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몽사몽 2
- 7년만의 이사 8
- 드라마 카이스트 9
- 그림 정리 6
Daybreakin Things
어제(월요일) 하루종일 이삿짐 정리를 하고 나서 학교에 오자마자 inureyes님, 토끼군과 함께 TOP(Tatter Open Proejct 정도?) 논의라는 명목으로 새벽 5시까지 수다(...)를 떨었더니 좀 피곤했다. 밤잠은 잘 잤지만 역시 낮잠이 필요. 원래는 보통 낮 12시 30분쯤 끝나는 체력육성 수업 후에 점심 먹고 바로 MR 동방에 갈 예정이었는데, 오늘따라 하필이면 수업이 일찍 끝나버려서(11시 40분) 기숙사에서 좀 자다 와야지 했던 게 화근이었다.
그러니까, 2시에 모 동아리에서 MCU 프로그래밍 관련해서 문의를 해오기로 되어 있었고, 그 약속이 나한테 잡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알람도 못 듣고 계속 자버렸고(-_-) 그 동아리 회장분한테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아차차 하면서 일어났다. ;;;
거기서 필요로 하는 건 대충 말하자면 PWM 방식으로 들어오는 신호를 읽어서 펄스 길이에 따라 10개 정도의 Servo 모터를 제어하는 MCU 프로그램을 짜고 싶다는 거였다. 뭐 타이머 인터럽트 써서 어쩌구저쩌구 해서 짜면 될 것 같다고 했더니, 간단한 예제를 직접(!) 보여달라고 하셔서 거의 1년 만에 빵판을 만져보았다. -_-;
프로그램 코드는 동아리 작업컴퓨터에 이미 기본적인 것들이 있어서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고, 문제는 회로를 만드는 거였다. 예전에 내가 선배 것을 보고 다시 정리한 교육자료를 보면서 만들었는데...
...등등의 이유로 한참을 삽질하고 MCU 칩 하나도 날려먹었다. (극을 반대로 꽂았으니 칩이 타버린 모양. 프로그램을 구우면 실패라고 뜨는데 작동은 한다(?).) OTL 결국 03학번 선배 누나가 도와주셔서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 수 있었다. -_-;
하여튼 그래서 결론은 비몽사몽하다가 삽질했다는 거. =_=
약 한 달여 전부터 벼르던 이사를 드디어 오늘(26일) 했다.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2동 동보4차에서 같은 구의 성복동 푸르지오로 이사했다. 집 크기는 세 평 정도 작지만 푸르지오가 좀더 최근에 지은 거라서 그런지 구조도 이것저것 아기자기(?)하게 많이 만들어놨고 좀더 넓은 느낌이 난다. (큰 틀은 바꾸지 않는 선에서 바닥재, 벽지, 발코니 확장, 조명 등을 고쳤고 특히 아버지 서재에 들어갈 책장과 책상을 원목으로 새로 맞추기도 했다.) 다른 것보다도 여기저기 수납장이 많아서 짐정리를 어느 정도 해놓고 보니 집안이 상당히 깔끔하다.
전 집과 비교했을 때 장점이라면 광랜 등에 대응하기 위한 시설이 있어서 현관 쪽 수납장 내에 각 방으로 연결되는 랜 케이블과 전화선을 분배하는 단자가 있어서 그곳에 공유기 등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 라디오 전파가 매우 잘 잡힌다는 것(..동보에서는 집에서 라디오 듣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샤워부스가 따로 있고 특이한 기능(?)의 샤워기가 있다는 것, 다용도실과 부엌이 별도 방처럼 분리되어 있어 세탁기 소음이 많이 차단된다는 점, 화초를 키우기 위한 공간이 따로 있고, 바닥재 일부가 지어질 때부터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는 것(근데 맨발로 걸어다니기에는 오히려 딱딱한 느낌이 강해서인지 발이 아픈 것 같기도 하다-_-) 정도다.
