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 여행기 2
Daybreakin Things
<스포일러 주의>
거의 반년 동안 기다렸던 영화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호불호가 갈리는 측면도 있고 영상과 음향은 압도적이었지만 스토리는 다소 진부하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의 수식을 직접 다룰 수 있을 만큼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학부 때 물리학 부전공을 시도했을 만큼 관심이 많았기에 영화에 나오는 내용이나 설정 정도는 아주 가볍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 대중 상업 영화에서 이만큼이나 보여주고 설명해낼 수 있었다는 점에 감탄했다.
영상미의 측면에서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21세기 버전이라 칭함에 손색이 없다. 궤도 상의 우주선들이 도킹하는 장면이나 중력을 만들기 위해 회전시키는 장면, 그리고 아무 소리가 없는 우주 씬들과 순간순간 클라이막스마다 나오는 장엄한 음악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웜홀과 블랙홀에 들어가는 장면도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 기존의 SF 영화에서는 대체로 동그라미처럼 생긴 '구멍'이 우주선 앞에 만들어져 그 안으로 그냥 쑥 들어간다.. 이런 형태로 묘사된 반면 인터스텔라에서는 3차원의 구멍은 곧 구체라는 사실에 입각해 구체로 표현하고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표면(특이점)에 닿는 순간 이동이 이뤄진다는 형태로 묘사했는데 이러한 디테일은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생각해내기 어려운 부분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토성 궤도에서 웜홀이 생겼다는 점(소설에서는 토성이고 영화에서는 목성으로 나왔지만)이나 주인공들을 도와주는 인공지능 로봇들이 접혀있는 형상이 마치 monolith와 비슷한 인상을 풍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로봇들도 참 인상깊었는데 직육면체 모양의 몸을 여러 개의 기둥으로 쪼개서 극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보니 로봇공학의 최신 경향도 열심히 공부했구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꼽는 이 영화의 최대 명장면은 바로 머피가 '유레카! 유레카!! 유레카!!!'라고 외치며 중력방정식의 해를 프린트한 종이를 연구소 안에 여기저기 던지는 모습. 많은 물리학자들의 염원인 통일장 이론을 완성한 순간일까? 실제로 인류가 적극적으로 우주개발에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력 때문이다. 지구 궤도로 1kg의 질량을 올리기 위해 드는 비용이 너무나 비싸다. 만약 중력을 정복해 이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고, 더 나아가 중력 자체를 인공적으로(질량 대신 에너지를 사용한다든가) 만들어내거나 없앨 수도 있게 된다면 스타워즈에서나 보던 것과 같은 우주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죽기 전에 인류가 중력을 정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나의 소망이라면 소망이니, 머피가 중력방정식을 풀고 기뻐하는 장면을 보고 어찌 내가 기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물론 영화의 스토리 상으로도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플랜A를 성공시킬 수 있게 된 순간이니, 가히 클라이막스의 한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좀 있는 것 같지만 이 영화가 과학적 측면에서도 정말 흥미로웠던 부분은 블랙홀 안에서 바깥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 중력이라는 설정이다. 왜 0과 1(모스부호)로만 정보를 표현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데, 이는 정보의 "encoding"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중력을 통해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중력 자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그걸 상대방이 알아볼 수 있는 어떤 유의미한 형태로 변환하기 위해서 책을 일정 순서로 떨어뜨리거나 모래가 모이는 위치를 바꾸거나 시곗바늘을 움직이는 식의 간접적인 형태로 표출한 것이다. 이때 가장 쉬운 방법은 0과 1의 2가지 상태만으로 정보를 표현하는 것이고 결국 binary 인코딩을 사용한 것.
또, 사람들에 따라서는 본격적으로 우주여행이 시작되기 전 초반 40여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다는 경우도 보이는데, 나는 오히려 그 부분이 굉장히 현실감 있고 좋았다. 뒤쪽의 우주여행에 대한 motivation을 만들어주는 부분이기도 하고. 흔히 나오는 디스토피아 영화들처럼 어떤 일순간의 사건으로 갑자기 세상이 종말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늘어나는 자연재해(영화에서는 황사로 묘사)로 점점 사막화되고 생존 여건이 나빠져가는 상황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심리적·사회적 변화를 너무나 잘 표현했다. 거시적인 모습보다는 한 가족이 접하는 일상의 장면들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스토리의 구성은 SF물을 많이 접했던 사람들이라면 '이건 어디서 따오고 저건 어디서 따오고 요건 어디서 먼저 시도했고...' 등등의 생각이 많이 떠올라 식상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작품이 오히려 (하드) SF물을 별로 접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라나는 10대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우주개발을 꿈으로 삼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하드 SF에 가까운 물리학적 관찰과 표현을 넘어 가히 철학적 SF라고 봐야 하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세련된 영상미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도록 풀어냈다는 점이 오히려 미국 헐리우드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내공이라고 할 만하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공대생(...) 친구들이나 가족들과도 한번 더 보고 싶다. 기왕이면 제일 큰 스크린의 영화관에서. 오래오래 상영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아마도 가장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이브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외국에서 보내는 첫 크리스마스인데다 영국 킹스칼리지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에 직접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아래 동영상부터 보시라.
오늘 나는 저기서 솔로로 부르는 첫 장면을 불과 10m 앞에서 봤다. 이건 작년 동영상인데, 제대 쪽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가능했던 이유는 이렇다: 동서로 길쭉한 킹스칼리지 채플의 구조에서 제대와 가까운 자리(east side)는 100여석 정도, (화면에는 나오지 않지만) 제대가 가운데쪽에서만 조금 보이도록 가려진 중앙 오르간 벽 뒷편(west side)에는 600석 정도의 자리가 제공된다. 줄선 순서대로 입장하기 때문에 제대 근처에 앉으려면 새벽부터 일찍 줄서야 하는데, 나는 오전 8시 40분에 갔음에도 이미 자리 배정 인원의 거의 끝부분이었다. 그래서 합창단을 직접 보는 건 포기하고 있었는데, 위의 작년 동영상과 달리, 올해는 합창단의 입장 성가를 제대 쪽이 아닌 맨 뒤쪽에서 시작하였다! 운 좋게도 맨 첫곡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추가] 나중에 찾아보니 TV용으로는 따로 녹화를 미리 해두고 여기는 좀더 잘 알려진 캐롤들이 들어가는 듯. 오늘 예배 때는 현대적인(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캐롤들이었다. 시작 곡은 같으나 입장 방향과 곡 구성이 다른 것.
