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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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개장 휴업 상태인 블로그를 어떻게든 RSS 리더에서 삭제당하지 않도록(...) 만들어보고자 언제나 할말 없을 때 하는 근황 포스팅. 최근 뭘 하며 지내나 한번 적어본다.

연구!

대학원생이니 당연히 일순위는 연구다. "연구"가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 생각하는 바가 다른 것 같지만 어쨌든 형식 상 연구라는 걸 하고는 있다. (...)

첨단망 연구실(그렇다, 한글 이름은 이렇게 생겼다.)에 들어오고 어언 4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이중에서 약 두 달 동안의 탐색 기간을 거쳤다. 현재는 선배들의 올해 SIGCOMM 논문으로 나간 PacketShader의 후속 프로젝트를 이어서 하는 것이 메인이고, 사이드로는 트위터 및 소셜네트워크 분석 관련 프로젝트 미팅에 계속 참석하고 관련 논문들을 읽어나가고 있다. PacketShader의 후속 연구로는 SSL/IPSec 기능을 GPU로 가속하는 것과 이것을 실제 라우터로 사용할 수 있도록 control plane을 통합하는 것이 함께 진행 중이다. 전자는 이번에 SIGCOMM Poster로 발표될 예정이고, 나는 후자에 참여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 쪽으로는 네트워크 구조로부터 커뮤니티를 발견하고 그 dynamics를 분석하는 일을 하는데, 물리학과의 정하웅 교수님 연구실과 함께 공동연구를 하고 있고, 서울대 사회학과의 장덕진 교수님이나 사회발전연구소 이원재 박사님 등으로부터도 도움을 받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우리 연구실에서 진행해온 소셜네트워크 분석으로부터 얻은 통찰이나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매우 큰 규모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구축할 때의 시스템 이슈들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이것을 제대로 하려면 아직 알아야 할 것이나 논문을 읽어야 할 것이 더 많다고 생각되어 아마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된다면 본격적으로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정작 그때 가면 다른 주제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옛날부터 큰 규모의 코드 덩어리를 보며 시스템을 이해하고 개발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잘 해왔기 때문에--학부 성적을 봐도 너무 극명하게 드러난다--시스템 개발에 더 가까운 PacketShader 프로젝트를 우선 메인으로 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해보고 느낀 점이라면 학부 때와 달리 스스로 찾아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얘긴가?) 뭐 회사를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회사에서는 돈이라는 강력한 동인이 눈앞에 놓여지는 데 비하여(내가 직접 받는 월급 같은 것뿐만 아니라 이걸 하면 회사가 얼마나 벌 것이다 하는), 그야말로 학문적 호기심과 인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는 것이 말은 멋있지만 생각보다 더 괴로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가 마련해놓은 정답이 없을 때 스스로 찾고 또 찾는(그래서 re-search일 것이다) 그 과정... 아직 나는 본격 시작했다고 보긴 힘들지만 선배들이 그런 과정을 겪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니 생각만 하던 것과는 또 다르더라.

약간 번외의 이야기인데, 연구를 하면서 오픈소스의 중요성을 많이 느낀다. 세상에 리눅스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시스템 연구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지금처럼 여러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었을까?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누구나 소스코드를 보고 고치고 다시 배포할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들은 정말 인류 역사에 엄청난 공헌을 한 것이다. 앞으로 백년, 이백년이 지나면 오픈소스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되고 인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자못 궁금하다.

성가대

연구 다음으로 활발히 하는 것은 얼마 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성가대다. 성가대에 처음 들어간 것은 벌써 8주 정도 되었는데 중간에 청년캠프 등으로 예비단원 교육이 미뤄지는 바람에 지난 주말에서야 6주짜리 예비단원 교육을 완료하고 정식단원이 되었다.

중학교 때 심한 변성기를 겪으면서 사실상 노래가 불가능한 상황을 몇 년 겪은 후로 내가 노래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보지 못했다가 학부 때 실내악 앙상블 수업을 들으며 아카펠라에 테너 파트로 참여하면서 노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은근히 마음 속에 남아있었는데, 요즘 자주 치지 못하는 피아노를 대신하여 내 음악적 욕구를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채워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종교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또한 동시에 내 삶의 중심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하느님 안에서 두 배의 기도라 불리는 성가로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기쁨 또한 매우 큼은 물론이다.

성가대를 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그냥 일반 신자로 미사만 다닐 땐 몰랐던 것으로, 하나의 미사를 위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봉사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가대 연습이 미사 전 2시간 넘게 이어지는데, 처음엔 성가대밖에 없지만 한두 사람씩 미리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전례부와 복사단이 기도하며 미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무엇이 이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런 댓가 없이 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게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각자의 내적인 동기는 다양하겠지만, 세상적 기준으로는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느님과 예수님을 향한 찬양과 제사를 드리는 모습은 왠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가끔, 너무 덥다든지 악천후가 이어진다든지 연구실 사람들하고 게임(...)에 말린다든지 하면 성가대 가는 것이 귀찮아질 때도 있지만, 일단 가면 정말 그 시간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꽉 찬 시간이 되는 것이 참 좋다.

지난 토요일에는 성가대 내부 커플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신랑님이 사는 곳이 내가 초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보낸 개포동 5단지인지라(!) 개포동성당에서 혼인미사를 하기도 했다. 당연히 성가대의 큰 행사인만큼 축가도 부르게 되었고. 신앙에 대한 회의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의 순수한 신앙생활과 첫영성체의 기억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해서 감회가 새로웠다. 15년 전의 기억으로 멈춰있던 곳이 갑자기 현재의 기억--현재의 시간과 지금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포함하는--으로 전이하였다.

내가 성가대 들어온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엔 결혼하신 두 분과 친하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축하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여기서 '가장'이라는 것은 외적으로 결혼식 때 가장 많은 치장을 하고 가장 젊고 활기찰 때의 모습이라는 점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하와 축복을 받는 자리로서 그 자리에 선 사람의 모습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결혼은 연애의 완성이지만 삶을 가꾸어갈 사랑을 통해 다른 의미로 더욱 아름다워질 앞날에 대해 가득 찬 기대감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의 최상급이다.) 축가 전주 동안 신부가 신랑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긴장한 탓에 가사를 틀려가면서도 끝까지 눈물 글썽이며 1절 부르는 모습을 보고 2절을 이어부르는데 괜히 나도 눈물이 났다. 이런 경험도 성가대가 아니었으면 해보기 힘들지 않았을까?

텍스트큐브

여러 이유로 니들웍스 멤버분들이 다들 적극적인 참여가 힘든 상황이 되어 그럭저럭 유지는 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활발하게 개발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사실 그동안 블로그 저작도구라는 틀 안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상당 부분 다 해봤기에, 새롭고 흥미로운 것보다는 유지보수나 리팩토링과 같이 상대적으로 지루한 작업들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건 아무래도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 하기엔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니들웍스의 다음 프로젝트로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내보고, 앞으로 니들웍스와 태터네트워크재단이 나아갈 방향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달 21일에 열리는 제8회 태터캠프는 '미래'를 주제로 비교적 소수의 인원을 모아놓고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할 수 없지만--또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해서--어쨌든 텍스트큐브를 통해 나름대로 인류와 세계에 공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텍스트큐브 프로젝트는 내 개인적으로는 참 보람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나 혼자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강한' 사람들 여럿과 함께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런 사람들 틈에 끼어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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