사회는 원리 원칙대로 살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곳임을 보여주고 싶은 게 어른들의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p>
<p>나는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사건이 다른 사건들과 달리 특히 더 사회적인 후유증이 길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겉으로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람들은 놀러가고 웃고 떠들고 하겠지만, 책임을 저버린 약삭빠른 자들와 항상 제 자리를 지키며 말 잘 듣는 자들 사이에 형성된 불신의 구도는 생각보다 크고 깊은 상처로 남을지도 모르겠다.</p>
<ul>
<li><strong>(4월 23일 추가)</strong> 단순한 악마사냥과 선장·선원들에 대한 책임론을 넘어, 사회적으로 이런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어떤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바라봐야 할지 제시하는 기사가 나왔다. <a href="http://www.huffingtonpost.kr/taichiro-yoshino-kr-/story_b_5189479.html">허핑턴포스트 일본판 편집자의 기고문.</a></li>
<li><strong>(4월 23일 추가)</strong> 이래서 data journalism이 필요하다. 물론 해석을 얼마나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하느냐는 문제가 있지만. <a href="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28635307">연도별 해상 조난사고 통계 관련 논란.</a></li>
<li><strong>(4월 26일 추가)</strong> 구조작업 초반에 '민관군 합동'에서 실은 '민'이 해경과 유착관계가 깊은 특정 업체(언딘)였고 구조과정에서 텃세를 부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a href="http://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5599">관련기사1</a>, <a href="http://m.vop.co.kr/view.php?cid=748185&t=1">관련기사2</a>) 구조라도 잘 했으면 모르겠는데, 다른 민간 산업 잠수사나 UDT 동지회 등에서 대기하라는 명령 때문에 구조작업에 빨리 착수하지 못했거나 장비 들고 왔다가 되돌아간 사례 등 뒷이야기가 무성한 걸 보면 이런 관계 때문에 "정말로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도입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li>
<li><strong>(4월 26일 추가)</strong> 세월호 선장은 비정규직 계약직이었고 사고 당시 청해진해운 간부들의 퇴선 허가를 기다리다가 사고를 키웠다는 <a href="http://www.ytn.co.kr/_ln/0102_201404261027523754">기사가 나오고 있다.</a> 이른바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는 "바지" 선장이었던 셈. 이 말은 위의 허핑턴포스트 기고문처럼 단순히 1차적인 책임을 지는 선장만 비난·비판할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선장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그러한 구조가 사회 전반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말해준다.</li>
<li><strong>(4월 27일 추가)</strong>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리더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설명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왜 이 사태를 제대로 수습할 수 없었는지 조목조목 보여주는 글이 있다. 모든 사람이 꼭 읽어보길 원하고, 진심으로, 누군가 박근혜 대통령 면전에서 이 글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a href="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28724502">클리앙 펌글 링크.</a> <a href="http://www1.president.go.kr/community/sympathy/free_board.php?srh[view_mode]=detail&srh[seq]=576100&srh[detail_no]=1">청와대 자유게시판 원글 링크.</a> 솔직히 나는 이것 때문에 대통령이 '하야'까지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어쨌든 5년의 대통령 임기를 부여하도록 선거를 통해 뽑아준 건 우리니까. 정말로 하야를 원한다면 국회를 통해 탄핵소추를 하는 것이 제도 상의 정석.),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이 앞으로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끈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박근혜가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뀔 것 같지는 않고.</li>
<li><strong>(4월 28일 추가)</strong> 어제 올라왔던 청와대 자유게시판 글을 원래 게시자가 스스로 삭제했다고 한다. 외부의 압력이 있었는지 아니면 너무 이슈가 되어 스스로 글을 내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a href="http://sports.hankooki.com/lpage/lifenjoy/201404/sp2014042814214994470.htm">관련기사.</a> 내가 어제 오후 2시쯤 글을 봤을 때 조회수 3만여건에 공감 수 1700 정도였는데 하룻밤새 조회 50만에 공감 1만이 넘었다고 한다.</li>
<li><strong>(4월 28일 추가)</strong> 청와대 자유게시판 글은 원작자가 올린 것이 아니라 펌글이었고 언론에 기사화까지 되자 부담스러워 게시자 스스로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a href="https://www.facebook.com/sungmi.park.338/posts/10152322548266132">페이스북 원글 링크.</a> 그 사이에 글 목록에서만 없어지고 글의 고유 링크는 살아있다는 점과 이후 접속 폭주로 별도의 차단 페이지를 보여준 점 때문에 <a href="http://ppss.kr/archives/20242">이상하다는 글이 올라왔다.</a> 다른 사람이 다시 오류 내용을 살펴보고 정리한 <a href="http://www.deculture.co.kr/archives/1597">청와대 홈페이지의 404 에러 분석</a> 글을 보면 내 생각에는 그냥 게시판을 제대로 구현 안 해서 그랬던 것 같다. -_-;</li>
<li><strong>(4월 30일 추가)</strong> 왜 관료 중심의 재난 대응이 현장에서 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 <a href="http://jdlab.org/wp/?p=1110">분석한 글.</a>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보다 시스템 자체의 한계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li>
<li><strong>(5월 8일 추가)</strong> IT 산업(또는 다른 여러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이 뜨면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해 <a href="https://www.facebook.com/bhsong/posts/10201182722085199">민관 유착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한 글</a>이 눈에 띈다. 세월호 참사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 '해피아'도 결국 이런 구조를 통해 만들어졌음을 시사한다.</li>
</ul>
<div class="footnotes">
<hr />
<ol>
<li id="fn:홍모씨">
<p>케이블 종합편성 채널인 MBN 인터뷰에서, 홍가혜 씨가 해양경찰이 민간잠수사들의 구조 협력 요청을 막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모두를 분노케 했다가 뒤늦게 사기 전력이 다수 있는 사람이었음이 밝혀지고 해당 발언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속영장까지 받게 된 해프닝이다. 결국 MBN은 보도국장이 직접 뉴스에서 머리 숙이고 사과를 해야 했다. <a href="#fnref:홍모씨" rev="footnote">↩</a></p>
</li>
<li id="fn:정모씨">
<p>정몽준(글쓰는 시점 현재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자 서울시장 예비후보) 씨의 막내아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과 총리가 내려와 최선을 다하겠다 하는데도 유족들이 항의하고 물세례한 장면을 두고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며 비아냥댄 사건. 나중에 정몽준 씨가 직접 나서서 철없는 행동이었다며 사과 설명을 발표하였다. <a href="#fnref:정모씨" rev="footnote">↩</a></p>
</li>
<li id="fn:역사적 사례">
<p><strong>(4월 23일 추가)</strong> 실제로 그 역사적 사례를 모아놓은 <a href="http://m.gae9.com/trend/29wGWZbtNsRz">그림 등장</a>. <a href="#fnref:역사적 사례" rev="footnote">↩</a></p>
</li>
<li id="fn:여건">
<p>물론 대통령도 사람이고 재벌총수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생존하고자 하는 욕구는 당연히 있을 것이고, 이들의 목숨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이 사회로부터 받은 권한과 사회를 통해 얻은 부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그냥 도망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이 사회의 안전을 위해 도움을 주는 모습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a href="#fnref:여건" rev="footnote">↩</a></p>
</li>
</ol>
</div>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84%B8%EC%9B%94%ED%98%B8-%EC%B0%B8%EC%82%AC%EB%A5%BC-%EB%B3%B4%EB%A9%B0?commentInput=true#entry1090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Python 3.4 asyncio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Python-34-asyncio2014-03-10T23:57:03+09:002014-03-09T16:10:52+09:00<p>이번 주 릴리즈 예정인 Python 3.4의 주요 변화사항으로 asyncio 라이브러리가 추가된 점을 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unicode 대통합 이후 가장 반기는 변화라서 따로 글로 남겨본다. 우선 asyncio 라이브러리가 비동기 처리를 구현하는 핵심 구성요소인 coroutine 개념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겠다.</p>
<p>프로그래밍을 할 때 동시에 2가지 이상의 작업을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으로 대표적인 것이 multi-threading이다. process 또는 thread와 같이 운영체제 스케줄링의 기본 단위가 되는 실행 단위를 여러 개 만들어 각각이 서로 다른 작업을 처리하게 하는 것으로, 물리적으로 여러 개의 CPU 코어가 있는 경우 프로그래밍을 "잘"(lock을 가능하면 쓰지 않는다든지 shared data를 최소화한다든지) 하고 처리하고자 하는 연산이 입력데이터를 쪼개 처리할 수 있는 경우 높은 성능 향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single thread로 작성되므로 이처럼 입력 데이터를 쪼개 동일한 일을 하는 여러 개의 thread로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면 큰 성능 향상을 보기 어렵고 데이터를 어떻게 쪼개고 어떻게 나눠주는지에 관한 구조를 모두 신경써야 하므로 프로그래밍도 복잡해지는 문제가 있다.</p>
<p>그 다음으로 많이 볼 수 있는 동시성 구현 방법은 event-driven programming이다. 구현 방법에 따라서는 멀티코어 CPU를 활용하도록 만들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컨셉은 하나의 thread 안에서 여러 개의 작업을 어떻게 잘 나누어 scheduling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Event-driven programming은 말 그대로 작업 별로 입력 이벤트가 발생하였을 때( = 연산할 꺼리가 생겼을 때) thread를 깨워서 그 작업을 처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벤트를 여러 개 등록하고 각 이벤트를 모니터링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한데, 최근의 운영체제에서는 epoll (Linux), kqueue (BSD), IOCP (Windows)와 같은 API들을 제공하고 있어 user process가 하기 어려운 blocking 작업과 IO event 모니터링을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도와준다.</p>
<p>이와 달리, <a href="http://en.wikipedia.org/wiki/Coroutine">Coroutine</a>은 동시성에 대한 접근 방법이 좀더 특이하다.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함수(function 혹은 method)라고 부르는, 프로그램의 가장 작은 실행단위(routine)를 쪼개어 여러 각 subroutine들이 '번갈아' 실행되도록 한다. 쪼개는 지점은 프로그래머가 직접 정해주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여러 개의 각 진입점을 그때그때 돌아가면서 혹은 특정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coroutine scheduler가 원하는 순서대로 호출한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기존의 multi-threading이나 event-driven programming은 언제 "깨어날 지"를 운영체제나 라이브러리가 결정해주는 데 반해 coroutine에서는 언제 "잠들 지"를 프로그래머 스스로 결정하는 구조이다. "Cooperative routines"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스스로 제어를 양보(yield)하고, 이때 coroutine scheduler는 바로 다음 시점에 block하고 시스템의 이벤트를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다른 coroutine을 실행할 것인지 선택한다.</p>
<p>Event-driven programming은 CPU 자원을 필요할 때만 쓴다는 점에서 효율적이지만 프로그래머의 관점에서는 헬게이트에 가깝다. 그 이유는 개별 이벤트가 독립적으로 처리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여러 개의 이벤트가 하나의 일련 작업으로 이어져야 하는 경우 내가 "몇 번째 단계"에 있는지(state) 프로그래머가 스스로 tracking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프로그래머는 socket programming을 배울 때 "순서대로" socket을 열고 connect하고 recv/send를 번갈아 호출하고 할일이 끝나면 close하는 방식의 사고에 익숙할 것이고, 저 과정을 매번 다른 이벤트로 처리하고 특정 순서에 잘못된 이벤트가 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한다면 벌써부터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이때 빛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coroutine이다. 프로그래머는 그냥 원래 익숙한 순서대로 routine을 짜되, blocking call이 발생하는 부분마다 yield하도록 표시를 해두면 coroutine scheduler가 각 yield 후 알아서 connect가 완료되었을 때, recv/send가 완료되었을 때, close가 완료되었을 때 coroutine을 이어서 진행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coroutine이 여러 개 있다면? 각각을 그때그때 이어서 실행하면 되니까 자연스럽게 동시성 구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coroutine 방식에서는 "비협조적인" 코드를 강제로 context switch시키지 않으므로 모든 코드가 coroutine을 염두에 두고 작성되어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있다.</p>
<p>그렇다면 coroutine을 실제로 프로그래밍에 사용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첫번째는 함수를 중간에 "멈출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적 지원이 필요하고, 두번째로는 기존의 blocking call들이 coroutine scheduler에게 완료 통지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첫번째 조건의 사례로는 Python에서는 generator delegation이라고도 불리우는 <a href="http://docs.python.org/3/whatsnew/3.3.html#pep-380">yield from 명령어</a>를 통해 가능하며 C#에서는 <a href="http://msdn.microsoft.com/ko-kr/library/hh156528.aspx">await 키워드</a>가 같은 역할을 한다. Java나 C++처럼 언어적인 지원이 없는 경우 future 패턴과 callback을 통해 비슷한 구현이 가능하지만 coroutine에서 block하는 지점이 많아질수록 중첩된 callback을 많이 만들어야 하므로 코드를 깔끔하게 유지하기 어렵다. 두번째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기존의 socket, threading, queue 등의 blocking call을 제공하는 라이브러리가 모두 통째로 coroutine을 지원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Python에서는 그래서 <a href="http://www.gevent.org/intro.html">gevent</a>와 같은 3rd party library들이 표준 라이브러리를 런타임에 구현체를 바꿔치기하는 monkey-patch 방식을 이용해서 구현된 경우가 많았다.</p>
<p>그런데, Python 3.4에서는 드디어 이러한 coroutine 지원 라이브러리가 표준 라이브러리에 포함된 것이다. asyncio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최초 API는 Python 창시자 Guido van Rossum이 2012년 12월 <a href="http://legacy.python.org/dev/peps/pep-3156/">PEP-3156</a>을 통해 제안했고 reference implementation으로 <a href="https://code.google.com/p/tulip/">Tulip 프로젝트</a>를 진행하다가 이제 완성도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는지 표준 라이브러리에 그대로 집어넣었다. 기존에 tulip으로 작성된 코드가 있다면 "tulip" 패키지 이름을 "asyncio"로 치환하기만 해도 코드가 동작할 것이다. 특히 Python 3.3에서 추가된 <code>yield from</code> 구문을 이용하면 C#의 <code>await</code> 키워드와 거의 똑같은 느낌으로 함수 호출을 비동기적으로 한다고 편리하게 명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code>time.sleep(1)</code>은 <code>yield from asyncio.sleep(1)</code>로 바뀌는 식이다.</p>
<p>나름 Python 얼리어답터라고 자부하는 내가 이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 동안 삽질해서 나온 결과물이 <a href="https://github.com/achimnol/mcbot/blob/python34-asyncio/bot.py#L230">asyncio 기반의 Minecraft-IRC 중계 봇</a>! 원래 구현은 bug-prone한 단일 루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걸 완전히 갈아엎어서 IRC 통신, Minecraft 통신, tick 타이머 요렇게 3개의 루프로 나누고 각 루프를 coroutine으로 만들었더니 마치 single thread 프로그래밍하는 것처럼 직관적인 코드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성을 보장하는 아름다운 코드가 되었다. Python의 asyncio 패키지는 나중에 stdout과 network/cpu를 동시 모니터링하는 실험스크립트 작성에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p>
<p>아무튼 이렇게 Python 3로 넘어올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다들 넘어오시라. ㅋㅋㅋㅋㅋㅋ (사실 Python 2.x용으로 Tulip을 backport한 <a href="http://trollius.readthedocs.org/#differences-between-trollius-and-tulip">Trollius 프로젝트</a>가 있기는 하다... -_-)</p>
<p>※ update 3/10: 일부 문장 흐름 및 내용 연결 자연스럽게 함.</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Python-34-asyncio?commentInput=true#entry1089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4주 기초군사훈련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4%EC%A3%BC-%EA%B8%B0%EC%B4%88%EA%B5%B0%EC%82%AC%ED%9B%88%EB%A0%A82014-01-15T14:17:13+09:002014-01-14T23:23:10+09:00<p>오랜만에 쓰는 블로그 글이다. 이제는 한 달에 한번도 아니고 1년에 한번 쓰는 블로그가 된 것 같다. -_-; 첫 full paper 준비하느라 정신 없는 여름·가을을 보내고 연말연시는 전문연구요원으로서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4주 기초군사훈련(교육소집)을 다녀왔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현역이든 보충역이든 다들 한번씩 겪어본다는 점에서 신선한 소재는 아니지만,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부분 중 하나이기에 이렇게 글로 후기를 남기고자 한다. 현역들보다는 보충역으로 훈련소에 입소하는 사람들에겐 경험담으로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p>
<p>요즘 TV에서 "진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군대 생활과 훈련 과정을 나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역시 실제로 가서 겪어보고 나니 정말 그 느낌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보니까 훈련소는 1~2일 정도로, 자대 생활은 일주일 정도로 압축해서 하는 것 같은데 실제 느끼는 애로점들을 잘 표현했다. 특히 30~40대의 연예인들이라는 점에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전문연구요원들과 비슷하게 육체적으로 힘들어하는 게 더 와닿는다고나 할까;; 사실 훈련소 들어가기 전에는 바빠서 그런 TV 프로그램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제대로 본 적도 없었는데 이번에 쉬면서 몇개 찾아보니 정말 내가 지나갔던 입소대대도 나오고 훈련소 생활관 모습도 나오고 해서 '아... 나도 저기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ㅋㅋ</p>
<p>우선 '군대에 있으면 시간이 더럽게 안 간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텐데, 실제로 가보면 정말 그렇다. 뭔가 바쁘게 많은 일을 한 것 같은데 아직도 오전 9시가 안 되었다든지... 전문연구요원이라면 회사를 다니든 대학원에 있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출퇴근을 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특히 더 심하게 느낄 것이라 생각된다. 대개 5분 단위로 모든 행동을 해야 하는데 각각의 5분 10분이 굉장히 밀도가 높다. 아침 기상 후 침구류 정리와 전투복 환복 후 점호장 집합까지 통상 10분의 시간이 주어지고 연병장에 모여 점호 보고, 애국가 제창, 복무신조 제창, 조국기도문 낭독, 몸풀기 체조, 국군도수체조, 뜀걸음, 하루 일과 공지까지 다 하면 대략 40분, 아침식사에 30분 정도 걸리고 생활관에 복귀하면 소대별로 10분씩 세면 시간이 주어진 후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나는 겨울에 다녀왔기 때문에 아침식사 끝내고 나올 때마다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p>
<p>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정말 이렇게 깨알같이 아껴서 번 시간을 한꺼번에 왕창 갖다버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부대에서 멀리 떨어진(1시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교장(훈련장)에서 교육이 진행되는 날은 30분 일찍 기상해서 점호도 생략하고 훈련병들 다그쳐가며 빨리 준비시킨 다음 평소보다 1시간 일찍 행군을 시작하는데 막상 교장에 도착한 다음에는 1~2시간씩 아무것도 안 하고 대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행군은 그날 같은 교장을 사용하는 모든 부대가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데, 교장을 그 모든 부대가 동시에 다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훈련 진행하는 동안 다른 부대는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겨울이라 행군하면서 땀까지 날 정도로 걸은 다음에 가만히 앉아서/서서 대기하면 그대로 땀이 식으면서 엄청 춥다는 것. -_-; 이럴 때 핫팩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가끔 소대장이 일명 '방한체조'라는 걸 시키기도 하는데 이걸 하면 확실히 더워지긴 하지만 당연히 그만큼 몸도 힘들다. 겨울에 훈련소 가는 사람들은 소대장이 '춥냐?'고 물어봤을 때 다들 덜덜 떨면서도 '아닙니다!'라고 우렁차게 대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ㅋㅋㅋ</p>
<p>전체적인 일정은 아마 매 기수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큰 틀은 비슷할 것이다. 첫 3일은 동화기간<sup id="fnref:동화기간"><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4%EC%A3%BC-%EA%B8%B0%EC%B4%88%EA%B5%B0%EC%82%AC%ED%9B%88%EB%A0%A8#fn:동화기간" rel="footnote">1</a></sup>이라고 해서 생활제식(바른걸음, 큰걸음, etc.)과 각종 상황별 경례요령 등<sup id="fnref:제식"><a href="#fn:제식" rel="footnote">2</a></sup>을 중점적으로 교육하면서 피복·전투화 사이즈 맞추기, 파상풍·뇌수막염·독감 예방접종, 각종 설문서·신상정보 서류 작성, 집으로 보내는 편지 작성 등등 정신없는 일정이 진행된다. 특히 예방접종 3가지를 이틀 동안 한꺼번에 맞기 때문에 몸의 면역체계까지 활성화되면서 안 그래도 생소한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와중에 더욱 부담이 가중된다. 내 경우 이틀 정도 두통을 앓았다. 동화기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훈련이 시작되는데 1~2주차에는 개인화기(소총) 교육이 중심이 되고 첫번째 15km 주간 행군이 일종의 milestone 역할을 한다. 훈련소에서 모든 일정의 꽃은 바로 기록사격으로, 이때 20발의 실탄 사격 중 몇 발을 명중시키느냐에 따라 '개인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만발자는 보통 기수 별로 한두 명밖에 안 나오는데 전화 포상을 비롯하여 이후에도 여러 차례 칭찬받는 경험을 할 수 있다. 3~4주차에는 수류탄과 화생방, 각개전투 훈련과 20km 지속행군이 이어진다. 매일같이 육체적인 훈련을 하는 건 아니고, 토요일·공휴일은 꼬박꼬박 쉬고(물론 사회에서처럼 정말 쉰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지만) 중간중간 정신교육<sup id="fnref:정신교육"><a href="#fn:정신교육" rel="footnote">3</a></sup>만 있는 날도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쉬어가면서 하게끔 되어있다.</p>
<p>나는 연말연시에 다녀왔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와 신정을 모두 훈련소에서 보냈는데<sup id="fnref:입소시기"><a href="#fn:입소시기" rel="footnote">4</a></sup>, 덕분에 종교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지만 물집 부상과 목감기로 주말에 의무대 순환진료를 이용하면서 4대 종교를 모두 가보지는 못했다. ㅠㅠ 천주교 신자이니만큼 그래도 대축일인 성탄절과 성모마리아 대축일(신정) 종교행사는 모두 참석했는데, 천주교는 바깥 사회에서 미사 드리는 것과 거의 똑같다. 그래서 조용한 분위기에 잠시나마 자고 싶은 사람들이 천주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천주교 외에 가본 곳은 불교인데, '불교나이트'<sup id="fnref:불교나이트"><a href="#fn:불교나이트" rel="footnote">5</a></sup>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더라. '가릉빈가 불공'<sup id="fnref:가릉빈가"><a href="#fn:가릉빈가" rel="footnote">6</a></sup>이란 제목으로 4인조 여성그룹(대학생 쯤 되어보이는...)이 나와서 가요를 부르며 춤을 추는데 이 춤이 상당히 적나라해서 가슴을 확 열어제낀다거나 엉덩이들 흔들어준다거나.... 불당은 앞으로 뛰쳐나가는 훈련병들로 거의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전문연구요원들은 다들 나이가 있어서인지(...) 점잖게(?) 앉아서 즐기는데 공익이나 산업기능요원들로 이뤄진 중대들만해도 장난 아니다. 현역들은 거의 눈이 뒤집어진다. 불교가 나이트라면 기독교는 클럽...이라고 하던데 여기도 만만치 않은 모양. 기회가 되면 역시 가보는 것이 좋을 듯.</p>
<p>종교행사를 가지 않거나 종교행사 사이의 비는 주말 시간은 원칙적으로는 '개인정비', 즉 자유시간이다. 물론 이 시간에도 누워있거나 벽에 기대는 것은 '군기가 풀어진' 것으로 간주되어 금지되고, 바른자세로 앉아서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전투복의 뜯어진 부분을 바느질한다거나 혹은 멍때리고 있거나(...) 하는 행동만 허용된다. 3주차쯤 넘어가면 화장실이나 세면장 이용을 눈치껏 해도 되지만 초반에는 그것도 명시적인 전체 통제가 없으면 금지된다. (그래서 쉬는 날이라도 쉬는 것 같은 느낌이 안 든다. ㅠㅠ) 그러나 군대에서는 병사들이 할일 없이 노는 모습을 절대 못 보는 악취미(?)가 있어서, 하다못해 청소라도 시키기 때문에 사실 여유있게 노닥거릴만한 시간이 별로 없다. 첫번째 주말은 대부분 전투복에 붙일 임시이름표와 팀 표식을 가뜸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데, 우리 기수는 그 이후에도 침낭에 찍찍이(암놈)를 가뜸하고 그 찍찍이에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덧붙임천에 찍찍이(숫놈)를 가뜸하느라 2번의 주말과 2번의 휴일 시간 대부분을 보내야 했다. 이름표 가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난도의 바느질이었는데, 찍찍이에는 다른 물건에 쉽게 붙일 수 있도록 끈끈한 접착제가 묻어있어 바늘이 한번 통과하면 접착제가 덩어리져 바늘에 달라붙는 바람에 매번 이걸 제거해야 실이 꼬이는 걸 막을 수 있었고 침낭 자체도 꽤 두껍기 때문에 이를 뚫고 바느질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 우리는 골무를 가져왔어야 하는 것이다. orz) 바늘이 휘거나 부러지는 일도 많았다. 사람들이 하도 짜증이 나니까 분대장들에게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물었는데 나중에 돌아온 답변은 전 기수에서 누군가 설문서에 침낭 머리 주변이 너무 쉽게 더러워지는 것 같다고 건의한 것이 육군훈련소장님에게 알려져서 훈련소장이 직접 내린 명령이라 분대장들 포함 훈련소 전체 5만여명의 병사가 똑같은 삽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_-; 이것이 군대에서 투스타의 위력... 게다가 우리는 겨울 군번이라 들어온 인원수가 적어서 존재하지 않는 4소대의 침낭까지 모두 가뜸해야 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전화포상까지 걸어가면서 가뜸을 진행했다. 나는 귀찮아서 안 했지만 임신 사실을 훈련소 들어와서 알게 된 모 분대원님이나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3분짜리 전화포상을 얻기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적게는 3시간 많게는 6시간씩 바느질을 했다. 아아....</p>