기다리는 줄에서 우리 일행 뒤에 어떤 아저씨와 그분 아들이 있었다. 교수님이 말을 붙이셔서 함께 이야기하다 알았는데, 그 아들이 얼마 전까지 합창단에 있다가 변성기로 지금은 합창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여기 합창단은 7살부터 들어갈 수 있는데 기숙학교(boarding school)로 학업과 합창연습을 병행하고, 변성기가 오면 합창에서는 빠지지만 학교에는 계속 머물 수 있다고 한다. 그 아이는 합창단 친구들이며 줄선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들이 많은지 인사한다고 계속 왔다갔다 했다. 지금 나와있는 합창단 CD에 그 아이도 참여했다고 하고, 아마 최근의 동영상 등에도 모두 함께 불렀을 듯. 작년쯤인가 한국 소년이 여기 들어갔다고 해서 뉴스에 잠깐 떴던 것 같은데 그 친구도 알고 있었다. (위에 동영상 틀어놓고 글쓰면서 보니까 그 한국학생도 중간중간 나온다. 오늘 본 학생은 동영상에서 한국학생과 마주보는, 제대 방향 바라봤을 때 왼편 첫줄 중간쯤에 안경낀 학생 같은데... 맞나 모르겠다)
아래 팁에도 적었지만, 제대와 가까운 안쪽 자리에는 들어가지 못했어도 여전히 소리 울림은 너무 멋있었다. 동영상이나 음악으로만 듣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꼭 이런 '클래시컬'한 음악이 아니더라도 음반도 들어보고 같은 곡의 라이브 공연을 가본 사람들은 아마 그 차이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리고 동영상은 어느 정도 편집된 거라 같이 부르는 소리보다 합창단 소리 위주로 들려주는 것 같은데, 실제로 사람들이 다함께 부를 때 채플 전체가 울리는 그 느낌은 가서 불러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노래의 장르가 이 소년합창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그래도 동영상의 몇몇 곡은 실제로 현대식 버전으로 부르기도 함), 나름대로 성당에서 청년성가대로 활동하고 이런저런 특송이나 공연에 참여해본 나로서는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다. 노래를 듣는 것도 멋지지만, 실제로 부를 때 자신의 음역 파트에서 소리가 맞아들어가면서 스스로 흡입될 때의 그 희열 또한 멋진 경험이기 때문이다. 첫 곡의 시작 솔로를 맡은 아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꼈을 때, 그리고 다함께 부르기 시작하면서 각 파트가 제 자리를 찾고 목소리가 안정됨을 느꼈을 때 그 부르는 아이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 많은 시간 연습하면서 힘들기도 하겠지만, 합창을 제대로 해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아닐런지. 솔로로 연주하거나 노래 부를 때와는 다른, 합창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다른 부분들이 분명 있다. 가족들이나 성가대 사람들과도 함께 보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그 점은 아쉬울 뿐이다.
사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하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도 있고 이번엔 좀 조용히 쉬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해서 캠브리지에 머물고 있는데, 다른 인턴 친구들은 다들 햇빛의 땅(...) 캘리포니아로 가족들 만나러 유럽 대륙으로 떠나서 조금 썰렁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예배 참석 한방으로 그 모든 썰렁함을 날려버리고 합창에 대핸 여운이 꽤 오래 갈 것 같다.
참석자 Tips
ps. 페이스북에도 적었지만, 이거 함께 보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줄서서 말동무하며 기다려주신 교수님과 교수님 사촌동생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D
부모님 결혼 30주년 기념과 겸하여 대학원 들어온 후 제대로 쓰는 첫 휴가로 4박 5일 일정으로 일본 교토·오사카·나라 지역을 다녀왔다. 최근에 학회 출장 등으로 1년에 한번꼴로 캐나다, 포르투갈 등을 다녀오기는 했지만 자유여행으로 간 건 꽤 오랜만이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의 애증의 관계를 가진 나라이면서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부분도 매우 다른 부분도 함께 있기에 여러가지 느낀 점이 많았다.
이번에 일본 가서 가장 크게 바뀐 생각은 (조금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외벽을 타일로 만든 건물이 충분히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카이스트의 하늘색 목욕탕 타일 건물(...)에 질려있는 대다수의 카이스트 사람들에게는 꽤 충격적인 소리로 들릴 수 있겠다.
일본에서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건물들 중 타일을 쓴 경우를 매우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네 상가 건물 정도에서나 쓰는 정도이지만, 일본에서는 오사카 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인 우메다 스카이타워나 그 옆의 호텔 건물도 외벽의 상당 면적을 타일로 바를 정도로 타일 사용이 보편화되어 있다. 한국에서 타일 건물의 인상은 덕지덕지 붙여놓은 타일에 먼지가 빗물 타고 흐른 땟국물이 줄줄 자국이 남아서 매우 지저분하고 값싼 느낌인데, 일본의 타일 건물들은 타일을 붙인 것이 가히 예술의 경지다. 건축가인 아버지 말씀으로는 큰 건물의 경우 미리 공장에서 일정 사이즈의 판넬에 타일을 붙여서 그러한 판넬을 외벽에 붙이는 방식으로도 만든다고 하는데, 일단 타일 붙이기 자체가 거의 손으로 해야하는 작업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 섬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일을 붙일 때 각 타일의 네 귀퉁이가 표면으로부터 일정한 높이를 유지해야 울퉁불퉁해보이지 않고 멀리서 빛에 비춰진 옆면을 봤을 때 각각의 타일이 따로 놀지 않아 마치 하나의 거울 표면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데, 모든 타일 건물이 이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또한 벽돌도 마찬가지지만 타일을 붙일 때도 타일 사이의 가로세로 간격이 일정해야 아름다운데, 그 간격을 자로 잰 듯 일정하게 해서 전혀 어색함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또한 건축가로서 타일을 외벽 재질로 쓰고 싶어도 한국에서는 건축주들의 인식도 안 좋은데다 이처럼 숙련된 타일시공 기술자들을 찾기가 어려워서 일본에 오면 이런 부분이 샘이 난다고까지 이야기하실 정도였다.
첫째날과 둘째날 묵었던 교토의 료칸 또한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소박한 목조 건물 느낌의 내부 인테리어에서 대단히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이사올 때 인테리어 공사를 했을 때 어머니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천장 몰딩이나 창틀·문틀과 벽면 벽지가 이루는 경계선들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인데, 료칸의 벽지들은 정말 흠잡을 곳 하나 없이 모든 경계선과의 마무리가 아주 일정하고 깔끔했다. 나무 문짝도 그렇고 화장실 타일 붙여놓은 것도 그렇고 그동안 어머니가 한국에서 불만이었던 '철저한 마무리'의 가장 이상적인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디테일함은 비단 건축물들뿐만 아니라 각종 도구과 음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릇이나 젓가락, 각종 수공예품 또한 마찬가지고 일본음식이 보는 맛에 먹는다고 할 만큼 섬세하게 차려져나오는 것 또한 이 연장선 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다른 섬세함의 의미로, 오사카 우메다역의 요도바시카메라(일본에서 가장 큰 전자백화점 체인)와 교토·오사타의 시장 골목을 구경하고 나서 느낀 점은, 물건을 만드는 것도 디테일하지만 물건을 모아놓고 파는 것도 디테일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젓가락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있어서, 정말 몇백·몇천원짜리 값싼 젓가락부터 1세트에 70만원이 넘는 것까지 있는 식. 어떤 한 종류의 물건을 팔더라도 그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고 깊다. 지팡이만 파는 가게는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지팡이 가게를 생각나게 했다. 요도바시카메라에서는 이것저것 다 취급하는 카메라 매장들이 여러 개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세세한 품목을 방대하게 취급하는 가게들이 모여있었다. 예를 들면, 카메라 삼각대만 파는 코너나 카메라를 어깨에 걸치는 끈만 파는 코너, 카메라 가방만 모아놓은 코너가 따로따로 있는데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이걸 보면서 딱 드는 생각이, 취미 생활 좀 하려면 일본이 정말 천국이겠구나 하는 것이다. 괜히 오타쿠의 나라가 아니지 싶다. 아주 일부의 모습만 봐도 이 정도인데, 각각의 세부 카테고리로 들어가면 얼마나 방대한 디테일들을 취급하고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매니아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는 것들은 뭔가 파는 곳이 없어서 구하기도 쉽지 않고 그럴 것 같은 느낌인데, 일본에서는 웬만한 건 다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요도바시카메라에서 카메라 메모리와 액자 틀을 조금 사고 계산하는데, 계산하던 점원이 우리가 외국인인 걸 알고 5% 부가세 면세적용을 해주겠다면서 여권 정보와 함께 구입 품목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카드를 작성하였다. 카드 양식을 굉장히 꼼꼼하게 하나하나 적고 한번 더 손가락으로 한글자 한글자 훑으면서 읽어보더니,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을 불러서 한번 더 확인을 시키고, 그 직원이 간 다음 다시 그 카드와 같은 크기로 구멍이 숭숭 뚫린 종이를 꺼내어 양식에 꼭 들어가야 하는 칸 중 빈 것이 없는지 확인까지 다 하고 나서야 계산이 끝났다. 단순히 친절한 것으로 보기에는 그 과정이 고민 없이 너무나 착착 진행되어 아마도 매뉴얼에 뭔가 이렇게 하라고 써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매뉴얼도 디테일하고 그걸 있는 그대로 지키는 직원도 디테일하다고 할 수밖에.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다소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는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또 한 가지 디테일하다고 느낀 부분은 교통신호 체계다. 일본에서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생략하고(하지만 택시 탈 때 운전석 문을 열려고 해서 기사님들이 당황했던 적이 있는 건 사실..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거다. ㅋㅋㅋ),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신호가 바뀔 때 약간의 시간 딜레이를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방향 길과 B 방향 길 2개의 직선길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A 방향에 빨간불이 들어와있고 B 방향에 초록불이 들어와있다가 신호가 바뀐다고 하자. 우리나라에서는 B 방향이 빨간불로 바뀜과 동시에 A 방향에 초록불이 들어오는데, 일본에서는 1~2초 가량의 지연 후 초록불이 들어온다. (이게 모든 지역에서 다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빨간불로 바뀔 때 노란불이 먼저 들어와 신호변경을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래도 추가적인 딜레이가 더 있는 것이다. 이것도 위와 마찬가지로 실수를 방지하는 일종의 안전장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면 융통성이 지나쳐서 문제인데 일본은 융통성이 너무 없어서 문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철저함과 섬세함은 우리도 배워야 할 부분이다. 무언가 짓거나 만들 때 화려하진 않더라도 그 끝 마무리까지 완벽하고 깔끔하게 하는 것이, 겉으로만 화려하고 실제로 곰곰이 뜯어보면 대충대충 투성이인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는가. 일본인들의 이러한 부분만큼은 존경할 만하다.