단점이라면 집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각종 조명이 매우 많아졌고, 따라서 전기값이 꽤 많이 나올 것 같다는 것과, (안 그래도 우리집이 전기세가 좀 나오는 편이었다. -_-) 또한 부엌에서 찬물을 쓰려면 발로 싱크대 아래의 버튼을 쿡 눌러야 한다는 것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인지 좀 불편하다.
어쨌든 새로 고쳐서 들어온 집이라 깔끔하고 좋다. 벽지나 조명들도 모두 가족들의 의견을 모아서 세심하게 고른 것들이라 그런지 마음에 든다. 앞으로 이 집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아까(...벌써 어제..) 학부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보니 매점 2층 다용도실에서 사람들이 뭔가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차피 방학이니 수업도 없을 테고, 저녁 시간이라 크게 방해될 것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계공학동 로비에 있는 피아노를 치러 갔다.
요즘은 주로 모차르트의 곡들을 치고 있는데, 잘 치는 것도 있고 못 치는 것도 있고 그렇다. 어차피 전공자도 아니니 뭐 살짝 틀리는 건 넘어가는 셈치고, 다만 듣기에 거북하지 않을 정도로 칠 수 있는 곡들을 골라서 생각나는 대로 죽 쳤다. 로비의 소파에 앉아있던 사람들 무리가 없어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이고...
1시간 쯤 쳤을까, 캠폴 아저씨가 돌아다니며 문단속을 하는 게 보였다. 어차피 건물을 폐쇄하거나 할 건 아닐 것이므로 로비에 있는 나는 계속 피아노를 쳤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이 보였다. 한 곡을 다 연주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 흘끗 보니 계속 날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_-; 뭐 나는 구경 좀 하러 왔나보다 하고 계속 치는데 듣다가 지쳤는지(?) 아예 잠들어 있다.
다소 빠른 박자의 1악장, 3악장 위주로 치다가 잠시 느린 템포의 2악장 2개를 치고—원래 소나타는 세 악장을 순서대로 다 연주해야 작곡가가 말하는 스토리가 완성된다고 하지만, 배울 때, 연습할 때 악장별로 따로 했기 때문에 나는 내키는 대로 친다—마지막으로 K.331 3악장, 흔히 터키행진곡으로 알려진 그것을 쳤다. 사람이 별로 없는 때라서 그런지 소리도 잘 울렸고, 그래서 페달을 줄이고 최대한 깔끔한 스타카토로 처리해주었다. (원래 모차르트곡은 울림 페달을 안 쓰는 게 맞지만, 실력이 부족하여 페달 없이 내가 원하는 소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가끔 사용한다)
그 연주가 끝나고 혼잣말로 '이제 가야지' 중얼거리며 책을 챙기자 아까부터 듣다가 잠든 그 남자분이 부스스 일어났다. 내가 가방을 들고 일어서자 2층으로 슬그머니 사라졌다. 안경 쓴 남자분이었는데, 얼핏 보기에 나이가 좀 있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혹시 교수님이었나? 아무튼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부족한 내 연주를 들어준 사람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갑자기 드라마 카이스트에 말렸다. 1999년 무렵 SBS에서 방송했던 바로 그 카이스트 말이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재밌게 봤던 기억은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마침 학교 내의 어느 ftp 서버에서 81화 전체를 제공하고 있어서 찾아보게 되었다. (사실 입학 후 앞부분은 봤었지만 이번에 본격적으로 달리는 중이다-_-)
프로필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나는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다. (뭐 이 블로그 자주 오시는 분들이야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내가 수업을 듣고 시험을 쳤던 교실이 나오기도 하고, 당시에는 없었던 태울관, 정문술빌딩 등이 들어서기 전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실제로 지금의 우리가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고민들을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나, 드라마 치고는 꽤나 학교 내부 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 등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 동아리에서 모델이 되었던 바로 그 미스터(MR) 동아리원이고, 또한 전산과이기도 하다. 게다가 90년대에 있었던 포항공대-카이스트 해킹사건의 전설적 인물인 노정석님과 아는 사이이기도 하다. 내가 그 드라마를 처음 봤던 초등학교 6학년 때만 해도 내가 카이스트에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막연하게 '멋지다'라고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그 카이스트 한가운데 서 있고, 벌써 4년 중 2년이 지나간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이 드라마가 단순 재미뿐만 아니라 여러가지로 새롭게 다가온다.
