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며칠 전 보시던 신문에 이런 글이 있었다. 그 신문을 폐휴지통에 넣은 지 오래라 인터넷으로 찾아 이렇게 올린다.
(중략) 요즘 아이들은 대개 이렇다. 개인주의를 ‘자기 내키는 대로 하는 것쯤’의 편리한 용어로 알고 있다.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라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해도 된다’는 잘못된 개인주의, 편협한 이기주의와 혼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행위, 질서의식이 부재한 것 등의 행태가 만연한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서열 또는 성적 지상주의가 판치는 교육제도의 탓도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가정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부인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물론 나도 '요즘 아이들'의 집단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때도 밤에 기숙사를 돌아다닐 때 슬리퍼 끄는 소리를 심하게 내는 사람이라든지, (실수라면 몰라도) 문을 유난히 쾅쾅 닫는다든지 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또, 길가에 자그마한 쓰레기(사탕 껍질이나 과자 봉지, 휴지 조각 등)를 귀찮다고 길가에 휙 내던지는 사람도 많이 목격했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길거리에서도 그렇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제재를 가하거나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아이들의 분위기를 보면, '도덕 교과서'에 있는 건 말 그대로 교과서의 글일 뿐이고, 실제 그것이 왜 교과서로서 교육되는 것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도덕교과서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도덕교과서는 구성 자체가 매우 지루해서 싫어한다)
내 생각에, 아이들이 절대로 '나쁜 사람이어서' 이러는 건 아니다. 다만 남을 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남을 배려하는 것도 배워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친밀한 가족 관계를 통해 내 행동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들을 지적받아 어느 정도는 고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완벽한 건 아니다)
비록 이 글은 교사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지만, 같은 또래인 내가 보기에도, 또 교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공감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잘 읽어보았으면 한다.
출처 : 조선일보 홈페이지 [link]
[독자칼럼] 청소년의 엇나간 개인주의 가정교육 부재서 비롯된다
- 황선주·경북기계공고 교사
입력 : 2005.01.13 17:27 36'
▲ 황선주/경북기계공고 교사
아이들은 매를 들지 않는 교사를 함부로 대하는 버릇이 있다. 민주적 교사는 심하게 나무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태도는 대개 자유방임적인 가정에서 귀하게 자란 아이이거나 정반대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게서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해서 생기는 잘못된 습성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교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며 의아스러워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교직 경험에서 보건대 이를 단지 교사 탓으로 돌리기엔 때늦은 감을 지울 수 없다.
때문에 필자는 교육적으로 감내하기 어렵다고 여길 때면 어김없이 매를 드는 편이다. 단 학생 동의를 전제로 한다. 이런 말을 하면 “아직도 학교폭력이 있단 말인가?” 하고 흥분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가 합리적인 판단으로 매를 든다면 이를 나무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판례도 어느 정도의 교육적인 매는 허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규범적 차원에서 옳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제도적인 문제이겠는가? 어디까지나 상황 논리적인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교사와 대화하던 학생이 기분이 언짢다고 함부로 대하면 교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무조건 참아야만 할까? 아니면 매를 대야 할까?
지각을 밥먹듯 하는 한 학생의 경우였다. “너 오늘 또 늦었구나, 그만큼 지적을 받았으면 고쳐야지” 하고 꾸짖었다. 그러자 퉁명스럽게 “늦을 수 있지요. 무엇이 잘못됐나요?” 하고 시비조로 나왔다. 이 순간 감정이 울컥 치밀어 감내하기 어려워진다. 속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물었다. “너 말버릇이 그게 뭐니?” 언행을 조신스럽게 할 기회를 주자는 심산이었다. 그런데도 학생이 계속 따지듯 나오거나 딴전을 피울 경우 대개 교사들은 참담함을 느낀다.
이럴 땐 조용한 곳으로 부르는 것이 좋다. 그리고는 다시 묻는다. “네가 아까 한 말에 대해 생각해보니 무척 언짢았는데 네가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니?” 대개 온순한 양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몰라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사제 간이란 특수한 관계 속에서 매를 대야 하는 경우다. 이럴 때 교사더러 “더 참아라”라고 하는 것은 교사의 역할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또 다른 사례이다. ‘침을 아무 데나 뱉는 것이 왜 잘못 되었나’에 대해 토의를 한 적이 있었다.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침 뱉는 것도 개인의 자유가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대부분의 아이들도 “뭐가 잘못되었냐”는 투였다.
요즘 아이들은 대개 이렇다. 개인주의를 ‘자기 내키는 대로 하는 것쯤’의 편리한 용어로 알고 있다.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라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해도 된다’는 잘못된 개인주의, 편협한 이기주의와 혼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행위, 질서의식이 부재한 것 등의 행태가 만연한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서열 또는 성적 지상주의가 판치는 교육제도의 탓도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가정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부인하기란 지극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