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지난 4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한국 방문 결정 이후 각 성당에서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월드컵경기장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와 광화문 시복식 미사 참석자들을 등록하는 절차를 밟았다. 성가대 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아마 이 기회를 못 잡았으리라 생각하는데, 선착순으로 모집할 당시 청년부 회장을 맡았던 성가대 신입단원 분이 빠르게 연락을 취해주어 등록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한달쯤인가 지나고 나서 신원 확인을 위한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있었다. (그때는 주민등록번호 수집 법정주의가 시행되기 전이었음) 그리고 또 좀 지나서 청년들은 별도로 외신기자들 안내를 위한 영어 통역 자원봉사로 추가 지원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나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3주 전부터 매주 나오는 주보와 미사 후 공지시간을 통해 입장 방법과 반입 가능·금지 물품 등에 대한 안내, 성당 별 출발 시간 등에 대한 공지가 이뤄졌다. 주변에서 신자가 아닌 사람들 중에 등록비가 따로 있느냐 궁금해한 경우가 있어서 덧붙이자면, 등록에는 당연히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았고, 미사 일주일 전 방한 준비를 위한 특별 예물봉헌과 교황님이 사용하실 미사도구나 제대용품 등에 대한 별도 기부 형태로 약간의 fund raising은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비용은 이런 헌금과 교구 차원의 예산을 사용했을 것이다.
내가 활동하는 궁동 성당은 원래 새벽 3시 출발이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시간 배정이 새벽 6시로 변경되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인 나에게는 그나마(...) 희소식이랄까. ㅋㅋ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버스 등을 이용해 오므로 혼잡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월드컵경기장과 지리적으로 가깝다(약 2.6 km, 도보 40분)는 점을 고려하여 성당에 다같이 모여서 걸어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궁동 성당에서는 약 400명 가량이 참석하기로 하였고, 집이 본당 구역에 속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처럼 타지 생활하는 사람들이나 구역에 속하지 않은 청년들은 대충 20여명쯤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드디어 오늘,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5시 40분에 성당에 도착해 무사히 입장티켓을 배부받고 6시부터 사람들과 삼삼오오 무리지어 월드컵경기장으로 이동했다. 대전지역은 어젯밤까지 계속 비가 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들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비는 오지 않고 흐린 채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걷기에 딱 좋았다. 전날 대전지역 마트에서는 우비가 모두 동났지만 그 우비를 입은 사람은 결과적으로 아무도 없었다. (...) 경기장이 다가워오자 이미 다른 지역에서 신자들을 데려온 버스들이 사람들을 내려주고 주차해놓아서 엄청난 규모의 버스 주차장이 생겨있었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버스들을 볼 수 있었다. 유성IC 근처부터는 경찰들이 경계·교통통제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원래는 성당의 자리 배치에 따라 들어가는 출입구도 정해져있었는데, 다들 기억을 못해서 + 월드컵 경기장의 구조를 잘 몰라서 헤매는 사태가 발생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경기장의 동쪽 방향에서 걸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쪽 출입구로 들어갔는데, 처음부터 "직N문"(N은 자연수)으로 들어갔으면 쉬웠을 것을 그 위치를 몰라서 괜히 1층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잔디밭으로 내려가는 통로를 찾느라 경기장 관중석을 반바퀴 빙빙 돌아야 했다(W23과 W24 출입구 사이의 엘레베이터 옆 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었고 제대 뒷편 출입구로 나올 수 있었다).
입장할 때 공항과 비슷한 보안검색과 티켓·신분증 확인 절차가 있었으나 아주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사람들도 다들 잘 협조해서 무난하게 넘어갔다. 보안검색 절차를 거친 후 하나은행에서 협찬한 종이 선캡과 방한준비위 쪽에서 준비한 미사 예식 안내서, TV에서 다들 보았을 그 손수건과 수자원 공사에서 협찬한 대청호 수돗물을 담은 500ml 생수병을 받을 수 있었다. (참고로 영성체 때 신부님들마다 씌워드린 교황문장이 새겨진 노란색 우산은 우리은행에서 협찬한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자리 찾아서 착석완료하니 오전 7시 20분이었다. 우리 본당은 제대를 앞에 두고 바라봤을 때 잔디밭의 왼쪽 앞 블록의 뒷쪽 열 일부와 오른쪽 뒷 블록의 앞쪽 열들을 배정받아 교황님의 미사 집전 모습을 바라보기 좋은 위치였다.
사전에 가수 인순이와 조수미씨의 축하 공연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확한 식순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7시 30분쯤 다들 자리잡고 나서는 교황님 미사 집전하시는 10시 반까지 뭘하며 기다리나(...) 이런 상태였다. 우리 본당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백설기를 나누어주셔서 배고프지 않게 기다릴 수 있었다. 8시가 되자 식순 안내가 나오고, 모 본당 출신의 사회자분과 평화방송 프로그램 진행자 분의 사회에 따라 축하공연이 시작되었다.
