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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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사회운동가로서 인간 예수가 당대의(그리고 현재의) 정치적·경제적(자본주의) 틀과 다른, 모든 인간이 기본적인 품위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지향하고 그것이 영광의 길이 아니라 수난의 길이었음을 보여주는 책. 열두 제자들이 기대한 것과 예수님의 지향점 차이로 인한 갈등을 사회개혁(변혁?)운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하지만 너무나 강하고 확실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이 책을 쓴 김규항씨 본인조차 그러한 삶을 살 것인가, 살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부활의 과학적 신빙성이 예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예수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은 사회에 잘 '적응'한 인텔리나 중산층들이 어떻게 보면 지배체제의 독식을 더욱 공고히 하는 (스스로 원하든 원치 않든) 보수성을 띰을 나타낸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가 '잘' 사는 이상향을 좇기보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음'을 주장하는데 김듀항은 그것에서 벗어나야 예수님이 전파한 가치를 따라 살게 됨을 역설한다.)

메마르고 품위 없이 사는 사람들을 사회에서는 교양없는 사람들로 간주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실은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악다구니를 쓰지 않아도 되고 폭력의 현장에서 한발치 떨어져있을 수 있기에 그리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예수가 지적한 위선이자 그가 로마와만 대립한 것이 아니라 유대민족의 바리사이들이나 기득권층과도 대립했던 이유라는 것이다.

나 자신 또한 한국에서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나의 순수함과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들을 큰 어려움 없이 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내가 만약 그럴 수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다면—그것이 신의 뜻이라 해도—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또한 고등교육을 받고 유대감 넘치는 집에서 행복하게 살아온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가치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의무감도 들었다.

처음엔 김규항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책만 재밌게 봤는데, 중간쯤 읽다가 저자 프로필을 보니 전형적인 좌파적 성향을 가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와 같은 사회운동을 해야 한다고 보다 강하게 주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 사람 본인이 그런가 하는 점.) 흔히들 그런 사람들을 두고 반골의 성향이 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무엇이 옳고 옳지 않은가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여태껏 인류가 겪어왔던 모든 사회 체제는 부조리한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을 보면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를 바라보면 예수가 당시 기존의 정치적·경제적 개념과 사회적 관습과는 완전히 다른 파격을 추구했음을, 예수가 지배체제로부터 사형 당한 이유를 보다 투명하게 바라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비록 그가 자신이 주장하는(?) 삶대로 살고 있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자기라도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글을 쓴 것이 아닌가 싶었다.

엊그제 룸메이트가 소개해준 일본 SF애니메이션 '프리덤'을 보았다. 지구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인류는 달에 인공도시를 짓고 거주하게 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구가 푸르게 회복되고 살아남은 인류가 있음에도 도시의 운영자들은 시민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진실을 알려는 자들을 죽이거나 가둔다. 여기서 그 운영자들은 달에 도시를 만들 정도의 과학기술로 인해 지구를 잃어버릴 뻔했던 만큼, 시민들(인간들)이 다시 과학기술의 힘이 주어져도 평화롭게 살 것이라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노라 주장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견 그들의 주장이 이해되고 거기에 반기를 드는 젊은 주인공들이 '너무 어려서' 인간에 대한 지나칠지도 모르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지구와 다시 왕래가 이루어졌을 때, 달의 도시가 더 이상 그곳의 인류에게 전부가 아니게 되었을 때 잃어버릴 수 있는 기득권 때문에 지배체제로서의 저항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 애니에서는 그런 논리를 일부러 숨겨서 진부한 논리적 흐름을 탈피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부식당에 있는 카페베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좀전에 근처 자리에 앉았던 어떤 여학생 둘의 대화가 생각난다. 한 명이 부모님과 전화하면서 마구 투정을 부리니까 다른 학생이 왜 그런지 물어보았다. 아버지 직장 이동 때문에 5명이 사는 90평짜리 집이 55평짜리 집으로 이사가게 되었는데 방이 너무 작아져서 싫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제시한 대안은 집 2개를 사서 터서 쓰자는 것인듯 했는데 그래봤자 방 크기는 똑같지 않냐는 것. 물어본 친구는 벙 쪄서 4인가족 기준이면 28평에서도 사는데 뭐 그걸 가지고 불평하냐는 볼멘소리를 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삶의 경제적 수준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친구들 중에 돈이 많은 사람도 있고 별로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돈이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닌데, 그로 인해 인간의 가치 평가도 함께 변한다는 것이 문제다. 예수가 부자더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것은 그런 뜻에서일 것이다.

하느님과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과 별개로, 이 책을 통해 예수님이 단순히 사랑의 교리만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대대손손 사회구조에 대해 왜,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잃어버리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방식으로 남겼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쩌면, 내가 한때 무신론을 지지했을 때 바라보고 싶었던 예수의 모습이 이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가 남겨준 정신적 유산은 실로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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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쓰기엔 조금 짧고, 트위터에 남기긴 길고, 구글버즈에만 남겨두자니 너무 전달범위가 좁고. 그래서 블로그에 쓴다.

NHN/KLDP 권순선님과 SPARCS 동아리 지원 관련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 술(...) 마시고 왔다.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다른 관점과 목적으로 한 얘기지만 결국 1337 파티에서 노정석님이 해주신 것과 비슷한 이야기. 대충 그맘때쯤의 세대가 우리 세대에게 불만이나 아쉬움을 느끼는 것일지도.

"실패할 것이나 기술적인 한계를 놓고 재지 말라. (특히 학생일 때) 실수하고 실패해볼 수 있는 것은 엄청난 기회이자 권한이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뭐가 되든 끝까지 삽질해봐라."

동시에 카이스트가 등록금 정책 등으로 학생들에게 점점 학업 부담을 지우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셨다. 이른바 자기 좋아하는 일에 미친 '또라이'들이 많이 나와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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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사소통을 하고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 수단을 사용한다. 목소리냐 문자냐 하는 것도 있겠지만,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느냐, 말투나 어감, 맥락적 의미 등 많은 것이 하나의 표현 안에 녹아들어가게 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세련됨의 차이, 스스로의 인식 수준에 대한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당연히 가지고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표현의 의도와 본질이 표현 방식에 의해 왜곡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컴퓨터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기반 기술을 구현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정보(의도)의 전달 여부는 항상 상대방이 그렇게 받아들였는지의 여부로 결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뭔가 상대방보다 내가 낫다는 걸 은연 중에 보이고 싶은 의도가 첨가된다든지, 컴플렉스를 상대방이 건드린 것에 대한 내재된 화의 분출이라든지, 상대방의 생각이 옳다는 건 알지만 질투가 난다든지 하는 다양한 심리가 겹쳐지면 이것이 표현을 왜곡시켜버리고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러한 왜곡 현상이 표현하는 사람, 받아들이는 사람 모두 직접 인지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잘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결과는 서로에게 남는 상처와 울분이며, 이것은 또다른 내재된 화의 원인이 된다.

대화는 상호소통, 상호교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의도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대화이지만, 그것이 상대방과의 지위 고하와 상관 없이 사람이기 때문에 느끼는 가장 근원적인 감정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옛날 사회에서는 그것이 권력으로 누를 수 있었기에 허용되었을지 몰라도, 경쟁이 심화되고 투명성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설득의 방식이 설득 내용보다 더 중요해졌다.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리더를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표현이 왜곡될 때 나타나는 예로 자신만큼 상대방이 노력한 부분이나 역할에 대한 무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아마 자기도 말해놓고 차마 체면 때문에 바로 거두지는 못하지만 뒤에서는 후회할 수 있는 독설을 내뱉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보스턴 필하모닉 지휘자 벤자민 젠더가 한 말 중에(TED 강연 동영상 참고) "단원들의 눈이 반짝거리지 않으면 그것은 (리더인)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직업적인 전문성으로 냉정한 판단을 하고 구성원들이 이것에 따르게 하는 것은 좋지만, 동시에 그것을 이유로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하면 안 된다. 똑같은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설득당했느냐에 따라 리더에 대한 평가와 감정은 완전히 반대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마지못해라도, 어쩔 수 없이라도 명백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인정받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때에 따라서는 나의 의견을 관철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논리나 권위로 무장하여 상대방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기보다는, 소위 핑계를 댈 수 있는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줘가면서 대화를 이끌어나가면 상대방이 보다 기분 좋게 동의하게 만들 수 있다.

나의 의도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을 겪어봐야 하고, 그 와중에 오해도 받아보고 실수도 해보고 하면서 배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요즘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주로 IT 분야에서 감정이 별로 섞이지 않은 건조한 의사소통을 주로 해왔던 것 때문에 많은 부분을 배우고 또한 고생하고 있기도 하다. 다행히도 내 여자친구와 나는 서로 그러한 면을 이해하고 그때그때 맘에 안 들었던 부분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표현 방식의 차이에 의한 마찰보다는 그러한 차이를 배움으로써 얻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여기에는 심리적 거리낌을 극복하는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 많이 느낀다. 우리는 논리적 인간이 아니라 감정적 인간이다. 처세술, 설득하기 등의 내용을 담은 많은 책들이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 것 같다. 감정을 잘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은 명확한 논리로 설득하는 것보다 한발 앞서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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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살다보면 무언가 내재된 화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이 자기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 개선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순간적으로 폭발하여 차마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 말이다.