해킹에 관한 이야기가 드라마 전반에 걸쳐 몇 차례 나오는데, 당시에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쓰고 있는 것들이라는 것도 재밌었다. 쉘 프롬프트(드라마는 BSD 계열로 나온 것 같다), ls 명령, sendmail 프로그램, 포트 스캐닝 등... 게다가 '박 교수'가 가르치는 수업에서 Mas heap 등이 나온다는 것은 바로 Data Structure 수업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시간복잡도 얘기까지 나오다니...ㅠㅠ 드라마에서 수업 시간에 교수가 던진 질문이 실제로 내가 들은 DS의 기말고사 시험 문제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이니만큼(?) 허구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기숙사 방. -_- 신축기숙사는 그래도 꽤 깨끗한 편이지만 드라마는 무슨 기숙사 방이 아니고 거실이다. 방에 탁자를 놓고 앉아서 얘기할 공간 씩이나 있다니. (...) 학부도서관의 계단 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더니 갑자기 보이는 석학의 집 간판도 매우 황당했다. 실제 석학의 집은 그와 1km 정도 떨어진 서측학생회관에 있다. -_-; 박 교수가 DS 수업을 하는 교실은 사실 전산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다. 정확히는 내가 인지과학입문과 심리학개론을 들었던 곳이다. (당시에는 창의학습관이 없었으니 인문사회과학부 쪽에서 일부 전공 수업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MR는 로봇축구보다는 보다 다양한 로봇들을 연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2004년 이후로는 이렇다 할 만한 대회에 출전하거나 하지는 않고 있지만, 벽에 박힌 못들에 팔을 뻗어 기어오르는 로봇 같은 것도 만들고, 이족 보행 로봇 등을 다루기도 한다. 요즘은 그때보다 로봇 산업 자체가 굉장히 커지고 기술도 많이 발전해서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나 같은 경우는 MR 후배 한 녀석과 함께 URP[footnote]학부생 연구 참여 프로그램. http://urp.kaist.ac.kr[/footnote]로 수중로봇 개발을 하고 있는데, 정말로 잘 만들어진 각종 컨트롤/임베디드 보드나 시뮬레이터 등이 많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에서와 같은 '극적인' 요소는 다소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드라마에서 다가왔던 것들은 그것이 담고 있는 줄거리였다. 기업의 스폰서를 따내기 위한 교수와 학생들의 눈물겨운 노력, 로봇축구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 유학을 가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 선 연인, 겉으로는 엄격하고 까탈스럽지만 속으로는 진정 학생을 위하는 교수(..) 등 일부는 살짝 과장된 면도 없지 않지만 실제로 매우 공감가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요즘은 그 정도로 연구비가 모자라서 고생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드라마의 배경은 IMF였으니까.) 그 속에서 엮어지는 주인공들의 고민과 일상, 대사들은 가끔씩 지금의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어주고 있다. 과학·공학을 왜 공부하는가?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들을 간접적으로 던지고 있는 것이다.
