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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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얼마 전에 KAIST에서 물리학 석사를 하시는 한 분의 블로그를 읽고 생각난 것이 있었다. 그 분이 자주 인용하시는 신해철 씨의 말 중에,

더 웃긴 건, 그렇게 후배들에게 술을 강요하는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나중에 사회 정의가 어쩌고, 민주주의가 어쩌고 하며 떠드는데.. 술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강요하지 않는 생활 속의 작은 민주주의조차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슨 사회 정의고, 무슨 민주주의 타령이란 말입니까.

를 보고 떠오른 것이다.

그 글을 읽기 좀 더 전에, 동아리 선배인 미래 누나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자기가 전에 다른 학교의 과 개강파티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카이스트의 "술먹고 죽자"와는 완전히 다른, 정말 개인의 특성을 살린 장기 자랑(단순히 노래나 춤이 아닌 시 낭송부터 시작해서 음악 연주에 이르는..)을 하는 걸 보고 문화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처음 시도하는 걸로 반응도 좋고 교수도 같이 참여한다고 한다. 과연 카이스트에서도 그런 게 가능할까?

이런 내 코멘트에 달린 그 석사분의 답변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역시 신해철 씨의 이야기라고 함-_-)

우리 나라에서는 고등학교 때까지 학생들에게 노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대학 와서 사람들이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모르다보니.. 남에게 술 먹이는 것 외에는 분위기를 어떻게 띄우는지 전혀 모르는 찌질이들이 술자리를 장악하게 됩니다.

그렇다. 나도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어떻게 노는 것이 가장 좋을지 모른다. 결국 술마시러 가거나, 노래방, 잘 해야 보드게임방 정도를 분위기 따라 따라갈 뿐이다. (물론, 저기서 말하는 찌질이가 술자리가 아닌 다른 상황에서는 찌질이가 아닌 경우가 더 많겠지만..)

또 전에 한 선배가 말하길 "요즘은 점점 갈수록 신입생들이 술 마시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는 말도 하셨는데, 이렇게 되면 점점 문화 공백이 생기게 된다. 선배들은 술과 노래방으로 노는 문화를 만들어왔지만, 그것을 대체할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술·노래를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가 정착된다면?

사실 술을 마시면서 오손도손 얘기하는 것이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선후배 관계에서 소위 "예절"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노래방은 그래도 한결 낫긴 하지만, 노래에 소질이 없거나 음악 취향이 달라서(나처럼 instrumental 쪽을 좋아하는 경우) 부를 노래가 없거나 하는 경우도 놀이 문화에 적응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역시 신입생 환영회라는 자리에서 장기자랑이로 거의 무조건 노래나 춤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못하면 술을 마시던가..) 뭔가 그 다음날을 생각하는 건 전혀 보이지 않고, "술먹고 죽자" 식의 분위기..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들끼리 쉽게 어울리고 즐길 수 있는, 그러면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놀이 문화의 부재다.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한 신입생들의 술에 의한 고역은 매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