특히 이런 것은 어떤 직업적인 인간 관계보다는 가족 관계에서 나타나기 쉬운데, 이것은 상대방을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깊고 미묘한 의사소통과 감정 교류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혹은 그것이 이미 너무 오래 전의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는 것에 마음의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표면적 현상 이면에는 본인도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어떤 근원적인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각 단계에서만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인간 관계들이 있는데 자의든 타의든 그러한 경험의 기회를 갖지 못했거나 아니면 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legacy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또한 그렇게 표현함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모르거나 이성적으로는 알더라도 제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서로에게 투명한 상호교감이 없으면 사람은 자신의 감정 상태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내재적 두려움이 겉으로는 화로 분출되는 것이다.

사람이기에 항상 완벽하게 투명할 수는 없고, 또한 완벽하게 상대방과 동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협화음이 발생할 때 이것을 제때 제때 해소해야지,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폭발시켜버리면 상처만 남을 뿐 근본적인 해결에 다다를 수 없다. 그리고 모두 드러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해야만, 그것이 순간적으로는 손해처럼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원인을 상대방이나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탓하지 않으며 외부 사물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을 차별하고 싶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은 사람과의 교류를 부모님들이 선호하는 이유도 아마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현장에서 뛰면서 많은 사람들을 겪었던 사람이거나. 문제는 자기가 비록 그런 못난 면이 있더라도, 다음 세대에서는 이것이 더 나아져야 하고 또한 나아지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러한 필요성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나마 유년기의 교육을 통해서 이런 부분이 극복되어야 하는데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나는 학교라는 시스템이 획일화시키는 측면이 있을지언정 최소한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국의 전통적인 유교 질서에서 윗세대가 아랫세대에 대해 삶의 경험에 의한 노하우와 가치를 전수하는 의무를 빼먹고 효에 대한 권리만 강조하게 되면 더욱 힘들어진다. 물론 아랫세대 또한 그러한 경험을 나누어줌에 감사하고 그에 걸맞는 예를 갖춰야 하겠지만, 이것이 상호교감을 통해 우러나오는 것이어야지 감정이 사라진 의무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을 받는 쪽조차 별로 얻는 것이 없다.

'요즘 젊은 것들도 고생 좀 해봐야 해'라는 말도, 반드시 해야 할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옳은 말이지만, 단순히 자기가 고생해봤기 때문에 너희도 고생해야 한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인류가 발전해온 원동력은 문자와 언어에 의한 학습을 통해 앞선 세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삽질은 하지 않는 것이 개인에게도, 인류 전체로 봐서도 더 좋다.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싶다. 이미 그렇게 고정되어버린 사람들이라도, 음악이라든지 종교의 힘에 의해서라든지 주변 사람들의 노력이라든지 하는 영적 치유를 통해서 (완전히 바뀌지는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조금씩이나마 변화시킬 수는 있지 않을까. 서로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불필요한 상상과 그로 인해 유대가 사라지고 권리와 의무만이 남은 상황에서 탈피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나쁘다' 혹은 '덜떨어졌다'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삶의 과정에서 습득해야 할 것을 주변 환경에 의해 습득하지 못한 것 뿐이다.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내버려둬서는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동화시켜나갈 수 있다면 우리네 삶이 더욱 아름답게 가꿔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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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서버의 하드디스크 사망 조짐으로 인해 안 그래도 별러왔던 가상서버호스팅으로의 이전 작업을 하느라 이제서야 올리는 2009년 결산 포스팅. 시작은 역시 학업 이야기부터 해야 될 듯.

2009년 가을학기 결산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졸업 학기라서 신선놀음할 줄 알았더니, 웬걸, 특강 + 신종플루 크리로 인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던 학기였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남은 게 많은 학기이기도 했다.

HSS362 Music Theory and Musical Composition II

제목은 뭔가 길지만 실제론 그냥 작곡 수업. 변계원 교수님이 담당하셨다.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수강신청 추첨할 때 5개쯤 찍어둔 교양 중에서 이것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다행히도 가장 듣고 싶었던 수업이긴 했다. (사실 졸업요건 채우는 건 이 한 과목으로 모두 충족되고, 나머지는 그냥 더 듣고 싶어서 들은 거였다.) 음의 간격(interval) 계산하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자유곡 작곡에 이르는 과정을 한 학기로 압축하여, 중간고사 때까지는 화성학의 기초 부분을 다루고, 이후에는 이런저런 다양한 작곡 기법들에 대해 배웠다.

나는 피아노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정식으로 배웠고(모두 개인레슨/체르니50 들어가자마자 그만둠), 이후로도 혼자 취미삼아 계속 쳐온 데다 직접 채보하거나 작곡한 곡들도 있었기 때문에 악보를 읽고 쓰는 것에 아주 익숙하여 상대적인 난이도는 가장 낮았던 과목이다. 앞부분의 화성학 기초는 예전에 배웠던 걸 복습하여 단단히 다진다는 느낌으로 했고 뒷부분은 이미 감으로 알고 있던 것들에 이름을 붙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내가 모르거나 알아채지 못한 기법들도 있었는데, 문제는 그런 걸 배울 때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것이...-_-)

하지만 이런 선행학습(?)이 잘 되어 있는 것과 좋은 곡을 쓰는 것은 또 다른 문제. 첫 번째 과제는 바흐의 첼로 무반주 조곡 1번의 화성 구조를 그대로 쓰면서 창작 멜로디와 반주를 붙이는 것이었는데 화성 구조의 제약이 심하다보니(무엇보다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인 반복이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고생했다. 그 뒤로 나온 과제는 쇤베르크 등 20세기 초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사용했던 12음계, 직접적인 멜로디 구성보다는 배경음과 분위기 조성용으로 많이 쓰이는 unsynchronized isomelody/isorythm을 활용하는 것 등이 있었다. 특히 12음계(무조음)는 우리가 듣는 음악 덕분에 우리 귀에 매우 익숙한 일반적인 화성 구조를 완전히 버리고 한 옥타브에 속하는 12개 음을 모두 똑같은 중요도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사상적으로는 매우 혁명적이었지만 그 소리까지는 아직 내 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작곡하는 나 자신 스스로도 매우 괴로웠다.;;

이 수업은 타지키스탄(Tajikistan)에서 유학온 친구이자 SPARCS 후배인 '달래'(원래 이름은 Daler Karimov이지만 편하게 이렇게 부른다. 물론 남자다 ㅋㅋ)와 함께 들었는데 내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이 친구가 지금은 전산 전공에 BEP 부전공을 하고 있지만, 고향에서는 원래 음악 전문 학교를 다녀서--구소련과 같은 공산정권 하에서 과학·수학이나 예술·체육 쪽 특기생들을 국가적으로 키우는 정책의 영향이 남아있었던 듯--이미 자기가 작곡한 곡도 몇 곡 있고 피아노도 꽤 잘 치는 편이다. 러시아어·타지키스탄어·영어·한국어·아랍어까지 구사하는 데다 태권도와 피아노도 수준급이고 생긴 것까지 잘생겨서(...) 완전 엄친아 같은 녀석으로, 나중에 고향에서 대통령 하고 싶다는 꿈이 있을 정도다. 아무튼 그전엔 인사만 하고 지내다가 이 수업을 통해 내가 작곡한 곡과 이 친구가 작곡한 곡을 서로 연주해주면서 기말고사 때 제출할 곡을 어떻게 쓸까 함께 고민하는 등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친구의 자작곡들은 자기네 전통 민요의 리듬과 화음이 살아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한국 올 때 악보를 거의 안 가져와서 아쉽다고 했다)

나는 기말곡으로 중학교 3학년 때 작곡한 Memories라는 피아노 독주곡을 메인 테마로 삼아 오케스트라(플룻, 바이올린 앙상블, 첼로 앙상블 추가)로 확장하고 수업 시간에 배운 몇 가지 기법들을 추가로 응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달래도 자기가 작곡했던 곡을 바탕으로 작업하였는데 전체적으론 괜찮았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 특유의 대담한 리듬과 중독성 있는 화성이 덜 느껴져서 살짝 아쉽기도 했다. 수업 초반에 교수님이 수강생이 너무 많자 잔뜩 겁을 주면서 다들 드랍시킨 덕분인지(?) 기말곡들은 다들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그 중에 표절을 의심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명백히 표절이 아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곡은 어느 00학번 전산과 분이 애니메이션 WALL·E를 보고 동영상과 맞추어 만든 Hold My Hand라는 곡이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멜로디와 반주이면서도 서글픈 느낌을 멜로디와 음색으로 잘 표현해냈고, 동영상과 함께 들어도 혹은 따로 음악만 들어도 잘 어울리고 언제나 공감가는 곡이다.

CS492 Probablistic Robotics

학부 지도교수님이신 김기응 교수님의 특강으로, 한 마디로 요약하면 확률이론의 기초 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Bayes' Rule을 바탕으로 Markov assumption 하에서 로봇이 세상을 인식하고 세상에 반응하는 방법에 대해 다룬 수업이다.

과제는 Microsoft Robotics Developer Studio를 이용해서 C# 언어로 수업 시간에 배운 몇 가지 주요 알고리즘들을 실제로 구현해보는 것들이었다. Occupancy grid mapping, Monte-carlo Localization, Grid-based SLAM까지 총 3가지가 나왔는데 두번째 과제를 하다가 신종플루에 걸리는 바람에 쭈우우욱 밀려서 마지막 과제는 결국 손도 못대고 말았다. orz

Robotics Lab 1: Occupancy Grid Mapping

첫번째 과제 완성된 장면.