기차든 전철이든 KTX든 우리나라에는 각 광역시별 지하철과 코레일만 알면 별다른 고민을 할 게 없고, 하나의 승차권이나 교통카드로 지하철끼리는 모두 환승이 가능하다. 그런데 일본은 철도의 종류가 굉장히 많았다. 우리가 이용한 노선만 해도 JR 야마토지선, 한큐 오사카·교토 구간, 킨테츠 나라선, 오사카 시교통위에서 운영하는 지하철까지 4가지 운영 주체가 따로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각각이 독립적인 노선을 운영하고 있고, 우메다역이나 난바역 같은 곳은 2~3개의 전철 회사들이 각자 역을 운영하고 있어서 환승할 때도 헷갈리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게다가 승차권도 다 따로따로. (사실 관광객들을 위한 간사이-쓰루토 패스 같은 것들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이번 여행은 내가 미리 뭔가 조사하고 예약하고 그럴 시간이 없었기에 그냥 그때그때 표를 샀다.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안 거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전철로 되어있는데 전철의 속도도 우리나라보다 좀더 빠르게 운행하는 것 같다. 내가 탔던 노선들 대부분 시내 중심부에서는 지하로 가다가 교외지역으로 나가면 지상으로 나오게끔 되어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이른바 '철도 오타쿠'가 몇 있는데, 과연 그런 사람들이라면 일본은 또 다른 의미의 천국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한 종류의 지하철만 있는게 아니라, 각 사철(私鐵) 별로는 급행(걔네들은 '쾌속'이라고 표현함) 등의 차량 등급도 여러 가지고 열차에 앉는 방식도 지하철처럼 벽쪽으로 일렬 좌석이 있는 것부터 우리나라 무궁화·새마을 같은 것도 있고, 좌석 등받이 위치를 바꾸는 것도 새마을처럼 좌석 자체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등받이를 들어올려서 옮기는 식이라든지 다양한 방식들이 혼재하고 있었다.
교토에 있었던 첫째날에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를 둘러본 뒤 교토 시내의 골목을 돌아다녔는데, 료칸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서 관광객들 잘 가지 않는 동네 골목길을 지나가게 되었다. 어머니가 오랜만에 오래 걸으니까 발이 아프다고 하시면서 얇은 양말이나 스타킹을 샀으면 하셨는데, 마침 동네 수퍼마켓이 보여 들어갔다. 가게 주인과 동네 아줌마들이 앉아있었다. 이 사람들은 영어가 안 되니 손짓 발짓으로 어떻게 어떻게 찾아 구입하려는데,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하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싸이의 강남스타일부터 시작해서(...) 정우성, 빅뱅, 배용준 등등의 이야기가 줄줄줄...;; 역시 일본 아줌마들이 진짜 한류 팬이라더니 과연 허언이 아닌 듯.
하지만 여전히 역사문제에서는 아쉬운 점들이 보였다. 저녁 시간이면 료칸과 호텔에서 TV를 보았는데, 참 재미있기도 황당하기도 한 것은 한 채널에서는 한국드라마를 더빙 없이 일본어자막만 넣은 채 방송하고 있는데 바로 옆 채널에서는 '일한·일중 영토 분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주제로 각계 전문가를 모셔놓고 토론회(...)를 하고 있더라는 것. 한국드라마에서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어느 사극에서 반정을 모의하는 사대부 가의 대화 장면이 나왔을 때다. 명나라 사신이 오는데 왕을 바꿔치운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물어보자 대답하는 사람이 언제 우리가 걔네들 눈치를 보며 살았느냐 뭐 이런 대화를 하는데, 일본어 자막에 명나라를 명나라로 표현하지 않고 '종주국'이라는 한자 표현을 써놨다. 헐.... -_-; 우리말과 같은 뜻으로 쓴 것이라면 진짜 헐이다.
디테일한 부분은 정말 일본에서 배워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의 어두운 모습들도 많이 보였다. 특히 길거리와 지하철 등에서 보는 지난 잃어버린 20년을 지내온 세대들(대략 내 나이또래부터 30대 후반 정도까지)의 모습들은 한결같이 우울하고 외로워보였다. 오히려 좀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할아버지·할머니들이나 관광지에 놀러온 유치원생·초중고 학생들은 밝고 명랑해보였는데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을 타보면 직장인들이 피로에 쩔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단지 피곤해서 지쳐있는 모습과는 다른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달까. 그 광경에서 관찰한 또다른 사실은 대부분의 직장인이 정말 한결같이 똑같은 검은색 정장바지에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더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금융권 등 정장 입고 근무하는 회사들이 있지만, 일본은 그런 회사들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것 같고 동시에 정장바지와 와이셔츠 색깔의 variation 폭이 매우 적다. 처음엔 좀 섬뜩할 정도. 회사 로고가 박힌 뱃지들을 외투에 붙여서 서로를 구분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말로는 일본 회사들이 규율이 엄격하고 문화 자체가 서로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데, 아마도 그런 것들이 젊은 직장인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해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 또한 일본사회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교외 지역을 달리다보면 광고 전광판을 꺼놓고 '절전운용중'이라는 표시를 붙여놓는다든지, 밤이 되었을 때도 가정집들이 전등을 거의 켜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는 '파이팅 일본' 이런 제목을 단 연예인 공연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NHK에서 저녁 뉴스가 끝나고 "내일로"라는 제목으로 각계각층 사람들이 한명씩 나와서 빨간색 꽃을 한송이씩 들고 노래 한 소절씩 돌아가며 부르다가 나중에는 함께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전체 해석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살아갑시다, 꽃들이 피어요 이런 가사들이 보이고 추모하는 분위기와 제목, 설명 등으로 미루어볼 때 아마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침체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약간은 집단주의적인 면도 보이는데, 각 개인은 사실 얼마든지 행복하고 밝게 살 수 있음에도 일본 사회가 처한 어려움을 마치 자신의 어려움과 동일시하는 듯한 분위기도 느껴졌다. 그 우울감은 여행 내내 일본을 짓누르고 있었다.
