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이전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한 후 했던 생각들을 적었는데, 이번 추모 기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드는 생각들이 있어 다시금 정리해보려고 한다.

어머니께서 하신 이야기 중에 와닿았던 부분은, 언론과 대중들의 모습이 성서에 나오는 빌라도 앞의 대중들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막상 앞에 있을 때는 맘에 안 든다고, 쳐죽이라고 그렇게 난리를 치다가 정말 죽고 나니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모습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그런 분위기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고인이 잘 했던 부분들이 새롭게 조명받으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살아있을 때 잘하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울 뿐이다.

문제는 현대 사회처럼 정보가 넘쳐나고 개개인의 생활이 바쁜 시대에 여러 시각을 공평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는 언론들에도 있다. 지금 노무현에 대한 추모 열기는 현재의 이명박 정부가 소통에 미숙하다는 단점이 노무현의 소탈했던 모습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면서 더욱 강화되는 느낌도 있지만, 정말로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 그가 잘 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때문인 면도 크다. 특히 IT 쪽으로 상당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접근했던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나 스스로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사용한 경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얼핏 청와대 업무시스템인 이지원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물론 노무현이 했던 정책들 중 실패한 것들도 있다. 집값 잡는다고 하다가 오히려 더욱 올려버린 점, 행정수도 공약 때문에 스스로 발목잡혔던 점, 빈부격차의 심화 등등. (이 부분에 대해선 보수언론들의 시각이라는 반론도 있으니 댓글 참조.) 그러나 그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IT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참여에 익숙해지고 이것이 대의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 쉽게 묻혀진 것 같다. 지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하고 있는 일을 사실은 노무현이 먼저 했던 것이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 하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해야 하는데 그러한 공정한 시각보다는 사회 기득권층 대다수의 입맛에 맞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것 때문에, 또한 노무현이 그러한 기득권적 배경을 별로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언론들이 더욱 그를 잡고 겁없이 흔들었고 그런 언론들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대다수의 국민들(나를 포함해서)은 노무현이 '대통령 답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만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의 측근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점 자체는 분명히 잘못하였지만, 왜 노무현에게는 그 부담이 배로 전가되고 노무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말 많이 해쳐먹은 다른 전직 대통령들이나 비리 세력들은 어째서 멀쩡하게 살아있는지, 그러면서도 영결식에 멀쩡히 참석하는 모습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이 역사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최소한 지금까지의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서라도) 더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고위 정치인들 내지는 권력자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지식정보화 사회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했던 인물이고, 또한 처음으로 가장 소박하고 소탈하게 살고자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측근 비리 문제가 불거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만한 정치인들 중에서는 가장 도덕성을 중요시하고 비리도 적은 편이었으며 스스로도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더 높아지고 감시도 강화될 것이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IT기술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인식 변화가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대통령과 정부들은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이번 학기에 한국문화사 수업을 통해 나라기록관 답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으로, 가장 많은 기록물을 남긴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다는 점, 나라기록관 사업을 시작하고 공공기록 관리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게 된 것이 노무현 집권 기간이었다는 점은 노무현이 그만큼 스스로 투명성과 역사의 평가에 대해 신경쓰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1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노무현을 우상화·영웅화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도 사람이기에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정책 모두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추모 열기는 대내외적으로 여러 상황이 복잡하고 어려운 가운데 어려운 환경 속에 성장하여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일종의 역할모델로서 노무현에 대한 심정적 동질감 때문에 약간은 더 심하게 나타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그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나쳐서 그의 잘못까지 무조건 덮어버리려는 정도까지 가면 안 된다는 말이다.

예전에 광우병 촛불집회를 보며 썼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의 이명박 정부를 보면 정보기술이 가져오는 근본적인 사회 패러다임 변화에 거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보가 더욱 투명하게 유통될수록,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이 자유로워지고 그 비용이 0에 수렴할수록, 숨길 것이 많은 사람들이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겐 인터넷과 IT기술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억제할 수 없는 사회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언제쯤 다시 노무현처럼 그런 면을 이해해주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것, 혹은 떠나야 했던 것은 비통한 일이지만, 노무현이 잘했던 것, 못했던 것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평가해주리라 생각한다. 과연 이명박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지금 잘 알려지지 않은 이명박이 잘한 일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또한 이명박 다음에는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가게 될지도 궁금하다.


  1. 조선이 세습왕권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길게 왕조를 유지하고 버텨왔던 것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뛰어난 기록 문화와 역사에 대한 두려움, 권력 감시 체제를 이념적으로 강화하여 세운 국가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기록물 관리는 노무현이 시작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어차피 투표권도 없었지만 과학고에 들어갈 준비를 하느라 유세도 제대로 못 보고 어느날인가 대통령이 바뀌었다는 사실만 인지했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노란색을 자주 사용했던 노사모 정도. 취임하고 얼마 안 되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는 둥 이런 소리가 들리며 한동안 시끄럽다가 각종 부동산대책이 나오면서 집값이 무섭게 오르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반쯤 농담이지만, 우리집이 아마 강남에서 계속 살았으면 집값으로만 몇억은 그냥 벌었을 거다)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든지, 말 많고 요리조리 머리굴려가며 언론들과 싸움놀이한다든지 하는 부정적인 평가가 주변에서 많이 들려왔다.

하지만 나중에 와서 보니 그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무대뽀로 밀어붙이는 삶을 살아왔던 점, 바보에서 시작해도 끝까지 밀어붙이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 소통을 중요시했던 점, 무엇보다 그 어떤 정치인도 섣불리 내걸지 못한 도덕성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내세웠다는 점 등이 그러한 요소이다. 특히 자신의 소신과 고집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부정적인 평가와 동시에 긍정적인 평가도 함께 받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대외적인 이유도 물론 있었지만 경제가 어려워지고 국민들이 원하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노무현의 지역주의·권위주의 타파와 관련된 긍정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사실 나는 아직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등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런 개념들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말을 접하게 될 때면 더욱 혼란스럽다. 분명히 알고 있는 건 지역주의가 여전히 팽배해있다는 점이고, 김대중과 노무현이 김영삼과 이명박과 다른 계열의 정당에서 나와 그 시기를 현 정권 및 여권에서 '잃어버린 10년'으로 부르고 있다는 정도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까지는 익숙해도 아직 그 전에 각 정당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각 정당이 가지고있는 비전, 소속 정치인들의 관심사나 성향도 잘 모른다. 역시 분명히 알고 있는 건 거의 언제나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정도에 이명박은 한나라당 계열, 노무현은 (언젠가 탈당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열린우리당 계열이라는 정도?

이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도, 얼핏 인터넷 뉴스를 돌아다니면서 박연차 회장과의 비리 혐의 문제로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워낙 바쁜 학업 중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는지는 거의 모르던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정확히 종강 다음날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이 자신이 가장 내세웠던 도덕성에 상처가 생기고 주변인들이 자꾸 소환되자 자격지심 혹은 그 성질머리(?) 때문에 자살한 것이라고도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저인망 수사 등을 근거로 들며 보수 언론에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혐의 사실을 흘림으로써 사실상의 표적 수사를 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오면서, 온라인 지인들의 여러 글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2005년인가 2006년 여름에 대통령과학장학생 신분으로 청와대에 불려가 노무현과 점심을 함께한 적이 있었다. 식사하기 전에 짤막한 연설을 하였는데, 참 말 앞뒤가 줏대없이 생뚱맞다는 느낌을 받았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지?'뭐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의 정책들 대부분은 취지는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욕하기만 했다. 당시엔 몰랐는데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었고, 어찌됐건 당시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충분히 자격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자질이 나쁘다면 그건 그런 사람을 뽑은 국민들의 잘못과 그러한 사람을 배출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그가 아주 똑똑하게 굴지는 못해도 나름대로의 고집있는, 소신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더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선 같은 사람으로서, 권력의 정점에 있었을 때 같은 자리에서 직접 볼 수 있었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움과 애도를 금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대통령이기 때문에 지는 책임도 큰 만큼 이번 수사에서 확실하게 결론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선 어느 정도 시일을 둔 뒤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할 것이다. 노무현이 무죄인지 유죄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역사의 심판을 반드시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전두환 같은 사람이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유족들에겐 힘든 과정이 될 것이고 그런 점에서는 나도 아쉽고 슬프다.1

민주주의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역시 국민들이 정치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견제 장치가 얼마나 잘 마련되어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기본적인 원리를 다시금 깨달았다.2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정치적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제서야 나는 왜 사람들이 조중동을 보수언론으로 보는지, 한겨레 등을 좌파(혹은 진보)언론으로 보는지, 언론사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점차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3 투표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대통령을 잘못 뽑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도 역사와 현실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IT 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소통이 한없이 자유로워지고 소통의 양이 무한대로 증폭되면서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는지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변화들이 과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지금까지의 인류가 그나마 최선책이라고 생각해 적용하고 있는 사회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노무현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괴롭고 슬프겠지만, 또한 누군가에게는, 아니, 대한민국에게는 사회적 성숙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쓸데없는 망상일지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내가 만약 대통령 정도 되는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통령은 사실 자기 손으로 무엇을 직접 이루어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은 말과 글을 통해 하나의 나라를, 또는 여러 나라를 움직일 수 있다. 권력의 정점에 있다는 말은 곧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무언가 이루어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과 수십명이 모인 학교 동아리조차 회칙 개정안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한 나라에 존재하는 수많은 입장들을 조율하여 움직이려면 얼마나 어려울까?