<p>가기 전에는 몰랐는데 군대도 나름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고 느꼈다. 모든 훈련에는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항상 앰뷸런스가 따라가는데 발·다리를 다쳐 걷기 힘든 훈련병들을 태워다주기도 하고 응급상황 발생 시 바로 병원으로 후송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그리고 만에 하나 사고가 나더라도 빠른 초동 대처가 가능하도록 상당히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의무대의 경우 단 2명의 군의관이 매일 5~6개 중대 인원(전체로는 800명 정도, 그 중에 아픈 사람들만 모아도 족히 100명은 넘을 것이다)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상세한 진료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이 노력하는 모습이었고 증상에 따라 내복약, 가글, 파스, 소독, 입실(수액 맞으며 누워서 휴식) 등 다양한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원래 지병이 있는 경우--특히 허리디스크 같은--무리해서 증상이 악화되더라도 수술과 같은 대규모 처치는 곤란하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몸을 사리는 것이 중요하다. 현역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우리같은 보충역들은 기본적으로 훈련 강도도 낮고 거기에 차등제라는 제도가 있어서 몸이 안 좋은 사람들은 더 낮은 강도로 훈련할 수 있게끔 해주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하면 무리없이 수료할 수 있을 것이다.<sup id="fnref:훈련강도"><a href="#fn:훈련강도" rel="footnote">7</a></sup> 물론 차등제로 지나치게 많은 인원이 빠진다 싶으면 꾀병으로 간주되어 소대장이 빡쳐서(...) 차등제가 본대보다 더 빡시게 훈련을 받는 케이스...도 있을 수 있다. 우리도 한번은 그런 적이 있는데 나는 어느 소대장이 차등제 인원 담당하나 보고 본대로 빠져서 그 케이스를 잘 피했다; (역시 군대는 눈치가 중요하다!) 마지막 훈련(우리는 20km 행군)이 끝나고 부대에 복귀할 때는 군악대가 나와서 음악을 연주해주는데 이때는 진짜 감동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4주 간의 훈련이 드디어 끝난다는 기분에 군악대의 북소리에 맞추어 행군으로 지쳤던 발이 갑자기 날아갈 듯 걸어지는 경험... ㅋㅋ 누가 처음 기획했는지는 몰라도 마지막 훈련에 군악대가 나오는 건 정말 좋았다.</p>
<p>짧은 4주간의 군대 생활이지만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으라면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겨울군번이라 인원수가 적었던 데다 소대별 불침번 인원이 2명에서 3명으로 늘어나 거의 매일(3일에 2번) 불침번을 서야 했기 때문에 밤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감기 같은 게 걸려도 바깥 사회에서는 하루이틀 푹 쉬면 금방 나을 텐데 이 안에서는 '푹 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감기 걸린 채로 계속 버텨야 한다는 점이었다. 퇴소 후에도 집에서 쉬는 며칠 동안은 새벽에 자꾸 잠을 설쳐서 정말 개운하게 잠들지 못했고, 한 4일쯤 지나서야 제대로 잠을 자기 시작한 것 같다. 1주차에 전투화 사이즈 잘못 골랐다가 발에 물집 잡히고(양쪽 발뒤꿈치에 500원 짜리 크기 1개 + 2개) 바로 벗겨져서 거의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다행히 새 전투화를 사이즈에 맞게 보급받고 나서 3~4일 동안 짬날 때마다 밟아주고 휘어주고 해서 길을 잘 들여놓으니 뒤에 가서는 상당히 편했다. 남들 행군하고 물집으로 고생할 때 오히려 나는 멀쩡...) 이게 좀 나아서 훈련 받을 만하다 싶으니 목감기에 걸려서 38도 고열 찍고 의무대 하루 입실한 다음(오래 입실시켜주면 좋을 텐데 열 조금만 내리면 바로 나가라고 한다-_-) 일주일 정도 계속 37.5도를 넘나들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로 있어야 했다. 퇴소 후 병원 가보니 후두염이라고 하더라. 어쨌든 군대에서는 식사든 뭐든 다 (오와 열을 맞춰서 제식을 하면서) 걸어다녀야 하기에 다른 것보다도 발·다리가 건강한 게 제일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은 겨울이라 추위 때문에 고생하겠다고 걱정을 많이 해줬는데, 다행히 내가 가있는 한달은 눈도 많이 오지 않았고(딱 2번 눈쓸었음) 한파도 2~3일 잠깐 찾아온 것 외에는 대체로 포근한 편이었기 때문에 추위로 고생한 기억은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는 잘 씻거나 빨래하기 어려운 환경임을 감안할 때 한여름보다는 겨울에 가는 게 낫다고 생각된다. 일단 냄새는 별로 안 나니까.</p>
<p>중간중간 종교행사나 교장 행군 중에 현역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확실히 어리더라. ㅠㅠ '군인 아저씨'라는 표현이 영 어색할 정도. 이건 차라리 전문연구요원들한테나 어울릴 만한 표현이다. 우리는 경량화나 단독군장만 하고도 교장 이동 중 언덕배기 만나면 헉헉대는데 현역들은 완전군장 매고도 신나서 뛰어댕기는 모습을 보며 같은 20대여도 초반과 후반은 많은 차이가 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21살쯤에 형과 유럽배낭여행을 가면서 10~15kg 짜리 배낭을 매고 몇시간씩 길거리를 잘도 돌아다녔다. 한편으로는 그 어린 친구들이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해보기도 전에 먼저 군대문화를 접한다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고, 나 또한 초중고 시절 각종 아침조회나 수련회 등을 통해 접했던 군대문화의 일부가 진짜 군대에 왔을 때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군대라는 조직은 계속 필요하겠지만 언제쯤 우리나라도 모병제로 전환할 수 있을지...</p>
<p>마지막으로 4주 훈련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알짜배기 준비물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들 물품은 어느 대대·중대로 가더라도 대부분 반입이 허용될 것이다. 약, 비타민, 초코렛 등의 음식물은 부대에 따라 허용 범위가 차이가 있으며 내 경우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p>
<ul>
<li>물티슈 : 전투화 닦을 때 물티슈로 먼저 닦은 다음 구두약을 바르면 훨씬 깨끗하다. 각종 장구류 부분 세척 시에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분대장(조교)들도 빌려쓰는 경우가 있다.</li>
<li>두루마리 휴지 : 기본으로 2개가 보급되는데 이것만으로 한달을 버티기엔 부족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초반에 1개를 잃어버려서(ㅠㅠ) 1개만으로 간신히 버텼다.; 물론 주변 동료 중에 휴지를 가져온 사람이 있어 빌려쓸 수 있었다.</li>
<li>핫팩 : 겨울이라면 필수품! 막상 훈련할 때는 별로 필요하지 않은데 대기시간이 긴 경우나 수료식 직전에 방한도구를 모두 반납하고 전투복만으로 추위를 버텨야 하는 경우 요긴하다. 속옷에 부착할 수 있는 것이 편리하고, 장갑 속에 넣을 수 있는 미니 핫팩도 여러 개 있으면 좋다.</li>
<li>면봉 : 총기수입(청소) 시 매우 유용하다.</li>
<li>일회용 비닐장갑 다수 : 역시 총기수입 시 손에 탄매나 기름이 묻지 않게 하는 데 유용하다.</li>
<li>실과 골무 : 이런저런 일로 바느질하는 일이 꽤 많은데 바늘은 위험물이라 못 가져가지만 실은 보급나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종종 있어 추가로 가져가면 편하다. 우리 기수처럼 침낭 가뜸이라도 하는 경우엔 골무가 매우 절실할 것이다. ㅠㅠ</li>
<li>대량의 편지지와 우표 : 나는 바깥으로 전화하거나 편지하는 걸 애초에 안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가져가지 않았지만, 결혼한 사람들이나 애인이 있는 경우 절실할 것이다. 우표를 깜빡했다면 첫번째 편지 보낼 때 답장으로 넣어달라고 해서 얻는 경우도 있으나, 사회->군대로 오는 편지는 빨리 와도 군대->사회로 가는 편지가 통상 일주일 이상 걸리기 때문에 latency를 생각하면 역시 미리 준비해가는 게 좋다.</li>
<li>여분의 두꺼운 양말 : 행군할 때 보급받는 양말 안쪽에 추가로 신으면 좋고, 어깨 견장에 양말을 끼워 군장 매는 고통을 줄이는 용도로 쓸 수 있다. 또한 무릎 보호패드 대용도 가능.</li>
<li>깔창 : 이건 좀 애매한데 없는 것보다는 일단 준비해보는 것이 좋을 듯. 참고로 전투화에 사제 깔창을 넣으면 사이즈를 한 치수 더 큰 걸 신어야 맞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li>
<li>무릎·팔꿈치 보호패드 : 오로지 각개전투 때만 필요하다. 포복하고 나면 무릎에 시퍼런 멍이 드는 걸 볼 수 있다. 다만 하루종일 차고 있으려면 너무 빡빡한 것보다는 조금 여유있는 사이즈로 가져가는 게 좋겠다. 나는 사이즈가 너무 답답해서 그냥 양말을 칭칭 묶어서 썼는데 이것도 효과가 좋았다.</li>
</ul>
<div class="footnotes">
<hr />
<ol>
<li id="fn:동화기간">
<p>현역들은 입소대대에서 2~3일 가량 시간을 보내며 보급품 지급 후 교육대대로 이동하지만 우리같은 보충역들은 입소 첫날 바로 교육대대로 이동해서 저녁 식사로 일정을 시작하게 된다. 전투복·내복 등 대부분의 물품은 교육대대에서 가지고 있는 중고품을 활용하고 수건, 속옷·양말, 휴지, 칫솔, 면도기 정도만 새 보급품으로 지급된다. 중간에 전투복 사이즈를 조사해서 2주차에 새 전투화와 전투복(디지털 신형)을 받지만 수료식 때 깔끔하게 입기 위해 끝날 때까지 훈련은 모두 중고 개구리 전투복으로만 진행한다. <a href="#fnref:동화기간" rev="footnote">↩</a></p>
</li>
<li id="fn:제식">
<p>우리 기수에서는 제식훈련이 상당히 많이 강조되었고 다음 기수에서는 제식훈련에 배정되는 시간도 늘어난다는 얘기가 있었다. 듣기로는 2스타가 4스타 앞에서 경례 좀 잘못했다가 그 자리에서 100번 반복 연습을 당한 뒤로(...) 군 전체에 제식 군기가 매우 강조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2스타면 육군훈련소장과 동일한 '장군' 계급이다. 부대 곳곳에 '경례는 군인의 멋!'이라든지 '경례는 씩씩하고 당당하게'와 같은 표어들이 붙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수료식날까지도 밥 먹으러 이동할 땐 반드시 큰걸음과 군가제창을 해야 했다. <a href="#fnref:제식" rev="footnote">↩</a></p>
</li>
<li id="fn:정신교육">
<p>국방부 정훈장교가 와서 대적관·안보관에 관한 교육을 하는데 북한의 실상, 왜 북한이 우리의 적인지, 종북세력의 정의, 베트남의 공산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왜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운(=우리가 지켜야 하는) 나라인지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바깥 사회에서는 '종북'이라는 게 지나치게 광범위한 프레임이자 일부 보수세력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통째 매도하는 용어로 종종 사용되는 바람에 그 정의가 흐려진 감이 있지만 국방부 정신교육에서는 나름 선명하게 정의하고 있어서 큰 반감이 들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내 평소 생각과 다른 부분이 없었는데 단지 '강조'를 많이 한다는 정도. 정신교육 시간에 다들 많이 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국방부에서도 그 점을 염려했는지 정훈장교들이 대체로 말도 잘하고 적절한 유머와 개그도 섞는 등 말빨이 좋아서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북한 실상과 관련해서는 실제 탈북자 출신의 연사가 와서 실감나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뜬금없이 걸그룹 아이돌 동영상이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 ㅋㅋ <a href="#fnref:정신교육" rev="footnote">↩</a></p>
</li>
<li id="fn:입소시기">
<p>9~10월을 끼고 훈련소에 들어가면 경우에 따라 추석 연휴, 국군의 날, 개천절들이 모두 황금 연휴로 이어져 훈련보다 노는 날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고 하니 날짜 선택하는 사람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대신 평일을 3일 쉬면 훈련소에 있는 날이 하루씩 늘어난다고 하는데, 그렇더라도 노는 날이 너무 많으면 훈련을 생략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꽤 메리트가 있다. <a href="#fnref:입소시기" rev="footnote">↩</a></p>
</li>
<li id="fn:불교나이트">
<p><a href="http://mirror.enha.kr/wiki/%EB%B6%88%EA%B5%90%20%EB%82%98%EC%9D%B4%ED%8A%B8">참고 링크 1 (엔하위키)</a>, <a href="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0073">참고 링크 2 (법보신문)</a> <a href="#fnref:불교나이트" rev="footnote">↩</a></p>
</li>
<li id="fn:가릉빈가">
<p>불교 쪽에서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춤을 잘 추는 상상의 새의 인도식 이름 Kalavinka로부터 중국식으로 음차하여 만들어진 용어라고 한다. <a h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mc9988&logNo=140098512296">참고 링크</a> <a href="#fnref:가릉빈가" rev="footnote">↩</a></p>
</li>
<li id="fn:훈련강도">
<p>현역들은 5주 훈련인데 예를 들어 각개전투 훈련은 실제 각개전투 훈련장에 마련된 숙영지에 텐트를 치고 거기서 2박 3일을 먹고자고 다 하면서 각개전투 훈련을 진행한다. 하지만 우리는 텐트 치는 실습만 한번 해보고 다시 걷은 다음 포복 훈련 잠깐 하다 오는 정도다. 현역들은 포복 자세별로 1시간 이상씩 바닥을 기어다닌다는데 우리는 자세별로 10여 미터 거리를 3~4번 정도 실습해보는 게 전부. 물론 그렇더라도 온 삭신이 쑤시고 무릎에 피멍이 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ㄷㄷ 차등제의 경우 횟수를 줄여준다거나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는 동작은 아예 안 할 수 있게 해주는데, 예를 들어 행군의 경우 차등제A는 단독군장에 행군코스를 매우 느린 속도로 아주 천천히 걷고 차등제B는 단독군장에 연병장을 매우 느린 속도로 걷는 식이다. 본대의 경우 완전군장이나 경령화군장만 허용되었다. (특히 마지막 행군 때는 훈련소장님이 직접 행군을 참관·지도하는 바람에....-_-) <a href="#fnref:훈련강도" rev="footnote">↩</a></p>
</li>
</ol>
</div>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4%EC%A3%BC-%EA%B8%B0%EC%B4%88%EA%B5%B0%EC%82%AC%ED%9B%88%EB%A0%A8?commentInput=true#entry1088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2012년 회고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2012%EB%85%84-%ED%9A%8C%EA%B3%A02013-01-01T03:22:16+09:002013-01-01T03:22:16+09:00<p>한국은 이미 2013년이 되었지만 이번엔 특별히 내가 GMT 시간대에 있는 관계로 이제야 회고 포스팅을 한다. 오늘 저녁에는 건이형 부부와 교수님, MSRC 인턴 친구들과 함께 건이형의 생일파티 겸 New Year's Eve 파티가 있는 관계로 잠시 캠브리지 시내에 들렀다가 스타벅스에 앉아있다.</p>
<p>올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멘붕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2월에 석사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졸업논문을 어쨌거나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건이형과 함께 두달 동안 기숙사를 같이 쓰면서 열혈코딩 달리던 재미로 괜찮았는데, 봄학기 시작하고 수업 몰아듣기 + 조교, APSys 워크샵 논문 제출로 슬슬 정신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여름의 절반은 APSys 워크샵 관련 업무로 정신을 못 차렸고, 후반에 가서야 nShader 논문 좀 쓴다고 끄적끄적했는데 서버관리를 도와줄 사람이 일시적으로 없었던 상황에서 때마침 NSDI 데드라인 앞두고 서버실 에어컨 고장과 메인 서버 하드 사망 등의 여파로 멘붕...</p>
<p>즐거웠던 일은 글로벌박사펠로우십에 선정된 것(나도 기분이 좋았지만 교수님이 그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APSys 워크샵에서 논문을 발표해본 경험과 힘들기는 했지만 APSy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일본여행을 들 수 있겠다. 캠브리지에서의 Microsoft Research 인턴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므로 평가는 생략. 일단 내게는 가을에 이어진 멘붕 끝에 모든 걸 내려놓고(?) 나름대로 잡무를 떠나 연구에만 집중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기간이 되고 있다. MSR의 뛰어난 연구자들과 열심히 일하는 다른 학생들을 보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캠브리지 대학 전산과의 happy hour 행사에 갔다가 APSys로 알게된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APSys 업무로 힘들었던 것에 대한 하나의 작은 보상과도 같은 느낌이었다.</p>
<p>영국 캠브리지라는 새로운 환경에 와있으면서, 교수님과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몇번 있었다. 한국에서 그냥 힘들게 살았으면 오히려 그럴 기회가 없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교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가는 게 나에게도 교수님에게도 좋을지 조금은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또한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내 자신을 바꿔나가야 할지, 또한 내가 박사 연구의 로드맵을 어떻게 잡을지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계속 삽질하고 정신없이 따라가는 데만 바쁘다가,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이제 내가 무엇무엇을 언제언제를 목표로 삼아 어떻게 진행하면 되겠다라는 것이 갑자기 안개가 걷히듯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일이라는 게 막상 하다보면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고 또다시 멘붕과 좌절을 겪게 되겠지만, 지향점이 보이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크니까.</p>
<p>우리 가족에게 있어서도 2012년은 아주 특별한 한 해였다. 부모님의 결혼 30주년이자, 하나뿐인 형제인 인기형이 3월에 결혼했고, 불과 열흘 전에 첫 조카(딸)을 낳았다. 와인 5병을 까고 형 결혼식 다음날 술병이 날 정도로 아버지와 함께 긴긴 밤 술잔을 기울여본 것도 처음이었다. 이렇게 부모님은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었고 형은 아빠가 되었다. 드디어 우리들 다음의 새로운 세대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 또한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된 이후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며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일을 잘 해나가고 계시고, 형도 회사에 들어온 후 발목을 잡고 있던 대학원 졸업논문을 무사히 마무리하는 등 여러모로 기쁜 일이 많았다. 그리고 이 모든 가운데 어머니가 기도의 힘으로 윤활유 역할을 잘 하고 계심은 물론이다. 옛날에는 부모님이 무조건 아끼고 희생하는 그런 모습을 더 많이 발견했다면 이제는 점점 더 본인들의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기쁘다.</p>
<p>내 개인사를 떠나서 내가 관심있는 다른 분야들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잡스가 떠난 애플의 많은 부분이 변화하고 있고(이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방향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페이스북의 IPO는 사실상 실패나 다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8을 출시했고, 때가 좀 늦긴 했어도 모바일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인 버락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고, 한국에서는 제18대 대통령선거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선출되어 최초의 여성대통령 탄생을 앞두고 있다. 여러 이유로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아쉬운 일이 되었지만, 사회이슈와 해결방안이 도마에 올라 그걸 논의하고 민의를 살필 수 있는 자유선거가 있다는 점은 여전히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점점 불안해지는 고용환경과 대기업에 유리한 사회구조는 앞으로도 큰 짐이 될 것이다. 정치문제들이 딱 정해진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한번에 사회를 바꾸기는 어렵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여러 정책들을 보면서 그래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러한 역동성이 꾸준히 관찰된다는 점에서 한국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생각한다.</p>
<p>2013년 한해는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조금 더 성숙하고, 멘붕에 무너지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함께 밝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사람이 행복한 것은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고 그것을 점진적으로 확인할 때라고 한다. 이제는 한발짝 더 앞으로 나아갈 때다.</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2012%EB%85%84-%ED%9A%8C%EA%B3%A0?commentInput=true#entry1086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King's College Christmas Eve Carols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2012-Christmas-Eve2012-12-25T07:01:45+09:002012-12-25T06:02:57+09:00<p>오늘은 아마도 가장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이브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외국에서 보내는 첫 크리스마스인데다 영국 킹스칼리지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에 직접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아래 동영상부터 보시라.</p>
<p><figure style="text-align:center"></p>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www.youtube.com/embed/7HItFqKBAQE"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p><figcaption>2011년도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 녹화 영상 (by CloseLineProjects)</figcaption></figure></p>
<p>오늘 나는 저기서 솔로로 부르는 첫 장면을 불과 10m 앞에서 봤다. 이건 작년 동영상인데, 제대 쪽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가능했던 이유는 이렇다: 동서로 길쭉한 킹스칼리지 채플의 구조에서 제대와 가까운 자리(east side)는 100여석 정도, (화면에는 나오지 않지만) 제대가 가운데쪽에서만 조금 보이도록 가려진 중앙 오르간 벽 뒷편(west side)에는 600석 정도의 자리가 제공된다. 줄선 순서대로 입장하기 때문에 제대 근처에 앉으려면 새벽부터 일찍 줄서야 하는데, 나는 오전 8시 40분에 갔음에도 이미 자리 배정 인원의 거의 끝부분이었다. 그래서 합창단을 직접 보는 건 포기하고 있었는데, <del>위의 작년 동영상과 달리, 올해는 합창단의 입장 성가를 제대 쪽이 아닌 맨 뒤쪽에서 시작하였다!</del> 운 좋게도 맨 첫곡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span style="color:#9b393b">[추가] 나중에 찾아보니 TV용으로는 따로 녹화를 미리 해두고 여기는 좀더 잘 알려진 캐롤들이 들어가는 듯. 오늘 예배 때는 현대적인(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캐롤들이었다. 시작 곡은 같으나 입장 방향과 곡 구성이 다른 것.</span></p>
<p>기다리는 줄에서 우리 일행 뒤에 어떤 아저씨와 그분 아들이 있었다. 교수님이 말을 붙이셔서 함께 이야기하다 알았는데, 그 아들이 얼마 전까지 합창단에 있다가 변성기로 지금은 합창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여기 합창단은 7살부터 들어갈 수 있는데 기숙학교(boarding school)로 학업과 합창연습을 병행하고, 변성기가 오면 합창에서는 빠지지만 학교에는 계속 머물 수 있다고 한다. 그 아이는 합창단 친구들이며 줄선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들이 많은지 인사한다고 계속 왔다갔다 했다. 지금 나와있는 합창단 CD에 그 아이도 참여했다고 하고, 아마 최근의 동영상 등에도 모두 함께 불렀을 듯. 작년쯤인가 한국 소년이 여기 들어갔다고 해서 뉴스에 잠깐 떴던 것 같은데 그 친구도 알고 있었다. (위에 동영상 틀어놓고 글쓰면서 보니까 그 한국학생도 중간중간 나온다. 오늘 본 학생은 동영상에서 한국학생과 마주보는, 제대 방향 바라봤을 때 왼편 첫줄 중간쯤에 안경낀 학생 같은데... 맞나 모르겠다)</p>
<p><figure style="text-align:center"></p>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www.youtube.com/embed/Dvka9Fu4IhE"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p><figcaption>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낮 12시쯤 돌아다니면서 노래하는 한 그룹의 합창단원들. (직찍)</figcaption>
</figure></p>
<p>아래 팁에도 적었지만, 제대와 가까운 안쪽 자리에는 들어가지 못했어도 여전히 소리 울림은 너무 멋있었다. 동영상이나 음악으로만 듣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꼭 이런 '클래시컬'한 음악이 아니더라도 음반도 들어보고 같은 곡의 라이브 공연을 가본 사람들은 아마 그 차이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리고 동영상은 어느 정도 편집된 거라 같이 부르는 소리보다 합창단 소리 위주로 들려주는 것 같은데, 실제로 사람들이 다함께 부를 때 채플 전체가 울리는 그 느낌은 가서 불러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p>
<p>노래의 장르가 이 소년합창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그래도 동영상의 몇몇 곡은 실제로 현대식 버전으로 부르기도 함), 나름대로 성당에서 청년성가대로 활동하고 이런저런 특송이나 공연에 참여해본 나로서는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다. 노래를 듣는 것도 멋지지만, 실제로 부를 때 자신의 음역 파트에서 소리가 맞아들어가면서 스스로 흡입될 때의 그 희열 또한 멋진 경험이기 때문이다. 첫 곡의 시작 솔로를 맡은 아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꼈을 때, 그리고 다함께 부르기 시작하면서 각 파트가 제 자리를 찾고 목소리가 안정됨을 느꼈을 때 그 부르는 아이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 많은 시간 연습하면서 힘들기도 하겠지만, 합창을 제대로 해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아닐런지. 솔로로 연주하거나 노래 부를 때와는 다른, 합창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다른 부분들이 분명 있다. 가족들이나 성가대 사람들과도 함께 보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그 점은 아쉬울 뿐이다.</p>
<p>사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하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도 있고 이번엔 좀 조용히 쉬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해서 캠브리지에 머물고 있는데, 다른 인턴 친구들은 다들 햇빛의 땅(...) 캘리포니아로 가족들 만나러 유럽 대륙으로 떠나서 조금 썰렁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예배 참석 한방으로 그 모든 썰렁함을 날려버리고 합창에 대핸 여운이 꽤 오래 갈 것 같다.</p>
<p><span style="color:#53324d"><strong>참석자 Tips</strong></span></p>
<ul>
<li>기본 정보 : 예배시간은 오후 3시부터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 입장은 오후 1시반부터
<ul>
<li>입장료는 없으나 끝나고 채플 관리·보존 비용 명목으로 자유 기부 형식의 헌금(retiring collection)을 받는다.</li>
<li>예배 진행 순서는 시작 성가, 간단한 시작 강론과 주기도문 낭송, 예수님 탄생과 관련된 9개의 성경구절 낭독(기독교 신자라면 다들 알 만한 그것들)과 각 구절의 내용을 표현하는 캐롤들(구절별로 1~2개), 간단한 마침기도와 마침성가 다 함께 부르기로 이어진다.</li>
</ul></li>
<li>채플 내부 입장이 가능하려면 일단 오전 9시까지는 줄서야 한다. 이것이 최소 조건. 다만... 간혹 아주 늦게 온 경우라도 일단은 입장 불가라고 했다가 실제 입장시킨 후 자리가 있으면 30여명 정도는 더 들여보내주는 경우가 있다. 오늘 미국서 오신 교수님 일행 중에 비행 시차 때문에 늦게 일어나신 분들이 있었는데 다행히 이런 방법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ul>
<li>줄 설 때 있으면 좋은 것들 : 따뜻한 옷, 크고 튼튼한 우산(영국은 겨울에 비가 자주 온다), 접이식 의자, 보온병에 담은 따뜻한 음료(차 등), 1명 이상의 일행(화장실 다녀오거나 중간에 점심 먹으러 왔다갔다 할 때 자리 맡고 있을 수 있음), 요깃거리가 될 수 있는 초코렛바, 긴 시간 기다리기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야기거리나 읽을거리 등. 앞뒤 사람들하고 말 붙여서 얘기하는 것도 좋다.</li>
<li>영국은 줄서는 문화가 잘 정착된 곳이다. 일행이 여러 명인데 1명만 와서 자리 맡아놓고 끼어들고 이런 건 아무래도 사람들이 안 좋아하고 안내문에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써있다. 하지만 2~3명 와있고 1명 정도 늦어서 합류하는 정도는 별 문제 없는 듯. (사실 우리가 줄의 끝부분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ㅋㅋ)</li>
