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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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룸메인 승범이에게 내 컴퓨터를 몇 시간 동안 쓰라고 빌려주었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갑자기 생전 못 보던 화면이 떠 있는 거다. 무엇인지 봤더니 갑자기 웬 윈도우 비스타?! 어찌된 거냐고 물었더니 그냥 생각나서 깔아봤댄다. -_-

대체 무슨 소리냐며 파티션과 데이터를 확인해보니 기존 윈도우를 덮어씌워놨다. 게다가 내 문서 파일들은 다들 어디로? .... 현실에서는 절대 못 할 것 같은(?) 욕을 승범이에게 하다가 기왕 이렇게 된 거 비스타라도 잘 쓰자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픽 드라이버가 제대로 안 잡혀있길래 잡아주었다. 오, 이쁘긴 이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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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잠에서 깼다. 바깥이 어두컴컴하다. 어라, 지금 몇 시지?

생각해보니 오늘은 응미 연습이 7시에 있는 날이고 첫번째 퀴즈를 본다. 갑자기 밀려오는 불안감과 함께 핸드폰을 열자 7시 49분. -_-

아놔, 망했구나 하면서 아까 승범이가 응미 초수강할 때 적분 틀려서 퀴즈 빵점 받았었다는 얘길 한 게 떠올랐다. 우어, 차라리 틀려서 망했으면 낫지 자다가 못 간 건 최악이잖아!! 버럭버럭;

아무도 없는 불꺼진 방에서 혼자 침대를 잡고 흔들고 TV 리모콘을 던지며 화풀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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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전화가 온다. 하아, 알람 대신 타이밍 맞춰 잘도 전화한 준호였다. 22인치쯤 되는 모니터를 새로 살까 하는데 노트북에서 잘 인식이 될까 어쩌구 하는 얘기였다. 최근에 산 거니까 별 문제 없을꺼라고 안심시키고 시간을 확인하니 1시 28분.

휴우. 응미 연습이 5시라는 게 떠올랐다. 첫 퀴즈인데 망할 순 없지,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을 펼쳤다.

비로소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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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RCS 개강 파티를 하면서 작년 한 해 동안 학교를 비우셨던 미래 누나를 만날 수 있었다. (SPARCS 05년도 회장이었다) 06년 초에는 첫눈, NHN에서 일하시다가 가을학기에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갔고, 거기서 Google 면접을 통과하여 내년 3월부터 스위스 취리히에서 정식 직원(Software Engineer)으로 근무하게 될 거라고 하였다.

동아리 사람들은 드디어 우리 동아리가 구글에도 진출했다며 좋아했다. (사실 나는 꽤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잘 몰랐던 것 같다-_-) 사실 스웨덴에서 구글이 누나를 석사생으로 알고 면접을 진행하고 job offer를 줬는데 나중에 학사과정이라고 얘기했더니 본사와 한참 뭔가 왔다갔다 하더니 다시 job offer를 줬다고 한다. 면접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거의 기술면접 위주였으며 문제들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편은 아니었지만, 문제를 풀 때 혼자 골똘히 생각해서 답을 주루룩 표현하는 것보다는 풀어가는 과정을 말로 말하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건 애자일이야기 블로그에서 본 오픈마루의 면접과 비슷한 방식인 것 같다) 그리고 처음 주어진 문제는 쉽지만 계속 이어서 물어보는 질문들이 중요하며, 주로 그러한 문제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구글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해두고, 교환학생에 대해서 물어봤다. 우선 내 학점 정도면 학점을 특별히 더 관리하기보다는 토플 성적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고(원하는 대학을 선택할 폭을 넓히기 위해서), 자기의 경우는 미국 쪽과 스웨덴을 알아봤었는데 미국 쪽은 좋은 곳을 가려면 TO가 많이 빡세다고 한다. Iowa 쪽 대학과 스웨덴을 두고 지도교수님께 찾아갔더니 Iowa 쪽은 우리학교보다 구리고 스웨덴을 추천해주셨다면서 그리로 가게 된 것이라고. 스웨덴은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은 국가이고, 여러 문화들이 공존하고 있어서 스웨덴어가 있어도 영어만 할 줄 알면 전혀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단다. 그래도 교환학생 가기 전에 하는 각종 문화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누나 얘기를 듣고 대충 정리를 해본 결과,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일단 이번 가을학기까지는 전공을 어느 정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계속 있어야 할 것 같다.

첫번째는, 병역 문제 해결을 먼저 하는 것이다. 우선 올해 안으로 병특 취직에 필요한 정보처리산업기사 자격증을 딸 계획(5월과 9월에 시험이 있는데, URP 등의 경과 상황에 따라 9월에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이다. 병특을 하게 된다면 08년도 TO를 알아봐서 적당히 신청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환학생 계획은 3년 후로 미뤄진다. (토플 성적 또한 유효기간 때문에 시험 보는 것도 연기할 것이다) 카추사를 지원할까 하는 생각도 있으나 떨어지면 얄짤없이 현역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조금 불안하다.

