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005년이 밝았다. (비록 하루 늦은 1월 2일이긴 하지만)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지나간 경기과학고 생활을 뒤로 하고, 약 두달 동안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2월 19일부터는 본격적으로 KAIST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내 생애에 지난 KAIST 합격 발표 후 이처럼 여유로운 적이 없을 것이다. 사실 합격 후에는 각종 학교 프로젝트들을 맡는 바람에 그다지 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프로젝트라는 것의 효용성과 또 그 속에서 겪는 인간관계에 대해선 다시금 새로 배울 것들이 있었다.
과학전람회도 그랬고, 정보사사 논문 작성 때도, 학교 홈페이지 프로젝트 때도 그랬지만 역시 어떤 종류의 프로젝트든 간에 가장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팀원들간의 의사소통이다. 그것이 가장 대표적으로 실패했던 예가 성훈이와 진행했던 학교 홈페이지 프로젝트였다.
사실 어떻게 보면 성훈이가 일방적으로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먼저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학교 홈페이지 프로젝트에 있어서 의사소통이 안되어 문제가 생겼던 부분은 바로 Smarty 엔진의 사용이었다. Smarty 엔진은 php에 얹어서 돌아가는 template 엔진으로, 프로그래머가 만드는 php 코드와 디자이너가 만드는 템플릿(html과 smarty 언어로 된)을 분리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훈이의 의도는 이것을 사용해서 성훈이가 프로그래밍을 하고 내가 디자인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 의도 자체는 좋았으나 처음에 내가 template 엔진과 실제 php의 include 관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어쨌든 성훈이가 만드는 게시판과 회원관리 모듈 자체이 완성되고 나도 나름대로 HTML과 CSS 삽질, 플래시에 XML 등을 연동하여 사이트 디자인을 끝냈다. 이제 이것을 잘 합쳐서 업로드하고 테스트하기만 하면 되는데, 처음에 그냥 넘어갔던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내가 만든 디자인 템플릿과 성훈이가 의도하던 smarty 템플릿하고 차이가 너무 컸던 데다 smarty로는 어떤 게 구현이 가능한지 전혀 내가 모르는 상태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합치는 과정에서 계속 '충돌'이 발생해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것이다. 처음에 smarty라는 것에 대해 내가 좀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또 성훈이도 구체적으로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원래 정했던 기일에 프로젝트를 끝내지 못하고 겨울 방학으로 연장되었는데, 업친 데 덥친 격으로 학교 방화벽 설정 때문에 외부에서는 텔넷과 ftp를 사용할 수 없어 사실상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사태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학교 방화벽을 무작정 해제해 달랄 수도 없는 것이 보통 일주일에 최소 두세번은 외국에서 해킹 공격이 들어오는 데다 집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연결이 모두 유동 ip라는 문제가 있다)
겨울방학 때 성훈이하고 내가 학교에 남아 있는다면 또 모를까, 이제 학교에 갈 일은 졸업식 뿐인데 어떻게 될지 막막한 상태다. 일단 학교 홈페이지 프로젝트에 대해선 접어두어야 할 듯 하다. (담당 선생님께 연락만 취한 상태다)
1월 중순부터는 영어 공부도 시작하고 KAIST 신입생 독서 과제도 해야 하고 내 개인적으로도 바쁜 일들이 생길 텐데 어찌될 것인지는 두고봐야 할 것이다. 일단 기숙사 관리 프로젝트나 마무리해야겠다.
2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통해 굉장히 밀접한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과 친목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 또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었고, 또 2년간의 과학고 생활을 통해 과학 분야에 대해 좀더 깊이있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이 경곽 생활에서 얻은 것이다. 그리고 선후배 관계와 동기 관계를 통한 인맥 형성도 얻었다.
이제 2월부터 시작되는 KAIST 생활, 그간의 프로젝트들과 경곽 생활을 뒤로 하고 다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