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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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이거 상당히 심한 떡밥성을 지닌 글이 되겠지만, 내게 억지로 믿음을 강요하거나 무조건적 비판·비난만 아니라면 댓글은 대체로(?) 환영한다.

요즘...이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계속 고민해왔다. 어머니 쪽 집안은 개신교 쪽이고(정확한 종파는 모르겠음) 아버지 쪽 집안은 천주교 쪽인데 어머니가 천주교로 개종하여 명동성당에서 결혼하시고 나는 유아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걸 따지길 좋아하도록 타고난 기질 덕분인지, 아니면 어렸을 때 너무(?) 많이 본 각종 과학책 덕분인지 몰라도 오히려 어렸을 때는 무작정 대놓고 믿었던 기독교에 대해서 지금은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친한 친구인 lifthrasiir와 고등학교 시절 종교에 대해 토론해보았다든지, 그 녀석의 최근 글 기독교가 '아닌' 것이라는 글도 보고, 또 날개셋 입력기로 알게된 그 녀석의 절친한 선배인 용묵이 형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각종 신앙 간증 내용도 읽어보고, 또 주말마다 성당에서 미사를 하면서 신부님의 말씀도 들어보고, 대전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한 수녀님과 한참동안 이야기를 해봤다든지, 또 주변 친구 중에 열렬한 개신교 신자가 몇몇 있어 이야기 및 상담(?)도 해보고, 수원교구청 성서교육자 교육도 받으신 어머니와도 이야기해보는 등 나름대로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서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해봤다.

사실 나는 개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얻는다'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가톨릭에서는 그렇게 안 보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거꾸로 듣게 되어 놀랍기도 했고, 특히 근본주의파에 가까운 쪽에서는 가톨릭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는 걸 보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사실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으면 (논리적으로야 어찌됐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심각하게 교리적 차이에 대해 집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뭐 어쨌거나 나는 기독교 각 종파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차이는 제쳐두고 고민하는 부분들이 또 있다. 상당히 여러 사람들한테 물어봤지만 딱히 답이 없는 그런 질문인 것도 있고,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자명한데 왜 고민하나 하는 문제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내가 성서를 아주 주의깊게 숙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몰라서 생기는 것도 있을 것이다. (뭐 기독교인의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비판한다면 인정한다. 어쨌든 사실이니까.)