두번째는, 여름방학 때 TOEFL에 올인한 후 시험을 다시 봐서(1학년 때 본 건 점수도 낮을뿐더러 유효기간이 지났다) 가을학기 때 신청받는 08년도 봄학기 교환학생에 지원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자격증은 따둘 것이다. 곧 있으면 가을학기 교환학생 신청을 받겠지만 현재 영어 성적이 유효기간이 애매하게 지나버린 상태인데다 점수도 높지 않아서 조금 곤란하단다. 그리고 가을학기 때 OS와 같은 중요한 전공필수 과목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다지 내키지도 않았다. 교환학생은 누나를 따라 스웨덴 쪽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알고보니 동아리 선배 중에 스웨덴으로 다녀온 분이 한 명 더 있었다)

미래 누나에게 그럼 구글에서 일한 다음 무엇을 할 계획인지 물어보았다. 현재 GRE 공부를 하고 있고, 그 성적이 5년 동안 유효하기 때문에 구글에서 몇 년 일하다가 미국 쪽 유학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구글에서 일한 경력이면 유리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어쨌든, 가까운 선배가 멋진 진로의 예제를 잘 보여주고 계셔서 좋았다. 나뿐만 아니라 동아리 후배들한테도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문제라면 나는 남자기 때문에 유학을 위해서는 병역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것. 확실히 미래 누나는 병역 걱정이 없어서 자기 마음대로 죽 계획을 세울 수 있어서 부러웠다. 한창 배우고 머리 돌아갈 나이에 2년 정도를 뚝 잘라내는 것이 여간 아까운 게 아니지만, 그나마 병특 제도라도 있어서 다행이랄까. (물론 그것도 제대로 된 회사가 아니라면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고, 더군다나 2012년까지인가 점차 줄여서 완전히 없애버린다고 하니..-_-)

하아, 그나저나 이놈의 URP는 점점 빡세지는데 논문 주제는 뭘로 잡을지 고민이다. 조교님과 얘기하다가 나온 주제가 하나 있긴 하나 결국 지능제어 + Matlab + 동역학... 다 배워야 할 것 같다. 과연 URP를 내가 몇 학점짜리로 평가하게 될 지....-_- 아무튼 이것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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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의 술과 주조공장 견학 수업. Syllabus를 보면 정말 기상천외하다. 2002년부터 개설되어 꽤 유명해진 과목이라고 하며, 신입생들만 들을 수 있다고도 한다.;

  • 절주 보신기간 = 중간고사기간
  • 생맥주 무한정 마시기, 안주 한없이 먹기
  • 주량 테스트 = 학기말 고사기간

다른 건 그러려니 했는데 기말고사에서 완전히 뒤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주량 테스트라니. -_-;;;;;

우리학교에도 저런 수업 하나 생기면 술에 대한 거부감이나 지나친 걱정 등을 없애고 정말 올바른(?) 술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개설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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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저녁 때 전산과 개강파티 겸 신입생 환영회가 있었다. 아직 과가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전산과 전공을 들으며 관심을 가진 06학번들 및 05학번 이상들의 학생들이 모이는 자리였는데, 전산과에 대한 소개 겸 해서 문수복 교수님과 맹승렬 교수님, 박종철 교수님이 참석하셨다. 그 중에 문수복 교수님이 1차 저녁식사에 오셨는데, 어쩌다보니 교수님 옆옆 자리에 앉게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한성과학고 출신이라는 06학번 3명을 한 테이블에 놓고 관심 분야에 대한 이야기(한 명은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를 하다가 나하고도 이야기를 했다. 나는 처음에 음악과 같은 예술이나 생명과학(그 중에서 신경·인지과학)에 관심이 있어서 전산학만 하는 것보다는 interdisciplinary 영역을 다뤄보고 싶다면서 그럴 경우 대학원 진학은 어떤 방향을 생각해보는 게 좋을지 여쭤보았다. 교수님은 아직 자기도 잘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아직 국내에서는 그런 융합학문 분야가 잘 발달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다. MIT 미디어랩 얘기를 했을 때는 좋은 생각이지만 영어 공부를 많이-_- 해야 할 거라고도 하셨다.

예전에 동아리방에서 누군가 CT대학원에서 하는 디지털 퍼포먼스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있던 걸 본 적이 있기에, 그 얘기를 했더니 마침 CT대학원의 이승현 교수님과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고 하셨다. 지금은 뭐 이런저런 문제로 잘 진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관심이 있다면 해보라며 핸드폰 번호;;를 따가셨다.; 뭐 나도 기회가 되면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URP 등으로 인해 학기말에 상당히 바쁠 것으로 예상되기에 망설이고 있던 차이긴 했다. (실제로 하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_-)

교수님 전공이 네트워크 분야라서 봇넷과 악성 트래픽 쪽도 연구하시냐는 얘기를 하다가 블로그로 주제가 옮겨왔는데, 알고보니 교수님도 태터툴즈 사용자셨다. -_-;;; 그러면서 버전업하고 나서 새 스킨을 깔았더니 최근 댓글 목록이 안 나온다면서 나중에 와서 고쳐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한 가지 재밌었던 건, 의외로 태터툴즈가 '오픈'된 프로젝트라는 것이나 개발용 코드와 optimize한 코드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옆에 있던 다른 태터툴즈 사용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오픈소스라는 것 자체는 알고 있지만 뭐랄까 몸으로 느끼고 있지 않달까.) 안 그래도 핸드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도 알아가셨으니 언젠가 한 번 연락이 올 듯하다.;

교수님이 하셨던 얘기 중에 기억나는 건, 네트워크 분야에서 연구하는 것들을 학부생들이 미리 접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는데, 막상 4학년 네트워크 과목을 듣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잘 못 알아듣기 때문에 그런 점 때문에 학부 3학년 때 주로 하는 개별연구에 지장이 있고, 따라서 네트워크 분야를 미리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네트워크..라고 하면 막연히 TCP/IP만 떠오르지 그 외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TCP/IP라는 것은 분명히 네트워크 구현의 한 종류일 뿐이고 보다 general하게 생각하면 훨씬 많은 것들이 있을 텐데... (inureyes님이 연구하시는, 물리학 관점에서 보는 복잡계 네트워크와 같은 것도 있을까?)

아무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평소엔 조금 멀게 느껴졌던 교수님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좋았다. 덕분에 고기는 별로 못 먹었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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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파티가 끝나고 스팍스 정모가 있었다. 오늘따라 그렇게 느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까칠해졌다고나 할까. 분명히 논리적으로 맞는 얘기들이지만 뭔가 상대방이 듣기에 기분나쁜 그런 것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회의가 끝나고 회장인 민우 형과 후배인 성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 내용이더라도, 객관적으로 그것이 옳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때는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 똑같은 의도로 얘기를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 자기는 배려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등등.

