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일단 가을학기 개강과 함께 대전 라이프를 시작했건만, 예정보다 하루 일찍 집에 왔다. 원래는 동아리 개강파티가 있어서 내일 오려고 했었는데, 마침 친구인 준호가 휴학계를 내러 학교에 왔던 데다 "경곽 귀가 멤버"들이 모두 같이 가자는 바람에(같이 가야 싸다 -_-) 예정을 깨고 오늘 집에 온 것이다.
일단 대전 Life부터 말하면, 선풍기를 깜빡하고 안 가져갔던 게 최악의 실수였다. 일요일, 월요일까지만 해도 상당히 시원했는데, 화요일 정도부터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고 대전 전체에 연무가 끼면서 습도가 마구 치솟더니 완전 여름학기 날씨(-_-)가 되어버렸다. 벌써 수원에만 와도 밤바람이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게다가, 집에 몇 주 있다가 가서 그런지 물·음식이 안 맞아 소화도 잘 안 되는 등 약간의 부적응 현상까지 있었다. (특히나 학사 식당은 도대체 향신료를 먹는 건지 음식을 먹는 건지 모를 정도다)
그리고 준호가 휴학계를 내게 된 건,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과 성찰 끝에 내린 결정으로, 앞으로 1년 정도 홍콩에서 선교 훈련을 받게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게 소문이 잘못 퍼져서 일부는 완전 자퇴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내년 가을학기 정도에 복학할 예정.) 그 녀석이 공부는 상당히 잘 하는 편인데,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도 자기만을 위한 공부를 하게 된다는 점에 대해 종교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었다. 또한 카이스트에서의 생활이 너무 편협되고 인간관계가 좁다는 점도 있었다. (그건 나도 공감하는 바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공부 진도 상에서 시간적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 마음을 가다듬고 좀더 넓은 시야를 가지는 차원에서 휴학을 결정한 것이다. 점심도 같이 먹고(실은 걜 아는 누나가 사주는 건데 어찌어찌해서 나도 껴서 얻어먹었다는..-_-) 경곽 아이들도 만나서 이야기하고, 또 같이 집에 오기로 했던 것이다. (앞으로 1년 정도 못 보게 될 테니까.. 물론 인터넷이나 전화로 계속 연락은 되겠지만, 어디 오프라인에서 보는 것만큼 가까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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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가 그렇게 잠시 떠나는 카이스트가 이공계 대학으로서 수업의 질이나 학생들의 수준은 그런대로 높다고 생각하지만, 좀더 인간적인, 일상적인 것들에서 느껴지는 삭막함이랄까, 자칫하면 정말 공부벌레만으로 살기 쉬운 단점이 있다. 공부 그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안 그래도 대부분이 과학고에서부터 그런 좁은 세계에서 살아왔는데, 정서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건 단순히 동아리 활동 등의 수업 외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분위기, 학교 외부 활동들과 내부와의 연계 등이 필요하다. 카이스트가 서울에 있었다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일단 MR 홈페이지는 가끔 불규칙적으로 로그인이 안 되는 현상만 빼면 잘 돌아가는 것 같다. (아직 주소록이나 사진 게시판, 문서 브라우저 등을 작업해야 하긴 하지만) 그래서, php 버전이 너무 오래됐길래 업그레이드 좀 하려고 소스를 받아서 컴파일하는데... 웬걸 -_-;; 서버 OS가 오래된 거라서 그런지 configure 자체부터가 온갖 이상한 에러들(?)이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다가 gcc 버전을 확인했더니.. 헉! 3.x대도 아닌 2.95. -_-;;;
관련 파일들을 업그레이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아서, 전에 서버 관리를 하시던 선배분께 물어보니까..
(in MSN)뭐.. 대략 이런 상황이 전개되었다. -_-;
나 : 서버 OS 업그레이드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선배 : -_-; 그럼 밀어.
나 : ......
선배 : 단, 자료 100% 원상복구하고 메일 시스템 다시 다 갖춰야 한다.
선배 : 아무도 안 해본 위대한 작업을 네가 하는 거야.
