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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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박 4일간의 꽃동네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KAIST 신입생 600명을 약 90명씩 7개조로 나누어 12월 27일부터 1월 말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약간의 간격을 두어 진행됩니다)

이번 꽃동네 봉사활동은 7일에 출발하여 오늘(10일) 오후에 돌아왔다. 갈때는 KAIST 태울관에 집합하여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단체 버스로 갔고 올 때는 사랑의 연수원 교육관 앞에 모여 KAIST와 서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 중 후자를 타고 양재역 - 1550번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갔던 아이들 중엔 그다지 '보람'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 같은 경우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3조였기 때문에 이전 조 아이들이 어디어디로 가는 게 덜 힘들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있어 몇몇 아이들은 미리 어디로 자원해야지 하고 결정한 경우도 있었는데, 교묘하게도(?) 수녀님이 교육관에 모였을 때 앉은 자리(대부분 아는 사람들끼리 가로로 같이 앉았음)대로 하지 않고 세로로 쭉 번호를 부르게 하여 마음대로 배정해 버렸다. 사실 나는 원래 희망의 집이 될 뻔 했는데, 나 대신 친구 재덕이가 번호를 불러야 할 차례에 번호를 불러(-_-) 천사의 집이 되었다.

천사의 집은 주로 미혼모에게 난 신생아부터 유아 단계의 아이들을 키우는 곳인데, 그곳에 같이 배정받은 4명의 친구들(인천과학고 김용후, 제주과학고 김대건, 서울과학고 김형선, 조용운 - 원래 다른 조였던 아이들도 있음)과 1층 관리실의 수녀님한테 갔더니 4층은 신생아, 2층은 유아들이 있고, 3층엔 16세부터 65세 미만의 다양한 연령층의 남자들(?)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1층 주방엔 2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알아서 의논해 결정하라는 말에 나는 중학교 때 주방을 했었으므로 다른 걸 하기로 했고 4층은 용후가 2층은 용운이가, 주방은 형선과 대건이가 맡았고 내가 3층이 되었다.

각자 배정받은 곳으로 흩어지고 3층에 홀로 딱 들어서니 웬 키큰 아이(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가 비틀거리며(장애임) 걸어오더니 나를 딱 잡고서 사무실(각 층별로 봉사자들이나 수녀님이 의무, 사무 등의 업무를 보는 방이 따로 있다)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이름은 아직도 모르는) 한 직원분(수사님?)의 생각보다 긴(?) 연설을 듣고(주 골자는 이 분들은 호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호적을 만들면 법적으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오히려 이 시설에 데리고 있을 수 없는데 그런 건 고쳐져야 한다면서 내가 KAIST에서 왔다고 하자 미래에 유명한 사람이 될 사람들이 그런 걸 고치게끔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오후 늦은 시간에 시작했기 때문에 그다지 할 일은 없었다. 보니 내 또래의 다른 봉사 학생들이 있어 이야기를 나눠보니 한 명은 나보다 1살이 많고 나머지 둘은 동갑이었다. 나이 많은 여학생은 이름이 미수라고 했는데 꽃동네에 여러 번 와서 경험이 많고 이곳 가족들도 잘 안다고 했고, 동갑인 여학생은 성이 라씨, 이름이 꽃님(-_-)이라고 했는데 4번 정도 여기로 왔다고 한다. (생긴 건 꽃님처럼 예쁘진 않지만 착한 사람인 듯..) 또 동갑인 남학생은 박두선이라고 했다. (이곳이 충북 음성이었는데 제천이나 충주 쪽에 사는 모양으로 꽃동네 셔틀버스를 타고 다니는 듯 했다) 라꽃님은 주로 '라꽃'이라고 불렸는데 처음에 통성명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나는 어디서(학교) 왔는지만 알려주어 결국 3일째 저녁 때까지 계속 날 '카이스트'라고 불렀다. -_-;;

첫번째로 생긴 할일은 밥을 먹이고 양치를 시켜 주는 것이었다. 난 전에 주방일만 해 봤고 실제 장애인들을 대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 버벅거렸지만 다행히 이곳에 계신 직원분들이 잘 알려주셨다. (준호는 자기가 '상식'이라고 이름붙인 한 수사님이 계속 잔소리만 하고 일을 알려주지 않아 고생했었다고 한다) 밥을 떠 먹이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일단 이분들이 장애인이다 보니 의사소통 자체가 잘 안 되는 점이 어려웠다. 보통은 먹어서 목으로 넘기고 나면 입을 벌려 또 넣어 달라고 하는데 어떤 분들은 그 행동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언제 입에다 숟가락을 갖다 대야 할지 알아채기 힘들었다. 그리고 입에 음식이 들어가더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질질 흘리는 경우가 많아 밑에 꼭 턱받침을 받쳐 놓고 해야 했다. 나는 비위가 강한 편이라 이런 게 더럽게 느껴지거나 하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끝나고 양치도 하는데 먹이는 것 보다 더 어려웠다. (대신에 먹이는 건 오래 걸린다) 특히 홍선이라고 불리는 한 소문난(?) 개구쟁이 꼬마 녀석(몸도 행동도 유치원생같지만 실제 나이는 17세이다)은 양치를 싫어해서 억지로 온몸을 붙잡은 채로 입을 강제로 벌려 닦아야 했는데 그나마 칫솔을 겨우 입에 넣어 닦아주려고 하면 칫솔을 꽉 물어버려서(-_-) 닦기가 매우 곤란했다. 여기서는 먼저 장애인들을 먹이고 양치까지 해 준 다음 봉사자들이 식사를 하게 되어 있어 그 아이까지 해 주고 나서야 밥 먹을 수 있었다. (저녁땐 내가 밥까지 먹고 하면 특별히 할 일 없이 있다가 대충 시간 되면 숙소로 간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대충 세수 및 양치를 하고(이미 단체로 공동 세면장에서 이런 일 하는 건 2년간의 기숙사 생활에서 익숙해진 것이었다), 매서운 새벽 추위(우리가 꽃동네에 있던 그 기간이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추위 기간이었다)를 뚫고 천사에 집엘 갔다. 다른 4명의 아이들과 함께 갔는데 이곳은 산골이라 그런지 정말로 별이 잘 보였다. 이때는 새벽이라 안 보였지만 저녁때 돌아올 땐 오리온 자리의 오리온 성운까지(명확하지는 않지만) 맨눈으로 어느정도 구분이 될 정도였다.