고등학교 때까지는 차라리 친구와 치고박고 싸우든지, 아니면 부모님·선생님이나 선배한테 혼나든지 하면서 배우지만 대학교에서는 누가 인간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쳐주지 않는다. 직접 부딪치면서 겪고 배워나간다. (사실 나도 많이 배운 것이지만, 그럴수록 한참 멀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우리학교는 특성상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따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고, 또 좁은 범위의 사람들만 만나다보니 포용력이랄까, 그런 것을 쉽게 잃어버리는 것 같다.

문제는 대화다. 설사 서로 간에 쌓이고 잘못된 부분이 있었더라도 서로 인정하면서 대화로 풀어나가면 된다. (물론 말처럼 언제나 그렇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민우 형과 걸어오면서 했던 이야기도 그렇고, 역시 뭔가 말을 하면서, 그 말이 꼭 어떤 목적성을 지니든 안 지니든 간에, '풀어낸다'는 것 자체가 가지는 의미도 큰 것 같다. 여자들이 뭔 잡담이 그렇게 많을까 궁금해하기도 하고, 참 쓸데없다는 생각을 했는데—물론 남자와 여자의 성향이 다른 것도 있겠지만—한편으로는 그러한 행위들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점점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 많아질수록 그러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가끔은 사람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서로 요즘 하는 생각들을 공유하고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같은 대화를 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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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수강신청에 실패한 관계로, 또 서남표 총장님의 개혁안으로 인해 듣고 싶은 상당수의 과목이 화/목요일에 몰리면서, 전공으로만 채운 암울한 학기가 시작되었다. -_-;

월수금 수업 만들고 강의시간 1시간으로 줄이고.. 뭐 다 좋은데, 종전과 같이 1시간 반 수업을 하는 화목 수업에 교수님들이 강의를 몰아 개설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6시 반까지 수업이 꽉 차서 점심도 먹을 수 없게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실 나도 교양을 억지로 골랐다면 그랬겠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고, 교양은 아직 들을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확실히 개강하니까 사람들이 많아졌다. 학교 내 임의의 장소를 바라봤을 때 사람을 볼 확률이 5배 높아지고 그 사람 수는 5배 많아졌다고나 할까. -_- 동아리 정모에도 사람이 많아지고, 07학번(무려 07학번! orz)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상당수 돌아다니고 있다. 엔드리스 로드 또한 사람들로 활기(?)가 가득하다.

방학 때도 계속 학교에 있었더니 뭔가 개강이 개강 같지가 않지만, 어쨌든 알고리즘은 첫 시간부터 진도를 나갔다. 이제 방학 때의 폐인 생활에서 벗어나야지.

ps. 그나저나 URP는 중간보고서 내고 나서 모델로 삼을 로봇이 바뀌는 바람에 일부 리셋되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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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 말마따나, 우리학교에는 온갖 분야의 본좌들이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_-;

아까 저녁때 아는 형이 수프림 커맨더 정식판 영문버전을 입수했다고 하셔서 그거 구경하러 갔다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에 갇혀서 학부 지역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하필 스팍스 동방에 아무도 없었다) 마침 피아노책도 가져갔던 터라 매점 2층 다용도실에 갔다.

들어가니 한 사람이 쇼팽의 왈츠곡들을 피아노로 치고 있었고, 또다른 한 사람이 바이올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누군지는 몰랐지만 쇼팽 왈츠를 제법 들을 만하게 연주하길래 혼자 손으로 따라해보며 기다리는데, 바이올린을 만지던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얘길 들어보니 07학번이라고 하는데, 바이올린을 잠깐 켜는 걸 보니 보통 실력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피아노를 치던 사람은 나갔고, 나는 들고온 모차르트 곡들을 죽 쳤다. (대충 내가 요즘 치는 곡들은 다 쳐봤으니까 꽤 오래 쳤던 것 같다.) 바이올린을 들고 있던 그 학생은 뒤에서 따로 연습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내가 너무 오래 쳤는지, 조율이 풀렸다며 다시 음을 맞춰야 하기에 멈추어 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그 사이 같은 07학번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아까 들은 소리가 예사롭지는 않은 것 같아 피아노책들을 정리하고 같이 앉아서(;;) 연주를 들었다.

정확히 무슨 곡인지는 모르겠으나 3악장의 소나타 곡으로 꽤 많이 들어봤던 멜로디였다. (책 겉표지가 Bach였던가.. 얼핏 봐서 잘 기억이...) 그 연주는, 바로 지난 졸업식 때 졸업하신 송원태 선배를 생각나게 했다.; 그 선배보다 소리의 완숙미나 안정감은 조금 덜했지만, 디테일한 부분까지 무리없이 소화해내고 있었고 테크닉 면에서도 상당한 수준인 것 같았다. 1악장, 2악장, 3악장, 코다, 주제의 반복... 다용도실의 텅 빈 공간에 울려퍼지는 풍부한 바이올린 선율로 간만에 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부산과학고 출신이란다. 나는 실내악 앙상블 수업과 학교에서 악기를 연습할 만한 장소 등을 얘기해주고 내 소개를 했더니, 그 친구 중 한 명이 '혹시 daybreaker님 아니세요'라고 물었다. -ㅁ-; 알고보니 그 친구는 무려 토끼군-_-까지도 알고 있었다; (세상은 좁다...-_-) 어쨌든 바이올린을 켰던 그 학생은 이름이 소형준이라고 했다. (아마 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중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앞으로 마주치면 인사라도 나누자라고 마무리를 하고 빠져나왔다.

