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오늘 학교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위원장의 강연이 있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행복과 선택'이라는 제목의 강연이었고, 내용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좋은 말씀"들로 이루어져있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고, 아이패드2 추첨(!)도 한다기에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한번 보자 하고 가본 것이었다.
강연 내용은 평이했고, 끝나고 2개의 질문이 있었다. 첫번째는 어느 교수님의 질문이었는데 평등의식과 교육열이 우리나라가 IT 강국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과 최시중 위원장 자신도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중1 때 6·25 겪음) 극기와 노력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내용에 대해, 최근의 젊은 세대들은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어떤 좌절감을 많이 느끼는데 그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강연 내용처럼 답변도 평이했다. 이명박도 농부의 아들이고 자기도 어부의 아들이었으며 어려운 환경 속에 부단히 노력해서 성공한 것이니 열정을 가지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두번째 질문은 어느 07학번 학생이 했는데 맨 마지막 슬라이드에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내용 설명 중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무조건적 무상복지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언급이 잠깐 들어간 것을 두고, 그럼 위원장님은 어떤 것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잘 살기 위한 복지모델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것이었다.
이것에 대한 답변은 이랬다. 일단 이 강연은 일반론적인 맥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못박은 다음, 최근 이슈가 되었던 통신료 인하를 예로 들며 통신사들이 지속적인 망 고도화 투자를 하려면 소비자들이 원하는 대로 다 인하해줄 수는 없듯이 복지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상복지에 대한 두번째 질문이야 개인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니 그렇다치더라도,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많이 아쉬웠다.
강연 주제가 '행복'이었던만큼,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 가족이 매우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 부분은 부모님과도 함께 공유하고 있는데, 우리 스스로는 그 행복이 '앞으로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에 있다고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관점에서 개인의 행복이라는 것도 각 개인이 지금 현재 어떤 상황에 있든지 앞으로 노력하면 내가 더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당장은 힘들더라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교수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최근의 젊은 세대가 좌절감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이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답변으로 미루어보건대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웠다.) 대한민국이 이제는 헌법에서 이야기하는 사상과 종교의 자유나 선거를 통한 정치권력 교체 등 기본적인 자유 민주주의의 틀은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적 불평등과 기존에는 학연과 지연이 계층간 진입장벽이었다면 이제는 경제력의 차이가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규제와 통제는 날로 늘어만 가고(그것도 특히 IT 분야에서) 언론조차도 광고수입과 재벌유착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계급이 없는 사회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1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말마따나 높은 교육열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은 그 경쟁의 과실이 자신한테 돌아온다는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최근의 신부님 강론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성서에서 욥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경쟁 과정 자체는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과 이겨냈을 때 그 과실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버틸 수 있지만, 자신이 속한 시스템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경쟁이지만 그 경쟁을 통해 경쟁자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득을 보는 상황이라면 누가 행복하겠는가.
물론, 언제나 그렇듯 젊은 세대·기성 세대를 막론하고 소수의 과실을 따먹는(내지는 독점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런 사람들은 이른바 '성공한 사람'이 된다. 어떻게 보면 최시중 위원장 본인도 그 어려운 시기에 태어난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과 달리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자리에 올랐으니 그러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을 무시하면 안 되지만, 그 사람들이 가졌던 기회와 희망을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대신 그 부족한 것들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지금은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졌지만 기득권층이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막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회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실제로 기회가 있느냐 없느냐와는 별개로 말이다. 문제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기회가 있으니 노력하면 된다는 것만 강조할 뿐, 기회에 대한 믿음(=희망)을 잃게 만드는 상황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연 끝나고 같이 들었던 선배와 밥먹으며 이야기하다가, 예전에 장병규 선배님이 오셔서 강연했을 때 누군가 '실패했던 경험을 들려주세요'라고 했더니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성공만 해봐서 모르겠다'라고 하는 바람에 갑자기 확 공감이 안 되더라 하는 경험담을 들었다. 오늘 강연에서도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항상 감사하고 겸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나는 가수다'나 '위대한 탄생'과 같은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는 것도 일반인들이 거기에 출연하는 가수 지망생들에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존 가수나 아이돌들도 많은 노력과 인내의 시간을 통해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지만(이쪽은 '강심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구나 끼가 있는 사람이라면 보다 손쉽게 시도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과 출연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통해 그들이 겪은 어려움을 직접 노출시켜주기 때문에 보다 쉽게 공감하는 것이다.
요는, 모든 부를 똑같이 나누어 공산주의처럼 살자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고 누구나 노력하면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2 그러려면 투명하고 공정하며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오늘 강연을 들으며, 우리나라 IT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가지고 있는 최시중 위원장이 그런 희망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서 신중한 고려를 보이지 않았음에 실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