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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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 이 글은 CS496 전산학 세미나의 에세이 과제로 썼습니다.

나는 이공계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분야—특히 의학이나 법률 분야—로 간다고 해서, 궁극적인 의미로 그것을 이공계의 위기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포항공대를 수석 졸업한 생명과학과 학생이 의대로 진학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블로고스피어에서도 꽤 회자되었던 일이고, 내가 이공계에 있는 까닭에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실험실 식구들을 비판한 것이 사람된 도리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면서도 선택은 개인의 자유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의대가 오히려 더 권위적이면 권위적이었지 왜 진로를 바꾸었느냐 하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과학고등학교를 다닐 때, 교장선생님의 애국조회 연설 등에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바로 '애국'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커서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하고, 나라에서 이렇게 좋은 교육 환경을 지원받고 있으니 보답을 해야 한다 등등. 그러나 내가 볼 때 나도 그렇고 우리 세대의 아이들에게 그런 소리가 씨알이 먹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떻게 보면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로 보일 수도 있지만, 분명히 자기가 잘 되어야 국가에 이바지들 하든 말든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의 학생들은 개인적인 목표를 수립하고 그것을 위해 정진할 수 있는 환경과 역할 모델들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공계 바깥에서 보는 인식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머리 좋은 사람들 잘 가져다 써서 돈을 벌든지 국가 발전을 시킨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져다 사용되는' 입장이 되길 거부한다. 보다 주체적으로 인정받는 삶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돈을 벌고, 내가 과학기술을 공부·연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실험실 식구들에 대한 비판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고 생각하면서도—뭐랄까, 그 사람이 제시했던 이유라면 굳이 그런 선택을 해야 했을까 하는 개인적인 느낌—그 사람의 선택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단지 이공계였다고, 수석졸업이었다고 해서 그 선택권을 박탈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공계인들은 계약을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가 원했던 방향이기에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공계 위기라는 것은 사실 본질은 간단하다. 인재가 부족하다는 등의 위기라는 건 결국 기피로부터 나온 것인데, 기피를 막으려면 당장의 장학금 같은 것보다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리고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요즘은 근무 시간에 노동의 질을 높이고 근무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연구 성과를 많이 낸다거나 해도 자기 시간이 없다면 삶의 질이 높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다소 매니악한 특징을 가지는 이공계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수용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의 위기는 내가 보기에 정말로 위기라기보다는 일종의 과도기다. 과거에 비해 과학기술자, 혹은 지식노동자가 가지는 삶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상태라고나 할까. 그래서 대우가 안 좋다느니 하는 얘기도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점점 가속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더욱 많은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고 결국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차별화된 능력과 다양한 분야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소위 말하는 '성공'의 스펙트럼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