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lyPond 6
Daybreakin Things
학기 중에 수업을 당당히 째고(...) 간 제주도에서의 무려 4박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점심 때쯤 학교에 도착했다. (실제로 활용한 시간은 3일이지만 앞뒤로 한룻밤씩 더 묵었으므로 4박5일)
안 그래도 비싼 등록비와 숙박비를 고려하여 저가항공인 제주항공을 이용했는데(왕복해서 유류세 등 모두 포함 9만원도 안 됨), 프로펠러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살짝 불안해보이긴 했지만 실제로 타보니 위험한 느낌은 별로 없었다. 제주공항에 내릴 때 바람이 세서 그런지 잠깐 기우뚱(;;)했던 것 빼고; 저가항공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음료수 나눠주는 종이컵 아래에 스티커를 랜덤하게 붙여놨다가 그걸로 관광할인권을 주는 이벤트라든지 막대풍선으로 인형 만들어주는 서비스처럼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도입해서 승객들의 호감을 사는 건 좋았다.
Lift 컨퍼런스 자체는 Lift가 추구하는 방향대로 즐겁게 볼 수 있었다. Serious Fun이라는 주제와 걸맞게, 진지하게 재미있는(?) 여러 innovation들을 살펴보는 자리였다. 특히 내가 기존에 갔던 모임이나 컨퍼런스들은 정말 IT 개발자들만의 자리였다면, Lift는 예술 분야의 사람들도 함께 참여하였기 때문에 훨씬 많은 자극을 받았고 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던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아무래도 가장 집중도가 높았던 첫번째 세션의 발표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송호준씨가 진행하는 Open Source Satellite Initiative 프로젝트가 인상깊었다. 특히 하얏트 호텔에서의 야외 만찬에서 그분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진행하여 실제로 결과를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음으로써, 그런 사람과 만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에너지 자극을 받을 수 있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한 에너지를 주는 사람으로 또 한 명을 꼽으라면 ice-breaking 역할을 했던 이다도시(Ida Daussy) 또한 어색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풀어주는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갑자기 다음 주에 MapReduce 과제를 내야겠다고 하신 문수복 교수님 덕분에 노트북으로 CCI:U Open Course Labs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느라 몇몇 세션은 자세히 못 들어서 좀 아쉽기도 했다. ㅠㅠ 어쨌든 기억에 남는 발표로는, 진정한 개인화 맞춤 생산 시대의 도래를 실감케하는 사용자의 소망과 제품 생산자를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인 CUUSOO를 창립한 Kohei Nishiyama와 나비 아트 센터의 최두은씨의 발표, 도시 공간에 설치된 CCTV들의 신호를 가로채어(!) 드라마를 촬영해 관찰자·감시자의 관점을 결합한 Surveillance-Drama를 찍는 조성진(닉네임 양아치-_-)씨의 발표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특히 조성진씨 발표에서는 Lift가 열리는 ICC의 CCTV를 실제로 이용하여 1층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와 그 앞의 카페에서 가상 총격전을 벌이는 상황을 연출하여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첫째날 저녁 때의 하얏트 호텔 만찬에서는 시원한 제주도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어떤 분은 별로 맛없었다고도 트윗하셨던데 그럼 그분은 평소에 도대체 어떤 음식을 드시고 사는 건지...-_-) 저녁 먹고 돌아다니다가 송호준씨와 만나서 재미나게 이야기하기도 했고, 카이스트 90학번 선배를 만나기도 했다.
컨퍼런스의 하이라이트로, 한국 인터넷 20주년을 맞아 Daum 이재웅 설립자, NCSoft 황순현 상무, Cyworld 이동형 공동창립자, Neowiz 허진호 CEO 등이 나와 패널 토론을 벌였는데 막상 토론보다는 지난 역사 이야기를 하는 정도에서 그친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다음이 원래 웹에어전시로 시작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은 흥미로웠다)
둘째날 발표 중에서는 최승준님과 나부군(김경수)님이 준비한 SMS 기반 네트워킹이 가장 재미있었다. 10분 동안 자기에 대한 키워드를 특정 번호에 문자로 보내고, 그 다음부터 그 번호로 자기가 보내는 문자는 자신의 키워드와 같은 키워드를 가진 사람들에게 모두 전송되는 형태다. 세부 사항은 좀 다듬을 필요가 있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나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면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있을 때 소모임들의 창발을 손쉽게 이끌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오픈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최승준님의 '교육에서의 애자일 방법론 활용' 발표도 인상깊게 들었다. 유치원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애자일에서 흔히 사용하는 practice들을 활용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었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질의응답에서는 나를 포함해 주로 기존 조직에 애자일을 도입하려고 할 때 부딪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하는 내용이 나왔는데 결론은 절대적인 정답은 없고 그때그때 조직과 사람들의 chemistry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TED Talks를 처음 만든 Jason Wishhow의 발표도 의미가 있었다. 회사일 덕분에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기술적인 한계로 영상을 공유하기 어려웠던 80년대 중반부터 이미 그러한 강연들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녹화해놓았던 노하우가 Youtube와 같은 전세계를 대상으로하는 영상미디어 전송이 가능해지면서 여러 나라의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을 보았을 때 역시 준비된 자는 다르구나 하는 걸 느꼈다. 이 사람과는 다음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만나 TED 홈페이지의 개선·한국에서도 열었음 좋겠다는 건의와 함께 명함 교환도 하였다. 철이는 이번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된 이유가 '앞으로 뭐해먹고 살지 고민하고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더니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수익 모델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가장 큰 특징은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나 미투데이를 통해 생중계를 했다는 점이다. 작년에 왔던 분들의 말에 의하면 보통 블로그를 적는 사람이 많았다며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 특히 나는 같이 갔던 철이가 휴식시간 등 중간중간 나오는 배경음악이 중독성 있다고 한 얘기를 트위터에 올려 Lift 창립자인 Luarent Haug가 그걸 보고 공식블로그에 글을 올려주기도 하였을만큼 실시간 소통의 채널로 마이크로블로깅의 위력은 대단했다.