말하자면 이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 국방성에서 스탠포드, CMU, MIT 등 유수의 대학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DARPA Grand Challenge와 같은 자율적인 로봇 시스템을 구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비슷한 대회가 준비 중이며 우리 학교에서도 기계과 등과 협력하여 나갈 예정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링크한 글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엄청난 규모의 컴퓨터 시스템을 자동차에 얹고 있는데, 이 수업을 들으니 그 이유를 알 만했다. 확률통계에 기반해 실제 세상을 모델링하려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 처리가 필요하다. 특히 SLAM과 같은 알고리즘을 제대로 돌리려면...-_-)

다른 것보다도 이 수업을 들으면서 좋았던 점은 선배들이 '전산과라면 확률통계하고 선형대수는 꼭 들어야지~'했던 말을 졸업할 때까지 전혀 실감할 수 없었는데 이 수업을 통해 인공지능 분야에서 확률통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확실하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복잡한 수식이 난무하는 강의자료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기는 하지만 그 근본은 아주 간단한 원리에 기반하고 있음을, 그것을 이용해서 실제 세상을 모델링하는 방법을 맛볼 수 있었다.

종강할 때 내가 교수님한테 하나 건의했던 건, 학부 2~3학년 수준에서 들을 수 있는 전공선택 정도로 확률통계를 전산학에서 어떻게 응용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과목을 개설해달라는 것이었다. 선형대수와 확률통계가 중요하다고 강조는 하지만 지금의 학부 전산학 커리큘럼에서는 그 참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졸업할 때 쯤 되면 다 까먹어버린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올해부터는 전산학도를 위한 수학 이런 과목을 만든다고는 하는데, 이러한 건의가 잘 받아들여져서 전산학과 학생들이 수학이 모자라다는 평가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CS492 Distributed Algorithms & Systems

위의 과목이 확률통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면 이 과목은 선형대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고 우길(?) 수 있을 것이다. ㅋㅋ 네트워크 분야를 연구하시지만 안식년에 미국의 ACCI 커리큘럼을 보고 오신 문수복 교수님이 우리학교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개설한 과목이다. 수업 내용은 분산 시스템은 어떤 특징이 있고 이것을 학문적으로는 어떻게 정의하고 표현하는지, 관련한 알고리즘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고, 과제는 Hadoop MapReduce 프레임워크를 이용해 PageRank를 실제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기말 프로젝트는 Hadoop을 이용해서, 혹은 Hadoop을 고쳐서(...)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해서 의미있는 결과를 얻어내거나, 대용량 처리를 도와주는 무언가를 제안하여 직접 구현하는 것이었다. 내가 속한 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3D 게임용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그래픽카드의 핵심부품인 GPU를 분산처리와 결합시켜보자는 것이 아이디어였다. 3D 오브젝트들과 텍스처 등을 실제 2D 모니터 화면에 뿌려주는 과정은 엄청난 양의 행렬 연산을 필요로 하는데 GPU는 바로 여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런데, 행렬 연산은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고(앞의 PageRank도 마찬가지) 이것을 임의의 대용량 크기로 확장해서 분산처리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scalability가 뛰어난 Hadoop으로 행렬 곱셈을 분산처리하되 각 노드에 GPU를 꽂아 개별 노드의 연산을 가속시켜보자는 것이다.

원래는 행렬곱셈의 분산처리 과정은 직접 개발하지 않고 이미 나와 있는 Apache Hama 프로젝트(NHN에서 일하는 어떤 분이 오픈소스로 만든 것이다)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HBase를 이용하기 때문에 성능이 매우 떨어지고 우리가 원하는 규모로 실험해볼 수가 없어서 결국 직접 짜게 되었다. (이것 때문에 날린 시간을 생각하면...ㅠ_ㅠ) 다행히 실험결과 GPU를 이용해 가속 처리를 하였을 때 확연한 성능 향상이 있음이 입증되었다. 인턴으로 졸업연구 대체해버리긴 했지만 약간만 시간을 더 들여 다듬었으면 이걸로 졸업논문 써도 될 뻔했다.;; (실험의 재연 여부를 확실히 하고 통계 처리를 보강한다든지, 과제로 구현했던 PageRank를 이 시스템 기반으로 다시 돌리면 어떤 성능 향상이 있는지 조사한다든지 등등)

다만 현재 대용량 처리를 MapReduce 방식으로 구현할 때 대부분 가상화 기술 기반의 클라우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GPU를 꽂아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하지만 계산 전용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경우라면 굳이 가상화 기술을 사용할 이유 또한 없기 때문에 각 컴퓨터마다 20만원대 그래픽카드만 한장씩 꽂아주어도 엄청난 성능 향상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가격대 성능비로는 최강에 가깝다. 사실 진정한 최강은 CELL 프로세서를 탑재한 SONY의 Play Station 3로, 미 국방성에서도 수십~수백대를 대량 구입하여 계산용으로 활용한다. -_-)

NexR에서의 인턴 경험과 더불어 이 수업을 통해 Hadoop cluster를 운영하고 빡세게 MapReduce 프로그래밍을 해본 것은 지금 뜨고 있는 최신 기술을 습득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수업이었다.

CS489 컴퓨터 윤리와 사회 문제

이 과목은 이제 연구보다는 사회와 정치(?)에 좀더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 김진형 교수님이 매년 계속 열어오고 계시다. 전공이라기보다는 교양 같은 수업인데, 보는 관점에 따라선 그 어떤 전공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그런 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수업은 초반에는 교수님이 소개해주시다가 후반엔 학생 발표로만 이루어지는데, 전산학이라는 학문의 테두리를 벗어나 소프트웨어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이슈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우리는 이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 다룬다.

4월에 개정된 저작권법이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을 흡수하게 되면서 공정 이용에 대한 조항 때문에 교육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저작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게 된 점이라든지, 몇 년 전부터 꾸준하게 제기되어 온 ActiveX와 웹표준 문제, 한국-인도 CEPA(전략적 동반자 관계) 협정에 의한 인도의 고급 IT 인력 수입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 의료법에 의해 의료IT시장이 제약받고 있는 문제 등 아주 현실적인 것부터 게임 중독, 프라이버시 등 고전적인 문제와 위치기반서비스나 스마트그리드처럼 최근 기술의 흐름 등 일부러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챙겨보기 힘든 다양한 주제를 서로 토론하게 해주었다. 수강생이 많아 개개인의 열정적인 참여가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는 데 있어선 충분하지 않았나 한다.

나는 블로그와 RSS 구독, 미투데이·트위터 갈은 SNS를 사용하면서 온라인 인맥을 어느 정도 형성해놨기 때문에 몇 가지 주제를 제외하곤 사실 이미 대충 들어본 것들이었고 이런 식으로 각각에 대해 비판하거나 긍정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대부분 다른 학생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런 수업이 더욱 값진 것 같다.

Personal Insight

  • 웹 기술에 대한 담론이 웹표준화에서 모바일웹으로 급격하게 이동한 해였다. 특히 11월 말 출시된 아이폰이 그 기폭제 역할을 했고 2010년은 본격적인 각축전이 벌어지는 원년이 될 것이다.
    • 공공부문의 웹표준화는 이제 초기 장벽을 넘은 듯하다.
    • 모바일웹으로 인해 웹표준화와 접근성에 대한 압력은 줄어들지 않고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젠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제 손에 쥐어진 기계를 가지고 하는 일이 되었다)
    • 인터넷뱅킹은 보안에 대한 관의 지나친 통제 의지와 닫힌 생태계를 발판으로 하는 기업들 때문에 모바일에서도 여전히 어려울 것 같다.
  • Python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 대중음악의 다양성이 인정받았다. 내가 대중음악에 깊은 조예가 있거나 하진 않지만, 장기하 그룹이 열렬한 지지를 받은 것은 기억해둘 만한 일이다.
  • 소녀시대를 위시한 걸그룹들의 대약진. 관심 없는 나조차 알게 되어버리는 매스미디어의 세례.
  • 지구온난화의 (체감할 수 있는) 첫번째 경고: 2009년 겨울의 전북반구적 이례적 한파와 폭설.
  • TV 프로그램의 소비 방식 변화
    • TV를 생방송으로 챙겨볼 수 없는 생활 패턴에 컴퓨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은 20대는 더 이상 TV를 보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받아서 본다. 저작권 단속을 하기보다는 이것을 적절한 가격에 양성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eBook의 접근성 향상. 아이폰 효과?
  • 텍스트큐브는 이제 블로그로서의 기능은 다 갖추었다. 내부 구조를 갈아엎는 것 말고 또 뭐가 남아있을까?
    • 아이폰을 시작으로 위치기반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다. 2008년부터 시작한 구글맵 프로젝트가 1년 넘게 지나서야 빛을 볼 듯.
  • 아이폰 앱 개발은 뭐가 되었든 일단 배워놓고 보자.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 한해를 총정리하면 학업과 인턴을 통해 많은 것을 남기고 성장할 수 있었다면, 2008년 말에 계약했던 책 집필 작업이 여전히 미완으로 남은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다. 기술적으로는 Python/Django와 Eclipse/Java/Hadoop이라는 큰 두 줄기의 기술을 성공적으로 익힌 한 해였다. 물론 언제나 공부할 여지는 남아있게 마련이지만. 또한 인간관계도 인턴과 파트타임이긴 하지만 나름 회사에서 반년 가량 일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선후배 등으로 새롭고 넓게 확장되었다는 것도 큰 수확이다.

