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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reakin Things
회사에서 비록 업무시간이었지만 인터넷 동영상 중계를 통해 티맥스 윈도(Tmax Window) 발표회를 지켜보았다. 오피스와 스카우터 부분은 사내 세미나 때문에 못 봤지만 다른 분들 얘기를 통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우선 무엇이 되었건 운영체제를 만들겠다고 하는 도전에 대해선 박수를 보낸다. (더군다나 Microsoft Windows 호환이라니.) 전산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또한 모의 학습용이긴 하지만 운영체제를 부분적으로나마 실제 구현해본 사람으로서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방대한 일인지 잘 알기에 도전 자체는 정말 힘든 결정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오피스와 웹브라우저인 스카우터의 경우 각각 오픈오피스와 웹킷이라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구글에서 크롬을 내놓을 때도, 애플에서 사파리를 내놓을 때도 웹킷을 사용했다는 것은 분명히 밝혀 왔고 오픈오피스 기반의 스타오피스와 같은 상용 프로그램들도 자신들이 그러한 오픈소스를 어떻게 사용했다는 것에 대해선 떳떳하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티맥스의 경우 별도의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이런 사실들이 흘러나오고 있는 정도이다.
사실 TNF 활동을 하면서 대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때마다 오픈소스 커뮤니티인 TNF를 마치 회사인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일반인 대상의 시연 행사에서 오픈소스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기는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분들은 텍스트큐브 프로젝트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우리나라의 오픈소스 인식을 고려했을 때 대단한 일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직 오픈소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연행사는 그렇다치더라도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이런 이야기가 없다는 점은 다소 실망스럽다.
한편 지금 현재 티맥스윈도 자체의 완성도가 낮은 부분은 충분히 이해된다. 사람들은 마소도 맨날 최적화하느라 난리인데 지금 이 정도 가지고 뭐해먹겠냐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윈도우 API를 깊이있게 써봤거나 직접 운영체제 커널 프로그래밍을 해본 사람이라면 지금 이 정도 수준만 되어도 감격할 만한 것이다. 짧은 기간에 그만큼이라도 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정말 눈물이 앞을 다 가린다. 만에 하나, 윈도우 API/OS 클론 오픈소스 프로젝트인 Wine이나 ReactOS와 관련된 라이선스 분쟁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하드웨어 드라이버 문제는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모양이고 동시에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 같지만, 티맥스가 뚝심있게 밀고 나간다면 차차 해결되리라 생각된다.
다만, 윤석찬 님이 블로그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힘든 개발 과정에서 연구원들 일부가 이혼을 당하기도 하는 등 굉장히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오히려 너무나 떳떳하고 애국심이 넘친 훌륭한 행동인 것처럼 묘사한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한다. 마치 예전에 황우석이 월화수목금금금을 이야기하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연구자, 기술자들이라고 해서 자기 자신과 가정을 돌보고 싶은 욕구가 없겠는가? 그리고 그런 욕구를 억누르고 어떤 한 프로젝트에 애국심으로 무한 헌신하는 것이 과연 지금과 같은 다양성과 개방의 시대에 국수주의적 영웅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물론 본인들이 원해서 그렇게 했다면 그 사실 자체는 문제 없지만, 그것을 떠나서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에서 대외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건 아직 공과 사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치부를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 모든 논란과 티맥스의 부적절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도 불구하고, 정식으로 출시된다면 순수하게 개발자의 호기심으로 한번쯤은 써보고 싶다. 하지만... 정말 국산기술로 OS 보유한다는 것 말고 굳이 엄청난 투자를 해가며 운영체제를 만든 비즈니스적 이유는 무엇일까?
요 근래 글이 다시 뜸해지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회사 생활 때문이다. 주5일제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기본 근무 시간인데 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일하면 저녁 때 다른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 대신 덕분에 아침·점심·저녁은 꼬박꼬박 챙겨먹게 되어서 오히려 살이 찌고 있다;;;
인턴이긴 하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정직원이나 다름없을 정도이다. 3개월의 인턴 기간 동안 웹어플리케이션을 하나 만들어 서비스화해야 하는데, 그동안 오픈소스 활동(특히 텍스트큐브)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함께 인턴을 하는 스팍스 선후배들도 동아리 활동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각종 서버 관리 노하우는 물론이고, 나같은 경우는 오픈소스 특성상 원격지에서 비동기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상대방이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추적하기 위한 커밋로그/이슈/문서 작성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어있는 편이다. 회사에서는 내가 상상했던 만큼 철저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데, 그렇기 때문에 이런 노하우를 회사에 적용해보는 좋은 시도이자 경험이 될 것 같다.
또한 회사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크다는 것도 흥미롭게 해주는 점이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경우도 기존 시스템과 연동하는 부분이나 전체 프로세스 진행 방식은 동료선배님1의 도움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전체 설계는 내가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인턴치고 회사의 프로덕트 하나를 이렇게 전체적으로 맡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는 경우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한재선 대표님의 모토 자체가 인턴들에게 커피나 타게 하고 복사 시키고 이런 건 자기 체질에 안 맞다며 우릴 뽑은 이유는 말 그대로 실무에 투입해서 회사도 도움이 되고 우리도 경험을 쌓게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 말대로 하고 있다.
도와주시는 그 선배님의 의견을 따라 애자일 방법론을 적용해보고 있는데--인사이트 출판사에서 나온 플래닝 포커 카드도 써봤다 ㅋㅋ--이것 또한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실제로 매일매일 개발작업별로 투입한 시간을 스스로 정리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사용자 스토리별 비용 추정 및 이터레이션·릴리즈 계획을 적용하고 있는데(물론 이제 막 시범용 1번 이터레이션이 끝났으므로 본격적인 건 이제부터다), 그동안 별다른 시간 계획 없이 되는대로 개발해왔던 것을 떠나 스스로의 개발 스타일을 좀더 정량화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특히 소프트웨어공학개론 수업을 들을 때 폭포수 모델로 하면서 IEEE830 스타일2의 요구사항 명세서를 작성했던 것에서 벗어나, 사용자 관점에서 기능들을 정리하고 usable한 기능을 적절한 크기까지 쪼개어 하나씩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나선형 주기를 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방법이 꼭 개발방법론의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웹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할 때는 단순 UI prototype이 아니라 직접 써봐가면서 많은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고 적용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적합한 방식인 것 같다. 기존의 폭포수 모델에선 모든 걸 설계를 완벽하게 한 다음 문서를 그대로 코드로 옮기는 방식이었는데, 여기서는 사용자 입장에서 보이는 기능 단위로 나누어 각 기능 하나하나를 완전하게(DB 모델부터 UI까지) 구현하기 때문에 중간에 아이디어가 추가되거나 변경되더라도 그 자체에 집중하기 좋다. (물론 그에 따른 개발기간 연장은 당연한 것이지만.) 다행히(?) 내 스스로 문서화를 잘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기 때문에 학교 수업에서 만들었던 것과 같은 정형화된 문서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인수인계할 수 있을 만큼은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텍스트큐브를 제외하고 내가 하는 모든 웹개발 프로젝트처럼 Python+Django 플랫폼을 이용할 것이기 때문에 그 기술로 상용제품을 만들어 검증해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사실 textcube.org 홈페이지도 django로 거의 완성해놓은 것이 있는데 python 개발자가 많지 않다보니 유지보수를 이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가슴아픈 경험이 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내가 인턴을 마치더라도 누군가 이어서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문서화와 python/django 기술 세미나도 할 생각이다.
