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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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이번 2005년 휴가는 아주 날짜를 기가 막히게 잡았다. 처음에는 일기예보에서 '화요일부터 전국적인 비'라고 하길래 다소 좌절하고 있었으나 그와는 정반대로 월, 화요일 모두 가시거리 30 km를 자랑할 정도로 엄청나게 맑았던 것이다.

장소는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Phoenix Park)였다. 그러나 휘닉스파크 자체의 시설을 이용하기보다는 주로 숙박의 목적이었다. (사우나와 수퍼. 주점 등은 잘 이용했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MTB Up-hill과 Down-hill 훈련 및 즐기기.

첫 날

차에 아버지와 내 MTB 두 대를 매달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콘도에 도착. 우리처럼 자전거 두 대를 매달고 온 차가 또 있었다. 콘도에 간단히 짐정리를 하고 아버지와 나는 일단 휘닉스파크 자체에서 제공하는 MTB 코스를 타 보기로 했다. 원래 전날 있었던 '인디페스티발' 코스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스키장 정상의 '몽블랑'에서부터 타고 내려오게끔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유격훈련의 시초가 될 줄이야.. orz 그 전날 혹은 전전날 쯤 비가 좀 왔었는데, 햇볕에 노출된 스키장 노면은 괜찮았으나 스키 코스 사이사이의 숲길은 완전 진흙탕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회용 코스여서 그런지 경사도 세서 타지도 못하고 자전거를 끌고 가다가 미끄러져서 바지와 신발이 온통 진흙 범벅이 되었다. -_-

둘째 날

아침 일찍 사우나탕에 가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청태산에서 6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양구두미재 언덕에서 진조리로 나가는 자그마한 길로 갔다. 이곳은 아버지께서 지도로 미리 봐둔 곳으로 업힐 없이 약 9.8 km가 계속 다운힐이며, 콘크리트 길과 흙길, 자갈길이 계속 번갈아가면서 나타나 아주 환상적인 훈련·즐기기 코스였다. 코스 옆에는 같이 작은 계곡이 흐르는데 중간에 거기로 내려갈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가는 길은 화창한 햇빛 덕에 매우 선명했고 나뭇잎들 뒷면으로 비친 초록색은 하염없이 아름다웠다. (길을 가는 게 아까울 정도 -_-) 게다가 차디찬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그 또한 스트레스와 열기를 싹 날려주었다.

진조리에서 면온초등학교 쪽을 지나 다시 휘닉스파크로 돌아왔는데, 3 km 정도가 완만한 업힐이었다. 특히 휘닉스파크 진입로가 계속 이어지는 경사였는데 기어를 아주 낮게 놓고 '발발발발'해서 앞만 보고 올라가니까 올라가지더라. 자전거 타기 시작한 후로 업힐을 그렇게 길게 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결국, 마지막에 힘이 빠진 나머지 다 도착해서 내리다가 엎어지는 바람에 명치 바로 옆에 상당한 충격이..-_-)

오후엔 다른 코스를 미리 답사할 겸 차로 임도를 다녀보고,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경포대 해수욕장에 갔다. 21일 일요일을 기점으로 비수기가 시작됐기 때문인지, 또 날씨가 이틀 사이에 갑자기 시원해진 탓인지 해수욕장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사람 밖에 없었다. 뉘엿뉘엿 지는 오후 해를 바라보며 해수욕장에서 바닷바람을 즐기고 저녁은 우럭 매운탕으로 먹었다.

셋째 날

콘도에서 짐을 꾸려 체크아웃한 다음, 옛 영동고속도로(대관령 넘어가는 부분)로 통하는 길에 있는 청태산 자연휴양림에 들렀다. 역시 미리 지도로 봐둔 임도를 따라 한 바퀴 돌았는데, 먼저 둔내산 자연휴양림 경계까지 갔다가(2 km 업힐) 다시 돌아와서 순환로(4.5 km)를 쭉 돌았다. 순환로 중반부분에서 상당히 센 업힐이 있어 그곳에서는 자전거를 끌고 갔는데 어지간한 선수 정도가 아니면 그 경사를 그 거리로 올라가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순환로 정상에서부터는 계속해서 신나는 다운힐! 자연휴양림이라 그런지 임도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중간에 싱글 트랙으로 쓸만한 코스들도 보였는데, 나중에 휴양림 관리하시는 아저씨들한테 물어보니 실제로 그렇게 쓰라고 만들었다고 하며 30여 대 정도의 MTB를 대여할 수 있도록 해놨다고 한다.

점심은 역시 옛 영동고속도로에 접한 '초가집'이라는 작은 음식점에서 먹었는데, 오늘따라 주인 아저씨가 안 나오시는 바람에 일손이 매우 달렸다. 음식도 매우 맛있었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나오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어떤 손님들은 항의하기도 했다) 이 음식점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카드 결제와 일손 보충만 하면 될 것 같다.

*

이렇게 해서 2박 3일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휴가 여행이 끝났다. 일단 아주 기가 막히게 맑은 날씨였다는 점과,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였다는 점이 성공 요인이다. 휘닉스파크 주변이 고산 지대라서 더 그렇겠지만 일단 공기가 습하지 않아서 무덥지 안았고 바람이 잘 불어서 자전거를 그렇게 타는데도 땀을 거의 흘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쾌적 그 자체'였다) 이번 여행으로 내 MTB 실력에 상당한 향상을 가져올 수 있었고(업힐과 다운힐 모두, 이제 싱글 트랙도 좀더 잘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체력 보강도 된 것 같다. 다음 번에는 청태산 자연휴양림에서 묵는 방법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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