앞으로는 여러 면에서 더욱 다양하고 극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학문적으로 전산을 다루는 방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2010년 한 해 또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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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 새내기 같은 반이었다가 실내악 앙상블을 들으며 피아노 4-hands 곡을 함께 연주하기도 했었던 진혁이 형과 함께 장영주(사라 장)의 바이올린 리사이틀 공연을 보고왔다. 제대로 된 클래식 공연은 꽤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진혁이 형은 이런저런 일로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자로 서본 적도 있을 정도지만 난 오늘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은 브람스의 단악장 소나타와 바이올린 소나타 3번 d단조(Op.108), 테오파니디스의 판타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였다. 피아니스트로는 줄리어드 음대 시절 술친구였다는 앤드루 본 오이엔이 함께 하였다. 위의 곡들 중 앞의 둘을 첫번째 세션에, 뒤의 둘을 두번째 세션에 배치하였다. 공연을 보고 난 후 진혁이 형과 나의 공통된 평가는 브람스를 너무 얌전하게 갔다는 것. 나는 뭔가 표현이 덜 된다는 느낌을 받았고, 형은 터져줘야 할 곳에서 안 터져주고 너무 예쁘게(?) 연주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대신 후반부의 프랑크 소나타는 익숙한 듯 풍부하게 연주하였다는 평이 나왔다.

두번째 세션에서 판타지 곡이 끝나고 박수를 쳐야 하는데 피아니스트와 장영주가 그냥 바로 시작해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다들 프랑크 소나타의 첫 악장 끝난 것이 판타지 곡의 끝이라고 헷갈렸는지 이때 박수가 터지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나는 실내악 앙상블 들을 때 오케스트라 악장을 하던 경곽 18기 선배가 연습·연주하는 걸 한 학기 내내 들었던 덕분에 프랑크 소나타 3악장은 익숙했는데, 나중에 3악장 들어가고 나서야 '응? 언제부터 프랑크 소나타였지' 했을 정도였으니까...-_-;;;;

앵콜로 4곡 정도를 했는데, 여기에선 대중들에게 친숙한 클래식 곡들을 들려주었다. 사랑의 인사라든지, 비발디 사계 중 겨울 마지막 악장 같은 것들이었다. 이때는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기보다는 친숙하고 음악 좀 배웠다면 한번쯤 연주도 해봤을 법한 곡을 대가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연주하는지를 보여주었다는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특히 현을 아주 천천히 움직이면서도 현을 끝까지 사용하면서 가늘고 일정한 음을 내는 기술이 놀라웠다. 역시 엄청난 연습의 결과겠지.

요즘 피아노도 별로 못 치고 있어서 실력이 줄까봐 걱정될 정도인데, 프로급은 아니어도 적어도 (클래식 덕후가 아닌--) 남이 듣기에 적당히 들을 만큼은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나름의 레퍼토리를 갖춰 연습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슬슬 로보틱스 플젝과 시험공부를 시작해야겠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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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장기하의 1집 활동을 마무리하는 드라마콘서트를 보러갔다왔다. 무려 전석매진될만큼 인기있는 공연이었지만 그분이 미리미리 예매해둔 덕분에 편안하게 가서 볼 수 있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 포스터, 티켓 및 시디

공연 포스터, 티켓, 1집 음반

공연 시작이 7시였는데 명동에서 5시에 만나 저녁 먹고 남산예술센터(작년 이맘때쯤 대안언어축제 & P-CAMP 참가한답시고 지나가봤던 곳이라 위치는 잘 알고 있었음)로 가기로 했는데, 다음지도에서 추천해준 지하철 예상 소요 시간만 달랑 보고 갔다가 늦어버리는 바람에 저녁을 좀 허겁지겁먹어야했다.;; 어쨌든 주말 저녁 명동 거리의 살인적인 인파(...)를 뚩고 무사히 늦지 않게 공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쨌든 표를 받고 미미시스터즈 달력을 사면 나중에 도장 찍어준다는 말에 달력도 사고 막상 예습해가야 했던 나는 사실 장기하 음반도 없었던지라 급히(?) 사고(...) 어쩌구 한 다음 공연장에 들어갔다. 공연장은 규모가 아주 큰 편은 아니었는데, 원래 연극용으로 만들어진 거라 그렇다고 한다. 앞뒤 좌석의 높이차가 커서 어느 자리에서나 거의 시야 방해 없이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우리 자리는 왼편 입구를 따라 들어가 가운데블록의 중간 통로쪽이었다.

미미시스터즈 2010년 달력

미미시스터즈 2010년 달력

공연은 드라마콘서트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드라마나 연극적 요소가 중간중간 들어있긴 했지만(장기하와 똑같이 생긴 게으름뱅이는 누구였을까 궁금하다 ㅋㅋ) 이들이 강조되기 보다는 1집에 나온 곡들을 이용한 전체적인 스토리텔링과 영상미디어의 활용이 돋보였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장불륜드라마'의 전형적인 삼각관계 폭로 장면을 보여주다가 세번째쯤 보여주고 나서 미미시스터즈와 실제 장기하가 비슷한 장면을 연기하며 노래와 함께 풀어내기도 했다. 시작과 끝에선 어느 대형전자쇼핑몰의 카트에 담긴 시선이 어떤 TV 속의 남자한테 다가가 그 남자가 마치 객석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아주 코믹하게 사람들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게 만들면서 공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장치 역시 신선했다.

장기하의 노랫말들을 보면 정말 '별일 없이 산다'는 제목처럼 별볼일 없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가사나 시를 보면 뭔가 어떤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는 않을지 유추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겨냥하여 자꾸 음미하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거기에 장기하 특유의 목소리 색깔과 그냥 팝도 아니고 락이나 메탈도 아니고 발라드도 아닌, 굳이 말하자면 현대적 folk라고 말할 수 있는 독특한 음악 스타일이 어우러져 뭔가 새로운 것을 목말라하던 사람들의 요구를 적절히 채워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데뷔 후 갑작스런 인기몰이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을 장기하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컴백하게 될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또한 사람들이 어째서 그렇게 갑자기 장기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 근원엔 무엇이 깔려있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미미시스터즈가 약방의 감초처럼 받쳐주듯, 장기하의 매력 또한 쭈욱 이어져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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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미투데이와 트위터에 실컷 얘기해놔서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신종플루에 걸렸다가 현재 회복되고 자택격리가 풀려 학교로 돌아온 상태다. 발병은 지난 주 토요일 오후였고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복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요일 오전이었으며, 확진검사 결과가 나온 건 그로부터 한참 뒤인 엊그제 금요일이었다. 내 생각에 신종플루에 걸린 가장 큰 원인은 봄학기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쉬지 않고 강행군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이전 포스팅의 바탕이 된 PageRank 프로젝트를 하면서 밤을 많이 새면서 신체 리듬이 깨진 게 영향을 준 듯하다.

어디서 감염되었는지는 대략 예상하건대 학교 내 감염 or 금요일 서울 강남 쪽으로 외출했을 때 만원 지하철 탄 것 or 토요일 서울 신촌 외출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신종플루의 잠복기가 하루에서 일주일 정도라고 하는데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으므로 금요일에 감염되어 다음날 발병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주변에 나 말고도 스팍스 동아리에만 확진 환자가 3명 이상 존재하고 집에서도 부모님이 주변에 아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니 사람마다 증상이 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같은 경우는 목이 살짝 간질간질하다가 나는 잔기침이 초반에 살짝 있었고 거의 열만 났는데 병원에서 측정했을 때 열은 38도로 기록되었다. 영양수액을 맞고 주사로 약을 투입한 후 감기약과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복용하면서부터는 감기약 약발이 받는 동안은 열이 어느 정도 내리다가 약발이 떨어지면 다음 복용 전까지는 계속 열이 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타미플루 자체는 항바이러스제라서 증세 자체와는 별 관련이 없다) 병원 약 먹는 동안은 기침이나 콧물 등 일반적인 감기 증세 자체가 거의 없었다. 어렸을 때 몇 번 독감 걸려본 경험에 의하면 독감보다 강도는 훨씬 약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온몸에 열이 상당한 정도로 지속되었기 때문인지 에너지 소모가 상당해서 부모님이 얼굴 살 빠졌다고 좋아하실(?) 정도였다; ㅋㅋ

나는 웬만해선 감기 걸려도 입맛이 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타미플루의 영향인지 이번에는 입맛이 떨어져서 좀 고생했다. 특히 타미플루 설명서에 '음식물 섭취와 관계 없이 복용 가능하다'고 되어 있어서 빈속에 먹었다가 다음날 속이 메스꺼워서 죽는 줄 알았다;; 보통 건강한 성인의 경우 타미플루에 의한 영향은 복용 하루 정도 지난 후에 나타나는 것 같다. 인터넷에 보면 부작용이 심한 약이라고 경계하는 글들이 꽤 있는데 일반적인 경우는 큰 문제 없을 것 같고, 그 부작용보다 신종플루든 독감이든 빨리 낫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며칠 동안 집에서만 계속 지내다보니 공기가 답답했던 것(어머니가 환기를 자주 시키는 편임에도 불구하고)과 주로 누워있다보니 오히려 나중에는 허리가 아팠다는 점이다.

우리 집에서는 옛날에 간호사 근무 경험을 가진 막내이모의 비법(?)으로 감기에 걸리면 타이레놀과 쌍화탕을 함께 먹는데, 일단 이 방법으로도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처음 증세가 나타난 토요일에도 이 방법으로 버텼고, 타이플루 복용이 끝난 다음날인 금요일에 잠시 감기 기운이 돌아서 뜨끈한 물로 샤워하고 이렇게 약을 먹은 후 잤더니 말끔히 회복되었다. 토요일에는 일부러 아버지와 함께 바깥 바람을 쐬러 시화호 상태습지공원에 갔다가 소래포구 어시장 구경을 했다. 오히려 그랬더니 집에만 있는 것보다 더 기운차게 회복된 것 같은데, 주변 감염을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중간중간 맑은 공기를 쐬러 외출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문제는 이렇게 집에서 회복하는 동안 확률로보틱스 프로젝트 1개를 째고 작곡과제 1개를 째고 컴윤리 과제 1개를 째고 일주일치 수업을 몽땅 쨌다는 것. 수업에 빠진 거야 공결처리해준다지만 말이다.;; (다행히 이번 주 동안 새로 나온 과제는 없어보이는데... 잘 확인해봐야...으음-_-) 분산처리특강은 다행히 하루 휴강했기 때문에 진도 따라가는 건 별 문제 없을 것 같으나 확률로보틱스가 살짝 안드로메다로 가있을 것 같다. 작곡수업은 앞뒤 진도 의존성이 별로 없는 개별 토픽들을 다루고 있어서 수업자료만 보고 혼자 공부하면 별 문제 없을 것 같고. 회사에다가는 이메일로 알려서 그냥 일주일을 통째로 쉬어버렸다.