험난한 산이 몇 개 남아있지만 그래도 이 프로젝트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한재선 대표님의 철학이나 회사 분위기가 잘 맞는 것 같아 비교적 순탄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돈은 둘째치고 뭔가 내 이름을 걸고 제대로 된 프로덕트를 하나 만들어낸다는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다.
원래 이런 건 어렸을 때 과학에 관한 질문 하나 던지면서 잘 시작했던 건데, 요즘은 그 대상이 좀 바뀌었다. 미투데이에 계속 쓰려다가 블로그에 기록을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여기에 적어봤다.;
...일단은 여기까지.
이전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한 후 했던 생각들을 적었는데, 이번 추모 기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드는 생각들이 있어 다시금 정리해보려고 한다.
어머니께서 하신 이야기 중에 와닿았던 부분은, 언론과 대중들의 모습이 성서에 나오는 빌라도 앞의 대중들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막상 앞에 있을 때는 맘에 안 든다고, 쳐죽이라고 그렇게 난리를 치다가 정말 죽고 나니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모습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그런 분위기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고인이 잘 했던 부분들이 새롭게 조명받으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살아있을 때 잘하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울 뿐이다.
문제는 현대 사회처럼 정보가 넘쳐나고 개개인의 생활이 바쁜 시대에 여러 시각을 공평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는 언론들에도 있다. 지금 노무현에 대한 추모 열기는 현재의 이명박 정부가 소통에 미숙하다는 단점이 노무현의 소탈했던 모습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면서 더욱 강화되는 느낌도 있지만, 정말로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 그가 잘 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때문인 면도 크다. 특히 IT 쪽으로 상당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접근했던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나 스스로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사용한 경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얼핏 청와대 업무시스템인 이지원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물론 노무현이 했던 정책들 중 실패한 것들도 있다. 집값 잡는다고 하다가 오히려 더욱 올려버린 점, 행정수도 공약 때문에 스스로 발목잡혔던 점, 빈부격차의 심화 등등. (이 부분에 대해선 보수언론들의 시각이라는 반론도 있으니 댓글 참조.) 그러나 그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IT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참여에 익숙해지고 이것이 대의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 쉽게 묻혀진 것 같다. 지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하고 있는 일을 사실은 노무현이 먼저 했던 것이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 하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해야 하는데 그러한 공정한 시각보다는 사회 기득권층 대다수의 입맛에 맞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것 때문에, 또한 노무현이 그러한 기득권적 배경을 별로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언론들이 더욱 그를 잡고 겁없이 흔들었고 그런 언론들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대다수의 국민들(나를 포함해서)은 노무현이 '대통령 답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만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의 측근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점 자체는 분명히 잘못하였지만, 왜 노무현에게는 그 부담이 배로 전가되고 노무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말 많이 해쳐먹은 다른 전직 대통령들이나 비리 세력들은 어째서 멀쩡하게 살아있는지, 그러면서도 영결식에 멀쩡히 참석하는 모습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이 역사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최소한 지금까지의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서라도) 더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고위 정치인들 내지는 권력자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지식정보화 사회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했던 인물이고, 또한 처음으로 가장 소박하고 소탈하게 살고자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측근 비리 문제가 불거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만한 정치인들 중에서는 가장 도덕성을 중요시하고 비리도 적은 편이었으며 스스로도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더 높아지고 감시도 강화될 것이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IT기술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인식 변화가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대통령과 정부들은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이번 학기에 한국문화사 수업을 통해 나라기록관 답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으로, 가장 많은 기록물을 남긴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다는 점, 나라기록관 사업을 시작하고 공공기록 관리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게 된 것이 노무현 집권 기간이었다는 점은 노무현이 그만큼 스스로 투명성과 역사의 평가에 대해 신경쓰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1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노무현을 우상화·영웅화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도 사람이기에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정책 모두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추모 열기는 대내외적으로 여러 상황이 복잡하고 어려운 가운데 어려운 환경 속에 성장하여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일종의 역할모델로서 노무현에 대한 심정적 동질감 때문에 약간은 더 심하게 나타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그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나쳐서 그의 잘못까지 무조건 덮어버리려는 정도까지 가면 안 된다는 말이다.
예전에 광우병 촛불집회를 보며 썼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의 이명박 정부를 보면 정보기술이 가져오는 근본적인 사회 패러다임 변화에 거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보가 더욱 투명하게 유통될수록,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이 자유로워지고 그 비용이 0에 수렴할수록, 숨길 것이 많은 사람들이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겐 인터넷과 IT기술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억제할 수 없는 사회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언제쯤 다시 노무현처럼 그런 면을 이해해주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것, 혹은 떠나야 했던 것은 비통한 일이지만, 노무현이 잘했던 것, 못했던 것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평가해주리라 생각한다. 과연 이명박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지금 잘 알려지지 않은 이명박이 잘한 일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또한 이명박 다음에는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가게 될지도 궁금하다.
조선이 세습왕권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길게 왕조를 유지하고 버텨왔던 것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뛰어난 기록 문화와 역사에 대한 두려움, 권력 감시 체제를 이념적으로 강화하여 세운 국가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기록물 관리는 노무현이 시작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어차피 투표권도 없었지만 과학고에 들어갈 준비를 하느라 유세도 제대로 못 보고 어느날인가 대통령이 바뀌었다는 사실만 인지했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노란색을 자주 사용했던 노사모 정도. 취임하고 얼마 안 되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는 둥 이런 소리가 들리며 한동안 시끄럽다가 각종 부동산대책이 나오면서 집값이 무섭게 오르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반쯤 농담이지만, 우리집이 아마 강남에서 계속 살았으면 집값으로만 몇억은 그냥 벌었을 거다)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든지, 말 많고 요리조리 머리굴려가며 언론들과 싸움놀이한다든지 하는 부정적인 평가가 주변에서 많이 들려왔다.