첫째날과 둘째날은 교토에서, 셋째날은 오사카에서, 넷째날은 나라를 다녀왔고, 마지막날은 다시 오사카에 있었다. 교토에서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은각사와 금각사, 헤이안신궁, 유명 일본 건축가인 안도다다오의 '명화의 정원', 용안사의 석정 등을 보았고, 오사카에서는 오사카성 천수각과 해유관(가이유칸)을, 나라 가는 길에 담징의 금당벽화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5층 목탑이 있는 법륭사(호류지)를 보고 나라에서는 사슴공원과 동대사(도다이지)를 보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절은 은각사와 법륭사다. 은각사는 섬세함이 묻어나는 정원과 소박한 건물들의 느낌이 좋았고, 법륭사는 진짜 절 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점과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영향을 때문인지 건물의 처마·용마루 곡선이 한국의 것을 많이 닮아있어 그 편안한 느낌이 좋았다. 특히 법륭사의 5층 목탑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22줄짜리 일기장 6페이지를 가득 채워 기록으로 남겼던 KBS 황룡사 다큐멘터리에서 황룡사와 그 9층 목탑이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가장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지목된 건축물이기에 내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담징의 금당벽화는 사실 제대로 들여다보기는 힘들었고 뒷편에 따로 조성된 박물관 코스에서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법륭사의 5층 목탑에 사용되었던 부재가 함께 전시되어 역학적으로 지붕과 상단부를 어떻게 떠받치고 있는지 자세히 보여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경주 황룡사가 13세기 몽고침입 때 불타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멋있었을까.
용안사의 석정은 내 또래 세대에서 중고등학교 미술책을 봤다면 다들 알고있을 바로 그것. 일본식 정원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소개되는데, 하얀 자갈에 살짝 패턴을 내고 조형물이라곤 중간에 몇개 놓여있는 돌이 전부인 정원이다. 그것이 바다 위의 섬들을 형상화한 것인지 아니면 무릉도원을 그린 것인지 그 해석은 각자에게 맡기고 있다. 나는 정원 뒷편의 울창한 숲과 기름을 넣어 지은 흙담에서 배어나온 자연스러운 무늬가 정원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더 멋있었다.
동대사는 16m 크기의 세계 최대 좌상 금동불상과 이를 보호하는 높이만 50m에 달하는 거대한 목조 대불당의 모습이 가히 스케일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곳이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최초의 대불당은 지금보다 더 컸었다고 하고, 양 옆으로는 그보다 더 높은 7층 목탑이 서 있었다고 한다. 지진 등으로 파괴되어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이것도 법륭사와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에 한국인들이 건너가 도움을 주고 지은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신사와 절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절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절들처럼 불상을 모시고 스님들이 수행하는 그런 곳이고, 신사는 어떤 특정한 신(토착신앙으로 각 지방의 수호신일 수도 있고 특정한 주제를 나타내는 신일 수도 있고)을 모셔서 특정 지역을 수호하기 위한 염원을 담아 짓는 것이다. 헤이안 신궁의 경우는 수도를 교토에서 도쿄로 옮길 때 교토의 지속적인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땐 그날 저녁 때 무슨 공연을 하는지 무대 설치가 한창이었는데, 뭔가 조심스럽고 신성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행사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한 가지 예외는 이세신궁이라 하여 일본 신화에서 우리의 단군과 비슷한 위치의 인물을 모신 신사가 있는데 거기는 별다른 건축물은 없지만 사진도 못 찍게 하는 등 굉장히 신성한 장소임을 강조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여행을 마치고 든 생각은, 일본이 살아볼 만한 나라인데 지진만 안 나면 참 좋겠다는 것. 음식도 내가 다녀본 나라들 중 가장 깔끔한 편이었고 작은 상가건물 유리창들마저 반짝반짝 빛나는 그 깨끗한 거리와 전통·현대 건축물들의 정교함은 일본인들의 부지런함과 철두철미함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 선조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던 나라이기도 하고. 하지만 최근 점점 우경화되는 정치 환경과 여전한 역사왜곡 문제, 그리고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사회적 우울감은 일본이 넘어서야 할 산일 것이다.
원래는 휴식의 개념으로 놀러가는 거였지만, 막상 NSDI 데드라인 후 텍스트큐브 저장소 github 이전 작업으로 거의 밤을 샌 다음 집에 운전해서 온 데다 제대로 뻗어서 자지도 못하고 12시간만에 짐싸서 비행기 타고 가려니 잠이 부족해서 좀 힘든 여행이었다. 생활리듬도 갑자기 바꿔야 했고. 그래도 규칙적으로 먹고 자고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 많이 걸어다녔더니 몸도 좀 건강해진 것 같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좀더 밝아진 일본의 모습을 보러 갈 수 있기를.
3주 전에 같이 보려고 예약했으나 갑작스런 일정이 생겨서 함께 못 본 그분을 위해 아직까지 미루어왔던 포스팅. 하지만 사실 니들웍스 블로그에 써놓고 이미 트랙백 수십군데 뿌렸다는 거. ㅋㅋ 여기도 링크한다.
1학년 때 새내기 같은 반이었다가 실내악 앙상블을 들으며 피아노 4-hands 곡을 함께 연주하기도 했었던 진혁이 형과 함께 장영주(사라 장)의 바이올린 리사이틀 공연을 보고왔다. 제대로 된 클래식 공연은 꽤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진혁이 형은 이런저런 일로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자로 서본 적도 있을 정도지만 난 오늘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은 브람스의 단악장 소나타와 바이올린 소나타 3번 d단조(Op.108), 테오파니디스의 판타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였다. 피아니스트로는 줄리어드 음대 시절 술친구였다는 앤드루 본 오이엔이 함께 하였다. 위의 곡들 중 앞의 둘을 첫번째 세션에, 뒤의 둘을 두번째 세션에 배치하였다. 공연을 보고 난 후 진혁이 형과 나의 공통된 평가는 브람스를 너무 얌전하게 갔다는 것. 나는 뭔가 표현이 덜 된다는 느낌을 받았고, 형은 터져줘야 할 곳에서 안 터져주고 너무 예쁘게(?) 연주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대신 후반부의 프랑크 소나타는 익숙한 듯 풍부하게 연주하였다는 평이 나왔다.
두번째 세션에서 판타지 곡이 끝나고 박수를 쳐야 하는데 피아니스트와 장영주가 그냥 바로 시작해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다들 프랑크 소나타의 첫 악장 끝난 것이 판타지 곡의 끝이라고 헷갈렸는지 이때 박수가 터지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나는 실내악 앙상블 들을 때 오케스트라 악장을 하던 경곽 18기 선배가 연습·연주하는 걸 한 학기 내내 들었던 덕분에 프랑크 소나타 3악장은 익숙했는데, 나중에 3악장 들어가고 나서야 '응? 언제부터 프랑크 소나타였지' 했을 정도였으니까...-_-;;;;
앵콜로 4곡 정도를 했는데, 여기에선 대중들에게 친숙한 클래식 곡들을 들려주었다. 사랑의 인사라든지, 비발디 사계 중 겨울 마지막 악장 같은 것들이었다. 이때는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기보다는 친숙하고 음악 좀 배웠다면 한번쯤 연주도 해봤을 법한 곡을 대가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연주하는지를 보여주었다는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특히 현을 아주 천천히 움직이면서도 현을 끝까지 사용하면서 가늘고 일정한 음을 내는 기술이 놀라웠다. 역시 엄청난 연습의 결과겠지.
요즘 피아노도 별로 못 치고 있어서 실력이 줄까봐 걱정될 정도인데, 프로급은 아니어도 적어도 (클래식 덕후가 아닌--) 남이 듣기에 적당히 들을 만큼은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나름의 레퍼토리를 갖춰 연습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슬슬 로보틱스 플젝과 시험공부를 시작해야겠다... ㅠㅠ
얼마 전 장기하의 1집 활동을 마무리하는 드라마콘서트를 보러갔다왔다. 무려 전석매진될만큼 인기있는 공연이었지만 그분이 미리미리 예매해둔 덕분에 편안하게 가서 볼 수 있었다.