학교에 알린 것은 월요일 오전이었는데 포탈에 공지 올라온 것을 보니 건강관리실을 주말에도 운영하고 있어서 일요일에 바로 연락해도 되었을 것이다. 공결 처리 및 의료상조회에 의한 병원비 보전 등을 처리하기 위해 처방전 또는 약 포장지(특히 타미플루) 및 영수증 등을 나중에 제출하라고 했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우리학교 특성상 원래 의심환자만 발생해도 룸메이트까지 몽땅 자택격리시켜버리는데 현재 내 룸메인 맆군의 경우는 ACM ICPC 서울대회 출전 관계로 내 발병 3일 전부터 아예 서울로 올라가버려 나와의 접촉이 없었기 때문에 격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수업에 빠지는 경우가 많이 늘어서인지 오늘부터 룸메이트는 마스크 착용 등의 감염 예방 수칙만 지키는 것으로 조건이 완화되었다.

지금은 신종플루 확산이 진정세에 접어든 것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는데(뉴스에는 북반구 몇몇 지역에서 정점으로 추측된다고는 하더만), 의심증세가 발생하면 주말인 경우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을 아침 일찍 찾아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 경우 수지삼성병원을 이용했는데, 근처 약국의 타미플루 비축분과 확진검사 키트가 준비된 수량이 많지 않아서, 내 다음 다음 순서까지만 제대로 진료받고 그 뒤로는 다음날 다시 오라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평일에는 아마 매일 또는 며칠 간격으로 계속 보충할테니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한다. 의사의 처방은 감기약과 타미플루, 체력이 떨어진 경우를 위한 영양수액(이건 보험처리가 안 됨)과 주사약이었고 고기 등 단백질 섭취를 많이 하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뜻하지 않은 일주일 간의 가을 방학이 끝났다. 주변에서는 '아, 차라리 나도 신종플루 걸려서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리던데, 그래도 아픈 건 괴롭다. -_-; 특히 이번 신종플루는 (고위험군 아닌 건강한 사람의 경우) 증세 자체보다도 체력 소모가 많은 것 같다.

한 가지, 신종플루 덕분에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은 오히려 좋았다. 물론 가족들에게 옮기게 되면 안 좋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까지 아무 영향 없고 물컵과 수건 등을 따로 사용한 덕분인지 잠깐 발열증세가 있었던 형도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되었다. 아버지와 형과 함께 스트레칭하고 신체를 이용한 놀이(딱히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다리 서로 걸고 발목으로 씨름하여 넘어뜨리기라든지 등등)도 오랜만에 하면서 온가족이 함께 웃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참 즐겁게 놀다가, 이렇게 같이 웃어본 게 얼마만이지- 하면서 신종플루라는 특수 상황을 통해서야 이런 시간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나서 살짝 서글퍼졌다.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은 카이스트가 대전에 있지만 않으면 집에서 통학했으면 좋겠다는 건데 학교 특성상 대전에 살아도 그건 좀 힘들 것 같고... 아무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안타깝다.

ps. 학교에 돌아와서 얘기를 들었는데, PageRank 프로젝트 후 수강생들 중에서 신종플루 관련으로 격리된 학생이 나 말고 2명이나 더 있단다. (그래서 휴강한 거라고...) 역시 그 프로젝트 빡세긴 빡셌던 듯.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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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써보는 근황 포스팅. (역시 시험기간이니까... ㅋㅋㅋ)

중간고사 & 학업

중간고사 시험은 금요일에 컴퓨터 윤리와 사회문제 하나밖에 없다. 60문제(!)쯤 낸다고 하시는데 PPT 빈칸 채우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살짝... 원래 오픈북이었다는데 이번엔 그런 얘기도 없다.

정작 알고리즘은 못 짜고 MS Robotics Developer Studio로 시뮬레이션 세팅하느라 일주일을 넘게 삽질했던 확률로보틱스 수업은 원래 중간고사가 있는데 안 보기로 했고(역시 특강의 위력), 분산처리특강은 프로젝트에 집중하라는 뜻에서 중간고사를 안 보고 있지만 역시 그런다고 프로젝트를 미리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_-; 작곡 수업은 일찌감치 중간고사 대체로 바흐의 Prelude 1 in C Major를 기본 화성 구조로 출발해 멜로디와 반주를 만들어 붙인 후 이를 다시 편곡해서 발표하는 식으로 현재는 쉬는 상태.

스팍스 관련

두 곳의 회사(한 곳은 아주 큰 곳, 한 곳은 작은 곳?)에서 상당히 빠방한 지원을 받게 되었다. 당분간 동아리 운영에 재정이나 기계 모자랄 걱정은 없을 듯. 후배들이 이런 좋은 환경에서 잘 해나가길 바랄 뿐이다. (제발 아라 디자인 시안하고 맞추는 작업 좀...ㅠㅠ)

대학로 연극

최근에 이런저런 일로 알게 된 분이 있는데, 그분이 연극을 보자고 하셔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뒷편에 있는 알과핵 소극장에서 쉬어매드니스라는 연극을 보았다. 연극 내용은 대충 미용실을 배경으로, 미용실의 2층에 사는 어떤 반쯤 미친 유명 피아니스트가 갑자기 살해되고 그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맞추는 것이다. 특히 관객이 직접 배우들과 대화하며 추리하고 관객의 투표로 범인이 선택되면 그에 맞게 스토리가 진행된다는 것이 특징. 전혀 엉뚱한 질문이 나올 수도 있고, 모든 경우를 다 고려해서 스토리를 진행해야 하니 조금만 어설퍼도 확 재미가 떨어질 수 있는데 배우들이 이를 매우 잘 처리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태어나서 연극은 처음 본 건데, 바로 앞에서 배우들이 과장된 몸짓과 표정은 물론 악을 쓰며 서로 소리치고 하는 모습을 보니까 당황(?)스럽기도 하고 연극 배우들 특유의 끼와 에너지 발산을 함께 흡수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분과 11월 말에는 장기하 공연을 보기로 했는데, 이것도 어떨지 기대된다.

유성구 도서관 봉사활동

사실 지금 나한테는 시험 하나 잘 보는 것보다 졸업요건을 채우는 게 급하므로, 시험이 하나밖에 없는 황금 시험기간을 맞이하여(...) 그간 회사 다니느라 못했던 봉사활동을 한꺼번에 몰아서 하고 있다;; 장소는 예전 룸메 녀석이 알려준 유성도서관. 주로 하는 일은 서가에 순서나 분류가 잘못 꽂혀있는 책들을 찾아 정리하는 것인데 사서 분들도 친절하시고 편안하게 해주셔서 중간중간 맘에 드는 책 있으면 뽑아서 막 말리다가 다시 일할 수도 있다.

그래서 본 책으로는 세벌식 자판을 개발한 공병우 박사님의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와 얼마 전 영화로 나왔었으나 평이 별로 안 좋아 원작이 궁금했던 '일본침몰', NHK에서 나온 다큐멘터리 책 시리즈를 번역한 것 중 현수교의 역사와 기술적 도전에 관한 것, NASA의 우주개발 역사에 관한 책, 폼페이를 발굴하는 과정과 폼페이를 통해 본 고대 로마의 건축 및 생활사를 그린 책 등이다. 각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쫙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주요 부분들은 다 챙겨보았다.

서가를 정리하면서 많이 안타까웠던 것은, 십진분류법에 따라 책을 분류한 것은 좋았는데 컴퓨터·전산학 관련 책들을 위한 분류가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000 번호의 '총류'로 분류되어 있고, 이상하게도 데이터구조론과 데이터베이스론이라는 보기에도 지루하게 생긴(...) 두꺼운 책 2권만 전기공학 쪽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기술·공학과 자연과학의 분류가 따로 되어 있는데 전산학에 관한 것과 컴퓨터공학에 관한 것을 잘 나누었으면 좋겠다. 십진분류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분류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한 가지 생각해볼만한 건, 컴퓨터 상의 정보는 카테고리뿐만 아니라 태그를 붙여서 다중 카테고리 형식으로 관리할 수 있지만 도서관의 책은 물리적으로 한 지점에만 존재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단일 카테고리만 가능하다는 것. (물론 전자 검색은 태그 방식으로 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물리적 제약 하에서 날로 다양해지는 책들의 내용을 어떻게 잘 분류해낼 것인가도 상당히 골치아픈 문제일 것 같다. (간혹 '인터넷 아트'라는 책이 건강정보 쪽에 분류되어있다든지 하는 실수 정도가 아니라...ㅋㅋ)

마무리...