하지만 나중에 와서 보니 그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무대뽀로 밀어붙이는 삶을 살아왔던 점, 바보에서 시작해도 끝까지 밀어붙이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 소통을 중요시했던 점, 무엇보다 그 어떤 정치인도 섣불리 내걸지 못한 도덕성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내세웠다는 점 등이 그러한 요소이다. 특히 자신의 소신과 고집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부정적인 평가와 동시에 긍정적인 평가도 함께 받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대외적인 이유도 물론 있었지만 경제가 어려워지고 국민들이 원하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노무현의 지역주의·권위주의 타파와 관련된 긍정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사실 나는 아직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등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런 개념들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말을 접하게 될 때면 더욱 혼란스럽다. 분명히 알고 있는 건 지역주의가 여전히 팽배해있다는 점이고, 김대중과 노무현이 김영삼과 이명박과 다른 계열의 정당에서 나와 그 시기를 현 정권 및 여권에서 '잃어버린 10년'으로 부르고 있다는 정도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까지는 익숙해도 아직 그 전에 각 정당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각 정당이 가지고있는 비전, 소속 정치인들의 관심사나 성향도 잘 모른다. 역시 분명히 알고 있는 건 거의 언제나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정도에 이명박은 한나라당 계열, 노무현은 (언젠가 탈당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열린우리당 계열이라는 정도?
이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도, 얼핏 인터넷 뉴스를 돌아다니면서 박연차 회장과의 비리 혐의 문제로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워낙 바쁜 학업 중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는지는 거의 모르던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정확히 종강 다음날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이 자신이 가장 내세웠던 도덕성에 상처가 생기고 주변인들이 자꾸 소환되자 자격지심 혹은 그 성질머리(?) 때문에 자살한 것이라고도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저인망 수사 등을 근거로 들며 보수 언론에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혐의 사실을 흘림으로써 사실상의 표적 수사를 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오면서, 온라인 지인들의 여러 글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2005년인가 2006년 여름에 대통령과학장학생 신분으로 청와대에 불려가 노무현과 점심을 함께한 적이 있었다. 식사하기 전에 짤막한 연설을 하였는데, 참 말 앞뒤가 줏대없이 생뚱맞다는 느낌을 받았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지?'뭐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의 정책들 대부분은 취지는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욕하기만 했다. 당시엔 몰랐는데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었고, 어찌됐건 당시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충분히 자격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자질이 나쁘다면 그건 그런 사람을 뽑은 국민들의 잘못과 그러한 사람을 배출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그가 아주 똑똑하게 굴지는 못해도 나름대로의 고집있는, 소신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더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선 같은 사람으로서, 권력의 정점에 있었을 때 같은 자리에서 직접 볼 수 있었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움과 애도를 금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대통령이기 때문에 지는 책임도 큰 만큼 이번 수사에서 확실하게 결론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선 어느 정도 시일을 둔 뒤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할 것이다. 노무현이 무죄인지 유죄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역사의 심판을 반드시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전두환 같은 사람이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유족들에겐 힘든 과정이 될 것이고 그런 점에서는 나도 아쉽고 슬프다.1
민주주의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역시 국민들이 정치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견제 장치가 얼마나 잘 마련되어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기본적인 원리를 다시금 깨달았다.2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정치적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제서야 나는 왜 사람들이 조중동을 보수언론으로 보는지, 한겨레 등을 좌파(혹은 진보)언론으로 보는지, 언론사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점차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3 투표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대통령을 잘못 뽑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도 역사와 현실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IT 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소통이 한없이 자유로워지고 소통의 양이 무한대로 증폭되면서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는지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변화들이 과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지금까지의 인류가 그나마 최선책이라고 생각해 적용하고 있는 사회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노무현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괴롭고 슬프겠지만, 또한 누군가에게는, 아니, 대한민국에게는 사회적 성숙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쓸데없는 망상일지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내가 만약 대통령 정도 되는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통령은 사실 자기 손으로 무엇을 직접 이루어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은 말과 글을 통해 하나의 나라를, 또는 여러 나라를 움직일 수 있다. 권력의 정점에 있다는 말은 곧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무언가 이루어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과 수십명이 모인 학교 동아리조차 회칙 개정안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한 나라에 존재하는 수많은 입장들을 조율하여 움직이려면 얼마나 어려울까?
한편으론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러이러한 부분에 신경써서 정책을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농수산업의 과학화, IT 인력들의 창의성 발휘 환경 구축, 중공업의 고도화, 예술·문화계 진흥, 인문학 활성화와 자연과학과의 융합 연구, 대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닌 중소기업들이 커갈 수 있는 경제 생태계 형성, 환경 감시 체제 강화, 친환경 산업 육성, 러시아·중국과의 외교관계 강화, 동남아와 남아메리카에 대한 해외원조 확대로 위상 강화, 공공도서관 전문화, 세금 운영의 투명성 확보, 각종 공공 통계 및 공공기관 정보를 이용하기 쉬운 형태로 가공하여 제공하기, IT 기술을 활용한 국민들과의 소통 및 의견 취합--포탈사이트에 익명보장 정책제안 코너를 만들어 인기 상위 100개와 비인기 랜덤 100개를 뽑아 브리핑 받는다든지, 악성댓글 엑기스 뽑아먹기와 같은?--민영 의료서비스의 공공재화, 국가 기록 관리 강화 등등등 뭐 그동안 소소하게 느꼈던 것들을 계속 생각해서 쓰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로는 역시 대북 관계와 같은 것이 있겠다. (뭐, 보면 알겠지만 공돌이 아니랄까봐 좀 편향되어 있긴 하다. ㅋㅋ)
하지만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한들 그것을 실제 실행에 옮기는 실무자들이 이를 잘못 이해·해석한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이 없을 것이다. 이명박의 녹색 성장도 그 자체로는 매우 바람직한 구호이지만 뭔가 실제 진행되는 것들을 보면 건설경기 활성화가 목적인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또한 실무자들이 충분한 능력이 되지 않으면 어딘가에서 들리는 말처럼 연구 제목에 '녹색'이란 단어만 들어가면 돈 따오기 쉽다 하듯 세금을 눈먼 돈으로 쓰고 말 수도 있다.
