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지함과 유머 2
Daybreakin Things
지난 토요일, 아버지와 일로 만났지만 지금은 친구 사이가 된 어느 사장님과 우리 가족이 함께한 저녁 식사가 있었다. 독신으로 독하게 살아오신, 그리하여 마침내는 성공한 사업가가 된 40대 중반의 여성분이었다. 한달치 식비를 모두 쏟아붓는 엄청난 가격의 5성급 호텔 저녁식사를 사주시면서까지 만나고자 했던, 이야기하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나는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명적이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 상대방이 혹시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오해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는 편인데,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끼리 대화할 때는 괜찮지만 이 분야에 문외한인 사람한테 이야기할 때는 온갖 비유와 은유로 최소한도로 배경지식이나 용어설명을 줄여한다고 해도 자칫 지리멸렬하게 들리기 쉬운 문제가 있다. 그나마 글로 전달하는 경우는 나은데, 실제 대화에서는 너무 말을 길게 한다는 평을 주위에서 듣기도 했다.
그 사장님은 컴퓨터 쪽은 완전히 문외한이시고, 아주 가끔 컴퓨터를 사용하시는 정도였다. 자기가 컴퓨터를 만지기만 하면 뭐가 안 되고 고장난다고 한다. 부모님을 통해 나에 대해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알고 계셨지만 실제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시길래 텍스트큐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블로그가 뭔지 정도는 알고 계셨기에 그 자체를 이해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거기서 어떤 일을 맡고 있냐고 해서 스킨 표준화와 프레임워크 개발을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아마도 나중에 부모님과 얘기해보니 일정 부분 의도적인 것도 있으셨던 것 같은데, 일부러 엔지니어 성격이 짙은 내게 비엔지니어적 사고의 충격파를 전달해주어 더 깨어있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던 탓인지, 더이상 비개발자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을 설명하다보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좋았던 점도 있었다. 기술적인 것이 어떻게 되든 실제로 그것이 어떤 가치를 발생시키는가의 관점에서 항상 생각해보도록 실질적인 예를 들어주셨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상업적 프로젝트가 아닌 오픈소스 프로젝트이기에 가지는 철학의 차이나 한계점에서는 결국 논쟁으로 번질만큼 이해시켜드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배경 설명을 다 하자니 내가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이 얘기는 이쯤에서 정리해두고, 그 뒤로도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그분은 완전한 비즈니스우먼이었기 때문에 항상 핵심 가치만을 듣고 싶어하고, 급하며, 또한 기왕이면 유머와 위트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하는 성향이 강했다. 아마도 좋게 해석하면, 좋은 친구분의 아들에게, 나름대로 머리가 좋다고 하니 사회적 선배로서 더욱 그 능력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해석할 수 있겠는데, 내게 요구하신 것은 딱 하나, 유머와 위트를 갖추라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반론과 반론의 반론이 오고갔지만(물론 위스키와 함께 매우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 정도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거의 모든 일에 진지한 편이다. 요즘 한창 뜨는 TV 프로그램인 '패밀리가 떴다'에서 진지 청년으로 나오는 장혁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을 웃기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그러한 즐거움의 일부를, 진지해야 할 것으로 기대받는 사회 속에서 유머를 통해 찾는다. 그것이 주변에서 충족되지 않다보니 이른바 예능계 연예인들이 뜨는 것이고, 또한 유머러스함을 갖추는 것이 하나의 덕목이 된 것일 테다. 이제는 유머와 위트가 없으면 더이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 어려운 것일까.
일상적인 대화에서 중간중간 상대를 웃게 만드는 유머와 위트는 사실 고도의 집중과 맥락적 흐름을 머릿속에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힘든 일이다. 요 근래 집에서 지내면서 가끔씩 TV에서 하는 개그·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는데 가볍게 망가지면서 웃기는 것도 있지만 말빨 좀 선다 하는 MC들은 그때그때 다른 사람들 말의 이전 문맥을 활용해서 재치로 비꼬는 것을 아주 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천적으로 사람들을 쉽게 웃길 수 있는 말투와 넉살을 타고났다면 모르겠지만, 나같이 진지한 사람이 유머와 위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런 수준의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과연 모든 사람이 진지해야만 할까 하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과연 모든 사람이 유머가 넘쳐야 할까 하는 질문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진지함에서 묻어나오는 또다른 맛의 재미도 있는데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부분이 내 한계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것을 어찌하리오. 그 사업가분과의 만남은 대화 중의 몇몇 구체적 사례에서 역으로 생각해보는 관점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어떤 것이 사람을 열정에 찬 모습으로 보이게 만드는지 알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그분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어도 마치 모든 사람이 사업가적 기질을 가져야 한다고 무언의 강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은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유머와 위트가 싫은 것이 아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의 평에 의하면 나도 옛날보다는 그런 면이 많이 발달했다고 하고, 어쩌면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보통 수준은 익히게 될 수도 있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었을까? 하지만 난 이미 명시적이진 않더라도 암시적으로는 삶의 다면체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다른 면을 느끼고 보고자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자극은 일부분 거부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요즘에 하는 생각 중 하나가, 좁은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리더십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좁은 의미의) 리더십이 너무나 충만하다면 이 세상이 과연 잘 돌아갈까? 리더가 리더이기 위해서는 참모도 있어야 하고 리더의 생각을 실행할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리더십을 이야기한다면 모를까. 더 넓게 보면 인간이라는 한 개체로서 세상사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거대한 사회적 덕목으로 표출되는 것일지도.
이런 반박을 하는 이유는, 이전에도 몇 차례 언급했던 지적사춘기에서 하는 일이 사실 사람들이, 혹은 사회가 절대 덕목이라고 말하는 가치들을 다시 한 번 내 나름대로 반박해보고 부수어 보면서 그 결과를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내 가치관과 생각의 주관성을 다듬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현대 사회상에 대한 꽤 괜찮은 반박을 한 것을 꼽으라면 마인하르트 미겔의 「성장의 종말」쯤 되겠다.
아무튼 그분과의 만남은 진지함과 유머의 균형에 대해 삶의 무게추를 어떻게 놓을 것인가 하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끔 해주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이것이 가장 큰 수확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