<li>킹스칼리지 내에 카페와 화장실은 잘 마련되어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됨. 접이식 의자가 없다면 일행 보고 자리 맡게 해놓고 돌아가면서 카페 같은 데서 쉬다 와도 된다. (처음 줄서러 들어올 때 나눠주는 안내문 종이가 일종의 티켓 역할을 하므로 외부로 드나들 때는 이걸 보여줘야 한다.) 다만 입장시간이 가까워오면 여자화장실 줄이 매우 길어지므로 여성분들은 미리미리 일을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입장 후(특히 예배 시작 후)에는 화장실에 갈 수 없다.</li>
</ul></li>
<li>합창단이나 예배 진행이 보이지 않는 오르간 뒷편 자리(west side)에 앉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여기서는 아예 뒤쪽 자리에 앉는 게 소리 울림을 듣기에는 더 좋다. 교수님이 합창단 공연을 보러 오신 적이 있었는데 west side 앞쪽 자리에 앉았더니 소리가 잘 안들리더라 하는 말씀을 하신 걸 보면 말이다. 성경 낭독은 잘 들리지 않지만 팜플렛이 제공되므로 따라가는 데는 문제 없고, 노래는 아주 잘 들리니 걱정 안 해도 됨. 그리고 내가 전에 토요예배에서 east side에 앉아본 바로는 마주보는 자리 배치 때문에 제대 쪽에 앉는다고 딱히 합창단을 직접 보기 편한 것도 아니다.</li>
<li>예배는 영국 전역에 BBC 라디오로 생중계된다. 기침하면 다 들린다고 함... 곡 중간에 기침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고 곡 끝난 후나 성경낭독 타이밍에 기침하는 사람들은 좀 있었다. 집중해서 듣기 굉장히 좋다.</li>
<li>시작 곡은 항상 같은 것 같지만, 중간중간 부르는 캐롤들은 매년 바뀐다. 오늘 내가 들은 캐롤들도 위의 동영상과는 많이 달랐다. 또한 시작 곡의 3~6절은 모든 사람이 함께 따라부르게 되어있었다. (동영상처럼 1절은 솔로, 2절은 합창단만 부름) 같이 부르는 것 또한 굉장한 경험이다.</li>
</ul>
<p>ps. 페이스북에도 적었지만, 이거 함께 보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줄서서 말동무하며 기다려주신 교수님과 교수님 사촌동생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D</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2012-Christmas-Eve?commentInput=true#entry1085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Microsoft Research Cambridge 첫인상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first-impressions-for-MSRC2012-11-28T09:03:17+09:002012-11-28T09:03:17+09:00<p>요즘 블로그에 글이 뜸했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제목의 그곳에 연구인턴을 와있다. 이제 도착한 지 6일이 되었는데, 간단한 소회를 남겨본다.</p>
<p>먼저 MSR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인상을 들면, 제대로 개밥 먹는 회사라는 점이다. 운영체제, 개발도구, 업무용 소프트웨어(사내 메신저와 오피스, 이를 통합관리하는 서버까지)를 모두 자사 제품으로만 쓸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Microsoft 말고는 Apple 정도만 가능해보인다. Google도 그 능력 면에서는 만만치 않겠지만 오픈소스에 많은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자사 제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a href="http://lync.microsoft.com/ko-kr/Pages/default.aspx">Lync</a>라는 사내 메신저 프로그램은 아웃룩 add-in으로 붙어서 메일 송수신자들의 상태가 바로 보인다거나 id/name card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편하다. 심지어 책상 위 전화기하고도 연동되어있다.</p>
<p>기존 연구자들은 윈도7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새로 들어와서 그런지 워크스테이션에 윈도8이 설치되어 있었다. 직접 만져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이건 아직 좋은지 나쁜지 좀 모호하다. 뭐 이미 정식 발표된 제품이니 윈도7과 어떻게 다른지는 다들 알 거라 생각하고... 회사에서 준 워크스테이션 성능이 좋은 탓도 있겠지만, UI를 단순화하면서 많이 가벼워지고 반응속도가 빨라진 것은 좋다. (그냥 컴퓨터 성능이 좋아서 빠른 것과는 다른 느낌) 하지만 별로 친절하지 않은 abrupt한 UI 변화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도 동시에 든다는 게 문제. 특히 어려웠던 점은 기본 내장된(드디어!) PDF 리더 앱에서 인쇄하는 방법. 인쇄 메뉴나 버튼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마우스른 화면 오른쪽에 갖다대면 나오는 Charms bar의 Devices에 들어가서 프린터를 선택하면 그제야 인쇄 UI가 뜬다. 난 처음에 Charms bar가 시스템 맥락으로만 쓰는 건 줄 알았는데 쓰다보니 현재 foreground에 있는 앱의 맥락에 따라 내용이나 동작이 바뀔 수 있는 거였다. 검색 기능도 마찬가지.</p>
<p>MS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과는 반대로, 특허나 지적재산권에 굉장히 예민한 동네라 그런지, 회사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3rd party 소프트웨어에 대한 규정은 매우 까다롭다. 개인용 라이선스 소프트웨어를 깔면 안 된다 정도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프리웨어도 맘대로 설치하면 안 되고 오픈소스도 내부 검토를 거쳐 승인된 것만, 그것도 승인 당시 버전의 binary installer로만 사용이 가능하다. 실제로 모니터링해서 차단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소스코드도 열어보면 안된다고 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렇게 제한해도 회사 운영이나 연구가 충분히 가능할 만큼 기본적으로 자사 제품 라인업이 탄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오픈소스와 친하다는 Google조차도, 텍스트큐브닷컴 파일첨부 플래시 컴포넌트의 업데이트된 소스코드를 오픈소스 버전으로 가져오기까지 법무팀 검토 등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 몇 달이 걸렸던 걸 보면, 그럴 만하다 싶기는 하다. 옛날에는 대표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설치하고자 물어봤던 게 Skype라고 하는데, IT 담당자 왈 '이젠 우리가 샀으니 얼마든지 깔아도 돼요~' 라고.; ㅋㅋ</p>
<p>연구소로서의 MSR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매우 좋았다. 오리엔테이션 가장 처음에 알려주는 내용이 건물의 비상구와 fire alarm 사용법, 화재 시 탈출 요령, first aid room에 대한 정보인데 확실히 얘네가 안전이나 건강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쓴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서버, 네트워크, 개인 워크스테이션 등의 장비 관리를 전담하는 연구소 내부 팀이 따로 있고 Microsoft 전사적으로도 Redmond 본사에서 관리하는 팀이 있어 연구자들이 잡다한 OS 설치부터 백업에 이르기까지 인프라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물론 경우에 따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도 내부 절차 때문에 오히려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래서 MSR 연구소에는 전담 팀이 따로 있는 거라고 얘기해주더라. 아무래도 연구내용에 따라 좀더 다양하고 예외적인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구성이 필요할 테니까. 전반적으로 다른 거 걱정하지 않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잘 서포트해준다는 느낌이다.</p>
<p>마지막으로... 케임브리지에 대한 인상이다. 일단 높은 건물이 거의 없고(고딕양식 교회·성당 몇 개 빼고) 공원이 많아 시야가 트여 있는 점은 좋다. 하지만 날씨는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최악. 비가 매우 잦다. (다행히 한국처럼 세차게 내리는 비는 아니어서 자전거 타는 건 가능. 안경에 물방울 묻는 게 좀 귀찮다.) 낮 길이도 짧아서 오후 4시면 해가 진다. (그래도 스웨덴보다는 조금 낫다는 사실에 위로를. ㅋㅋ) 조용한 동네이긴 한데 생각보다 자동차가 많이 다녀서 아주 조용하지는 않다. 오히려 북적북적한 관광명소인 King's college 주변 시내 중심가는 pedestrian zone이라 상대적으로 나은 것 같고 실제 사람들의 생활권은 자동차들이 제법 많이 다닌다. 영국 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삼은 도시라고 하는데, 도로에 따라 자전거 전용 차선이 따로 있기도 하지만 이게 도시 전체에 일관성 있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느 도로는 전용 차선이 있고 어느 도로는 인도를 함께 쓰게 되어 있고 어느 도로는 그냥 차들 옆에서 같이 달려야 하고 이런 식이라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보행자와 자전거가 신호를 같이 쓰는 경우도 있고 자전거가 자동차 신호를 따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많이 배려해줘서 무섭거나 하지는 않다.)</p>
<p>집주인 아저씨의 강력한 권유로 King's college 합창단 예배와 오르간 연주회를 가보니 역시 수준급. 건물이 건물인지라 소리 울림이 정말 좋았다. 영국이 성공회 중심의 나라라서 걱정했던 가톨릭 미사 참례는 생각보다 가톨릭 성당들이 꽤 있어서 전혀 문제 없다. 특히 케임브리지에는 폴란드계 사람들이 많아서 폴란드어 미사가 따로 있을 정도. 참고로 폴란드는 매우 독실한(?) 가톨릭 국가다. 나는 OLEM(our lady and english martyrs)이라 불리는 성당의 청년미사에 가보았는데, 청년성가대가 부르는 곡들이 한국의 생활성가보다는 잔잔한 편이다. 한편으로는 재즈 느낌도 좀 났고, 탬버린으로 과하지 않으면서도 흥겹게 하는 부분이 맘에 들었다. 미사 분위기는 한국과 거의 똑같은데, 단지 영어라서 강론을 듣기 어렵다는 점이...;; (영어 듣기평가에서 최악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웅웅거리는 울림이 기본인 환경이니까.) 찾아보니 라틴어(!) 미사도 있던데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려고 한다.</p>
<p>어쨌든, 까먹기 전에 쓰고자 했던 짧은 첫인상 이야기는 여기까지.</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first-impressions-for-MSRC?commentInput=true#entry1084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디테일의 나라, 일본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B%94%94%ED%85%8C%EC%9D%BC%EC%9D%98-%EB%82%98%EB%9D%BC-%EC%9D%BC%EB%B3%B82012-09-27T16:35:47+09:002012-09-27T16:35:47+09:00<p>부모님 결혼 30주년 기념과 겸하여 대학원 들어온 후 제대로 쓰는 첫 휴가로 4박 5일 일정으로 일본 교토·오사카·나라 지역을 다녀왔다. 최근에 학회 출장 등으로 1년에 한번꼴로 캐나다, 포르투갈 등을 다녀오기는 했지만 자유여행으로 간 건 꽤 오랜만이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의 애증의 관계를 가진 나라이면서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부분도 매우 다른 부분도 함께 있기에 여러가지 느낀 점이 많았다.</p>
<h3>디테일</h3>
<p>이번에 일본 가서 가장 크게 바뀐 생각은 (조금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외벽을 타일로 만든 건물이 충분히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카이스트의 하늘색 목욕탕 타일 건물(...)에 질려있는 대다수의 카이스트 사람들에게는 꽤 충격적인 소리로 들릴 수 있겠다.</p>
<p>일본에서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건물들 중 타일을 쓴 경우를 매우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네 상가 건물 정도에서나 쓰는 정도이지만, 일본에서는 오사카 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인 우메다 스카이타워나 그 옆의 호텔 건물도 외벽의 상당 면적을 타일로 바를 정도로 타일 사용이 보편화되어 있다. 한국에서 타일 건물의 인상은 덕지덕지 붙여놓은 타일에 먼지가 빗물 타고 흐른 땟국물이 줄줄 자국이 남아서 매우 지저분하고 값싼 느낌인데, 일본의 타일 건물들은 타일을 붙인 것이 가히 예술의 경지다. 건축가인 아버지 말씀으로는 큰 건물의 경우 미리 공장에서 일정 사이즈의 판넬에 타일을 붙여서 그러한 판넬을 외벽에 붙이는 방식으로도 만든다고 하는데, 일단 타일 붙이기 자체가 거의 손으로 해야하는 작업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 섬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일을 붙일 때 각 타일의 네 귀퉁이가 표면으로부터 일정한 높이를 유지해야 울퉁불퉁해보이지 않고 멀리서 빛에 비춰진 옆면을 봤을 때 각각의 타일이 따로 놀지 않아 마치 하나의 거울 표면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데, 모든 타일 건물이 이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또한 벽돌도 마찬가지지만 타일을 붙일 때도 타일 사이의 가로세로 간격이 일정해야 아름다운데, 그 간격을 자로 잰 듯 일정하게 해서 전혀 어색함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또한 건축가로서 타일을 외벽 재질로 쓰고 싶어도 한국에서는 건축주들의 인식도 안 좋은데다 이처럼 숙련된 타일시공 기술자들을 찾기가 어려워서 일본에 오면 이런 부분이 샘이 난다고까지 이야기하실 정도였다.</p>
<p>첫째날과 둘째날 묵었던 교토의 료칸 또한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소박한 목조 건물 느낌의 내부 인테리어에서 대단히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이사올 때 인테리어 공사를 했을 때 어머니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천장 몰딩이나 창틀·문틀과 벽면 벽지가 이루는 경계선들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인데, 료칸의 벽지들은 정말 흠잡을 곳 하나 없이 모든 경계선과의 마무리가 아주 일정하고 깔끔했다. 나무 문짝도 그렇고 화장실 타일 붙여놓은 것도 그렇고 그동안 어머니가 한국에서 불만이었던 '철저한 마무리'의 가장 이상적인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p>
<p>이러한 디테일함은 비단 건축물들뿐만 아니라 각종 도구과 음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릇이나 젓가락, 각종 수공예품 또한 마찬가지고 일본음식이 보는 맛에 먹는다고 할 만큼 섬세하게 차려져나오는 것 또한 이 연장선 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p>
<p>조금 다른 섬세함의 의미로, 오사카 우메다역의 요도바시카메라(일본에서 가장 큰 전자백화점 체인)와 교토·오사타의 시장 골목을 구경하고 나서 느낀 점은, 물건을 만드는 것도 디테일하지만 물건을 모아놓고 파는 것도 디테일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젓가락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있어서, 정말 몇백·몇천원짜리 값싼 젓가락부터 1세트에 70만원이 넘는 것까지 있는 식. 어떤 한 종류의 물건을 팔더라도 그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고 깊다. 지팡이만 파는 가게는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지팡이 가게를 생각나게 했다. 요도바시카메라에서는 이것저것 다 취급하는 카메라 매장들이 여러 개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세세한 품목을 방대하게 취급하는 가게들이 모여있었다. 예를 들면, 카메라 삼각대만 파는 코너나 카메라를 어깨에 걸치는 끈만 파는 코너, 카메라 가방만 모아놓은 코너가 따로따로 있는데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p>
<p>이걸 보면서 딱 드는 생각이, 취미 생활 좀 하려면 일본이 정말 천국이겠구나 하는 것이다. 괜히 오타쿠의 나라가 아니지 싶다. 아주 일부의 모습만 봐도 이 정도인데, 각각의 세부 카테고리로 들어가면 얼마나 방대한 디테일들을 취급하고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매니아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는 것들은 뭔가 파는 곳이 없어서 구하기도 쉽지 않고 그럴 것 같은 느낌인데, 일본에서는 웬만한 건 다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p>
<p>요도바시카메라에서 카메라 메모리와 액자 틀을 조금 사고 계산하는데, 계산하던 점원이 우리가 외국인인 걸 알고 5% 부가세 면세적용을 해주겠다면서 여권 정보와 함께 구입 품목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카드를 작성하였다. 카드 양식을 굉장히 꼼꼼하게 하나하나 적고 한번 더 손가락으로 한글자 한글자 훑으면서 읽어보더니,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을 불러서 한번 더 확인을 시키고, 그 직원이 간 다음 다시 그 카드와 같은 크기로 구멍이 숭숭 뚫린 종이를 꺼내어 양식에 꼭 들어가야 하는 칸 중 빈 것이 없는지 확인까지 다 하고 나서야 계산이 끝났다. 단순히 친절한 것으로 보기에는 그 과정이 고민 없이 너무나 착착 진행되어 아마도 매뉴얼에 뭔가 이렇게 하라고 써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매뉴얼도 디테일하고 그걸 있는 그대로 지키는 직원도 디테일하다고 할 수밖에.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다소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는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다.</p>
<p>또 한 가지 디테일하다고 느낀 부분은 교통신호 체계다. 일본에서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생략하고(하지만 택시 탈 때 운전석 문을 열려고 해서 기사님들이 당황했던 적이 있는 건 사실..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거다. ㅋㅋㅋ),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신호가 바뀔 때 약간의 시간 딜레이를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방향 길과 B 방향 길 2개의 직선길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A 방향에 빨간불이 들어와있고 B 방향에 초록불이 들어와있다가 신호가 바뀐다고 하자. 우리나라에서는 B 방향이 빨간불로 바뀜과 동시에 A 방향에 초록불이 들어오는데, 일본에서는 1~2초 가량의 지연 후 초록불이 들어온다. (이게 모든 지역에서 다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빨간불로 바뀔 때 노란불이 먼저 들어와 신호변경을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래도 추가적인 딜레이가 더 있는 것이다. 이것도 위와 마찬가지로 실수를 방지하는 일종의 안전장치 역할이 아닐까 싶다.</p>
<p>우리나라는 어떻게 보면 융통성이 지나쳐서 문제인데 일본은 융통성이 너무 없어서 문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철저함과 섬세함은 우리도 배워야 할 부분이다. 무언가 짓거나 만들 때 화려하진 않더라도 그 끝 마무리까지 완벽하고 깔끔하게 하는 것이, 겉으로만 화려하고 실제로 곰곰이 뜯어보면 대충대충 투성이인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는가. 일본인들의 이러한 부분만큼은 존경할 만하다.</p>
<h3>철도의 왕국</h3>
<p>기차든 전철이든 KTX든 우리나라에는 각 광역시별 지하철과 코레일만 알면 별다른 고민을 할 게 없고, 하나의 승차권이나 교통카드로 지하철끼리는 모두 환승이 가능하다. 그런데 일본은 철도의 종류가 굉장히 많았다. 우리가 이용한 노선만 해도 JR 야마토지선, 한큐 오사카·교토 구간, 킨테츠 나라선, 오사카 시교통위에서 운영하는 지하철까지 4가지 운영 주체가 따로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각각이 독립적인 노선을 운영하고 있고, 우메다역이나 난바역 같은 곳은 2~3개의 전철 회사들이 각자 역을 운영하고 있어서 환승할 때도 헷갈리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게다가 승차권도 다 따로따로. (사실 관광객들을 위한 간사이-쓰루토 패스 같은 것들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이번 여행은 내가 미리 뭔가 조사하고 예약하고 그럴 시간이 없었기에 그냥 그때그때 표를 샀다.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안 거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전철로 되어있는데 전철의 속도도 우리나라보다 좀더 빠르게 운행하는 것 같다. 내가 탔던 노선들 대부분 시내 중심부에서는 지하로 가다가 교외지역으로 나가면 지상으로 나오게끔 되어있었다.</p>
<p>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이른바 '철도 오타쿠'가 몇 있는데, 과연 그런 사람들이라면 일본은 또 다른 의미의 천국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한 종류의 지하철만 있는게 아니라, 각 사철(私鐵) 별로는 급행(걔네들은 '쾌속'이라고 표현함) 등의 차량 등급도 여러 가지고 열차에 앉는 방식도 지하철처럼 벽쪽으로 일렬 좌석이 있는 것부터 우리나라 무궁화·새마을 같은 것도 있고, 좌석 등받이 위치를 바꾸는 것도 새마을처럼 좌석 자체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등받이를 들어올려서 옮기는 식이라든지 다양한 방식들이 혼재하고 있었다.</p>
<h3>한류와 역사문제</h3>
<p>교토에 있었던 첫째날에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를 둘러본 뒤 교토 시내의 골목을 돌아다녔는데, 료칸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서 관광객들 잘 가지 않는 동네 골목길을 지나가게 되었다. 어머니가 오랜만에 오래 걸으니까 발이 아프다고 하시면서 얇은 양말이나 스타킹을 샀으면 하셨는데, 마침 동네 수퍼마켓이 보여 들어갔다. 가게 주인과 동네 아줌마들이 앉아있었다. 이 사람들은 영어가 안 되니 손짓 발짓으로 어떻게 어떻게 찾아 구입하려는데,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하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싸이의 강남스타일부터 시작해서(...) 정우성, 빅뱅, 배용준 등등의 이야기가 줄줄줄...;; 역시 일본 아줌마들이 진짜 한류 팬이라더니 과연 허언이 아닌 듯.</p>
<p>하지만 여전히 역사문제에서는 아쉬운 점들이 보였다. 저녁 시간이면 료칸과 호텔에서 TV를 보았는데, 참 재미있기도 황당하기도 한 것은 한 채널에서는 한국드라마를 더빙 없이 일본어자막만 넣은 채 방송하고 있는데 바로 옆 채널에서는 '일한·일중 영토 분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주제로 각계 전문가를 모셔놓고 토론회(...)를 하고 있더라는 것. 한국드라마에서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어느 사극에서 반정을 모의하는 사대부 가의 대화 장면이 나왔을 때다. 명나라 사신이 오는데 왕을 바꿔치운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물어보자 대답하는 사람이 언제 우리가 걔네들 눈치를 보며 살았느냐 뭐 이런 대화를 하는데, 일본어 자막에 명나라를 명나라로 표현하지 않고 '종주국'이라는 한자 표현을 써놨다. 헐.... -_-; 우리말과 같은 뜻으로 쓴 것이라면 진짜 헐이다.</p>
<h3>침체와 그늘</h3>
<p>디테일한 부분은 정말 일본에서 배워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의 어두운 모습들도 많이 보였다. 특히 길거리와 지하철 등에서 보는 지난 잃어버린 20년을 지내온 세대들(대략 내 나이또래부터 30대 후반 정도까지)의 모습들은 한결같이 우울하고 외로워보였다. 오히려 좀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할아버지·할머니들이나 관광지에 놀러온 유치원생·초중고 학생들은 밝고 명랑해보였는데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을 타보면 직장인들이 피로에 쩔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단지 피곤해서 지쳐있는 모습과는 다른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달까. 그 광경에서 관찰한 또다른 사실은 대부분의 직장인이 정말 한결같이 똑같은 검은색 정장바지에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더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금융권 등 정장 입고 근무하는 회사들이 있지만, 일본은 그런 회사들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것 같고 동시에 정장바지와 와이셔츠 색깔의 variation 폭이 매우 적다. 처음엔 좀 섬뜩할 정도. 회사 로고가 박힌 뱃지들을 외투에 붙여서 서로를 구분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말로는 일본 회사들이 규율이 엄격하고 문화 자체가 서로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데, 아마도 그런 것들이 젊은 직장인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p>
<p>지난 해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 또한 일본사회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교외 지역을 달리다보면 광고 전광판을 꺼놓고 '절전운용중'이라는 표시를 붙여놓는다든지, 밤이 되었을 때도 가정집들이 전등을 거의 켜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는 '파이팅 일본' 이런 제목을 단 연예인 공연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NHK에서 저녁 뉴스가 끝나고 "내일로"라는 제목으로 각계각층 사람들이 한명씩 나와서 빨간색 꽃을 한송이씩 들고 노래 한 소절씩 돌아가며 부르다가 나중에는 함께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전체 해석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살아갑시다, 꽃들이 피어요 이런 가사들이 보이고 추모하는 분위기와 제목, 설명 등으로 미루어볼 때 아마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침체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p>
<p>약간은 집단주의적인 면도 보이는데, 각 개인은 사실 얼마든지 행복하고 밝게 살 수 있음에도 일본 사회가 처한 어려움을 마치 자신의 어려움과 동일시하는 듯한 분위기도 느껴졌다. 그 우울감은 여행 내내 일본을 짓누르고 있었다.</p>
<h3>관광 이야기</h3>
<p>첫째날과 둘째날은 교토에서, 셋째날은 오사카에서, 넷째날은 나라를 다녀왔고, 마지막날은 다시 오사카에 있었다. 교토에서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은각사와 금각사, 헤이안신궁, 유명 일본 건축가인 안도다다오의 '명화의 정원', 용안사의 석정 등을 보았고, 오사카에서는 오사카성 천수각과 해유관(가이유칸)을, 나라 가는 길에 담징의 금당벽화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5층 목탑이 있는 법륭사(호류지)를 보고 나라에서는 사슴공원과 동대사(도다이지)를 보았다.</p>
<p>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절은 은각사와 법륭사다. 은각사는 섬세함이 묻어나는 정원과 소박한 건물들의 느낌이 좋았고, 법륭사는 진짜 절 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점과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영향을 때문인지 건물의 처마·용마루 곡선이 한국의 것을 많이 닮아있어 그 편안한 느낌이 좋았다. 특히 법륭사의 5층 목탑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22줄짜리 일기장 6페이지를 가득 채워 기록으로 남겼던 KBS 황룡사 다큐멘터리에서 황룡사와 그 9층 목탑이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가장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지목된 건축물이기에 내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담징의 금당벽화는 사실 제대로 들여다보기는 힘들었고 뒷편에 따로 조성된 박물관 코스에서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법륭사의 5층 목탑에 사용되었던 부재가 함께 전시되어 역학적으로 지붕과 상단부를 어떻게 떠받치고 있는지 자세히 보여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경주 황룡사가 13세기 몽고침입 때 불타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멋있었을까.</p>
<p>용안사의 석정은 내 또래 세대에서 중고등학교 미술책을 봤다면 다들 알고있을 바로 그것. 일본식 정원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소개되는데, 하얀 자갈에 살짝 패턴을 내고 조형물이라곤 중간에 몇개 놓여있는 돌이 전부인 정원이다. 그것이 바다 위의 섬들을 형상화한 것인지 아니면 무릉도원을 그린 것인지 그 해석은 각자에게 맡기고 있다. 나는 정원 뒷편의 울창한 숲과 기름을 넣어 지은 흙담에서 배어나온 자연스러운 무늬가 정원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더 멋있었다.</p>
<p>동대사는 16m 크기의 세계 최대 좌상 금동불상과 이를 보호하는 높이만 50m에 달하는 거대한 목조 대불당의 모습이 가히 스케일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곳이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최초의 대불당은 지금보다 더 컸었다고 하고, 양 옆으로는 그보다 더 높은 7층 목탑이 서 있었다고 한다. 지진 등으로 파괴되어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이것도 법륭사와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에 한국인들이 건너가 도움을 주고 지은 것이라고 한다.</p>
<p>참고로 신사와 절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절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절들처럼 불상을 모시고 스님들이 수행하는 그런 곳이고, 신사는 어떤 특정한 신(토착신앙으로 각 지방의 수호신일 수도 있고 특정한 주제를 나타내는 신일 수도 있고)을 모셔서 특정 지역을 수호하기 위한 염원을 담아 짓는 것이다. 헤이안 신궁의 경우는 수도를 교토에서 도쿄로 옮길 때 교토의 지속적인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땐 그날 저녁 때 무슨 공연을 하는지 무대 설치가 한창이었는데, 뭔가 조심스럽고 신성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행사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한 가지 예외는 이세신궁이라 하여 일본 신화에서 우리의 단군과 비슷한 위치의 인물을 모신 신사가 있는데 거기는 별다른 건축물은 없지만 사진도 못 찍게 하는 등 굉장히 신성한 장소임을 강조한다고 한다.)</p>
<h3>마치면서</h3>
<p>전체적으로 여행을 마치고 든 생각은, 일본이 살아볼 만한 나라인데 지진만 안 나면 참 좋겠다는 것. 음식도 내가 다녀본 나라들 중 가장 깔끔한 편이었고 작은 상가건물 유리창들마저 반짝반짝 빛나는 그 깨끗한 거리와 전통·현대 건축물들의 정교함은 일본인들의 부지런함과 철두철미함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 선조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던 나라이기도 하고. 하지만 최근 점점 우경화되는 정치 환경과 여전한 역사왜곡 문제, 그리고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사회적 우울감은 일본이 넘어서야 할 산일 것이다.</p>