그래서 결론은 그 예전 룸메 녀석과 디스트릭트9이라는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 내일 볼까 했으나 시간이 안 된다고 해서 모레나 주말로 미루어질 듯. 슬슬 프로젝트들을 시작해야 할 텐데...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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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중에 수업을 당당히 째고(...) 간 제주도에서의 무려 4박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점심 때쯤 학교에 도착했다. (실제로 활용한 시간은 3일이지만 앞뒤로 한룻밤씩 더 묵었으므로 4박5일)

안 그래도 비싼 등록비와 숙박비를 고려하여 저가항공인 제주항공을 이용했는데(왕복해서 유류세 등 모두 포함 9만원도 안 됨), 프로펠러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살짝 불안해보이긴 했지만 실제로 타보니 위험한 느낌은 별로 없었다. 제주공항에 내릴 때 바람이 세서 그런지 잠깐 기우뚱(;;)했던 것 빼고; 저가항공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음료수 나눠주는 종이컵 아래에 스티커를 랜덤하게 붙여놨다가 그걸로 관광할인권을 주는 이벤트라든지 막대풍선으로 인형 만들어주는 서비스처럼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도입해서 승객들의 호감을 사는 건 좋았다.

Lift Asia 09 (by 아침놀)

Lift 창립자의 기조 연설

Lift 컨퍼런스 자체는 Lift가 추구하는 방향대로 즐겁게 볼 수 있었다. Serious Fun이라는 주제와 걸맞게, 진지하게 재미있는(?) 여러 innovation들을 살펴보는 자리였다. 특히 내가 기존에 갔던 모임이나 컨퍼런스들은 정말 IT 개발자들만의 자리였다면, Lift는 예술 분야의 사람들도 함께 참여하였기 때문에 훨씬 많은 자극을 받았고 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던 것 같다.

Lift Asia 2009 - 이다도시, Ida Daussy (by Jinho.Jung)

이다도시의 에너지 불어넣기 (사진: 정진호)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아무래도 가장 집중도가 높았던 첫번째 세션의 발표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송호준씨가 진행하는 Open Source Satellite Initiative 프로젝트가 인상깊었다. 특히 하얏트 호텔에서의 야외 만찬에서 그분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진행하여 실제로 결과를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음으로써, 그런 사람과 만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에너지 자극을 받을 수 있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한 에너지를 주는 사람으로 또 한 명을 꼽으라면 ice-breaking 역할을 했던 이다도시(Ida Daussy) 또한 어색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풀어주는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Lift Asia 2009 - Hojun Song , Open Source Satellite Initiative. (by Jinho.Jung)

송호준님의 발표 장면 (사진: 정진호)

다만 갑자기 다음 주에 MapReduce 과제를 내야겠다고 하신 문수복 교수님 덕분에 노트북으로 CCI:U Open Course Labs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느라 몇몇 세션은 자세히 못 들어서 좀 아쉽기도 했다. ㅠㅠ 어쨌든 기억에 남는 발표로는, 진정한 개인화 맞춤 생산 시대의 도래를 실감케하는 사용자의 소망과 제품 생산자를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인 CUUSOO를 창립한 Kohei Nishiyama와 나비 아트 센터의 최두은씨의 발표, 도시 공간에 설치된 CCTV들의 신호를 가로채어(!) 드라마를 촬영해 관찰자·감시자의 관점을 결합한 Surveillance-Drama를 찍는 조성진(닉네임 양아치-_-)씨의 발표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특히 조성진씨 발표에서는 Lift가 열리는 ICC의 CCTV를 실제로 이용하여 1층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와 그 앞의 카페에서 가상 총격전을 벌이는 상황을 연출하여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Lift Asia 2009 - Dinner at HYATT Hotel Jeju (by Jinho.Jung)

하얏트 호텔에서의 야외 만찬 (사진: 정진호)

첫째날 저녁 때의 하얏트 호텔 만찬에서는 시원한 제주도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어떤 분은 별로 맛없었다고도 트윗하셨던데 그럼 그분은 평소에 도대체 어떤 음식을 드시고 사는 건지...-_-) 저녁 먹고 돌아다니다가 송호준씨와 만나서 재미나게 이야기하기도 했고, 카이스트 90학번 선배를 만나기도 했다.

Lift Asia 2009 Day 2 - 20 Years of Korean Internet (by Jinho.Jung)

한국 인터넷 20년 이야기 (사진: 정진호)

컨퍼런스의 하이라이트로, 한국 인터넷 20주년을 맞아 Daum 이재웅 설립자, NCSoft 황순현 상무, Cyworld 이동형 공동창립자, Neowiz 허진호 CEO 등이 나와 패널 토론을 벌였는데 막상 토론보다는 지난 역사 이야기를 하는 정도에서 그친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다음이 원래 웹에어전시로 시작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은 흥미로웠다)

둘째날 발표 중에서는 최승준님과 나부군(김경수)님이 준비한 SMS 기반 네트워킹이 가장 재미있었다. 10분 동안 자기에 대한 키워드를 특정 번호에 문자로 보내고, 그 다음부터 그 번호로 자기가 보내는 문자는 자신의 키워드와 같은 키워드를 가진 사람들에게 모두 전송되는 형태다. 세부 사항은 좀 다듬을 필요가 있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나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면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있을 때 소모임들의 창발을 손쉽게 이끌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Lift Asia 2009 Day 2 - Value@Lift (by Jinho.Jung)

SMS 키워드 네트워킹하는 장면 (사진: 정진호)

그 외에 오픈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최승준님의 '교육에서의 애자일 방법론 활용' 발표도 인상깊게 들었다. 유치원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애자일에서 흔히 사용하는 practice들을 활용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었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질의응답에서는 나를 포함해 주로 기존 조직에 애자일을 도입하려고 할 때 부딪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하는 내용이 나왔는데 결론은 절대적인 정답은 없고 그때그때 조직과 사람들의 chemistry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Lift Asia 2009 - Jason Wishnow, TED Movie Director (by Jinho.Jung)

TED 영상감독 Jason Wishinow의 발표 (사진: 정진호)

TED Talks를 처음 만든 Jason Wishhow의 발표도 의미가 있었다. 회사일 덕분에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기술적인 한계로 영상을 공유하기 어려웠던 80년대 중반부터 이미 그러한 강연들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녹화해놓았던 노하우가 Youtube와 같은 전세계를 대상으로하는 영상미디어 전송이 가능해지면서 여러 나라의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을 보았을 때 역시 준비된 자는 다르구나 하는 걸 느꼈다. 이 사람과는 다음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만나 TED 홈페이지의 개선·한국에서도 열었음 좋겠다는 건의와 함께 명함 교환도 하였다. 철이는 이번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된 이유가 '앞으로 뭐해먹고 살지 고민하고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더니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수익 모델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가장 큰 특징은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나 미투데이를 통해 생중계를 했다는 점이다. 작년에 왔던 분들의 말에 의하면 보통 블로그를 적는 사람이 많았다며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 특히 나는 같이 갔던 철이가 휴식시간 등 중간중간 나오는 배경음악이 중독성 있다고 한 얘기를 트위터에 올려 Lift 창립자인 Luarent Haug가 그걸 보고 공식블로그에 글을 올려주기도 하였을만큼 실시간 소통의 채널로 마이크로블로깅의 위력은 대단했다.

도착한 날 밤과 첫째날 밤은 풍림리조트에서 묵었고, 둘째날 저녁 때 윤석찬님을 만나 다음 GMC 바로 옆에 붙어있는 숙소인 탐라무문에 묵게 되었다. 신정규님과 함께 기어이 텍스트큐브 1.8 에디터 리팩터링을 통해 Xquared를 붙이는 작업을 완료하고 별빛을 보며 커밋하는 고생(?)을 하기도 했다. (제주시와 좀 떨어진 곳이라, 별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천체관측 동아리를 하셨다는 정규님 덕분에 플레이아데스 성단까지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윤석찬님이 직접 다음 GMC 이곳저곳을 소개시켜주셨는데, 전에도 GMC가 좋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정말 실제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Daum GMC 견학 (by 아침놀)

그 유명한 '노트북하는 돌하르방'과 함께

철이가 승마를 해보고 싶다고 하여 제주도 남동쪽의 표선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중간의 고원 지대에 들러 승마를 해보았다. 말이 걷는 속도에 따라 발 3개를 붙이고 가는 것과 발 2개만 붙이고 가는 것의 패턴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등자에 발을 걸치고 적당히 리듬에 맞춰 몸을 살짝살짝 퉁겨주어야 아프지 않게(...) 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말 타면 살 절대 안 찐다는 가이드 아저씨 말처럼 20~30분밖에 안 탔음에도 상당히 몸이 뻐근했다. 말 타는 코스가 고원 지대라 한라산과 함께 제주도 북동쪽의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오름 너머로는 풍력발전단지가 보였다.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좀 아쉽다.)

표선해수욕장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신발벗고 영말벗고 들어가 모래사장과 바닷물에 발을 담궜다. 사람이 거의 없어서인지 아주 깨끗해서 특히 바닷물이 빠진 모래에 아주 작은 털게들이 바글바글대고--걸어가다 몇 마리 밟았을지도 모르겠다--도요새까지 있을 정도였다. 정말 살아있는 바다를 보는 느낌이랄까. 다만 바람이 엄청 세서 바닷물이 작은 물방울로 흩날려 나중에 안경을 보니 하얀 가루가 잔뜩 붙어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마도 소금기일 듯.) 근처에서 거하게 회를 먹고(...) 다시 제주시로 돌아와 저녁 늦게까지 카페에 앉아 놀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표선해수욕장 (by 아침놀)

야트막하게 남아있는 바닷물에 담근 내 발

여름에 휴가 못 간 대신 간 의미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주도의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또한 심신을 충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윤석찬님 말로는 다음에서 석사병특도 가능하다는데 나중에 아예 제주도에서 병특을 하면 어떨까 싶을만큼 맘에 들었다. 또 Lift 컨퍼런스에 갈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혁신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영감과 자극을 받아 세상을 좀더 재미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도록 계속 발전해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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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여유있게 준비한다고 하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화장실 신호(...) 때문에 다소 헐레벌떡 뛰어가야 했지만 어쨌든 면접은 무사히 보았다. 작년까지는 방 3개만 돌면 되었는데 올해부터 갑자기 방이 6개로 늘어나 압박이 좀 심하였다.;; 각 방마다 3~4명씩 지원자를 배정해놓고 한 방 끝나고 나오면 다음 방으로 릴레이처럼 쭉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나는 4번방에서 시작했고, 아래는 그 순서대로 적어본 것이다.