첫번째 공연은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은 소년소녀 성가대(?)의 노래 3곡이었다. 제목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내 고질병인데(...) 첫번째 곡은 박수와 율동으로 귀여운 느낌이었고 두번째 곡은 성가곡, 세번째는 아리랑이었다. 두번째 공연은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잘 못 봤는데(...) 어른 성가대의 성가 곡들이었다. 음향조절을 잘 못했는지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좀 아쉬웠다. 세번째 공연은 가수 인순이의 공연으로 정말 이래서 가수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드는 파워풀하고 통쾌한 발성이었다. 특히 거위의 꿈을 부를 때는 다들 기분 업. 네번째 공연이 프리마돈나 조수미씨의 공연으로 역시 명불허전. 특히 아베마리아 부를 때의 그 성량과 울림은 대단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소오름....' ㅋㅋ 공연 스테이지가 제대를 바라봤을 때 왼편이었기 때문에 오른편에 있었던 나는 가수들을 직접 보기는 어려웠지만(그래도 보이긴 보였다 ㅋㅋ) 대형 LED 전광판의 화질이 매우 좋아서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조수미씨 공연이 끝났을 때 대충 9시 30분 언저리였던 것 같은데 이때 교황님이 헬기 대신 KTX를 이용해서 오고 계신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처음에 일정 지연이 있을 거라고 했다가 갑자기 급 10분 뒤에 도착하십니다~ 하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화장실에 다녀오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 9시부터는 KBS 생중계가 이뤄지면서 KBS 아나운서들이 진행을 맡았는데, 공연 후와 교황님 도착 전의 빈 시간 동안 웬 응원연습(...)을 시켜서 다들 어색어색. 원래 천주교 신자들이 개신교하고 분위기가 좀 달라서 막 와와!! 이런 거 잘 못하는데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워보려는 사회자의 노력이 참 눈물났다. 그래도 월드컵을 치른 나라의 사람들이라 그런가 파도타기만큼은 또 잘 하더라. ㅋㅋㅋ 시키지도 않았는데 막 두번 세번씩 돌고.
LED 스크린을 통해 교황님이 도착해 쏘울에서 내려 무개차로 갈아타는 모습이 보여지자 슬슬 사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직2문으로 입장한다는 사회자의 안내가 있자 그 근처로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다. 교황님이 무개차를 타고 돌지 아니면 걸어서 입장하실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는데 아무래도 고령이다보니 무개차로 필드 가장자지를 쭉 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사실 사회자의 눈물나는 노력이 없었으면(...) 사람들이 대단하게 환호성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환호 소리가 조금 작아진다 싶으면 파도타기도 시키고 '비바 파파' 열창도 시키고... ㅋㅋ 통로 쪽으로 모인 사람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어서 안쪽의 사람들에게 전송해준 덕분에 먼발치에서만 교황님을 지켜보았지만 생생한 사진들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며칠 전에 카카오톡 업데이트로 사진 원본 전송 기능이 생겼는데 참 적절했다.
열기를 가라앉히고 10여분 정도 제의 준비 시간이 있었다. 이때 교황님이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셨고, 사실 나는 나중에 나와서 뉴스보고 알았지만(LED 스크린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ㅠ) 세월호 노란리본을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하셨다. 나는 프랑스와 스웨덴과 영국에서 모두 미사를 본 경험이 있는데, 역시 평소와 동일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교황님이 말씀하시는 부분과 한두 마디의 짤막한 응답구들은 이탈리아어로 했지만(신자들이 말해야 하는 부분은 예식 안내서에 발음을 한글로 써놓았다), 통회의 기도와 사도신경, 주기도문, 그리고 성가 합창은 한국어로 진행하였다. 역시 다같이 성가 부를 때 경기장에 울리는 목소리는 감동. 어렸을 때부터 친숙한 한국 가톨릭 성가들을 교황님 앞에서 다같이 부른다는 것도 참 멋진 경험이었다.