그렇게 둘째날도 아침식사(먹이기+양치시키기+밥먹기)로 시작했다. (참고로 이곳의 식사 시간은 가족들 기준으로 아침 6시 30분, 아침 11시 45분, 오후 4시 45분으로, 보통 사람들의 일상보다 빠르고 대신 7시쯤 일찍 잔다) 내가 있던 3층은 '일반방', '주방'(층별로도 주방이 있어 1층 주방에서 만든 음식들을 배분하고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식판 설거지를 하는데 여기 봉사자는 층별로 배정된 사람 중 정한다), '침대방'이 있는데, 이중 침대방은 일반방에 있는 사람들 중 병/장애가 심한 중환자들을 병상에 데리고 따로 관리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침대방의 사람들은 목욕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_-; 먼저 병상에서 목욕용 침대(골격하고 젖지 않는 간이 매트리스만 있는 것)로 옮긴 다음 공동 세면장에 데려가 직원분들이 샤워를 시키고, 나는 샤워하고 나온 가족들을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침대방으로 옮기는 일을 하였다. 덤으로 그러면서 옷도 갈아입히고 침대 매트리스도 세탁하였다. (이건 다른 봉사자들이 했다)

침대방에 있는 분들은 아까 말했듯 중환자인데 처음에는 다 이불을 덮고 있어 잘 몰랐지만 목욕시키고 나서 수건으로 몸을 닦아 줄 때 보니 정말 내가 그동안 말로만 들어본 모든 기형/불구는 다 있었다. 하반신 마비는 기본(-_-.. 똥오줌을 가릴 수 없기 때문에 고추(거시기)에 긴 비닐봉지로 관을 만들어 오줌을 모아 정기적으로 버린다)이고 다리가 뒤틀려 있거나 지체 장애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사람들도 있어 샤워 중 돼지 멱따는 소리(-_-)가 간간히 들렸다. 게다가 이들은 꽃동네에 오기 전 방치되어 있었거나 적절한 치료를 못 받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피부에 욕창 등 온갖 피부병과 상처가 있었고 고름 냄새 같은 것도 심하게 났다. (사연을 들어보니 소달구지로 밭을 갈다가 소가 날뛰어 달구지에 깔린 사람, 열차 사고로 장애가 된 사람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몸 구석구석 물기를 닦아 주고 싶어도 뒤틀려 있는 몸이 펴지지 않아(굉장히 단단하게 굳어 있어 두 사람이 같이 억지로 벌려도 잘 안 벌어질 정도다) 고생했다. 이때는 진짜 비위가 강했으니 망정이지 여자들이나 비위 약한 사람들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족분들 자체는 어차피 신경을 쓸 수 없거나 모르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성인 남자의 알몸을 보는 것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여 동안 목욕을 시키고, 방 청소 간단히 하고 점심식사를 하였다. 오후에는 3시 30분 특전미사(가족들이 직접 성당에 갈 수 없어 신부님과 수녀님이 직접 돌아다니시며 미사를 해 주신다)가 있었고 그 외의 특별한 일은 없었다. 이때부터 좀 말을 잘 하시는 분들과는 익숙해져서 물 떠오기나 화장실 가는 것 도와드리기 정도는 간간이 해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저녁식사까지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것으로 둘째날 일과는 끝났다. 사실 둘째날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안 되어 그쪽 직원분들이 말하는 '고차원적 봉사'를 할 수 없었다. 그분들이 말하는 '고차원적인 봉사'란 청소나 밥 먹여드리기 등의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정말 마음을 열 수 있게 도와주고 사랑과 정을 나누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아 할일이 없어 쉴 때는 라꽃과 잡담하거나 뻘쭘(-_-)하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셋째날(일요일)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다른 4명의 친구들과 두선이와 같이 숙소를 나섰다. 이번에는 꼭 '고차원적 봉사'를 하리라 다짐하고. 일상처럼 아침식사를 하였고 특별한 일이 없어 가족들을 죽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혼자 구석탱이에 처박혀 손으로 문고리같은 걸 계속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폐인짓'을 하고 있는 한 아저씨가 눈에 띄었다. (다리를 전혀 쓸 수 없어 손으로 기어다니시는 분으로, 나중에 알아보니 이름은 '허 욱'이라고 하고 똥오줌을 못 가려 가족들이 신문지로 깔아놓고 대충 보살폈었으며 여기 온 지 약 두달 반 정도 됐는데 적응을 잘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보름 동안 훈련시켜 겨우 화장실을 혼자 가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말은 알아듣는 분이었으므로 그 아저씨한테 가서 왜 그러고 있냐고 물었더니 힐끔 쳐다보고는 대답을 안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자꾸 손으로 뭔가를 만지작거린다는 점에 착안하여 내 손을 대신 만지작거리라는 뜻으로 다른 한 손을 잡고 여러가지 손동작으로 만져 주었다. 처음에는 뚱 하게 별 관심이 없다가 한 30분쯤 계속하니까 날 쳐다보며 씩 웃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는 만지작거리던 손도 같이 잡아주고 서로 온기를 교환했다. 그랬더니 점점 더 좋아하면서 아예 내 무릎을 베고 잠을 청하는 것이다. 마침 지나가던 직원분이 내게 '바로 그렇게 하는 거야'라고 속삭여 주었다. ^^; 그 후로 그 아저씨는 내가 일이 없어 한가해질 때마다 엉금엉금 날 쫓아와서 아빠다리 하고 앉은 내 허벅지를 베고 자려고 했다.

