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기 녀석인
아타루의 블로그에서 경곽 학습실의 추억을 되살리는 글을 보았다.
걔가 트랙백한 글들을 쭉 따라가보니 경곽 선배분들의 회상을 볼 수 있었다. -_-; 나도 시험기간인데 공부 집중도 잘 안 되고 해서 학습실에 관한 글이나 써볼까 한다. (아.. 이러다가 블로그 잠금 해제..-_-)
경곽 학습실은 여자기숙사 지하에 있다. (남자 기숙사 쪽에서 보면 지하이고, 운동장 쪽에서 보면 1층이다.) 그래서 환기가 잘 안 되었고, 학습실 특유의 쾨쾨한 냄새가 시험기간만 되면 극악에 달했다. 솔직히, 책상이 아주 넓고 편하거나, 공기가 좋은 것도 아니었던, 객관적으로 봐서 그다지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학에 오고 나서, 그 캐캐묵은 학습실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곽에서는 저녁 식사 후 7시부터 9시까지, 간식 먹고 9시 30분부터 12시까지(원하는 사람은 1시까지) 학습실에 '반드시' 앉아 있어야 한다. (물론 멀티실, 학생복사실, 탐구관 등의 도피처가 있기는 했다) 그러다 보니 선배들과 선생님들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공간이자, 학교 수업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중에서 여러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기숙사에서도 가능하지만 여자애들끼리, 남자애들끼리만 되니까..)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서, 비록 딴짓(?)을 많이 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라는 목적으로 앉아 있는 것. 처음엔 그것이 매우 답답하고 고지식하게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공부 효율을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나처럼 잠이 많은 사람에겐 잠자는 시간을 맘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일단 각자 선택하는 경시 과목이 있어, 각 과목의 전문가들한테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척척 잘 설명해 주고, 가끔은 조용하게(스릴있게?) 잡담을 나누는 재미도 쏠쏠했다. 엄격하게 통제된 것 같으면서도 자유롭게 서로 뭔가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 대학에 와서는 이런 것이 부족하다. (도서관엘 가도 내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학습실에선 잡담도 많이 했고, 또 잠도 많이 잤다. 내 경우엔 보통 7시 45분 무렵부터 8시 20분 사이가 고비였고, 그때 안 걸리고(...) 잘 자면 그 이후에는 집중이 매우 잘 되었다. 이른바 압뚫라라고 불리던 교장 선생님의 순회로 온 학습실이 파스 냄새로 가득차 잠을 못 이루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시험 기간 일주일 전부터는 새벽 2시까지 개방하고, 시험 전날부터는 무한 개방을 하는데(사실 새벽 2시까지 개방해도 기숙사 들어갔다가 몰래 다시 들어가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끔은 과도한 출혈 경쟁으로 아예 아침 구보를 학습실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경곽 학습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학생복사실이다. 대학와서 한 페이지 당 30원씩 주고 복사하는 게 그렇게 아깝고 귀찮던지... 고등학교 때의 무한 복사는 정말 최고다. -_- 성능이 무지막지하게 딸리는 셀러론 급의 컴퓨터는 윈도98 띄우고 한글 돌리면 버벅거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저사양 게임인 스타는 그렇게도 잘 돌아갔다. -_-;; 학습시간에 싸이월드 방명록을 확인하는 장소, 시험 끝날 때나 2학년 2학기가 되면 스타 배틀넷을 하는 장소, 순수하게(?) 학습 자료를 찾기 위한 장소, 또 보고서를 인쇄하기 위한 장소. 결정적인 것은 내가 2학년 때 복사실 관리를 맡았다는 것인데, 종이 갖다놓고 토너 다 닳은 걸 행정실에 알려서 갈아끼우게 하고.. 별 거 아닌 일이지만 막상 해보니 상당히 귀찮았다. (거기에 컴퓨터 에러나서 포맷하면 더더욱 낭패..) 그래도 그 비좁은 복사실은 시끌벅적 편히 대화를 할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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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곽 학습실과 같은 곳에 내 자리를 하나 만들어 두고, 정말 공부하고 싶을 때 가서 공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생에 그처럼 정신적으로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또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