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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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첫 여행기에 "오픈소스 개발자"라는 제목이 들어가 있으니 뭔가 IT틱한(?) 분위기가 나지만 어쨌든 흥미로운 경험 중 하나였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일정을 끝내고 스피츠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야간열차를 탈 때였다. 여행사에서 같은 호텔팩 상품을 신청한 사람 수가 나를 포함해 26명이었는데, 야간열차 쿠셋 한 칸에 6명씩 타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6x4=24명이 일행끼리 방을 하고 형과 내가 따로 방을 쓰게 되었다. (놀랍게도 일행 중 여자가 22명이었고 남자는 형과 나를 포함해 4명 뿐이었다. -_-)

방에 들어가니 이미 4사람이 들어와서 짐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중 두 사람은 한국인이었는데,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해군사관학교 4학년으로, 졸업 전 마지막 휴가 때 자유배낭여행을 온 거라고 했다. 나머지 두 사람 중 한 명은 프랑스인이고, 다른 한 명은 이탈리아인이었다. 둘 다 백인이었는데, 이탈리아 사람은 털이 많고 좀 덥수룩했고, 프랑스 사람은 약간 마르고 창백했다.

열차 출발 후, 두 한국인 중 한 사람이 Eurail Pass를 바닥에 떨어뜨렸었는데, 잃어버린 줄 알고서 차장한테 쫓겨날 뻔한 소동이 있었다.; 차장이 다음 역에서 내리라면서 마구 화를 내고 다음 칸으로 갔는데, 다음 역 도착 직전에 내 형이 찾아주어서 무사했다.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 프랑스 사람은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이탈리아 사람은 이탈리아어, 독일어를 할 줄 알았다. 그래서 5명이서 열심히 영어로 얘기를 하면 프랑스 사람이 이탈리아 사람에게 열심히 독일어로 번역해주었다.;; (외국인들 보면 다 영어를 잘 할 것 같지만, 실제로 영어를 단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도 많다. 벨기에 지하철에서 map information이란 말을 못알아 들어서 직접 찾아다녔던..-_-)

처음엔 주로 해사 다니는 형들이 이야기를 진행했고, 나는 나중에 차차 끼어서 말하게 됐다. 초반에 주로 했던 얘기는 한국과 유럽의 음식 문화, 물가에 대한 것이었고, 한국어에 대한 얘기도 조금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각자의 직업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 프랑스 사람이 자기는 computer science를 전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Firefox에 대해 아냐고 물어봤더니 무려 개발자란다. -_-;; Firefox 소스 분석할 때 어렵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처음엔 눈이 빙빙 돌았는데 계속 보니까 이해되더라는 얘길 했다. 그러면서 Eclipse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내년엔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온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어느 대학으로 오냐고 물어봤더니 교환학생만 예정되어 있고 어느 학교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나는 살짝 KAIST 광고(...)를 해주고 혹시 거기로 오면 연락(-_-)하라고 말해주었다.;

지금 와서 매우 후회하고 있는 것이, 그 프랑스인에게 이름도 안 물어보고 메일 주소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음 날 우리가 일정을 변경하여 피렌체에서 내렸기 때문에, 아직 그 사람은 자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 1시쯤까지 얘기하다가 다들 피곤해서 그냥 자버렸고. ㅠㅠ

한국에 돌아와서 IRC를 통해 Eclipse 개발자 채널에서 수소문을 해봤으나 아직 찾지는 못한 상태다. 그만한 사람을 만나기는 매우 힘든데, 아쉬울 따름이다. Tattertools나 MetaBBS와 같은 한국의 오픈소스 프로젝트들, KLDP 같은 리눅스 사용자 커뮤니티 같은 것들을 소개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더 얘기를 못한 것이 아쉽다.

어쨌든 일행과 떨어져 따로 탔던 덕분에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엔 도난 사고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두 사람이 모두 좋은 사람이어서 그런 문제는 없었다. 인연이 있으면 언젠가  만나겠지만, 앞으로 몇 차례 IRC를 통한 수소문을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