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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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오늘은 자전거로 62 km를 주파했다. 한강까지 간 건 아니고, 8년 동안 살다가 8년 전에 떠나온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에 다녀왔다. 내 유치원 시절과 초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곳으로 나한테는 거의 "마음의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처음 입학해서 5학년 2학기 초반까지 다녔던 양전초등학교도 가 보았고, 그 오랫동안 살던 주공아파트 5단지도 가 보았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정말로 무지무지 큰 운동장 같았는데, 오늘 가 보니 거의 미니어처(-_-) 수준이다. 주차장도 그렇게 좁은지 몰랐고, 504동 앞 놀이터와 단지 주도로 사이에 있는 벤치 마당도 그렇게 작은지 몰랐다. 어렸을 때는 501동에서 506동까지 가는 게 꽤 긴 거리로 느껴졌는데 지금 보니 한줌이다. -_-;;

관리사무소 상가를 가 보니, 단골이었던 방진스토아는 그대로 있었고(아주머니께 물어보니 우리 살던 때 주인이 아직도 계속 하신다고 함), 홍익방미술학원, 효정학원(다닌 곳은 아니었지만)도 그대로였다. 단골 문구점이었던 곳은 주인이 바뀌었다. 그 관리사무소 상가 마당도 어렸을 땐 무지하게 넓어보였는데 이제는 손바닥만해 보인다.

5단지 상가 지역으로 가 보니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옷을 자주 사 주시던 쌍방울 가게도 그 위치에 그대로 있었고, 피자를 하도 많이 시켜먹어서 사은품만으로 체스, 장기, 바둑판 세트를 받을 정도였던 빨간모자도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 초등학교 시절 전문가들이나 쓰는 로트링 펜(독일제 펜으로 0.1mm 굵기도 있으며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을 사러 갔던 화방도 갔었는데 그 주인 아저씨도 그대로였다. 주인 아저씨한테, "제가 10년 전에 로트링 펜 사가던 그 꼬마에요"라고 하니까 바로 기억하셨다. 지금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하고, 아저씨는 시원한 얼음커피도 주셨다. 그래도 나름 단골이었던 곳이라 어찌 그리 정겨울 수 없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오늘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니 자기가 그 자리에 화방을 연 게 1986년—고로 이제 20년째다—인데 그때 초등학교 다니던 아이들이 애엄마가 되어 찾아올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 아저씨는 하나도 안 늙어보였다. 어렸을 때 기억과 거의 똑같았다)

겨울만 되면 형과 함께 돌을 던져서 징검다리를 만들던 양재천은 깔끔하게 자전거도로가 정비되어 있고(내가 떠나올 때쯤 만들기 시작했었다) 황량하던 하천가 주변도 생태공원 수준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하얀색 2층 건물이던 개포3동 동사무소는 그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 중이었으며 잠시 옆의 공원 건물(?)에 이전해 있었다. 동사무소 직원한테 물어보니 그게 대략 2년 전쯤이라고 한다.

양전초등학교도 가 보았는데 어렸을 때 운동회하면서 점심을 먹던 '양전 동산'도, 여자 아이들이 주로 고무줄 놀이를 하던 운동장쪽 출입구 뒷편도 그대로였다. 지금은 방학인지라 꼬마 아이들 두어 명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을 뿐 학교는 적막 속에 잠겨 있었다.

마치 자전거를 타고 잠시나마 시간 여행을 간 듯한 기분이었다. 10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동네는 그대로였다. (달라진 점이라면 집값만 엄청나게 올랐다는 정도일까. -_-;;) 그땐 깡패한테 걸려보기도 했었고 나름대로 애환(?)이 담긴 곳이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흐르고 보니 그런 기억조차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