정말이지 내가 로또 당첨되었을 때 학고 싶은 일에 1등으로 적은 게 괜히 다용도실 리모델링이 아니다. 우리학교에는 정말 A로 성적표를 휩쓰는 ls***님-_-과 같은 분도 있지만, 다방면에 끼를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런 사람들이 숨겨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학교 환경이 갖추어졌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 형준도, 소위 말하는 엄친아가 아닐까 지레짐작 중이다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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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ESCamp 끝나고 늦게 기숙사에 도착해서 블로그 글을 포스팅하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MR 동기인 태경이 형의 전화였는데, 오늘 ICU에서 발명 동아리 연합회를 만드는 행사가 있으니 같이 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다지 바쁜 건 없었기 때문에 한 번 가보자고 했고, MR 임원진 3명과 내가 오늘 그 행사에 갔다왔다.

ICU의 신생 동아리인 IIC(ICU Invention Club)의 주도로, 포항공대의 창작로봇 동아리인 Power On과 KAIST의 로봇 동아리인 MR의 연합을 만들고, 전발련(전국대학발명동아리연합회)의 가입을 추진하여 각 동아리가 가진 로봇 기술과 발명 아이디어를 연결해본다는 내용이었다. 시작은 IIC에서 먼저 제안했지만 공동주권을 가지고 운영한다고 했다. 매 학기 두 차례 모임을 갖고, 각 모임은 학교별로 돌아가면서 하기로 하였다. 전발련 가입과는 별도의 성격을 가지는 세 동아리의 연합회 이름은 ARI('아리')라고 짓게 되었다.

사실 Power On 측도, MR 측도 발명과 거리감이 있어 처음에는 전발련 가입에 살짝 부정적인 입장이기도 했던 것 갈다. (또 뭔가 연합회에 가입하면 이것저것 해야 하는 일도 생기니 그런 게 동아리 활동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도 있었던 것 같고.) 하지만 발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잘 모르는 로봇 제작 기술을 발명과 접목시키면 보다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또 특허나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부분을 잘 모르는 로봇 동아리들이 그 방면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로 모두 수긍하였다.

사실 나는 다른 것보다도 포항공대 로봇동아리 Power On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MR의 경우 역사도 오래되고 많이 알려진 동아리기 때문에 외부 지원이 많아 비교적 비싼(-_-) 로봇들을 조작하거나 개발할 기회가 많은 편이지만, Power On의 경우는 한때 로봇축구를 좀 하다가 몇년 간의 공백기 후 정체성을 바꾼 쪽이었고 상대적으로 가난한(?) 재정을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현 회장 박철우군(동갑)의 개혁(?)으로 '만들고 싶은 로봇을 만들자'는 방향으로 동아리 활동 방향을 바꿨고, 갖은 삽질을 통해 다작(多作)하여 재미있는 것들을 골라내는 쪽으로 해왔다고 한다. 동아리 소개 시간에 보여준 로봇 작품들이 상당히 인상깊었는데, 기술적으로 어려워보이는 건 없었지만 큐브 풀이 로봇이라든가, 자석을 이용해 자유롭게 돌아가는 공을 만들고 그 안에 기계 장치를 넣어 레이저를 발사하게 했다든가, 간단한 시한폭탄 장치 등 참신한 것들이 많았다.

MR도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 있던 로봇축구 주축 인력이 빠져나간 후로, 이렇다 할 작품들은 잘 나오지 않고 있다. MRG(미스터 거북이), 사나이(이족보행 로봇)라는 큰 프로젝트가 있기는 하지만 정작 일부 동아리원들만의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고, Power On과 같은 재미있고 실험적인 시도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있었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흥미·참여를 유발시키거나 지속적인 개발을 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Power On과의 만남은 MR에게는 분위기 쇄신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 연합회를 통해 세 동아리 모두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Power On은 다양한 창작 로봇들을 출품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IIC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로봇 제작 기술들을 공유하고, MR는 분위기 쇄신과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동기를 얻는 방향으로 잘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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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월요일) 하루종일 이삿짐 정리를 하고 나서 학교에 오자마자 inureyes님, 토끼군과 함께 TOP(Tatter Open Proejct 정도?) 논의라는 명목으로 새벽 5시까지 수다(...)를 떨었더니 좀 피곤했다. 밤잠은 잘 잤지만 역시 낮잠이 필요. 원래는 보통 낮 12시 30분쯤 끝나는 체력육성 수업 후에 점심 먹고 바로 MR 동방에 갈 예정이었는데, 오늘따라 하필이면 수업이 일찍 끝나버려서(11시 40분) 기숙사에서 좀 자다 와야지 했던 게 화근이었다.

그러니까, 2시에 모 동아리에서 MCU 프로그래밍 관련해서 문의를 해오기로 되어 있었고, 그 약속이 나한테 잡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알람도 못 듣고 계속 자버렸고(-_-) 그 동아리 회장분한테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아차차 하면서 일어났다. ;;;

거기서 필요로 하는 건 대충 말하자면 PWM 방식으로 들어오는 신호를 읽어서 펄스 길이에 따라 10개 정도의 Servo 모터를 제어하는 MCU 프로그램을 짜고 싶다는 거였다. 뭐 타이머 인터럽트 써서 어쩌구저쩌구 해서 짜면 될 것 같다고 했더니, 간단한 예제를 직접(!) 보여달라고 하셔서 거의 1년 만에 빵판을 만져보았다. -_-;

프로그램 코드는 동아리 작업컴퓨터에 이미 기본적인 것들이 있어서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고, 문제는 회로를 만드는 거였다. 예전에 내가 선배 것을 보고 다시 정리한 교육자료를 보면서 만들었는데...