오트프리트 교수님이 안 계셨기 때문인지 영어로 자기소개하거나 질의응답하는 곳은 하나도 없었고, 대부분 1~2분 내외의 간단한 자기소개만 요구하였다. 자대생이라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주로 자기소개서에 있던 내용을 위주로 물어보셨고, NCSoft Winter of Code 참여한 것에 대해 물어보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4번방 : 문수복 교수님, 박종철 교수님, 신인식 교수님

처음이라 가장 긴장했지만 가장 널널(?)하게 면접본 방이었다. 문수복 교수님은 CCI:U 테스트베드 오픈행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미 나눠봤던 데다가 스팍스 지도교수님이기도 했고, 박종철 교수님은 지난 학기 자연언어처리특강 수업에서 이미 안면을 완전히 튼 상태였기 때문에 이 방은 사실상 인성면접이었다. (SE를 들었던 2007년 봄학기 성적이 왜 이렇게 낮은가라든지, KTH 과목에서 C를 받은 것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냐라든지 등등. 아 고놈의 SE..-_ -) 신인식 교수님은 특별히 기억나는 질문을 하진 않으셨던 것 같다.

5번방 : 좌경룡 교수님, 허재혁 교수님

간단히 자기소개하고 전공 질문이 이어졌다. parallel computation 쪽에 대한 것이었는데, 허재혁 교수님이 내가 hadoop 다뤄본 것에 대해서 알아보시곤 parallel computation 관련 질문을 하셨다. Parallel programming model 2가지(nothing-shared와 shared-memory)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셨는데, 긴장한 나머지 그냥 쉽게 대답하면 될 것을 MapReduce까지 섞는 바람에 좀 횡설수설했지만 그럭저럭 무난하게 끝난 듯.

6번방 : 최기선 교수님 (학과장)

여기는 학과장이신 최기선 교수님이 면접자들 얼굴 한번씩 보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추가된 방이라고 한다. 뭔가 물어보기보다는 그냥 얼굴 보고 이런 학생이 왔군~ 하는 분위기. '전산과를 앞으로 이러이러하게 변화시킬 건데 맘에 드나?' 이런 질문을 하셨다.

2번방 : 이윤준 교수님, 김명철 교수님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cloud computing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MPI와 MapReduce의 장단점 비교와 같은 비교적 예상했던 질문들이 나왔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말을 잘 정리해서 교수님이 원하는 답을 딱 하지 못해서(중간에 질문 의도를 잘못 이해했었다) 조금 버벅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cloud computing의 이슈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시길래 요즘 사장님이 한창 말씀하시던대로(...) 데이터 보안 문제라고 이야기하니까 갑자기 암호학 쪽으로 넘어가서(-_ -) private key와 public key를 이용한 암호화 통신에서 온라인 상태로 private key를 안전하게 전송하는 방법이 있겠느냐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orz; (수업 시간에 배운 적도 없고, 딱히 관심 분야도 아닌데...-_-) 나중에 면접 끝나고 찾아보니 디피헬만 어쩌구 하는 방법을 이용하면 된다고 하는데, 일단 여기서는 급하게라도 대답을 해야 했으므로 양자암호(...) 같은 걸로 레이어링을 한번 더 하면 어떨까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그래도 SSL의 동작 방식이나 인터넷 뱅킹의 공인인증서 체계와 같이 아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나마 좀 다행이다.

1번방 : 신성용 교수님, 정진완 교수님

가장 떨렸던 방인데 가장 싱겁게(?) 끝난 방. 사실 6번방 다음에 1번방부터 해야 하는데 여기에 대기자가 너무 밀려서 2번방에 먼저 들어갔다 나온 것이다. (가장 많을 때 대기자가 11명인가 그랬다.) 한 사람당 30~40분 가까이 면접이 진행되었는데--들리는 얘기로는 확률통계·미적분부터 DB와 알고리즘 등 엄청 빡세게 '모르겠어요'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물어봤다고 하고, 나오는 사람들마다 다들 표정이 상당히 안 좋았다--내 바로 앞 사람 차례에서 학과사무실 직원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말씀드리고 나오니까 갑자기 후딱후딱 끝나는 방이 되었다.;; 덕분에 질문은 정진완 교수님의 DB 정규화를 왜 하는가 하나만 나오고 신성용 교수님은 '그래, 앞으로 열심히 해' 말씀하시고 끝. -_-;;;

3번방 : 조성호 교수님, 맹승렬 교수님

조성호 교수님이 2분 동안 자기소개하라고 하셔서 조금 길게 했는데(다른 방은 다 1분이었음), 중간에 갑자기 말을 자르시더니(...) 'KTH 교환학생 성적 C를 B0 정도로 해도 포함시키면 평점 좀 내려가겠지?' 이러면서 살살 약올리시더니(?) 그동안 나왔던 질문 중에 가장 대답 못한 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위에서 나왔던 private key 통신 문제 설명드리고 어떻게 대답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니까 '이 학생은 그거 관심분야도 아닌 것 같은데 왜 물어보셨을까' 한 마디 하시고는 대충 넘어갔다. 맹승렬 교수님도 뭔가 질문하셨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비교적 무사히 끝난 것 같다. 다 좋은데 비오고 엄청 습한 상태에서 정장 입고 돌아다니까 더워 죽을 뻔했다.

ps. 혹시 기출문제 검색하다가 이 글을 발견하신 분들은, 어차피 개인별로 자기소개서나 경력 등에 따라 매우 상이한 질문을 하기 때문에, 이 내용을 단순히 기출문제로 참고하기보다는 관심분야에 따라 어느 정도 수준까지 질문이 나오겠구나 하는 참고 자료 정도로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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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블로그를 자주 보던 분들 중에 '이성'이라는 제목을 보고 理性을 생각했다면 이번엔 예상이 틀렸다. 이번 글의 주제는 異性--내가 남자인 고로 여성--이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잘 알겠지만, 아직까지 나는 그냥 알고 지내는 여성 친구들은 있었어도 '여자친구' 또는 '애인'이라 할 만한 사이의 관계를 가져본 적은 없다. 초등학교 때 한 번 정도 그렇게 가까이 지내본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그땐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건 생각조차 못할 때였으니 넘어가자.

한때는 내 자신의 생활이 너무 바쁜 나머지, '내가 과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내가 정말 내 시간을 사랑하는 만큼 써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졸업할 때가 되어 당장의 학업보다 나 자신에 대해 좀더 많은 생각을 할 기회가 있었고,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인간 관계만 경험해봤던 내가 더욱더 성숙하고 (평소 원하던 대로)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선 연애라는 복잡미묘한 인간관계를 경험해봐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뭐, 말은 거창하게 했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나도 연애 좀 해보고 싶다'... 정도랄까? ㅋㅋㅋ

어떤 사람들은(특히 가까운 선배님들) 연애 꼭 해봐야 한다면서, 가만히 기다린다고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고 강력히 역설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어 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대전의 카이스트, 그것도 전산과라는 환경에서 "평소에 자연스럽게" 이성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다녀야 하는 노력은 좀 필요할 것 같다. 다만 내가 평소에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라, 그런 스타일을 받아주거나 나를 중화시켜 줄 수 있는 여자를 만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연애할 때 '상대방을 고치려들면 안 된다'라든지, '데이트 코스는 남자가 미리 잘 계획을 짜두는 것이 좋다'라든지, '이야기의 주제보다 재밌었다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든지 하는 연애 수칙들은 많이 들어봤지만, 유경험자(...)들의 공통적인 최고의 답변은 직접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T_T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여자들한테 말 걸거나 함께 있는 것을 특별히 쑥스러워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인데, 뭐 이것도 내가 진짜 맘에 들어 고백하고 싶은 여성을 만난다면 어찌 될른지는...;

어디 좋은 여성분 없나요? ㅎㅎ

* * *

여기부턴 조금 다른 관점에서의 이성 이야기다.

아무래도 카이스트와 같은 환경에 있다보니, 남자들끼리만 식사 모임이나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안 사실은 내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너무?) 순수하게 살아왔다는 점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성 독자분들이 있다면 거슬리는 내용일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쓰기 위한 것이니 양해해주기 바란다.)

아니, 야동(야한 동영상)을 안 보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일이었나? ...

어떤 후배는 농담(?)으로 '그래서 형이 슈퍼개발자가 된 거에요'라고도 하던데, 나는 남자들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야동을 많이 보는 줄은 정말 몰랐다.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외부 사람들과의 모임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비슷하게 내가 별종이라는 반응이 나왔던 것 같다.