  •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혼이라는 자아의 개념에 대해서, 과연 사람만이 영혼을 가지는 것인지 궁금하다. 동물이나 식물,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도 영혼을 가질까? 가진다면 그들의 '죄'는 어떻게 정의될까? 가지지 않는다면 동물에 대한 어떤 인권(?)을 주장하는 것이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까?
    • 현재의 weak-AI가 아닌 strong-AI가 구현된다면, 즉 인간의 뇌를 완벽하게 모사하는 무생물 기계가 만들어진다면, 그것도 영혼을 가진다고 봐야 할까? (과학적으로도 이것이 100% 가능하다는 건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신앙적 관점에서는 '어쨌든 진짜 사람은 다르다'가 결론이겠지만, 어쨌든 철학적 질문으로서 궁금하다.)
  • 몇몇 사람이 나에게 말하길, 신앙이란 선택의 문제라고 하였다. 자기가 믿기를 선택하고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구원 못 받을 뿐이라고).
  •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나도 몇몇 생명공학 기술들은 사용되지 않아야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대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아무래도 공돌이적인 기질 덕분인지 어느 TV 성서 강좌에서 본 모 신부님의 말씀 '똑똑한 사람들은 이것저것 따지는데 그러지 않고 믿고 인정해야 합니다'라는 걸 나는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겠다. 나는 기독교를 더 잘 이해하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은데, 도무지 과학적 지식과 합리성에 기반한 사고로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게 죄인가?
    • 이에 대해 어느 수녀님은 아무리 인간의 지식이 발전해도 그 한계점이 있기 마련이고, 그 한계 너머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식의 말씀을 하셨는데 인간의 한계라는 부분은 나도 인정하지만 과거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인류 역사를 통해 조금씩 '침범'당해왔고 (낙천적 가정 하에) 앞으로도 그럴 텐데 이에 대해서 종교인들의 입장은 어떤지 궁금하다.
    • 이런 입장에 대해 일부는 '인간의 교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과학으로 신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 상태다. 다만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에서는 결론내릴 수 없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어떻게보면 불가지론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 분명히 논리적으로만 생각하면 기독교는 모순적이다. (신약 성서의 삶에 대한 좋은 가르침들은 논리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허나 신앙 행위를 할 때 나타나는 어떤 몰입 등 분명히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소위 신앙적 체험은 가능하다고 느끼고 있다. 뭐랄까, 그냥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문제라는 점은 나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데, 머리에서 받아들여주지 않는 그런 상황.
  • 애초부터 과학과 종교는 다른 영역이라며 이런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나도 그러고 싶다. -_- 하지만 내 안에 존재하는 두 개의 다른 체계가 충돌을 일으킨다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
  • 앞서 언급했듯 종파에 따라 세부적인 교리에서 차이가 나는데, 서로 인정하는 부분도 있고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하며 배척하는 부분들도 있다. 어느 종파에 속해있더라도 자기가 진심으로 신앙을 가진다면 나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신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뭐 어떤 특정 종파에서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행위를 강제적으로 시키거나 유도한다면 몰라도. 여기서 문제는 그 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겠다.)
  •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영혼이 존재한다면, 뇌의 신경 활동과 사람의 정신 세계, 그리고 영혼은 어떻게 연동되어 움직이는 걸까? (제발, 여기에 그런 가정 따위는 필요 없다는 식의 반론은..-_- 그냥 궁금하다는 거다. 궁금해하는 것도 잘못이라면 할 말 없고.)
  • 적어도 현재의 현실에서는 그리스도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세속 사람들과의 관계와 멀어진다. 주변 몇몇 사람을 통해 실제로 그런 경우를 보기도 했고. 물론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온전히 하느님께 헌신하면 하느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신다고 하지만, 그들 자신의 삶은 빛날지 몰라도 주변의 비기독교인 사람들과는 필연적으로 소원해질 수밖에 없고, 분명히 잃는 것들이 생긴다. 모든 기독교인이 그래야만 할까? 혹은,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래야만 할까?
    • 둘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아주 드문 사람들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한계도 있는 법이고, 자신의 능력 안에서 해야 될 것이다. 문제는, 정말 자기가 1분 1초도 아끼지 않고 그러한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을 때, (단순히 하느님이 채워주신다 이런 거 빼고) 그 사람의 삶은 피곤하지 않을까? 모두가 그러한 피곤을 감내하면서 살아야만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가? 사람이라면 아무리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 크더라도 잠도 좀 자고 휴식도 좀 취하고 즐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 이상적인 신앙인의 관점으로 금욕적인 생활이 반드시 좋은가? (종파에 따라 역시 요구하는 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욕구도 해소하면서 살아야지 안 그러면 기계 같은 삶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내가 보기엔 신앙인의 이상향을 심각하게 쫓아가면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뭐 본인들이 괜찮다면 할 말 없지만. -_-;
  •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적극적인 자세를 유지해야만 하는가? 마음이 진실하다면 하느님도 받아주실 것 같은데. 뭐 이것도 결국은 어떤 직업을 택하느냐와 같이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 아니, 하느님이 선택해주시는 건가?;
    • 문제는 나처럼 이러한 질문들을 품고 있는 사람은 그 '진실하다'에 다가가기 힘들다는 점.
  •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신앙을 가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녀에게 권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지만 그 자녀가 좀더 머리통이 커져서(...) 그 신앙을 부정하게 되고 가족과 마찰을 빚는다면, 사회적으로 봤을 때 온당한 일일까?
  • 가끔, 기독교 내에서 문화상대주의·윤리적상대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성서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고 곧 절대적 진리이기 때문에 그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종교전쟁도 좋게 보면 이러한 이유로 발생한 것이겠다.) 예를 들면 자신이 인류학자인 경우와 선교사인 경우를 생각하면 다른 입장을 취하기 쉬울 것이다. 이럴 때 어떡해야 하나? (위에서 말한, '내면의 두 세계가 충돌하는 경우'로 볼 수 있겠다.)
    • 윤리적 상대주의와 관련하여, 종교 없이 인간이 보편적인 도덕률이나 윤리관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종교는 왜 필요하지?
    • 지금까지 서구 사회가 형성해온 제정분리 사회에서 법률은 이러한 보편적 윤리관에 기초하고 있는데(비록 평등 사상의 뿌리가 기독교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할지라도), 다른 지역에 이러한 사상을 전할 때 종교적인 근거가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 다행히(?) 지금 서구 사회의 보편적 가치는 기독교적 가치와 거의(?) 충돌하지 않고 있지만, 만약 그 사회의 종교가 보편적 윤리관과 완전히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절대가치이니 따라가야 하는가? 대표적으로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같은 예를 들 수 있겠다.
    •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신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봐야 할까?
  • 종교 다원주의--여기서 각 종교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영역과 신앙을 가지고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종교 특성상 논리적으로 서로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특히 한국사회처럼 여러 종교가 화합(?)하고 있는 상황은 잘못된 것이다.
    • 초종교(?) 사상, 그러니까 모든 종교는 결국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식의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대표적으로 이슬람과 기독교가 있겠다. 단지 다르게 해석했을 뿐이다?
  • 사실 더 골치아픈 문제로, 결혼을 들 수 있다. 배우자가 같은 종교라면 좋겠지만, 자기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알고보니 전혀 다른 종교일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것,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해선 거의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좋은 가치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다른 종교의 배우자와 부부생활을 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앞으로 나는 배우자를 받아들일 때 꼭 기독교인 사람만 선택해야 하나?
    •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 적어도 내가 아는 한 헌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럴 때 가족끼리 서로 자기의 종교를 권한다면 아마 그 집안은...-_-;;;;