공연 시작이 7시였는데 명동에서 5시에 만나 저녁 먹고 남산예술센터(작년 이맘때쯤 대안언어축제 & P-CAMP 참가한답시고 지나가봤던 곳이라 위치는 잘 알고 있었음)로 가기로 했는데, 다음지도에서 추천해준 지하철 예상 소요 시간만 달랑 보고 갔다가 늦어버리는 바람에 저녁을 좀 허겁지겁먹어야했다.;; 어쨌든 주말 저녁 명동 거리의 살인적인 인파(...)를 뚩고 무사히 늦지 않게 공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쨌든 표를 받고 미미시스터즈 달력을 사면 나중에 도장 찍어준다는 말에 달력도 사고 막상 예습해가야 했던 나는 사실 장기하 음반도 없었던지라 급히(?) 사고(...) 어쩌구 한 다음 공연장에 들어갔다. 공연장은 규모가 아주 큰 편은 아니었는데, 원래 연극용으로 만들어진 거라 그렇다고 한다. 앞뒤 좌석의 높이차가 커서 어느 자리에서나 거의 시야 방해 없이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우리 자리는 왼편 입구를 따라 들어가 가운데블록의 중간 통로쪽이었다.
공연은 드라마콘서트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드라마나 연극적 요소가 중간중간 들어있긴 했지만(장기하와 똑같이 생긴 게으름뱅이는 누구였을까 궁금하다 ㅋㅋ) 이들이 강조되기 보다는 1집에 나온 곡들을 이용한 전체적인 스토리텔링과 영상미디어의 활용이 돋보였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장불륜드라마'의 전형적인 삼각관계 폭로 장면을 보여주다가 세번째쯤 보여주고 나서 미미시스터즈와 실제 장기하가 비슷한 장면을 연기하며 노래와 함께 풀어내기도 했다. 시작과 끝에선 어느 대형전자쇼핑몰의 카트에 담긴 시선이 어떤 TV 속의 남자한테 다가가 그 남자가 마치 객석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아주 코믹하게 사람들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게 만들면서 공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장치 역시 신선했다.
장기하의 노랫말들을 보면 정말 '별일 없이 산다'는 제목처럼 별볼일 없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가사나 시를 보면 뭔가 어떤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는 않을지 유추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겨냥하여 자꾸 음미하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거기에 장기하 특유의 목소리 색깔과 그냥 팝도 아니고 락이나 메탈도 아니고 발라드도 아닌, 굳이 말하자면 현대적 folk라고 말할 수 있는 독특한 음악 스타일이 어우러져 뭔가 새로운 것을 목말라하던 사람들의 요구를 적절히 채워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데뷔 후 갑작스런 인기몰이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을 장기하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컴백하게 될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또한 사람들이 어째서 그렇게 갑자기 장기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 근원엔 무엇이 깔려있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미미시스터즈가 약방의 감초처럼 받쳐주듯, 장기하의 매력 또한 쭈욱 이어져나가길.
경고 : 스포일 주의
지난 토요일에 라디오키즈님이 주최하신 블로거 영화모임이 있었다. 덕분에 내심 기대하고 있던 WALL·E를 볼 수 있었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컴퓨터 그래픽은 이제 더 새로울 것도 없을 정도였고, WALL·E와 Eve라는 두 캐릭터의 묘사와 '소비가 미덕'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거대 기업 BNL로 인해 쓰레기로 가득찬 지구와 이를 피해 도망간 인간들을 통해 시사하는 환경에 대한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뭐가 없을까 기대했었는데 그래도 좀 벙 찌게 만드는 것이 하나 나와서 기대를 실망시키진 않았다;; (보면 안다..ㅋㅋ) 또한 어떤 로봇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로봇 시스템이 부팅되고 나서 애플컴퓨터가 부팅될 때 나는 그 '짠~'하는 소리도 재미있는 패러디였다. (나는 잘 못 봤는데 크레딧에 스티브 잡스가 있다는 얘기도... -_-)
아무튼 WALL·E를 보고나선 형과 함께 예매해둔 다크나이트를 보러 갔다. (용인 수지의 집에서 서울 홍대에 갔다가 다시 수원으로.. 북에 번쩍 남에 번쩍..)
기존의 배트맨 영화 시리즈가 말 그대로 권선징악과 화려한 특수 효과로 무장한 '헐리웃 영웅'이 주는 이미지를 잘 표현하여 어떻게 보면 어린이용 영화에 가까웠다면, 이번의 다크나이트는 배트맨과 조커, 그리고 고담시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하비 덴트의 심리 묘사를 통해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문명인으로 포장된 사람의 내면이 드러났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 등에 대한 고뇌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조커 역을 맡았던 히스 레저의 연기가 가장 압권이었고, 예전에 조커를 연기했던 배우가 이게 배우를 잡아먹는 역할이니 조심하라고 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정말 그 역에 완전히 빠져서 연기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흉하고 미치광이스럽지만 또한 동시에 사람의 가장 추악한 내면을 여과없이 드러내어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조커. 조커가 '나는 배트맨이 있기에 완성된다'고 했듯 배트맨 또한 조커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얼굴의 반쪽을 화상으로 잃어버린 하비 덴트가 보여주는 양면성도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요소라 할 수 있겠다.
간만에 아무 생각 없이 즐겨본 하루였다. 위 두 영화는 어쨌든 영화 좀 본다 하는 분들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로 추천하겠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난 화요일(10일)부터 토요일(14일)까지 노르웨이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모토는 휴식과 기차였다. 특히 오슬로-베르겐 구간 철도는 세계적으로도 손꼽는 아름다운 코스라고 했고, 6~7시간씩 기차에 앉아서 옆자리 사람과 이야기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 기차로 가기로 한 것이다. 사실 스톡홀름에서 베르겐으로 바로 가는 저가 항공을 이용하면 기차로 두 단계 거쳐서 가는 것과 비슷하거나 더 싸지만, 어차피 노르웨이 수도인 오슬로를 놓치기도 아까웠고 풍경을 감상하며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었기 때문인 것도 있다.
※ 아래 스크롤 압박 주의!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여행갈 때 절대 짐을 바리바리 다 싸들고 갈 필요가 없다는 것. 3박4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라면 대충 갈아입을 옷만 두어 개 챙기면 되고, 일주일 이상 되는 긴 여행의 경우에는 빨래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겨울의 경우 옷이 무거운 대신 덜 갈아입을 수 있으므로 사실 피장파장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여행 필수품:
뭐 아프리카 오지를 탐험한다거나 치안이나 위생 조건이 열악한 국가에 간다면 다르겠지만, 유럽 국가를 여행할 경우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는 것 말고는 사실 크게 특별히 대비할 것은 없는 것 같다. 혼자 다닐 때 정신 바짝 차리고 적당히 경계를 하면서 다니는 건 기본이고.
스톡홀름에서 오슬로로 가는 기차의 출발은 10일 오후 2시 35분 기차였다. 옆자리의 누군가와 수다 떨 것을 기대했으나 사람이 너무 없어서(...) 다들 자리 두세 개씩 차지하고 다리 쫙쫙 펴고 가는 그런 상황이라 그냥 혼자 경치 구경하고 Lonely planet이나 읽었다. -_-;
사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스웨덴 쪽은 노르웨이와의 북쪽 경계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평지(구릉 지대)라서 평화로운 농촌 풍경 말고는 별로 볼 것은 없었다. 스웨덴-노르웨이 국경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라서 안내방송 듣고 나서야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러시아 여행 갔을 때 울창한 침엽수림 속에 핀란드측과 러시아측 각각이 길게 철조망을 두르고 있던 것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사실 국경을 넘어가도 눈에 보이는 풍경이 똑같아서(집이나 마을 생김새도 그렇고, 표지판이나 언어마저 비슷하니...) 별다른 감흥(?)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뭐 여권 검사 이런 것도 없어서 여권 안 가져갔어도 됐을 정도다. (물론 호스텔 등에서 체크인할 때 신분증을 요구하기도 하니 당연히 갖고 다니긴 해야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의 신분 검사는 전혀 없었다.)
