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지난 월요일, 전산학과의 석사세미나 과목에서 김명호 교수님의 초대로 고려대 법대 김기창 교수님의 강연이 있었다. 마침 요 근래에 오픈웹 관련하여 동아리 메일링에서 3~4일에 걸쳐 160여개 이상의 메일이 오가는 등 매우 많은 논란이 오고가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소송 원고인단에 참여를 고려해봤을 정도로(못했던 이유는 당시 나이가 안 돼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였기에 안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행히 수업도 없었고 말이다. :)
강연 제목은 "Code v. Code"였다. 처음에는 법률가로서 law code를 보는 사람인 자신과 전산학도로서 source code를 보는 학생들과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보자로 시작해서 오픈웹을 통해 자신이 느꼈던 바를 정리하고, 한편으론 이 주제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오픈웹에 대해 일부 설득하는 정도의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우선 강연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일부 빠진 내용이 있을 수 있음.)
사실 강연 자체는 워낙 잘 알고 있던 내용이라 별로 인상적인 느낌은 받지 못했다. (물론 내가 강연 내용에 100% 다 동의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만 온라인으로 쓰여진 글만 보다가 직접 김기창 교수님을 보니 상당히 서민적이고(?) 재밌는 분이라고 느껴졌다.
사실 30분 정도로 짤막하게 끝난 강연시간만큼이나 길게 질의응답이 이어졌는데 진짜 중요한 내용은 여기에 더 많이 나온 것 같다. 내 질문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과 나눈 질의응답까지 모아 정리해보았다.
보안업체(플러그인 공급자)에 의해 접근이 결정된다는 부분에 대해 -> 보안사고에 대한 책임을 모두 은행에 전가하는 현재의 상황으로 볼때 사회적·문화적 합의 내지는 인터넷 뱅킹의 계약 요소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한 근본적으로 강제 의무를 없애면, 알아서 적절한 기술을 택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인터넷 뱅킹 관련 문제를 다루는 태도가 어떻다고 생각하시는지?
컴퓨팅 리소스를 제대로 사용하게 하려면 진입장벽이 높아지는데 컴퓨터 사용자 교육에 대한 측면?
이러한 교육이 강조되면 정보접근권 격차가 벌어지지 않을까?
전자서명이 꼭 필요한가?
시간 관계 상 학과사무실 문닫기 전에 싸인을 하고 가야 한다고 해서(...) 여기까지만 하고 끝마칠 수밖에 없었는데 몇몇 학생들과 따로 교수님이 떠나시기 전에 추가 질의응답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웹상에서 상당히 독설을 내뿜고 계시는 것에 비해, 실제로 가지고 계신 생각은 내가 하는 것과 많은 부분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제도적 보완이나 인식 변화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계셨고, 다만 보안업체들을 대놓고 공격하거나 SSL+OTP 등에 대해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그래야 사람들이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논란의 가장 중심에 서계신 분을 직접 앞에 놓고 이야기를 듣고 질의응답을 할 기회였기에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석사 간 내 이전 룸메 친구는 오랜만의 한국어 강연이라서 좋았다고...ㅋㅋ) 아무튼 인터넷뱅킹에 대해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 만큼,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길 기대해본다. 김기창 교수님과 같은 분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
오픈웹이 금융결제원을 상대로 낸 소송 2심에서 패소하면서 한동안 오픈웹 사이트가 닫히고 다음과 같은 화면이 떴었다. 그러다가 다시 사이트가 열리고 열띤 토론이 오가더니 어느 순간 DDoS 공격을 당하여 사이트가 닫히고 구글 그룹스로 대체된 상태이다.
한동안 오픈웹 사이트를 대체했던 Closed Web 광고(?)
이 과정에서, 내가 속한 SPARCS 동아리 메일링으로도 여러 선배님들이 사상 초유의 엄청난 토론을 벌였다. 불과 3~4일 사이에 메일 쓰레드가 160개 가까이 나올 만큼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다양한 의견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주요 줄기(?)만 뽑아 '내맘대로' 정리해보면,
이 외에도 몇 가지 줄기가 더 있지만 논의에 관련된 핵심적인 것들만 뽑아보니 대충 이 정도쯤 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결국은 양쪽 다 맞는 소리다. 공공재적 성격을 띠는 인터넷 뱅킹과 온라인 결제 시스템이 가능하면 접근성이 높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공개 표준을 이용하는 대안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보안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기술적으로 '최대한'의 보안을 확보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책임소재임을 요구받는 은행이 주문한 대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데 이 역시 맞는 이야기다.
다행스러운 것은, 행정안전부에서 주최하는 회의에서 강제 여부를 해제하는 쪽으로 합의가 도출되었다는 점이다. 나도 기술적으로 지금과 같이 무겁고 불편하고 가끔 오류도 내는 보안프로그램들이 어쨌든 0.01g이라도 더 나은 보안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다고 보지만, 사용자가 원한다면 은행측이 제공하는 보안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과 접근성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오픈웹 쪽에서 그동안의 지리한 소송과 말이 안 통하는 상대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주장을 해온 것 때문인지 나같이 오픈웹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이나 보안업계 사람이나 어느 쪽에서 봐도 다소 거부감이 드는 발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기에 지치고 힘든 건 이해하지만 감정적으로 휘말리지 않고 생산적인 논의가 계속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뭔가 '말'로는(literally) 다 맞는 얘기인데 미묘하게 글 중에 감정이 보이는 것이 아쉽다. 나만의 착각이길 바랄 뿐.
추가: 이 사태에 관해서 김국현씨가 아주 일목요연하게 논점을 잘 정리해주셨다. 이 글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