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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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안 그래도 요즘 천주교인으로서의 나에 대한 정체성과 종교 생활을 어느 정도로 우선순위로 둘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던 차였는데, 낮부터 심상치 않은 뉴스를 접했다.

바로 교황의 건강 악화로 임종이 다가왔다는 것.

솔직히 가톨릭 신자로서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난 교황에 대해서는 가톨릭의 최고 수장이라는 사실 외엔 그다지 자세하게 아는 것이 없었다. 이번 뉴스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인터넷, TV(KBS, 평화방송 등등)를 통해 교황에 대해 좀더 잘 알 수 있었다. (서거 임박 소식이 알려지자 특집 다큐멘터리들을 많이 방영하였다)

- 처음으로 이탈리아 인이 아닌 폴란드 인 교황.
- 어렸을 때 유대인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냈고, 이들이 나치의 박해로 사라져가는 것을 경험
- 가톨릭 교회의 과오를 (부분적으로라도) 공식적으로 인정 : 명분에 어긋난 십자군 전쟁, 유대인 학살의 방관 및 간접적 논리 근거 제공, 중세 때의 근거없는 마녀 처형
- 청소년 사목과 평신도의 중요성을 일깨움
- 평화주의자
- 사제들의 정치 참여를 반대했음 (자신은 대외적으로 정치적 영향을 많이 주었기에 모순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 한국을 2번 방문했었고, 103명의 성인을 한국에서 한번에 시성함. (보통 한번에 이렇게 많이 한 적이 없고, 로마에서 시성함)
- 폴란드 자유노조의 활동에 자극제 역할을 함
- 박학다식. 5개 국어 이상을 능숙하게 구사.
- 시를 썼었고, 윤리학을 전공했으며, 논문을 쓰기도 함
-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의 파면을 복권
- 냉전 종식, 동유럽의 공산주의 붕괴에 기여

일부 모순되거나 정치적으로 악영향을 끼친 사례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보니 상당히 좋은 일들을 많이 한 분이었다.

종교관을 어떻게 갖고 실생활과 어떻게 맞물려 살지에 대해 고민하던, 그리고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불가지론적 관점을 유지해 온 나로서도, 바로 바람직한 종교 지도자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직, 난 교황 및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 일부 - 사형 제도 반대, 안락사 반대 - 에 대해서 내 입장을 딱 부러지게 정하진 못했지만, 그 기본적인 의도와 근거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런 의도를 사람들이 좀더 폭넓게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비록 불가지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고, 그닥 열심히 성당을 다니려고 한 건 아니지만, 한국 천주교회만큼은 타 종교에 대해서도 상당히 개방적이고(기본 교리와 맞서지 않는다면) 스스로 반성, 자각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알아주었음 한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들이 천주교에 대해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것이 꼭 좋은 쪽일 필요는 없다. 비판이더라도 누구나 수긍할 만한 근거가 있으면 되는 거니까..)

앞으로 이번 교황의 선종은 내게 있어 종교의 의미를 다시 부여하는 데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