대통령이란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도움이 필요할 터인데, 막상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명박은 그 문제를 낙하산 인사로 일부 풀고 있는 듯하다. 동시에 대통령의 권력에 기대어 뭔가 이익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컨택해올 텐데 그것들 중 실제 국정에 도움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가려낸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노무현도, 이명박도 이런 어려움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말 대통령은 똑똑하고 체력 강하고 주관이 철저한 그런 사람이 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란 자리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왜 대통령을 하였을까?<br/> 이명박은 왜 대통령을 하였을까?
초심으로 돌아가는 이 질문에 온전하게 답할 수 있어야 명분이 설 것이고, 대통령직을 훌륭하게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현재의 검찰 수사가 얼마나 심하게 진행되었는지, 혹은 사건의 진위가 어디까지 정확하게 밝혀졌는지 등에 대해선 잘 모른다. 이미 결론이 났다면 더 할 필요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보는 정도다. ↩
아쉽게도 현 이명박 정부는 사회·기술·문화의 흐름으로 인한 소통의 방식과 개념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아무래도 사람은 자기가 접하는 정보에 따라 그 편향이 달라진다. 요즘은 부모님과의 정치적 입장에서는 약간의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기도 하다. 나는 주로 인터넷과 온라인 지인들을 통해 여러 정보를 접하지만, 부모님은 동아일보와 TV 뉴스를 통해 주로 정보를 접한다. 보통 어떤 대원칙이나 논리적인 부분을 이야기할 때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데, 어떤 특정한 사건을 두고 평가할 때는 미묘하게 말투나 분위기가 엇갈리는 경우가 있다. ↩
지난 주에 OTL 프로젝트 런치하고--아직도 베타 딱지를 떼려면 할일은 산더미지만--네트워크 IP fragmentation 구현 프로젝트 끝내고 30장짜리 한국문화사 조별답사 레포트까지 끝냈더니 뇌가 드디어 파업을 해버렸다. 사실 당장 다음 주 화요일까지만 해도 OTL 프로젝트 테스트 플랜 작성과 NLP 프로젝트(!)가 있지만 일단 어제 오늘은 별다른 생각 없이 푹 쉬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쉰다기보다는 그동안 못 돌아본 것들을 돌아보는 그런 시간? TV도 보기 힘든 이런 환경에선 결국 인터넷 서핑이 된다. 텍큐닷컴의 관심블로그들을 한번 돌아본다든지 뭐 이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현재가 아무리 바쁘다고 해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 당장 이번 여름방학은 거의 잡혀가다시피(?) 해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인턴 할 생각 있어요?"라는 질문에 "생각해보구요"라고 답해놨더니 어느날 덜컥 점심먹으러 오라고 해놓구선 업무소개까지 하고 있더라. (뭔가 열심히 듣다가 '어, 이건 회사 기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니 '인턴 하는 거 아녔어요?'란다.) 사실 아는 동아리 동기 형이 거기서 직원(학업과 함께)으로 일하고 있고 대표님도 다른 경로를 통해 안면을 익혀둔 사이긴 하다.;;;
어차피, 작년에 구글 인턴은 아쉽게 못하게 된 터였고--뭐, 언제든지 다시 지원하면 신청은 받아주겠다고는 했지만--특별한 경험이 될 만한 게 아니라면 대학원 면접까지 겹치는 상황에 복잡한 서울에서 인턴을 할 생각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집이 용인 수지라 출퇴근이 좀 압박이다) 이곳을 고르려 하던 참이긴 했다. 마침 그 회사가 하는 분야도 관심있어 하던 것이고 그 회사에서 하게 될 일도 내가 잘 하는 일과 새로 배우는 일을 어느 정도 결합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하는 중이다.
결국 당분간은 쭈욱 대전에 있게 될 것이다. 대전지역 인턴쉽이기 때문에 학교에 기숙사도 신청했고, 가을학기는 일단 한 학기 더 다녀야 하고, 7~8월 중 대학원 입시를 무사히 끝내면 적어도 향후 2년 동안은 대전에 더 있을 것 같다. 다음 번 휴식기는 아마 잠깐 다녀올 여름휴가 겸 가족여행과 학부 마지막 겨울방학이 될 듯. 이번엔 종강해봤자 책(!)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바쁠 것이다.
대전에 있으면 좋은 점이 어쨌든 동아리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턴할 회사가 학교 안에 있기 때문에 출퇴근은 거의 5분밖에 걸리지 않을 테고, 출퇴근 경로의 중간에 동아리방이 있기 때문에 아마 후배들이 진행할 SP세미나나 휠세미나 같은 걸 저녁 시간에 들러 책 쓰는 작업도 하면서 적당히 코멘트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가을학기는 예전에 들어보려고 했다가 신청하지 못했던 작곡 수업을 마지막 교양으로 하고, 문수복 교수님의 분산처리 특강과 지도교수님이신 김기응 교수님의 전산로보틱스 수업을 듣게 될 것 같다. 다른 수업을 더 신청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아마도, 여름방학 때 인턴하면서 만들게 될 시스템을 문수복 교수님 수업에서 이용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확한 건 일을 시작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ㅋㅋ
사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일단 카이스트 대학원으로 진학을 결정한 이상 어느 교수님 랩을 가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빡세거나 널널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은데 관심분야는 죄다 빡세기로 소문난 교수님들...; 석사를 마치고 전문연구요원 형태로 병특을 하려고 생각 중인데 2년만에 석사 졸업이 가능할까 뭐 이런 소리가 나오는 판이라서 살짝 걱정된다;; (그나저나 전 룸메인 승범이는 이제 랩생활 시작했다는 것 같다.)
2~3학년 시절 내내 신축에서 살았더니 확실히 학부 지역이 좋긴 좋은 것 같다. 기숙사 방에 세면대가 없다는 점만 빼면 모든 게 학부생 기준으로 맞춰져 있고, 무엇보다 다용도실 피아노와 시청각실 피아노를 이용할 수 있다는 빼놓을 수 없는 이점이 있다; 예전엔 수업 없으면 시청각실을 항상 잠궜었는데 건물 리모델링하면서 출입구 카드키 시스템이 적용되어서인지 저녁 시간에 가면 거의 열려 있는 것 같다.