나 : ........;;
선배 : 단, 자료 같은 거 함부로 지우면 안 돼. 그러면 사망할지도 몰라 ;;
왜 저런 대답이 나왔는고 하니 지금까지 일단 서버 관리를 할 만한 인원이 몇 년째 없었던 데다(계속 하던 사람이 하는 상황이었음), ,내부 문서 자료며 메일 시스템 등 작업량이 만만치 않았던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일 시스템 쪽만 어떻게 다루는지 알면 그냥 주말에 하루 날 잡아서 쫙 밀면 되긴 하는데.. (자료 백업은 내 서버로도 가능하고, 리눅스 설치 자체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개인 자료들은 "알아서" 백업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한 달 정도 전에 공지하면 된다.) 어차피 개인 서버도 있고 하니 메일 서버 등은 개인 서버를 통해 충분히 테스트를 거친 다음 하면 될 것 같긴 하다.
어차피 현 상태로 가는 건 보안 문제도 있고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아서(도무지 최신 프로그램들을 깔 수가 없다) 언젠가는 해야 할 작업이다. 당장 급하게 해야 하는 건 아니니 시간이 나면 천천히 계획을 세워서 질러야겠다. -_-;
드디어 가을 학기가 개강했다. 시작하는 날부터 가장 빡쎈 시간표로, 오전 9시부터 선형대수학개론과 데이터 구조, 그리고 오후 2시 반부터 일반물리학2와 실내악 앙상블 시간이 있었다. (다른 건 1시간 반짜리 수업이고 실내악은 3시간짜리다)
선형대수학개론은 뭐 그럭저럭 넘어가는 것 같고, 데이터 구조는... 헉! 교수님이 독일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_-;; 다행히 그 교수님도 본인이 영어를 잘 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런지 알아듣기에 큰 무리는 없었으나 독일식 영어 발음의 압박이 좀..(homework의 w를 v로 발음한다든가..) -_- 데이터 구조 수업은 Java로 진행할 것이고, 데이터 구조 자체의 구현에 관한 것보다는 그것들을 응용한 문제 해결 쪽에 초점을 맞출 거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일반물리학2 (이것도 교수님이 갑자기 외국인으로 바뀌었다) 수업에 들어갔는데, 상당히 젊어보이시는, 영국인 교수님이었다. 이분 발음은 완전 영국식으로 정말 말이 딱딱 끊어지는데, 이상하게 알아듣기는 독일식 영어보다 어려웠다. -_- 게다가 매우 매우 압ㅤㅂㅞㄺ스런 것이, Open Book과 Open Time으로 시험을 친다는 것. 즉, 그만큼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낸다는 것이다. 교수님 왈 "시험 볼 때 먹을 것 가져오세요. 베개(!!)도 가져오세요. 그리고 시험을 감독할 조교들에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OTL
실내악 앙상블은 교양이니까 좀 여유있을까(사실 가장 빡센 교양이라는 소문이..-_-) 했는데, 웬걸, 전산 처리가 잘못되어서 원래 30명이 들어야 할 강의에 60명이 신청했다는 것이다. -_-;; 그러면서, 일단은 고학번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05학번들은 음악평을 잘 하거나 뭔가 조금이라도 연주를 해야 수업을 듣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_- 같이 4-hand 피아노곡을 하기로 한 형이 최저학점 제한(장학금)에 걸려서 그 형은 꼭 같이 들어야 하기 때문에 둘이서 필사적으로 다른 사람의 연주를 비판(-_-)하고 나는 쇼팽의 군대폴로네이즈 아주아주 쪼끔을 쳤다. (안 그래도 며칠 동안 안 친데다 갑자기 긴장해서 거의 "나 피아노 못 치는 사람입니다"라고 광고한 꼴이 돼 버렸다..orz) 다행히 그 형과 나는 통과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때 긴장했던 건 입학 면접 때보다 더한 것 같았다.
후... 실험 과목 빠진다고 좀 널럴할까 했더니만 완전 초압박스런 학기가 될 것 같다. 다음 주를 기대하시라..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