<p>원래는 휴식의 개념으로 놀러가는 거였지만, 막상 NSDI 데드라인 후 텍스트큐브 저장소 github 이전 작업으로 거의 밤을 샌 다음 집에 운전해서 온 데다 제대로 뻗어서 자지도 못하고 12시간만에 짐싸서 비행기 타고 가려니 잠이 부족해서 좀 힘든 여행이었다. 생활리듬도 갑자기 바꿔야 했고. 그래도 규칙적으로 먹고 자고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 많이 걸어다녔더니 몸도 좀 건강해진 것 같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좀더 밝아진 일본의 모습을 보러 갈 수 있기를.</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B%94%94%ED%85%8C%EC%9D%BC%EC%9D%98-%EB%82%98%EB%9D%BC-%EC%9D%BC%EB%B3%B8?commentInput=true#entry1083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Full (system) paper 작성하기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Full-paper-%EC%9E%91%EC%84%B1%ED%95%98%EA%B8%B02012-09-20T20:28:51+09:002012-09-20T20:17:07+09:00<p>이번에 준비하고 있던 논문은 "nShader"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PacketShader와 SSL Shader를 포함하여 임의의 새로운 네트워크 패킷 처리 기능을 하나의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 위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프레임워크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scheduler를 바꿔가며 구현할 수 있도록 하고, 나름대로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한 scheduler로 기존 shader 시리즈보다 성능을 더 향상시키는 것이 골자이다.</p>
<p>오늘 낮 12시가 NSDI 학회 데드라인이었는데, 결국 이건 아직 낼 때가 안 되었다는 결론을 내고 다음에 다른 학회에 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몇 가지 느낀 점들을 적어본다.</p>
<h2>꼼꼼한 기록의 중요성</h2>
<p>시스템 연구는 특성상 삽질을 많이 하게 된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처음 밑바닥부터 다 구현하는 것이 아닌데다, 아무래도 좀더 low-level을 만지다보니 일반적인 user-level application과 달리 어떤 기능의 정확한 동작과 성능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kernel 버전이나 BIOS 설정까지도 포함, 코드 1줄만 바꿔도 성능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고, 등등.) 따라서 나중에 실험 재현을 위해서는 실험 환경에 대한 꼼꼼한 기록과 코드 버전 관리가 필수다.</p>
<p>이번 논문의 경우 처음 아이디어는 (지금은 영국에 가있는) 선배로부터 나온 것이다. 지난 1~2월에 빡시게 일해서 framework와 PacketShader/SSLShader 포팅을 이미 완료한 상황이었고, 나는 3월부터 5월까지는 수업 몰아듣기와 조교 및 APSys 논문 준비로 바빠서 일을 못했다. 또한 그 선배는 3월부터 영국에 가서 일하게 되었고, 내가 6~7월 APSys 행사 업무로 바쁜 사이 같이 실험 도와주던 분도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공백기가 있은 후 8월부터 본격적으로 논문 준비에 들어갔는데, 기록 미비로 인한 여러 문제점을 겪어야 했고 결국 이번에 바로 논문을 완성하지 못하는 한 이유가 되었다.</p>
<p>우선, 몇몇 실험의 기록과 코드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다. 미국으로 간 분이 했던 실험을 조건을 바꿔서 다시 해볼 필요가 생겼는데, 실험의 최종 결과 그래프만 엑셀에 덩그러니 남아있고 어떤 서버(하드웨어)에서 했는지에 대한 기록과 실험 때 사용한 코드가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실험스크립트를 새로 짜야 했고, dictionary 자료구조라서 순서가 보장이 안 되는 항목을 index로 구분하게 해놓아서 실험 데이터의 x/y축이 뒤죽박죽이었다든가 하는 문제가 있었다. (다행히 그 실험의 경우엔 그래프 모양만 보고도 어느게 어느것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었지만.) 그래서 원래는 하루 예상했던 일이 거의 일주일이나 걸렸다. 미국과 시간대가 안 맞으니 계속 이메일과 카톡으로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했으니까.</p>
<p>그 다음은, 논리 전개에 대한 기록이 미비했다. 원래는 내가 2저자로 들어가고 영국으로 간 선배가 1저자가 될 예정이었으나, 그분도 영국에서 일하게 되면서 교수님과의 의논 끝에 이 논문에 필요한 실질적인 작업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내가 1저자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1저자가 되었으니 당연히 논문의 모든 문장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 그런데... 막상 중간 정도 쓰여있던 writing을 바탕으로 내가 writing을 시작하고 보니, 도대체 구체적으로 정의된 게 거의 없는 것이다. 특히 이 논문의 핵심 아이디어 중 하나는 'TCP congestion control과 유사한 방법으로 GPU offloading fraction을 조정했더니 성능이 잘 나오더라'인데, 실제로 일을 할 때는 '해보니까 잘 된다'였지 이걸 어떠어떠한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서 그 방법을 선택했다는 logic이 없었던 것. 그러다보니 우리가 구현한 알고리즘에 사용된 각종 parameter의 값들도 죄다 magic number였고, 이는 그러한 magic number tuning 없이도 어느 조건에서나 최적 성능이 나온다라는 주장과 대치되는 것이다.</p>
<p>당장 코드 구현하고 실험해볼 때야 일단 잘 되면 좋은 것이지만, writing을 하는 입장이 되면 전혀 다르다. 다른 방법도 많은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왜 그렇게 해서 잘 되는지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어야 하고, 우리의 design decision에 대해서도, 우리가 생각한 technical challenge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scheduler가 light-weight해야 한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게 얼마나 light-weight해야 하는지는 context마다 다를 수 있다. '초당 1백만개 이상의 패킷과 그 패킷으로부터 생성된 task를 매번 scheduling해야 하므로 commodity server에서 자주 사용되는 xxx 모델급의 CPU 성능을 가정했을 때 300 CPU cycle 안에 돌아가야 한다'라든지 하는 식으로 밝혀줘야 하는 것이다.</p>
<p>문제는 그분도 10월초 한국에서의 결혼과 현지에서 작업하고 있는 다른 논문 준비 때문에 나와 커뮤니케이션을 충분히 미리 하지 못했다. 사실 그 선배 머릿속에는 '이런 이야기는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보여주면 충분할 것 같고, 이건 우리가 좀더 해봐야 하고, etc etc' 이런 로드맵이 있는 셈이었는데, 그게 논문에도 회의록에도 기록이 전혀 안 남아있었던 것. 그러다보니 한달만에 writing과 추가 실험을 모두 다 해야 하는 상황에서, full paper에서 요구되는 수준의 detail로 어떤어떤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파악만 겨우 했지 실제로 그 파악한 detail들을 모두 살펴보고 검증하고 실험 or 인용할 시간이 부족했다. 어떻게 보면 그 선배의 머릿속을 backtracking하느라 시간이 다 간 셈이랄까.</p>
<p>그렇다고 해서 그 선배를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사람이다보니 모든 일에 항상 최상의 퍼포먼스를 가지고 임할 수는 없는 일이고, 나 또한 이것만 하기에도 바쁘게 만든 여러 가지 다른 정황이 나를 더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p>
<h2>writing만 하든지 실험만 하든지 서버관리만 하든지...</h2>
<p>데드라인 3주 전, 연구실의 대표 웹·이메일 서버이자 모든 논문과 소스코드의 버전관리 저장소가 들어있는 an.kaist.ac.kr 서버의 하드디스크가 수명을 다해 죽었다. 다행히 RAID-1으로 미러링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과거에 서버관리하던 사람이 2가지 종류의 RAID 프로그램을 중복 설정해놨다는 것. 이 왜 그렇게 했는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에 대한 문서가 남아있지 않았다. 나름대로 로그도 뒤져보고 시스템관리자 커뮤니티에 질문도 해보고 그랬으나 실제 디스크 수준의 RAID가 둘 중 어느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둘 중 명령어로 상태가 정확하게 조회되는 하나를 찍어서 RAID rebuild를 해놓았고 이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p>
<p>데드라인 2주 전, 연구실 서버룸의 에어컨이 수명을 다해 죽었다. 서버실 온도는 50도를 넘어갔고, an.kaist.ac.kr 서버의 아직 교체하지 않았던 다른 하드디스크도 과열로 마저 죽었다. 따라서 새로 미러링된 하드디스크를 다시 미러링하도록 설정하여 복구(?)했다. 연구실의 모든 선풍기를 동원하여 자연 냉방을 해야 했는데, 마침 죽은 날이 토요일이라 에어컨 A/S는 월요일에나 부를 수 있었고 점검 결과 컴프레셔 고장으로 수리비용이 교체비용과 비슷하게 나온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영국에 계신 교수님과 상의를 거쳐 에어컨을 새로 구입하기로 하였고, 중간에 우천으로 하루 연기된 것을 포함 결국 돌아오는 금요일(데드라인 5일 전)에 되어서야 설치가 완료되었다. 에어컨이 없는 동안은 서버를 켤 수 없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필수 서버만 켜두고 주로 논문 writing 작업을 했으나, 실험결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문제에 직면했다.</p>
<p>그리하여 데드라인 4일 전이 되었는데, 연구실 서버룸의 에어컨 누전차단기가 수명을 다해 죽었다. 이제 이쯤 되면... 만성 멘붕이다. 토요일 밤에 학교 전기실 당직자를 불러 점검해보았고 결국 일요일에 교체. 근데 교체 과정에서 누전차단기의 입력전원을 차단하기 위해 서버실 전원을 모두 한번 내렸는데, an.kaist.ac.kr이 재부팅을 했더니 살아나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유는 2가지 종류의 RAID 중에서 disk level로 미러링하는 게 있고 partition level로 미러링하는 게 있었는데 후자로 서버를 살려놓았던 것. 근데 디스크 2개를 다 갈고 나니 파티션 테이블과 부팅 정보가 날아간 거다.;; 뭐... 굳이 잘못을 따진다면 불필요하게 헷갈리도록 RAID를 설치해놓은 전 관리자를 탓해야 하겠으나 이미 학교에 없는지 한참 된 사람이기도 하고 일단 논문을 쓰는 게 더 급한 상황이니 응급조치를 새로 설치 후 testdisk 프로그램 통해 수동 복구. 누전차단기 덕분에 데드라인 4일 전에 48시간을 고스란히 날렸다.</p>
<p>..이러니 논문이 나올 리가 있겠는가. ㅠㅠ</p>
<p>무엇보다 1~2주 전 사이에 멘붕이 심했는데, 사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벌어진 것 자체보다도 주변에서 나를 아무도 안 도와준다는 느낌이 들었던 게 더 큰 것 같다. 서버실 관리자도 따로 없어서 내가 혼자 관리하는 상황이고, 논문도 갑자기 1저자를 맡아서 마무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writing만 하기도 벅찬 걸 실험·코딩도 해야 하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다 영국에 있고. 뭐, 인터넷이 발달해서 메신저나 스카이프·구글 행아웃 등으로 연락을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소소하게 일상에서 힘든 부분 나누고 생각날 때마다 시시콜콜 물어보기는 아무래도 힘들다. 그쪽도 나름대로 다른 일들로 바빴고, 시차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니까.</p>
<p>원래 서버관리자는 이 논문 끝나고 뽑을 예정이었는데, 하필이면 데드라인 앞두고 일이 터진 건 그냥 운이 나쁜 거라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또한 실험이나 코딩도 연구실에서 당장 후배를 가르쳐가면서 일을 하기에는 일단 1개월이라는 시간 자체가 그리 충분하지 않았던 것도 아쉽다.</p>
<h2>To the next step</h2>
<p>그래도 어쨌든 9페이지 분량의 논문을 쓰면서 진짜 제대로 된 12~14페이지 full paper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노력과 일의 양이 필요하겠구나라는 감은 좀 잡은 것 같다. 11월에 MSR 인턴을 가기 전에 다른 학회에 submit을 하는 게 목표인데, accept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내 스스로 봐서 만족할만한 논문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사실 교수님도 이미 데드라인 며칠 전부터 이번 논문은 힘들 거라는 걸 알고 계셨고, 나는 2주 전부터 이 상태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스스로 만족스러울 것 같지 않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교수님이 끝까지 내자고 하셨으면 어떻게 냈을지도 모르지만 절대적으로 일의 양과 들인 시간이 모자른 건 무슨 수를 써도 메꿀 수 없는 법.</p>
<p>주변 사람들하고 얘기해보면, 사실 어느 정도 스스로 논문을 리드해서 작성할 수 있게 되려면 기본적으로 걸리는 시간이 있다고들 한다.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아직 나는 그 leap을 뛰어넘지 못한 상태인 듯. 이 정도 하면 되겠다라는 감은 생겼지만 실제 그 정도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항상 예상보다 많이 걸린다. 그 간극을 극복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Full-paper-%EC%9E%91%EC%84%B1%ED%95%98%EA%B8%B0?commentInput=true#entry1082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APSys 2012 워크샵 후기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APSys-2012-%EC%9B%8C%ED%81%AC%EC%83%B5-%ED%9B%84%EA%B8%B02012-07-28T04:08:19+09:002012-07-28T04:06:37+09:00<p>숨가쁘게 달려온 APSys 2012 워크샵이 끝났다. 워크샵에 첫 1저자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워크샵의 운영 staff로 일한 첫 경험이기도 했기 때문에 아마 평생 두고 잊을 수 없는 워크샵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글로 정리해본다.</p>
<p>APSys 워크샵은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아직은 작은?) 컴퓨터 소프트워어 시스템 전반을 다루는 학술대회이다. 먼저 워크샵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면, 전산 분야에서는 아직 진행 중이거나 초기 단계의 일이지만 주목할 만한 결과를 가지고 있을 때 논문을 내는 곳이다. 전산 분야에서는 논문 종류를 크게 proceeding으로는 학회(conference), 워크샵(workshop), 포스터(poster)로 나누고 그 외엔 journal 논문이 있다. 분야 발전 역사와 하드웨어의 기술발전 속도에 따라 같은 주제와 아이디어라도 금새 옛것이 되는 특성 상 논문 게재 승인이 나기까지 수개월 이상 걸리는 journal보다는 논문 제출과 리뷰 과정이 모두 deadline 기반으로 이뤄지는 학회/워크샵 논문들이 더 조명을 받는다. 학회 논문은 보통 영문 10pt 2 column으로 12~16 page 정도를 작성하고, 워크샵은 5~6 page, 포스터는 extended abstract 형태로 1~2 page를 작성한다. 포스터는 학회에 따라 proceeding에 실어주기도 하고 안 실어주기도 하는데, 리뷰 과정도 매우 단순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거의 '이런 일을 하겠다' 하고 찜하는 느낌이 강하다. 반면 학회 논문(conference full paper)은 리뷰 과정도 오래 걸리고 학회 심사위원들 중 한 명이 shepherd로 지정되어 해당 논문의 최종 버전(camera-ready version)이 나올 때까지 직접 논문 수정에 대한 제안이나 피드백을 중점적으로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일정 정도 이상의 완성도가 있는 논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른바 "좋은" 학회에 full paper를 1저자로 1개라도 발표한다면 어지간한 미국 아이비리그 top school 진학이나 Microsoft와 같은 유명 기업체 연구소 취업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p>
<p>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매우 다양한 주제를 포괄하고 있다. 가장 전통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운영체제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에 대한 것부터 꼭 운영체제 커널이나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응용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기반이 되는 기술들 거의 모두가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high-performance networking, memory management, 기존 소프트웨어 시스템의 multi-core scaling, SSD와 같은 새로운 하드웨어를 위한 filesystem, debugging을 쉽게 하기 위한 구조 설계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요즘 뜨는 주제로는 cellphone (보통 사람들은 smartphone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쓰지만) 환경에서 동작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API나 밑단 시스템 설계 등도 있고, power management(전원 절약)나 data center 관리에 대한 이슈도 많다. 이미 desktop/server 가상화 기술은 어느 정도 전통적인 주제가 되었고, cellphone 가상화도 이미 1~2년 전에 관련 연구들이 발표되었다.</p>
<p>APSys 워크샵의 모델은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EuroSys 학회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APSys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다. 물론 그렇다고 유럽 사람들이 논문을 내지 못하게 막거나 하지는 않지만 워크샵 개최지가 주로 아시아 지역이라는 것 정도? 아시아 지역에서도 경제력, 교육열, 방대한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컴퓨터 시스템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으므로 나중에는 워크샵을 학회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p>
<p>이번 워크샵에 내가 발표한 논문 제목은 "The Power of Batching in the Click Modular Router"로, <a href="http://www.read.cs.ucla.edu/click/click">Click 라우터</a>라는 네트워크 장비를 소프트웨어로 구현하기 위한 프레임워크를 multicore 시스템에서 어떤 테크닉들을 적용해야 그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batch processing (여러 개의 작은 데이터를 모아서 한꺼번에 일괄처리하는 것)이 가장 주된 포인트이고, 그 외에 최근의 10Gbps 이상급의 네트워크 카드들이 지원하는 multi-queue 지원이나 multi-processor 시스템을 위한 NUMA 아키텍처에 대한 고려 사항 등이 들어간다. 사실 그러한 성능 향상 아이디어들 자체는 다른 연구에서 소개된 것이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낸 것은 Click의 packet processing element들에 batching을 적용한 것이 전부이다. 허나 내 연구의 의의는 Click의 성능을 좋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들이 있었지만, 현재의 multi-core PC hardware에서 Click의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집대성해서 정리했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테크닉 적용 과정을 자동화하거나 아예 Click 프로젝트를 fork해서 기존 Click 기반 application들의 수정 없이 그대로 성능이 향상되게 만드는 것이 하나의 목표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GPU 기반 packet processing 프레임워크인 nShader와 합치는?!) 원래 석사 졸업논문으로 했던 내용이지만, 석사 논문은 워낙 급하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쓴 거라 writing이 영 아니기도 하고 교내 졸업논문 심사위원 3분을 제외하고 이 분야의 다른 대가들에 의한 review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중간 milestone을 찍는 의미로 워크샵 논문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아직 ACM copyright transfer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아서 논문을 일반에 공개할 수 없으나 공개가 가능해지면 링크를 걸 예정이다.</p>
<p>Staff로 일한 경험 또한 이번 워크샵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실제로 학회나 워크샵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가까이서 알 수 있었다는 점은 나름대로 연구자로서 의미 있는 일이었다. <a href="http://apsys2012.kaist.ac.kr">APSys 홈페이지</a> 자체는 몇달 전부터 Django를 이용해 뚝딱 만들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원래 처음에는 정산 업무를 줄이고자 이틀 정도 시간을 투자해 결제시스템을 붙이고 VISA invitation letter 같은 것도 하루에 한 번 정도 모아서 처리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에 큰 무리 없겠다 싶어 워크샵 등록 업무를 맡았다. 뭐 사실 연구실에서 도와줄 사람이 별로 없기도 했고. (시스템 팀으로 워크샵 기간까지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소셜네트워크 팀한테는 아무래도 관심분야의 워크샵이 아니니까...) 그러나 실제로 일을 해보니 여러가지 문제와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런 비슷한 업무를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 누군가 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인 기록 차원에서 정리해보았다.</p>
<h3>등록 업무</h3>
<p>국제 워크샵인만큼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오게 된다. 유럽이나 미국 국적의 사람이 한국에 일시 입국하는 경우는 대부분 비자가 필요 없기 때문에 신경쓸 게 없는데, 문제는 중국과 중동 출신 사람들이다. 중국인들의 경우 2012년 7월 현재 제주도의 관광목적 입국 시에만 한국 비자가 면제되고, 한국 본토에 입국할 때는 비자가 필요하다. 또한 중동 사람들도 비자가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이 학회참석을 목적으로 한국에 오려면 이른바 '초대장' (VISA invitation letter)를 받아야 하는데, 학회 주최측에서 다음과 같은 정보를 채워 담당자 싸인이나 직인을 찍어 직접 스캔해 보내주어야 한다. (간혹, 국제특급우편으로 원본을 부치는 걸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p>
<ul>
<li>일단 기본적으로 어떤 내용을 다루는 학회이고 어느 날짜에 어디에서 하는 학회인지 설명하는 글이 들어있어야 하며, 우리가 이 사람에 대해 이러이러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어야 한다.</li>
<li>입국 목적 : 논문이나 포스터 저자인 경우는 논문 발표를 할 것이라는 것을 명시해주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다면 학회 참석이라고 씀.</li>
<li>초대받는 사람의 소속 기관</li>
<li>초대받는 사람이 필요한 여행 비용을 지원해주는 기관 : 보통 소속 기관과 동일하게 적으면 되지만, travel grant를 받는 경우 학회 주관단체 이름과 grant 액수를 적는다. 이번 경우에는 한국정보과학회로 적어주었다. (ACM으로 적어야 했나? ㅋㅋ)</li>
<li>초대받는 사람의 현지 주소 : 보통 초대받는 사람의 연구실·사무실 주소를 적는다.</li>
<li>국적</li>
<li>여권 번호와 유효기간</li>
<li>한국 내에서의 일정 : 일반적으로 예상 입국·출국 날짜를 써주면 된다. 꼭 100% 정확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음.</li>
<li>학회 담당자 싸인 : 우리 경우엔 general chair인 문수복 교수님의 도장을 찍었다.</li>
<li>추가 서류 : business 목적으로 비자를 신청하는 경우 가끔 초청 기관의 사업자등록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연구과제 신청용으로 가지고 있는 KAIST 사업자 등록증 스캔본을 보내주었다.</li>
</ul>
<p>처음에는 우리 연구실이 주최했었던 <a href="http://pam2009.kaist.ac.kr">PAM 2009</a> 학회에서 썼던 양식을 그대로 썼는데, 여행 비용 지원 기관에 대한 란이 없었다. 요즘 들어 비자 주는 게 더 까다로워졌는지 몇몇 사람들이 한국대사관에서 빠꾸를 먹는 바람에 다시 써주면서 이런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
<p>비자 심사와 발급에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VISA invitation letter는 적어도 입국 전 2주 전까지는 보내주는 것이 좋다. 이번에 중국에서 논문 저자 중 한명인 어떤 교수님은 결국 비자 심사가 통과가 안 되어 입국을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travel grant 발표가 좀 늦게 나오는 바람에 인도에서 오는 어느 학생은 연구실과 내 개인 휴대전화번호까지 알아내어 빨리 처리해달라며 실시간으로 국제전화를 하기도 했다. 학회 전주 금요일 오후(현지시간으로 대사관 직원 퇴근하기 1시간 전쯤)에 인도대사관에서 전화가 걸려와서는 travel grant를 무슨 기준으로 뽑는 것인지 등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어야 했다.;;</p>
<p>등록 개시를 학회 시작 6주 전쯤 시작했는데, 처음 4주 정도는 널널했으나 마지막 2주 정도는 끊임없는 메일 때문에 낮시간에는 연속적인 집중 시간확보가 불가능했다. 아래의 민원과 합쳐서, 학회 개최 직전까지 주고받는 메일이 쓰레드로는 200개, 개별 개수로는 600통쯤 되지 않았나 싶다. 준비하는 논문이 있는 대학원생이라면 등록 업무 맡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애초에 대학원생이 할 일이 아니다--시간 여유가 된다면 한번쯤 학회가 어떻게 돌아가나 경험해보는 의미는 있다. 하지만 절대 연구에 도움이 되는 짓은 아님을 말해두고 싶다. 흠... 그래도 굳이 장점을 꼽는다면 chair들과 메일을 자주 주고받게 되므로 좀더 친해질 수 있다는 거?)</p>
<h3>카드 결제 시스템</h3>
<p>등록 업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수금(收金)이랄 수 있겠다. 예전 PAM 2009 때는 온라인 해외결제가 불가능하여 외국인들을 일일이 카드번호를 FAX로 받아두었다가 나중에 현장에서 카드결제를 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하지만 등록과정이 불편하고, 개인정보에 민감한 사람들은 카드번호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도 꽤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번에는 정보과학회에서 온라인 결제 대행업체(이쪽 업계 용어로는 payment gateway의 약자로 PG社라고 주로 부르는 듯) 2곳과 계약이 되어있다고 하여 이를 이용하게 되었다. 각 업체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p>
<p>A : Windows IE 기반의 ActiveX 플러그인만 제공하지만, 해외카드의 달러화 결제가 가능하다.<br />
B : cross-browsing 결제를 지원하지만, 해외카드 결제를 지원하지 않는다. 우리쪽 서버에 SSL 연결이 지원되어야 한다.</p>
<p>해외등록자들의 결제 문제 해결이 주 목적이었으므로 A를 선택했다. 하지만 거기엔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었다. orz</p>
<ol>
<li>국내에서 해외카드 결제 받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호환이 안 되는 카드가 매우 많았다. 심지어는 똑같은 카드로 똑같은 PC에서 여러 번 재시도하는데 매번 에러메시지가 다르게 나온 경우도 있었다. MIT 모 교수님이 결제를 못하고 있는 걸 뒤늦게 발견(...)해서 식겁... 결과적으로 해외등록자의 절반 정도만이 온라인 카드결제에 성공했고, 나머지는 PAM 2009 방식의 현장결제로... ㅠㅠ</li>
<li>국내카드에서는 이른바 test mode가 지원되어 실제 결제 없이 연동 테스트가 되는데, 해외결제는 실제 해외에서 발급받은 신용카드로 실제 결제롤 시도해봐야만 100% 연동테스트가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A사의 API는 test mode를 켜면 결제가 된 것처럼 작동하지만 실제로는 test mode라는 '오류 코드'가 리턴되기 때문에 성공한 경우에 대한 테스트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초반의 해외등록자들은 본의 아니게 베타테스터가 되었다. (...)</li>
<li>ActiveX만 제공된다는 것도 문제. 호주의 어느 연구소에서 오는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그곳은 IE 사용 금지인 환경이라 Firefox나 Chrome만 쓴다고 한다. 결국 그 중에 한 분이 교수님과 나를 수신인으로 하여 항의메일을 보내왔고, 이와 관련하여 향후 크로스브라우징 결제 시스템 구현이나 개인정보 송수신을 위해 <code>*.kaist.ac.kr</code> 도메인에 대한 SSL 인증서를 쓸 수 있음 좋겠다는 맥락과 마침 진행 중이던 연구실 서버 인증 통합 작업 맥락을 합쳐 썼던 <a href="https://twitter.com/achimnol/status/216493329943244800">내 트윗</a>을 시발점으로 비공식적인(?) KAIST 내부 서버를 위한 SSL 인증서신청 서비스가 탄생하였다. (!)</li>
<li>국내결제의 경우 대부분 문제 없었는데, 유독 서울대 모 연구실에서만 결제가 안 되어 단체로 11명이 현장결제. 결제플러그인에서 에러가 난다는데 내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라 어떻게 해줄 수가 없었다. 뭐랄까, 가장 "덜" ActiveX 친화적인 내 Windows 7 64bit PC에서 돌아가는 IE 9에서도 결제가 잘 되고 문제점 재현이 안 되니...;;</li>
</ol>
<p>결론: 걍 다음부터는 (수수료 좀더 나오더라도) paypal 씁시다.</p>
<h3>"민원" 응대하기</h3>
<p>초반에는 VISA invitation letter 써주는 게 주를 이루지만, 후반으로 가면 별별 이메일이 다 날라온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p>
<ul>
<li>공항에서 포스터 잃어버렸어요! 한국에서 다시 인쇄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ul>
<li>현수막 제작업체가 포스터 인쇄도 가능하다고 하여 학회 당일날 연결해줌. 베이징에 내린 60년만의 폭우로 비행기가 5시간 연착되었는데 그 와중에 포스터를 잃어버렸다고 함. (사실 나도 OSDI 2010 갈 때 아시아나 회원카드 만드는 부스에 포스터를 놓고올 뻔했던지라 뭐라 할 수가 없었다. ㅋㅋㅋㅋ ㅠㅠ)</li>
</ul></li>
<li>나 vegetarian (lacto/ovo is ok)인데 식사 지원 되나요?
