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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 말마따나, 우리학교에는 온갖 분야의 본좌들이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_-;
아까 저녁때 아는 형이 수프림 커맨더 정식판 영문버전을 입수했다고 하셔서 그거 구경하러 갔다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에 갇혀서 학부 지역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하필 스팍스 동방에 아무도 없었다) 마침 피아노책도 가져갔던 터라 매점 2층 다용도실에 갔다.
들어가니 한 사람이 쇼팽의 왈츠곡들을 피아노로 치고 있었고, 또다른 한 사람이 바이올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누군지는 몰랐지만 쇼팽 왈츠를 제법 들을 만하게 연주하길래 혼자 손으로 따라해보며 기다리는데, 바이올린을 만지던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얘길 들어보니 07학번이라고 하는데, 바이올린을 잠깐 켜는 걸 보니 보통 실력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피아노를 치던 사람은 나갔고, 나는 들고온 모차르트 곡들을 죽 쳤다. (대충 내가 요즘 치는 곡들은 다 쳐봤으니까 꽤 오래 쳤던 것 같다.) 바이올린을 들고 있던 그 학생은 뒤에서 따로 연습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내가 너무 오래 쳤는지, 조율이 풀렸다며 다시 음을 맞춰야 하기에 멈추어 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그 사이 같은 07학번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아까 들은 소리가 예사롭지는 않은 것 같아 피아노책들을 정리하고 같이 앉아서(;;) 연주를 들었다.
정확히 무슨 곡인지는 모르겠으나 3악장의 소나타 곡으로 꽤 많이 들어봤던 멜로디였다. (책 겉표지가 Bach였던가.. 얼핏 봐서 잘 기억이...) 그 연주는, 바로 지난 졸업식 때 졸업하신 송원태 선배를 생각나게 했다.; 그 선배보다 소리의 완숙미나 안정감은 조금 덜했지만, 디테일한 부분까지 무리없이 소화해내고 있었고 테크닉 면에서도 상당한 수준인 것 같았다. 1악장, 2악장, 3악장, 코다, 주제의 반복... 다용도실의 텅 빈 공간에 울려퍼지는 풍부한 바이올린 선율로 간만에 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부산과학고 출신이란다. 나는 실내악 앙상블 수업과 학교에서 악기를 연습할 만한 장소 등을 얘기해주고 내 소개를 했더니, 그 친구 중 한 명이 '혹시 daybreaker님 아니세요'라고 물었다. -ㅁ-; 알고보니 그 친구는 무려 토끼군-_-까지도 알고 있었다; (세상은 좁다...-_-) 어쨌든 바이올린을 켰던 그 학생은 이름이 소형준이라고 했다. (아마 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중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앞으로 마주치면 인사라도 나누자라고 마무리를 하고 빠져나왔다.
정말이지 내가 로또 당첨되었을 때 학고 싶은 일에 1등으로 적은 게 괜히 다용도실 리모델링이 아니다. 우리학교에는 정말 A로 성적표를 휩쓰는 ls***님-_-과 같은 분도 있지만, 다방면에 끼를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런 사람들이 숨겨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학교 환경이 갖추어졌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 형준도, 소위 말하는 엄친아가 아닐까 지레짐작 중이다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