이렇게 드디어 이 사람들과 교감이 시작된 것이다. 다른 몇 분들한테도 시도해 보니 따뜻하게 손을 잡고 간단한 손장난을 쳐 주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았다. (말이 통하는 분이든 안 통하는 분이든) 나는 이때 처음 알았다. 서로 손을 맞잡는 것이 단순한 온기 교환을 뛰어넘어 그렇게 큰 정 교환이 될 수 있는 것을.

넷째날(오늘, 월요일)은 전처럼 아침식사를 끝냈다. 유치원생~초등학생 같은 (몸도 행동도) 아이가 한 명 또 있는데 이름은 태현이다. 그 아이는 내가 밥 먹여주고 양치해 주는 걸 유난히 좋아해서(왜 그런진 모르겠다. 내가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봉사자가 해 주고 있더라도 내가 지나가면 나더러 해달라고 그런다. 이렇게 날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 나도 기뻐하고 있었는데, 전날의 욱이 아저씨가 내 허벅지를 베고 자고 있는 걸 홍선이가 반대편 허벅지를 베고 자려고 했다. 물론 장난꾸러기 그 녀석이 그 아저씨한테 괜히 건드리며 시비를 걸었고, 그 아저씨도 마치 '내'가 '자기 것'인양 저리 가라고 하면서 애를 꼬집었다. 결국 둘이서 내 허벅지를 벤 채 싸웠는데 거기에 날 층 사무실로 데려다 준 그 아이가 쭉 편 내 다리의 정강이에 누우려 했고 아저씨는 그 아이도 쫓아내려고 했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22살 정도 되는 중학생 같은 형이 있었는데(말도 알아듣고 머리도 좋다고 하는데 발음이 매우 부정확하여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어렵다) 그 형이 내 옆구리를 베자(셋이서 싸울 때 나는 이미 말리다가 gg치고 벌렁 누워있었다) 이번엔 넷이서 실갱이를 벌였다. 그렇게 한동안 싸우며 다른 봉사자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문제의 홍선이가 내 급소(!)를 실수인지 고의인지 아무튼 꼬집어 버린 것이다. 결국 난 비명(-_-;;)을 질렀고 다른 봉사자들은 웃었다. (젠장..) 그러더니 일어나며 돌아댕기다가 자리에 앉는다고 팔로 바닥을 짚는다는 것이 그곳을 다시 한번 눌러(-_-;;;;) '윽'...;; (녀석 몸무게가 가벼웠기에 망정이다) 약간 아프긴 했지만 아무튼 그만큼 가족들이 날 좋아한다는 것이 기뻤다.

점심식사 후 헤어질 시간이 되었고, 태현이는 나더러 가지 말라고 그랬고 욱이 아저씨는 서운한 티를 내며 내 허벅지를 베지 않았다. 태현이는 몸 전체를 가눌 수 없어 항상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덕분에 나도 그 사용법을 익혔다) 태현이와 김찬성(또다른 어려 보이는 아이가 있음)이가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먼저 떠나 작별 인사를 했다. 떠날 때 인사를 하니 토마스 수사님도 싸이월드 주소(-_-)를 알려주며 잘 가라고 했다. (이 수사님은 2조였던 근우도 봉사를 잘 했다며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꽃동네를 떠나 왔다. 나는 이 사람들한테 기본적으로 해 줘야 할 것을 해 주면서 약간의 정을 더 얹어 주었을 뿐인데 그 사람들은 그 정을 정확히 n배로 늘려서(-_-....) 되갚는 것 같다. 바로 봉사활동의 참맛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다음 번에도 천사의 집 3층은 꼭 다시 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서로 욕하며 싸우기도 하고 먹을 것에 집착을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단순하고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에 교육관에서 수녀님이 하신 말씀 중 '사랑도 배워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ps. 강성훈(토끼군)이 성모송("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 예수님이 ~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빌어 주소서")을 하도 많이 해서 듣다보니 외웠다고 했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보통 미사 전에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꽃동네의 경우는 묵주기도 전체를 다 했으니 한 미사에 최소 52번은 들었을 것이고, 저녁 식사 후 매번 삼종기도를 하니 또 매일매일 3번은 들었을 것인 데다 성훈이가 있던 기간은 주말에 1월 1일 성모승천대축일(신년미사가 아님) 미사까지 끼어 대략 백 수십번은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ps2. [조언]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처음 가는 사람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버벅댈 수 있는데(예를 들어 양치를 해 준다든지), 용기있게 '눈 딱 감고' 하면 된다. 거기 있는 직원분들도 봉사자들이 못할 만한 일을 시키기지는 않는다.

