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내가 그동안 했던 게임들을 꼽으라면 저 옛날의 커맨드앤컨커 시리즈(오리지날, 레드얼럿, 타이베리안선), 토탈어나이얼레이션(Total Annihilation), 스타크래프트가 있겠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주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 장르를 즐겨왔고 실제로 본격적인 맵 제작은 거의 안 했지만 맵에디터가 있거나 혹은 내가 맵에디터를 만들 수 있는(!) 게임들을 주로 했다. RPG 류도 디아블로2 같은 건 조금 만져보긴 했었는데 노가다 뛰고 시간 투자가 많이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거의 해보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토탈어나이얼레이션은 중학생 때 유닛을 만들어보겠다고 전용 AI 스크립트 언어까지 공부하다가 실패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열정을 보이는 것과는 상관 없이(?) 그만 이 게임 제작사인 Cavedog이 망해버려서(...) 프로듀서였던 크리스 테일러라는 사람이 나중에 Gas Powered Games로 옮겨가 슈프림커맨더(Supreme Commander)를 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근 10년 동안 즐기던 토탈을 접고 무려 한정판 패키지를 지르기도 했다. 이후 관련 게임 커뮤니티를 개인 서버에 계속 호스팅해오고 있기도 하다.
다만 슈프림커맨더의 결정적 단점이라면 한 판을 플레이하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는 점으로, 사람들과 2v2 이상 멀티를 하면 1시간에서 길어지는 경우 2~3시간까지 걸리기도 한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20~30분이면 한 판이 끝나는 스타크래프트에 익숙하고 사람들 성격도 급해서인지 매우 인기가 없었다. (첫번째 릴리즈는 국내 유통사를 통해 공식발매가 되었는데 별로 많이 안 팔렸는지 확장팩과 더 이후에 나온 슈프림커맨더2는 국내 발매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구매대행을 이용하거나 STEAM을 이용해 달러 결제하고 온라인 구입해야 했다.)
하지만 슈프림커맨더 이후로는 대학 생활에 한창 바빠서(2007년 봄에 출시되었는데 이때가 가장 바쁜 시기중 하나였다.) 무려 클로즈베타부터 게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년 늅(...) 상태로 남아있었고, 따라서 게임에 돈을 꽤나 쏟아부었으면서도1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임 자체도 뭔가 다른 생산적인 활동에 밀려서 거의 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주변 사람들의 소개로 시작한 게임이 바로 League of Legends(이하 LOL)이다.;;;
사람들이 "DOTA류의 게임" 또는 "DOTA 만든 사람들이 만든 게임"이라고 하는데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알고보니 워크래프트3에서 사람들이 "카오스"라는 유즈맵을 하는 걸 본 적이 몇 번 있는데(내가 있던 로봇 동아리 미스터에서 사람들끼리 동방에서 참 많이도 했었다. 나는 한번도 안 해봤지만.) 이게 그런 방식의 게임이라는 거다.
내가 해왔던 RTS들은 제한된 크기의 전장(맵) 안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하고 자원을 채취하여 건물과 유닛을 생산해 서로 싸우는 방식이었는데, DOTA에서부터 이어진 LOL은 제한된 크기의 전장을 이용한다는 점은 같으나 자원 채취와 생산이라는 개념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적을 죽일 때 버는 돈이 자원이랄 수는 있겠다) 다양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는 RTS에 비해 판타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으로, 플레이어들의 의지와 상관 없이 양측 진영에서 자동으로 생성되어 서로 싸우는 미니온들이라는 작은 병사들이 존재하고, 여기에 플레이어들은 각자 한 명의 영웅을 맡아 미니온들을 돕거나 상대편 영웅들과 싸우는 방식이다. 영웅들은 각종 스킬과 마법을 사용할 수 있고 게임 중 번 돈으로 아이템을 사서 능력치를 자기 입맛에 맞게 키울 수 있다.
한동안 말려서 하다가(...) 가만 돌아보며 재미 요소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렇다.
스타크래프트는 유닛 상성이 있어서 어느 정도 이를 이용한 조합적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토탈에 그나마 있었던 다양한 유닛의 특성이 슈프림커맨더에 와서는 무조건 물량전 위주로 바뀌는 바람에 뭔가 머리쓰는 재미보다는 빌드오더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해지고 빠른 컨트롤과 많은 플레이 경험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게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뒤쳐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LOL은 내가 매우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즉각적으로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이유로 아이템과 특수능력을 조합하고 이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전략 구상을 매우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다른 RTS 게임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전략 설계의 intensiveness, 거기에 더하여 전략의 성공 여부를 매우 빠른 템포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LOL 커뮤니티에서는 '한타'라는 용어로 자기 편과 상대 편의 여러 영웅들이 함께 맞붙어 싸우는 상황을 표현하는데 이때 각 영웅별 특성을 잘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서로 견제하거나 도망가는 게 아니라면, 10여초 만에 한타의 승패가 판가름난다.) 이것 또한 빠른 피드백이라는 점에서 flow의 또 다른 조건의 하나다.
사람들이 중독성이 높은 게임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가만히 살펴보니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구나 싶다. 대학원생인지라 게임할 시간이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이런 게임을 하면서 내부는 어떤 구조로 설계했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고(...아마 게임하면서 그런 거 생각하는 사람이 많진 않을 것 같지만 ㅋㅋ), 사람들에게 재미 요소를 주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혹은 느끼기 위해 다양한 게임을 접해보는 것 자체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통적인 의미에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고.
얼마 전에 이 게임 개발사(Riot Studio)가 별도의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한국 서비스를 하겠다고 발표했다는데, 그러면 지금의 불안정한 접속 환경이 많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재밌게 할 만한 게임을 하나 찾았으니, 이것도 가늘고(?) 길게(?) 즐겨봐야지.
참고로 나는 내가 메인으로 재미붙여서 했던 게임들은 모두 정품 구입하였다.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날, 브루드워, 토탈, 슈프림커맨더 및 확장팩/후속작, 워크래프트2, 커맨드앤컨커과 타이베리안선 모두. 레드얼럿과 심시티는 복사 방지 기술이 별로 없었던지라 친척한테 빌려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생각 외로 나는 게임이나 소프트웨어에 돈을 좀 쓰는 편인데--이런저런 소소한 프로그램들도 크랙을 구할 수 있더라도 일부러 정품 구입한 게 꽤 있다--내가 소프트웨어로 밥벌어 먹고 살아야 할 입장이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를 충분히 즐겁게 해준다면, 또 내 시간과 노력을 충분히 아껴준다면 그 자체로 가치를 지불하는 것이다. (다만 포토샵 같이 좀 너무 심하게 비싼 건...ㅠ_ㅠ 내가 필요한 기능만 선택해서 가격을 매길 순 없을런지... 나의 사용 패턴과 대체재의 존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내 사용 가치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은 경우는 때로 어둠의 경로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어둠의 경로는 대체재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물론 그동안 그럴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이 허락해준 것도 있지만, 사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크게 어려운 건 아니기도 한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