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아랫글을 쓰다보니 12시가 넘었다..)는 전에 그 우연히 만났다는 한국인 입양아 친구의 주선으로 점심 약속이 있었다. 한국 이름이 유은주라고 하는 또다른 여자 한국인 입양 친구와 핀란드인, 스웨덴인 친구를 소개시켜주었다. 점심은 시내 중심가 hötorget 근처의 food court 쯤 되는 곳에서 먹고(원래 좀더 괜찮은(?) 몽골리안 음식점을 가려고 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근처 카페에서 꽤나 한참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커피 가격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심지어는 더 싸다는 사실에 놀랐다.. 보통 여기 음식 가격은 한국의 1.5배 수준이다.) 결국 얘기하다보니 길어져서 저녁까지 근처 스시 레스토랑에서 먹고 헤어졌다.
나는 얘네들한테 약간의 한국어 강좌를 해주었다. 원래는 끝나고 학교에 가서 뭔가 작업을 하려고 생각했던지라 마침 노트북을 들고 있었고, 이를 이용해 쉽게 여러가지를 써서 보여줄 수 있었다. 3살 정도에 입양이 되었으니 사실상 스웨덴인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물론 당연히 한국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identity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어 발음이나 글자 읽는 방법을 아주 조금밖에 모르고 있었다. 뜻은 더더욱 모르고, '안녕하세요' 정도만 알고 있는 듯. 한국어의 문장 구조, 조사에 따른 대명사의 의미 변화, 존댓말에 대한 것들, 자음과 모음을 읽는 방법, 한글을 쓰기 위해 합성하는 패턴, 부드럽게 소리내기 위한 자음동화 등(차마 동사 변화는 엄두가..-_-)을 설명해주니 같이 온 핀란드, 스웨덴 친구들도 꽤 흥미로워했다.
이와 함께 한국의 문화적 특징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해주었다. 은주라고 하는 여자 친구(아, 여기서 여자 친구란 애인 관계가 아니라 그냥 친구라는 뜻이다)는 자기가 facebook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이 죄다 horny(...이런 단어는 한국에서 영어 배울 때 안 가르쳐준다. 직접 사전 찾아보길. -_-)하다고 그러길래 물론(?) 한국을 포함하여 전세계 어디를 가도 음성적(...) 문화는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성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마도 그 친구들은 facebook을 쓰는 만큼 서구 문화에 익숙하거나 서구권 문화에서 성장기를 보냈거나 한 게 아닐까 싶다(고도 얘기해줬다).
또, 자기가 이번 여름에 한국에 갈 것인데, 한국 남자친구(여기서는 애인의 의미)를 만들고 싶다며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녀석이 있으면 'Hello, cute boy'라고 말해도 되겠냐고 하길래(.........) 아마 그러면 십중팔구는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low-educated 등 부정적으로 생각할 거라는 얘기도 해주었다. 이거 이대로 그냥 한국 들어왔다가는 상당히 당황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외에 부수적인 상식(?) 얘기도 좀 해주었다;;;;
한편 자기 부모님을 찾고 싶다는 얘기도 하길래 가족 사항에 대해 물어봤는데, 자기가 부산에서 태어났고 3살 때 집에 불이 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되며 할머니·할아버지가 잠깐 키우다가 고아원에 보내 입양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다. 부모님 이름, 자기의 한자 이름, 정확한 출생 날짜, 친척 등에 대해 물어보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서, 내가 시간이 된다면 부모님이나 친척 찾는 걸 도와주고 싶긴 하나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 자기의 스웨덴 부모가 한국의 입양 기관을 통해 계속 홍보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전에 만났던 문선의 경우 이미 아버지는 찾았는데, 어렸을 때 어머니가 가정불화로 집을 나가버려서 아직까지 행방을 모른다고 한다.
물어보기가 상당히 조심스러웠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들은 모두 부모님이나 친척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자기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다만 단지 '슬프다'라고만 했다. 그리고 자기를 입양시켜야 했던 부모님 혹은 친척이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여 자기들의 소식을 듣고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또 그런 만큼 더 찾고 싶어하고 있다.
그 이후의 계획에 대한 얘기까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가능하다면 한국에 정착하고 싶은 생각도 있는 것 같은데, 이들의 말이나 행동 등으로 미루어볼 때 완벽하게 서구화가 되어 있어서 쉽지 않을 것이다. 잠깐 몇 시간 동안만 얘기해도 생긴 것만 한국인이지 사고 방식이나 행동 패턴은 그냥 보통의 서양 애들하고 거의 똑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니 말이다. 또 스웨덴의 경우 거의 모든 스웨덴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외국인으로서 머물기에 부담이 없지만 한국의 경우 공항이나 관광 명소 등과 같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들이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 같다. (다만 어려워하지만서도 배우려는 의지는 있는 것 같다. 원래는 외국인들한테 한국어를 간단히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들을 위해서라도 한국어 강좌를 더 공들여 써야 할 듯....orz 아예 한국에서 중학교 국어 교과서 공수해야 되려나..;;; )
전에도 어디선가 본 이야기지만, 1살 정도의 아주 어린 나이가 아니라 3살~5살 정도로 어느 정도 자란 상태에서 입양된 경우 더 적응이 힘들다고 하는데, 은주 누나(..영어로만 대화했기 때문에 왠지 어색하지만 나이가 있으니 이렇게 불러야 맞겠지)의 경우 어렸을 때 스웨덴어를 배우기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영어도 그다지 잘 하지는 못했고 조금이라도 복잡한 문장이 나오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영어 대화가 가능했다. (이건 물론 개인차도 있을 것이고, 영어의 필요성을 크게 못 느껴서 공부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들을 입양보내야 했던 그 상황과 사정이 무엇이었든 간에, 세상에는 그런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또 생각외로 내 주변에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모님도 언젠가 세상 사람들이 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그 내면에는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