아무튼 오슬로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둔 Anker Hostel이란 곳을 찾았다. 스톡홀름에 비해 현대적인 건물들도 많고(우리가 보기엔 아니지만 얘네들 입장에선 sky scraper라고 풀릴 만한 것들) 길거리도 복잡해서 처음에 방향이 살짝 헷갈렸지만 무사히 찾아갈 수 있었다. 다음 날 일어나 옆에 붙은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80 Kr 였는데 어차피 warm meal 먹으려면 밖에서도 비슷한 가격이라 그냥 호텔밥 먹음) 체크아웃한 후 중앙역 락커에 짐을 맡겼다. (유럽 여행 팁: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각 도시에 있는 중앙역 락커에 짐을 보관해두면 편리하다.) Tourist Information을 찾는데 표지판을 보고 따라갔더니 아무것도 없어서(마지막 장소에 표지판 하나가 지워져 있었는데 임시로 문을 닫은 것 같기도) 그냥 론리 플래닛에 의존하여 일정을 잡았다.
첫번째 방문한 곳은 비겔란드 공원(Viegeland Parken)이었다. 중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Majorstuen stasjon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가거나 트램을 이용하면 된다.
비겔란드 공원에서 다시 시내 중심가로 돌아와 오슬로 대학과 시청사를 둘러보고 페리 터미널로 향했다. Byødy 반도를 가기엔 페리가 가장 편리하고 또 일반 교통카드로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Byødy 반도에는 folk museum과 viking museum 등이 있는데 그 중에 viking museum만 둘러보았다. 이 박물관은 서기 900년대 당시 유력자의 무덤으로 땅 속에 묻힌 바이킹선을 발굴해 만들어진 것으로, 실제 바이킹선이 어떤 모습인지 볼 수 있다. 박물관 외의 지역은 일종의 부자촌을 형성하고 있는 듯했는데 잘 다듬어진 거리와 고급스런 주택들이 언덕을 따라 주욱 늘어서 있었다.
오슬로 시청을 해안 쪽에서 바라본 모습 (보통 다들 정문 쪽만 찍길래 여기도..-_-)
Bygødy 반도로 가는 페리에서 찍은 스키점프대
바이킹 박물관에 전시된 실제 바이킹선의 뱃머리
다시 시내로 돌아와서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Akershus fortress에 올랐다. 오슬로의 경치가 눈에 잘 들어오기도 했지만 다른 피요르드처럼 험한 지형을 가지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는 오슬로 피요르드도 대충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었다.
베르겐 행 기차가 오후 4시 7분이었기 때문에 3시 40분 정도까지 중앙역에 도착하면 되었으므로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이때 domkyrka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전면 보수공사로 2009년까지 출입금지라서 그냥 트램 타고 시내 한 바퀴 돌았다. 도중에, 교차로 가운데에 물로 채워진 작은 분수가 있고 차가 못 지나가는 그곳에 트램 라인을 놓아 물 위로 트램이 지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노르웨이가 물가 비싸다는 소리는 뭐 예전부터 들어왔지만, 실제로 가보니 장난 아니었다. 현재 환율은 대략 1 Kr1 = ₩200 정도라고 보면 되는데, 오슬로 시내 교통카드 1일 정액권이 60 Kr였던 것 같고 보통 길거리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으면 50 Kr, 좀더 제대로된 warm meal을 먹는다면 적어도 80~100 Kr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편의점이긴 했지만 프링글스 2통을 묶어서 50 Kr = 1만원에 파는 걸 보고 기겁했다...-_-) 커피 한 잔의 경우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15~25 Kr 범위에 있다고 보면 무리 없을 듯. 노르웨이 학생의 말에 의하면 대학 구내 카페테리아처럼 싸게 파는 곳에선 7 Kr 짜리도 있다고 한다. 스웨덴보다 대충 10 Kr씩 더 비싼데 화폐 가치도 더 높으니(1 NOK = 1.17 SEK) 물가가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사실 스웨덴도 비싼데 5개월 넘게 살았더니 적응이 되어버렸다. orz)
여기는 말이 따로 필요 없을 것 같다. 사진으로 감상.
이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이 철도의 장점
해발 1222미터까지 올라가는데 대략 1000미터 정도부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최고 지점에 도착했을 때 열차 내부 모습. 열차가 굉장히 고급스럽고 깔끔하다.
다시 고도가 내려가며 진짜 피요르드를 감상할 수 있다.
오후 4시 7분에 출발하여 10시 35분에 도착. 그러나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환하다.
노르웨이 철도청이라고 볼 수 있는 NSB가 판매하는 Sognefjord in a nut shell 투어를 이용했다. 오전 8시에 출발하는 express boat를 타고 깊숙히 위치한 Flåm이라는 작은 도시에 내려 해발 800m 높이의 Myrdal까지 연결되는 Flåmsbana라는 별도 열차 구간을 이용하고 Myrdal에서 Bergen으로 가는 기차로 환승하는 방식이다. (Myrdal은 Oslo-Bergen 철도 구간 중간에 있는 역이다.)
베르겐부터 피요르드 초입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리므로 대충 눈을 붙이든지 해도 괜찮다.;;
피요르드 초입에서 배 뒷쪽 2층 갑판으로 나와봤다.
왜 이런 걸 볼 때마다 Total Annihilation이 떠오르는 걸까;;;
제법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너무 가파른 곳에는 나무가 그리 많지 않다.
Flåm에 도착해서 어느 독일인 아저씨·할아버지(부자 관계)와 앉아서 점심도 나눠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조금 하며 1시간 정도 쉰 후 Myrdal로 가기 위한 Flåmsbana에 올랐다. 이 철도는 194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20km 정도를 가는 동안 800m 고도를 오른다.
지형이 험하기 때문인지 터널이 많아서 사진찍기는 쉽지 않다. 저 폭포에서 5분 정도 시간을 주는데, 갑자기 노래소리가 들리며 성벽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가 나와서 안무를 하는 걸 보고 좀 황당했었다;;;
베르겐으로 돌아오니 오후 6시 정도였다. 해가 지려면 5시간은 남아있었으므로 무엇을 할까 하다가 일단 호스텔에 들어가서 저녁을 차려먹기로 결정.
전날은 몰랐었는데 이때 보니 호스텔 리셉션 위에 커다란 동양화 같은 것이 있어 살펴보니 한국분이 남기고 간 혁필화였다.
그 다음엔 호스텔 같은 방에 있던 홍콩 출신 친구와 잠깐 얘기를 하다가 저녁은 나중에 먹기로 하고 간단하게 초코렛과 음료수를 사서 케이블카에 올라갔다. 해발 300미터 고도에서 베르겐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풍경은 아래 사진으로...
내려올 때는 굽이굽이 나 있는 산책로를 이용했는데, 깔끔하게 다듬어진 길과 울창한 숲, 그리고 막 보슬비가 내린 산으로 비치는 바다에서 반사된 태양빛 등으로 아주 환상적이었다. 그 홍콩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정말 삼림욕을 했던 것 같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심지어 피요르드보다도.)