ps3. 저녁 7~9시는 희망의 집 2층 홀(숙소임)에서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때 주로 장기를 두었는데 2층에 사는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지체 장애인 형이 있는데(대부분 휠체어를 타고 다님) 정말로 장기를 잘 둔다. 아무도 이길 수 없었다. 특히 어떤 판에서는 오로지 상대방의 포와 졸 하나씩만을 먹고 판을 끝내버렸다. (어떻게 하든지 장이 걸리는 것이다. 어떻게 두알밖에 안 먹고 끝나는지) 그러더니 그 다음판은 엘리전.. 결국 그 판을 두던 아이는 gg쳐 버렸다. -_-;

ps4. 토끼군에 이은 꽃동네의 미스테리 시리즈.
1. 희망의 집 2층 공동세면장에 온수와 냉수 수도꼭지 색이 바뀐 것이 있다.
2. 천사의 집 3층 사무실에 있는 화이트보드를 잘 보라. 맞춤법도 그렇지만 실제 거기 쓰여 있는 목욕/진료 일정 등과 실제는 하나도 맞지 않는 것 같다. -_-;
3. 가족들 중 유난히 성이 '오'씨인 사람이 많았는데, 물어보진 않았지만 내 추측으로는 이름을 대라고 했을 때 이름만 말하고 성을 말하지 않아 임의로 '오'로 통일한 것 같다. (심지어 기록상의 이름이 '오울보'인 사람도 있었다. - 하긴 봉사자 중에 '라꽃님'도 있는데.. (응?) )

ps5. 대건이와는 대화를 별로 안 해서 잘 몰랐는데 끝날 때 1시 30분에 모여서 같이 교육관으로 가기로 하고 용운이를 기다리는데 '용운?? 말????(용운이한테도 말했어?)" 이란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제주도 사투리를 쓴 듯하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같이 주방에 있었던 형선이가 통역해 주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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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냐.. 드디어 내일 꽃동네에 가게 되는군요.
(갑자기 오늘 블로그 글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3개째..)

토끼군은 절대로 식당 일은 하지 말라고 단단히 충고해 주네요. -_-; 친구 둘이랑 같이 수원역에서 만나 기차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고로 앞으로 3박 4일 동안은 업데이트가 안될 것입니다. (혹시나 토끼군처럼 뭔가 문서작업을 하다가 인터넷을 한다면 모를까..)

같이 입학할 KAIST 동기들을 볼 생각을 하니 떨리기도 하고 기대됩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왔을까?

그럼~

ps. 학교 홈페이지 작업은 gg쳐야 되나 봅니다. 방학해서 집에 왔더니만 보안 방화벽이 외부 접속을 막아놓아서 FTP와 텔넷 접속이 불가능해졌다는.. (mysql db는 phpmyadmin이 있어 접근할 수 있지만 페이지 자체를 고칠 수 없음) 학교 담당 선생님께 메일을 두번이나 보냈어도 감감 무소식...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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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 http://dali.egloos.com/tb/746148
태터센터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블로그 글의 코멘트 중 자기가 처음 올린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 따라가 보았다.

사실 나는 이 사실을 알기 전에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거기다 표절까지 해서 멋진 디자인이 나온 것도 아니고 저런 '생뚱맞은' 디자인이 나올 줄은 12월 말 'MBC가 새로워집니다'라는 광고를 볼 땐 상상도 못했다.

인터넷 뉴스에 난 기사를 보면 나름대로 '모든 매체를 상징한다'고 하는 그 빨간 박스. TV 화면에서 보는 그 로고는 뭔가 무겁고 둔한 느낌을 준다. 뭔가 혁신적이거나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렇게 화면 구석을 뭉턱하게 차지하고 있는 로고는 별로 맘에 안 든다.

이 글이 올라온 지 3일이 되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나름대로 인터넷 신문 기사에서는 굉장히 '큰 일'인 것처럼 실어 놓긴 했는데...

따라간 블로그 글 : http://www.lovedc.com/tt/index.php?pl=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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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보문고)


카테고리는 옛날에 만들어 놓고 드디어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어제 형이랑 갔다온 교보문고에서 형이 사준 이루마의 악보집을 뒤적이다가 (원본 음악은 한번도 못 들어봤지만)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던 Kiss the Rain이란 곡을 보고 어떤 곡일까 하고 한번 쳐 보았다.

