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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김용철 전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을 읽었다. 책 내용에 대해선 이미 인터넷에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으니 생략. 다만 글이 너무 세세한 사례 위주로 흐르다보니 중간 이후부터는 다소 지루한 면이 있었다.
책을 보면서 든 생각은, 왜 그래야만 했느냐 하는 것이다. 뇌물 없이는 기업 활동이 불가능했던 것일까? 이건희 일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일까? 삼성전자의 신화는 단지 시대적 상황에 잘 맞아떨어진 우연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많은 재물을 끌어모으고 자기 맘대로 회사를 휘두르는 이건희 일가의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삼성 같이 큰 기업일수록 더 많은 책임의식을 느끼고 더욱더 투명하게 경영하려고 해야 하는데, 그 정반대로 흐르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난 그저 이건희 일가와 그 가신들에게 정말 그래서 행복하느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들의 행복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기업을 잘 경영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에서 나와야 할 텐데, 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암담하다.
나는 삼성의 비리와 뇌물 문제에도 염증을 느꼈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어쨌든 지금의 삼성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리고 앞으로의 삼성을 만들 사람들은 누구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말하듯 안타깝게도 지금의 삼성을 만든 사람들은 이익과 보상에서 많은 부분 제외되어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고 앞으로는 그럴 수 없을 것이며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삼성에 가지 말라고 하면서 '피만 쪽쪽 빨린다'는 표현을 했는데, 소프트웨어 문화에서는 사람이 재산이기에 이런 인식이 퍼져서는 절대 우수한 인재가 삼성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이건희가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하였다. 세계 전자시장의 트렌드가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며 10년 후 삼성을 먹여살릴 것이 없다는 말과 함께 소프트웨어 투자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물론 2008년 퇴진 당시 이야기했던 공공 이익 실현 어쩌구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우리학교에 삼성전자에서 일하시다 이번에 석사 동기로 들어오신 분이 있다. 회사에서 확실히 소프트웨어를 강조하는 분위기이긴 한데, 문제는 그걸 제대로 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대충 외부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듯 삼성전자의 핵심 임원들은 대부분 하드웨어 공부를 했던 사람들이다. 실제 물건이 만들어져야만 가치가 인정되는 세계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이디어나 사람 자체가 가치가 되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같은 회사 내에서도 실적을 쌓기 위해 부서끼리 아이디어나 지식을 훔치는 사례가 존재한다고 한다. 윗선에서 이걸 제대로 판단·컨트롤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삼성이 바뀌면 우리나라가 바뀌는 건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이건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다) 워낙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력을 가진 회사기 때문에, 삼성이 제대로 하면 대한민국이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삼성전자에 근무하셨던 분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신 것이기도 하겠으나, 내가 봐도 삼성이 제대로 하면 다른 기업들도 그러한 문화와 관행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 삼성에게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분이 나와 친구들에게 해주셨던 이야기는, 제대로 일하는 외국계 기업에 가서 엔지니어로서뿐만 아니라 매니저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총괄 담당 정도까지 올라서고 그런 사람들이 다시 국내 기업에 들어와 소프트웨어 중심의 문화를 아주 장기적으로(몇십년?)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경영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경우도 요즘 나에게 경영 공부를 특히 강조하신다. 아버지는 회사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서 온갖 실무 경험을 쌓으신 후 사장의 자리에 오르셨다. 수십억 수백억짜리 프로젝트가 아버지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수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의 오너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월급만 받을 뿐이다. 적어도 아직까진 아버지가 얼마나 더 잘 하느냐에 따른 추가적인 보상은 승진 외에 거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오너십을 가질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이야기도 하셨었고, 오너십까진 아니더라도 단순히 엔지니어로서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경영을 통해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큰 규모의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에 대한 것들이라면서.
전문적인 기술로 먹고 사는 건 요즘같이 빨리 변하는 세상에선 잘 해봐야 10~20년이다. 그렇다면 그때그때 필요한 기술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원하는 가치와 이상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조율하는 능력, 곧 경영 능력이 중요하다. 헌데 경영만 알아가지고는 이렇게 전문화된 세상에서 각 전문가 집단을 설득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움직이게 만들 수 없다. 지역적 문화 특성, 전문가 집단 고유의 문화 특성을 알아야 하고 전문지식도 알아야 한다.
소프트웨어가 참 어려운 것이, 전산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흥미 있는 일에 있어서는 그 어떤 보상도 필요 없을 만큼 열정을 쏟는다. (오픈소스가 어떻게 이만큼 발전했겠는가!) 하지만 많은 경우 같은 전산 분야 내에서도 입에 풀칠하기 위해 하는 일과 자기가 재미를 느끼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의 경영진은 이런 사람들이 가진 문화와 코드(소스코드 말고 '코드가 맞는다'할 때 그것)를 이해할 수 있어야 효과적으로 이 사람들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에서 오신 동기 분이 이야기하신 경영하고는 조금 다른 출발점에서 이야기한 것이긴 하지만, 결국 삼성전자는 아직 이러한 소프트웨어 경영 리더십이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소프트웨어와 경영 양쪽을 모두 겸비한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아버지는 분야는 다르지만--사실 소프트웨어 공학의 많은 메타포가 건축에서 온 것이긴 하다--경영을 함께 알아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가끔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그냥 외국으로 확 떠버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태어나 살아온 땅이고, 기왕이면 같은 성공을 하더라도 주변의 한국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미래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