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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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utzy의 글을 보고 나서 문득 생각이 났다. 요 몇 주 동안 대전역이나 수원역에서 꼭 1, 2천원씩 돈을 달라면서 구걸하고 다니는 사람을 몇몇 보았는데, 그들의 모습이 좋아보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당장 생계 유지가 급해서 그런 것일까? 그런 사람들이 돈을 달라고 할 때 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 정말로 가난해서 그런 거라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당장 돈을 벌 능력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그대로 두어도 되는 걸까?

인도에서는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거지들이 우루루 몰려든다고 하는데 그때 그들에게 일푼이라도 주었다가는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 하기 때문에 절대 주지 말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정도로 극단적인 예는 없지만, 어디까지가 적선인 건지 그 경계를 잘 모르겠다.

한 번은 두 주 연속해서 똑같은 사람을 만났다. 내가 안 된다고 하자 다른 사람을 붙잡고 또 2천원만 달라고 하고, 내가 기차를 타러 갈 때까지도 계속 역 안을 돌아다니면서 구걸하는 거였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기분이 나쁜 이유는 과연 그에게 돈을 준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확신하지 못하면서 괜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기차표를 살 돈이 없어서 그런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2천원만 달라고 하는데.. 누가 합당한 이유 없이 자기 돈을 내어주겠는가?

아직은 어떤 일에 대해서는 명확한 가치 판단 기준을 세우는 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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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쓴 "인지과학 수업 끝나다"라는 글에서, 나는 마지막에 '나와 다른 사람이 구분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라는 의문을 던졌고 그에 대해 dotty 님inureyes 님이 각각 트랙백을 보내주셨다.

dotty 님은 복잡계와 진화, 그리고 뇌의 수많은 뉴런들이 이루어내는 창발성 측면에서 설명하셨고, inureyes 님의 글은 종교적 관점과 '생의지'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일단 두 분의 글 모두 그 자체로 보았을 때는 좋지만, dotty 님의 경우는 철저히 자연과학적 사고에서 보았을 때 갈 수 있는 한계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현상'으로는 복잡계 네트워크로서 나타나지만 정말 '나'라고 스스로 느끼는 것이 단지 복잡한 물리적·화학적 작용 때문에 나타나는 것인가? 이렇게 말하면 마치있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할 것 같지만, 그렇다고 나는 종교적인 압장만을 지지하고 싶지는 않다. 종교는 그 자체로서 믿음 위에 존재하는 것이고, 믿음과 납득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납득이 가는 설명, 그리고 물질적인 자연과학의 관점에 국한되지 않은 설명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인지과학 수업을 듣기 전에도, dotty 님만큼은 아니지만 현재 과학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대충 복잡계 현상 쪽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의문은 사실 꽤 어렸을 때부터 줄곧 느껴왔던 것이지만 아직도 나는 내 스스로 이 의문을 '잘 정의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사실 위처럼 말해 놓고는 있지만 스스로도 내가 무엇을 묻고 싶은 것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인간들이 구성하는 사회나 개미, 혹은 더 작은 미생물들이 구성하는 사회나, 신경세포들이 구성하는 한 개체의 신경계(뇌), 작은 분자들이 모여 이루는 하나의 세포.. 이들은 자연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그 개인 자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 꼭 인간에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 어떤 생물 개체의 자기 정체성은 어떻게 구현되는 것일까? 영혼이라는 관점에서 말한다면 원생생물, 균류, 동물, 식물들 중 어디쯤에서 영혼을 가짐과 안 가짐의 경계가 구분되는 것일까? 바이러스가 영혼을 안 가진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 거대한 세상과 나는 왜 다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