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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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이 이야기는 아마 중학교 국어교과서 쯤에 나왔었고,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물론 방망이를 다른 물건으로 바꾼 패러디도 많다) 이야기의 요는 같은 빨래방망이더라도 얼마나 열정과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것인지에 따라 차이가 나는지, 요즘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는 도시 생활이 안타깝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 노인에 비견할 만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다음 달에 우리집이 새 집으로 이사가는데—어디 멀리 가는 건 아니고, 근처 동네다—집 구조에 맞춰서 어머니 화장대, 서재용 책상, 책꽂이 등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부모님이 수소문 끝에 수지1지구 쪽에서 공방을 운영하시는 한 목수 아저씨를 알게 되었는데, 그 아저씨가 정말 별난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그 아저씨는 운이 좋았는지, 부모님을 잘 만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재산이 상당히 많았고(땅도 많고 자기 이름으로 등록된 회사도 하나 가지고 있다고 함)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익에 관계없이 열정만으로 투신했는데 그것이 바로 목수 일이었다. 생계를 바라보고 하는 일이 아니라 정말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어머니를 통해 들은 이야기로는, 어느 동네 아줌마가 책꽂이를 하나 주문해서 가져갔는데, 그 아저씨가 목재는 환경(온도나 습도 등)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얼마 후에 그 집을 다시 방문했단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자 그 아줌마는 전혀 문제 없다는데도 불구하고 3개월이나 걸려서 다 고쳐서 다시 설치해줬다고 한다. 그동안 그 아줌마는 책들을 방바닥에 쌓아놓고 살았다고.

지난 주말에 그 아저씨 공방에 화장대 등을 의논하러 부모님과 같이 갔었는데, 그 아저씨는 일단 똑같은 물건을 두 개 이상 만드는 걸 싫어하셨다. 이유인즉슨, 하나하나마다 작품을 만드는 생각으로 하기 때문에 똑같이 만들려고 하면 일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전에 미리 얘기했던 서재용 원목 책상에 대한 의논도 했는데, 책상이 넓기 때문에 그 판 구조를 기둥과 어떻게 연결시키고 지탱할 것인가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건축가시기 때문에 그 방면의 지식이 있어 전문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목수 아저씨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데도 튼튼하지만 만들기는 가장 어려운 연결 방식을 택하겠다는 것이었다. 뭐 자기한테 배우러 오는 제자가 그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가르쳐줄 겸 하겠다나.

그렇다고 해서 그 아저씨가 비싼 값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만한 품질의 기성 가구와 비교해도 별로 비싸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만드는 데 다소 시간은 걸리지만 그만큼 정성들여 만드시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아저씨를 완전히 신뢰할 수 있다. 그 아저씨의 특징 중 하나는 견적을 잘 못 뽑는다는 것인데, 만들면서 얼마나 재료가 들어갈지 그런 걸 예상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의 정성과 노력으로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공방 한 켠에 왠지 마야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의 문양으로 보이는 원형 목재 조각품이 하나 있길래, 내가 그 아저씨한테 저건 무슨 컨셉으로 만드신 거냐고 물어봤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자기 아는 사람이 버리려고 하길래 줏어온 거라면서 아즈텍 달력이라고 했다. 뒷면을 보니 스페인어와 영어 등으로 설명이 적혀 있었는데 좀 오래된 것인 듯했다. (그렇다고 유물 수준은 아니고...) 내가 재미있어 하는 걸 보고 그 아저씨는 흔쾌히 선물이니 가져가라고 하셨다. 인심까지 이렇게 넉넉하신 분이다.

정말, 세상에 몇 없는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행복한 삶이 또 있겠는가. 그 아저씨의 순수한 열정이 얼굴에도 덕지덕지 묻어났다. 본인 말씀으로는 순수해서 피곤하게 살았다지만,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 아저씨가 어느 손님이 200만원어치의 제품을 주문해놓고 잠적해버리는 바람에 굉장히 슬펐다는 얘기를 했을 때, 그것이 재료구입비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작품을 못 보게 되었기 때문임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