이럴수가! 환상적이었다. (이 말은 거의 한번에 잘 칠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한데, 생각보다 치기 쉬웠다.. -_-) 간만에 좋은 곡을 하나 찾아낸 것이다. 고음부에서 조용한 멜로디로 시작하여 중간에 왼손 저음 옥타브 화음이 나오며 약간 고조되고 마무리는 반음 올려 조바꿈을 한 상태로 마무리된다. 같은 멜로디를 반음 올려 조바꿈해 마무리하는 것은 Yuhki Kuramoto의 Calming Island와 비슷하지만 Yiruma의 경우는 coda의 성격이 더 강하다.

전에도 이루마의 May Be, Love Me, Gabriel, Wait There는 친구 소개 등으로 쳐 본 적이 있지만, 이 곡은 또다른 느낌이다.

내가 유키구라모토를 몇년 간 계속 연주해 와서인지, 유키구라모토의 음악은 매우 명상적이고 안정되어 있지만 뭔가 차가운 느낌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반면 이루마의 음악은 매우 따뜻한 느낌이며, 곡 하나하나에서 오는 느낌이 유키구라모토의 곡들보다 좀더 분명하게 전해지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유키구라모토의 경우 마 장조(# 4개 붙은 것)를 많이 사용하고 곡 전체는 장조 곡이더라도 단조 화음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느낌이 비슷해진 것 같다.

과학고에 온 뒤로는 피아노를 쳐도 너무 '기계적'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때가 많았는데(리스트의 라캄파넬라를 무리해서 시도했던 것도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감정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라캄파넬라가 기계적인 곡은 아니지만 못 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잘 치지는 못해도 그냥저냥 약간 팔 아파하면서 칠 정도는 되었다. -_-) 이루마의 이 곡으로 다시 '인간적'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ps. "이럴 수가! 환상적이었다" 라는 표현은 정확히 어느 글이었는진 생각 안 나지만 어제 오늘 읽었던 독서과제용(-_-) 책인 [파인만, 농담도 잘 하시네!]라는 책의 어투를 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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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교보문고에 다녀왔다. KAIST 신입생 독서과제 때문이었는데, 군대에서 휴가나온 형과 같이 미국 유학중에 방학을 맞아 같이 나왔다는 형 친구를 만나러 잠시 카페에 들렀다가 강남 교보 문고엘 간 것이다.

KAIST 신입생 독서과제는 논술 과목 성적에 포함되는 것으로 KAIST 인문사회과학부에서 선정한 4분야 83개 도서 중 분야별 1개씩을 골라 원고지 15장 내외의 독후감을 자필로 써 내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로, 괴테의 파우스트,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 등의 책을 샀다. (꼭 4권만 구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더 볼 생각으로 몇 권 더 샀는데, 몇몇은 집에 있는 것도 있어 사지 않은 것도 있다) 그 중에 프랑스 대혁명사는 상권만 있고 하권은 절판되어 재고가 없어 구입하지 못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총 75,000 상당의 책을 구입했다. ( 그대로 쌓여 있었던 12월달 용돈과 그동안 모아 둔 문화상품권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10권짜리 소설 장길산(2월 말에 시험평가가 있다)을 읽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건 누군가한테 빌리든지 해야 할 것 같다.

덤으로, 같이 간 형이 이루마의 피아노 곡집을 사 주었고(정규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원래는 아버지 회사를 가려다 시간이 늦어져(절판되어 없는 책들이 좀 있어서 찾느라 시간이 걸림) 아버지가 퇴근하시는 길에 태워 가기로 하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교보타워 1층에 있는 자바 커피점에 들러 카페라테 한잔씩을 마셨다.

그 커피점에서 비치된 책 중에 '논쟁을 이기는 법'에 관한 책(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음)을 보았는데, 다 보지는 못했으나 간단히 훑어본 바로는,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이라고 한다. 질문으로써 미리 의도했던 방향으로 이끌어 가거나, 또는 '수사의문'이라고 하여 굳이 답을 얻어내기 위한 질문이 아닌 자기 주장을 강조하거나 남이 할말 없게 만들기 위한(-_-) 기법도 소개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결국엔 하는 말이 '궤변에 스스로 의지하지 못할 정도로 논리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것이었다. 이는 처음엔 궤변을 통해 말문을 막으려고 하다가 스스로 논리를 갖추게 되면 자신의 궤변을 비판하게 되어 결국은 궤변 없이 논리로 이기게 된다는 뜻이다.