도착한 날 밤과 첫째날 밤은 풍림리조트에서 묵었고, 둘째날 저녁 때 윤석찬님을 만나 다음 GMC 바로 옆에 붙어있는 숙소인 탐라무문에 묵게 되었다. 신정규님과 함께 기어이 텍스트큐브 1.8 에디터 리팩터링을 통해 Xquared를 붙이는 작업을 완료하고 별빛을 보며 커밋하는 고생(?)을 하기도 했다. (제주시와 좀 떨어진 곳이라, 별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천체관측 동아리를 하셨다는 정규님 덕분에 플레이아데스 성단까지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윤석찬님이 직접 다음 GMC 이곳저곳을 소개시켜주셨는데, 전에도 GMC가 좋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정말 실제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이가 승마를 해보고 싶다고 하여 제주도 남동쪽의 표선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중간의 고원 지대에 들러 승마를 해보았다. 말이 걷는 속도에 따라 발 3개를 붙이고 가는 것과 발 2개만 붙이고 가는 것의 패턴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등자에 발을 걸치고 적당히 리듬에 맞춰 몸을 살짝살짝 퉁겨주어야 아프지 않게(...) 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말 타면 살 절대 안 찐다는 가이드 아저씨 말처럼 20~30분밖에 안 탔음에도 상당히 몸이 뻐근했다. 말 타는 코스가 고원 지대라 한라산과 함께 제주도 북동쪽의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오름 너머로는 풍력발전단지가 보였다.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좀 아쉽다.)
표선해수욕장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신발벗고 영말벗고 들어가 모래사장과 바닷물에 발을 담궜다. 사람이 거의 없어서인지 아주 깨끗해서 특히 바닷물이 빠진 모래에 아주 작은 털게들이 바글바글대고--걸어가다 몇 마리 밟았을지도 모르겠다--도요새까지 있을 정도였다. 정말 살아있는 바다를 보는 느낌이랄까. 다만 바람이 엄청 세서 바닷물이 작은 물방울로 흩날려 나중에 안경을 보니 하얀 가루가 잔뜩 붙어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마도 소금기일 듯.) 근처에서 거하게 회를 먹고(...) 다시 제주시로 돌아와 저녁 늦게까지 카페에 앉아 놀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여름에 휴가 못 간 대신 간 의미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주도의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또한 심신을 충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윤석찬님 말로는 다음에서 석사병특도 가능하다는데 나중에 아예 제주도에서 병특을 하면 어떨까 싶을만큼 맘에 들었다. 또 Lift 컨퍼런스에 갈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혁신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영감과 자극을 받아 세상을 좀더 재미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도록 계속 발전해나갔으면 좋겠다.
작곡 수업 수강 기념으로 중학교 시절 작곡했던 곡들을 틈틈이 정리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구성이나 화성이 잘 된 Morning Calm을 우선 작업하고 있다. (ly와 pdf를 포함한 실제 악보는 이곳을 참고한다. Creative Commons Share-Alike 조건으로 공개한다.)
특히 이번에는 Noteworthy Composer가 아닌, LilyPond라는 오픈소스 악보 조판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아주 고품질의 악보를 만들고 있는데, 역시 물건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LaTeX을 써본 사람이라면 그나마 좀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종류의 프로그램으로, 텍스트 파일로 소스 코드를 작성하여 컴파일하면 그 결과물로 PDF 악보가 나온다. (MIDI 파일 출력도 가능하다) LaTeX과 달리 유니코드를 자체 지원해서 한글이나 한글 글꼴도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LilyPond로 컴파일(!)한 악보의 일부분
LilyPond를 왜 만들었나 하는 에세이를 보면 현대로 오면서 오히려 예전의 아름다운 악보 조판 기술이 기계적인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대체되면서 잃은 악보의 감성적 typography를 다시 풀어내기 위한 많은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LilyPond를 써보면 상용 프로그램에 뒤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더 아름다운 악보를 얻을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정말, 컴퓨터과학이 어떻게 다른 분야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잘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인류 지식의 총량을 늘려주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훌륭한 프로그램이 오픈소스라는 건 인류의 축복이다!)
다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작곡가들이 아래와 같은 코딩을 하기는 쫌 힘들다는 것. 악보 note만 적는 거라면 뭐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래 스크린샷에서 나오지 않은, staff 관련 설정 등은 녹록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lilypond 소스 파일의 앞부분
사실, 작곡 수업 시간에 상용 프로그램인 Sibelius를 쓴다고 해서 왜 굳이 그걸 써야 하나 싶기도 하다. 물론 직접 들어보고 음원 파일로 만들어내는 건 아무래도 그런 상용 프로그램이 좀더 낫겠지만--아직 오픈소스나 무료소프트웨어 형태로 나온 고품질 음원 소스 및 연주·녹음 프로그램은 없는 듯--악보를 그리는 것은 이런 오픈소스를 사용할 만하지 않을까? 단 한 가지 내가 LilyPond에 원하는 것은 postscript로 컴파일하고 pdf로 생성하는 과정이 좀더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에세이에서는 고품질의 악보를 얻기 위해 시간을 희생했다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_-) 대략 한번 악보를 뽑는데 10초 정도 걸리는데 이게 1~2초 정도로만 줄어도 참 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