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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날, 드디어 그 엄청난 숙제(100페이지 분량의 책 읽고 prequestion 답장을 10페이지 정도로 쓰는..-_-)의 숙제를 내 주셨던 전자전산학과 김충기 교수님의 수업이 있었다.
과연 어떤 분이실까 궁금해하며 수업에 들어갔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안 좋았다. 동아리 선배인 한 형이 교수님에게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었는데, 내가 짐작하기로 숙제가 많았다거나 정도의 말을 한 것 같았다.나중에 알고보니 수업 시작할 때 불미스런(?) 일이 생겨 교수님 기분이 별로 안 좋으셨었다고 한다. 결국, 그 형은 교수님 대신 수업을 진행하라(!)는 명령을 받고 자기가 해온 숙제를 발표해야 했다. -_-;
그때까지만 해도 '뭐 이런 냄새스런-_- 교수가 다 있어' 그러는 분위기였는데, 수업 내용을 듣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주제는 예고되었던 대로 “과학기술자의 리더십”이었다. 그 형 다음으로 기계공학과 학생이 나와서 발표를 했고, 그 두 번의 발표와 질의응답을 통해 미래의 리더상은 대략 미래예측, 행동력(추진력),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믿음, 의사소통 능력 정도로 좁혀졌다. (이 외에 내가 제시했던 과학적 윤리관이나 공익성 여부 판단 능력도 목록에 들어갔다)
일단 교수님은 잘 했다고 칭찬해주신 다음 본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풀어나가셨다. 오우가를 예로 들면서, 항상 반대로 생각해보면 의외로 쉽게 답을 얻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자기가 책 속의 등장 인물이었던 사사키 다다시와 이한빈 박사를 만났던 경험을 말하셨다. 그러면서 정리한 리더십은 다음과 같았다.
- 선진국형 미래 예측과 후진국형 미래 예측 : 선진국은 자신의 역사와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만들어나가지만, 후진국은 선진국의 현재를 자신들의 미래로 삼는다. 우리나라가 어떤 큰 사업을 하고자 할 때 항상 외국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후진국형 미래예측에 불과하다.
-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 한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미래를 예측하면, ㅤㅈㅓㄼ은이들은 그들의 패기와 열정으로 그 미래를 만들어간다.
- 리더는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들은 모두 다른 선진국의 당시 현재를 보지 않았고, 자신들의 상황을 보고 판단하여 미래를 만들어냈다.
이런 이야기를 아주 효과적으로 잘 전달되도록 유창하게 풀어나k갔고, 처음의 어색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모두가 집중했다. 간만에 감동적인 강의를 들었다고나 할까. 인간과 기계 수업들이 대체로 내용이 좋았고, 수업이 끝나면 교수님께 박수를 치곤 했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두드러졌다.
수업이 끝난 후, 동아리 선배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리더십에 대해 말하다가, 러플린 총장 얘기가 나왔다. 얼마 전 가동된 학사관리시스템 개발 프로젝트가 실은 그의 발상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러플린은 오픈소스 쪽 경험이 전혀 없는 정보시스템연구소에게 오픈소스 방식을 사용할 것을 지시했었고(강제적인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 운영체제로 RedHat을 꼭 써야 한다는 말도 했었다고 한다. 물론 그 자체로 봤을 때 지금보다야 충분히 개선된 방향이긴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미래지향적으로만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역사 교육을 중요시한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현재를 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함이다. 러플린 총장은 아직 이런 면에서는 부족한 듯 싶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기대하는 건, 그가 언제든지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며, 어쨌든 현 상황의 카이스트에 어떤 식으로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이야기가 잠시 샜지만, 이번 수업은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수업을 듣고 나서 뭔가 많이 남았다라는 생각이 드는 몇 안 되는 수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