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sted
-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아까(...벌써 어제..) 학부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보니 매점 2층 다용도실에서 사람들이 뭔가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차피 방학이니 수업도 없을 테고, 저녁 시간이라 크게 방해될 것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계공학동 로비에 있는 피아노를 치러 갔다.
요즘은 주로 모차르트의 곡들을 치고 있는데, 잘 치는 것도 있고 못 치는 것도 있고 그렇다. 어차피 전공자도 아니니 뭐 살짝 틀리는 건 넘어가는 셈치고, 다만 듣기에 거북하지 않을 정도로 칠 수 있는 곡들을 골라서 생각나는 대로 죽 쳤다. 로비의 소파에 앉아있던 사람들 무리가 없어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이고...
1시간 쯤 쳤을까, 캠폴 아저씨가 돌아다니며 문단속을 하는 게 보였다. 어차피 건물을 폐쇄하거나 할 건 아닐 것이므로 로비에 있는 나는 계속 피아노를 쳤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이 보였다. 한 곡을 다 연주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 흘끗 보니 계속 날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_-; 뭐 나는 구경 좀 하러 왔나보다 하고 계속 치는데 듣다가 지쳤는지(?) 아예 잠들어 있다.
다소 빠른 박자의 1악장, 3악장 위주로 치다가 잠시 느린 템포의 2악장 2개를 치고—원래 소나타는 세 악장을 순서대로 다 연주해야 작곡가가 말하는 스토리가 완성된다고 하지만, 배울 때, 연습할 때 악장별로 따로 했기 때문에 나는 내키는 대로 친다—마지막으로 K.331 3악장, 흔히 터키행진곡으로 알려진 그것을 쳤다. 사람이 별로 없는 때라서 그런지 소리도 잘 울렸고, 그래서 페달을 줄이고 최대한 깔끔한 스타카토로 처리해주었다. (원래 모차르트곡은 울림 페달을 안 쓰는 게 맞지만, 실력이 부족하여 페달 없이 내가 원하는 소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가끔 사용한다)
그 연주가 끝나고 혼잣말로 '이제 가야지' 중얼거리며 책을 챙기자 아까부터 듣다가 잠든 그 남자분이 부스스 일어났다. 내가 가방을 들고 일어서자 2층으로 슬그머니 사라졌다. 안경 쓴 남자분이었는데, 얼핏 보기에 나이가 좀 있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혹시 교수님이었나? 아무튼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부족한 내 연주를 들어준 사람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