한편으론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러이러한 부분에 신경써서 정책을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농수산업의 과학화, IT 인력들의 창의성 발휘 환경 구축, 중공업의 고도화, 예술·문화계 진흥, 인문학 활성화와 자연과학과의 융합 연구, 대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닌 중소기업들이 커갈 수 있는 경제 생태계 형성, 환경 감시 체제 강화, 친환경 산업 육성, 러시아·중국과의 외교관계 강화, 동남아와 남아메리카에 대한 해외원조 확대로 위상 강화, 공공도서관 전문화, 세금 운영의 투명성 확보, 각종 공공 통계 및 공공기관 정보를 이용하기 쉬운 형태로 가공하여 제공하기, IT 기술을 활용한 국민들과의 소통 및 의견 취합--포탈사이트에 익명보장 정책제안 코너를 만들어 인기 상위 100개와 비인기 랜덤 100개를 뽑아 브리핑 받는다든지, 악성댓글 엑기스 뽑아먹기와 같은?--민영 의료서비스의 공공재화, 국가 기록 관리 강화 등등등 뭐 그동안 소소하게 느꼈던 것들을 계속 생각해서 쓰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로는 역시 대북 관계와 같은 것이 있겠다. (뭐, 보면 알겠지만 공돌이 아니랄까봐 좀 편향되어 있긴 하다. ㅋㅋ)

하지만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한들 그것을 실제 실행에 옮기는 실무자들이 이를 잘못 이해·해석한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이 없을 것이다. 이명박의 녹색 성장도 그 자체로는 매우 바람직한 구호이지만 뭔가 실제 진행되는 것들을 보면 건설경기 활성화가 목적인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또한 실무자들이 충분한 능력이 되지 않으면 어딘가에서 들리는 말처럼 연구 제목에 '녹색'이란 단어만 들어가면 돈 따오기 쉽다 하듯 세금을 눈먼 돈으로 쓰고 말 수도 있다.

대통령이란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도움이 필요할 터인데, 막상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명박은 그 문제를 낙하산 인사로 일부 풀고 있는 듯하다. 동시에 대통령의 권력에 기대어 뭔가 이익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컨택해올 텐데 그것들 중 실제 국정에 도움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가려낸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노무현도, 이명박도 이런 어려움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말 대통령은 똑똑하고 체력 강하고 주관이 철저한 그런 사람이 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란 자리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왜 대통령을 하였을까?<br/> 이명박은 왜 대통령을 하였을까?

초심으로 돌아가는 이 질문에 온전하게 답할 수 있어야 명분이 설 것이고, 대통령직을 훌륭하게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1. 참고로 나는 현재의 검찰 수사가 얼마나 심하게 진행되었는지, 혹은 사건의 진위가 어디까지 정확하게 밝혀졌는지 등에 대해선 잘 모른다. 이미 결론이 났다면 더 할 필요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보는 정도다. 

  2. 아쉽게도 현 이명박 정부는 사회·기술·문화의 흐름으로 인한 소통의 방식과 개념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3. 아무래도 사람은 자기가 접하는 정보에 따라 그 편향이 달라진다. 요즘은 부모님과의 정치적 입장에서는 약간의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기도 하다. 나는 주로 인터넷과 온라인 지인들을 통해 여러 정보를 접하지만, 부모님은 동아일보와 TV 뉴스를 통해 주로 정보를 접한다. 보통 어떤 대원칙이나 논리적인 부분을 이야기할 때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데, 어떤 특정한 사건을 두고 평가할 때는 미묘하게 말투나 분위기가 엇갈리는 경우가 있다.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지난 주에 OTL 프로젝트 런치하고--아직도 베타 딱지를 떼려면 할일은 산더미지만--네트워크 IP fragmentation 구현 프로젝트 끝내고 30장짜리 한국문화사 조별답사 레포트까지 끝냈더니 뇌가 드디어 파업을 해버렸다. 사실 당장 다음 주 화요일까지만 해도 OTL 프로젝트 테스트 플랜 작성과 NLP 프로젝트(!)가 있지만 일단 어제 오늘은 별다른 생각 없이 푹 쉬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쉰다기보다는 그동안 못 돌아본 것들을 돌아보는 그런 시간? TV도 보기 힘든 이런 환경에선 결국 인터넷 서핑이 된다. 텍큐닷컴의 관심블로그들을 한번 돌아본다든지 뭐 이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현재가 아무리 바쁘다고 해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 당장 이번 여름방학은 거의 잡혀가다시피(?) 해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인턴 할 생각 있어요?"라는 질문에 "생각해보구요"라고 답해놨더니 어느날 덜컥 점심먹으러 오라고 해놓구선 업무소개까지 하고 있더라. (뭔가 열심히 듣다가 '어, 이건 회사 기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니 '인턴 하는 거 아녔어요?'란다.) 사실 아는 동아리 동기 형이 거기서 직원(학업과 함께)으로 일하고 있고 대표님도 다른 경로를 통해 안면을 익혀둔 사이긴 하다.;;;

어차피, 작년에 구글 인턴은 아쉽게 못하게 된 터였고--뭐, 언제든지 다시 지원하면 신청은 받아주겠다고는 했지만--특별한 경험이 될 만한 게 아니라면 대학원 면접까지 겹치는 상황에 복잡한 서울에서 인턴을 할 생각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집이 용인 수지라 출퇴근이 좀 압박이다) 이곳을 고르려 하던 참이긴 했다. 마침 그 회사가 하는 분야도 관심있어 하던 것이고 그 회사에서 하게 될 일도 내가 잘 하는 일과 새로 배우는 일을 어느 정도 결합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하는 중이다.

결국 당분간은 쭈욱 대전에 있게 될 것이다. 대전지역 인턴쉽이기 때문에 학교에 기숙사도 신청했고, 가을학기는 일단 한 학기 더 다녀야 하고, 7~8월 중 대학원 입시를 무사히 끝내면 적어도 향후 2년 동안은 대전에 더 있을 것 같다. 다음 번 휴식기는 아마 잠깐 다녀올 여름휴가 겸 가족여행과 학부 마지막 겨울방학이 될 듯. 이번엔 종강해봤자 책(!)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바쁠 것이다.

대전에 있으면 좋은 점이 어쨌든 동아리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턴할 회사가 학교 안에 있기 때문에 출퇴근은 거의 5분밖에 걸리지 않을 테고, 출퇴근 경로의 중간에 동아리방이 있기 때문에 아마 후배들이 진행할 SP세미나나 휠세미나 같은 걸 저녁 시간에 들러 책 쓰는 작업도 하면서 적당히 코멘트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가을학기는 예전에 들어보려고 했다가 신청하지 못했던 작곡 수업을 마지막 교양으로 하고, 문수복 교수님의 분산처리 특강과 지도교수님이신 김기응 교수님의 전산로보틱스 수업을 듣게 될 것 같다. 다른 수업을 더 신청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아마도, 여름방학 때 인턴하면서 만들게 될 시스템을 문수복 교수님 수업에서 이용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확한 건 일을 시작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ㅋㅋ

사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일단 카이스트 대학원으로 진학을 결정한 이상 어느 교수님 랩을 가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빡세거나 널널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은데 관심분야는 죄다 빡세기로 소문난 교수님들...; 석사를 마치고 전문연구요원 형태로 병특을 하려고 생각 중인데 2년만에 석사 졸업이 가능할까 뭐 이런 소리가 나오는 판이라서 살짝 걱정된다;; (그나저나 전 룸메인 승범이는 이제 랩생활 시작했다는 것 같다.)

