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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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즐기기
저번엔 새내기 세미나를 기계공학동 금요음악회로 대신했었고, 그때도 감동받았지만, 오늘 보았던 겐조 다케히사의 하프시코드 연주는 내 생애 가히 최고의 연주로 뽑을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나서 모차르트 곡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인상 깊게 감상했던 건 이번이 처음이고 아마 앞으로도 거의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겐조 다케히사는 1980년 동경 예술대학 및 대학원을 나왔고, 84년부터 쳄발로, 오르간, 포르테피아노, 하프시코드 등 바로크 시대 이후의 건반 악기들을 폭넓은 레파토리로 연주하기 시작한 음악가이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맹인이라는 사실이다. 건반 악기를 연주하면서 악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그에게 매우 힘들었을 텐데, 오늘 연주했던 것만 해도 상당한 난이도가 있는 곡들이었다. 매년 50회 이상의 연주회를 하며 훼리스 대학 음악부 강사를 맡고 있다. 음반으로는 [건반 음악의 영역], [J.S.Bach의 오르간 작품집] 등이 있으며 저서로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음악을 한다]가 있다.

오늘 연주했던 곡들은 작자 미상의 [Upon la-mi-re], D.Scarlatti의 [Sonatas in A major L208 & 209], Couperin의 [La Rosignol en Amour], J.K.Kerll의 [Cou-cou], J.Kuhnau의 [Biblical Sonata No.1 'The Combat betwwen David and Goliath'], 그리고 Bach의 곡을 자신이 직접 편곡한 [Ciaccona from Partita for unaccompanied violin No.2], W.A.Mozart의 [Variation on 'Ah vous di rai je, maman'], 마지막으로 W.A.Mozart의 [4손을 위한 소나타]였다. 마지막 곡은 보조 연주자로 다른 여자 피아니스트와 함께 연주했다.

하프시코드의 음색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 악기와 연주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의 세 곡은 일본에서 만든, 매우 화려한 장식(그야말로 'baroque' 스타일)의 하프시코드를 썼고, 그 다음부턴 계속 독일에서 만든 매우 단순한 장식(그저 회색빛깔의 초록색 페인트만 칠한 듯 보이는)의 하프시코드를 썼는데 둘의 음색이 약간 달랐다. (사실 난 뚜렷한 차이는 못 느꼈지만 독일제가 좀더 명료한 것 같다) 그리고 두 곡의 Mozart 곡을 칠 때 사용한 포르테피아노는 실제로 모차르트가 사용했던 것을 그대로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하프시코드는 현이 매우 얇고, 음높이에 상관없이 한 음당 무조건 두 줄로 되어 있다. 현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건반을 누르면 현 사이에 있던 막대가 올라오면서 작은 깃털 조각으로 현을 퉁겨 소리를 낸다. 하프시코드의 건반은 오르간과 비슷하게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포르테피아노는 현대적인 피아노와 하프시코드의 과도기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현은 하프시코드와 거의 똑같지만 건반을 눌렀을 때 해머로 친다는 점이 다르다. 소리는 우리가 아는 피아노 소리에 고음부에서 약간 챙챙거리는 느낌이 더 난다고 보면 된다.

맹인이어서 그런지 몸의 자세가 다소 경직된 것같이 보였으나 점점 연주에 깊이 빠져들면서 아주 유연해지고, 또 어린아이처럼 발도 구르는 등 그야말로 어린아이가 피아노 앞에 앉아 호기심을 가지고 건반을 누르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자기가 마음 속에 담고 있었던, 그러나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연주를 통해 쏟아내었고, 그것이 매우 순수한 열정으로 이루어지며, 그 표현 또한 세계적 수준의 연주 솜씨를 통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것. 마지막 곡인 모차르트의 네 손을 위한 소나타에서는 그야말로 내 평생 음악을 들으면서 도달하지 못했던 감동의 수준에 다다랐다. 피아노와 하프시코드를 두 연주자가 동시에 연주하면서 각자 자신의 열정을 쏟아내고,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는 그 순수한 마음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카이스트와 같은 곳에서, 내용이나 수준으로 보았을 때 실제 정식 공연이었다면 비싸서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법한 그런 멋진 음악회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공연 관람 기회가 더 확대되고, 또 더 많은 학생들이 알 수 있도록 홍보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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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컴퓨터
업그레이드라고 해서, 겉으로 뭔가 달라져 보이는 건 아니지만, 봇의 내부 구조를 완전히 새로 만들었다. 일단 여러 개의 채널에 동시에 접속하여 각기 따로 메시지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클래스들을 만들었다.