  • VCC, GND 거꾸로 꽂기
  • 동방의 파워서플라이 접촉불량 포트에 꽂기 (오랫동안 안 써봤더니..-_-)
  • MCU에 프로그램을 굽는 케이블의 VCC, GND 방향 반대로 보기

...등등의 이유로 한참을 삽질하고 MCU 칩 하나도 날려먹었다. (극을 반대로 꽂았으니 칩이 타버린 모양. 프로그램을 구우면 실패라고 뜨는데 작동은 한다(?).) OTL 결국 03학번 선배 누나가 도와주셔서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 수 있었다. -_-;

하여튼 그래서 결론은 비몽사몽하다가 삽질했다는 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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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여 전부터 벼르던 이사를 드디어 오늘(26일) 했다.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2동 동보4차에서 같은 구의 성복동 푸르지오로 이사했다. 집 크기는 세 평 정도 작지만 푸르지오가 좀더 최근에 지은 거라서 그런지 구조도 이것저것 아기자기(?)하게 많이 만들어놨고 좀더 넓은 느낌이 난다. (큰 틀은 바꾸지 않는 선에서 바닥재, 벽지, 발코니 확장, 조명 등을 고쳤고 특히 아버지 서재에 들어갈 책장과 책상을 원목으로 새로 맞추기도 했다.) 다른 것보다도 여기저기 수납장이 많아서 짐정리를 어느 정도 해놓고 보니 집안이 상당히 깔끔하다.

전 집과 비교했을 때 장점이라면 광랜 등에 대응하기 위한 시설이 있어서 현관 쪽 수납장 내에 각 방으로 연결되는 랜 케이블과 전화선을 분배하는 단자가 있어서 그곳에 공유기 등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 라디오 전파가 매우 잘 잡힌다는 것(..동보에서는 집에서 라디오 듣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샤워부스가 따로 있고 특이한 기능(?)의 샤워기가 있다는 것, 다용도실과 부엌이 별도 방처럼 분리되어 있어 세탁기 소음이 많이 차단된다는 점, 화초를 키우기 위한 공간이 따로 있고, 바닥재 일부가 지어질 때부터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는 것(근데 맨발로 걸어다니기에는 오히려 딱딱한 느낌이 강해서인지 발이 아픈 것 같기도 하다-_-) 정도다.

단점이라면 집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각종 조명이 매우 많아졌고, 따라서 전기값이 꽤 많이 나올 것 같다는 것과, (안 그래도 우리집이 전기세가 좀 나오는 편이었다. -_-) 또한 부엌에서 찬물을 쓰려면 발로 싱크대 아래의 버튼을 쿡 눌러야 한다는 것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인지 좀 불편하다.

어쨌든 새로 고쳐서 들어온 집이라 깔끔하고 좋다. 벽지나 조명들도 모두 가족들의 의견을 모아서 세심하게 고른 것들이라 그런지 마음에 든다. 앞으로 이 집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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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벌써 어제..) 학부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보니 매점 2층 다용도실에서 사람들이 뭔가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차피 방학이니 수업도 없을 테고, 저녁 시간이라 크게 방해될 것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계공학동 로비에 있는 피아노를 치러 갔다.

요즘은 주로 모차르트의 곡들을 치고 있는데, 잘 치는 것도 있고 못 치는 것도 있고 그렇다. 어차피 전공자도 아니니 뭐 살짝 틀리는 건 넘어가는 셈치고, 다만 듣기에 거북하지 않을 정도로 칠 수 있는 곡들을 골라서 생각나는 대로 죽 쳤다. 로비의 소파에 앉아있던 사람들 무리가 없어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이고...

1시간 쯤 쳤을까, 캠폴 아저씨가 돌아다니며 문단속을 하는 게 보였다. 어차피 건물을 폐쇄하거나 할 건 아닐 것이므로 로비에 있는 나는 계속 피아노를 쳤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이 보였다. 한 곡을 다 연주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 흘끗 보니 계속 날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_-; 뭐 나는 구경 좀 하러 왔나보다 하고 계속 치는데 듣다가 지쳤는지(?) 아예 잠들어 있다.

다소 빠른 박자의 1악장, 3악장 위주로 치다가 잠시 느린 템포의 2악장 2개를 치고—원래 소나타는 세 악장을 순서대로 다 연주해야 작곡가가 말하는 스토리가 완성된다고 하지만, 배울 때, 연습할 때 악장별로 따로 했기 때문에 나는 내키는 대로 친다—마지막으로 K.331 3악장, 흔히 터키행진곡으로 알려진 그것을 쳤다. 사람이 별로 없는 때라서 그런지 소리도 잘 울렸고, 그래서 페달을 줄이고 최대한 깔끔한 스타카토로 처리해주었다. (원래 모차르트곡은 울림 페달을 안 쓰는 게 맞지만, 실력이 부족하여 페달 없이 내가 원하는 소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가끔 사용한다)

그 연주가 끝나고 혼잣말로 '이제 가야지' 중얼거리며 책을 챙기자 아까부터 듣다가 잠든 그 남자분이 부스스 일어났다. 내가 가방을 들고 일어서자 2층으로 슬그머니 사라졌다. 안경 쓴 남자분이었는데, 얼핏 보기에 나이가 좀 있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혹시 교수님이었나? 아무튼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부족한 내 연주를 들어준 사람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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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드라마 카이스트에 말렸다. 1999년 무렵 SBS에서 방송했던 바로 그 카이스트 말이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재밌게 봤던 기억은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마침 학교 내의 어느 ftp 서버에서 81화 전체를 제공하고 있어서 찾아보게 되었다. (사실 입학 후 앞부분은 봤었지만 이번에 본격적으로 달리는 중이다-_-)

프로필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나는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다. (뭐 이 블로그 자주 오시는 분들이야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내가 수업을 듣고 시험을 쳤던 교실이 나오기도 하고, 당시에는 없었던 태울관, 정문술빌딩 등이 들어서기 전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실제로 지금의 우리가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고민들을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나, 드라마 치고는 꽤나 학교 내부 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 등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 동아리에서 모델이 되었던 바로 그 미스터(MR) 동아리원이고, 또한 전산과이기도 하다. 게다가 90년대에 있었던 포항공대-카이스트 해킹사건의 전설적 인물인 노정석님과 아는 사이이기도 하다. 내가 그 드라마를 처음 봤던 초등학교 6학년 때만 해도 내가 카이스트에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막연하게 '멋지다'라고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그 카이스트 한가운데 서 있고, 벌써 4년 중 2년이 지나간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이 드라마가 단순 재미뿐만 아니라 여러가지로 새롭게 다가온다.

