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지금 쓰고 있는 휴대폰이 몇 년 된 것이라서 바꿀까 말까 고민도 해보고 부모님도 하나 사주시겠다고도 하신다. 하지만 나는 아직 바꿀 생각이 없다. 이유는 iPhone 정도 되는 것이 아니면 살 생각이 아니라서다. 그 정도 아니면 문자와 전화로 족하다.
하지만 내가 iPhone에 열광하고 그걸 원하는 이유는 단순히 터치인터페이스라서라거나 하드웨어 스펙이 좋아서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의 삼성, LG 등에서 만드는 최신폰들이 더 나은 면도 있다. 바로 소프트웨어 때문이다.
AppStore, 개발자용 SDK, MacOSX의 개발로 다져진 실력을 발휘한 훌륭한 플랫폼, 거기에 OpenGL이 돌아간다. 지금까지 휴대폰의 기능을 사용자가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다고 생각해봤는가? 그것이 최초로 가능해진 것이 바로 iPhone이다. 물론 프로그래밍 능력이 없는 사람들한테야 먼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Firefox를 왜 쓰는가? 수많은 확장기능들로 내 입맛대로 바꿔 쓸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이제는 휴대폰에서도 그게 가능해진 것이다. 굳이 내가 만들지 않아도 이미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만들고 있는 iPhone용 어플리케이션들이 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왜 이런 아이디어가 한국에서 먼저 나오지 않았을까? 왜 이런 것을 한국에서 먼저 구현하지 못했을까?
여기에 대한 이유는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으로 인한 창의성 부재부터 시작해서 소프트웨어/통신 업계의 제도적 관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문제점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IT에서는 전통적으로 하드웨어를 중시해왔다. 삼성과 하이닉스로 대변되는 반도체 산업과 다시 삼성과 LG로 대변되는 LCD, 가전 산업이 한국을 전자기술의 강국으로 만들어놓았다. 2000년대 들어 시작한 초고속 인터넷 보급은 누구나 인터넷에 무제한 접속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IT강국이라고 스스로 외쳤다.
그러나 한국이 가장 약한 부분은 소프트웨어다. 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문 떡밥이지만 한국은 반쪽짜리 IT강국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충분히 애플과 같은 생각을 해낼 수 있는 자양분이 갖춰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한국에 공유·개방하는 문화가 널리 퍼지지 않아서라고도 하고, 휴대폰 유통을 맘대로 주무르는 독점이동통신사들의 횡포라고도 한다. 솔직히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한국의 IT시장과 인터넷 서비스들을 볼 때 아직도 폐쇄적이라는 점이다.
국수주의로써 국내 시장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애플 등의 제품에 대한 찬사를 또다른 사대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스웨덴에 나가 살면서 느낀 것을 한 가지 뽑으라면, 이미 세계는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적 물리적 국경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세계는 하나로 합쳐지고 있고 그것을 막는 장벽도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건 돈과 언어다.) 정말 해묵은 소리지만, 우리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한국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경 밖에 있는 것이다.
iPhone이 당장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애플의 하드웨어 솔직히 신뢰성이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미국이 지금의 세계 최강대국이 된 것은 이러한 창의성과 혁신적인 사고가 가능했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라는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그 바탕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미국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런 좋은 건 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을 가지고도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데, 애플은 그것을 누구보다 먼저 구현해냈고 어찌됐건 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트렌드는 앞으로 점점 심해질 것이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획일화된 제품에서 벗어나 입맛에 맞는 것을 찾게 될 것이고, 중학교 사회 책에도 나왔던 '다품종 소량 생산 시대'의 개념이 이제 휴대전화에도 도입되는 것이다. 누가 생산하는가? 소비자들이 생산하는 것이다.
한국에도 iPhone이 출시될 수 있기를 바라며, 또 그것이 한국의 닫힌 시장 환경을 하루빨리 열어주는 촉매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