마지막 남은 학부생활인 2009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정신없이 프로젝트로 달린 봄학기는 과연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올런지. (한국문화사 요약레포트 다 만점받은 게 일단 심적 위안이 되고 있으나...)
석사를 마치고, 병특을 하고 나면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까?<br/> 다음 학기엔 대학원과 더불어 여기에 대한 걸 좀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ps. TTSKIN 문제의 경우, 결국 겐도님의 무한하고 영광된(?) 삽질로 구글 내부에서 쓰는기존 스킨 규격의 살짝 업글 버전과 기존 규격을 하나의 코드로 동시에 지원하는 걸로 결론났다. 즉,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 디자인 작업의 편의성을 생각했을 때 기존 형태가 그나마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제 바톤은 TTXML과 TTML, 댓글알리미 표준화로... (먼산)
ps2. 다음 학기에 CS101 학부조교를 신청할 생각인데, 이번 학기에 CS101을 재수강하는 고등학교 동기 친구가 있어 과제를 좀 도와주면서 설명하다보니 전산이라는 게 사실은 수학적인 능력보다 국어 능력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상적인 개념들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엊그제 있었던 동아리 임시총회의 회칙 개정과 제명안 관련된 문제로 또다시 동아리 메일링에서 시끄러운 논의가 있었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번 일로 느낀 점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느낀 건, 어떤 잘못을 봤을 때 사람마다 그것에 대해 반응하는 정도가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나같은 경우는 '상당한' 정도에 이르기 전까지는 웬만하면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편인데, '까야 제맛'이라는 말처럼 바로바로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칭찬하면서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어떤 메일을 보고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는데 어떤 사람들은 매우 발끈하거나 민감한 걸 보면 확실히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또, 이런 논의 과정에서 항상 고려해야 하는 점은 순수하게 메일의 내용만으로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조금 심하게 서로 깐다는 느낌이 있으면 이미 과거의 편력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봤을 때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대부분 개인적인 스타일이나 감정의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메일을 통해 논의를 하다보면 오프라인에서 이야기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부분도 서로 꼬투리 잡고 감정표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이전에 있었던 다른 배경 사건들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오해가 증폭되는 효과가 있다.
뭐, 이런저런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가 미처 못보고 지나간 부분도 있구나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왜 까야만 사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자세도 위험하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어야 전체 균형이 유지될 수 있겠지만...
역시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사람 관계가 어렵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난 주 목요일 카이스트 독서마일리지 프로그램의 책 읽는 밤 행사의 일환으로 한비야 초청 강연이 있었다. 작년에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었는데 그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더욱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딱 세줄 요약을 하면(...) 다음과 같다.
추가로, 한비야씨가 지적한대로 우리나라가 가진 IT 기술력과 장비 등을 해외 원조에 투자하여 긴급구호 현장에서 세계 각지로 연락을 닿을 수 있게 하고 현장 상황을 전송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과 같은 곳에 사용할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 김창준씨가 시작한 IT 봉사 네트워크가 떠오르는데, 우리나라 IT 종사자들이 거기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한다면 더욱 IT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말이 빨라서, 다른 사람 같으면 2~3시간 할 이야기를 농축해서 들은 듯했는데, 계속 프로젝트에 찌들어 살다가 이런 활기찬 사람의 말을 듣고 생각의 전환을 하니 훨씬 좋다.
지난 월요일, 전산학과의 석사세미나 과목에서 김명호 교수님의 초대로 고려대 법대 김기창 교수님의 강연이 있었다. 마침 요 근래에 오픈웹 관련하여 동아리 메일링에서 3~4일에 걸쳐 160여개 이상의 메일이 오가는 등 매우 많은 논란이 오고가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소송 원고인단에 참여를 고려해봤을 정도로(못했던 이유는 당시 나이가 안 돼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였기에 안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행히 수업도 없었고 말이다. :)
강연 제목은 "Code v. Code"였다. 처음에는 법률가로서 law code를 보는 사람인 자신과 전산학도로서 source code를 보는 학생들과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보자로 시작해서 오픈웹을 통해 자신이 느꼈던 바를 정리하고, 한편으론 이 주제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오픈웹에 대해 일부 설득하는 정도의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우선 강연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일부 빠진 내용이 있을 수 있음.)
사실 강연 자체는 워낙 잘 알고 있던 내용이라 별로 인상적인 느낌은 받지 못했다. (물론 내가 강연 내용에 100% 다 동의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만 온라인으로 쓰여진 글만 보다가 직접 김기창 교수님을 보니 상당히 서민적이고(?) 재밌는 분이라고 느껴졌다.
사실 30분 정도로 짤막하게 끝난 강연시간만큼이나 길게 질의응답이 이어졌는데 진짜 중요한 내용은 여기에 더 많이 나온 것 같다. 내 질문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과 나눈 질의응답까지 모아 정리해보았다.
보안업체(플러그인 공급자)에 의해 접근이 결정된다는 부분에 대해 -> 보안사고에 대한 책임을 모두 은행에 전가하는 현재의 상황으로 볼때 사회적·문화적 합의 내지는 인터넷 뱅킹의 계약 요소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한 근본적으로 강제 의무를 없애면, 알아서 적절한 기술을 택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인터넷 뱅킹 관련 문제를 다루는 태도가 어떻다고 생각하시는지?
컴퓨팅 리소스를 제대로 사용하게 하려면 진입장벽이 높아지는데 컴퓨터 사용자 교육에 대한 측면?
이러한 교육이 강조되면 정보접근권 격차가 벌어지지 않을까?
전자서명이 꼭 필요한가?
시간 관계 상 학과사무실 문닫기 전에 싸인을 하고 가야 한다고 해서(...) 여기까지만 하고 끝마칠 수밖에 없었는데 몇몇 학생들과 따로 교수님이 떠나시기 전에 추가 질의응답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웹상에서 상당히 독설을 내뿜고 계시는 것에 비해, 실제로 가지고 계신 생각은 내가 하는 것과 많은 부분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제도적 보완이나 인식 변화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계셨고, 다만 보안업체들을 대놓고 공격하거나 SSL+OTP 등에 대해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그래야 사람들이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논란의 가장 중심에 서계신 분을 직접 앞에 놓고 이야기를 듣고 질의응답을 할 기회였기에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석사 간 내 이전 룸메 친구는 오랜만의 한국어 강연이라서 좋았다고...ㅋㅋ) 아무튼 인터넷뱅킹에 대해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 만큼,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길 기대해본다. 김기창 교수님과 같은 분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
오픈웹이 금융결제원을 상대로 낸 소송 2심에서 패소하면서 한동안 오픈웹 사이트가 닫히고 다음과 같은 화면이 떴었다. 그러다가 다시 사이트가 열리고 열띤 토론이 오가더니 어느 순간 DDoS 공격을 당하여 사이트가 닫히고 구글 그룹스로 대체된 상태이다.
