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sted
-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요즘 이런저런 일도 있었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을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궁동 성당 청년성가대에 들어가기로 했다. 본문에서는 뒤에 나오지만, 혹시 제목에 나온 지적사춘기에 대한 시발점이 궁금하시다면 이 글을 먼저 보면 도움이 될 듯. (그러고보니 우연의 일치인지 정확히 만 3년 만에 쓰는 글이다. 허허.)
오늘 청년회식이라 하여 성당에서 청년미사 후에 단체로 성당 마당에서 야외 고기파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물론 전에도 청년회식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보통 사나래 사람들은 따로 모여서 저녁을 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참석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봉사자들이 힘들게 준비한 식사에 사람들이 너무 없으면 좀 그럴 것 같기도 했고(사실 저녁을 먹었기 때문에 고기 자체가 땡겨서 간 건 아니었다), 성가대에 오랜만에 아는 형(실제론 같은 나이지만--빠른 87--어쩌다 이렇게 굳어졌다. 학부 입학 전 꽃동네에서 함께 봉사활동하다 알게 된 나름 오랜 인연이 있다)도 나왔길래 인사도 좀 하고 사나래 사람들하고 이야기도 좀 할까 해서 겸사겸사 들렀다.
그러다가 성당에서 이런저런 활동하는 사람들이 마니또가 되어 성당에는 오지만 활동이 없는 사람들을 보살펴주기 위해 공개추첨 형식으로 마니또를 뽑았는데 내가 뽑은 종이에 적혀있던 사람은 전자과 선배였다. (의외로 궁동 성당엔 학부생 이상으로 대학원생의 활동이 많다.) 이분으로부터 성당 봉사활동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마음이 갑자기 동하여 성가대에 들게 된 것이다.
내가 궁동 성당에 다닌 건 학부 1학년 때부터니까 벌써 6년째다. 중간에 교환학생과 휴학으로 없었던 기간 빼고 봐도 5년을 꽉 채우고 있으니 나름 정도 많이 든 성당이다. (교적이 있는 동네 성당보다 여기가 더 정들었다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활동하진 않았지만 가톨릭 학생회인 사나래에 나름 발도 걸치고(?) 있다. 카이스트에 6년이나 있었으니 이미 성당에서도 웬만큼 아는 선후배들이 많이 있고, 그중에 또 상당수가 성당에서 전례부, 복사, 성가대, 성소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이전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발을 담글(?)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선 학부 때는 집에 자주 갔었고 가족들과 미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 동네 성당이든 궁동 성당이든 한쪽에 고정적으로 활동하기가 모호했다는 점이 가장 컸고, 또 나름의 지적사춘기를 겪으면서 신앙에 대한 회의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사는 거의 빠지지 않고 다녔지만, 그것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위안을 위한 면이 더 많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내 마니또 분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최종적으로 '과학만으로 모든 걸 설명하려 들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됨에 따라--또한 주변 사람들의 많은 기도 덕분이기도 하지만--20대 초반, 학부 재학 기간을 통해, 삶에서 궁극적으로는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도(혹은 그 여부를 알 수 없어도)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고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이 나의 정신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러한 지적사춘기의 결과로 내 자신이 스스로 혼자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나의 한계를 받아들인 것이 이렇게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한 결정에 큰 동기가 되었다. 내 스스로 인간임과 함께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였기 때문에, 초월적 존재를 나의 가치 체계와 사고 체계 안에서 그 필요성과 필연성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이고, 여기에 예수님이라는, 사랑하고 회의하는 인간을 통해 집대성된 기독교 교리가 나의 가족문화적 배경1에 자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가톨릭 신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제는 개인적 신앙뿐만 아니라 단체와 봉사활동을 통한 신앙도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산학도이자 대학원생으로서 전문 분야에서 항상 비판적 사고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서도, 그것이 내 삶의 전부가 될 이유도 없고 그렇게 되었을 때 나타날 정신의 황폐화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신앙생활에서 말이다. 게다가 하느님과의 관계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게 된 이후 연애라는, 현실에서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다른 의미로 느끼게 되었고, 그냥 미사 열심히 나가는 것에서 뭔가 다른 차원의 관계 형성을 해보고 싶어졌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방식의 신앙생활을 그냥 무조건 받아들이는 식으로 하는 것도 곤란하다는 점 또한 이해하고 있다. 결국 교회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에 다같이 하느님을 향하고 있다는 큰 지향점은 같아도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똑같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고, 인간적으로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일들도 존재할 것이다. 하느님의 교리 그 자체가 무결하여도 우리가 보는 것은 사람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 그것을 나의 진리로 받아들이고자 할 때는 항상 신중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성서 공부를 좀 해야 할 듯. 다행히 어머니가 성서 교육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해오고 계시기 때문에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조금 번외의 이야기로,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취하는 입장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고민을 좀더 해봐야 할 것 같다.
추상적인 이야기에서 좀 현실적인 이야기로 내려와서, 실질적으로 성가대 활동을 하고자 한 이유 중에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싶기 때문인 것도 있다. 물론 카이스트 사람들이 꽤 많기는 하지만 여전히 전혀 다른 학교·전공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을 신앙과 봉사활동이라는 틀에서 만나면 어떨지 궁금하다. 또 다른 이유로는 미사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고 은혜받는다고 느끼는 시간이 성가 부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치기 때문에 반주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노래 그 자체도 피아노 연주만큼이나 내게 충분한 감흥을 주는 활동이다. 특히 중고등학교 시절엔 변성기가 너무 심하게 와서 노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노래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에 들어온 이후 1학년 때 실내악 앙상블 수업에서 아카펠라 공연에 성공적으로 참여하면서 내가 노래를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긴 것도 한몫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나는 대중가요를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거의 안 들어서 아는 노래가 워낙 없기 때문에 노래방 가는 건 딱 질색이다. ㅋㅋ)
뭔가 성가대 한번 들어가려고 글 참 거창하게 쓴다 싶기도 한데, 단순히 성가대에 들어가는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내 삶의 단계에서 중요한 전환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되기에 함께 정리하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궁동 성당이라는 축복 받은 환경과 신앙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지적사춘기를 끝내고--그렇다고 이것이 회의의 끝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이행해야겠다.
-
한때는 이러한 가족문화적 배경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결론내려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과정을 위해 소모해야 할 에너지를 생각하니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더 높은 차원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라는 사람이 뭐랄까, 자아가 더 강하고 완고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회의의 끝까지 달렸을지도 모르겠다. 맘먹고 하자면 할 것 같은데,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 건 천성 탓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