카이스트 학생으로서 보는 드라마 카이스트는 정말 느낌이 색다르다. 남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나오는 다른 드라마들처럼 현실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기형적인 가족 구조, 숨겨진 비밀, 불치병 등으로 신파 떨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현실에서, 실제 주변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인물들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인가, KBS였던가, 카이스트를 소재로 다시 드라마를 만든다면서 몇 차례 작가와 PD 등이 몇몇 동아리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 걸 보니 아마 취소된 모양이다.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 만든다고 해도, 그 드라마 카이스트처럼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신선한 느낌은 주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 보면 다소 유치한 면은 보여도 이공계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을 바탕으로 했다는 건 뚜렷이 느낄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당시보다 더욱 복잡해진 현재 상황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번 주 금요일에 할 이사를 대비하여, 15년 동안 버리지 않고 보관해왔던 내 그림 작품들을 정리했다. 유치원 다니기 이전부터 초등학교 4학년 무렵까지 8절지 스케치북에 사인펜을 이용하여 그린 수백장의 그림들을 일일이 다 뒤져보고 골라냈다. 주로 완성도, 구도, 소재의 독창성이나 특이함, 그림 기법, 세밀한 묘사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그림들의 존재는 아직까지 우리 가족이나 부모님과 가까운 분들 외에는 거의 모르고, 딱히 전문가에게 감정(?)을 맡겨본 적은 없지만, 내 스스로도 놀라웠다. -_-;
그 그림들을 정말 일일이 다 들여다보았는데(지난주 주말, 이번 주말 도합 3일이나 걸렸다), 그 중 어떤 것은 직접 그리던 게 생각나는 것도 있지만 아주 어렸을 때 그린 것들은 생각나지 않는 것도 많았다.
재료로는 가장 많이 사용된 모나미 12색 사인펜(...)부터, 한때 유행했던 은색·형광펜, 또 만화가나 건축가들이나 쓴다는 로트링 펜, 아버지가 외국 출장 가서 사다주신 수채색연필, 파스텔, 크레파스 등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로부터 알게 된 일본제 PlayColor 펜과 모나미 사인펜이 그중 95%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소재는 극초창기의 동화 내용, 자연물(주로 지표면과 그 위의 식물·동물들 상상화)부터 시작하여 각종 과학책을 보고 그렸던 내용(판구조론, 대기권 구조, 태양계, 인체 해부, 개미집, 공룡, 말벌집, 수달집 등), 그리고 우주 도시나 공중 도시, 미로, 지구 멸망(운석 충돌), 각종 재난(화재, 홍수 등), 콘솔 게임으로 했던 쥬라기 공원과 슈퍼마리오 및 PC로 했던 레이멘 게임의 스테이지 디자인, 화려한 단청을 가진 궁궐, 기와와 초가로 이루어진 마을 풍경, 그림을 그릴 당시의 주요 사건들(이라크 전쟁, 무궁화 위성 발사, 화성 탐사선, 목성에 충돌한 혜성 등), 현대 및 전통 건축물의 단면, 각종 건설 광경, 상상으로 만든 각종 설계도(?)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다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형은 내가 그린 그림들만 봐도 웬만한 과학 공부는 되겠다고 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스케치북을 가로지르는 정도의 선을 그을 때도 어떻게 떼지 않고 한 번에 그어내려갔는지 '펜 터치'가 신기하다고 하셨다. (물론 선을 실제 보이는 것처럼 똑바로 긋진 못하고 좀 삐뚤빼뚤하긴 하다)
초등학교 4~5학년을 거치면서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때 그린 것들은 주로 연습장에 그린—그래서 별로 남아있지 않은—세밀한 미로들과 나름 여자친구(?)라고 할 수 있었던 유정은(...이 아이가 지금도 날 기억할련지는 모르겠다-_-)과 합작하여 그려 나눠줬던 그림[footnote]낙엽 떨어지는 나무 아래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인데, 낙엽과 나무 및 주변 동식물의 세부 묘사를 내가 했고, 화가 인물을 정은이가 그렸다. 재료는 0.5mm 샤프펜슬이었고 기간은 대충 2~3일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당시 여자 아이들에게 꽤나 인기있는 그림이었다.[/footnote] 정도다—물론 이것도 애들에게 다 나눠줬으므로 현재 나한테 남아있지는 않다. 5학년 2학기부터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접했고, 6학년 때 Visual Basic을 접하면서 이제 다들 알고 있는(?)