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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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요즘 블로그에 글이 뜸했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제목의 그곳에 연구인턴을 와있다. 이제 도착한 지 6일이 되었는데, 간단한 소회를 남겨본다.

먼저 MSR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인상을 들면, 제대로 개밥 먹는 회사라는 점이다. 운영체제, 개발도구, 업무용 소프트웨어(사내 메신저와 오피스, 이를 통합관리하는 서버까지)를 모두 자사 제품으로만 쓸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Microsoft 말고는 Apple 정도만 가능해보인다. Google도 그 능력 면에서는 만만치 않겠지만 오픈소스에 많은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자사 제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Lync라는 사내 메신저 프로그램은 아웃룩 add-in으로 붙어서 메일 송수신자들의 상태가 바로 보인다거나 id/name card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편하다. 심지어 책상 위 전화기하고도 연동되어있다.

기존 연구자들은 윈도7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새로 들어와서 그런지 워크스테이션에 윈도8이 설치되어 있었다. 직접 만져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이건 아직 좋은지 나쁜지 좀 모호하다. 뭐 이미 정식 발표된 제품이니 윈도7과 어떻게 다른지는 다들 알 거라 생각하고... 회사에서 준 워크스테이션 성능이 좋은 탓도 있겠지만, UI를 단순화하면서 많이 가벼워지고 반응속도가 빨라진 것은 좋다. (그냥 컴퓨터 성능이 좋아서 빠른 것과는 다른 느낌) 하지만 별로 친절하지 않은 abrupt한 UI 변화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도 동시에 든다는 게 문제. 특히 어려웠던 점은 기본 내장된(드디어!) PDF 리더 앱에서 인쇄하는 방법. 인쇄 메뉴나 버튼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마우스른 화면 오른쪽에 갖다대면 나오는 Charms bar의 Devices에 들어가서 프린터를 선택하면 그제야 인쇄 UI가 뜬다. 난 처음에 Charms bar가 시스템 맥락으로만 쓰는 건 줄 알았는데 쓰다보니 현재 foreground에 있는 앱의 맥락에 따라 내용이나 동작이 바뀔 수 있는 거였다. 검색 기능도 마찬가지.

MS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과는 반대로, 특허나 지적재산권에 굉장히 예민한 동네라 그런지, 회사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3rd party 소프트웨어에 대한 규정은 매우 까다롭다. 개인용 라이선스 소프트웨어를 깔면 안 된다 정도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프리웨어도 맘대로 설치하면 안 되고 오픈소스도 내부 검토를 거쳐 승인된 것만, 그것도 승인 당시 버전의 binary installer로만 사용이 가능하다. 실제로 모니터링해서 차단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소스코드도 열어보면 안된다고 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렇게 제한해도 회사 운영이나 연구가 충분히 가능할 만큼 기본적으로 자사 제품 라인업이 탄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오픈소스와 친하다는 Google조차도, 텍스트큐브닷컴 파일첨부 플래시 컴포넌트의 업데이트된 소스코드를 오픈소스 버전으로 가져오기까지 법무팀 검토 등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 몇 달이 걸렸던 걸 보면, 그럴 만하다 싶기는 하다. 옛날에는 대표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설치하고자 물어봤던 게 Skype라고 하는데, IT 담당자 왈 '이젠 우리가 샀으니 얼마든지 깔아도 돼요~' 라고.; ㅋㅋ

연구소로서의 MSR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매우 좋았다. 오리엔테이션 가장 처음에 알려주는 내용이 건물의 비상구와 fire alarm 사용법, 화재 시 탈출 요령, first aid room에 대한 정보인데 확실히 얘네가 안전이나 건강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쓴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서버, 네트워크, 개인 워크스테이션 등의 장비 관리를 전담하는 연구소 내부 팀이 따로 있고 Microsoft 전사적으로도 Redmond 본사에서 관리하는 팀이 있어 연구자들이 잡다한 OS 설치부터 백업에 이르기까지 인프라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물론 경우에 따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도 내부 절차 때문에 오히려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래서 MSR 연구소에는 전담 팀이 따로 있는 거라고 얘기해주더라. 아무래도 연구내용에 따라 좀더 다양하고 예외적인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구성이 필요할 테니까. 전반적으로 다른 거 걱정하지 않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잘 서포트해준다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케임브리지에 대한 인상이다. 일단 높은 건물이 거의 없고(고딕양식 교회·성당 몇 개 빼고) 공원이 많아 시야가 트여 있는 점은 좋다. 하지만 날씨는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최악. 비가 매우 잦다. (다행히 한국처럼 세차게 내리는 비는 아니어서 자전거 타는 건 가능. 안경에 물방울 묻는 게 좀 귀찮다.) 낮 길이도 짧아서 오후 4시면 해가 진다. (그래도 스웨덴보다는 조금 낫다는 사실에 위로를. ㅋㅋ) 조용한 동네이긴 한데 생각보다 자동차가 많이 다녀서 아주 조용하지는 않다. 오히려 북적북적한 관광명소인 King's college 주변 시내 중심가는 pedestrian zone이라 상대적으로 나은 것 같고 실제 사람들의 생활권은 자동차들이 제법 많이 다닌다. 영국 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삼은 도시라고 하는데, 도로에 따라 자전거 전용 차선이 따로 있기도 하지만 이게 도시 전체에 일관성 있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느 도로는 전용 차선이 있고 어느 도로는 인도를 함께 쓰게 되어 있고 어느 도로는 그냥 차들 옆에서 같이 달려야 하고 이런 식이라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보행자와 자전거가 신호를 같이 쓰는 경우도 있고 자전거가 자동차 신호를 따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많이 배려해줘서 무섭거나 하지는 않다.)

집주인 아저씨의 강력한 권유로 King's college 합창단 예배와 오르간 연주회를 가보니 역시 수준급. 건물이 건물인지라 소리 울림이 정말 좋았다. 영국이 성공회 중심의 나라라서 걱정했던 가톨릭 미사 참례는 생각보다 가톨릭 성당들이 꽤 있어서 전혀 문제 없다. 특히 케임브리지에는 폴란드계 사람들이 많아서 폴란드어 미사가 따로 있을 정도. 참고로 폴란드는 매우 독실한(?) 가톨릭 국가다. 나는 OLEM(our lady and english martyrs)이라 불리는 성당의 청년미사에 가보았는데, 청년성가대가 부르는 곡들이 한국의 생활성가보다는 잔잔한 편이다. 한편으로는 재즈 느낌도 좀 났고, 탬버린으로 과하지 않으면서도 흥겹게 하는 부분이 맘에 들었다. 미사 분위기는 한국과 거의 똑같은데, 단지 영어라서 강론을 듣기 어렵다는 점이...;; (영어 듣기평가에서 최악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웅웅거리는 울림이 기본인 환경이니까.) 찾아보니 라틴어(!) 미사도 있던데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려고 한다.

어쨌든, 까먹기 전에 쓰고자 했던 짧은 첫인상 이야기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