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요즘 서남표 총장의 학부교육 개혁안 때문에 말이 많다. 전과목 영어강의화, 재수강 3개 제한 등 논란이 많은 것들부터 시작해서, 리더십 강화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 등을 도입한다는 얘기도 있고, 학과장들이 학과 운영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한다든가 하는 긍정적인 변화들도 보인다.

그러나 KAISTIZEN님이 지적하신 것 중에 마음에 와닿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동아리에 관한 것이다.

SPARCS에서 매년 나오는 얘기였고, 지금도 한창 논의되고 있는 것이 "동아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 하는 주제다. 시스템 프로그래밍을 다루긴 하지만 실제로 하는 프로젝트들은 전부 웹에 관한 것들이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걸 하려면 어떤 내용을 다루어야 하겠는가, 학교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부분들을 커버하려면 신입생들에게 어떤 것들을 가르쳐주면 좋을까 등등.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어떤 내용을 다루든 어떤 것을 가르치든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동아리원들이 마음 놓고 동아리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교내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가장 실질적인 성과를 보이는 동아리 중 하나인 SPARCS에서조차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정도다. MR의 경우도, 지난날 화려한 과거(로봇축구대회 등등)를 뒤로 한 채, 최근 몇 년 동안 이렇다 할 활동이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 정말 밤새서 로봇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만한 "용기"가 이젠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KAIST 전체 학생들로 봤을 때 학점으로 치자면 중상위권에 속한다. 그런 만큼 학점 관리를 위해서나, 내 자신의 공부에 대한 만족을 위해서나, 학업 자체에 들여야 하는 시간이 매우 많다. (그나마 과학고를 졸업했기 때문에 KAISTIZEN님에 비해서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학업 성적을 계속 유지해간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얻은 것은 학교 수업만으로는 절대로 채워질 수 없는 귀중한 경험과 기술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이런 것을 해보겠다"라고 말만 해놓고 정작 실제로 실행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다고 해서, 수업을 널럴하게 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학생들이 나태한가"하는 문제는 굉장히 심사숙고해봐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나태한 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고를 나온 아이들 중에 그런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초반에 적응이 쉬웠으니까.)

내가 보기에, 근본적으로 학부 교육을 개선하려면, 학생들이 KAIST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자신의 목표를 확립해갈 수 있도록 유도해주어야 한다. 과학고에서 KAIST를 오는 경우, 상당수의 학생들이 "남들이 가니까"라고 따라오는 경우가 많고, 학과를 선택할 때도 "내가 이런 것을 잘 해왔으니까" 혹은 "고등학교 때 경시를 이쪽 분야를 했으니까"라고 선택하는 경우가 꽤 있다. 나는 비록 KAIST는 묻혀서 왔을지라도, 학과 선택이나 매 학기 수강 신청 등은 정말로 내 진로를 계속 고민하면서 했고, 그렇기에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 참여하고 있다. 보다 많은 학생들이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나 또한 더욱 의욕을 불태울 수 있게 하려면,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긍지가 없다는 건 아니나, 좀더 열정적인 면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빡센 전공 수업들을 들으며 목표를 확립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방황하게 놔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 수업 자체를 더욱 빡세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학부 교육을 개선하겠다면, 수업 자체의 질을 개선하는 쪽으로 갔으면 한다. 질을 개선하는 것과 학업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현재 총장이 제안하는 정책들이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몇몇 정책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고, 좀더 긴 관찰 기간이 필요하다.) 이미 기존 동아리의 활동이 위협받을 정도로 학업에 대한 부담은 상당하다. 다만 학업을 아예 포기하게 만드느냐, 아니면 모두가 열심히 노력할 수 있게 잘 이끌어주느냐. 잘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동아리를 통해 학교로부터 얻을 수 없는 다른 무언가를 얻을 기회 또한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그렇게 공부를 함으로써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ps. 덤으로, 제발 식당밥 좀 맛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