2~3학년 시절 내내 신축에서 살았더니 확실히 학부 지역이 좋긴 좋은 것 같다. 기숙사 방에 세면대가 없다는 점만 빼면 모든 게 학부생 기준으로 맞춰져 있고, 무엇보다 다용도실 피아노와 시청각실 피아노를 이용할 수 있다는 빼놓을 수 없는 이점이 있다; 예전엔 수업 없으면 시청각실을 항상 잠궜었는데 건물 리모델링하면서 출입구 카드키 시스템이 적용되어서인지 저녁 시간에 가면 거의 열려 있는 것 같다.

마지막 남은 학부생활인 2009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정신없이 프로젝트로 달린 봄학기는 과연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올런지. (한국문화사 요약레포트 다 만점받은 게 일단 심적 위안이 되고 있으나...)

석사를 마치고, 병특을 하고 나면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까?<br/> 다음 학기엔 대학원과 더불어 여기에 대한 걸 좀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ps. TTSKIN 문제의 경우, 결국 겐도님의 무한하고 영광된(?) 삽질로 구글 내부에서 쓰는기존 스킨 규격의 살짝 업글 버전과 기존 규격을 하나의 코드로 동시에 지원하는 걸로 결론났다. 즉,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 디자인 작업의 편의성을 생각했을 때 기존 형태가 그나마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제 바톤은 TTXML과 TTML, 댓글알리미 표준화로... (먼산)

ps2. 다음 학기에 CS101 학부조교를 신청할 생각인데, 이번 학기에 CS101을 재수강하는 고등학교 동기 친구가 있어 과제를 좀 도와주면서 설명하다보니 전산이라는 게 사실은 수학적인 능력보다 국어 능력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상적인 개념들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엊그제 있었던 동아리 임시총회의 회칙 개정과 제명안 관련된 문제로 또다시 동아리 메일링에서 시끄러운 논의가 있었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번 일로 느낀 점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느낀 건, 어떤 잘못을 봤을 때 사람마다 그것에 대해 반응하는 정도가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나같은 경우는 '상당한' 정도에 이르기 전까지는 웬만하면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편인데, '까야 제맛'이라는 말처럼 바로바로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칭찬하면서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어떤 메일을 보고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는데 어떤 사람들은 매우 발끈하거나 민감한 걸 보면 확실히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또, 이런 논의 과정에서 항상 고려해야 하는 점은 순수하게 메일의 내용만으로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조금 심하게 서로 깐다는 느낌이 있으면 이미 과거의 편력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봤을 때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대부분 개인적인 스타일이나 감정의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메일을 통해 논의를 하다보면 오프라인에서 이야기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부분도 서로 꼬투리 잡고 감정표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이전에 있었던 다른 배경 사건들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오해가 증폭되는 효과가 있다.

뭐, 이런저런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가 미처 못보고 지나간 부분도 있구나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왜 까야만 사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자세도 위험하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어야 전체 균형이 유지될 수 있겠지만...

역시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사람 관계가 어렵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지난 주 목요일 카이스트 독서마일리지 프로그램의 책 읽는 밤 행사의 일환으로 한비야 초청 강연이 있었다. 작년에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었는데 그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더욱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딱 세줄 요약을 하면(...) 다음과 같다.

  • 머리 : 미국이나 서유럽 같은 강대국처럼 우리가 필요로 하는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나라까지 포함하는 세계지도를 넣어라. 그리고 세상은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바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의 원리로 돌아가는 바퀴도 있는 두발자전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 가슴 : 누군가 물었을 때, "나는 지금 내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게 살자.
  • 손 : 머리와 가슴이 아무리 뜨거워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추가로, 한비야씨가 지적한대로 우리나라가 가진 IT 기술력과 장비 등을 해외 원조에 투자하여 긴급구호 현장에서 세계 각지로 연락을 닿을 수 있게 하고 현장 상황을 전송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과 같은 곳에 사용할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 김창준씨가 시작한 IT 봉사 네트워크가 떠오르는데, 우리나라 IT 종사자들이 거기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한다면 더욱 IT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말이 빨라서, 다른 사람 같으면 2~3시간 할 이야기를 농축해서 들은 듯했는데, 계속 프로젝트에 찌들어 살다가 이런 활기찬 사람의 말을 듣고 생각의 전환을 하니 훨씬 좋다.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요즘 들어 "~지만"을 대신하여 "~하다만"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점점 눈에 띈다. 특히 다른 부분은 다 존댓말인데 저 표현만 저렇게 쓰는 경우는 눈에 확 띈다.

그러한 예로,

물론 속사정이야 그쪽 비밀이겠다만, 이번의 업그레이드가 좋은 징조라고 믿습니다.

과 같은 것이 있다.

어디서부터 이런 표현이 쓰이기 시작한 걸까? 최근 내가 속한 어느 동아리 메일링에서 신입생들이 88학번 대선배까지 포함하는 전체 메일로 자기 소개 메일을 돌리고 있는데 한 신입생이 저런 말투를 썼다가 선배들한테 주의를 받는 경우를 보았다. 분명히 존댓말을 써야 하는 상황을 모를 리는 없을 테니 그냥 저 표현을 원래 저런 표현으로 알고 썼을 것이다. 나만 해도 저런 표현은 거의 보지 못했고 올바른 표현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위의 예를 자연스럽게 고치면

물론 속사정이야 그쪽 비밀이겠지만, 이번의 업그레이드가 좋은 징조라고 믿습니다.

물론 속사정이야 그쪽 비밀이겠습니다만, 이번의 업그레이드가 좋은 징조라고 믿습니다.

정도이다.

이에 대해 알고 있는 분 계시면 댓글 감사히 받겠다. (예를 들면 어디서 어떻게 유행이 시작되었다든지, 아니면 특정 지방 사투리에서는 원래 이런 말투를 썼었는데 그게 널리 퍼진 거라든지 등등.)

ps. 요즘 먹고 자는 시간 빼고 거의 과제만 하느라 죽겠다... ㅠ_ㅠ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아직 춘삼월도 아닌데 벌써 웬 개강이냐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카이스트는 오늘부로 봄학기 개강이다. 서남표 총장님의 해외인턴쉽 장려 정책으로 여름방학을 해외 대학과 맞춘다며 봄학기를 1개월 당겨버린 것.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당겨져왔고 올해 드디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번 학기에 들을 수업은 IE200 OR개론, CS441 전산망개론, CS492 전산학특강(자연언어처리), CS480 컴퓨터그래픽스개론, CS408 전산학프로젝트, 교양필수로 테니스이다. 오늘 들었던 첫 수업은 이들 중 OR개론과 전산망개론.

OR개론은 오리지날 미쿡인(?) 교수님이신데 한국 학생들을 위해 배려하신 건지는 몰라도 아주 명쾌하고 시원시원한 발음이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느리게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다 받아적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수강인원이 많아서 창의학습관 터만홀을 거의 가득 채울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마이크를 쓰긴 했지만 교수님 자체도 목소리가 명확하게 말씀하시는 타입이라 잘 집중할 수 있었다. (역시 대형강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듯.)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송준화 교수님...-_-;; 역시 3년 전 시스템 프로그래밍 때와 동일한 페이스를 유지하실 것 같다. 상대적인 로드도 동일하지 않을까 싶은 게 좀 걱정이라면 걱정; 핀토스보다 빈칸 뻥이 많은 KENS라는 자체 네트워크 스택을 구현하는 프로젝트를 하게 될 거라고 한다. 프랑스 학생이 한 명 있어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면서 강의하셨는데 원래 소수의 인원을 앉혀놓고 interaction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신만큼 가까이 앉지 않으면 좀 수업을 듣기는 힘들 것 같다. (목소리가 작으시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우리 동아리에서 오픈소스인 moodle에 기반하여 개발한 강의 관리 시스템을 이용하는 과목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번에 듣는 OR개론도 그렇고. 동아리 서비스가 실제로 학우들에게 유용하게 이용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역시 개발자로서는 자신의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것이 기쁜 일이지 않을까.