해킹에 관한 이야기가 드라마 전반에 걸쳐 몇 차례 나오는데, 당시에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쓰고 있는 것들이라는 것도 재밌었다. 쉘 프롬프트(드라마는 BSD 계열로 나온 것 같다), ls 명령, sendmail 프로그램, 포트 스캐닝 등... 게다가 '박 교수'가 가르치는 수업에서 Mas heap 등이 나온다는 것은 바로 Data Structure 수업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시간복잡도 얘기까지 나오다니...ㅠㅠ 드라마에서 수업 시간에 교수가 던진 질문이 실제로 내가 들은 DS의 기말고사 시험 문제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이니만큼(?) 허구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기숙사 방. -_- 신축기숙사는 그래도 꽤 깨끗한 편이지만 드라마는 무슨 기숙사 방이 아니고 거실이다. 방에 탁자를 놓고 앉아서 얘기할 공간 씩이나 있다니. (...) 학부도서관의 계단 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더니 갑자기 보이는 석학의 집 간판도 매우 황당했다. 실제 석학의 집은 그와 1km 정도 떨어진 서측학생회관에 있다. -_-; 박 교수가 DS 수업을 하는 교실은 사실 전산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다. 정확히는 내가 인지과학입문과 심리학개론을 들었던 곳이다. (당시에는 창의학습관이 없었으니 인문사회과학부 쪽에서 일부 전공 수업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MR는 로봇축구보다는 보다 다양한 로봇들을 연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2004년 이후로는 이렇다 할 만한 대회에 출전하거나 하지는 않고 있지만, 벽에 박힌 못들에 팔을 뻗어 기어오르는 로봇 같은 것도 만들고, 이족 보행 로봇 등을 다루기도 한다. 요즘은 그때보다 로봇 산업 자체가 굉장히 커지고 기술도 많이 발전해서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나 같은 경우는 MR 후배 한 녀석과 함께 URP[footnote]학부생 연구 참여 프로그램. http://urp.kaist.ac.kr[/footnote]로 수중로봇 개발을 하고 있는데, 정말로 잘 만들어진 각종 컨트롤/임베디드 보드나 시뮬레이터 등이 많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에서와 같은 '극적인' 요소는 다소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드라마에서 다가왔던 것들은 그것이 담고 있는 줄거리였다. 기업의 스폰서를 따내기 위한 교수와 학생들의 눈물겨운 노력, 로봇축구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 유학을 가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 선 연인, 겉으로는 엄격하고 까탈스럽지만 속으로는 진정 학생을 위하는 교수(..) 등 일부는 살짝 과장된 면도 없지 않지만 실제로 매우 공감가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요즘은 그 정도로 연구비가 모자라서 고생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드라마의 배경은 IMF였으니까.) 그 속에서 엮어지는 주인공들의 고민과 일상, 대사들은 가끔씩 지금의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어주고 있다. 과학·공학을 왜 공부하는가?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들을 간접적으로 던지고 있는 것이다.

카이스트 학생으로서 보는 드라마 카이스트는 정말 느낌이 색다르다. 남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나오는 다른 드라마들처럼 현실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기형적인 가족 구조, 숨겨진 비밀, 불치병 등으로 신파 떨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현실에서, 실제 주변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인물들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인가, KBS였던가, 카이스트를 소재로 다시 드라마를 만든다면서 몇 차례 작가와 PD 등이 몇몇 동아리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 걸 보니 아마 취소된 모양이다.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 만든다고 해도, 그 드라마 카이스트처럼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신선한 느낌은 주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 보면 다소 유치한 면은 보여도 이공계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을 바탕으로 했다는 건 뚜렷이 느낄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당시보다 더욱 복잡해진 현재 상황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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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금요일에 할 이사를 대비하여, 15년 동안 버리지 않고 보관해왔던 내 그림 작품들을 정리했다. 유치원 다니기 이전부터 초등학교 4학년 무렵까지 8절지 스케치북에 사인펜을 이용하여 그린 수백장의 그림들을 일일이 다 뒤져보고 골라냈다. 주로 완성도, 구도, 소재의 독창성이나 특이함, 그림 기법, 세밀한 묘사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그림들의 존재는 아직까지 우리 가족이나 부모님과 가까운 분들 외에는 거의 모르고, 딱히 전문가에게 감정(?)을 맡겨본 적은 없지만, 내 스스로도 놀라웠다. -_-;

그 그림들을 정말 일일이 다 들여다보았는데(지난주 주말, 이번 주말 도합 3일이나 걸렸다), 그 중 어떤 것은 직접 그리던 게 생각나는 것도 있지만 아주 어렸을 때 그린 것들은 생각나지 않는 것도 많았다.