다음날은 저녁 10시 58분(...)에 출발하는 오슬로행 기차를 타기 전까지 딱히 정해놓은 할 일이 없었다. 일단은 체크아웃 후 짐을 중앙역 락커에 맡겨둔 다음 관광안내소에 가서 시내에 볼 만한 게 뭐가 있나 대충 봤는데, 베르겐 시립미술관과 Grieg 홀(Grieghallen), fish market 말고는 대부분 시내에서 멀리 나가야 하는 것들이었다. 혹시나 Grieg의 생가 옆에 지어진 실내악 공연장에서 음악 공연이 있으면 보러 갔을지 모르겠으나 평일이라 그런 것도 없어서 패스.
Bryggen의 오래된 목조건물 보존 지역.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것 같다.
수산시장 모습. 연어와 캐비어 등을 주로 판다.
여기서 훈제연어 진공포장된 것을 사서 스톡홀름에서 맛있게 먹는 중;;
게다가 아래에도 썼듯 오전 내내 호스텔에서 어느 아저씨랑 수다를 떨었더니 Bryggen 경치 구경하고 수산 시장에서 간단하게 연어 샌드위키로 점심 때우고 시립미술관 보고 나오니 이미 어지간한 박물관은 다 문 닫을 시간이었다. 미술관에서는 노르웨이 낭만파 작가들의 그림과 뭉크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유명한 뭉크의 '절규' 그림은 오슬로 시립미술관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없었다. Grieghallen은 티켓을 따로 사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또 패스; 그래서 시립도서관(어째 요즘 시립도서관 찾아가는 맛들인 듯-.-)에 갔는데, 마침 론리플래닛 코리아편(.....)을 발견하여 들고 있던 스칸디나비아편과 비교를 해봤다.
론리플래닛 한국편 vs 스칸디나비아편. 자세한 비교는 플리커 참조.
여행 중에 여러 노르웨이 사람들과 수다를 떨 기회가 있었다. 아래는 그것을 정리해본 것.
Oslo-Bergen 기차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청년. 북유럽 사람들의 식습관이 대륙 쪽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라든가--이쪽은 warm meal을 보통 하루에 저녁 한 번밖에 안 먹고 점심을 대충 때우는 경향이 있는데 그 청년이 프랑스에서 교환학생했을 때 보니 프랑스 애들은 점심도 다 warm meal로 먹더라는 것과 이쪽은 학생들도 집에서 샐러드 등으로 도시락을 많이 싸와서 학생 카페테리아 장사가 잘 안 된다는 등의 얘기--해발 고도 1000미터 지역을 지날 때 여기 물을 마셔도 되냐고 물으니 기본적으로 마셔도 되지만 10년 정도를 주기로 개구리 만한 크기의 노란색 생명체(노르웨이어로 이름을 말해줬는데 기억이 안 난다)가 급증하여 많은 개체가 죽기 때문에 그 사체로 물이 오염되어 마실 수 없는 해가 찾아온다는 것, Bergen에 거의 다다랐을 때 본 큰 피요르드에서 사실 건너편은 바닷물로 둘러싸인 내륙 '섬'이라는 얘기 등이 기억에 남는다. 또 노르웨이 사람은 스웨덴어를 알아듣지만 스우덴 사람은 노르웨이어를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거나, 자기 동네랑 윗동네랑 무슨 스포츠 경기를 매년 벌이는데 자기 팀이 몇십년 동안 계속 이겨서 자기 마을은 매우 좋아하는데 윗동네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 등을 했다.
특히 그 할아버지는 이 철도 구간을 많이 다녀봐서인지,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마다 얼마쯤 가면 탁 트인 곳이 나오고 얼마쯤 가면 몇 분 동안 터널이 계속되고 등등 아주 자세하게 잘 알고 있었다.
Marken gjestehus에서 만난 베르겐 출신 아저씨. Bergen의 두번째 날은 그다지 할 일도 없고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오전 내내 숙소 식당에 앉아서 이 아저씨와 수다를 떨었다. Bergen에서 태어나고 자라 지금은 Oslo에 사는데 무슨 행사가 있어 잠깐 고향 방문 차 온 것이라고 한다. 가벼운 인사로 시작해서 마지막엔 철학에 관한 이야기까지 가버린 케이스.;; 한국과 북유럽의 문화 차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는데, 이 아저씨는 아직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없어서인지 상당히 흥미로워했다.
전공이 뭐냐고 해서 전산이라고 하고 이것저것 얘기를 하다가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하고 물리나 생명공학 같은 다른 학문에도 관심이 많다고 이야기하면서부터 주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Interdisciplinary한 부분을 해보고 싶다면서 내가 여러 다른 분야를 공부할 때 어느 정도 하다보면 결국 다 비슷한 어떤 접근이 가능하더라는 얘길 하니, 인간이란 존재는 '현상 아래에 존재하는 본질을 찾고자 하는 성향'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Bergen-Oslo 기차에서 만난 학생. 100 Kr 지폐를 한 장 들고 한국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로 노르웨이 물가에 대한 불평(...)을 해주니 역시 정작 노르웨이 현지인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단다. 웹디자인과 typography에도 관심이 있다고 해서 영어에 대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한글 글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주니 흥미로워했다. 마침 가지고 있던 몰스킨에 그려둔 내 그림 몇 개를 보여주니 스타일이 맘에 든다고 한다.;;
영국산 그래픽 디자인 잡지를 보여줘서 대충 읽어봤는데, 컴퓨터로 디자인 작업을 할 때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를 쓰는 것이 사실상 업계 표준이 되면서 모두가 똑같은 툴을 쓰는 것에 따른 부작용이 없는가, 새 버전에 새로운 기능이 생길수록 디자이너의 입지가 좁아지는가에 대한 몇몇 디자이너들의 토론이 재미있었다. 또, 어린 학생들이 웹디자인을 알바로 하면서 프로디자이너들에 비해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일종의 이익단체를 개설한 한 학생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공통점
차이점
짐 챙길 때 전에 러시아 여해과 에스토니아 여행 때 써먹었던 휴대용 칫솔·치약을 못 찾아서 한참 삽질했던 것 빼고(-_-) 완벽한 여행이었다. 예약한 거나 이런 것도 모두 기대했던 대로 잘 맞아들어갔고. 아무래도 말이 통하는 친구나 가족이랑 같이 여행하는 게 재미는 있겠지만, 혼자 여행하는 것도 나름대로 현지인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이 생긴다는 점에서 매력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피요르드를 구경만 했는데 실제로 거기서 낚시를 해본다거나, MTB를 탄다거나(몇몇 유명한 코스가 있는 듯하다), 하이킹을 한다거나 하는 실제 육체적인 활동을 못해봤다는 것이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가족과 함께 올 수 있다면 꼭 해볼 것이다. :)
노르웨이도 스웨덴처럼 크로네라는 단위를 쓰는데 국제통화기호는 NOK이지만 보통 Kr을 약자로 많이 쓰며, 현지에서는 ',-'을 원기호(₩)처럼 사용한다. 스웨덴은 ';-' 혹은 ':-'을 쓰는 것과 대조적이다. ↩
나도 이제 Markdown으로 글을 쓰기로 결정하며 그 첫 포스팅.
이걸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며칠 전에 발견한 꽤 괜찮은 일본 만화 Moonlight Mile(구글 검색하면 영화가 포함되는데 같은 이름의 전혀 다른 영화이니 참고). 원래 만화 잘 안 보는 편인데 이 애니만큼은 상당히 재미있게 봤다. 내가 일본 애니를 본건 토토로,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정도의 유명한(?) 것들과,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전 룸메 덕에 하레와 구우 및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두 개 정도를 몇 번 같이 본 적이 있는 게 전부다.
