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아아아,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것인가! 역시 거장은 다르다. 분명히, 학교 강당에 있던 그다지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닌 피아노인데도, 당타이손이 치면 소리가 완전 달랐다. (옆에 있던 진혁이 형과 주변 친구들은 피아노를 바꿔치기한 거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Mozart Sonata KV330부터 시작하여, Faure, Debussy 등을 거쳐 Chopin의 Andante Spianato and Grande Polonaise Brilliante in E flat major op.22, Nocutrn in c# minor (유작, 흔히 20번이라고 부르는 것), 즉흥환상곡, Ballade No.3, 마지막으로 Scherzo No.2.

연주한 곡들만 봐도 이미 그 제목만으로 감동인데, 쇼팽 콩쿨 우승하고 올해부터 심사위원까지 맡은 당타이손의 연주를 직접 일거수일투족을 다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다. (2층 첫 줄에서 보았는데, 손의 움직임이 아주 잘 보였고 소리도 가장 잘 들렸다)

먼저, Mozart 곡은,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비교적 쉬운 소나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Mozart답게, 아이처럼 예쁘고 투명한 소리로 연주했다. 저음부의 스타카토 처리나, 고음부의 스케일 등 정말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진혁이 형은 저거 자기가 쳤던 곡인데 앞으로 이런 소리 못 낼 것 같아서 다시는 못 칠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다음으로는 Faure라는 사람과 유명한 Debussy의 곡들인데, 포레의 경우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나 곡들은 난이도도 꽤 있는 것들이었다. 여기서 특히 볼 만 했던 것은 소리를 스윽 버리듯 치는 터치였다. 손가락 끝으로 툭 내뱉듯이 건반 끝을 건드리고 미끄러지는데, 그 음이 내는 소리 또한 분명하게 땅 소리났다가 저 멀리 스러져가는 느낌을 주었다. 똑같은 건반인데 어떻게 그렇게 누를 수 있는 것인가! 또, 어떤 빠르고 짧은 프레이징이 끝났을 때 음을 덥석 잡아매는 듯한 느낌으로 연주하면서 손을 건반 위로 잡아올리며 꽉 쥔다든가 하는 동작이 실제 피아노 소리에 그대로 나타났다. 오른손으로 스케일을 쫘악 올라간 다음 슥 갖다버리듯 처리하는 것도 소리에 똑같이 반영되었다.

드뷔시의 경우는 조금 우울한 듯 하면서 서정적이나, 가끔씩 격정적으로 흐르는 느낌으로 좀 클래식한 느낌이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드뷔시의 분위기를 살려냈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대했던 쇼팽을 곡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Andante Spianato and Grande Polonaise, 이 곡은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마지막에 자막 올라갈 때 배경으로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되는 바로 그 곡이다. 이걸 독주곡으로 편곡한 것을 연주했는데, 이 연주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바로 다음에 이어진 곡은 Nocturn 20번. 이것은 그 영화(피아니스트)를 봤던 사람이라면 절대 잊지 않을, 바로 라디오 방송국에서 연주되던 곡이다. 이 곡은 나도 쳐봤었고, 진혁이 형은 현재 레슨을 받고 있는 곡이다. -_- 역시, 더 할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마지막에 나오는 꾸밈음 성격의 스케일도 하나하나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피아노 좀 친다는 사람들이 항상 학예회 등에서 연주하는-_- 즉흥환상곡. 나도 건드려 본 적은 있는 곡인데, 여기서 특히 놀라웠던 것은 손목과 손등은 거의 가만히 있으면서 그 복잡한 손가락 번호를 다 소화해내더라는 점이다. 특히 빠르게 진행되는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1번 손가락으로 멜로디를 이어가다가 같은 음들을 치되 5번 손가락으로 치는 음으로 멜로디를 바꾸어 이어가는 곳이 있는데, 5번 손가락이 거의 움직이지 않으면서 그 아래의 빠른 분산 화음들을 처리해내는 기술이 일품이었다.

여기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다음, 임동민이 이번 쇼팽 콩쿨 스테이지 1에서 첫번째로 연주했던 발라드 3번이 이어졌다. 일부러 조금 감정을 자제한 듯 가볍게 시작했고 조금씩 흥을 돋우어갔다. 역시나 흠잡을 데 없는 최상의 연주였다. (쇼팽 콩쿨 우승자이며 또한 심사위원이기까지 하니 당연하다)

마지막, 대망의 스케르초 2번. 기대했던 것만큼 소리 스케일이 크지는 않았지만, 눈물을 머금게 할 만큼 훌륭한 연주였다. 내가 얼마 전에 혼자서 이 곡을 쳐 본 적이 있는데(그냥 음들 하나하나 눌러보는 수준으로 1시간 걸렸다), 전체적으로 악보 reading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더 세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끝나고나서도 박수가 계속 이어졌고, 진혁이 형과 나,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쳤다. (정말 이만한 피아니스트가 여기까지 와서 연주를 해주는데 예의상, 또 정말 그만큼 공연이 뛰어났기 때문에) 당타이손은 답례로 무슨 소나타 한 곡인가를 더 쳐주었다.

공연 후에 싸인을 받든지 아니면 사진이라도 좀 찍어볼까 해서 무대 뒤쪽으로 찾아갔으나, 베트남 유학생들 20여 명 정도만 싸인을 받게 허락해주고 다른 사람들은 그를 만날 수 없었다. 하긴, 이런 연주를 그렇게 하고 나면 힘들긴 할 것이다. (테크닉적으로 봐서 손이나 팔에 힘이 빠져서 힘들지는 않을 것이고,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가 클 것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연주와 함께, 최고의 피아니스트로서 보여주는 테크닉적인 부분까지, 너무나 멋진 연주였다. 확실히 실내악 앙상블 수업을 듣고 나서 이런 공연을 보니까, 대가들은 오히려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감정 이입을 극대화시킨다는 등의 수업 시간에 나온 다양한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앞으로 이런 연주를 또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