재료로는 가장 많이 사용된 모나미 12색 사인펜(...)부터, 한때 유행했던 은색·형광펜, 또 만화가나 건축가들이나 쓴다는 로트링 펜, 아버지가 외국 출장 가서 사다주신 수채색연필, 파스텔, 크레파스 등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로부터 알게 된 일본제 PlayColor 펜과 모나미 사인펜이 그중 95%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소재는 극초창기의 동화 내용, 자연물(주로 지표면과 그 위의 식물·동물들 상상화)부터 시작하여 각종 과학책을 보고 그렸던 내용(판구조론, 대기권 구조, 태양계, 인체 해부, 개미집, 공룡, 말벌집, 수달집 등), 그리고 우주 도시나 공중 도시, 미로, 지구 멸망(운석 충돌), 각종 재난(화재, 홍수 등), 콘솔 게임으로 했던 쥬라기 공원과 슈퍼마리오 및 PC로 했던 레이멘 게임의 스테이지 디자인, 화려한 단청을 가진 궁궐, 기와와 초가로 이루어진 마을 풍경, 그림을 그릴 당시의 주요 사건들(이라크 전쟁, 무궁화 위성 발사, 화성 탐사선, 목성에 충돌한 혜성 등), 현대 및 전통 건축물의 단면, 각종 건설 광경, 상상으로 만든 각종 설계도(?)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다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형은 내가 그린 그림들만 봐도 웬만한 과학 공부는 되겠다고 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스케치북을 가로지르는 정도의 선을 그을 때도 어떻게 떼지 않고 한 번에 그어내려갔는지 '펜 터치'가 신기하다고 하셨다. (물론 선을 실제 보이는 것처럼 똑바로 긋진 못하고 좀 삐뚤빼뚤하긴 하다)

초등학교 4~5학년을 거치면서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때 그린 것들은 주로 연습장에 그린—그래서 별로 남아있지 않은—세밀한 미로들과 나름 여자친구(?)라고 할 수 있었던 유정은(...이 아이가 지금도 날 기억할련지는 모르겠다-_-)과 합작하여 그려 나눠줬던 그림[footnote]낙엽 떨어지는 나무 아래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인데, 낙엽과 나무 및 주변 동식물의 세부 묘사를 내가 했고, 화가 인물을 정은이가 그렸다. 재료는 0.5mm 샤프펜슬이었고 기간은 대충 2~3일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당시 여자 아이들에게 꽤나 인기있는 그림이었다.[/footnote] 정도다—물론 이것도 애들에게 다 나눠줬으므로 현재 나한테 남아있지는 않다. 5학년 2학기부터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접했고, 6학년 때 Visual Basic을 접하면서 이제 다들 알고 있는(?)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내 스스로 그동안 사용해왔던 그림 기법들을 몇 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 정도에 다다랐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8절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린 적은 거의 없지만, 알림장이나 필기노트에 각종 그림문자와 장식을 함으로써 그림 감각을 꾸준히 유지(?)해왔고, 대학에 와서도 손으로 써서 내는 선형대수학개론 숙제 등의 각 chapter 번호 등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그림 실력이 발달하는 과정은 물론 내가 가진 정신적 특질의 몇몇 부분들의 기원도 볼 수 있었다. 이를 테면, 나는 소스코드에 주석을 매우 잘 다는 편인데 이것이 그림에도 잘 나타났던 것이다. 그림에서 다른 사람이 잘 못 알아볼 것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글자로 써서 설명을 달아놓은 곳들이 꽤 있었다. (가끔은 전혀 관련없는 당시 집전화번호를 쓰기도 했다. -_-) 또한, 나는 대체로 맵에디터가 없는 게임은 잘 안 하려고 하는데, 뭔가 마을이나 도시 이상의 스케일을 가지는 큰 구도의 그림들에서는 거의 건설을 하는 장면이나 뭔가 기존의 지식이나 상상에서 customize하려는 부분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정말 신기했던 건, 내가 그린 사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초창기(초등학교 1학년 무렵까지?)의 작품들의 주제가 지금 내가 생각해도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척추, 척수, 동맥과 정맥이 구분된 혈관, 뇌, 뼈 등을 묘사한 머리 단면도라든가, (비록 사실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벽 속의 전기 배선 구조를 생각해서 그린 건물 단면도 등은 나 스스로도 보면서 '내가 이 나이 때에 어떻게 이런 걸 그렸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_-;; ...심리학개론 시간에 분명히 Piaget의 인지심리발달이론에 따르면 7세 무렵까지는 '전조작기'로서 수의 개념을 다루기 시작하거나 보존원리[footnote]물체의 모양이 변해도 그 양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Piaget의 경우 일정량의 물이 세로로 긴 컵과 가로로 넓은 컵에 들어있을 경우 그것이 같은 양이라는 것을 앎을 뜻한다.[/footnote]를 이해하기 시작한다고 나와 있던데.; 사실 이런 그림은 수의 개념을 몰라도 '상상'을 잘 하면 그릴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니까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eidetic memory[footnote]언어가 형성되기 이전의 유아들은 사물이나 장면을 기억할 때 언어적 묘사 없이 마치 사진 찍듯이 기억한다고 하는데, 그러한 유형의 기억을 이르는 말.[/footnote]가 떠오르는 건 왤까?

...뭐 어쨌든 어렸을 적의 추억도 되돌아보고, 어렸을 때 내가 이런 동화, 이런 책들을 읽었었구나 하고 알 수 있기도 했고(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초등학교 1학년 무렵 완독했던 과학앨범의 영향이 상당했던 건 확실하다, 또 재미있는 작품들을 감상(..내가 그려놓고 내가 감상하다니...-_-)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응달에서 비교적 일정한 기온으로 유지, 밀폐된 상태로 보관한지라 종이나 펜터치 등의 상태는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었다. 오히려 옛날 스케치북일수록 종이가 두꺼워 잘 보존된 것 같다. 이것을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스캔해놓든지 몇 개 골라서 액자나 판넬을 하든지 해야지 그냥 창고에 쌓아두기에는 너무 아깝다. 하긴 부모님 얘기 들어보니 어렸을 때 아는 몇몇 사람들이 전시회 열어주라고 했다던데 정말 그래야 되나.. -_-;

덧. 내 그림 스타일의 일부(?)는 여기서 볼 수 있다. 몇 안 되는 최근 작품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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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KAIST 96학번, 02학번인 세동[footnote]이분과 얼마 전에 티스토리 분점에서 댓글 토론을 한 적이 있다. -_- 뭐 그쪽 견해는 다르지만 지인·선후배 관계와는 별도이므로..;[/footnote]이 형과 영주 누나의 결혼식이 그제(토요일) 있었다. SPARCS 동아리 커플 최초, (나는 서울과학고 출신이 아니긴 하지만) 서울과학고 12기 최초의 결혼이었고—그렇다, 동아리 커플이다—일가 친척이 아닌 사람의 결혼식에 내가 직접 가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서울에 있는 해군 회관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내가 가본 결혼식 중 사람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막상 일가친척보다는 직장 동료와 학교 친구 및 선후배들이 훨씬 많이 왔던 것 같다.