어떤 블로그에서 소개를 보고 모종의 경로(...)로 구해서 보려고 했으나 찾기가 쉽지 않아 이미지가 아주 안 좋기로 유명한 P모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해 보았다. 대다수의 한국 동영상 서비스가 스웨덴에서 미치도록 느려서 이용이 불가능한 수준임에 반해 여기는 거의 막힘없이 볼 수 있었다. 이거 하나는 좋더라. 재밌던 건 스웨덴에서 접속을 하니 외국 IP로 인식해서인지 서비스 자체는 한글임에도 약관이나 개인정보 보호정책 등은 모두 영문으로 나오고 가입 확인 메일도 영문으로 오더라는 것.
다만 이 만화 내용이 우주 개발과 익권 다툼을 하는 선진국 세력들 및 그 사이에서 우주에 가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임에도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19금 장면(주인공 우주비행사 중 한 사람이 우주비행 떠나기 전마다 그것(...)을 하는 습관이 있다는 설정이 문제. -_- 굳이 그런 거 안 넣어도 내용 재밌으면 다 볼 텐데...) 때문에 19세 성인 인증(....)을 해야 하는 화가 몇 개 있었다.;;;
잠시 한가한 틈을 타 어제부터 오늘까지 계속 달려서 1기, 2기 총 26편(...)을 다 봐버렸다. (사실 한 화가 23분 정도밖에 안 되긴 한다.) 아마 만화책으로는 정식으로 번역이 되어 계속 출간이 되는 모양이고 내용도 계속 진행 중인 듯하다. 1기에서는 우주로 가고싶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뤘고, 2기에서는 그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우주에서 활약을 하는 가운데 달에 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3기 이후는 아직 안 나온 or 올라온 듯?
원작 만화가 나온지는 좀 된 것 같은데 중국의 우주개발을 예측한 부분이나 달의 자원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냉전 구도 등 꽤 현실성 있는 설정을 가지고 있어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우주에 대한 묘사도 거의 사실적으로 하고 있으나 한 화의 길이가 짧은 탓인지 내용 전달을 빠르게 하기 위해 우주에서의 움직임이 좀 과장되게 빠른 경향이 있다. 물론 만화이기에 약간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추가되기도 했지만--아이돌 리포터가 ISS에서 뛰노는 장면이라든지--전반적으로 내용 전개가 어느 정도의 치밀함을 갖추고 있어 좋았다.
'로켓 보이' 화에서는 아랍계 소년이 미국으로 건너가 로켓 연구에 의지를 불태우지만 백인 사회의 차별에 좌절하고, 다시 죽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 끝내 우주까지 도달하는 모델 로켓 발사에 성공하는 모습은 카이스트 드라마에 나왔던 에피소드와 비슷하여 훈훈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다만, 이 만화도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다.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일본 만화라서 그런지 일본에 대해서는 너무 긍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중국과 미국의 우주 군비 경쟁 속에 일본은 마치 평화적으로만 우주를 이용할 것처럼 묘사되는 부분이나 일본인 우주비행사인 고로가 무슨 문제만 생기면 해결사로 나타나는 부분은 다분히 일본 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만화를 별로 좋게 평가하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이런 만화를 만든다면 역시 한국 중심적으로 나오지 않을까라는 점에서 나는 그냥 그대로 인정하고 넘어갔다. 한 가지 부러웠던 점은 월면이족보행로봇인 문워커의 개발 과정을 그린 에피소드에서 엔지니어의 자존심과 고민이 묻어나오는 것을 보니 일본이 확실히 엔지니어들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이라는 것. 한국에서 장인 정신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개인적으로 미소녀(...) 등을 주제로 하는 일본 애니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것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기억해 두기 위한 포스팅이었음.
지난 월요일에는 SE 프로젝트와 중간고사라는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음악회를 하나 보러갔었다. 다름 아닌 실내악 앙상블을 강의하시는 김정진 교수님이 연주하시는 것.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인 궁동 성당에서 바로크 음악을, 그것도 명동 성당 오르가니스트와 함께 오르간 연주도 곁들여서 한다는데 안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무료 입장!)
성당이나 교회들은 보통 신부/목사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게 하기 위해 한 번 방사된 소리가 일정 시간 잔향으로 남게 만든다. (이건 공연장들도 마찬가지다. 용도에 따라 다른 것은 당연하고.) 그래서인지, 내가 가본 그 어떤 음악회보다도 음향이 훌륭했다. 첼로는 마이크를 써서 음을 크게 했고, 고급 전자오르간이 반주를 해주었는데, 성당 안이 정말 소리로 꽉꽉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일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바티칸 성당의 주교 회의 사진에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설명을 단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감미로운 첼로 연주도 좋았지만, 실제 오르간으로 바흐의 그 유명한 Toccata and Fugue in D minor를 연주하는 것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 엄청난 음량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의 털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 곡은 아주 심취했던 것 같다. 주로 바흐의 곡들이 많았는데, 자기 아들을 연습시키려고 만든 평균율에 멜로디를 붙여 만들어진 곡인 Ave Maria나, Squire의 빠른 2박자 곡인 Bouree도 인상 깊었다.
간만에 정말 집중할 수 있는 음악회였고, 바쁜 일정 중에 힘들게 짬내서 간 만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끝나고 교수님한테 인사도 드리고, 또 전날 부활절 미사에서 만났던 노영해 교수님도 다시 보고. 옛날에 실내악 앙상블 같이 들었던 같은 학번 사람도 만나서 인사하고. 여튼 정말 가뭄 속의 오아시스, 그리고 그동안 미사만 해왔던 곳에서 꽉 찬 살아있는 음악소리를 들은 경험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조지윈스턴이 입장하기 직전의 무대
9월 21일, 기계공학동 로비에서 하는 "해설이 있는 작은 음악회"에 다녀왔다. 미적분학 연습반이랑 시간이 겹쳤는데 다행히 빨리 끝나서 첫 곡을 빼고 두번째 곡 중간부터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쳄발로와 바로크 첼로, 바로크 바이올린, 그리고 리코더가 여러 조합으로 연주를 하였는데,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했던 리코더와는 역시 차원이 다르다. -_- 그렇게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주 빠르게 손을 움직여 트릴이나 트레몰로 같은 효과를 내면 정말 새소리 같은 느낌이 나고, 음역도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2옥타브 반이나 냈다. ("Recorder"라는 명칭 자체가 새소리를 녹음한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사람 소리를 새가 흉내내서 말하는 거라고 했던가? 아무튼.)
보통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을 연주할 때 기준음 A를 440~443 Hz 정도로 놓고 하는데, 바로크 시대에는 이보다 음고(Pitch)가 낮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이번 연주는 대략 415 Hz 정도로 맞춘 거라고 하는데, 그만큼 더 낮으면서 여유있는 소리가 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악기도 현대 악기가 아닌 그 시대의 것을 재현한 것을 썼다. 양의 창자를 말려서 꼬아 만든 거트 현을 사용했고, 바이올린은 턱받침대가 없었으며 첼로는 받침대가 따로 없이 다리로 몸체를 안고 연주했다. 현대 악기의 특징들은 18세기 이후 음악이 대중화되면서 좀더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생겼다고 한다)
중간에는 현대음악의 한 예로 리코더의 윗부분만 따로 분리하여 새된 소리를 내는 것도 보여주었는데, 일본의 Meditation 곡들 중에 명상 단계가 끝날 때 그런 효과를 사용한 곡이 있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진혁이 형을 통해 리코더가 초·중학교 때 배우는 것과 달리 상당히 매력 있는 악기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 이번 공연을 보고나니 완전히 인식이 바뀌었다. 제대로 된 리코더 합주를 들으면 정말 멋질 것이다. (듣고파~~)
덧/ 오늘(목요일) 있었던 실내악 상앙블 수업에서 Diabelli의 4-hands 소나타를 했는데 메트로놈 없이 대충 때려맞춘 박자가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OTL (덕분에 Visual Basic 및 정밀 타이머 라이브러리를 이용해 노트북용 메트로놈 프로그램 제작-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