<ul>
<li>국제학회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꼭 받게 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은 대표적인 "vegetarian unfriendly" 나라이므로 사실 마땅한 대처방법은 없으나, 그래도 호텔 정도 된다면 미리 몇명분은 vegetarian으로 준비해달라고 부탁을 시도해볼 수 있다. 이번 경우에 문제는, 딱 한 명만 명시적으로 이메일로 물어봐서 그 사람만 따로 고려해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인도에서 온 친구들 중 상당수가 알고봤더니 vegetarian이었다는 거. 혹시라도 독자 중에 이런 업무 맡는 분이 있다면 애초에 온라인 등록 화면에 옵션을 넣어두도록 하자. 참고로 lacto는 유제품 ok, ovo는 계란 종류 ok라는 뜻이며 vegetarian도 여러 등급이 있으니 주의할 것.</li>
</ul></li>
<li>한국대사관에 이야기 잘 좀 해주세요~
<ul>
<li>같은 지역에서 오는 사람이고 똑같이 invitation letter를 써줘도 사람에 따라 어떤 경우는 더 까다롭게 심사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중동 출신의 프랑스 유학생이었던 모 학생의 경우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에 장문의 이메일을 써줘야 했고, 인도에서 오는 모 학생의 경우 주인도 한국대사관에서 직접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li>
</ul></li>
<li>홈페이지에 xxx 업데이트해주세요~
<ul>
<li>내 경우 홈페이지 관리를 함께 맡았기 때문에 vice chair로부터 많이 받았던 메일이다. technical program 업데이트, call for posters, submission guideline, 논문의 camera ready 버전 업로드, 슬라이드 업로드 등등의 업무가 있었다. 자체 제작한 Django 기반의 Markdown 포매팅을 지원하는 static page app을 이용해서 어렵지 않게 해결. copyright 문제로 논문 공개 시 비밀번호를 걸어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random word generator로 예측 불가능하지만 외우기는 쉬운(adj + noun) 비밀번호를 생성해서 사용하였다.</li>
</ul></li>
</ul>
<h3>현장 세팅하기</h3>
<p>그래도 연구실 사무원님이 실제 장소·버스 등의 각종 예약업무와 지정 숙박장소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맡아 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현장 준비는 누군가 따로 챙겨야 했다. 학회 전주 중반이 다 지나도록 아무도 이야기를 안 꺼내길래 내가 준비목록 리스트를 부왘 적어서 메일로 보냈더니 그제사 급하게 사람들이 할당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p>
<ul>
<li>자리배치 : 우리는 한 책상에 3명씩 총 8행 6열로 144명의 자리를 준비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왔던 데다가 사람들이 앞자리는 잘 안 앉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바람에 나중에 추가로 뒤에 의자를 배치해야 했다.</li>
<li>포스터 배치 : 호암교수회관의 경우 이동식 칠판(부직포로 되어 있어 압정으로 종이 고정 가능한 것)들을 갖추고 있다. 학회장 홀 앞이나 홀 내의 빈 자리를 활용하면 된다.</li>
<li>학회장에 전원코드 설치하기 : 대여가 가능하면 좋고 아니면 직접 준비해야. 우리는 5구 24개 구입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조금 적어도 되었을 것 같다.</li>
<li>학회장 무선랜 지원 알아보기 : 호암교수회관의 경우 자체 무선랜이 있고 별도로 공유기를 설치해주는데, 자체 무선랜은 계정이 필요해서 공유기만 알려줬더니 100명이 동시접속하자 바로 먹통. 다행히 자체 무선랜 한 계정을 여러 사람이 로그인해서 써도 된다는 점을 발견하여 해결.</li>
<li>질의응답 마이크 : 내가 가본 OSDI/SOSP 모두 청중석 통로 중간에 스탠딩 마이크를 놓고 발표 끝날 때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줄서서 질문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 방식을 그대로 따랐음. 여기서는 무선마이크를 제공했는데 둘째날 첫 세션 후 마이크 배터리가 다 나가서 교체해야 하는 일이 있었으니 행사장소 staff와 항상 컨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li>
<li>프로젝터는 미리미리 테스트. 노트북과 프로젝트 모두 별도로 대여. 보통 이런 학회는 각 세션마다 session chair가 발표자들을 불러서 미리 프로젝터 연동을 확인하고 문제가 있으면 chair 개인의 것 또는 행사장에서 대여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하는 과정을 거친다.
<ul>
<li>발표자로서 준비할 때는 슬라이드에 파스텔톤 색깔을 가급적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프로젝터가 최신 DLP 타입이 아니라면 대개의 경우 색상이 많이 죽는다.</li>
</ul></li>
<li>등록데스크 준비 : 등록자 명찰 준비하는 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이번엔 아이디어를 좀 써서 식사 티켓과 일정표를 뒷면에 붙여주었다. 정보과학회에서 현장결제 지원 나오시는 분께 등록자 목록도 잘 정리해서 드려야 한다. (잘못하면 첫날 아침에 그분이 멘붕하는 수가 있다)</li>
<li>식사 티켓 확인 : 식사장소에서 인원 확인해준다고는 하지만, 나중에 정확한 정산을 위해서 귀찮더라도 별도로 티켓을 받아두는 것이 좋다. 이번에도 첫째날 점심 때 예상보다 사람이 많아 뷔페 인원수를 급히 늘렸는데, 우리가 세어본 바로는 142명인가가 먹었는데 뷔페 측은 160명쯤 되는 거 아니냐라고 해서 역시 확인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뷔페는 대개 실제 먹은 인원수가 아니라 미리 계약한 인원수만큼 돈을 내게 되어있지만 그래도 행여나 딴소리 못하게 막는 수단이 된다. 리셉션과 포스터세션의 경우 별도 음료수 쿠폰을 제공하여 역시 먹은 개수만큼만 정산하기로 한 상태다.
<ul>
<li>사실 이번에 예산 계획 세울 때 국내의 학회 상부상조 관행에 따라 국내등록자들 중 상당수는 등록만 하고 실제로 참가는 안 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여 식사 인원수를 등록 인원수의 70% 선으로 잡았는데, 거의 빠지지 않고 다 와주시는 바람에(...) 좀 모자랐다. 쉬는 시간의 커피와 다과도 꽤 모자랐음. 식사는 보통 당일에 10~20% 정도 인원수를 늘릴 수 있지만 사전에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 좋다. 게다가 이번엔 온라인 등록 없이 현장에서 바로 등록한 경우도 30명 가까이 되어 더욱 예측이 힘들었다.</li>
</ul></li>
</ul>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APSys-2012-%EC%9B%8C%ED%81%AC%EC%83%B5-%ED%9B%84%EA%B8%B0?commentInput=true#entry1081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Research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Research2012-07-18T18:33:23+09:002012-05-04T04:39:20+09:00<p>대학원에 들어온 후로 준비했던 논문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 석사졸업연구로 진행했던 "DoubleClick: Click modular router의 성능 향상에 관한 연구"를 얼마 전 <a href="http://apsys2012.kaist.ac.kr">APSYS</a>에 submit하었고(물론 accept될지 안될지는 아직 모름) PacketShader의 후속 프로젝트로 진행한 nShader라는 network application을 위한 GPU/CPU task scheduling framework 연구가 있다. 원래는 이걸로 이번에 <a href="http://static.usenix.org/events/osdi12/index.html">OSDI</a>에 논문을 내려고 했지만 생각했던 대부분의 프로그램 구현과 실험을 거의 모두 했음에도 writing 미비로 제출하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루어졌다.</p>
<p>몇 차례 연구를 진행하고 논문을 쓰다가 막판에 내지 못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되었다.</p>
<p>한 가지는 아직 충분한 스토리라인을 만들기 위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내가 전에도 적은 적이 있듯이, 석사생활을 되돌아보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논문을 "좀더" 많이 읽지 못했다는 점이다. 논문을 하루에 한편씩만 꾸준히 읽어도 엄청난 자산이 되는데, 문제는 단순히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critical thinking을 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논문을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부분은 요즘에 와서야 좀 감이 오는 것 같다. 논문을 읽으면 예전엔 그냥 '우왕 그렇구나'하고 설득당했는데(...) 요새는 '이러이러한 방법도 있는데 왜 안 썼지?', '이 대상에 이 방법을 적용하는 것보단 다른 방법이 나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했지?', '이 문제를 풀 땐 이게 어려운 점일 것 같은데 제대로 설명하고 있나?', '이 방법을 다른 대상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등등의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p>
<p>논문을 많이 못 읽었던 이유는 뭐랄까,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일단 교수님이 이런 문제 한번 들여다보자 하고 던져준 것으로 시작했는데---처음이니까 일단은 연구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생각으로---실제 그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기까지 문서화되지 않은, 선배들이 했던 삽질을 또 하느라 허비한 시간이 너무 많았다. 이건 단순히 선배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알아야 선배들한테 질문을 할 수 있을 텐데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질문을 할 것인지 아니면 혼자서 더 살펴볼 것인지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깨닫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실 최광무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 학생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수업이나 조교하는 오버헤드도 있었지만 이건 누구나 공통적으로 하는 일이니까 나만 힘들었다고 말할 수 없겠다.</p>
<p>그래도 다행히 석사졸업을 무사히 할 수 있었던 건, 그러다가 막판에 선택과 집중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졸업논문 데드라인 한달 남겨놓고 연구의 범위를 확 좁혀들어가니 논문의 스토리라인이 명확해지고 해야 할 일도 명확해지고 그 전까지 했던 삽질 노하우를 모두 활용하게 되면서 순식간에 논문을 써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 다시 석사논문 읽어보면.... 음... 이건 흑역사다. ㅋㅋ</p>
<p>요번에 APSYS 논문 제출하고 나서 출장가신 교수님과 영국에 있는 건이형과 함께 Skype 채팅으로 잠깐의 회고를 진행했다. '그래도 이번엔 submit은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는 되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건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그리고 OSDI 논문이 불발되고 나면서 다시 건이형과 회고한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그 내용을 기억해두기 위해 글로 정리해본다.</p>
<p>지금까지의 경험과 선배들의 조언을 종합해보면, 좋은 (공학) 논문은 다음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p>
<ol>
<li>어떤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설득한다.</li>
<li>그 문제를 내가 어떻게 풀었는지 이해시킨다.</li>
<li>그렇게 푼 방법이 타당함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으로(실험이나 수학적 증명 등) 보여준다.</li>
<li>다른 사람들의 관련 연구와 비교했을 때 내 방법이 가지는 차별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준다.</li>
<li>이를 다른 연구자들이 같은/비슷한 문제들을 궁금해할만한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서 학회에 발표한다.</li>
</ol>
<p>그러니까 나는 2번, 3번에만 집중하고(물론 이것도 아직은 구멍이 여기저기 많지만) 1번과 4번을 제대로 못했던 것이다. 5번은 약간의 운도 따라야 하는 부분이고 1번과 4번을 잘 하면 해결되는 부분이기도 해서 여기선 논외로 한다.</p>
<p>교수님의 코멘트는, 내 writing이 일단 내 생각을 비비 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잘 보여준다는 점은 괜찮은데, 생각이 너무 단순하다는 것. '그래서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어떤 vision과 통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보고 소설(...)을 좀 읽고 상상력을 키우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하시기도 했다;; 복잡미묘한 스토리라인과 플롯이 전개되는 과정을 보라는 뜻이셨을까. (그래도 다행인 건 내 writing이 무슨 소린지는 전달이 된다는 점. -_-) 뭐, 내 해석은, 그렇다고 정말 논문을 소설처럼 쓰라는 뜻이 아니라, 이른바 '큰 그림'을 좀더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p>
<p>건이형의 코멘트 및 해석은, 좀더 깊이있게 생각하는 연습을 해보라는 것이다. 일단 글로 써놓고 고쳐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지만, 먼저 머릿속에서 논리의 흐름을 정리한 다음 이걸 교수님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고 피드백받는 과정을 많이 거쳐야 한다는 것. 그러다보면 교수님이 구멍이 있는 부분을 잡아내고 그걸 메꾸려다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논문도 찾아보고 스스로 고민하게 되면서 스토리라인을 잡아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반복하다보면 좀더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그동안 쌓인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게 되고 그게 익숙해지면 더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자기가 Microsoft Research에 포닥으로 가서 두달째 하고 있는 일이 그러한 토론만 주구장창하는 거라면서, 내가 지금까지는 일단 연구를 시작해놓고 논문 데드라인 닥쳐서 스토리라인을 만들려다보니 시간도 없고 급하게 하느라 힘든 것인데 일단 구현부터 하고 보는 bottom-up 방식으로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발견이 나올 수도 있지만 top-down으로 많은 토론을 거쳐서 주제를 잡아야 나중에 논문 쓸 때 스토리라인이 균형있게 잘 잡힌다고 이야기해주었다.</p>
<p>생각해보면, 석사 때 PacketShader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 자체가 "내가 이 주제가 정말 재미있는지는 아직 감이 안 잡혀서 모르겠지만, 일단 대충 관심분야는 맞으니 우선 부딪혀보면서 연구하는 방법을 배우고 경험을 쌓자"라는 것이었지, 내가 어떤 문제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걸 왜 풀어야 하는지 어떻게 풀고 싶은 것인지가 있는 게 아니었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교수님을 설득하려고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약간은 닭과 달걀의 관계도 있는 게, 그래도 뭔가 방법을 만들어갔고 이걸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설득하려고 했으면 좀더 유익한 피드백을 받고 이런 깨달음에 더 빨리 도달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교수님조차 설득하지 않는데 어떻게 좋은 스토리라인이 나오며 어떻게 좋은 논문을 쓰리요. ㅠ_ㅠ 그걸 처음 제대로 시도(?)한 게 졸업논문(DoubleClick)과 글로벌박사펠로우십 연구제안서인 것 같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교수님들이 미팅 때 '그건 왜 그렇게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가끔(?) 던지셨던 것 같기는 한데, 그냥 '어떻게' 하는지만 생각하고 대답하기도 바빠서(?) 간과했던 적이 많았다.
앞으로는 교수님을 설득하는 연습부터 시작해야 할 듯.</p>
<p>문득 예전에 보았던 글이 떠오른다. <a href="http://juliopeironcely.com/archives/phd-tip-you-are-the-expert-not-your-professor.html">"You are the expert, not your professor."</a> 찾아보니 이런 발표 자료도 있다: <a href="http://www.cse.unsw.edu.au/~tw/manage.pdf">"Managing your supervisor"</a></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Research?commentInput=true#entry1077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제주 강정마을 사태를 보면서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A0%9C%EC%A3%BC-%EA%B0%95%EC%A0%95%EB%A7%88%EC%9D%84-%EC%82%AC%ED%83%9C%EB%A5%BC-%EB%B3%B4%EB%A9%B4%EC%84%9C2012-03-09T04:14:44+09:002012-03-09T03:55:50+09:00<p>페이스북에 한 친구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강정마을 사태에 대해 글을 쓴 걸 보고 나도 안 그래도 생각을 한번 정리해야겠다 싶어서 짬을 내어 글을 써본다.</p>
<p>뭐, 여러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볼 수 있을 텐데, 우선 나는 근본적으로 아래와 같이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내가 대통령이나 국방장관 쯤 되는 위치에 있다면, 아랫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주고 나를 설득시켜보라고 했을 것 같다.</p>
<ol>
<li>해군기지가 꼭 필요한가?
<ul>
<li>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수단인가? 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li>
<li>해군기지를 짓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예: 해군함정을 더 건조한다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li>
</ul></li>
<li>해군기지가 필요하다면, 꼭 지금 거기(강정마을)에 지어야 하는가?
<ul>
<li>다른 장소 또는 다른 시기에 짓는 것이 더 최적의 방법일 수 있는가?</li>
</ul></li>
<li>지금 거기에 해군기지를 지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을 것인가?
<ul>
<li>해군기지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기 위한 건설조건 + 주민들의 생활터전 확보 및 사유재산 보상 문제 + 자연보존이라는 3가지 목표를 함께 달성하기 위한 중간의 타협지점이 어디인가?</li>
</ul></li>
</ol>
<p>제주도 해군기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전 정권에서 논의가 이루어졌고, 실질적인 일 추진은 현 정권에 들어와서 진행되고 있다. 꽤 오랜 시간 추진되어온 일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 정부의 누군가는 나름대로의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이렇다.</p>
<ul>
<li>어떠한 과정을 거쳐 지금 거기에 지어야 한다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는가?
<ul>
<li>의도적으로 누군가(정부요인, 정치인, 또는 건설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이득을 바라고 진행된 부분은 없는가?</li>
<li>동북아 정세와 군비경쟁 등을 고려할 때 해군기지 건설이 정말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국방 강화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인가?</li>
<li>추진과정에 필요한 모든 절차(의견수렴, 환경영향평가 등)를 빠짐없이 충실하게 따랐는가?</li>
</ul></li>
</ul>
<p>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도 있다.</p>
<ul>
<li>꽤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일인데, 언제부터 이 해군기지 건설계획에 대한 정보가 공개적으로 알려졌으며 언제부터 그에 대해 이의제기를 해왔는가?
<ul>
<li>각 단계에 적합한 방법으로 반대의견을 피력했는가?</li>
</ul></li>
<li>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해군함정을 더 만든다거나 등)
<ul>
<li>해군기지의 필요성 자체에 동의할 경우, 제주도 강정마을 말고 어디가 최적이라고 생각하는가?</li>
<li>당장 장소 대안은 없더라도, 강정마을 자연이 보존가치가 높기 때문에 일단 거기에 지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보존가치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무엇인가?</li>
</ul></li>
<li>정부가 어쨌든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물리적인 진입과 시위 및 감정적인 호소 말고 냉철하게 생각했을 때 진행을 중단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은 무엇인가?