혹자는 이런 이상한(?) 질문들을 잔뜩 늘어놓는 나를 보고, '세상 좀 단순하게 살아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머리아프다. 누가 나와서 깔끔 명료하게 내가 이해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믿어라든 믿지 말아라(...)든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결론은 성서공부 열심히 하고 다시 생각하세요? -_-; 혹은 아직까지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 가지고 고민하지 마세요...인 것도 있을 수 있겠다.

가끔은, 세상을 살면서 생각해야 될 것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요즘 세상이 수많은 정보로 넘쳐나 정신없어 죽겠는데 과학의 발달(?)로 이런 고민까지 떠안고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차라리 내가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이딴 거에 관심 없었다면 애초부터 고민하지 않았겠지.) 무엇보다 종교의 특성상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것이 절대 가치가 되고 모든 것보다 우선하게 되기 때문에 그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 절대 가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서,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 답답하다. 애초부터 종교는 객관적이 아니니까.. 뭐 이런 식으로 말꼬리 잡고 늘어지면 한도끝도 없어서..;;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는 그 사슬을 끊기 위해 종교를 발명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냥 단순하게 '나는 앞으로 하느님을 믿겠다'라고 선택하고 모든 가치와 사고를 그에 따라 재정렬하면 되긴 하다. 심지어 일시적으로는 기독교인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해도 어떻게든지 논리를 돌려서 정당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국 자기가 순수한 의도를 가지기만 하면 되니까. (그게 말처럼 쉬운가는 제쳐두고.) 그래서 가끔은 무엇이 내가 그 선택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지를 고민할 때도 있다. 뭐 이게 흔히 말하는 사탄의 농간이라고 하면 할 말 없고-_-. 다만 나는 어쨌든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사상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최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고 싶고, 또 그렇게 과학과 다른 여러 사상·관점들을 대하고 싶다. 어느 한 종교에 스스로를 예속시키면 언젠가는 충돌이 나게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