일단 신학기인만큼, 더욱이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온 만큼 신입생들 왔다갔다하는 모습 등이 하나하나 새롭고 활기차다. 그래도 조용하기는 강남에 비하면야 훨씬 한적하지만 말이다. ㅋㅋ 이번 학기도 또한번 달려보자!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그간의 경험이 점점 쌓이면서 요즘 들어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그 사람이 하는 말에는 상식이나 이치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왠지 그 사람과 대화하고 있으면 싫고 짜증나는 경우가 있다.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비록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할지라도 그런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여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대개 왕따로 귀결되는 것 같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꺼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잘못은 '논리적 잘못'이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할 때 짜증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자기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한다거나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이런다든지, 계속 자기에게 관심을 달라는 치근덕댐이 뻔히 드러나보인다든지 등이 있을 것이다. 이 마지막 경우가 실은 가장 안타까운데, 사람들이 그 사람을 꺼려하고 피하다보니 더욱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얻으려고 하고, 이것이 악순환에 빠져들게 만든다.

내가 그동안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주욱 거치면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만나보았는데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면 나 혼자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싫어하는 경우엔 반드시 이런 이유가 있었다.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싶지는 않지만 때로는 내 삶을 더 평온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나 자신도 그러하지는 않은지 항상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어렸을 때에는 주변 대다수의 아이들보다 학업 성적이 뛰어나고, 한편으로는 매우 순진한 구석도 있었기 때문에 보통의 아이들하고는 질투와 놀림 때문에 그리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그래서 아주 극소수의 친구하고만 아주 깊게 교류했다. 점점 커가면서 중학교 때는 꽤 많은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고 방송부장을 하면서 집약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하는 등 이른바 사회화 과정을 겪으며 많이 나아졌지만. 어렸을 때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기억이 꽤 있었기 때문에--사실 그게 단지 누구나 겪는 평균적인 수준이었을지라도 기억에는 매우 강렬히 남은 것들이 있다--항상 내가 무언가 말하고 행동할 때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려고 하게 되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좋게 말하면 배려하는 습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나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배려하는, 사려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일정 부분은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 사람들 중에 보면 전혀 악의적이지 않지만 자신의 일상적인 행동이나 습관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느껴질 수 있는지 미처 모르는 경우들이 있다. 나 자신도 그런 경우가 있었고. 이것은 보통 그 피해 수준이 모호해서 직접적으로 그 불만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인데, 보통 사람 이상의 배려심을 발휘하기 위해선 이 벽도 넘어야 하는 것 같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 수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무언가 일을 이루려면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모두가 자기 같을 수는 없는만큼 인간관계를 다루는 기술이 참 중요하다. 뭐, 말은 성인군자(...)들의 말씀을 찾아보면 다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이제서야, 진짜 배울 것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달까.

앞으로 또 어떤 험난한 사람 단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ps. 이런 점에서, 텍스트 기반의 의사소통은 완전히 다른 시점을 제공해준다. 오프라인에서는 그토록 대면하기 싫었던 사람도 온라인에서는 때로는 매우 정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텍스트 매체를 통해 감정 전달 수단이 대부분 거세된 상태에서 기록으로 남으며 이어지는 글줄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익명성이 무서운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도 한 것이다.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지난 토요일, 아버지와 일로 만났지만 지금은 친구 사이가 된 어느 사장님과 우리 가족이 함께한 저녁 식사가 있었다. 독신으로 독하게 살아오신, 그리하여 마침내는 성공한 사업가가 된 40대 중반의 여성분이었다. 한달치 식비를 모두 쏟아붓는 엄청난 가격의 5성급 호텔 저녁식사를 사주시면서까지 만나고자 했던, 이야기하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나는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명적이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 상대방이 혹시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오해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는 편인데,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끼리 대화할 때는 괜찮지만 이 분야에 문외한인 사람한테 이야기할 때는 온갖 비유와 은유로 최소한도로 배경지식이나 용어설명을 줄여한다고 해도 자칫 지리멸렬하게 들리기 쉬운 문제가 있다. 그나마 글로 전달하는 경우는 나은데, 실제 대화에서는 너무 말을 길게 한다는 평을 주위에서 듣기도 했다.

그 사장님은 컴퓨터 쪽은 완전히 문외한이시고, 아주 가끔 컴퓨터를 사용하시는 정도였다. 자기가 컴퓨터를 만지기만 하면 뭐가 안 되고 고장난다고 한다. 부모님을 통해 나에 대해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알고 계셨지만 실제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시길래 텍스트큐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블로그가 뭔지 정도는 알고 계셨기에 그 자체를 이해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거기서 어떤 일을 맡고 있냐고 해서 스킨 표준화와 프레임워크 개발을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아마도 나중에 부모님과 얘기해보니 일정 부분 의도적인 것도 있으셨던 것 같은데, 일부러 엔지니어 성격이 짙은 내게 비엔지니어적 사고의 충격파를 전달해주어 더 깨어있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던 탓인지, 더이상 비개발자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을 설명하다보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좋았던 점도 있었다. 기술적인 것이 어떻게 되든 실제로 그것이 어떤 가치를 발생시키는가의 관점에서 항상 생각해보도록 실질적인 예를 들어주셨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상업적 프로젝트가 아닌 오픈소스 프로젝트이기에 가지는 철학의 차이나 한계점에서는 결국 논쟁으로 번질만큼 이해시켜드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배경 설명을 다 하자니 내가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이 얘기는 이쯤에서 정리해두고, 그 뒤로도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그분은 완전한 비즈니스우먼이었기 때문에 항상 핵심 가치만을 듣고 싶어하고, 급하며, 또한 기왕이면 유머와 위트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하는 성향이 강했다. 아마도 좋게 해석하면, 좋은 친구분의 아들에게, 나름대로 머리가 좋다고 하니 사회적 선배로서 더욱 그 능력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해석할 수 있겠는데, 내게 요구하신 것은 딱 하나, 유머와 위트를 갖추라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반론과 반론의 반론이 오고갔지만(물론 위스키와 함께 매우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 정도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거의 모든 일에 진지한 편이다. 요즘 한창 뜨는 TV 프로그램인 '패밀리가 떴다'에서 진지 청년으로 나오는 장혁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을 웃기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그러한 즐거움의 일부를, 진지해야 할 것으로 기대받는 사회 속에서 유머를 통해 찾는다. 그것이 주변에서 충족되지 않다보니 이른바 예능계 연예인들이 뜨는 것이고, 또한 유머러스함을 갖추는 것이 하나의 덕목이 된 것일 테다. 이제는 유머와 위트가 없으면 더이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 어려운 것일까.

일상적인 대화에서 중간중간 상대를 웃게 만드는 유머와 위트는 사실 고도의 집중과 맥락적 흐름을 머릿속에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힘든 일이다. 요 근래 집에서 지내면서 가끔씩 TV에서 하는 개그·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는데 가볍게 망가지면서 웃기는 것도 있지만 말빨 좀 선다 하는 MC들은 그때그때 다른 사람들 말의 이전 문맥을 활용해서 재치로 비꼬는 것을 아주 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천적으로 사람들을 쉽게 웃길 수 있는 말투와 넉살을 타고났다면 모르겠지만, 나같이 진지한 사람이 유머와 위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런 수준의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과연 모든 사람이 진지해야만 할까 하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과연 모든 사람이 유머가 넘쳐야 할까 하는 질문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진지함에서 묻어나오는 또다른 맛의 재미도 있는데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부분이 내 한계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것을 어찌하리오. 그 사업가분과의 만남은 대화 중의 몇몇 구체적 사례에서 역으로 생각해보는 관점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어떤 것이 사람을 열정에 찬 모습으로 보이게 만드는지 알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그분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어도 마치 모든 사람이 사업가적 기질을 가져야 한다고 무언의 강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은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유머와 위트가 싫은 것이 아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의 평에 의하면 나도 옛날보다는 그런 면이 많이 발달했다고 하고, 어쩌면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보통 수준은 익히게 될 수도 있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었을까? 하지만 난 이미 명시적이진 않더라도 암시적으로는 삶의 다면체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다른 면을 느끼고 보고자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자극은 일부분 거부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요즘에 하는 생각 중 하나가, 좁은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리더십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좁은 의미의) 리더십이 너무나 충만하다면 이 세상이 과연 잘 돌아갈까? 리더가 리더이기 위해서는 참모도 있어야 하고 리더의 생각을 실행할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리더십을 이야기한다면 모를까. 더 넓게 보면 인간이라는 한 개체로서 세상사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거대한 사회적 덕목으로 표출되는 것일지도.