<ul>
<li>반대하는 사람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지만, 크게 찬성/반대 의견이 없던 사람들이 보기에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는 부분도 많고 정치인들이 이걸 기회로 편가르기한다는 느낌도 많이 나는데 접근방법을 달리할 수는 없는 것인가?</li>
</ul></li>
</ul>
<p>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군사기지 건설이기 때문에 처음 논의과정은 비공개로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와 같은 장소에 군사기지를 만든다면 필연적으로 민간인들에게 노출이 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해군기지 자체의 필요성이 합의된 이후 장소와 시기를 결정할 때는 충분한 공개적인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의견수렴 과정에서 반대의견이 나왔고 그것이 충분히 인정된다면 계획을 수정하거나 취소하는 것도 가능해야 하는데 그런 '여유'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정말로 그 반대의견이 얼마나 타당한지 충분히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p>
<p>과연 강정마을 해군기지의 전말이 후대에는 어떻게 기록될까 궁금하다.</p>
<p>ps. 나는 개인적으로, 군사전문가들이 올바로 판단해서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결정된 것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해군기지 건설 자체는 찬성한다. 그것이 전 정권에서의 일이었든 현 정권에서의 일이었든 상관 없이.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건설 추진하는 사람들도 답답하고 그거 반대하는 사람들도 답답하다. 이를 어찌해야 좋을꼬. 나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정보와 배경지식이 부족하니 뭐라고 판단하기가 어렵다.</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A0%9C%EC%A3%BC-%EA%B0%95%EC%A0%95%EB%A7%88%EC%9D%84-%EC%82%AC%ED%83%9C%EB%A5%BC-%EB%B3%B4%EB%A9%B4%EC%84%9C?commentInput=true#entry1080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2011년 회고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2011%EB%85%84-%ED%9A%8C%EA%B3%A02012-01-01T02:41:21+09:002012-01-01T02:27:47+09:00<p>이번 주에는 석사논문 마무리와 연구실 서버실 재정비 작업으로 인해 12월 31일 당일이 되어서야 다시 집에 왔다. 올 한해는 심리적으로 참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또 그만큼 얻은 것들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한해 해왔던 주요 일들을 정리해본다.</p>
<p style="text-align:center; color:#aaa">*</p>
<h2>석사 연구 - "DoubleClick: Boosting the performance of Click modular router"</h2>
<p>내가 석사과정 동안 해온 연구는 고성능 소프트웨어 라우터에 관한 것이다.</p>
<p>라우터는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데이터 전송 단위인 패킷(packet)들을 각 패킷에 쓰여진 목적지 IP 주소를 보고 어디로 보낼지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장비이다. 전세계에 깔린 인터넷망에 골고루 접속하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셈이다. 이 라우터를 만드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는데, IP 주소를 보고 목적지 정보를 가져오는 연산 하나에 엄청나게 최적화된 전용 하드웨어 칩(content addressable memory)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고(대부분의 상업용 라우터는 이런 칩들을 사용한다) 소프트웨어 라우터처럼 범용 PC 기반의 소프트웨어만으로 구현되는 종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손쉽게 기능을 바꾸거나 추가할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TCP/IP가 아닌 새로운 종류의 네트워크 프로토콜을 연구한다든지 혹은 IDS(침입 탐지 시스템)나 방화벽 같이 복잡한 규칙을 구현해야 할 때 많이 사용한다.</p>
<p>하지만 소프트웨어 라우터의 가장 큰 문제는, 성능이 낮다는 점이다. Linux를 써서 "그냥" 구현하면, 아무리 i7급의 최신 쿼드코어 CPU를 박아도 10 Gbps의 트래픽을 처리하기가 버겁다. 일반 가정에서야 100M 광랜 정도면 충분하지만, 인터넷망의 근간을 구성하는 라우터는 100 Gbps는 보통이고 심지어 Tbps 급 장비도 존재하는 세상이다. 방화벽의 경우 기업 데이터센터의 관문(gateway)으로 설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수십 Gbps 정도는 거뜬히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a href="http://shader.kaist.edu/packetshader/">연구실 선배들이 했던 일</a>은, Linux에 들어가는 10 Gbps급 랜카드 드라이버를 최적화하고 패킷 처리 연산 중 복잡한 부분을 CPU가 아닌 GPU에 맡김으로써 일반 PC로도 40 Gbps 이상의 성능을 낼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네트워크나 시스템 분야의 해외 학회에서는 PacketShader라고 하면 꽤 유명하다.</p>
<p>내가 한(…이라기보다 하려고 했던…) 일은 PacketShader 플랫폼이 한 번에 한 종류의 패킷 처리 연산(IPv4/IPv6 routing, IPsec encryption 등)만 돌리도록 최적화된 것을 여러 종류의 패킷 처리를 동시에 같이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실제 PacketShader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 작년 여름부터인데, 처음 6개월 동안은 "PacketShader를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써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목표로 control plane이라고 해서 라우팅 테이블(IP 주소와 목적지를 연결시켜주는 정보) 관리하는 기능을 구현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올해 초 방향을 바꿔 여러 패킷 처리 연산을 동시에 돌릴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가을까지 내내 그걸 구현하려고 삽질했는데, 졸업논문 데드라인 3주 전이 되어서야(!) PacketShader 기반으로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차라리 이미 modular archiecture가 잘 구현되어 있는(그러나 성능은 낮은) Click modular router의 성능을 개선하는 쪽으로 접근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랄라; 처음 생각은 성능이 좋은 시스템을 모듈화하는 것이 쉽지 않을까였는데, 생각을 바꿔서 모듈화된 시스템의 성능을 높이자는 것이 된 셈이다.</p>
<p>결과적으로, 11월 한달 간 벼락치기한 졸업논문 연구를 통해 PacketShader에서 적용했던 최적화 기법들을 Click에 맞게 변용하여 PacketShader처럼 대략 30 ~ 40 Gbps 급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원래 Click을 그냥 돌리면 10 Gbps도 채 나오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환상적으로 보이지만, 이걸 실제로 "다른 사람이 쉽게 가져다 쓸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원래 연구라는 게 다 그렇기는 하지만, 실제 해보면서 느끼는 건 역시 '제품화', '상용화'라는 게 정말 귀찮고 힘든 일이라는 것.</p>
<p>이제는 연구와 개발(코딩)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도 감이 오고 연구와 개발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 것 같다. 말하자면 연구는 top-down approach(하향식 접근)이고 개발은 bottom-up approach(상향식 접근)라고 할 수 있겠다. 항상 코딩할 때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내가 이 코딩을 왜 하고 있는지, 이것이 연구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점이다. 코딩 자체의 재미를 좇아가다보면, 무언가 일은 열심히 했는데 연구 결과물은 남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 또, 매주 있는 교수님과의 연구 미팅에서도 "내가 한 일"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무슨 일을 어떤 의문에 답하기 위해 했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또는 무엇 때문에 결과를 얻을 수 없었는지"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특히나 나처럼 오픈소스로 하고 싶은 거 하는 순수한 지적 유희의 재미를 즐기던 사람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연구에 당장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시간 절약에 도움이 되는 refactoring 같은 작업을 해두면 좋다.</p>
<p>다만, 석사과정 하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생각보다 논문을 많이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숙독이 아니라 통독이라도 하루에 논문 1~2개씩은 봐야 한다고들 이야기하는데, 코딩에 치이다보면 며칠, 몇주씩 논문을 거의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새해부터는 일주일에 2번 정도는 한나절 내내 논문만 읽는 시간을 따로 잡아볼 생각이다. 주말에 한번, 매주 있는 연구미팅 끝나고 한번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p>
<p style="text-align:center; color:#aaa">*</p>
<h2>POPONG (Open Politics Engineering) - IT 정치참여 플랫폼 프로젝트</h2>
<p>2010년 말부터 SPARCS 몇몇 선후배들을 주축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로, IT 기술(여기서는 주로 소프트웨어를 의미)을 이용해 일반인들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하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도록 돕는 일련의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개발하자는 것이 목표이다. 또한 공돌이들이 물건만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도 하나의 동기가 되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라는 틀과 선거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되,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선거와 집회만으로는 정치 참여의 수단이 너무 부족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선거기간에 사람들의 선택을 돕고 선거기간이 아닌 때에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에 대한 감시와 여론 수집의 역할을 함께 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 신앙적 관점에서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의 구현 주체인 한 사람으로서 적어도 현재까지는 최선이라 여겨지는 지향점인 민주주의 시스템이 정말 사람들을 위해 동작하도록 만들고픈 것이기도 하다.</p>
<p>나는 학부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정치는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나, SNS의 급격한 보급과 더불어 주류 언론에는 잘 알려지지 않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일들을 보았고,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관점의 차이가 얼마나 다른지, 또 사람들이 생각보다 논리적·합리적이지 않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 따라 맹목적인 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접하게 되면서, 사실은 내가 정치적 영향에서 살짝 빗겨난 위치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 민주화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인 것이고, 그런 것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 생활도 많이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니 정치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p>
<p>처음엔 공공데이터 개방과 활용에 초점을 둔 "정부 2.0" (government 2.0) 운동에 대한 해외 동향을 공부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도 <a href="https://groups.google.com/forum/#!forum/gov20kr">관련 움직임</a>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우리는 "정치 2.0" (politics 2.0)으로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여기서 2.0이라는 버전 번호를 붙인 것은 웹 2.0이 OpenAPI와 웹표준 준수를 통한 웹서비스의 개방과 소비자들의 참여 확대라는 트렌드를 가리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2.0이라 함은 선거로 뽑히는 지역자치단체 수장들과 행정부의 수장 대통령 및 국회의원·시/도의원 등의 전유물이었던 정치를, 선거라는 기존의 틀에 박힌 참여 방법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사회적·정치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웹과 모바일앱이라는 도구를 활용해보자는 것이 그 취지다. 얼마 전 다음세대재단에서 주최하는 비영리 미디어 컨퍼런스 <a href="http://changeon.org/conference/2011/">"ChangeON"</a>에서 프로젝트 리딩하는 은광 형이 <a href="http://vimeo.com/33581474">발표한 내용</a>을 보면 좀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p>
<p>여기에서 내가 맡은 일은 국회에 공개된 회의록이라든지 웹에 올라오는 정치 관련 글들을 기계적으로 가공하여 유용한 정보를 뽑아줄 수 있는 기반 '데이터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뭐, 말은 거창하지만 시작은 소규모로 간단하게 quick & dirty (…)의 정신을 발휘하여 되는대로 걍 하고 있다. 역시 refactoring의 유혹이 근질근질하지만 내가 이 프로젝트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힘들 것 같다. ㅠㅠ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게 한국어 NLP(자연 언어 처리)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 나는 NLP 자체보다는 이런 기반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일이 더 재미있기 때문에 내가 그쪽을 파고들 것 같지는 않지만(NLP 이론은 아니지만 이런 맥락에서 연구하신 분이 최근에 팀에 합류하기도 했고), 해외 유수 학술지에 나가는 연구만 주로 인정받는 국내 현실에서 한국어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NLP에 좀더 많은 투자나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p>
<p>2011년 한 해 동안 이 프로젝트에서 외부로 공개된 결과물은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후보 별 공약을 비교하고 이슈 타임라인을 제공한 <a href="http://www.popong.com/iamseoulmayor">'나는 서울시장이다'</a> 사이트다. 기술적으로는 굉장히 단순한 웹사이트이지만---3명이서 대략 3일 정도에 뚝딱?---기획 면에서는 나름 고민을 많이 한 티저 격의 사이트이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뭔가 가치를 주기 위해서는 백엔드/프론트엔드의 다양한 기술이 결합되어야 하기에, 정말 골수 전산시스템을 다루는 연구와 달리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어떤 감각을 유지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실, POPONG 프로젝트를 통해 함께 공부하고 배운 이런저런 웹기술들이 나중에 GFI PacketShader 데모 준비할 때 도움이 되었다는.</p>
<p>이 프로젝트에 좀더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만, 그래도 대학원생의 1순위는 연구이기 때문에 좀더 못하는 점이 아쉽고, 특히나 2년간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뭔가 의미 있는 연구 결과가 나오려면 다른 일 신경쓰지 않고 정말 거기에 집중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대해 내가 가지는 강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올해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라는 빅 정치이벤트가 겹쳐있다는 거.</p>
<p style="text-align:center; color:#aaa">*</p>
<h2>성가대</h2>
<p>학부 때부터 주말에 학교에 있을 때면 가까운 궁동성당에 가곤 했는데, 대학원에 오면서 거의 대전에 있게 되자 본격적으로 성가대를 시작한 것이 벌써 1년 반이 넘었다. 이제 미사곡들은 어지간한 건 불러봐서 많이 익숙해지기도 했고, 특송이나 축가처럼 성부 나누어 부르는 것도 (여전히 음정 불안불안하기는 하지만) 나름 재미를 느끼는 단계가 된 것 같다. 내가 옛날부터 피아노를 취미로 쳐왔기 때문에 직접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게 된 것도 있고, 특히 여러 성부로 나누어진 곡을 함께 부르면서 연습 끝에 화음이 맞는 걸 느낄 때의 그 좋은 기분은 아마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혼자 치고 즐기는 피아노와 달리 여러 사람이 함께 마음을 맞춰 노래하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즐거움이 있다.</p>
<p>올 한해는 이 성가대 덕분에 힘들기도 하고 보람도 느끼고 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바로 성가대 단장을 맡았던 것.;; 가톨릭 전례력 상으로는 대림시기부터 새해가 시작하는데, 그에 따라 재작년 말부터 2011년도 총무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5월쯤 원래 단장을 하던 형이 직장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서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자 내가 단장을 맡게 되었다. 이번 1년 동안 논문 데드라인이 가까웠을 때를 제외하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룸메이트와 가족을 제외하면 일요일에 날 본 사람이 별로 없을 텐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p>
<p>연구와 병행하느라 매우 힘들었지만(특히 7월초 대전청년대회(DYD) 창작성가제 발표---내가 단장되기 전에 시작된 프로젝트라 좋든 싫든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를 앞두고 말 그대로 멘탈붕괴 사태까지 갔다), 과학고·카이스트와 달리 여자들이 과반이 넘는다는 점, 그리고 신앙공동체로서 지켜야 하는 명시적인/암묵적인 규칙들, 이런 특징들이 이뤄가는 하나의 조직체를 이끌면서 얻은 경험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러 면에서 그간 경험해봤던 오픈소스 개발팀이나 동아리, 연구실, 벤처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커뮤니티다. 이른바 여자들의 "thought cloud"라는 것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남자 중심의 커뮤니티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라는 점에서.)</p>
<p>성가대 단장 하면서 내가 변한 점이 있다면, 어떤 일처리를 할 때 전화로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 나는 무슨 사고가 났다든가 하는 정도의 정말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보다는 비동기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문자나 이메일을 선호하는 편인데, 일단 성당 커뮤니티 사람들이 이메일 같은 것과는 별로 친숙하지 않기도 하고 전화를 하는 것이 '예의'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음에는 일을 진행함에 있어 상당한 불편함이 있었지만 오히려 여기에 익숙해지니 사람과 직접 말로 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도 하고 더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만 내가 연구실 일로 바쁘거나 해서 무언가 연락을 취해야 할 일을 진행하지 못한다든가 했던 경우가 좀 있었는데, 사실 "technically" 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이런 것도 결국은 적응해서 하게 되더라.</p>
<p>신앙적 관점에서도 많은 것을 얻었다. 특히 가톨릭에서의 성인식이라 볼 수 있는 견진성사를 받은 것과 신학대 교수 출신의 새 주임신부님 덕분에 사도신경을 중심으로 한 견진교리 및 매달 있는 주임신부님의 특별강론 덕분에 신앙의 지식적 측면을 보완하면서 더 깊은 묵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을 들 수 있겠다. 성가대 활동이 힘들긴 했지만, 그 활동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얻은 신앙의 자산은 평생의 것이 될 것이다.</p>
<p style="text-align:center; color:#aaa">*</p>
<h2><a href="http://www.minecraft.net">Minecraft</a></h2>
<p>재작년부터 꽤나 오랫동안 즐겨온 게임인 <a href="http://oooz.net/tc/1357">마인크래프트</a> 또한 취미생활에서 2011년의 한 축을 이루는 주제라 할 수 있겠다. 마인크래프트는 스웨덴의 인디게임 개발자가 만든 샌드박스 게임이다. 특별한 종료조건 없이(엔딩이 나중에 업데이트로 추가되긴 했지만 엔딩을 봐도 본 게임은 계속된다.) 1m x 1m x 1m 형태의 정육면체 블럭들로 구성된 3D 세상에서 나무나 돌·광물을 캐는 자원수집이나 돼지·닭을 잡아먹는 것, 밤이 되면 생성되는 다양한 몬스터들과 싸우는 것이 기본 활동이다. 가장 큰 특징은 모아놓은 정육면체 블럭들을 마우스 오른쪽 버튼으로 다른 블럭에 붙이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p>
<p>이 게임을 하면서 느낀 건, 건축은 사실 사람의 욕망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것. 게임 내에서 처음 며칠(하루 = 20분)은 보통 안전한 집과 식량 보급 체계 마련에 투자하는데, 그 시기를 넘어가면 사람들이 슬슬 건축적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늘 끝까지 닿는 타워나 계단 또는 지하 끝까지 파고들어간 광산이나 지오프론트(…) 같은 것들이 나오고 시간이 더 지나면 현실이나 영화에 존재하는 대형건축물들을 옮겨짓는다든지(피라미드, 천공의 섬 라퓨타,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강남역 삼성타운 등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맵 전체를 가로지르는 철도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규모로 승부하게 된다. <a href="http://beforu.egloos.com/4531470">하나의 사례를 보라.</a> 몇몇 멀티플레이 서버에서 처음부터 개발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본 결과, 가장 기본적인 조형원리---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대칭성과 반복성---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축물의 기본 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인크래프트에서 제공하는 미니어처 자연 속에 이러한 조형원리를 갖춘 건축물은 단연 돋보인다. 자연 속에 규칙성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본성 중 하나가 아닐는지.</p>
<p>마인크래프트에는 비슷한 종류의 다른 게임들과 차별화되는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레드스톤(redstone)이라 불리는 특수 광물이다. 스위치나 레버의 동작을 원거리로 전달하여 피스톤 같은 기계장치를 작동시키는 데 사용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용도다. 현실에 비유하자면 실리콘과 같은 반도체라고 할 수 있는데, AND/OR/NOT 게이트의 구현이 가능하고 clock 반복자를 만드는 방법이 존재하여 실제로 이걸로 <a href="http://youtu.be/yuMlhKI-pzE">CPU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a> 물론 x86과 같은 복잡한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간단한 사칙 연산과 메모리 정도. 물론 이 CPU를 작동시키려면 게임 내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버튼을 하나씩 눌러줘야 하기 때문에 실행속도도 느리고 에니악스러운 느낌이다. 무한궤도 엘레베이터, 블럭을 피스톤으로 "적절하게" 밀어넣어 구현하는 <a href="http://youtu.be/pjQ9JL5E9gc">3D printer</a>, 카트가 자동 공급·회수되는 양방향 지하철 시스템과 같은 응용들이 나와있다.</p>
<p>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는 온라인 속담이 있다. (여기서 덕이라 함은 지덕체 할 때 그 덕이 아니고 오타쿠에서 유래한 것.) 최근의 KPOP 한류 열풍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양 아이들이 뭔가에 빠지면 엄청난 <a href="http://youtu.be/-JA35idPySQ">잉여력</a>을 보여주곤 하는데, <a href="http://youtu.be/8uyxVmdaJ-w">이런 동영상</a>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더 자유분방한 문화 때문인지, 평균 근로시간이 더 적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대단하다.</p>
<p style="text-align:center; color:#aaa">*</p>
<p>돌아보면 가장 힘들었던 때는 논문과 졸업 때문에 스스로의 압박을 느끼는 와중에 '내가 대학원에서는 별로 쓸모 있지 않은 존재인건가' 하는 자괴감과 때맞춰 찾아온 DYD 창작성가제 압박, POPONG 프로젝트 관련한 고민이 모두 한꺼번에 겹친 덕분에 때문에 한 3일간 아무 일도 못하고 그야말로 세상으로부터 몇주 정도 잠적하고 싶었던 7월 초였다. 문자 그대로의 멘탈붕괴였다. 졸업논문 앞두고 주제가 급변경되면서 내가 그동안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기 위한 일들을 뭔가 진행은 이것저것 했는데 하나의 논문으로 완성할 수 있을 만큼 진행한 것이 없어 고민했을 때가 두번째로 힘들었다. 농담 아니고 석사졸업 연기할까도 생각했었다. 결국 그럴 때 힘이 되는 건, 해결책은 제시해주지 못하더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가족뿐이더라. 이런 일련의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연구와 개발의 균형을 잘 잡고 또 연구와 연구 외적인 일들 사이의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는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한 것 같지만.</p>
<p>다가오는 2012년---이 아니라 가족들과 미사 갔다가 저녁 먹고 어쩌구 했더니 글을 쓸 시간이 많지 않아 이미 2012년이 되어버렸다---올해는 여러 일들의 균형을 잘 잡으면서 때에 따라 필요한 곳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길 바래본다.</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2011%EB%85%84-%ED%9A%8C%EA%B3%A0?commentInput=true#entry1079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SOSP 2011 출장 로그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SOSP-2011-%EC%B6%9C%EC%9E%A5-%EB%A1%9C%EA%B7%B82011-10-29T04:52:47+09:002011-10-29T04:51:00+09:00<p>이번 주 월화수 3일간 포르투갈의 카스카이스(Cascais, Portugal) 열리는 ACM SOSP (Symposium on Operating Systems Principles) 학회에 다녀왔다. 비행기표 끊을 때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하고 리스본으로 가는 비행기편이 아주 밤늦게 도착하는 것밖에 없어서 시차 적응 때문에 학회 당일 피로하지 않도록 하루 일찍 가는 편을 택했는데, 덕분에 포르투갈의 관광명소인 Sintra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온통 비바람 때문에 고생하긴 했지만... ㅠㅠ) 어쨌든, 관광에 대한 건 플리커 사진세트에 붙어있는 설명을 참고하고, 이 글에서는 학회 내용에 대한 것을 정리해볼 것이다.</p>
<div style="text-align:center">
<object width="400" height="300"> <param name="flashvars" value="offsite=true&lang=ko-kr&page_show_url=%2Fphotos%2Fdaybreaker12%2Fsets%2F72157627998359482%2Fshow%2F&page_show_back_url=%2Fphotos%2Fdaybreaker12%2Fsets%2F72157627998359482%2F&set_id=72157627998359482&jump_to="></param> <param name="movie" value="http://www.flickr.com/apps/slideshow/show.swf?v=109615"></param> <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src="http://www.flickr.com/apps/slideshow/show.swf?v=109615" allowFullScreen="true" flashvars="offsite=true&lang=ko-kr&page_show_url=%2Fphotos%2Fdaybreaker12%2Fsets%2F72157627998359482%2Fshow%2F&page_show_back_url=%2Fphotos%2Fdaybreaker12%2Fsets%2F72157627998359482%2F&set_id=72157627998359482&jump_to=" width="400" height="300"></embed></object>
<p class="cap1">플리커에 올려둔 <a href="http://www.flickr.com/photos/daybreaker12/sets/72157627998359482/">사진 모음.</a></p>
</div>
<p><a href="/blog/entry/OSDI-2010-출장">내가 작년 이맘때쯤 갔던 OSDI</a>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SOSP도 알 것이다. 이 두 학회는 각각 USENIX와 ACM이라는 두 단체가 거의 같은 내용을 가지고 격년제로 번갈아 여는데, 실제로 참여하는 학생들이나 연구자 커뮤니티는 똑같다. 역사는 SOSP가 훨씬 오래되었는데, 1967년부터 시작했으니까 시분할 시스템이라는 개념이 막 탄생하던 때쯤부터 이어져온 시스템 분야 최고의 학회이다.</p>
<p>이번에 내가 학회에 간 목적은 크게 1) <a href="http://sigops.org/sosp/sosp11/posters/posters/sosp11-display-poster44.pdf">포스터</a>(<a href="http://sigops.org/sosp/sosp11/posters/summaries/sosp11-final44.pdf">extended abstract</a>, 사실 실제 발표한 포스터는 설명 흐름을 부드럽게 하려고 순서가 살짝 바뀐 부분이 있음) 발표와 socializing을 통해 PacketShader 후속 연구와 관련한 피드백을 받고 <a href="http://sigops.org/sosp/sosp11/current/2011-Cascais/printable/17-rossbach.pdf">PTask</a> 및 <a href="http://www.pdos.lcs.mit.edu/papers/click:sosp99/paper.pdf">Click modular router</a>의 저자와 직접 만나 홍보 및 의견 나누기 2) 내년 인턴십 자리를 위해 기업들 미리 찔러보기 요렇게 두 가지였다.</p>
<p>포스터 발표에 대한 반응은 작년과 비슷했는데, PacketShader를 알고 온 사람들은 차이점이 무엇인지 무슨 추가적인 work을 하려는 것인지 물었고, 모르고 온 사람들은 GPU의 자체의 특징에 대해서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사람은 "experimental platform"이라는 말에 꽂혔다면서(?) 자기가 Emulab testbed 참여하는데 어떻게 쓰일 수 있는 거냐 묻기도 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피드백은 딱히 없었다. 몇 가지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냐 라는 제안은 받았는데 우리가 연구 과정에서 생각해본 범위 내였다. 예를 들면 branching/diverse code path에 약한 GPU에서 하기 어려운 router pipeline을 통째 GPU에서 구현하면 어떨까 라든지, 현재는 proprietary driver로 인해 불가능한 NIC-to-GPU direct copy라든지.</p>
<p>그래도 PTask 저자였던 Christopher Rossbach와의 만남이나 Click modular router 만든 (지금은 하버드 교수인) Eddie Kohler와의 만남은 그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지 알 수 있어서 소기의 성과를 건질 수 있었다.</p>
<p>PTask는 GPU에 대한 추상화를 운영체제에서 직접 제공해야만 운영체제 스케줄링에서 GPU의 workload나 CPU interaction을 함께 고려할 수 있어 더 나은 성능과 performance artifact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고, 여기에 disjoint memory를 사용하는 GPU로 오가는 dataflow를 datablock이라는 덩어리와 port끼리 연결관계를 미리 정의해놓는 일종의 UNIX pipe 개념을 활용해 다단계 행렬 곱셈 등에서 발생하기 쉬운 중복 복사를 막겠다는 아이디어가 들어가있다.</p>
<p>내가 발표 끝나고 했던 질문<sup id="fnref:question"><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SOSP-2011-%EC%B6%9C%EC%9E%A5-%EB%A1%9C%EA%B7%B8#fn:question" rel="footnote">1</a></sup>은 datablock의 내용 변경 여부에 따른 GPU/CPU side의 invalidation 과정에서 datablock 통째로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좀더 finer granularity (예를 들면 PacketShader에서는 한 datablock에 여러 개의 packet이 들어있을 수 있으니까)로 하는 것이 좋을지 물었는데, PCIe bus 타는 횟수를 줄이려면 자기가 한 것처럼 통째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답을 들었다. 나중에 쉬는시간에 만나서 현재 Windows용 버전밖에 없는 것 같은데 공개할 계획이 있는지 물어보니 지금 코드는 MSR 내부 사정으로 공개가 불가능하나 참여한 대학원생들이 Linux 버전을 만들고 있다고 하고, PacketShader 팀하고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 얘기로는 PTask 연구의 문제점을 짚는다면 실제로 그러한 abstraction이 유용한 경우가 얼마나 있을 것인지 설득력이 다소 부족했다는 것을 들 수 있는데, PacketShader가 만약 PTask의 아이디어를 써서 큰 이득을 볼 수 있다면 대표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p>
<p>Eddie Kohler를 만난 이유는, 내가 요 근래 Click + PacketShader-style HW optimization을 테스트해보면서 Click이 몇 가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한계란 약간의 코드 수정으로 NUMA-aware thread affinitization이나 IRQ pinning을 Click에 적용할 수는 있으나 싱글코어 시절 만들어져 나중에 멀티코어로 확장된 녀석이다보니 공통 데이터(router graph 등)에서 NUMA node crossing이 발생한다거나 user-level packet I/O가 특정 코어에서 병목이 된다거나(이건 pcap의 문제일 수도 있음)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내가 물어본 것은 Click의 다음 step이 뭐라고 생각하는지였다. 그랬더니 대답 대신 질문이 되돌아왔는데, high-performace에 집중할 것인지 modularity + reasonable performance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정말 사람들이 쓰고 싶은 걸 만들 건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모두 목표이긴 한데, 내 생각은 modularity는 적정한 수준까지만 쪼개고 performance에 집중하는 쪽이다. 아무튼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자기는 Click의 performance를 위해 개발해온 게 아니라 correctness 쪽으로 집중해서 개발해왔다는 것. 결국 performance에 집중하려면 Click을 뜯어고치는 것보다는 새로운 코드를 짜는 게 낫다는 이야기였다.</p>
<p>어쨌든 직접 만나 이야기하니 재밌었다. 논문으로만 보던 사람들이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가 보는 것도 재밌고, 메일 주고받거나 하는 것보다 직접 눈앞에 두고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더 효율적인지는 정말 안 해보면 모를 것이다.</p>
<p>다만 역시나 대화에 '적절하게' 끼어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이쪽 학회에 오는 서양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아무때나 끼어들어서 말 걸어도 괜찮아요' 모드인데 무언가 남의 말(그것도 교수님들 같은 윗사람들의)을 끊는 것이 실례라는 느낌을 항상 가지고 있는 동양 쪽 학생들로서는 언제 하고싶은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그 감이 잘 없다. 이럴 땐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끼어드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적당히 눈치를 줘가며(?) '이 친구가 뭐 말할게 있는 것 같은데' 하면서 알아서 끊어주기를 기다리는 방법이 있다. 문제는 인기있는 사람일수록, 말발이 좋은 사람일수록 전자가 어렵다는 것.</p>
<p>인턴십 관련해서는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내년에 울 교수님이 안식년 가시면 랩사람들을 대부분 인턴으로 내보내실 거라는 정도?) 일단 Facebook과 Google 쪽을 찔러봤고, 나중에 PTask 저자인 Rossbach나 다른 인맥을 통해 MSR도 찔러보려고 생각 중이다. 이런 학회에는 대개 스폰서 기업들의 비공식 recruiter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나중에 실제 지원할지 어떨지는 몰라도 일단 눈도장이라도 찍어두는 셈이다. 내년에 "new" PacketShader가 어느 정도까지 논문이 될지 모르겠지만, 박사과정에서 인턴십을 간다면 기본적으로 논문을 쓸 수 있는 주제와 환경으로 가는 것을 교수님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아마 그 연장선상의 일을 하는 쪽이 되거나, 그걸 응용·적용할 수 있는 약간 다른 토픽을 하는 쪽이 될 것이다.</p>