한동안 오픈웹 사이트를 대체했던 Closed Web 광고(?)
이 과정에서, 내가 속한 SPARCS 동아리 메일링으로도 여러 선배님들이 사상 초유의 엄청난 토론을 벌였다. 불과 3~4일 사이에 메일 쓰레드가 160개 가까이 나올 만큼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다양한 의견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주요 줄기(?)만 뽑아 '내맘대로' 정리해보면,
이 외에도 몇 가지 줄기가 더 있지만 논의에 관련된 핵심적인 것들만 뽑아보니 대충 이 정도쯤 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결국은 양쪽 다 맞는 소리다. 공공재적 성격을 띠는 인터넷 뱅킹과 온라인 결제 시스템이 가능하면 접근성이 높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공개 표준을 이용하는 대안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보안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기술적으로 '최대한'의 보안을 확보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책임소재임을 요구받는 은행이 주문한 대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데 이 역시 맞는 이야기다.
다행스러운 것은, 행정안전부에서 주최하는 회의에서 강제 여부를 해제하는 쪽으로 합의가 도출되었다는 점이다. 나도 기술적으로 지금과 같이 무겁고 불편하고 가끔 오류도 내는 보안프로그램들이 어쨌든 0.01g이라도 더 나은 보안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다고 보지만, 사용자가 원한다면 은행측이 제공하는 보안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과 접근성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오픈웹 쪽에서 그동안의 지리한 소송과 말이 안 통하는 상대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주장을 해온 것 때문인지 나같이 오픈웹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이나 보안업계 사람이나 어느 쪽에서 봐도 다소 거부감이 드는 발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기에 지치고 힘든 건 이해하지만 감정적으로 휘말리지 않고 생산적인 논의가 계속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뭔가 '말'로는(literally) 다 맞는 얘기인데 미묘하게 글 중에 감정이 보이는 것이 아쉽다. 나만의 착각이길 바랄 뿐.
추가: 이 사태에 관해서 김국현씨가 아주 일목요연하게 논점을 잘 정리해주셨다. 이 글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네트워크 프로젝트 때문에 바쁘고 시험기간이고 책 써야 하고 어쩌구 저쩌구 해도 볼 건 다 보고 있다. ㅋㅋ
기본적으로 웹에 무언가를 올리면 링크의 대상이 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는데, 이 문제는 좀더 다른 시각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웹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웹을 정말 '웹'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인터넷 상의 누군가가 내 글을 봐주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갑자기 수십만명이 몰려와 글을 읽는다는 사실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임의의 누군가를 고려하는 것하고 임의의 수십만명을 고려하는 것하고는 아무래도 다르지 않은가.)
텍스트큐브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사용자들은 정말 다양한 용도로 툴을 사용하고, 소통이 근본 원칙이자 어떻게 보면 그게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블로그툴을 사용하면서도 매우 개인적인 공간을 꾸미길 원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사실 개인 데스크탑PC에 로컬로 설치할 수 있는--그러니까 혼자만 쓸 수 있는--블로그나 위키에 대한 수요가 꽤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웹이 탄생하기까지 인류가 겪어온 수많은 철학적 고민과 기술적 고민들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저 자기 원하는 거 잘 돌아가면 장땡인 것이다.
블로거들 중에는 "내 글이 좀 알려지고 많이 읽히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기대와 동시에 "갑작스레 너무 많은 사람(수십만명 이상)이 들어와서 읽는 건 부담돼서--트래픽 때문에 먹통되어서일수도 있고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가 불특정 다수한테 노출되는 것이 싫어서일수도 있고 내가 그만큼 널리 읽힐 만한 퀄리티의 글을 썼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부끄러워서일수도 있고--싫어"라는 입장을 가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비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부분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미리야님이 제안하신 대로 네이버 쪽에서 오픈캐스트에 링크되길 거부하는 블로거들이 스스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면 캐스터가 링크걸려고 할 때 경고메시지를 띄워주는 정도의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동시에 링크에 대해서 웹사용자 모두가 좀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 문화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웹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쓰게 되기를 바란다.
한편, 기술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티스토리나 이글루스 같은 서비스형 블로그를 쓰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트래픽 폭탄을 맞아도 악성댓글이 많이 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외하곤 사실 별다른 손해(?)는 없는데, 나처럼 개인 서버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호스팅을 쓰는 경우는 트래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http referer로 차단한다든지 robots.txt를 이용한다든지 하는 기술적 조치 방법들이 있지만, 나같이 웹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아는 사람이나 써먹지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저렇게 이야기해줘도 무슨 소리인지 모를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런 기술을 잘 안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귀찮아서 냅두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전문가들만 사용할 수 있는 Amazon EC2나 Google AppEngine과 같은 scalable hosting 서비스들이 일반 웹호스팅을 사용하듯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사용법은 지금의 웹호스팅과 똑같으면서 가상화 기술을 사용하여 동적으로 트래픽에 대응하고, 요금은 후불제이되 매우 저렴하여 거의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준이 된다면 '내 글을 누군가 많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와 동시에 '한꺼번에 수십만명이 몰려오면 쥐쥐인데'하는 모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포탈사이트 중심의 웹 구조로 인해 포탈 메인에 링크가 걸리는 순간 예측 불가능한 트래픽 폭탄을 맞게 되는 것은 사실 아무리 자기 글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사람이라도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걸 기분좋게 받아들일지 기분나쁘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른 것이다. 다만 기술적으로도 지금 당장은 부담될 수밖에 없고, 문화적으로도 모든 웹사용자들이 링크의 용도나 범위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차근차근 돌이켜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ps. 사실 텍스트큐브 개발에 참여했지만 텍스트큐브를 가지고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용법(?)을 보여주는 몇몇 사례를 보면서 팀버너스리가 이런 논란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하이퍼텍스트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ㅋㅋ
요즘 들어 "~지만"을 대신하여 "~하다만"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점점 눈에 띈다. 특히 다른 부분은 다 존댓말인데 저 표현만 저렇게 쓰는 경우는 눈에 확 띈다.