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내 스스로 그동안 사용해왔던 그림 기법들을 몇 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 정도에 다다랐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8절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린 적은 거의 없지만, 알림장이나 필기노트에 각종 그림문자와 장식을 함으로써 그림 감각을 꾸준히 유지(?)해왔고, 대학에 와서도 손으로 써서 내는 선형대수학개론 숙제 등의 각 chapter 번호 등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그림 실력이 발달하는 과정은 물론 내가 가진 정신적 특질의 몇몇 부분들의 기원도 볼 수 있었다. 이를 테면, 나는 소스코드에 주석을 매우 잘 다는 편인데 이것이 그림에도 잘 나타났던 것이다. 그림에서 다른 사람이 잘 못 알아볼 것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글자로 써서 설명을 달아놓은 곳들이 꽤 있었다. (가끔은 전혀 관련없는 당시 집전화번호를 쓰기도 했다. -_-) 또한, 나는 대체로 맵에디터가 없는 게임은 잘 안 하려고 하는데, 뭔가 마을이나 도시 이상의 스케일을 가지는 큰 구도의 그림들에서는 거의 건설을 하는 장면이나 뭔가 기존의 지식이나 상상에서 customize하려는 부분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정말 신기했던 건, 내가 그린 사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초창기(초등학교 1학년 무렵까지?)의 작품들의 주제가 지금 내가 생각해도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척추, 척수, 동맥과 정맥이 구분된 혈관, 뇌, 뼈 등을 묘사한 머리 단면도라든가, (비록 사실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벽 속의 전기 배선 구조를 생각해서 그린 건물 단면도 등은 나 스스로도 보면서 '내가 이 나이 때에 어떻게 이런 걸 그렸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_-;; ...심리학개론 시간에 분명히 Piaget의 인지심리발달이론에 따르면 7세 무렵까지는 '전조작기'로서 수의 개념을 다루기 시작하거나 보존원리[footnote]물체의 모양이 변해도 그 양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Piaget의 경우 일정량의 물이 세로로 긴 컵과 가로로 넓은 컵에 들어있을 경우 그것이 같은 양이라는 것을 앎을 뜻한다.[/footnote]를 이해하기 시작한다고 나와 있던데.; 사실 이런 그림은 수의 개념을 몰라도 '상상'을 잘 하면 그릴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니까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eidetic memory[footnote]언어가 형성되기 이전의 유아들은 사물이나 장면을 기억할 때 언어적 묘사 없이 마치 사진 찍듯이 기억한다고 하는데, 그러한 유형의 기억을 이르는 말.[/footnote]가 떠오르는 건 왤까?
...뭐 어쨌든 어렸을 적의 추억도 되돌아보고, 어렸을 때 내가 이런 동화, 이런 책들을 읽었었구나 하고 알 수 있기도 했고(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초등학교 1학년 무렵 완독했던 과학앨범의 영향이 상당했던 건 확실하다, 또 재미있는 작품들을 감상(..내가 그려놓고 내가 감상하다니...-_-)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응달에서 비교적 일정한 기온으로 유지, 밀폐된 상태로 보관한지라 종이나 펜터치 등의 상태는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었다. 오히려 옛날 스케치북일수록 종이가 두꺼워 잘 보존된 것 같다. 이것을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스캔해놓든지 몇 개 골라서 액자나 판넬을 하든지 해야지 그냥 창고에 쌓아두기에는 너무 아깝다. 하긴 부모님 얘기 들어보니 어렸을 때 아는 몇몇 사람들이 전시회 열어주라고 했다던데 정말 그래야 되나.. -_-;
덧. 내 그림 스타일의 일부(?)는 여기서 볼 수 있다. 몇 안 되는 최근 작품 중 하나.
각각 KAIST 96학번, 02학번인 세동[footnote]이분과 얼마 전에 티스토리 분점에서 댓글 토론을 한 적이 있다. -_- 뭐 그쪽 견해는 다르지만 지인·선후배 관계와는 별도이므로..;[/footnote]이 형과 영주 누나의 결혼식이 그제(토요일) 있었다. SPARCS 동아리 커플 최초, (나는 서울과학고 출신이 아니긴 하지만) 서울과학고 12기 최초의 결혼이었고—그렇다, 동아리 커플이다—일가 친척이 아닌 사람의 결혼식에 내가 직접 가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서울에 있는 해군 회관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내가 가본 결혼식 중 사람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막상 일가친척보다는 직장 동료와 학교 친구 및 선후배들이 훨씬 많이 왔던 것 같다.