그냥 그런저런 가십거리처럼 읽기엔 괜찮은 책인듯 하다. 전에, 과학고에서 친구와 한번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는데, (학문적인 건 아니었음) 완전히 상대방의 유도 심문 및 말투를 통한 심리전에 말려들어가 결국 져 주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서로 미안하다며 화해하긴 했다) 그때 나름대로 반박을 할 순 있었으나 학습실 분위기를 고려해 더 진전시키지 않았었다. 평상시엔 내가 아는 지식을 기반으로 논쟁을 진행시킬 수 있으나 '뭔가 내가 꼻리는 것(-_-)'이 있을 경우는 약간의 수사 기법을 활용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_-;;;; (별로 '옳은' 생각은 아니지만...) 당시에도 사실 내가 잘못한 부분도 있었기에 내가 더 밀어붙이기가 좀 뭣했었다. (논리상으로는 이길 수 있었다)

이번에 독서과제를 할 때도 그런 수사 기법에 대해서 잘 생각해 봐야할 듯 하다. (물론, 교수님들은 지나친 수사 기교를 막기 위해 미리 '수사 기교를 많이 활용하기보다는...' 이란 조건을 달아 두었다) 적절한 때에 선택적으로 사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7일이면 신입생 봉사 프로그램으로 꽃동네에 가게 된다. 먼저 다녀온 경곽 동기들의 말을 들어보니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다. (토끼군만 빼고 -_-) 그리고 신청한 사람들만 하는 영어/컴퓨터 사전교육 프로그램에 간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KAIST 기숙사도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기숙사에서 공부가 가능한 큰 책상이 있다고 한다 - 경곽에서는 같은 학년의 모든 학생들이 한 학습실에 틀어박혀 공부하기 때문에 학습실을 왔다갔다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대신 카이스트는 기숙사 호실 이동할 때 옮길 것이 더 많을 것이다.. -_-)

이제 1월은 KAIST 봉사활동 프로그램 후 어학원 다니면서 영어공부하는 것과 기숙사 관리 프로그램, 학교 홈페이지 프로젝트(여전히 선생님의 답장이 없다....OTL)로 시간이 갈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영어 공부나 좀 열심히 해야 겠다.

ps. 기숙사 관리 프로그램은 현재 인쇄 출력 모듈과 XML/XSL 출력 모듈이 사실상 완성되었고 - 일일 통계와 기간별 통계의 XSL만 만들면 됨- 주 프로그램에서의 실제 통계 처리(현재는 테스트용 데이터만 생성)를 하고 학생별 그린/벌점 삭제를 구현한 다음 호실 재배치 기능을 만들면 된다. 나름대로 이거 하면서 공부는 많이 한 것 같다. WM_ERASEBACKGROUND 메시지 처리로 VB에서 컨트롤 배경을 투명하게 만드는 기법, ActiveX DLL과 CreateObject 문을 활용한 GUID-Independant 플러그인 도입, MSXML 3.0 DOM 활용, XSL 제작, Interface 클래스 응용하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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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아버지와 형하고 이 영화를 보았다.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답게 전근대적인 중세풍의 세계에 산업혁명의 폐해를 비유하는 듯 기계 문명에 의한 전쟁과 파괴가 나타나고 이에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맞서는 주인공들이 있다.

나는 오타쿠나 흔히 말하는 '애니 폐인'들처럼 애니를 많이 보거나 또 평가할 만한 능력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대 전체적인 이미지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분명히 2004년 작품인데도 뭔가 옛날 애니들처럼 손으로 그린 듯한 느낌, 수채화같은 배경에 약간의 CG를 덧붙여 좀더 입체감있게 표현한 것. 그림들이 정말 '작품'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피아노와 작곡/편곡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역시 하사이시 조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었다. 역시나(-_-) 현악으로 부드럽게 서주를 하고 피아노로 잔잔히 멜로디를 들려주며 장면과 분위기에 따라 적절하게 다른 악기 구성으로 편곡되어 있는 그의 음악은 꼭 마음에 든다. 그의 멜로디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 친숙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심금을 울리게 한다.

여기에 덧붙여, 단순하게 표현하여 '자연을 소중히 여기자'였던 기존의 주제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현대화에서 얻어진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자' 쪽으로 바뀌더니 이번에는 '사랑이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다' 쪽으로 바뀌는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너무 직선적이고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겠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았을 때도 배경음악과 수채화같이 아름답고 순수한 배경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그때는 바다 위에 홀로 선 마녀의 성이었다면, 이번에는 하울의 성과 하울의 아지트가 있는 들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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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005년이 밝았다. (비록 하루 늦은 1월 2일이긴 하지만)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지나간 경기과학고 생활을 뒤로 하고, 약 두달 동안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2월 19일부터는 본격적으로 KAIST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내 생애에 지난 KAIST 합격 발표 후 이처럼 여유로운 적이 없을 것이다. 사실 합격 후에는 각종 학교 프로젝트들을 맡는 바람에 그다지 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프로젝트라는 것의 효용성과 또 그 속에서 겪는 인간관계에 대해선 다시금 새로 배울 것들이 있었다.

과학전람회도 그랬고, 정보사사 논문 작성 때도, 학교 홈페이지 프로젝트 때도 그랬지만 역시 어떤 종류의 프로젝트든 간에 가장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팀원들간의 의사소통이다. 그것이 가장 대표적으로 실패했던 예가 성훈이와 진행했던 학교 홈페이지 프로젝트였다.

more..


1월 중순부터는 영어 공부도 시작하고 KAIST 신입생 독서 과제도 해야 하고 내 개인적으로도 바쁜 일들이 생길 텐데 어찌될 것인지는 두고봐야 할 것이다. 일단 기숙사 관리 프로젝트나 마무리해야겠다.