이런 반박을 하는 이유는, 이전에도 몇 차례 언급했던 지적사춘기에서 하는 일이 사실 사람들이, 혹은 사회가 절대 덕목이라고 말하는 가치들을 다시 한 번 내 나름대로 반박해보고 부수어 보면서 그 결과를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내 가치관과 생각의 주관성을 다듬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현대 사회상에 대한 꽤 괜찮은 반박을 한 것을 꼽으라면 마인하르트 미겔의 「성장의 종말」쯤 되겠다.

아무튼 그분과의 만남은 진지함과 유머의 균형에 대해 삶의 무게추를 어떻게 놓을 것인가 하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끔 해주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이것이 가장 큰 수확이겠지.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깜빡하고 적지 않았었는데, 고등학교 동기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일도 사실은 2008년을 돌아볼 때 사람의 재인식에 함께 영향을 준 사건이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또다른 죽음이 찾아왔다. 우리 어머니께서 지금 사는 아파트에 이사온 후로 근 2년 이상 아주 가까이 지내오시던 같은 라인에 사시는 분이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횡경막 암으로 시작하여 항암치료만 6~7회 이상 이어지고 잠시 괜찮아졌을 때는 어머니와 함께 동네 뒷산에 함께 오르기도 하셨었다. 나이는 50대 중반이니 아직 한창 사실 나이고, 공무원이신 남편분과 아들 2명(나한테는 형들)이 있는데 두 형 모두 아직 결혼은 못한 상태였다.

같은 라인에 살면서 자주 만났기 때문에 그집 가족들하고 우리집 가족들하고도 잘 알고 있는 사이다. 이사올 당시 예비신자셨던 그분을 어머니께서 자주 왕래하시며 독실한 신자로 이끌어주기도 했고, 말기 암환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도 했는데 나 또한 요 근래 계속 집에서 지냈으므로 이런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며칠 전에 『뇌, 생각의 출현』이란 책을 다 읽었다. 우주의 탄생과 원자, 분자를 거쳐 DNA가 만들어지고 세포를 이루며 이것이 점점 진화해나가면서 어떻게 뇌가 변화되었는지에 따라 우리가 말하는 의식의 정체가 무엇인지 쓴 과학교양서적이자 기나긴 에세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도 해봤던 질문이지만 우리의 의식, 혹은 자아 인식, 더 나아가 영혼이라고 불리는 그 무엇이 단순히 뇌의 특정한 활동 상태의 스냅샷에 지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골치아픈 이야기가 다시 떠오르기도 했다. 정신병자는 영혼이 고장난 것일까 뇌가 고장난 것일까 같은 문제와 마찬가지로. 얼마 전 본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 클라투가 '인간이 죽으면 단지 다른 형태로 변화될 뿐'이라고 표현한 것도 떠오른다.

갑자기 연속으로 두 차례의 장례에 조문을 다녀오면서, 그전에는 막연히 '과학적 관점'에서 죽음이란 별다른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많이 바뀌었다.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단지 그 사람의 육체가 지구의 거대한 순환 시스템을 구성하는 원소로 분해되는 이상의 것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영혼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천국에 가시든 윤회로 다른 곳에 태어나시든 간에, 어쨌든 지금 현실에 살아있는 우리들과 더이상 만날 수 없고 의사소통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사람에게 있어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정사진을 보며 언젠가 나도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저렇게 해야 할 텐데라는—인간이 가진 강력한 능력 중 하나인 감정 이입 덕분에—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 가면 더이상 죽음에 대해 과학과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는 듯하다. 내가 근 몇 년 동안 흘려본 슬픔의 눈물보다 많은 양을 이날 흘렸던 것 같다.

조문과 연도를 마치고 그집 작은형과 인사하는데 갑자기 나를 와락 껴앉으며 흐느꼈다.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이번 연말연시를 지나면서 그동안 막연하게 뉴스와 영화로만 접했던 죽음에 대해서 완전히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여전히 과학적으로 죽음을 설명하는 논리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그 이면에 남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눈을 떴다고나 할까. 집안에 다행히 돈이 좀 있었는지 남편분이 마지막까지 산삼주사까지 놓으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그래도 말기암과 죽음 앞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세상사 덧없고 허무한 일이라는 것과 동시에, 유한하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중적인 생각이 들었다.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연말이면 으레 하는 블로그 포스팅. :)

동아리 세미나로 정신없이 시작한 겨울방학과 스웨덴 출국준비로 어수선하게 시작했던 2008년은 여유롭고 평화롭게 글을 쓰며 지나가고 있다. 2004년 11월 말에 이 블로그를 시작했으니 벌써 이 블로그를 운영한 지도 만 4년이 넘었다. 그때부터 쓴 글들은 아직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특정한 플러그인이나 태터툴즈 시절의 커스터마이징에 의존했던 부분들은 제대로 서식 처리가 안 되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내용 자체는 살아있으니.) 이 기록들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초창기에 쓴 글들을 보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자체도 나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시간축을 중심으로 하는 블로그를 통해 올해의 나를 기억하는 키워드를 꼽아본다면 사람에 대한 재인식과 나 자신에 대한 재확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람에 대한 재인식

예전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줄거리 자체에 집중하거나 그 작품의 소재, 혹은 얼마나 스펙타클한지와 같은 특수효과 등에 주안점을 두었지만, 요즘은 배우들의 심리묘사에 집중하는 편이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스타의 연인'이 그런 점에서 내 욕구를 잘 충족시키는 듯하다.) 예전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의 표정 변화가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전세계의 내 또래 젊은이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졌다고나 할까. 11월 말에 있었던 대안언어축제 & P-CAMP에서 현업 개발자·중간관리자 분들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면서 막연하게 '일보다 사람'이라고 알고만 있던 것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어떻게 보여지는지 알 수 있었던 것도 이에 한몫했다.

원래는 구글에서 인턴을 하려고 했지만 아쉽게 기회가 닿지 않아 집에서 푹 쉬게 된 가을엔 또다른 수확이 있었다. 5년 넘게 과학고·카이스트의 기숙사 생활에 해외 교환학생까지 하느라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했던 가족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었던 것. 중학생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세계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으며, 종교적인 문제부터 여자친구 문제와 금전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더욱 성숙된 이야기들을 함께 다루면서 동반자적 관계를 더욱 발전시켰다. 물리적으로 가까이 지내면서 그동안 가져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다시 꽃피울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이 사회의 조류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또 나는 우리 가족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생애 설계를 가족과 함께할 수 있음도 확인했다.

나 자신에 대한 재확인

스웨덴 교환학생 생활은 그동안 거의 제대로 써볼 기회가 없었던 내 영어 실력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영어만 통하는 곳이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는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내가 고급 영어를 구사한다거나 한국어 말하듯 영어가 술술술 흘러나오는 건 아니지만, 외국인과 대화를 시작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고 영어로 된 긴 텍스트(소설 같은)를 읽는 것에 대한 부담도 많이 줄었다. 이를 통해 내가 그동안 영어를 적어도 '헛공부'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하나 중요한 줄기는 텍스트큐브 프로젝트다. 올해의 키워드로 많이 뽑히는 변화, Change, Transition, 이들이 아주 잘 들어맞는 상황이다. 변방의 자그마한 오픈소스 프로젝트였던 텍스트큐브가 3년째에 접어들면서 구글의 태터앤컴퍼니 인수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어쨌든 3년 동안 한 우물만 팠더니 그래도 뭔가 건질 만한 건 나오더라'하는, 내 관심에 대한 대가를 확인하고 있다. 아직 학부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 신분이기에 더욱 크게 다가왔는지 모르겠지만, 제주대학교 강의라든지 구글맵 파트너데이 발표 등 굵직한 일에 직접 참여하면서, 이런 일들을 통해 여러 경로로 내 능력을 사기 위한 제안도 받아보고 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어느 정도 얻었다.