그러한 예로,
물론 속사정이야 그쪽 비밀이겠다만, 이번의 업그레이드가 좋은 징조라고 믿습니다.
과 같은 것이 있다.
어디서부터 이런 표현이 쓰이기 시작한 걸까? 최근 내가 속한 어느 동아리 메일링에서 신입생들이 88학번 대선배까지 포함하는 전체 메일로 자기 소개 메일을 돌리고 있는데 한 신입생이 저런 말투를 썼다가 선배들한테 주의를 받는 경우를 보았다. 분명히 존댓말을 써야 하는 상황을 모를 리는 없을 테니 그냥 저 표현을 원래 저런 표현으로 알고 썼을 것이다. 나만 해도 저런 표현은 거의 보지 못했고 올바른 표현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위의 예를 자연스럽게 고치면
물론 속사정이야 그쪽 비밀이겠지만, 이번의 업그레이드가 좋은 징조라고 믿습니다.
물론 속사정이야 그쪽 비밀이겠습니다만, 이번의 업그레이드가 좋은 징조라고 믿습니다.
정도이다.
이에 대해 알고 있는 분 계시면 댓글 감사히 받겠다. (예를 들면 어디서 어떻게 유행이 시작되었다든지, 아니면 특정 지방 사투리에서는 원래 이런 말투를 썼었는데 그게 널리 퍼진 거라든지 등등.)
ps. 요즘 먹고 자는 시간 빼고 거의 과제만 하느라 죽겠다... ㅠ_ㅠ
아직 춘삼월도 아닌데 벌써 웬 개강이냐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카이스트는 오늘부로 봄학기 개강이다. 서남표 총장님의 해외인턴쉽 장려 정책으로 여름방학을 해외 대학과 맞춘다며 봄학기를 1개월 당겨버린 것.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당겨져왔고 올해 드디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번 학기에 들을 수업은 IE200 OR개론, CS441 전산망개론, CS492 전산학특강(자연언어처리), CS480 컴퓨터그래픽스개론, CS408 전산학프로젝트, 교양필수로 테니스이다. 오늘 들었던 첫 수업은 이들 중 OR개론과 전산망개론.
OR개론은 오리지날 미쿡인(?) 교수님이신데 한국 학생들을 위해 배려하신 건지는 몰라도 아주 명쾌하고 시원시원한 발음이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느리게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다 받아적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수강인원이 많아서 창의학습관 터만홀을 거의 가득 채울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마이크를 쓰긴 했지만 교수님 자체도 목소리가 명확하게 말씀하시는 타입이라 잘 집중할 수 있었다. (역시 대형강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듯.)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송준화 교수님...-_-;; 역시 3년 전 시스템 프로그래밍 때와 동일한 페이스를 유지하실 것 같다. 상대적인 로드도 동일하지 않을까 싶은 게 좀 걱정이라면 걱정; 핀토스보다 빈칸 뻥이 많은 KENS라는 자체 네트워크 스택을 구현하는 프로젝트를 하게 될 거라고 한다. 프랑스 학생이 한 명 있어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면서 강의하셨는데 원래 소수의 인원을 앉혀놓고 interaction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신만큼 가까이 앉지 않으면 좀 수업을 듣기는 힘들 것 같다. (목소리가 작으시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우리 동아리에서 오픈소스인 moodle에 기반하여 개발한 강의 관리 시스템을 이용하는 과목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번에 듣는 OR개론도 그렇고. 동아리 서비스가 실제로 학우들에게 유용하게 이용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역시 개발자로서는 자신의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것이 기쁜 일이지 않을까.
일단 신학기인만큼, 더욱이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온 만큼 신입생들 왔다갔다하는 모습 등이 하나하나 새롭고 활기차다. 그래도 조용하기는 강남에 비하면야 훨씬 한적하지만 말이다. ㅋㅋ 이번 학기도 또한번 달려보자!
그간의 경험이 점점 쌓이면서 요즘 들어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그 사람이 하는 말에는 상식이나 이치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왠지 그 사람과 대화하고 있으면 싫고 짜증나는 경우가 있다.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비록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할지라도 그런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여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대개 왕따로 귀결되는 것 같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꺼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잘못은 '논리적 잘못'이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할 때 짜증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자기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한다거나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이런다든지, 계속 자기에게 관심을 달라는 치근덕댐이 뻔히 드러나보인다든지 등이 있을 것이다. 이 마지막 경우가 실은 가장 안타까운데, 사람들이 그 사람을 꺼려하고 피하다보니 더욱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얻으려고 하고, 이것이 악순환에 빠져들게 만든다.
내가 그동안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주욱 거치면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만나보았는데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면 나 혼자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싫어하는 경우엔 반드시 이런 이유가 있었다.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싶지는 않지만 때로는 내 삶을 더 평온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나 자신도 그러하지는 않은지 항상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어렸을 때에는 주변 대다수의 아이들보다 학업 성적이 뛰어나고, 한편으로는 매우 순진한 구석도 있었기 때문에 보통의 아이들하고는 질투와 놀림 때문에 그리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그래서 아주 극소수의 친구하고만 아주 깊게 교류했다. 점점 커가면서 중학교 때는 꽤 많은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고 방송부장을 하면서 집약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하는 등 이른바 사회화 과정을 겪으며 많이 나아졌지만. 어렸을 때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기억이 꽤 있었기 때문에--사실 그게 단지 누구나 겪는 평균적인 수준이었을지라도 기억에는 매우 강렬히 남은 것들이 있다--항상 내가 무언가 말하고 행동할 때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려고 하게 되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좋게 말하면 배려하는 습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나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배려하는, 사려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일정 부분은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 사람들 중에 보면 전혀 악의적이지 않지만 자신의 일상적인 행동이나 습관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느껴질 수 있는지 미처 모르는 경우들이 있다. 나 자신도 그런 경우가 있었고. 이것은 보통 그 피해 수준이 모호해서 직접적으로 그 불만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인데, 보통 사람 이상의 배려심을 발휘하기 위해선 이 벽도 넘어야 하는 것 같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 수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무언가 일을 이루려면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모두가 자기 같을 수는 없는만큼 인간관계를 다루는 기술이 참 중요하다. 뭐, 말은 성인군자(...)들의 말씀을 찾아보면 다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이제서야, 진짜 배울 것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달까.