Daybreakin IRC Bot 구조


먼저 IRC Server에서 메시지를 받으면 그걸 clsIRCMessage에게 주어서 parsing한다. 그러면 그 결과가 그 클래스의 속성들로 저장되고, 이것을 1차로 clsIRC(전체 접속 및 channel과 관련없는 모든 메시지 처리)로 넘겨준다. clsIRC는 메시지를 분석해서 자기가 처리해야 하는 메시지일 경우 메시지를 처리한 다음 먹어버린다. (뒤로 전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clsIRCChannels(현재 접속된 채널 관리)로 메시지가 넘어가고, 거기서 clsIRCMessage.Channel 속성에 맞는 채널 object로 메시지를 보내면 거기서 처리하게 된다. 이때 이것이 특수한 명령어 인식 문자(backquote)를 가지고 있으면 clsIRCCommand로 넘기고 이 놈이 최종 처리를 하게 된다.

이전에는 모든 걸 소켓의 이벤트 프로시저에서 처리했는데, 일단 이렇게 만들고 나니 기능의 추가, 삭제가 매우 용이해졌고, ActiveX DLL을 이용한 플러그인 방식도 도입할까 생각중이다.

만들면서 가장 고려해야 할 부분은 IRC Server가 도배 방지를 위해 빠르게 많은 양의 메시지를 보내면 Excess Flood로 접속을 끊어버린다는 점이다. (IRC에서는 사람들이 일부러 봇에게 연속적으로 많은 출력을 하는 명령을 주어 이 현상을 일으키는데, 이걸 두고 "봇을 죽인다"라고 한다)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 그동안 보낸 메시지의 양을 기록하고 이걸 특정 시간 비율에 따라 감소시켜 일정값 이하일때만 메시지를 전송하도록 pending하는 기능이 필요하다.

아무튼, 옵테러 방지 등 일반적으로 irc 이용자들이 원하고 있는 몇몇 추가 기능들을 넣으면 꽤 쓸만한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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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05년 5월 12일)은 내가 만으로 18세가 되는 (18금이 먼저 떠오르는..orz) 날이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가 되는 듯 싶었는데, KAIST Orchestra 공연이 끝난 후 있었던 MR 정모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을 날이 되었다.

KAIST Orchestra 공연도 간만에 만난 오아시스처럼 매우 좋았다. 내가 어렸을 때 즐겨 듣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라든지, 차이코프스키의 꽃의 대왈츠(맞나?) 등을 연주했는데 아주 잘 했다기보담도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직접 연주하는 걸 자세히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Orchestra 공연 끝날 때 앵콜 연주를 했는데, 갑자기 제1바이올린 악장과 지휘자 분이 옷과 자리를 바꾸고 바이올린과 지휘봉도 바꾸더니, 정말로 바꿔서 연주를 하는 게 아닌가. 악장이었던(...) 그 형은 매우 열정적(!)으로 지휘를 했는데 관객들은 다 웃었다. (정말 웃겼다-_-) 그러더니 양쪽 끝에 앉아있던 연주자들이 나와서 무대 앞을 장식한 ㅤㄲㅡㅊ들을 뽑아서 던져주는 것이다. 일순간 환호가 터졌다.;; 퇴장하고 나서 사람들이 꽃다발을 주러 무대 및 준비실에 잔뜩 몰렸는데, 나는 용선이(고등학교 때 같이 오케스트라 동아리를 했었다)를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공연을 잘 보고, MR 정모 갈 시간이 딱 됐길래 바로 MR 동방에 갔다. 그런데, 같이 공연을 보러왔던 태경이 형이 먼저 간다 그래놓구선 안 오는 것이다. 분명히 먼저 간다고 했는데... 중간에 어디로 샌 걸까 궁금해 하고 있던 참에, 정모 끝날 때쯤 갑자기 케익을 들고 나타나는 게 아닌가. 자기 말로는 자전거 타고 어은동 쪽에 나가서 사왔단다. 정모와 MRG 팀 세미나가 끝나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약간의 생일빵(?)을 당한 다음 촛불을 켜고 동아리에서 생일 파티를 해 주었다. MR 선배들 얘기에 의하면 원래 MR에서 남자 생일을, 그것도 1학년 남자 생일을 이렇게 챙겨준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생일을 챙겨준 태경이 형한테 고마웠다.

정말이지, 개인적으로 축하받는 생일은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누군가한테 '고맙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매우 감사할 일이다. 앞으로 나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좀더 잘 챙겨주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