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했던 생각의 상당 부분을 토끼군이 먼저 작성하는 바람에 트랙백을 건다. 아래에서는 그가 왜 자살을 택했는가에 대해 내 경험과의 비교를 토대로 길게 썼지만, 일단은 먼저 그의 명복을 빈다. 작년에 있었던 수도권 과학고 체육대회 때 학교별 밴드 공연에서 드럼을 쳤다는, 바로 내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고, 현재 KAIST의 서울과학고 출신 동기들의 친구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함부로 꺼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단, 사건 자체에 관한 내용은
토끼군의 블로그를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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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니던 서울과학고 정도면 그래도 과학고들 사이에서도 꽤 실력을 인정해 주는 곳이다. 기사 내용으로 미루어 봤을 때 학교 생활을 나보다 잘했음 잘했지 못한 건 아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1학기때까지도 과학고라는 게 있는지조차 몰랐다. 어찌어찌해서 정보올림피아드 동상을 타고 정말 우연에 가깝게 과학고에 진학했다.
처음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또 그렇게 갑자기 진학하다 보니 분위기도 생소했다. 그야말로 별천지에 떨어진 거였다. 다행히 첫 중간고사에서 기대보다 높은 성적이 나왔고 그걸 기초로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일반고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과학고는 적은 수의 학생(자기가 학교를 다니던 동안의 선·후배·동기는 다 아는 것이 보통이다)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인간 관계가 매우 밀접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인간 관계가 좁은 범위에서 이루어져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그 학생회장도 자신이 갖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마땅한 모델을 찾지 못했거나,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내면적으로 소외감을 느꼈을 수가 있다. 내 경우는 부모님(특히 어머니)께서 사회활동을 많이 하셨고, 학창 시절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셨던 분들이라 두 분이 해주시는 조언과 위로가 학교 생활에서 닥쳐오는, 마음이 약해지는 상황들을 헤쳐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만약 부모님과 나 사이에 그런 교류가 2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면 난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내 성격을 되돌아보건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누군지는 밝힐 수 없지만 동기 중에 그런 아이가 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주변에서 하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압박감이 크게 작용했을 거라는 점이다. 사실 공부를 못했든, 수능이 낮았든 간에 주변에서 그에게 하는 기대에 자신이 못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괴롭다.
나도, 사실 집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런 생각이 들 때 회의감이 들곤 한다. 하지만 난 이것조차도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서서히 풀어나갈 수 있었다. 어렸을 땐 나름대로 머리 좋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고, KAIST나 과학고 밖에서는 지금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러나 막상 KAIST, 과학고 내에서는 정말로 머리가 좋고, 흔히들 말하는 천재형의 사람들이 많으며. 그 정돈 아니어도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널리고 널려 있다.
KAIST에서도 매년 자살하는 사람이 생긴다고 하는데, 일반고에서 KAIST로 온 사람들은 특히 고교 시절에 뛰어난 성적을 가지는 사람들이었던 경우가 많아, 자기가 다른 사람 능력에 못 미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 사람에 따라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나도 과학고 초창기에 그런 일종의 자괴감 같은 걸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인정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다)
그러한 학업과 관련된 것이라면, KAIST 진학에 실패했던 것이 내부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과학고에서 KAIST에 조기진학을 못한다는 건 거의 최하위권인 경우이고 어떤 면에서는 수치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곽의 경우도 전문성 면접을 보고 떨어진 한 아이가 발표하는 날에 사라져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을 잔뜩 긴장시킨 적이 있었다)
3:1의 경쟁률을 제치고 학생회장을 할 정도면 적어도 주변 사람들이 보기엔 범생이에다 활달한 성격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면에는 그에 비례하여 더욱 자괴감을 많이 가졌으리라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으리란 것이 내 생각이다. 사람이 자살하는 것은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작은 것이라도 누적되어 나타날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그 작은 것들을 주변에서 보듬어 주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끝으로 이런 일이 앞으로 다시는 없길 바라며, 또 KAIST, 그리고 다른 곳(상황)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명복을 빈다.
ps.
또다른 죽음의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