게다가 출판사를 통해 직접 책을 쓰기로 하고 출판 계약을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도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경기 불황의 여파로 이 책이 얼마나 팔릴지에 대한 고민 때문에 출판사하고 책의 출판 형태나 구성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 중이라서 쉽사리 책이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가진 또 하나의 다른 가능성을 열어보고 인정받은 셈이니까.

한편 이에 따라 새로운 과제로 남은 것은 정말로 내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또 앞으로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 절제와 겸손의 미덕을 갖추는 것들이겠다. 또한 내가 삶의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는—내 능력을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것—을 잘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도.

그리고, 아직도 지적 사춘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막연한 공상과 사고실험을 넘어 좀더 현실적으로 휴학 기간을 활용해 다양한 책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있는데, 아직 정리할 단계는 아닌 것 같지만 내 삶을 지탱하기 위한 나름의 인식 체계는 조금씩이나마 그 틀을 잡아가는 것 같다.

2009년을 바라보며

광우병 촛불집회, 국회 파행 운영, 미국발 경제한파 등 사회적으로는 큰 변화를 겪고 그동안 쌓여온 부작용들이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는 2008년이지만 다행히 나 개인의 삶은 더욱더 큰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준 해였다. 앞으로 2009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더욱더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당분간은 학업을 계속하겠지만 그 와중에 또 어떤 재미난 기회들이 나를 찾아올지 기대된다. 단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병역 의무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결국 입영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오고...ㅠㅠ)

노정석님이 WoC WDay에서 발표하신 것처럼 아직 인생의 굴곡을 별로 겪어보지 않은 탓에 지나치게 미래에 대한 희망만으로 가득차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아직 나는 20대의 시작에 서있고 이 축복받은 시간들을 기왕이면 희망차게 보내면 좋지 않겠는가.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그저께 고등학교 동기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대안언어축제 및 P-CAMP를 2박3일 동안 마치고 돌아와 성당 다녀온 다음 저녁 먹으려던 찰나에 연락받았다. 가족·친척 빼고 태어나서 처음 가는 조문이었다. (사실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 돌아가신 거 말고는 장례에 가본 적이 없다.) 대안언어축제 마지막날 거의 밤새고 그 전날도 잠을 설치고 그랬던 터라 매우 피곤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안 가볼 수는 없었고, 또한 경기과학고 21기 아이들도 많이 올라오고 있다고 하니 얼굴도 볼 겸 가게 되었다.

빈소에 조문하러 가면 나는 전체적으로 아주 엄숙한 분위기일 거라 생각했지만 일단 영정에 절하고 상주와 맞절하는 순서를 마치면 방문한 사람들끼리 앉아 음식 대접을 받으며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그런 거였다. 누구 말로는 초상으로 인한 허함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떠듬으로써 그 빈 공간을 채우고자 하는 일종의 문화라고 하였다.

언젠가 나도 나이먹고 친구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초상집에 조문하러 다니겠지 하는 생각은 막연히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듣기로는 며칠 전에 쓰러지셨다가 그날 새벽에 돌아가신 거라고 한다. 대안언어축제를 통해 현업에 계시는 분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와 회포를 풀며 삶에 대한 에너지를 얻었지만 또 이렇게 죽음과 남은 자들의 공허함을 대면해야만 했다. 사실 우리는 삶의 모습만을 보지만 언제나 그 이면에는 죽음들도 함께하고 있는 법이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또한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세포들이 태어나고 죽으면서 우리 몸을 유지해주기 때문이리라.

어쩌다보니 이날 조문은 졸업 후 경기과학고 21기의 가장 큰 모임이 되어버렸다. 해외에 나간 친구들과 서너명 정도 연락이 제대로 안 된 녀석들 및 일정 때문에 다음날 방문하기로 한 친구 두세명 빼고 나머지는 거의 다 온 것 같다. 학기 중 일요일이라 카이스트 다니는 아이들은 기차타고 내려가다가, 혹은 도착해서 연락받고 도로 올라오기도 했다. 대부분 학사과정의 끝에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 모임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석사 진학한다는 친구도 있고, 의대나 한의대에 진학해서 본과 생활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고--해부 실습할 때 쓰는 포르말린 용액 때문에 그 독성으로 얼굴에 여드름이 도진 친구도 있었다--아직은 대부분 학생이지만 앞으로 5년, 10년 지나면 어떤 모습들로 변해있을까. 한의대 간 한 친구는 자기가 공짜로 침 놔줄 테니 허리 아프면 찾아오라는 소리도 했다.

나는 지난 학기에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이번 학기 휴학 중이었기 때문에 다들 소식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프로젝트들도 하고 있고, 책 쓰는 일도 하고 있다고 하니 몇몇은 흥미있어하는 눈치였다. 대부분 학업을 하며 앞으로 계속 달려나가고 있지만 나는 한 템포 늦추면서 대신 다른 경험을 쌓는 중인 셈. 고등학교 때만 해도 경시 입상하는 것 외에는 주변의 것을 별로 보지 못했던 친구들은 대학생활을 하고 나니 '그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 느끼는 점들이 있는 것 같았다. 침 놔준다던 친구는 오히려 날 부러워하기도 했다.

남들이 선망하는 의대, 한의대에 진학한 친구들이었지만 자기가 진정 원하는 일을 찾아 하는 친구들을 보고 내심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자기가 원해서 간 친구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사실 나도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인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 하면 즐겁고 성취감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학부 전공은 마무리했지만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는 것. 사실 과학고 정도 되는 학생들에겐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삶의 진로 선택이 더욱 중요한 것 아닐까 싶다. 방향만 정해진다면 그걸 향해 달려나가는 것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친구들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잘못 방향을 잡는다면 더욱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친구들을 다시 몇 년 후에 보게 되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고등학교 졸업 후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했는지 생각해보면 앞으로는 또 어떤 흥미진진한 일들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언제까지나 순수한 고등학생처럼 남아있을 수 있을지.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지난 금~토요일에는 무려 제주도를 다녀왔다. 원래는 NHN DeView 컨퍼런스를 가려고 일찌감치 등록까지 해놓은 상태였는데 니들웍스를 통해 다음커뮤니케이션 쪽에서 급히 연락이 와서 제주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다음에서 제주대학교에 오픈소스 개발방법론 강의를 개설했다는 소식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내가 거기에 가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내가 맡은 부분은 실습 세션으로, 학생들이 기말프로젝트(...)로 텍스트큐브나 제로보드 쪽에 참여하도록 했기 때문에 좀더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가게 된 인원은 총 4명으로 TNF 리더이신 신정규님 외에 최호진님, 고재필님 그리고 나였다. 사전에 듣기로는 주로 3~4학년 컴퓨터공학 전공 학생들이 수강하는 수업이라고 했는데 그럼 나와 동갑이거나 한 살 많은 사람들을 두고 '초청 강사'로 강의를 하게 된 셈이다.;

'텍스트큐브 프로젝트에 참여해보기'라는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학생들을 두고 도대체 어떤 내용의 실습을 진행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결국은 플러그인에 대해 알려주는 쪽으로 결정했다. 텍스트큐브 코어 구조는 엄청난 내부 공사를 거치고 있는 중이라 1.8 버전을 거치며 크게 변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가르쳐준다고 해서 나중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고, 구조가 안 바뀐다고 하더라도 짧은 시간에 수만 줄에 이르는 방대한 코드의 구조를 파악하고 자기가 기여할 만한 부분까지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말 자기가 뭔가 '만지고 있다'라는 느낌을 주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 플러그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혹시나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에 좀더 코어에 깊이 관여해보고 싶은 열정적인(...) 학생이 있었다면 조금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교통의 발달 덕분에 요즘엔 그런 큰 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훨씬 쉬워진 것 같다. 제주공항에 내리자 우선 훨씬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도 제주도에는 2번이나 왔었지만 한겨울에도 길거리에 있는 푸른 잎들의 야자수를 보면 같은 나라인가 싶다. 택시를 타고 제주대학교로 향하는 길에 다음 글로벌미디어센터도 볼 수 있었는데, 입구에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있는 돌하르방이 아주 폐인(...)스러워보이는 게 재밌었다;; 제주대학교는 약 해발 200미터 높이의 한라산 북쪽 자락의 경사진 땅에 지어져 있다. 우리가 강의할 건물은 위쪽의 새로 지은 새 건물이었는데, 강의하기 위해 3층인가 4층인가 올라가니 복도 전면 유리창으로 멀리 바다와 푸르른 초목이 보이는 것이 아주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했다. 공기도 좋고 전망도 끝내주는 이런 학교에서라면 왠지 공부가 더 잘 될 것 같은 느낌? ㅋㅋ

어쨌든 세미나와 수업은 무사히 끝났고, 초청강사로 강의한 것에 대한 증빙자료(?) 준비 때문인지 신분증 확인 후 수업을 들었던 10명 내외의 학생들과 다음의 윤석찬님과 함께 흑돼지 삼겹살로 저녁을 먹었다. 석찬님이 친히 구워주시는 고기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나도 그렇고 재필님도 그렇고 아쉬워했던 것은 왜 카이스트나 포항공대에는 이런 수업이 없을까 하는 점이었다.