로비에 들어섰을 때는 도대체 화환을 어찌나 많이 보냈는지 화환을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중에 SPARCS에서 보낸 것도 있었다) 아마 SPARCS 홈커밍데이 이상으로—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직접 참석은 못해봤지만—가장 많은 동아리 회원이 모인 자리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결혼식 주례는 CT[footnote]문화기술. Cultural Technology[/footnote] 대학원장이신 원광연 교수님이 하셨고, 사회는 회사 동료분이 맡았다. 축가는 영주 누나와 고등학교 시절부터 룸메이트를 해왔다는 분이 해주셨고. 결혼식 자체야 뭐 그냥 그런(...) 형식으로 진행되었지만 확실히 동아리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지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축하의 뜻인지 염장하지 말라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3)
다른 것보다 기억에 남았던 건 식사까지 모두 마치고 나온 후다. 신혼여행에 가기 위해 꽃장식을 해둔 세동이 형 차에 용수 형이 가져오신 펜(손으로 슥슥 문지르면 지워지는 것)으로 잔뜩 낙서를 했던 것이다. -_-; 결혼하신 두 분 다 전산 분야 출신이셨기 때문에 "NullPointerException"부터 시작해서 "this.팀 = null; System.gc();"에 이르는 다양한 낙서가 등장했다. 물론 하트 모양과 같은 일반적인(?) 낙서도 있었지만.
간만에 시내에 나갔다오느라 피곤하긴 했지만, 동아리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이때 netj라는 아이디로 알던 재호 형도 처음 만났다) 밥도 잘 얻어먹을 수 있었다.; 앞으로 두 분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게 잘 이어지길 바란다. 아, 신혼여행은 발리로 가신다고 들었다.;
내가 컴퓨터를 산 작년 10월 말의 VGA 메인스트림은 GeForce 7600급이었다. 나는 우선 Windows Vista와 Supreme Commander 등이 어떻게 보급되는지 등을 보고 VGA 카드를 결정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보다 더 좋은 성능의 VGA를 살 수 있었음에도 우선 저걸로 1년 정도 버텨보자라는 생각에 고른 것이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내가 산 게 알고보니 '변종'이라서, 레퍼런스 제품에 비해 살짝 오버클럭이 되어 있는 거였다. 처음엔 몰랐으나 원격데스크탑 등 오랫동안 컴퓨터를 켜두는 일이 많아지자 2D 화면에서 깨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3D 게임 등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컴퓨터를 켠지 약 40시간이 넘어가면 저런 증세가 나타났던 것이다.
마침 2주 전에 룸메가 서울 갈 일이 있다고 해서 용산에 있는 VGA 제조사 A/S 센터에 들러 새 것으로 교환을 받았지만, 이전보다 약간 더 증세가 늦게 시작될 뿐 같은 현상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원래 '버티기' 용으로 산 VGA라서 좀 어중간한 성능—내가 모니터를 24인치를 쓰기 때문에 풀해상도 쓰기에 좀 무리가 있다—으로 산 것이고, 게다가 GeForce 8600/8300 등 DirectX10을 지원하는 차기 메인스트림급 VGA가 3월 정도에 나온다고 발표까지 된 상황이라 바꾸기도 좀 애매하다. (아마도 초기제품보다는 좀더 상황을 보고 올 여름이나 가을쯤 VGA만 업그레이드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아, BIOS 업데이트나 VGA 드라이버 업데이트 등이 모두 소용 없었고, 다나와의 상품평을 보면 이 제품에서 특히 불량에 관한 댓글들이 많은 걸 보니 아무래도 계속 문제가 나타날 것 같다. 돈 들여서라도 확 바꿔버릴까...-_-
요즘 이것저것—태터툴즈, URP, …—하느라 블로그 포스팅을 거의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예정 목록을 공개해두면 뭔가 더 motivation이 되지 않을까 해서 적어둔다. -_-;
뭐 이 정도다. 아마 내일 1~2개쯤 하게 될 것 같고, 마지막 것은 주말에 집 구경 가면 사진이라도 찍어서 올릴까 생각 중이다.