봉헌은 평소 본당 미사처럼 실제로 헌금을 받지는 않고 공통 예물 봉헌 형태로만 진행되었고, 영성체는 수백(?) 명의 신부님들이 관중석과 잔디밭 곳곳에 배치되어 동시다발로 진행되었다. 참석자 수가 대략 5만명이었다고 하는데 모두 성체 받아모시기까지 20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미사는 거의 안내서에 써있는 순서대로 진행되었는데, 맨 마지막 삼종기도 부분이 좀 달랐다. 삼종기도 직전에 유흥식 라자로 대전교구 주교님이 특별 환영 메시지와 기도 요청을 드리고 나서 교황님께서는 삼종기도 강론을 말씀하셨다. 이때 월드컵 때처럼 중앙 관중석을 덮는 대형 환영 현수막이 펼쳐졌다. 그러고 나서 이탈리아어로 삼종기도를 했는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못 따라가서 단체 멘붕.... 안내서에 써있지 않은 기도였던 것 같은데 결국 이 부분은 교황님과 사제단하고만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미사의 마무리는 평소처럼 강복과 파견성가로 진행되었는데, 파견성가 부르는 중에 자리를 먼저 뜨는 사람이 많았던 점은 좀 아쉬웠다. 사실 평소 본당 미사에서도 파견성가 때 먼저 나가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 습관 어디 안 가더라는...-_-; 근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던 부분이 영성체 타이밍을 전후해서 흐렸던 하늘이 쫙 맑아지는 기적(?)과 동시에 너무나 강렬한 햇빛이 쏟아지는 바람에 다들 빨리 나가고 싶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관중석 부분을 보면 햇빛이 직접 닿는 부분은 사람들이 젤 먼저 빠져나갔고 그늘진 부분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나도 고작 10여분 햇빛을 쬐었을 뿐인데 양팔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햇빛이 셌고 더군다나 다들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던 상황에서 선크림까지 바른 사람도 별로 없었을 것이기 때문.
미사 후에는 풍물놀이패의 신명나는 축하공연이 있었고 사제단 퇴장 이후 행사 종료가 선언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기념사진을 찍으러 제단 주변에 모이기 시작하더니 성모상과 제대초, 교황좌 등을 찍느라 시끌벅적. 나도 약간의 기념촬영을 한 후 성가대 멤버들을 따라 이동해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강론 말씀 전문은 여러 언론에 공개된 것 그대로다. (나중을 위한 스크랩) 대충 한 문단 정도의 분량씩을 이탈리아어로 쭉 말씀하시고 옆에서 순차 통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내용은 통역을 통해서야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이탈리아어로 말씀하실 때도 특히 강조해서 말씀하신 부분들을 알 수 있었는데, 특히 아래 부분, 그 중에서도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실 때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흥분하셨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번째 문장은 교황님이 미사 후 트위터에 남기신 메시지이기도 하다.
세례 때에 우리가 받은 존엄한 자유에 충실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하느님의 계획대로 세상을 변모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이끌어 주시도록 간청합니다. 또한 이 나라의 교회가 한국 사회의 한가운데 에서 하느님 나라의 누룩으로 더욱 충만히 부풀어 오르게 도와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쇄신을 가져오는 풍성한 힘이 되기를 빕니다. 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빕니다.
이 대목에서 교황님의 사목 지향과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리고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어투를 쓰는 것 같으면서도 분명하게 날이 서 있는 뜻을 느낄 수 있었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신앙적으로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앞 부분의 2독서에 대한 설명이었다.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속박을 오히려 자유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 부분을 추상적이지 않고 오히려 아주 구체적이면서 짧고 쉬운 언어로 이토록 명확하게 설명해주심이 놀라웠다.
참된 자유는 아버지의 뜻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단순히 죄에서 벗어나는 일보다 더 크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자유입니다. 하느님과 형제자매들을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유이며, 그리스도의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는 기쁨이 가득한 희망 안에서 살아가는 자유입니다.
삼종기도 강론에서는 세월호에 대한 언급을 하셨다. 교황님이 세월호 특별법과 같은 실질적 이슈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실 수는 없었겠지만,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헌신적 모습을 바란다는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대화를 촉구하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세월호 유족 2분의 도보 십자가 순례로 가져온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미사를 드리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아, 교황으로서 해주실 수 있는 최대의 모든 일을 해주시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세월호 사건을 단순히 시간 속에 잊혀지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호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가 정치집단들 사이의 세력 싸움으로 변질되면서 사람들은 거기에 피로를 느끼고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특별법의 내용과 수사권·기소권 등의 세부 이슈에 대해서는 나도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그리고 유족들이 진짜 원하는 것과 이를 둘러싼 정치집단들의 이해논리가 어떻게 맞아떨어지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가 국민적 슬픔에 빠졌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기억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보여주신 '보듬음'은 현실적인 정치 이슈를 떠나서 이 사건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시는 것이라 본다. 교황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보면서 가톨릭 신자로서도, 또 신자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으로 생각해도, 참으로 원래 예수님이 지키려고 했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과 회귀를 몸소 보여주시는 분이라는 게 절절하게 느껴진다. 교황이라는 매우 높은 수직권력 꼭대기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몸을 낮추시는 모습과 그것이 단지 상징적인 행위로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조치들이 함께 취해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분을 따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동안의 여러 연설과 강론을 통해, 또 오늘의 미사 강론을 통해서도, '아버지의 나라가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그분의 분명한 방향과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분과 동시대에 살고 있고, 또 가까이서 뵐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동시에, 이런 분이 그만큼 부각되고 주목받는다는 것은 현대 사회가 정신적으로 그만큼 더 피폐해있다는 하나의 반증이기에 또한 갈길이 멀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이 세상에 어떠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통해 그 답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