카이스트는 컴퓨터공학과가 아니라 전산학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론의 비중이 좀더 높고 '프로그래밍 언어는 알아서 배워라' 식의 배짱이 있어서인지 SP와 OS 및 DB개론을 제외하고는 실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은 수업에서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아마도 학생들 머리가 좋으니까 기초를 잘 가르쳐놓으면 알아서 잘 하겠지... 뭐 이런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오픈소스 개발은 소위 전통적인 소프트웨어공학으로 달성하지 못한 다른 방향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접해보지 않은 학생들이 전산과에 왔을 때 겪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나는 카이스트에서도 이런 수업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재밌었던 것은 그곳 학생들도 문제의 소프트웨어공학개론 덕분에 꽤나 고생한 경험이 있더라는 것. UML 다이어그램으로 점철된 300장짜리 보고서 이야기를 해주니 '역시...'라며 다들 끄덕끄덕. -_-;;; 윤석찬님께서는 이미 전통적인 개발방법론을 지나 오픈소스를 모델로 하는 방법론들이 연구되어 있고 기업에서도 이를 많이 도입하고 있다면서 학교에서도 그런 방향의 교육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저녁 먹고 학생들과 헤어진 후 어둑해진 해안으로 나가 고등학교 수학여행 시절에 보았던 용연과 용두암 야경을 보며 산책한 후 다음 쪽에서 제공한 숙소인 그랜드호텔로 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여기가 우리 부모님 신혼여행 숙소였다고 한다. -_-) 1층 커피샵에서 윤석찬님과 함께 좀더 심도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프론트에 물어보니 호텔방에서 유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좋아라(...) 올라갔는데 접속해보니 하루 만오천원. 역시 호텔은 돈쓰는 곳이야...라면서 adhoc 네트워크로 공유하면 되지 하고 인터넷에 연결했다. 그러나 맥의 인터넷 공유와 우분투하고는 뭔가 상성이 안 맞았는지 호진님은 먼저 쥐쥐치고 주무시고, 재필님도 조금 인터넷을 쓰시다가 자러 가시고, 정규님과 내가 남아서 2.0 프레임웍 구조를 도입하느라 지뢰밭이 되어버린 trunk를 일단 돌아가게 만드는 작업을 했다. 간만의 여행으로 인한 피로와 싸우며 새벽 4시가 되어가고 로컬호스트 주제에 로딩에 5초씩 걸리는 텍스트큐브를 보면서 쥐쥐 선언. -_-;;

다음날은 느지막히 일어나 호텔 근처의 유명하다는 모이세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고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하루 정도 더 묵으면서 제주도를 즐길 수도 있었지만 니들웍스 분들이 전국에 흩어져있어 자주 얼굴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4명이나 한 곳에 모였으니 오프라인 모임을 한번 하기로 했던 것이다. 와이브로를 무선랜으로 공유하여 공항버스 안에서 인터넷을 즐기며 서울 강남으로 향했다. 그라피티에님과 합류하여 trunk 소스를 어떻게 할지, 빨리 처리해야 할 각종 사안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결국 지난 일주일간 dispatcher 중심으로 개편 중이던 trunk 소스는 암흑의 역사로 이동이 결정되었다. 또한 프레임워크를 도입하면 캐시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신 실무 유경험자 호진님의 의견을 따라 캐시 부분도 재작성하기로 했는데, 옆에서 듣다보니 '아, django라면 이 삽질 안 해도 되는데...'라는 생각만...ㅠ_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숨가쁜(?) 1박2일 동안의 남에 번쩍 북에 번쩍 스케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 또래 학생들을 놓고 정식 수업으로 초청 강의한다는 게 좀 생경한 경험이긴 했지만 간만에 콧바람도 좀 쐬고 사람들과 여러 발전적인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점점 갈수록 이번 학기 휴학하길 잘했다는 것과, 구글 인턴에 떨어진 것이 어쩌면 오히려 나에게 더 큰 기회를 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ps. 주임교수님 아니랄까봐(?) 나와 재필님이 강의하는 수업에 출석까지 부르시는 윤석찬님을 보니 똑같은 학부생 입장에서 참... 그래도 금요일 오후 수업인데...ㅋㅋㅋ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뭐, 아주 오래 전부터 나온 떡밥이라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지만 정말 너무 열받아서 써본다. (웹표준이니 오픈웹 소송이니 이런 거 아시는 분들은 읽을 필요 없음.)

아버지가 오래된 골프채 하나를 새로 장만하신다며 인터넷에 봐둔 것이 있다고 하셔서 사려고 했다. 원래는 회사 노트북을 쓰시지만 오늘은 집에 가져오지 않으셔서 내 데스크탑에서 하게 되었다.

  1. 우선 네이버에서 검색어 입력 후 쇼핑 가격비교를 통해 신세계몰의 상품 페이지에 들어갔다.
  2. 상품 유형 선택하고 설명을 보니 제휴 카드로 하면 5% 할인이 된다고 한다. 주문서 작성 화면에서 카드 할인을 적용하라고 되어 있다.
  3. 결제하기 들어가서 비회원 주문 선택. 약관 동의 체크.
  4. 결제 플러그인 설치 안 되었다고 궁시렁해서 설치 허용 후 2번부터 반복.
  5. 주문서 작성 화면을 아무리 눈씻고 찾아봐도 카드 할인 적용에 관한 문구도 없고, 결제 금액은 할인 안 된 금액으로 그대로 나와 있다. 해당 카드로 선택해도 안 바뀜.
  6. 주소 등 주문서 작성.
  7. 그냥 할인 포기하고 사려고 결제 시도하자, 카드 번호 입력칸에 입력이 안 된다. 한참 삽질하다가 메모장에서 복사-붙여넣기 하면 된다는 걸 발견.
  8. 해당 카드사의 플러그인 설치해야 한다고 궁시렁해서 다시 2번부터 반복.
  9. 원래 결제하려던 카드는 어머니 꺼였는데 인터넷 뱅킹을 하신 적이 없으시기 때문에 공인인증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7번부터 반복.
  10. 카드 비밀번호 등을 입력하는 화면으로 넘어갔는데 이젠 붙여넣기도 안 되고 전혀 입력 불가능. 비스타 64비트에서 결제하는 것은 포기.
  11. 가상머신으로 윈도 XP 부팅.
  12. 다시 1번부터 반복하여 중간에 결제 플러그인 설치하느라 한 번 더 반복 후 7번까지 진행.
  13. nProtect 깔라길래 끝까지 설치 안 하려고 했더니 8번에서 걸린다. 설치했는데 다행히 입력은 문제 없었음.
  14. 안심클릭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화면에 넘어왔는데, 아버지가 인터넷 결제를 잘 안 하시는 분이라서 예전에 만들어둔 비밀번호가 맞지 않는다. 공인인증서로 하려고 해도 회사에 있으니 못 가져옴. 비밀번호 재설정도 공인인증서 요구.
  15. 결국 옆에서 보다 못한 아버지께서 그냥 낼 노트북 가져오든지 회사가서 할께..하시고 포기. OTL

난 도대체 왜 이런 모든 삽질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와 금융결제원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내가 전산과에 들어가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전산과 학생들이 누구나 다 프로그래밍을 잘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국내에서 나름 가장 수준높은 학생들을 모아놓은 카이스트임에도 말이다. (사실 나는 전부 다 괴짜에 전부 다 초천재적으로 엄청난 알고리즘들을 쏟아내며 코딩하는 줄 알았다.) 대개 프로그래밍을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아이들이 잘 하는데, 자세히 보면 뭔가 스스로 삽질을 많이 해본 아이들이 습득 속도도 빠르고 응용력도 더 높은 걸 볼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토끼군. ㅋㅋ)