그나저나 유럽여행 에피소드 시리즈와 먼 옛날의 XHTML 강좌는 아주 안드로메다... orz
간만에 뽀샵질;
태터툴즈의 새로운 버전이 공개되었다. 아직 태터툴즈 공식 홈페이지에는 올라오지 않았지만 TNF 포럼에는 먼저 공개되었다. 이번에는 최적화를 거치지 않은 원본 소스 코드와 TNF 검증을 거친 인기 플러그인들이 포함된 Expansion 판도 함께 배포된다. 얼마 전 있었던 rel-tag 사건의 결과로 추가된 rel-tag 지원, 시간 정보가 없는 RSS 피드를 읽지 못하던 문제 수정 등 내가 기여한 부분도 들어가 있고, 예전에 만들었던 '새 창으로 열기' 링크 추가 플러그인은 Expansion pack에 새로 포함되었다.
사실 1.0.6에서 1.1로 넘어올 때는 관리자 화면이 다 뒤집어지는 대변화에도 불구하고 무려 XHTML Specification 담당이라고 적혀있는 내가 거의 한 일이 없어서 해당 작업을 담당하신 graphittie님께 다소 죄송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코어 개선에 참여하고 스스로 태터툴즈의 소스코드를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
벌써 TNF가 설립된 것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수 차례의 오픈하우스 및 내부 오프모임을 통해 이 강력한 참여자들로 이루어진 개발 그룹이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봤고, 나 스스로도 참여자가 되었다는 것이 뿌듯하다. 웹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사용자에게 개방형 플랫폼을 제공하자는 목적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더 발전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아까 영화 '중천'을 보러 나갔다오느라 블로그 결산만 급히 작성하고 원래 쓰려던 이 글을 못 썼었다. 영화 감상은 사람들이 스토리가 뻔하다고 평하던 것과는 달리 영상미, CG 등 몰입도 있게 상당히 잘 만들었다고 느꼈다는 정도만 써두겠다. (개인적으로 스토리야 뭐 그런 영화에서 거기서 얼마나 더 복잡하게 꼬고 반전을 만들어봤자 어느 정도겠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사람들이 너무 반전에만 맛들인 게 아닐지. 예술성으로 충분히 높이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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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KAIST 2학년으로서 전공 과정을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한 해였고, 2005년 한 해 동안 해온 블로깅을 바탕으로 더욱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인맥을 쌓을 수 있었던 해였다. 처음으로 내가 가진 기술로 돈을 버는 알바를 해보았고, 이른바 '업계' 사람들과 처음 제대로 접촉해보았다. 또한 대학 와서 처음으로 외부 대회(IT Festival과 ACM-ICPC)에 참여하였다.
Kaistizen님, lshlj님, reshout님 등 많은 KAIST 사람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일부와는 오프라인으로도 교류가 확대되었다. 또한 TNF 활동을 통해 노정석님, inureyes님 등과 깊이 있는 교류를 하며 웹 세상에 대한 시각을 넓혔고, 더불어 TatterTools 개발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과도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2차적으로 고등학교 선배인 백영준님을, SK 아이미디어의 김용오 대표님과 개발자 분들 등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끼친, 끼칠 분들이다.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TatterTools와 MetaBBS라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또 동아리 팀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혼자 하는 프로그래밍의 세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팀단위 개발을 (조금이나마) 경험해볼 수 있었다.
동아리에서도, 개인적으로도 내가 가진 컴퓨터 관련 지식이나 기술들을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제대로 활용해본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내가 원했던 바와 같이, 내가 얻은 것들을 베풀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한편, 여름방학 때 다녀온 유럽여행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인류 역사에서 각 문화권들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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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07년이다. KAIST 3학년으로서 더욱 빡센 전공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TatterTools와 MetaBBS 프로젝트의 핵심축으로서 내 역량을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 더욱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초점을 맞추고, 착실히 내공을 기르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