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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인 저녁 7시 30분부터 합창 동아리인 카이스트 코러스의 정기 공연을 보았다. 실내악 앙상블 교수님이 같은 동료가 하는 공연을 안 보는 건 예의가 아니라면서, 곡 보고 감상문도 써내라시길래-_- 겸사겸사해서 갔는데 공연 자체는 꽤 볼만했다.
전체를 3개의 스테이지로 나누었고, 첫 스테이지는 뮤지컬 'Le Miserables'의 명곡들을 메들리로 엮은 것이었다. 두번째 스테이지는 외국·한국 가곡들을 엮은 것이었고 마지막 스테이지는 모차르트의 작품 '대관식 미사' K.317의 Kyrie, Gloria, Credo, Sanctus, Benedictus, Agnus Dei를 죽 부르는 것이었다.
공연 전에 진혁이 형한테 전에 물어봤을 때는 자기는 오른쪽 귀퉁이에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을 거라고 했는데 오늘 보니 맨 뒷줄 가운데에서 떡하니 자리잡고-_- 있어서 아주 잘 보였다. 어차피 워낙 많은 인원수가 부르기 때문에 개개인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찬호는 한 사람 건너 옆에 있었는데 가장 몸집이 거대했다;; 그리고 스튜어트 물리를 같이 듣는 항석이 형도 볼 수 있었다)
일단 전체적으로 노래·반주 모두 훌륭했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의 각 대표 주자(?)가 한 명씩 따로 나와 있었던 것인데, 각각 그 한 사람의 목소리가 대강당을 홀로 채울 수 있을 만큼 풍부하고 큰 소리가 나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솔로나 듀엣, 콰르텟을 할 때 각각의 음높이에서 고유의 영역을 차지하며 한 공간에서 다차원적으로 울려퍼지는 그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그 네 명 중에서도, 내 눈에 띄었던 사람은 테너 솔로를 맡은 류한승 선배였다.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 찾아보니 스팍스 99학번 선배였다 -_-) 남자 목소리이면서도 상당히 가느다랗고, 가느다라면서도 널리 퍼지는 침투력이 있는 목소리였다. 테너 솔로와 베이스 솔로가 같이 부를 때면 마치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는 것 같았다. 만약 그 두 분만 따로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른다면 매우 잘 어울릴 것이다.
반면 소프라노 솔로는 매우 음량이 컸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알토 솔로를 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거의 안 들렸다. (내 생각엔 소프라노가 커서라기보단 알토가 작은 것 같다. 아니면 그게 단체 합창과 비슷한 높낮이여서 묻혀버린 것일지도.) 분명히 소프라노 혼자 할 때와 알토가 붙어 있을 때의 소리가 뭔가 다르긴 한데 알토만의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단체 파트별로 나뉘어 있었는데 개개인의 목소리 특성을 들을 수는 없지만 대신 여러 명의 목소리가 합쳐진 또다른 느낌으로 멋있었다. 파트별로 서로 번갈아가며 부르거나, 같은 멜로디 선상에서 약간씩 어긋나게(echo) 부른다거나 할 때 솔로들과는 다른 웅장한 느낌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역시 내가 피아노를 치는지라 반주도 유심히 보았는데, 전에 코러스 동방에서 4-hands 연습할 때 진혁이 형이 잠시 보여주었던 대관식 악보(맞나?)의 그 극악의 부분-_-.. 역시 원준이 형은 무난하게 넘어갔다. 반주 전체적으로 중간중간에 살짝 안 맞는 것 같은 부분들이 있었지만 뭐 내가 원래 곡을 잘 모르다보니 정확히 틀렸는지 맞았는지는 판단을 못하겠다.
어쨌든 간만에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 쯤이면 한창 뒷풀이를 하면서 술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 ^^; 다음 번 문화행사인 당 타이손의 공연도 매우 기대된다. (그렇다. 쇼팽이 축복한 피아니스트, 동양 최초의 쇼팽 콩쿨 우승자가 여기에 와서 공연하는 것이다. 모두 많이 보러 오길.)
덧/ 며칠 후에 스팍스에서 우연히 류한승 선배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 쓴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더니 실제로 자기가 그레고리안 성가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악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못 부르고 있다고 하였다. 역시, 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