<p>논문 발표 중에서는 역시 내 논문과 가장 관련있는 PTask가 제일 기대되었지만 막상 발표는 그냥 그런 느낌이었고, 발표 스킬 자체만으로 본다면 MSR의 Jame Mickens라는 사람이 최고였다. <a href="http://sigops.org/sosp/sosp11/current/2011-Cascais/printable/16-mickens.pdf">Atlantis</a>라는 Javascript/CSS/HTML parsing/rendering engine에 exokernel 개념을 도입한 웹브라우저에 대한 발표였는데, 문제 자체는 웹개발 좀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식상한 것이지만 그걸 너무나 재미있고 박력있게 풀어가서 그대로 몰입이 되었다. 발표들의 타입도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Prezi를 이용해 화려하게 진행한 것부터 시작해서(개인적으로는 좀 산만하다는 느낌) 기술적인 디테일을 아주 상세히 다루거나 혹은 그 반대로 motivation과 evaluation만 보여주고 기술적인 내용을 질의응답으로 커버해버리는 경우까지 다양했다. Deterministic threading 발표가 많아 이게 화두인가 했는데, MIT 다니는 태수형 말로는 사실 강력한 motivation이나 usecase는 별로 없는데 일단 커뮤니티에서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는 느낌으로 근 몇년간 이쪽 논문들을 많이 뽑아서 보여주는 것 같단다. 기타 아이디어나 구현 방법이 모두 괜찮다고 생각되는 건 CryptDB 정도였고, 데이터분석을 통한 통찰로는 그와 함께 best paper 상을 받은 "File is not file" 정도가 있었다.</p>
<p>어쨌든 이 학회 통해서 느낀 건, 내가 누군가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겠다 하는 목적이 분명한 상태로 가면 훨씬 더 재미있게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나와 정확히 같은 분야는 아니지만 그쪽의 아이디어를 내 연구에 어떻게 적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라든지, 혹은 근본적으로는 같은 문제를 어떻게 다르게 접근하는가 살펴보는 것이 직접적으로 연구와 관련되기 때문일 것이다. 얼른 1저자로 제대로 발표도 해보고 싶다.</p>
<div class="footnotes">
<hr />
<ol>
<li id="fn:question">
<p>이런 학회에서는 보통 발표 끝나면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는 마이크에 쪼르르 달려가 줄서서 한사람씩 질의응답 주고받는 식인데, 청중들의 수준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질문 하는 것 자체도 상당히 긴장되는 일이다. <a href="#fnref:question" rev="footnote">↩</a></p>
</li>
</ol>
</div>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SOSP-2011-%EC%B6%9C%EC%9E%A5-%EB%A1%9C%EA%B7%B8?commentInput=true#entry1078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if-else 사회와 try-catch 사회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if-else-%EC%82%AC%ED%9A%8C%EC%99%80-try-catch-%EC%82%AC%ED%9A%8C2011-07-26T21:11:30+09:002011-07-26T21:11:30+09:00<p><a href="http://twitter.com/goodhyun">김국현님의 트위터</a>에서 퍼옴. 트위터의 글들은 한번 흘러가버리면 나중에 찾기가 힘들어서, 이렇게 여러 트윗으로 나눠 올라온 것은 모아 정리해두어야 한다.</p>
<p>개발자로서, 그리고 사회를 시스템으로 보는 관점을 지지하는 나로선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p>
<blockquote>
<p>오늘은 '개발자니까 이해할 수 있는 정치학'을 조금 더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발언의 상당수가 반규제/자유주의로 이해되신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보일까요?</p>
<p>그 것은 제 주장이 if-else 사회에서 try-catch 사회로의 이행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모든 조건을 탑이 미리 설정하고 이를 조건 분기하는 if-else 사회지요. 규제란 바로 이 코드랍니다. ~해야 한다, ~하려면 ~가 필요하다는 명제에 근간으로 하고 있어요. 이는 매우 단순한 (개발)환경에서는 유의미했답니다. 이를 사회학에서는 가부장주의(paternalism)라고 하지요.</p>
<p>그러나 아시다시피 현대 프로그래밍 언어는 이런 식으로 코딩하지 않잖아요. 왜냐하면 모듈이 어떻게 확장될지 모르고, 또 이 코드를 누가 받아 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위 조직이 모든 가능성을 알고 미리 규정하면 좋겠지만, 그 것이 가능한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죠. 결과는 if-else만 백만라인 이어지는 사회가 되어 버리는겁니다. (코드 유지 보수는 청춘의 몫?)</p>
<p>우리 사회도 ExceptionHandling의 아키텍처로 이행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메인 프로세스가 if, elseif의 규제 방식로 모든 것을 걸러 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참여자가 예외를 직접 정의하고, 그리고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합리적으로 "버블 업"을 일으키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과 관료의 역할이 있는 것이구요. 그리고 여기에 addEventListener()를 하는 것도 국민의 몫입니다. 선거가 이에 충분한지는 이견이 많겠지만요. 이 메소드는 참여와 관심과 연대라고 해둘까요.</p>
<p>그렇게되어 새롭게 시작하는 사회적 프로세스, 새롭게 사회를 개발하려는 이들이 마음껏 사회적 코드를 try할 수 있고, 그 과정의 예외는 사회적으로 catch되게 되는 것입니다.</p>
<p>어쨌거나 코드를 짤 줄 아는 여러분, 사회와 국가의 코드가 이 모양인데, 소스 commit은 안하더라도 QA는 해 주셔야할텐데요, (아 네, 다들 생업에 바쁘신...)</p>
<p>출처 : <a href="https://twitter.com/#!/goodhyun/status/95752546995539968">이 트윗</a>부터 <a href="https://twitter.com/#!/goodhyun/status/95760756435460096">요 트윗</a>까지.</p>
</blockquote>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if-else-%EC%82%AC%ED%9A%8C%EC%99%80-try-catch-%EC%82%AC%ED%9A%8C?commentInput=true#entry1076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촉매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B4%89%EB%A7%A42011-07-04T00:35:27+09:002011-07-04T00:35:27+09:00<p>하나씩 놓고보면 별것 아니게 넘길 수 있는 것들이 모여 어떤 촉매를 만나 걷잡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잠시 나 자신에게 침잠하고 싶은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멈추기엔 사회적 관계와 책임 때문에 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각자 어떤 종류의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느꼈고 결국 선택은 혼자 하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 그렇다. 사람들에게 털어놓아 안정은 될수 있지만 맡기고 의지할 수는 없으며 해결을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니까. 이성적으로는 이것도 (어쩌면 누구나 한번쯤 하는) 한때의 고민이란 걸 알고 어떻게 대처하면 되겠다는 것도 알지만, 마음이 지치니 그냥 모든게 귀찮고 싫어진다. 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한다 해도,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가 다름이 아니고 무어랴.</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B4%89%EB%A7%A4?commentInput=true#entry1075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무엇을 위한 경쟁이고 노력인가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B%AC%B4%EC%97%87%EC%9D%84-%EC%9C%84%ED%95%9C-%EA%B2%BD%EC%9F%81%EC%9D%B4%EA%B3%A0-%EB%85%B8%EB%A0%A5%EC%9D%B8%EA%B0%802011-06-09T15:00:18+09:002011-06-09T14:39:34+09:00<p>오늘 학교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위원장의 강연이 있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행복과 선택'이라는 제목의 강연이었고, 내용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좋은 말씀"들로 이루어져있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고, 아이패드2 추첨(!)도 한다기에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한번 보자 하고 가본 것이었다.</p>
<p>강연 내용은 평이했고, 끝나고 2개의 질문이 있었다. 첫번째는 어느 교수님의 질문이었는데 평등의식과 교육열이 우리나라가 IT 강국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과 최시중 위원장 자신도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중1 때 6·25 겪음) 극기와 노력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내용에 대해, 최근의 젊은 세대들은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어떤 좌절감을 많이 느끼는데 그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것이었다.</p>
<p>아쉽게도 강연 내용처럼 답변도 평이했다. 이명박도 농부의 아들이고 자기도 어부의 아들이었으며 어려운 환경 속에 부단히 노력해서 성공한 것이니 열정을 가지면 해결된다는 것이다.</p>
<p>두번째 질문은 어느 07학번 학생이 했는데 맨 마지막 슬라이드에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내용 설명 중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무조건적 무상복지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언급이 잠깐 들어간 것을 두고, 그럼 위원장님은 어떤 것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잘 살기 위한 복지모델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것이었다.</p>
<p>이것에 대한 답변은 이랬다. 일단 이 강연은 일반론적인 맥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못박은 다음, 최근 이슈가 되었던 통신료 인하를 예로 들며 통신사들이 지속적인 망 고도화 투자를 하려면 소비자들이 원하는 대로 다 인하해줄 수는 없듯이 복지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p>
<p>무상복지에 대한 두번째 질문이야 개인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니 그렇다치더라도,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많이 아쉬웠다.</p>
<p>강연 주제가 '행복'이었던만큼,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 가족이 매우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 부분은 부모님과도 함께 공유하고 있는데, 우리 스스로는 그 행복이 '앞으로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에 있다고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관점에서 개인의 행복이라는 것도 각 개인이 지금 현재 어떤 상황에 있든지 앞으로 노력하면 내가 더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당장은 힘들더라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p>
<p>그런데 그 교수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최근의 젊은 세대가 좌절감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이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답변으로 미루어보건대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웠다.) 대한민국이 이제는 헌법에서 이야기하는 사상과 종교의 자유나 선거를 통한 정치권력 교체 등 기본적인 자유 민주주의의 틀은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적 불평등과 기존에는 학연과 지연이 계층간 진입장벽이었다면 이제는 경제력의 차이가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규제와 통제는 날로 늘어만 가고(그것도 특히 IT 분야에서) 언론조차도 광고수입과 재벌유착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계급이 없는 사회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sup id="fnref:capitalism"><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B%AC%B4%EC%97%87%EC%9D%84-%EC%9C%84%ED%95%9C-%EA%B2%BD%EC%9F%81%EC%9D%B4%EA%B3%A0-%EB%85%B8%EB%A0%A5%EC%9D%B8%EA%B0%80#fn:capitalism" rel="footnote">1</a></sup>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말마따나 높은 교육열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은 그 경쟁의 과실이 자신한테 돌아온다는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다.</p>
<p>최근의 신부님 강론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성서에서 욥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경쟁 과정 자체는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과 이겨냈을 때 그 과실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버틸 수 있지만, 자신이 속한 시스템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경쟁이지만 그 경쟁을 통해 경쟁자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득을 보는 상황이라면 누가 행복하겠는가.</p>
<p>물론, 언제나 그렇듯 젊은 세대·기성 세대를 막론하고 소수의 과실을 따먹는(내지는 독점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런 사람들은 이른바 '성공한 사람'이 된다. 어떻게 보면 최시중 위원장 본인도 그 어려운 시기에 태어난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과 달리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자리에 올랐으니 그러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을 무시하면 안 되지만, 그 사람들이 가졌던 기회와 희망을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대신 그 부족한 것들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지금은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졌지만 기득권층이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막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회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실제로 기회가 있느냐 없느냐와는 별개로 말이다. 문제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기회가 있으니 노력하면 된다는 것만 강조할 뿐, 기회에 대한 믿음(=희망)을 잃게 만드는 상황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p>
<p>강연 끝나고 같이 들었던 선배와 밥먹으며 이야기하다가, 예전에 장병규 선배님이 오셔서 강연했을 때 누군가 '실패했던 경험을 들려주세요'라고 했더니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성공만 해봐서 모르겠다'라고 하는 바람에 갑자기 확 공감이 안 되더라 하는 경험담을 들었다. 오늘 강연에서도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항상 감사하고 겸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p>
<p>최근 '나는 가수다'나 '위대한 탄생'과 같은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는 것도 일반인들이 거기에 출연하는 가수 지망생들에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존 가수나 아이돌들도 많은 노력과 인내의 시간을 통해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지만(이쪽은 '강심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구나 끼가 있는 사람이라면 보다 손쉽게 시도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과 출연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통해 그들이 겪은 어려움을 직접 노출시켜주기 때문에 보다 쉽게 공감하는 것이다.</p>
<p>요는, 모든 부를 똑같이 나누어 공산주의처럼 살자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고 누구나 노력하면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sup id="fnref:anxiety"><a href="#fn:anxiety" rel="footnote">2</a></sup> 그러려면 투명하고 공정하며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오늘 강연을 들으며, 우리나라 IT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가지고 있는 최시중 위원장이 그런 희망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서 신중한 고려를 보이지 않았음에 실망했다.</p>
<div class="footnotes">
<hr />
<ol>
<li id="fn:capitalism">
<p>이런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대의적 정치 제도가 과연 자본주의 체제에서 완전한 공정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a href="#fnref:capitalism" rev="footnote">↩</a></p>
</li>
<li id="fn:anxiety">
<p>요새 인터넷 돌아다니다보면 뭔가 조금만 기득권에 반하는 이야기만 하면 빨갱이 좌파라고 하는 것이 많이 보여서 노파심에 적은 말이다. 지금의 제도와 상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최선인가요?'라고 묻는 거라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a href="#fnref:anxiety" rev="footnote">↩</a></p>
</li>
</ol>
</div>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B%AC%B4%EC%97%87%EC%9D%84-%EC%9C%84%ED%95%9C-%EA%B2%BD%EC%9F%81%EC%9D%B4%EA%B3%A0-%EB%85%B8%EB%A0%A5%EC%9D%B8%EA%B0%80?commentInput=true#entry1074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경쟁과 다양성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A%B2%BD%EC%9F%81%EA%B3%BC-%EB%8B%A4%EC%96%91%EC%84%B12011-04-09T16:29:53+09:002011-04-07T22:35:23+09:00<p style="text-align:center;font-size:1.5em;">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p>
<p>사실 나는 워크샵 논문 데드라인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오늘 미팅하고 내일 미팅도 있는 그런 급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미 세 차례나 있었던 자살 사건들을 보고 또 여러 경로로 여러 관점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도, 일단 데드라인이 지난 후에 생각을 좀 정리해볼까 했었는데, 오늘 또다른 비보를 접하고 더 이상은 안 되겠어서 글로 쓴다.</p>
<p>우리나라에서 한 해 대학생들의 자살 수가 2~3백명 정도 된다고 하지만<sup id="fnref:stat"><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A%B2%BD%EC%9F%81%EA%B3%BC-%EB%8B%A4%EC%96%91%EC%84%B1#fn:stat" rel="footnote">1</a></sup>, KAIST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놓고 전략적으로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라는 상징성이 있기에 그 파장이 더욱 크다. 게다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많은 자살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p>
<p>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학점에 따른 징벌적 수업료 부과, 재수강 제한, 연차초과 수업료 부과 등에 따른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와 경쟁 분위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일단 지배적이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나도 동의한다.</p>
<p>실제로 2007년 이후 많은 비학업 동아리가 위축되는 경향을 보여왔으며,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 대부분 상대평가를 시행하는 우리학교 상황에서 학점에 따른 수업료 부과는 심리적으로 아주 큰 압박이 된다. 안 그래도 전국의 과학고와 여러 고등학교에서 모아놓은 우수한 학생들끼리 경쟁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입학사정관제라면서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아닌 '창의력 있는' 학생을 뽑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올해 처음 있었던 로봇영재 조군의 자살이었다.</p>
<p>서남표 총장이 3일 전에 전체 이메일을 돌렸다. 그 중에 두 문단을 뽑아보면 이렇다.</p>
<blockquote>
<p>학생들은 미래에 직면할 도전이나 기회에 대해 실제 겪어 볼 수 없고, 막연하게
‘그럴 것이다’라는 상상만 하기에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느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는 예전 세대들이 가질 수 없었던 많은 편리와 기회를 누리고 있으며, 가중된 압박감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지불해야 되는 대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은 거의 모든 면에서 상응관계(quid pro quo)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노력 없이, 고통 없이,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p>
<p>궁극적으로 해결책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과 자세에 달렸다고 봅니다.
만일 우리가 ‘항상 이길 수는 없으며, 나중에 이기기 위해 때로는 지금 질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주위의 성공한 사람들도 이전에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해봤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p>
</blockquote>
<p>그냥 아무런 맥락 없이 보면 위인전에 나올 것 같은 '좋은' 말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몇 명씩 자살하고 있고, 그 원인 중 하나가 자신이 만든 학교의 지나친 경쟁 시스템이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학교 구성원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며 보내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과연 이런 말을 떳떳이 고개들고 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보는 관점에 따라 남은 학생들에게 더 노력하면 된다고 말한 거라 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희생이 자살한 학생들을 가리키는 거라고 생각하면 섬뜩하지 않은가.</p>
<p>서남표 총장은 세계 최고의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서 경쟁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매우 제한적인 부분에서만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학점이 중심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점을 잘 받는 사람들이 대체로 성실하고 맡은 바 일을 잘 해내는 경향은 있지만, 학점을 잘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학점을 잘 받는 사람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의 가치있는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breakthrough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나왔다. 그리고 경쟁이 가장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수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peer pressure가 클 때다. KAIST라면 그 조건은 충분히 만족한다고 생각한다.</p>
<p>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우리나라도 스티브잡스나 빌게이츠를 양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그리고 KAIST는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육성한다는 취지 아래 일정 부분 우리나라에 그러한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런 인재들은 체계적으로 양성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멀리 달아나버리는 특성이 있다. 틀에 얽매이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p>
<p>언젠가 전산과 김진형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전산과에서 학점 잘 받는 그런 학생이 아니라 학점 좀 안 나와도 정말 '슈퍼코더'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들도 받아들이고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길 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런 생각이 좀더 정제된 것이 <a href="http://profjkim.egloos.com/1599544">이런 것</a>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면, 내가 학부 저학년이었을 때 동아리 고학번 선배들이나 더 위의 90년대 학번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업 좀 땡땡이치고 그러면서 며칠 밤낮을 만들어보고 싶은 거 만들어보고 그랬다고 한다.<sup id="fnref:scholar-vs-eng"><a href="#fn:scholar-vs-eng" rel="footnote">2</a></sup> 실제로 그런 사람들 중에 <a href="http://www.hacklib.com/Security/Story/postech.html">크게 사고를 친(?) 케이스</a>도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지금은 벤처기업가가 되어 역할모델이 되기도 한다.<sup id="fnref:venture1"><a href="#fn:venture1" rel="footnote">3</a></sup> <sup id="fnref:venture2"><a href="#fn:venture2" rel="footnote">4</a></sup></p>
<p>과연 지금의 KAIST 학사 경쟁 시스템에서 그런 사람들이 나올 수 있을까? 공부를 잘하고 유학가고 대학원에서 좋은 논문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엘리트코스를 밟아 사회지도층이 되는 사람들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기존 제도적 틀을 깨고 만들어내는 사람은 나오기 어렵다.</p>
<p>예전의 KAIST는 비록 학점이 좀 안 좋아도 학교는 마음껏 다닐 수 있었고, 이미 학사경고 제도를 통해 정말 최소한의 한계점은 지정해놓고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20대에 박사 따고, 어떤 사람은 사고 치면서 10년만에 겨우겨우 졸업했지만 벤처로 성공하기도 했다. 과연 후자가 전자보다 못하며, 국가의 세금을 낭비해 공부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학교육이란 그러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모두가 공부 잘 하는 길을 가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KAIST가 또 하나의 학원이자 세금으로 운영하는 사교육장이 되지 않으려면 그런 점을 살려야 한다.<sup id="fnref:edu"><a href="#fn:edu" rel="footnote">5</a></sup></p>
<p>이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p>
<p>일련의 자살들은 모두가 똑같이 학업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은 아니다. 최근의 한 학생 같은 경우는 과학고 출신에 공부도 곧잘 하는 경우기도 했다. 여러 경로로 전해들은 바, 몇몇은 이성관계나 인간관계에서의 스트레스 및 원래 가지고 있던 우울증 등이 좀더 큰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p>
<p>중학교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과학고-KAIST 코스를 밟든,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만 깊게 파다가 입학사정관의 눈에 띄어 들어오게 되었든, 대체로 이공계 분야 특성 상 사람들이 외골수 경향을 보이는 편이다. 왜냐하면 고도의 집중과 온 뇌를 동원한 맥락 구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복잡한 과학기술 문제를 풀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사람의 뇌가 이런 쪽으로 친절하게 진화되지 않은 듯하다.)</p>
<p>그렇다보니 대학이라는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한 넓은 공간에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나도 학부 저학년 때 동아리 2개를 한꺼번에 뛰다가 맡았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한테 넘겨주거나 대안을 마련하지도 않고(그 정도는 할 시간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좀 힘들었던 적이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동아리 정모에서 선배들의 '까대기'와 설전이 오가는데 그 분위기가 자못 무거워서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적도 있다. 지금 와서 보면 별 것 아닌 일들이었지만.</p>
<p>어쨌든 내가 잘 견디고 그런 경험들을 반면교사 삼아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지역사회 활동을 하며 다양한 좋고 나쁜 인간관계를 겪어보신 어머니 덕분에 인간관계 문제가 있을 때 어머니와의 상담과 격려가 큰 도움이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 상황일 때 피아노를 두들긴다(...)거나 하는 방법들도 사용한다. 또, 종교적인 문제를 깊이있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나 geek한 전산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서로 자기가 작곡한 곡을 쳐주며 교감할 수 있는 친구도 있다. 그런 취미나 인간관계에서의 소소한 다양성과 유대감은 스트레스 해소의 직간접적인 수단임과 동시에 자신이 좋은 사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해줌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p>
<p>학창시절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어렸을 때부터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면 항상 들어주셨던 어머니의 격려였지만, 집에서 멀리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항상 그걸 기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가족 중심의 인간관계에서 동아리나 수업 등 여러 활동을 통해 만나는 친구들과 선후배가 인간관계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런데 이성문제가 생기거나 그런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하면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학부 저학년 때는 (지나고보면 학부 4~5년 금방이지만) 앞날이 막연해보이는 법이다. 기숙사 학교라는 특성 상 혼자 틀어박혀있기 좋고, 외골수 기질까지 더해지니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기 매우 쉬운 환경이라 더 그렇다.</p>
<p>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무엇이든 간에 동아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왔고, 나는 이런저런 기회로 외부에서 오픈소스 활동을 하며 전산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내가 스스로에게 갇히지 않을 수 있었다. 거듭 말하지만, <strong>KAIST는 일반적인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정서적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특히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기 매우 쉬운 곳이고 그렇기에 자살에 취약하다.</strong></p>
<p>서남표 총장이나 우리 학교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경쟁에 몰아넣는 학사시스템을 없애고 각 개인이 스스로 자유롭게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것과, 거기에 더불어 학생사회가 더욱 다양성을 가지고 많은 동아리들이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학생들끼리의 자연적인 커뮤니티가 발생할 수 있는 그런 기회와 공간을 제공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기숙사와 강의실과 식당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 앉아서 친구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함께 과제도 하고, 악기 연주를 할 수도 있고 맥주 마시고 떠들 수도 있고 그렇게 말이다. 하지만 일단 그러한 여유가 생기려면, 학업으로 인해 사람의 마음이 심정적으로 소모되어 지친 상태가 되면 안 되기에 학사제도 개선이 조금 더 시급한 문제라 생각한다. 건전한 경쟁은 꼭 필요하지만, 경쟁이 삶의 여유를 갉아먹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p>
<p>외부에서는 KAIST 학생들은 세금으로 공부하는 것이고, 그래서 무조건 열심히 공부해서 국가에 공헌하는 것이 도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다양한 문물을 접하며 성장하는 지금의 학생들은 과거 70~80년대처럼 허리띠 졸라매어 하나에만 몰두하는 것이 더이상 정신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런 다양한 자극으로부터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더 창의적인 실험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시대도 그런 것을 원한다. KAIST 학생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며, 특히나 이제는 그것을 강요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p>
<p>KAIST는 이공계가 중심인 대학이지만, 공부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학생들이 감성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다 성숙해지고, 인간관계를 다양화할 수 있는 방법에도 신경써야 한다. 물론 그것이 주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세계 최고의 대학을 자부하는 만큼, 그리고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런 부분에 신경쓸 수 있는 수준이 된 만큼 가능하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비약적인 생각이지만 사회 전체가 정신적으로 한쪽으로 쏠리기 쉽도록 병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p>
<p>어느 후배가 <a href="https://twitter.com/#!/BaalDL/status/54744903925760001">트위터에 명언을 남겼다.</a> <strong>명령하는 사회가 아닌 설득하는 사회</strong>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공부하라고 명령하는 학교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싶어지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p>
<p><strong>추가:</strong> 사실 나는 이 글을 다소 마음이 급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채 적다보니 좀 정리가 안 된 감이 있다. 그래서 이 사안에 대해서 무엇이 본질이고 중요한 문제인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아주 잘 정리한 글이 있어 링크한다. <a href="http://zheone.byus.net/room/396">카이스트, 4월 7일</a></p>
<div class="footnotes">
<hr />
<ol>
<li id="fn:stat">
<p><a h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10327214040031&p=imbc">2011년 3월 27일자 MBC 뉴스 "벼랑 끝 대학생들‥한 해 2-3백명 자살"</a> <a href="#fnref:stat" rev="footnote">↩</a></p>
</li>
<li id="fn:scholar-vs-eng">
<p>내가 대학원에 와서 특히 더 많이 느끼는 것이지만, 학문적 성취가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이용되고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 하는 사람보다는 삽질(전산과를 예로 들면 프로그래밍 그 자체)을 잘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학문을 하면 되지만, 엔지니어링이 결합되지 않으면 학문에서 나온 결과를 활용할 수 없다. 나도 가끔 내가 학문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엔지니어링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할 때가 있다. <a href="#fnref:scholar-vs-eng" rev="footnote">↩</a></p>
</li>
<li id="fn:venture1">