나는 프로그래밍을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접했는데, 당시 시작한 것이 Q-BASIC이었다. 집에 있던 시리즈 과학책 중에 GW-BASIC으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을 예제 중심으로 다룬 책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혼자 따라하다가 곧 내가 만들어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6학년 때 Visual Basic을 접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삽질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프로그래밍을 접하기 전에 내가 가장 관심있었던 것 중 하나는 각종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스타나 커맨드앤컨커 같은)들의 맵에디터를 빠삭하게 꿰차는 것이었다. 과연 이 게임들은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에서 출발한 호기심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하겠다.1

당시 만든 것 중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들이 몇 가지 있는데, 당시 유행하던 레드얼럿의 커스텀 미션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레드얼럿 미션에디터와 탭브라우징이란 개념이 널리 퍼지기 이전에 한 창에 여러 웹페이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만든 MDI 형식의 웹브라우저가 있다. (물론 HTML 해석기를 구현한 건 아니고 IE 컴포넌트를 쓴 거였지만. 뭐, XML/HTML 파서를 만들려고 시도해본 적은 있다.)

중학교 1학년이 지나면서부터는 비주얼 베이직에서 제공하는 모든 기본 기능과 라이브러리들에 대해 익힐 수 있었고, 미약하게나마 객체지향을 터득하면서 인터페이스 개념을 알게 되었다. (비주얼 베이직은 상속이 안 되지만 나름대로 객체지향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가 가장 절정을 이루었는데 비주얼 베이직의 끝을 본 건 분명 언어는 비주얼 베이직이지만 비주얼 베이직 런타임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 윈도 API만으로 윈도 어플리케이션 만드는 방법을 완전히 이해했고--물론 실제 구현하려면 수많은 삽질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원리는 이해했다--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고 알게 된 것이긴 하나 비주얼 베이직의 특정 함수를 어셈블리 코드로 대치해서 실행한다든지, 또 정식으로 공부한 건 아니지만 재귀를 어떻게 루프만으로 구현할 것인지 등에 대한 어렴풋한 이해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어지간한 프로그램을 보면 내가 아직은 잘 모르는 C/C++ 언어로 만들었겠지만 대충 이러이러하게 구현했겠구나라는 정도의 감각이 생겼다.

당시 SQL이나 DBMS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ADO 관련된 컴포넌트만 안 써봤고, 그 외에는 비주얼 베이직을 거의 극한까지 다루어봤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정도 단계에 다다르면 어떤 의문점이 생겼을 때 레퍼런스를 잘 찾아보든지 스스로 설계를 얼마나 더 잘하느냐가 해결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고등학교 때 친구 토끼군인 비주얼 베이직으로 즉석에서 디자인한 스크립트 언어의 인터프리터를 구현해내는 걸 보고 또 다른 차원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에 필요한 이론 지식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므로 다시 내가 한다면 가능할 것 같다.)

중학교 3학년때와 고등학교 때는 학업 때문에 프로그래밍을 깊게 팔 기회가 없었고, 고등학교 때 수박 겉핥기 식으로 C++의 아주 극히 일부만 조금 배웠다. 대학에 와서는 학교 커리큘럼을 따라 Java를 익히기 시작했는데 사실 처음으로 다뤄본 완성도 있는 객체지향 언어였음에도 처음 프로그래밍을 접하던 친구들에 비해 훨씬 빠르게 익힐 수 있었으며 2, 3학년을 거치면서 PHP, Python, Javascript 등 다른 언어들도 상대적으로 손쉽게 두려움 없이 접근·터득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중학교 시절 쌓은 수많은 삽질 경험은 전산과 최고의 로드를 자랑하는 시스템 프로그래밍과 운영체제 과목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매뉴얼(MSDN)을 보고 이 함수가, 이 컴포넌트가 어떤 방식으로 동작하는지 이해하고 실제로 사용해보고, 또 내가 그걸 이용해서 뭔가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머리 굴려가며 시도해본 온갖 잡다한 미니프로젝트들은 결과적으로 거대한 시스템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남들보다 빠르게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준 것 같다.

시스템 프로그래밍 과목은 1번 프로젝트부터 5번 프로젝트까지 계속 기존 코드에 기능을 덧입히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상당수의 학생들이 초기 명세에만 대응된 설계를 했다가 갈아엎는 일이 많았지만 나는 한 번도 갈아엎지 않고 꽤 깔끔하게 마지막 프로젝트까지 커버할 수 있었다. 이런 건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크고 작은 규모의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왜 이렇게 설계하면 안 좋은지 좋은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지식은 소프트웨어 공학을 접하면서 배우게 되었지만, 나름의 내재된 감각이 생겼던 것이다.)

사실, 아직은 나 자신이 정말 프로페셔널한 '업계'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어서 겐도님처럼 자신있게 "한 달의 기간이 있으면 아키텍처 설계를 포함해 그 언어를 습득·활용할 수 있고 1년이 지나면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다" 정도의 수준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스스로 검증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 프로젝트를 통해 언어나 개발 환경을 접하게 되면 딱 그 프로젝트를 해결하기 위한 내용만을 익히게 되는 경우가 많고--더군다나 언어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카이스트의 풍토 덕분에--실제 회사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온 신경을 그것에만 집중하며 배울 때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인 것도 있다. 아직 회사에서 일해보질 않았으니까. 게다가 나는 전문 학원을 다니면서 프로그래밍을 배운 것도 아니요, 알고리즘 문제 해결을 위한 공부를 별도로 진행했던 것도 아니라 순수하게 내 호기심과 내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프로그래밍을 배워왔기 때문에 정말 내가 전문가의 수준에 도달했는지 안 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어 자신없는 부분도 있다. 학부 전공을 하면서 보다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단순 호기심과 필요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은 빈구멍들을 많이 메꿀 수 있었지만 이게 충분한지는 실무에 부딪혀보기 전에는 모를 것 같다.

어쨌든 나한테는 새로운 언어와 개발환경을 익히는 것이 더이상 두렵지 않다. 내가 새로운 환경을 접할 때 더 많이 고려하는 것은 이것이 과연 나의 삽질을 줄여줄 수 있는가,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티핑 포인트를 넘었는가, 설계가 개발자의 가능성과 역량을 제한하는 부분은 없는가 등이다. 물론 대부분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에 단순 가치 비교는 힘들지만, 어쨌든 필요하다면 배워서 쓸 수는 있다는 것이다.

비주얼 베이직 하나를 깊게 팜으로써 결국 다른 객체지향 언어들을 보다 쉽게 익힐 수 있었고, 하나를 익힐 때마다 그 다음 것을 익히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마치 기존의 지식과 새 체계를 diff 뜨듯 학습한다고나 할까. 물론 단순 diff는 곤란하고 그 안에 내재된 본질을 알고 있어야만 진정 효과가 있을 것이겠지만.

이런 접근 방식은 프로그래밍 말고 중고등학교 시절의 학업에도 큰 영향을 끼쳐, 게임 중독에 가까울 만큼 판판이 놀아가며 학원이나 과외도 받아보지 않고 참고서도 본 경험이 없는 채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단 한 학기만에 공부 요령을 터득함으로써 학년이 오를수록 더 적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비슷하거나 더 나은 성적을 거두는 결과를 얻기도 하였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는 한달을 공부했지만,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는 딱 4일 공부했다. 하지만 결과는 동일하게 전교 10등이었다.)

자기만의 지식 재조직화 과정을 통해 본질을 이해한다면 그 어떤 종류의 학문이라도 초기 문턱만 넘는다면 훨씬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현재의 한국 공교육·사교육을 통틀어 이러한 지식 재조직화 능력을 길러주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하는 많은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1. Total Annihilation과 Supreme Commander는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나에게는 아주 훌륭한 해킹 대상이었다. 게임 내부 데이터를 열어보고 다룰 수 있는 도구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유닛 타입과 가중치 숫자들이 나열된 AI 정의 파일을 보고 어렴풋하게나마 확률의 개념을 생각했었고,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