2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통해 굉장히 밀접한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과 친목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 또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었고, 또 2년간의 과학고 생활을 통해 과학 분야에 대해 좀더 깊이있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이 경곽 생활에서 얻은 것이다. 그리고 선후배 관계와 동기 관계를 통한 인맥 형성도 얻었다.

이제 2월부터 시작되는 KAIST 생활, 그간의 프로젝트들과 경곽 생활을 뒤로 하고 다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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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 대통령 과학 장학생 면접을 보고 왔다.
거의 가장 마지막이었는지 면접 끝나고 나오니 과학재단 직원분들이 자리에 놓인 번호표를 정리하고 계셨다.

우리 학교 애들은 대부분 어제 면접이었고 나를 포함하여 5명만이 오늘 면접이었는데, 어제 면접 보고 온 아이들의 경험담을 들어보건대 매우 '이상야릇'한 면접이었다. 어떤 아이는 다른 아이의 면접자료로 면접을 보다가 '어, 그거 제꺼 아닌데요' 라고 해서, 물어보던 그 교수한테 다른 교수(심사 교수가 5명이었다)들이 면박을 주어 금방 면접이 끝났다는 경우도 있었고, 한 녀석은 계속 과학논술 자료만 가지고 물어봤었다고 한다(그냥 물어본 게 아니라 설명하려고만 하면 말을 끊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우리 학교 학생 둘이 연속으로 보는데 뜬금없이 뒤에 아이한테 앞에 나간 아이의 장단점을 말해 보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단다. 전체적인 아이들의 결론은 패널(면접조)마다 교수도 제각각이고 평가관점도 제각각이라 면접의 변별력이 별로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

아무튼, 나는 오늘 가서 면접을 치뤘는데, 난 다행히 별다른 특별한 점(?) 없이 잘 끝났다. 일단 학업계획과 과학논술에 대해 5분 정도 설명하라길래 KAIST에 붙었고 무얼 공부하고 싶고 인지과학이란 분야에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것이 어떤 학문인지 죽 설명했고, 이어서 인지과학, 로보틱스 관련 질문들이 있었다. 준호와 같이 했던 과학전람회 실험결과를 아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마지막에는 왜 대장금(대통령과학장학금)을 신청했는지와 국가에 대한 의무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다.

위의 내용들에는 뭐 그런대로 다 잘 대답한 것 같은데, (논술 내용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사전에 전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에 좀 버벅거리긴 했지만) 중간에 테러성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질문 패턴을 보니 물리학과 교수님인 것 같은데 뜬금없이 "도선에서 전자의 속도는 1초에 수 cm 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스위치를 누르면 전깃불은 바로 켜지느냐"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는 [#I_내용|(close)| 전자는 천천히 움직이지만 전기장의 변화(전압에 의한)는 빛의 속도로 전달되기 때문_I#]이어서 잘 대답했으나 갑자기 전자의 역할이 뭐냐고 물었다. (물론, 이것도 사실은 아는 [#I_내용|(close)| 에너지의 전달_I#]이었지만) 이때 긴장해서인지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좀 어물쩡거리다가 결국 교수님이 나한테 설명해 주셨다. 그래서 '망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심사 교수님들이 마지막에 '대답을 또박또박 잘해서 좋았다고 하면서 좋은 소식 있길 바란다'라고 하셔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런데 애들한테 내 면접 이야기를 해 주니 매우매우 정상적으로 봤다면서 거의 붙은 것 같다고 부러워하는 것이다. 어쨌든 면접까지 잘 마무리된 것 같아 좋다.
(이제 학교홈페이지, 기숙사 관리와 논문 정리만(?)이 남았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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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단기간에 이렇게 중요도가 높은 일들을 한꺼번에 해야 하는 것은 이번주가 처음인 듯하다.

대통령과학장학생 결과발표(20일) 및 면접(22~24일중 하루)에 학교 축제인 솔대제 공연에 사용할 Forte(공연은 26일이나 편곡은 19일이고 리허설은 22일, 퓨전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쓸 악보 편곡, 학교 홈페이지 제작(22일 오픈, 특히 HTML, CSS, Flash 디자인을 맡음 - 노가다!-_-), 졸업논문 최종본 제출(20일), 휴먼테크 논문 작성(기한은 26일이지만 실제로는 24일까지).....

어제도 아침 8시부터 새벽 3시까지 학교 홈페이지 작업만 했는데 아직도 요원한 듯 하다.. (어젠 특히나 Flash 액션스크립트에서 무비클립에 설정한 변수가 loadMovie 액션과 함께 갑자기 증발해버리는 현상과, 그 전날은 block element에 대한 스타일시트에서 margin - border - padding에 대해 width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firefox와 IE의 차이 때문에 몇시간씩 골머릴 썩었다.. ㅜㅜ)

아무튼 이번엔 정말 힘든 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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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성공.