로비에 들어섰을 때는 도대체 화환을 어찌나 많이 보냈는지 화환을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중에 SPARCS에서 보낸 것도 있었다) 아마 SPARCS 홈커밍데이 이상으로—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직접 참석은 못해봤지만—가장 많은 동아리 회원이 모인 자리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결혼식 주례는 CT[footnote]문화기술. Cultural Technology[/footnote] 대학원장이신 원광연 교수님이 하셨고, 사회는 회사 동료분이 맡았다. 축가는 영주 누나와 고등학교 시절부터 룸메이트를 해왔다는 분이 해주셨고. 결혼식 자체야 뭐 그냥 그런(...) 형식으로 진행되었지만 확실히 동아리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지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축하의 뜻인지 염장하지 말라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3)

다른 것보다 기억에 남았던 건 식사까지 모두 마치고 나온 후다. 신혼여행에 가기 위해 꽃장식을 해둔 세동이 형 차에 용수 형이 가져오신 펜(손으로 슥슥 문지르면 지워지는 것)으로 잔뜩 낙서를 했던 것이다. -_-; 결혼하신 두 분 다 전산 분야 출신이셨기 때문에 "NullPointerException"부터 시작해서 "this.팀 = null; System.gc();"에 이르는 다양한 낙서가 등장했다. 물론 하트 모양과 같은 일반적인(?) 낙서도 있었지만.

간만에 시내에 나갔다오느라 피곤하긴 했지만, 동아리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이때 netj라는 아이디로 알던 재호 형도 처음 만났다) 밥도 잘 얻어먹을 수 있었다.; 앞으로 두 분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게 잘 이어지길 바란다. 아, 신혼여행은 발리로 가신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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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것저것—태터툴즈, URP, …—하느라 블로그 포스팅을 거의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예정 목록을 공개해두면 뭔가 더 motivation이 되지 않을까 해서 적어둔다. -_-;

  • 웹표준에 관한 토론 : IRC의 어느 채널에서 SI 업계 현역 종사자분과 웹표준, 특히 전자상거래에 관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해당 내용 정리와 블로거들의 의견을 묻는 포스팅
  • iPhone의 의미 : 컴퓨터 기업이었던 Apple이 가전과 핸드폰을 아우르는 종합 IT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기술적 관점에서 본 iPhone의 출시 의의 등.
  • 방망이 깎던 노인 2편 : 이사갈 집의 인테리어 공사가 완료된 상태다. 오늘(화요일) 그 공방 아저씨가 만드신 책상과 책장이 새 집에 들어간다. 작업실에서 몇 번 구경했는데 정말 최고다.

뭐 이 정도다. 아마 내일 1~2개쯤 하게 될 것 같고, 마지막 것은 주말에 집 구경 가면 사진이라도 찍어서 올릴까 생각 중이다.

그나저나 유럽여행 에피소드 시리즈와 먼 옛날의 XHTML 강좌는 아주 안드로메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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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까 영화 '중천'을 보러 나갔다오느라 블로그 결산만 급히 작성하고 원래 쓰려던 이 글을 못 썼었다. 영화 감상은 사람들이 스토리가 뻔하다고 평하던 것과는 달리 영상미, CG 등 몰입도 있게 상당히 잘 만들었다고 느꼈다는 정도만 써두겠다. (개인적으로 스토리야 뭐 그런 영화에서 거기서 얼마나 더 복잡하게 꼬고 반전을 만들어봤자 어느 정도겠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사람들이 너무 반전에만 맛들인 게 아닐지. 예술성으로 충분히 높이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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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KAIST 2학년으로서 전공 과정을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한 해였고, 2005년 한 해 동안 해온 블로깅을 바탕으로 더욱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인맥을 쌓을 수 있었던 해였다. 처음으로 내가 가진 기술로 돈을 버는 알바를 해보았고, 이른바 '업계' 사람들과 처음 제대로 접촉해보았다. 또한 대학 와서 처음으로 외부 대회(IT Festival과 ACM-ICPC)에 참여하였다.

블로깅을 통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Kaistizen님, lshlj님, reshout님 등 많은 KAIST 사람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일부와는 오프라인으로도 교류가 확대되었다. 또한 TNF 활동을 통해 노정석님, inureyes님 등과 깊이 있는 교류를 하며 웹 세상에 대한 시각을 넓혔고, 더불어 TatterTools 개발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과도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2차적으로 고등학교 선배인 백영준님을, SK 아이미디어의 김용오 대표님과 개발자 분들 등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끼친, 끼칠 분들이다.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더 넓은 세상과의 만남

TatterTools와 MetaBBS라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또 동아리 팀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혼자 하는 프로그래밍의 세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팀단위 개발을 (조금이나마) 경험해볼 수 있었다.

동아리에서도, 개인적으로도 내가 가진 컴퓨터 관련 지식이나 기술들을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제대로 활용해본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내가 원했던 바와 같이, 내가 얻은 것들을 베풀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한편, 여름방학 때 다녀온 유럽여행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인류 역사에서 각 문화권들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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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07년이다. KAIST 3학년으로서 더욱 빡센 전공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TatterTools와 MetaBBS 프로젝트의 핵심축으로서 내 역량을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 더욱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초점을 맞추고, 착실히 내공을 기르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