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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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깜빡하고 적지 않았었는데, 고등학교 동기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일도 사실은 2008년을 돌아볼 때 사람의 재인식에 함께 영향을 준 사건이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또다른 죽음이 찾아왔다. 우리 어머니께서 지금 사는 아파트에 이사온 후로 근 2년 이상 아주 가까이 지내오시던 같은 라인에 사시는 분이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횡경막 암으로 시작하여 항암치료만 6~7회 이상 이어지고 잠시 괜찮아졌을 때는 어머니와 함께 동네 뒷산에 함께 오르기도 하셨었다. 나이는 50대 중반이니 아직 한창 사실 나이고, 공무원이신 남편분과 아들 2명(나한테는 형들)이 있는데 두 형 모두 아직 결혼은 못한 상태였다.

같은 라인에 살면서 자주 만났기 때문에 그집 가족들하고 우리집 가족들하고도 잘 알고 있는 사이다. 이사올 당시 예비신자셨던 그분을 어머니께서 자주 왕래하시며 독실한 신자로 이끌어주기도 했고, 말기 암환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도 했는데 나 또한 요 근래 계속 집에서 지냈으므로 이런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며칠 전에 『뇌, 생각의 출현』이란 책을 다 읽었다. 우주의 탄생과 원자, 분자를 거쳐 DNA가 만들어지고 세포를 이루며 이것이 점점 진화해나가면서 어떻게 뇌가 변화되었는지에 따라 우리가 말하는 의식의 정체가 무엇인지 쓴 과학교양서적이자 기나긴 에세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도 해봤던 질문이지만 우리의 의식, 혹은 자아 인식, 더 나아가 영혼이라고 불리는 그 무엇이 단순히 뇌의 특정한 활동 상태의 스냅샷에 지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골치아픈 이야기가 다시 떠오르기도 했다. 정신병자는 영혼이 고장난 것일까 뇌가 고장난 것일까 같은 문제와 마찬가지로. 얼마 전 본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 클라투가 '인간이 죽으면 단지 다른 형태로 변화될 뿐'이라고 표현한 것도 떠오른다.

갑자기 연속으로 두 차례의 장례에 조문을 다녀오면서, 그전에는 막연히 '과학적 관점'에서 죽음이란 별다른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많이 바뀌었다.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단지 그 사람의 육체가 지구의 거대한 순환 시스템을 구성하는 원소로 분해되는 이상의 것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영혼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천국에 가시든 윤회로 다른 곳에 태어나시든 간에, 어쨌든 지금 현실에 살아있는 우리들과 더이상 만날 수 없고 의사소통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사람에게 있어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정사진을 보며 언젠가 나도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저렇게 해야 할 텐데라는—인간이 가진 강력한 능력 중 하나인 감정 이입 덕분에—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 가면 더이상 죽음에 대해 과학과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는 듯하다. 내가 근 몇 년 동안 흘려본 슬픔의 눈물보다 많은 양을 이날 흘렸던 것 같다.

조문과 연도를 마치고 그집 작은형과 인사하는데 갑자기 나를 와락 껴앉으며 흐느꼈다.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이번 연말연시를 지나면서 그동안 막연하게 뉴스와 영화로만 접했던 죽음에 대해서 완전히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여전히 과학적으로 죽음을 설명하는 논리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그 이면에 남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눈을 떴다고나 할까. 집안에 다행히 돈이 좀 있었는지 남편분이 마지막까지 산삼주사까지 놓으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그래도 말기암과 죽음 앞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세상사 덧없고 허무한 일이라는 것과 동시에, 유한하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중적인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