아래 포스트에서 나온 편집 부분인데, 사이트 관리자가 올리면서 제멋대로(아마 위지윅 에디터 같은 것으로 긁었으리라 생각됨 -_-) 고치긴 했으나 내가 코멘트로 넣어둔 저 부분은 그대로 올라갔다. (일부러 남겨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작전 성공이다.. -_-;;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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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으러 가기 전에 잠시 짬내서 글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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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의 포스트 중에 노트북 배터리가 결국 배신했다는 이야기(10분만에 0%로 떨어지고 55분만에 전원 off...)가 있는데, 이번 졸업여행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모든 옵션을 최저로 놓고 윈엠프도 Classic 스킨(CPU 소모율이 매우 적음)으로 바꾸어 음악만 듣는데 겨우 2시간 30분 정도 갈 정도였다. (AC 전원에서 만땅으로 충전해 쓰다가 전원 뽑고 처음 노트북을 켜면 배터리가 60% 정도로 나왔을 정도다)

그런데, 오늘 해남에서 올라오는 길에 노트북을 그렇게 틀었는데, 부팅 후에도 100%가 유지되는 것이 신기했다. 게다가 포토샵과 3D 애니메이션 및 비주얼 베이직 등등을 번갈아 가며 1시간동안 돌렸는데 불과 5%밖에(-_-) 줄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밖에 줄지 않는다는 것은 잔량 표시기가 완전히 맛이 갔다고밖에 할 수 없으므로 어차피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2시간이 넘게 작업을 했는데도 전원이 꺼지지 않고 잘 유지되었다. -_-;;

그러다가 학교에 도착해서 짐 챙기고 내리느라 잠시 대기모드로 바꾸었는데 이제서야 잔량 표시기가 제대로 돌아왔는지 7% 남았다고 표시되고 있다. (그런데, 남은 사용시간이 3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음...)

드디어 노트북 배터리가 정상으로 되돌아온 것인가!!

ps. 옆에 있던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니 배터리 수명이 막판에 갑자기 늘어났다가 며칠 있으면 켠 후 몇 분 이내에 꺼지는 배터리로 될 거라고 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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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졸업여행으로 해남 땅끝 마을입니다..

비치 모텔이라는 곳에 묵고 있는데, 노트북을 가져왔더니 비록 2 Mbps이긴 하지만 인터넷이 잘 되는군요.. ^^;;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더 오랫동안 폐인짓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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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건 그저께 발표난 것이지만 간신히(살짝 커트라인에 가까운.. -_-) 졸업논문을 1차에서 통과했다.

(일단 이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여기를 참조..)

왜 점수가 낮았냐 하면 졸업논문의 심사 기준이 주로 본인이 한 것이 무엇인가(이뤄낸 것이 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데, 나의 경우는 Approximate Sequence Matching 개념을 Image Stitching 알고리즘에 도입했다는 것 말고는 사실상 아무것도(-_-;;) 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논문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지금 어디까지 진행됐냐는 물음에 현재 sequence matching을 구현하기 위한 모듈을 제작해 놓은 상태라고 대답했는데 사실은 sequence의 random generator만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_-;;

일단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sequence matching 알고리즘이 빠져 있고...(-_-) 그 알고리즘에서 일단 maximum gap에 대한 것은 정의가 2개로 정리되었는데, 실제 의사코드로 나타내려고 하니 아직도 막막하다.

게다가 논문 심사 위원이셨던 정보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아직 이것이 현실화되지 못한 것이 너무 변인이 많아서였다고 했는데 너도 너무 많은(비현실적인) 가정을 깔고 들어가지 않았냐고 공격(?)하신 게 좀 타격이었던 듯 싶다. 물론 그 가정 하나하나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해결하면 되며 왜 그런 가정을 두었는지 모두 답변은 했지만 말이다.

그 선생님께선 막연히 '도기 및 토기'로 대상을 잡지 말고 어떤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문양을 지닌 토기 쪽으로 초점을 맞춰보는게 어떻겠냐고 하시는데 그 말엔 동의하지만 사실상 다시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ㅜㅜ

이렇게 되면 휴먼테크 논문은 현재 수준에서 알고리즘만 어느정도 정리해서 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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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일상에서 생각나는 것들을 가끔씩 글로 정리하여 포스팅하는 것과 다른 블로그들(아직은 태터센터를 주로 이용)을 돌아보는 데 재미를 들였다.

다른 사람들을 블로그를 보면 다양한 사상과 다양한 생각으로, 그리고 다양한 의도로 글을 작성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내게 오프라인의 인간관계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그런데 블로그에 글을 포스팅한다는 건 적어도 개인 일기나 '헛소리'가 아닌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도 이렇게 글을 써 보는 것이 상당히 오랜만이어서(그 몇년 동안은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쓰라고 하는 보고서나 인터넷에서 프로그래밍 관련 질문/답변 정도만 해 왔다) 그런지 별로 글이 조직적으로 정리가 안되고, [#I_태터센터에 sync|(닫기)|내가 사용하고 있는 태터툴즈 블로그에서는 태터센터라는 곳에 글을 자동으로 sync하여 기록을 남길 수 있는데 이는 태터센터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목록에 나타난다. _I#]한 글이더라도(내 것이든 다른 사람 것이든) 처음에는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개인적인 푸념(?)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글이 반드시 '진지한' 것이어야 하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한 글이라면 아무래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나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private 글이라면 자기 내키는 대로 써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블로그에 글을 포스팅한다는 것. 물론 블로그는 개인형 미디어임에 틀림없지만, 어느 정도의 글 구성력을 갖춘다면 더 좋은 블로그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