앞으로 또 어떤 험난한 사람 단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ps. 이런 점에서, 텍스트 기반의 의사소통은 완전히 다른 시점을 제공해준다. 오프라인에서는 그토록 대면하기 싫었던 사람도 온라인에서는 때로는 매우 정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텍스트 매체를 통해 감정 전달 수단이 대부분 거세된 상태에서 기록으로 남으며 이어지는 글줄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익명성이 무서운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도 한 것이다.
지난 토요일, 아버지와 일로 만났지만 지금은 친구 사이가 된 어느 사장님과 우리 가족이 함께한 저녁 식사가 있었다. 독신으로 독하게 살아오신, 그리하여 마침내는 성공한 사업가가 된 40대 중반의 여성분이었다. 한달치 식비를 모두 쏟아붓는 엄청난 가격의 5성급 호텔 저녁식사를 사주시면서까지 만나고자 했던, 이야기하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나는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명적이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 상대방이 혹시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오해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는 편인데,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끼리 대화할 때는 괜찮지만 이 분야에 문외한인 사람한테 이야기할 때는 온갖 비유와 은유로 최소한도로 배경지식이나 용어설명을 줄여한다고 해도 자칫 지리멸렬하게 들리기 쉬운 문제가 있다. 그나마 글로 전달하는 경우는 나은데, 실제 대화에서는 너무 말을 길게 한다는 평을 주위에서 듣기도 했다.
그 사장님은 컴퓨터 쪽은 완전히 문외한이시고, 아주 가끔 컴퓨터를 사용하시는 정도였다. 자기가 컴퓨터를 만지기만 하면 뭐가 안 되고 고장난다고 한다. 부모님을 통해 나에 대해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알고 계셨지만 실제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시길래 텍스트큐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블로그가 뭔지 정도는 알고 계셨기에 그 자체를 이해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거기서 어떤 일을 맡고 있냐고 해서 스킨 표준화와 프레임워크 개발을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아마도 나중에 부모님과 얘기해보니 일정 부분 의도적인 것도 있으셨던 것 같은데, 일부러 엔지니어 성격이 짙은 내게 비엔지니어적 사고의 충격파를 전달해주어 더 깨어있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던 탓인지, 더이상 비개발자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을 설명하다보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좋았던 점도 있었다. 기술적인 것이 어떻게 되든 실제로 그것이 어떤 가치를 발생시키는가의 관점에서 항상 생각해보도록 실질적인 예를 들어주셨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상업적 프로젝트가 아닌 오픈소스 프로젝트이기에 가지는 철학의 차이나 한계점에서는 결국 논쟁으로 번질만큼 이해시켜드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배경 설명을 다 하자니 내가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이 얘기는 이쯤에서 정리해두고, 그 뒤로도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그분은 완전한 비즈니스우먼이었기 때문에 항상 핵심 가치만을 듣고 싶어하고, 급하며, 또한 기왕이면 유머와 위트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하는 성향이 강했다. 아마도 좋게 해석하면, 좋은 친구분의 아들에게, 나름대로 머리가 좋다고 하니 사회적 선배로서 더욱 그 능력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해석할 수 있겠는데, 내게 요구하신 것은 딱 하나, 유머와 위트를 갖추라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반론과 반론의 반론이 오고갔지만(물론 위스키와 함께 매우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 정도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거의 모든 일에 진지한 편이다. 요즘 한창 뜨는 TV 프로그램인 '패밀리가 떴다'에서 진지 청년으로 나오는 장혁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을 웃기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그러한 즐거움의 일부를, 진지해야 할 것으로 기대받는 사회 속에서 유머를 통해 찾는다. 그것이 주변에서 충족되지 않다보니 이른바 예능계 연예인들이 뜨는 것이고, 또한 유머러스함을 갖추는 것이 하나의 덕목이 된 것일 테다. 이제는 유머와 위트가 없으면 더이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 어려운 것일까.
일상적인 대화에서 중간중간 상대를 웃게 만드는 유머와 위트는 사실 고도의 집중과 맥락적 흐름을 머릿속에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힘든 일이다. 요 근래 집에서 지내면서 가끔씩 TV에서 하는 개그·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는데 가볍게 망가지면서 웃기는 것도 있지만 말빨 좀 선다 하는 MC들은 그때그때 다른 사람들 말의 이전 문맥을 활용해서 재치로 비꼬는 것을 아주 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천적으로 사람들을 쉽게 웃길 수 있는 말투와 넉살을 타고났다면 모르겠지만, 나같이 진지한 사람이 유머와 위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런 수준의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과연 모든 사람이 진지해야만 할까 하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과연 모든 사람이 유머가 넘쳐야 할까 하는 질문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진지함에서 묻어나오는 또다른 맛의 재미도 있는데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부분이 내 한계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것을 어찌하리오. 그 사업가분과의 만남은 대화 중의 몇몇 구체적 사례에서 역으로 생각해보는 관점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어떤 것이 사람을 열정에 찬 모습으로 보이게 만드는지 알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그분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어도 마치 모든 사람이 사업가적 기질을 가져야 한다고 무언의 강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은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유머와 위트가 싫은 것이 아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의 평에 의하면 나도 옛날보다는 그런 면이 많이 발달했다고 하고, 어쩌면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보통 수준은 익히게 될 수도 있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었을까? 하지만 난 이미 명시적이진 않더라도 암시적으로는 삶의 다면체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다른 면을 느끼고 보고자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자극은 일부분 거부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요즘에 하는 생각 중 하나가, 좁은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리더십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좁은 의미의) 리더십이 너무나 충만하다면 이 세상이 과연 잘 돌아갈까? 리더가 리더이기 위해서는 참모도 있어야 하고 리더의 생각을 실행할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리더십을 이야기한다면 모를까. 더 넓게 보면 인간이라는 한 개체로서 세상사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거대한 사회적 덕목으로 표출되는 것일지도.
이런 반박을 하는 이유는, 이전에도 몇 차례 언급했던 지적사춘기에서 하는 일이 사실 사람들이, 혹은 사회가 절대 덕목이라고 말하는 가치들을 다시 한 번 내 나름대로 반박해보고 부수어 보면서 그 결과를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내 가치관과 생각의 주관성을 다듬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현대 사회상에 대한 꽤 괜찮은 반박을 한 것을 꼽으라면 마인하르트 미겔의 「성장의 종말」쯤 되겠다.
아무튼 그분과의 만남은 진지함과 유머의 균형에 대해 삶의 무게추를 어떻게 놓을 것인가 하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끔 해주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이것이 가장 큰 수확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