사람이기에, 동물이기에 가지는 당연한 성욕. 이거 나도 없을 리 없다. 사회적 관습과 문화적 틀 때문에 표현을 잘 안해온 것도 있지만, 내 개인 일상사나 다른 고민하기에도 충분히 바빠 별로 신경쓰지 않았을 뿐이다.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끌리는 마음이 생기고, 말 걸어본다거나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고, 뭐 좀더 나간다면(...) 육체적으로 교감해보고 싶고... 남자라면 누구나 당연한 것 아닐까? 물론 아름다움의 기준이나 다른 사람에게 이를 표현하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어떤 친구는 '꿀벅지'라는 말을 써가며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마도, 여성 쪽에서도 자기가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다면 비슷한 느낌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여자가 아니기에 남자와는 어떤 면에서 비슷하고 어떤 면에서 다르게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실제로 성관계를 갖기까지는 문화적 여건에 따라 굉장히 다른 과정을 거친다. 내가 스웨덴 있을 적에 일본 여학생과 연애 중이던 스웨덴 남학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상대 여자가 맘에 들면 그날밤 바로 섹스해보는 게 뭐가 이상하냐고 나한테 되려 반문하기도 했었다. "why not?"이란 말이 그때 각인되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좀더 서로를 잘 알게 된 다음에(혹은 신뢰하게 된 다음에) 성관계를 갖는 것 같고, 서양 문화권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물론 이건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언제나 예외는 있게 마련.) 하지만 사회적 맥락에서는 굉장히 다른 것 같으면서도 기본적으로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똑같은 면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생각도 해봤다. 성욕이라는 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자연스러운 욕구라면, 왜 여러 문화에서 이를 금기시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중가요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가 사랑이지만, 왜 섹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가? 2차 성징이 일어나는 사춘기에 왜 우리는 섹스나 성에 대해서 바로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가? 왜 성은 '음란'하게 다루어져야 하는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종류의 쾌락임과 동시에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모든 생물의 가장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능력을 왜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는가? 뭐 이에 대한 반론은 무지하게 많을 것임을 나도 잘 알지만, 성이라는 주제를 자꾸 음지로 묻어두는 진짜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굉장히 모범생 같은 삶을 살아왔다. 나는 정말 제대로 된 사회라면, 아무리 범생이(...)로 살았다고 해도 성에 대해서 알 건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본인 스스로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성교육이라는 걸 하면서 성기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해 가르쳐준 적은 있지만, 콘돔 사용법이나 실제 섹스를 어떤 과정을 거쳐 하게 되는지는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야동과 같은 비공식적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 죄악이라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성욕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에 하나라는 걸 인정한다면 오히려 그 실체를 적극적으로 알게 해야 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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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글이 다시 뜸해지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회사 생활 때문이다. 주5일제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기본 근무 시간인데 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일하면 저녁 때 다른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 대신 덕분에 아침·점심·저녁은 꼬박꼬박 챙겨먹게 되어서 오히려 살이 찌고 있다;;;

인턴이긴 하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정직원이나 다름없을 정도이다. 3개월의 인턴 기간 동안 웹어플리케이션을 하나 만들어 서비스화해야 하는데, 그동안 오픈소스 활동(특히 텍스트큐브)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함께 인턴을 하는 스팍스 선후배들도 동아리 활동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각종 서버 관리 노하우는 물론이고, 나같은 경우는 오픈소스 특성상 원격지에서 비동기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상대방이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추적하기 위한 커밋로그/이슈/문서 작성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어있는 편이다. 회사에서는 내가 상상했던 만큼 철저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데, 그렇기 때문에 이런 노하우를 회사에 적용해보는 좋은 시도이자 경험이 될 것 같다.

또한 회사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크다는 것도 흥미롭게 해주는 점이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경우도 기존 시스템과 연동하는 부분이나 전체 프로세스 진행 방식은 동료선배님1의 도움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전체 설계는 내가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인턴치고 회사의 프로덕트 하나를 이렇게 전체적으로 맡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는 경우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한재선 대표님의 모토 자체가 인턴들에게 커피나 타게 하고 복사 시키고 이런 건 자기 체질에 안 맞다며 우릴 뽑은 이유는 말 그대로 실무에 투입해서 회사도 도움이 되고 우리도 경험을 쌓게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 말대로 하고 있다.

도와주시는 그 선배님의 의견을 따라 애자일 방법론을 적용해보고 있는데--인사이트 출판사에서 나온 플래닝 포커 카드도 써봤다 ㅋㅋ--이것 또한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실제로 매일매일 개발작업별로 투입한 시간을 스스로 정리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사용자 스토리별 비용 추정 및 이터레이션·릴리즈 계획을 적용하고 있는데(물론 이제 막 시범용 1번 이터레이션이 끝났으므로 본격적인 건 이제부터다), 그동안 별다른 시간 계획 없이 되는대로 개발해왔던 것을 떠나 스스로의 개발 스타일을 좀더 정량화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특히 소프트웨어공학개론 수업을 들을 때 폭포수 모델로 하면서 IEEE830 스타일2의 요구사항 명세서를 작성했던 것에서 벗어나, 사용자 관점에서 기능들을 정리하고 usable한 기능을 적절한 크기까지 쪼개어 하나씩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나선형 주기를 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방법이 꼭 개발방법론의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웹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할 때는 단순 UI prototype이 아니라 직접 써봐가면서 많은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고 적용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적합한 방식인 것 같다. 기존의 폭포수 모델에선 모든 걸 설계를 완벽하게 한 다음 문서를 그대로 코드로 옮기는 방식이었는데, 여기서는 사용자 입장에서 보이는 기능 단위로 나누어 각 기능 하나하나를 완전하게(DB 모델부터 UI까지) 구현하기 때문에 중간에 아이디어가 추가되거나 변경되더라도 그 자체에 집중하기 좋다. (물론 그에 따른 개발기간 연장은 당연한 것이지만.) 다행히(?) 내 스스로 문서화를 잘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기 때문에 학교 수업에서 만들었던 것과 같은 정형화된 문서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인수인계할 수 있을 만큼은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텍스트큐브를 제외하고 내가 하는 모든 웹개발 프로젝트처럼 Python+Django 플랫폼을 이용할 것이기 때문에 그 기술로 상용제품을 만들어 검증해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사실 textcube.org 홈페이지도 django로 거의 완성해놓은 것이 있는데 python 개발자가 많지 않다보니 유지보수를 이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가슴아픈 경험이 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내가 인턴을 마치더라도 누군가 이어서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문서화와 python/django 기술 세미나도 할 생각이다.

험난한 산이 몇 개 남아있지만 그래도 이 프로젝트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한재선 대표님의 철학이나 회사 분위기가 잘 맞는 것 같아 비교적 순탄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돈은 둘째치고 뭔가 내 이름을 걸고 제대로 된 프로덕트를 하나 만들어낸다는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다.


  1. 군대 용어를 빌려서 '사수'라고도 표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우리회사 분위기는 매우 가족적이라서 그냥 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표준화된 소프트웨어 요구사항 시방서 형식이다. 처음부터 완전무결하게 설계하고 요구사항을 채워넣도록 강조하였기 때문에 최근에는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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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런 건 어렸을 때 과학에 관한 질문 하나 던지면서 잘 시작했던 건데, 요즘은 그 대상이 좀 바뀌었다. 미투데이에 계속 쓰려다가 블로그에 기록을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여기에 적어봤다.;

  • 발단 : 덕수궁 대한문 분향소의 강제 철거 뉴스.
  • 기본 전제 : 공식추모기간이 끝났으면 분향소는 철거하는 것이 맞다.
  • 그러나 강제철거했다는 것은 방법 상의 문제, 또한 자진철거 유도 및 공식 요청이 있었음에도 굳이 유지하려고 했다면 그것도 문제.
  • 조금 일반화해서 : 공공장소에 개인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차려져 있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 그냥 단순히 개인으로 보기 힘들고 국민적으로 추모 정서가 형성되어 있으니 시민들의 공공 공간을 조금 빌려쓰는 것은 괜찮다고 볼 수도 있음.
    • 그래도 공공 공간이니 반드시 공공의 목적으로만 써야 하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볼 수도 있음.
    • 분향소가 노무현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었어도 이렇게 처리했을까? (물론 어지간한 경우에는 이런 장소에 분향소가 차려질 일은 없겠지만.)
  •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광장'이라는 걸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문제하고도 연결되는 것 같다. 정작 이명박이 서울시장 시절 추진해 만들어놓은 광장들인데, 당시엔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고 지금은 무슨 목적으로 만든 거라고 생각할까? 이른바 광장 문화라는 이름까지 붙은 유럽권에서는 광장을 어떻게 활용할까?
  • 의도 변질의 문제
    • 분향소를 이명박 정권 퇴진 운동과 같은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단체나 정당이 있다면 문제겠지만, 그냥 몇몇 시민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 사람들이 어떤 단체나 정당 출신임을 일일이 검증해야 하나?
    • 모든 사람들의 행동과 정체를 일일이 감시하지 않는 사회에서, 공공성과 상황에 따른 행동의 적절함 여부 판단을 어떻게 해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할 수 있을까?
    • 이러한 모호함 때문에, 단지 '의도 변질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어떤 행위를 미리 차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무죄추정의 원칙?)
    • 의도 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차단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면, 가볍게 해석하면 그건 아직 우리가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가지지 못했다는 말이지만, 심각하게 해석하면 아직 우리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수준이 되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 스스로 무죄추정의 원칙과 같은 인권적 보호를 받을 자격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셈이 될지도? (너무 심한 비약인가?)
  • 단어 정의의 문제
    • '선동'이라는 행위를 나쁜 것으로 본다면, 그 기준은 어디까지인가? '선동'의 정의는 무엇인가?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지지자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홍보 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선동인가? 사람들 모인 곳에서 어떤 집단 행동을 유도하는 것만이 선동인가? 몇몇 언론의 왜곡 보도도 선동의 범주에 드는가?
    • 어찌됐건 우리나라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다. 다들 이 기본 전제에는 동의하겠지만, 정부·단체·개인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상황이 되면 여당이나 정권의 힘에 눌러지기 쉽다. 그냥 당연한 현상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할까?

...일단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