<p>CEO 노정석. <a href="http://ablar.com/members">ABLAR Company.</a> 이분은 블로그 벤처인 태터앤컴퍼니를 만들어 한국 기업 최초로 <a href="http://tnccompany.blogspot.com/2008/09/%ED%83%9C%ED%84%B0%EC%95%A4%EC%BB%B4%ED%8D%BC%EB%8B%88-%EC%9D%B4%EC%A0%9C-google-%EA%B3%BC-%ED%95%A8%EA%BB%98-%ED%95%A9%EB%8B%88%EB%8B%A4.html">구글에 인수</a>되도록 하기도 했고, 지금의 <a href="http://www.tistory.com">티스토리</a>도 태터앤컴퍼니의 작품이다. <a href="#fnref:venture1" rev="footnote">↩</a></p>
</li>
<li id="fn:venture2">
<p>장병규 본엔젤스 대표, 블루홀스튜디오 대표. <a href="http://kong-textcube.blogspot.com/2008/10/%EC%A2%8B%EC%9D%80-%EC%82%AC%EB%9E%8C%EB%93%A4-%EC%9E%A5%EB%B3%91%EA%B7%9C-%EC%A0%84-%EC%B2%AB%EB%88%88-%EB%8C%80%ED%91%9C.html">인터뷰 참조.</a> <a href="#fnref:venture2" rev="footnote">↩</a></p>
</li>
<li id="fn:edu">
<p>KAIST는 연구중심대학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해왔는데, 사실 교육과 연구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고, 교육도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한 교육이냐 실용적인 기술들을 잘 다루게 하기 위한 교육이냐에 따라 방향이 많이 다르다. 이점에서 전산과도 이론 분야와 공학 분야는 하는 일도 그렇고 요구되는 능력도 매우 다르다. 그래서 김진형 교수님이 슈퍼코더 양성에 대해 새로운 대학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하고 고민하셨던 것이다. (<a href="http://profjkim.egloos.com/1599544">링크 참조</a>) <a href="#fnref:edu" rev="footnote">↩</a></p>
</li>
</ol>
</div>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A%B2%BD%EC%9F%81%EA%B3%BC-%EB%8B%A4%EC%96%91%EC%84%B1?commentInput=true#entry1073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도구의 중요성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B%8F%84%EA%B5%AC%EC%9D%98-%EC%A4%91%EC%9A%94%EC%84%B12011-03-21T01:52:34+09:002011-03-21T01:45:23+09:00<p>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동물이라 했던가? 사람이 지금처럼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은 하루 종일 먹을 것을 찾기 위해 헤매지 않아도 될만큼 생산성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산성은 바로 도구의 사용에서 비롯한다. 기왕이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좀더 빠르게, 적은 노력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도구다.</p>
<p>현대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컴퓨터를 사용한다. 나처럼 직업적으로 컴퓨터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인터넷 서핑, 게임, 문서 작업 같은 건 거의 누구나 하는 일이다. 그런 사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컴퓨터의 목적도 도구임을 알 수 있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은 조금 비싼 도구라는 정도?</p>
<p>사람들이 컴퓨터로 하는 일 중에서 문서 작업을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 MS워드나 아래아한글 같은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할 텐데, 여러 문단의 서식을 한번에 바꾸거나 자동 목차 생성에 활용할 수 있는 '스타일' 기능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또, 인터넷 서핑을 예로 들면 웹브라우저에 확장기능을 설치해 광고를 차단한다거나 마우스 제스처로 서핑을 좀더 편하게 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워드프로세서나 웹브라우저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이지만, 의외로 이들 도구를 속속들이 잘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p>
<p>아무래도 나는 전산을 공부하는 사람이고 직업적으로 다루는 사람이다보니, 남들하고 똑갈은 소프트웨어를 쓰더라도 어떻게 하면 그걸 더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쓴다. (때론 직접 만들기도 하고.) 그러한 고민의 순간에는 약간의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날수록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다.</p>
<p>한 가지 아쉬운 것은, 위에서 이야기했듯 컴퓨터와 거기에 올려진 소프트웨어라는 아주 좋은 도구들---표현하자면, 인류 문명의 가장 최첨단을 달리는---을 제대로 쓰는 사람이 생각 외로 적다는 것이다.</p>
<p>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런 더 좋은 사용방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다. 옆에서 누가 알려주기라도 하면 시도라도 해볼 텐데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배울 의지도 있고 가르쳐줄 사람도 있지만 여러 현실적 여건(특히 시간부족)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사용방법들은 책이나 매뉴얼을 그냥 읽는 것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직접 그렇게 써봐야 익혀지는 경험적 지식이라서 더 전파속도가 느리다. RTFM("Read the fucking manual")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결국 써보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p>
<p>내가 학부 때 SPARCS 동아리 활동과 Textcube 개발 활동을 하면서 얻은 소득이라면, 전산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 여러 소프트웨어 도구들을 상당한 수준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학교 수업만으로는 그런 도구를 잘 쓰게 되기 매우 어렵고,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일일이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것 또한 더 중요한 지식 전달에 방해가 될 뿐이다. 하지만 동아리에서는 몇몇 선배님들이 도구 사용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역설했고, 나또한 그러한 경험을 쌓으면서 그에 공감할 수 있었다. (좀더 넓은 인간관계를 경험해본다는 점에서도 동아리 활동이 중요하지만, 전산을 하는 사람이라면 도구를 제대로 익힌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p>
<p>아무리 이론적 지식이 많아도, 요즘엔 너무나 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지기 때문에 자기 아이디어를 prototype이라도 남에게 직접 보여주고 경험시켜주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도구를 잘 사용하는 것은 자기 아이디어를 재빠르게 구현하는 데 이르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그래서 도구를 잘 사용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p>
<p>하지만 도구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전산 분야에서 유명한 농담 중에 <a href="http://blog.dahlia.pe.kr/articles/2009/09/11/yak-shaving">'야크 털깎기(Yak shaving)'</a>라는 것이 있다. 원래 하려던 일은 나무를 깎으려던 것인데, 도끼가 더 잘 들면 나무를 더 빨리 벨 텐데 해서 도끼 날을 세우다가, 좋은 숫돌이 있으면 도끼 날을 더 잘 세울 텐데 해서 좋은 숫돌이 있는 곳을 수소문하고, 저 멀리 어디 있단 얘길 들어 야크를 타고 가려다가 야크 털을 깎고... 로 이어지는 무한삽질(...)을 비유한 것이다.</p>
<p>한 마디로, 도구를 잘 다듬고 잘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좀 불편하긴 해도 주어진 도구로 주어진 시간 내에 일을 끝낼 수 있다면 굳이 새로운 도구를 찾아나설 필요는 없다. 헌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논리적으로만 동작하는 것은 아니라서 나도 가끔은 본래 목적과 상관 없는 엉뚱한 곳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곤 한다. (바로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쓸데없는 장인정신'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뭐... 내 나름대로는 그런 작은 삽질들이 인류 발전에 기여한다고 위로하기도 하지만;;<sup id="fnref:progress"><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B%8F%84%EA%B5%AC%EC%9D%98-%EC%A4%91%EC%9A%94%EC%84%B1#fn:progress" rel="footnote">1</a></sup></p>
<p>아무튼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소프트웨어들도 잘 알고 쓰면 좋은 기능이 많다는 것과 바쁠 땐 어쩔 수 없더라도 자신이 쓰는 도구를 좀더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괜히 평생교육이란 말이 나온 게 아니지 않을까.</p>
<div class="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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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 id="fn:progress">
<p>이런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다른 분야에 비해 전산은 자신이 개선한 도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세계적으로 전파시키기 쉽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오픈소스가 바로 그것이다. <a href="#fnref:progress" rev="footnot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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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B%8F%84%EA%B5%AC%EC%9D%98-%EC%A4%91%EC%9A%94%EC%84%B1?commentInput=true#entry1072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엔지니어링의 어려움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97%94%EC%A7%80%EB%8B%88%EC%96%B4%EB%A7%81%EC%9D%98-%EC%96%B4%EB%A0%A4%EC%9B%802011-03-09T21:19:08+09:002011-03-09T21:19:08+09:00<p>요즘 연구실에서 워크샵 논문을 하나 준비하고 있다. 얼핏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듯하면서도, 막상 실제로 구현하려면 꽤 생각해야 할 것이 있어서 생각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미 있는 코드 분량이 꽤 되고 리눅스 커널 드라이버도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프로그램인데다 성능도 민감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은 것이다.</p>
<p>문제는 추상화다. 나도 '추상화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지만, '나중에 유지보수할 일'을 생각해서 코드를 짤 때 되도록이면 기본적인 추상화는 하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에 데드라인이 생기면서부터는 이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 된다. 추상화는 잘 할수록 나중에 좋지만, 데드라인이 있는 일에서는 결국 어느 정도 수준까지만 하고 포기해야 하는데, 가끔 이럴 때 장인정신(...)이 발휘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p>
<p>이쪽 시스템 분야로 내공을 쌓으신 연구실 선배와 이야기하다보면 많이 느끼는 차이점이 있다. 프로그램의 어떤 부분에서 임의의 16-bit integer key로 table lookup을 해야 하는데 나는 이것을 hash table로 짜야 되나, 그럼 이걸 어떻게 간단하게(적은 노력으로) 짤 수 있을까, 라이브러리를 쓴다면 뭘 쓰는 게 좋을까, C++ 인터페이스를 쓰는 게 좋을까 그냥 C로 하는 게 좋을까, random dereference를 하면 그 자체가 lookup 오버헤드가 되지는 않을까 등등등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민하는데, 선배들과 이야기해보니 간단하게 그 table에 들어가는 item 개수가 많아야 수백개 정도일 것이므로 그냥 array에 때려박고 index로 접근하게 한 다음 table 변경될 때도 일부만 잘 고치려 할 필요 없이 전체 다 재생성하도록 해보고 나중에 성능 보고 더 나은 방법을 쓸지 말지 결정하자는 결론이 나왔다.</p>
<p>그러니까 요는 처음부터 너무 미래의 걱정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일단 지금 필요한 수준에 맞게만 구현하고 문제가 있으면 그때 가서 고치자는 것. 이 이야기를 건축에 비교해볼 수 있다. 물리학이나 공학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에는 (상징성이나 예술성이 목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같은 기능적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재료가 들어갔으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점점 그것이 최소한 필요한 만큼만 쓰게 되는데---사실 건축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가 그렇다---처음부터 프로그램을 모든 경우를 대비해서 비대하게 짤 필요 없이 필요한 만큼씩만 덧붙여나가는 것이 이와 비슷하다.</p>
<p>그나마 '얼핏 보기에 간단한' 정도의 일도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데, '얼핏 보기에도 어려운' 정도의 일을 하려면 아직도 내공을 더 많이 쌓아야 할 것 같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게 항상 끊임없는 의사결정의 과정인지라 개발자 자신이 처한 사회적 맥락, 프로그램 코드가 속해있는 기술적 맥락 모두를 잘 꿰뚫어보지 않으면 여러 의미로 좋은 코드가 나오기가 정말 어렵다.</p>
<p>(살짝 덧붙이자면, 그래도 ipv4와 ipv6를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통합하려고 했던 시도는 그나마 빨리 접어서(...) 다행이다. -0-)</p>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97%94%EC%A7%80%EB%8B%88%EC%96%B4%EB%A7%81%EC%9D%98-%EC%96%B4%EB%A0%A4%EC%9B%80?commentInput=true#entry1071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내가 신앙생활을 바라보는 관점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B%82%B4%EA%B0%80-%EC%8B%A0%EC%95%99%EC%83%9D%ED%99%9C%EC%9D%84-%EB%B0%94%EB%9D%BC%EB%B3%B4%EB%8A%94-%EA%B4%80%EC%A0%902011-02-14T01:36:06+09:002011-02-14T01:20:02+09:00<p>내가 블로그에는 일부러 종교적인 이야기를 거의 올리지 않는 편인데, 이번 주일의 신부님 강론이 내가 고민해왔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신앙에 대한 관점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어 기록으로 남긴다. 아마 세월이 좀 흐른 후에 이 글을 돌아보면 초심을 잃지 않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오늘 들었던 강론은 내가 평생 성당 다니면서 들은 강론 중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sup id="fnref:best"><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B%82%B4%EA%B0%80-%EC%8B%A0%EC%95%99%EC%83%9D%ED%99%9C%EC%9D%84-%EB%B0%94%EB%9D%BC%EB%B3%B4%EB%8A%94-%EA%B4%80%EC%A0%90#fn:best" rel="footnote">1</a></sup></p>
<p>(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살짝 설명을 곁들이자면, 가톨릭의 미사는 크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 2단계로 구성된다. 말씀의 전례에서는 구약, 신약, 복음의 일부분들이 낭독되고 성찬의 전례에서는 예수님이 세운 성체성사를 제사로써 재현한다. 보통 그 사이에 20분 가량의 신부님 강론이 들어가며, 강론에서는 보통 그날의 복음을 신부님의 묵상을 곁들여 해설하지만 특별한 날에는 주교나 교황의 메시지를 대신 낭독하기도 한다. 각 미사마다 축일 여부나 가톨릭 전례력에 따른 의미와 주제가 부여되어 있고 성경에서 그와 관련된 부분들이 발췌되어 사용된다.)</p>
<p>오늘 나온 복음말씀은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37절까지의 내용으로, 예수님이 유다인들이 지켜온 율법들을 다시 설명하면서,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라고 말하는 내용이었다. (<a href="http://info.catholic.or.kr/missa/?schcode=&mode=&goMonth=2011-02-13">매일미사 참조</a>) 먼저 신부님의 강론 내용을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기억나는 대로 최대한 옮겨보았지만 역시 한 단계 거치는 것이라 본래의 그 감동(?)이 다시 느껴질런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나 잘못 전달하는 부분이 있을까 조심스럽기도 하고.</p>
<blockquote>
<p>농부가 씨뿌리는 건 무엇을 믿기 때문일까요? 씨를 심으면 열매가 가득 열리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딛고 서 있고, 지금 이 성당에 들어와 앉아있는 것은 그 땅과 성당이 우리를 받쳐주고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허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고를 겪기도 하고 믿었던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 믿음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이기에 믿음은 너무나 쉽게 흔들립니다.</p>
<p>믿음보다 더 강한 힘이 있는데 그것은 희망입니다. 우리가 어지러운 세상의 불의를 보고, 자연재해로 삶을 터전을 잃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다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시간에 의해 제약을 받습니다.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 뭔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없다면 희망을 잃게 되고 우리는 절망 속에 살 것입니다.</p>
<p>하지만 희망보다 더 강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농부가 단순히 소출만을 기대한다면, 지속되는 흉작 후엔 포기해버리고 말 것이지만 천직에 재한 애착심이 있기에 다시 씨를 뿌립니다.
친구에게 몇번씩 배신당해도 우정을 지속할 수 있다면 그것은 친구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p>
<p>저 뒤에 앉아계신 형제 자매님들 잘 들으세요.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의지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남편이 기댈 만한 곳이 못 되더라도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에게 기대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아내가 보잘것 없는 여자임을 깨닫더라도 계속 같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자식들에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설령 그동안 실컷 늘어놓았던 자식자랑이 헛되이 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실망하지 않도록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사랑해야 그들을 용납할 수 있습니다.</p>
<p>교회에 나오는 여러분, 교회로부터 무언가 얻어가려고 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교회 공동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십시오. 교회는 뭔가 얻어가는 곳이 아니라, 이미 얻은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전시장입니다.</p>
<p>다들 <a href="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58808">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a> 들어보셨지요?
종교를 초월하여 그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사랑으로부터 오는 고통까지도 사랑하신 하느님(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랑의 모습을 하느님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이 부처님이든 마호메트이든 세상 사람들이 무엇이라 부르든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겉으로는 종교와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느님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바로 그 갈증을 채워준 것이지요.</p>
<p>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태석 신부님은 누가 떠밀어서 그곳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그분에게 그 일을 하라고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느님의 사랑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갔고,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그 일을 하였습니다.</p>
<p>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성경구절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은 율법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형식에 매여 그 근간에 깔려있는 사랑을 보지 못함을 비판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온다는 것은 우리들의 삶이 사랑의 힘으로 밀려 움직이는 것이고, 우리는 하느님을 하늘에 있는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항상 함께 하는 분이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p>
<p>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이야기입니다.</p>
<p>-- 2011년 2월 13일 연중 제6주일 청년미사에서 이상일 야고보 주임신부님</p>
</blockquote>
<p>이쯤 되면, 한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과학적으로 하느님이 존재하느냐, 혹은 하느님을 인격신으로 봐야 하느냐 자연신으로 봐야 하느냐와 같은 논쟁은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존재의 형식이 무엇이건 간에, 하느님은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할 사랑의 가치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알려주신 분이다. 흔히들 그리는 이미지처럼 천국의 옥좌에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서 삶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존재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하느님이라는 실체가 없다 해도 좋다. 창세기와 구약은 단순히 신화이고 성경은 예수라는 인물의 행적이 후대에 와서 신격화되어 포장된 것이라 해도 나는 상관없다. 역사적·과학적 사실이 무엇이건 간에, 삶을 살아가는 철학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p>
<p>길을 가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팻말을 큼직하게 붙여놓고 전도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구원이라는 어떤 보상을 받기 위해 교회에 나오라는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이 강론에서는 교회에 무엇을 얻으려 오지 말라고 한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계기가 전화위복이기에 신앙도 구복적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심지어 사후세계에 대한 일종의 보험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자세에 따끔한 일침을 놓는 것이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과 지향해야 할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다.</p>
<p>물론, 죄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분명히 성경에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회개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나가는 것이나 세례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기저의 어떤 근본적인 변화로 사람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고해성사로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는 것도, 어떤 죄의 행위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랬는지 자신을 되돌아보고 작은 변화라도 일으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좀더 신앙적으로는 '하느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복원한다'라고도 표현한다.)</p>
<p>그래서, 나는 대놓고 '하느님을 믿습니다!'라고 외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믿으라'고 전도하지는 않는다. (뭐, 미사 때 기도문에 나오는 정도는 하지만.) 그 대신, 나의 삶을 영적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는 하느님의 존재를 생각하고 그 존재와 함께 걸어감으로써 더 강해지고 편안해지는 나를 보고자 한다. 어쩌면, 내가 살면서 만나본 몇몇 사람들처럼 '세상에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자아가 강한 사람들은 그러한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 별로 필요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스스로 혼란에 빠질 때 최소한의 판단의 기준으로서 사랑의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기에 나는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p>
<p>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하느님을 믿으라고 이야기하는 대신에, 내가 내 삶의 자리에서 그러한 사랑의 가치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향기가 퍼져나가듯 은근히 국물이 배어나오듯 그러한 가치가 따를 만한 가치이고 복잡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탱함과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향임을 설득하고 싶다. 이태석 신부님처럼 아주 짧고 굵게 그 모든 가치를 한방에 보여주고 가실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며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도 없을 것이다.</p>
<p>나도 사람이기에 완벽하지 않아서 살다보면 죄도 짓고 화도 내겠지만, 적어도 반성할 때라도 그 기저에 깔린 가치가 사랑인지 항상 되짚어볼 것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사랑과 복을 받고 자라서일까, 이따금 사람들에게 좌우명 삼아 말하듯, 내 재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 그 근간에는 나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깔려있다.</p>
<p>오늘 강론에는, 얻으려 하지 말고 사랑하여 마음을 비우라는 의미로는 어머니가 대략 나이 오십 중반을 넘기고서부터 자주 해오셨던 말씀들이, 영적 갈증에 대해선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한 친구와 여러 차례 걸쳐 나눴던 대화들이 모두 녹아들어있었다.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강론 중에 '하느님은 도덕교사가 아니다'라는 언급이 있었는데 그것의 더 깊은 뜻은 아직 모르겠다---때로는 논리적 엄밀함 대신 마음에 와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p>
<div class="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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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 id="fn:best">
<p>이 강론이 최고로 느껴진 것은 신부님이 물론 강론을 잘 하신 것도 있지만 그동안 내가 살아온 경험과 축척된 생각들이 접점을 만나는 순간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a href="#fnref:best" rev="footnot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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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B%82%B4%EA%B0%80-%EC%8B%A0%EC%95%99%EC%83%9D%ED%99%9C%EC%9D%84-%EB%B0%94%EB%9D%BC%EB%B3%B4%EB%8A%94-%EA%B4%80%EC%A0%90?commentInput=true#entry1070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정치가 내 삶에 끼치는 영향daybreaker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A0%95%EC%B9%98%EA%B0%80-%EB%82%B4-%EC%82%B6%EC%97%90-%EB%81%BC%EC%B9%98%EB%8A%94-%EC%98%81%ED%96%A52011-01-29T17:38:40+09:002011-01-29T17:36:26+09:00<p>아마도 내 또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가 자기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명확하게 인식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알더라도 별로 관심이 없거나. 이를 환기할 만한 일이 있어 포스팅해본다.</p>
<p>얼마 전 교수님이 포워딩하신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학교 부서 중 하나인 연구처라는 곳에서 "연구노트 관리지침에 대한 안내문"이란 제목으로 보낸 거였다. 요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2010년 8월 11일에 전부개정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이 2011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우리 학교 또한 자체 연구노트관리지침을 만들어 관리해야 하니 그 지침을 준수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몇가지 주요 조항이 첨부되었는데, 그 중에 논란이 되는 것이 바로 모든 연구노트를 KAIST 소유로 하고 사본 소유를 원할 경우 연구책임자 승인과 기록관리팀 서면 보고가 필요하다는 제7조(연구노트의 소유) 부분이다.</p>
<p>연구노트를 양식에 맞춰 일일이 기록하고 연구책임자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든지, 전자연구노트 프로그램은 (가상머신이나 원격데스크탑을 쓰지 않는 한) 절대로 MacOS나 Linux에서 이용할 수 없는 구조라든지 하는 불편함은 둘째치고라도, 연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아이디어나 관찰을 연구노트에 기록하게 되면 그것이 KAIST 소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p>
<p>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궁금해서 그 근거라고 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 대해서 좀 조사를 해보았다.</p>
<p>우선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법에는 여러 등급(?)이 있는데 다들 알다시피 헌법이 가장 상위의 법이고 그 아래에 법률이 있다. 그런데 이 법률을 잘 보면 실무적이거나 자세한 부분들은 '~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와 같이 위임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대부분 해당 법과 관련된 실무부처에서 시행령을 만들어 국무회의에 올리면 대통령, 국무총리 및 관련 국무위원의 심사와 서명을 거쳐 그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이 경우는 중앙행정부에서 만드는 법이라면, 지방자치제도에 의해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는 법들은 조례라고 한다.</p>
<p>해당 규정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발의한 것으로, 2010년 2월 4일 개정된 '과학기술기본법'을 바탕으로 2010년 8월 11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와 안병만 교과부장관의 서명을 거쳐 통과된 것이다.</p>
<p>과학기술기본법 제11조의3(국가연구개발사업결과물의 소유·관리 및 활용촉진) 조항을 보면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결과물은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참여하는 연구형태와 비중, 연구개발결과물의 유형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연구기관 등의 소유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2010년 8월 11일에 전부개정·공포된 규정에서는 제20조에서 해당 부분을 자세하게 정의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주관연구기관의 소유가 되는 대상물 중 하나로 문제의 "연구노트"가 명시되어 있다. 개정되기 전에는 없었다.</p>
<p>※ 참고로 위와 같은 법령 정보는 <a href="http://law.go.kr">국가법령정보센터</a>라는 곳에서 손쉽게 검색해볼 수 있다. 모든 법령은 당연히 국민의 알 권리에 의해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어있음은 물론이다. 나름 잘 만들어놔서, 언제 어떻게 개정되었는지를 해당 조항에 대해서는 일종의 diff처럼 볼 수도 있다.</p>
<p>처음에는 이것 또한 '학교의 새로운 정책'으로 생각해서 이놈의 학교가 또 왜 이러나... 싶었는데 자료를 뒤지다보니 (학교가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외부의 정치적 요인이 이렇게 영향을 끼침을 알 수 있었다.</p>
<p>이렇게 법적으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결과물을 국가나 주관연구기관 소유로 못박는 것 자체도 그렇고, 법의 개정 이력을 뒤져보니 점점 법이 구체화되는 게 어쩌면 정부가 말하는 소위 '선진화'의 방향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case by case로 주관적 해석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도 있겠으나 전반적으로는 국가가 너무 많은 걸 통제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p>
<p>물론 이 사안에 대해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 세금으로 한 거니까 국가 소유라고 볼 수도 있겠고, 그래도 연구자의 창의성이 발휘된 부분이니까 연구자에게도 공로를 인정해서 공동소유권 정도로 해야 한다고 볼 수도 있겠고, 국가의 지원 목적이 과학기술진흥 그 자체에 있는 것이지 결과물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연구자의 소유권·저작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볼 수도 있겠고 등등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sup id="fnref:possession"><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A0%95%EC%B9%98%EA%B0%80-%EB%82%B4-%EC%82%B6%EC%97%90-%EB%81%BC%EC%B9%98%EB%8A%94-%EC%98%81%ED%96%A5#fn:possession" rel="footnote">1</a></sup></p>
<p>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 이런 법률과 규정의 제정·개정 과정에 실제 연구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참여하는 법률인 과학기술기본법 자체로만 보면 별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실무적 세부 지침은 행정부에서 만든 규정을 국무회의를 통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니 그나마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개입 여지가 있는 법률과 달리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세력가들의 생각과 기조가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 중심제'의 폐단인 걸까?</p>
<p>이 규정 개정에 서명한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과연 위와 같은 고민을 하고 서명한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리고, 선거 때 후보를 고를 때 이 후보가 어떤 정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p>
<div class="footnotes">
<hr />
<ol>
<li id="fn:possession">
<p>내가 법률 지식이 짧아서, 여기서 말하는 소유권과 저작권, 저작인접권 등은 어떤 차이점들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시는 분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큰 도움이 될 듯. <a href="#fnref:possession" rev="footnote">↩</a></p>
</li>
</ol>
</div>
<p><strong><a href="https://blog.daybreaker.info/entry/%EC%A0%95%EC%B9%98%EA%B0%80-%EB%82%B4-%EC%82%B6%EC%97%90-%EB%81%BC%EC%B9%98%EB%8A%94-%EC%98%81%ED%96%A5?commentInput=true#entry1069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