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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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뭐, 다들 하는 분위기라서 나도 정리해보았다. (실은 9대 키워드였으나 마지막 하나가 생각났다-_-)

Blog
사실 블로깅을 시작한 것은 2004년 11월부터지만, 본격적으로 블로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2005년 들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결국, 제2회 라이브블로그 행사의 "숨겨진 진주 블로거" 최종 후보로 선정되는 영광까지 안게 되었다.
인터넷, 웹, 소프트웨어, 과학, 예술 등과 함께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접할 수 있게 된 내 개인적인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고 평할 수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 상으로 알게 된 사람들과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가져보기도 하였다.
Web Standards (웹 표준)
블로깅의 부산물로서, Firefox를 접하게 되었다. IE가 웹브라우저의 전부인 줄 알았던 내게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일깨워주었고, 내 웹서핑을 매우 편리하게 해 준 브라우저였다. 하지만 국내의 많은 웹사이트들은 웹표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큰 불편이 있었고, 이것에 대해 하나둘 알아가다보니 이제는 스스로 XHTML+CSS를 터득하여 웹표준에 맞춘 웹사이트 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Computer & Programming
2004년까지만 해도, 기껏해야 Visual Basic 정도와 아주 약간의 C 언어 지식, HTML 조금 다루는 정도에 윈도우 프로그래밍밖에 할 줄 몰랐다. 2005년 들어서 Linux를 접함과 동시에 XHTML, PHP, Python, C (with gcc), CSS 등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토끼군을 통해 estoric programming languages (esolang)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아희 언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프로그래밍의 기본 구성 요소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고, Lisp 등 구조적·객체지향적 언어와 다른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현재는 개인 리눅스 서버를 운영하고 있고, 학교 동아리 2개의 서버를 맡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실제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Linux Shell을 만드는 법에 대한 동아리 차원의 C 프로그래밍 교육도 받았다. 컴퓨터가 동작하는 내부 원리와 Operating System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었다.
KAIST
2005년은 고등학교 2학년에 조기졸업하고 진학한 카이스트의 첫 1년이었다. 어렸을 때 SBS에서 했던 카이스트 드라마를 보면서 막연히 동경했던 세계에 실제로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실제 있어보니 거의 똑같이 묘사한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 하지만 학교의 이미지 향상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 때와 달리 수업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스스로 계획하여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어떤 면에서는 이를 잘 활용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나이 상으로는 청소년이지만 실제 생활은 대학생처럼 하는 다소간의 부조화가 발생하기도 하였지만(특히 술집 갈 때-_-) 직불 카드와 한 달 수십 만원 단위의 용돈 사용 등 새로운 생활 방식에 적응하게 되었다.
1년 동안 성적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잘 받은 편이었고, 성적 외에도 수업 자체로 얻은 것들이 매우 많았다. 특히 실내악 앙상블 수업을 통해 개인적으로 음악적 성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진로 문제
카이스트는 무학과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서, 3학기까지 다닌 다음 자신의 학과를 결정한다. 그리고 필수 학점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져야 한다는 점을 빼면 전과도 자유롭다.
처음에 카이스트를 지원했을 때부터 어떤 분야를 공부해야겠다고 딱 결정하고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입학 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고민 중에 있다. 현재로서는 전산학과가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전거
내가 태어나서 자전거를 처음 타 본 게 2004년 8월이다. 카이스트에 가면 자전거가 생활 필수품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겸사겸사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1년만에 자전거로 집에서 한강을 왕복(60 km)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게다가 아버지와 형이 취미로 즐기는 MTB에도 발을 들여 산에서도 조금 탈 수 있게 되었다.
어렸을 때 자전거 배우기에 몇 번 실패했었는데 2005년에는 정말로 많이 발전하였다.
실내악 앙상블
가을학기에 들었던 이 수업을 통해 음악에 대해—특히 다른 사람과의 연주를 어떻게 호흡맞춰서 하는가—다시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또한 같이 4-hands 파트너를 했던 진혁이 형 덕분에 피아노를 배우는 것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배우다가, 중2 때부터 뉴에이지 위주로 연주·작곡을 했고, 고등학교 때 쇼팽 쪽을 약간 접했다. 지금은 내 관심 분야가 뉴에이지와 클래식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특히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대해서 어렸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흥을 느끼게 되었다.
IRC
친구인 토끼군을 통해 접하게 된 IRC의 세계. 이를 통해 Total Annihilation 매니아들을 만나 같이 멀티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됐고, 프로그래밍에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KLDP CodeFest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을 얻었다.
RFC 1459 표준에 있을 만큼 오래된 프로토콜이지만, 사실 여기에 빠지면 MSN이나 네이트온 등과는 다른 또다른 맛(?)이 있다.
황우석 사건
이건 정말 그냥 짚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사회가 가진 이공계에 관련된 총체적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태 흐름을 보아하니 결국 황우석 교수가 잘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개인의 잘못보다도 이 잘못된 시스템을 타고 크게 일을 터뜨린 것이 주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통해 한국의 이공계와 사회가 좀더 성숙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세벌식 최종 자판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2005년 3월까지 계속 써오던 두벌식을 버리고 세벌식 최종 자판으로 전환하였다. 아직 천 타가 나온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상 생활에 전혀 불편이 없을 정도로 익힌 상태다. (현재 장문 연습으로 500타가 조금 안 되게 나온다) 세벌식을 익히고, 날개셋 입력기를 사용하니 한글 입력이 굉장히 편해졌고 손에 무리가 가는 일도 줄어들었다. 다만 역으로 두벌식을 까먹어서 다른 컴퓨터를 쓸 때 조금 불편하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