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움 4
Daybreakin Things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고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 수단을 사용한다. 목소리냐 문자냐 하는 것도 있겠지만,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느냐, 말투나 어감, 맥락적 의미 등 많은 것이 하나의 표현 안에 녹아들어가게 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세련됨의 차이, 스스로의 인식 수준에 대한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당연히 가지고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표현의 의도와 본질이 표현 방식에 의해 왜곡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컴퓨터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기반 기술을 구현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정보(의도)의 전달 여부는 항상 상대방이 그렇게 받아들였는지의 여부로 결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뭔가 상대방보다 내가 낫다는 걸 은연 중에 보이고 싶은 의도가 첨가된다든지, 컴플렉스를 상대방이 건드린 것에 대한 내재된 화의 분출이라든지, 상대방의 생각이 옳다는 건 알지만 질투가 난다든지 하는 다양한 심리가 겹쳐지면 이것이 표현을 왜곡시켜버리고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러한 왜곡 현상이 표현하는 사람, 받아들이는 사람 모두 직접 인지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잘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결과는 서로에게 남는 상처와 울분이며, 이것은 또다른 내재된 화의 원인이 된다.
대화는 상호소통, 상호교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의도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대화이지만, 그것이 상대방과의 지위 고하와 상관 없이 사람이기 때문에 느끼는 가장 근원적인 감정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옛날 사회에서는 그것이 권력으로 누를 수 있었기에 허용되었을지 몰라도, 경쟁이 심화되고 투명성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설득의 방식이 설득 내용보다 더 중요해졌다.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리더를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표현이 왜곡될 때 나타나는 예로 자신만큼 상대방이 노력한 부분이나 역할에 대한 무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아마 자기도 말해놓고 차마 체면 때문에 바로 거두지는 못하지만 뒤에서는 후회할 수 있는 독설을 내뱉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보스턴 필하모닉 지휘자 벤자민 젠더가 한 말 중에(TED 강연 동영상 참고) "단원들의 눈이 반짝거리지 않으면 그것은 (리더인)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직업적인 전문성으로 냉정한 판단을 하고 구성원들이 이것에 따르게 하는 것은 좋지만, 동시에 그것을 이유로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하면 안 된다. 똑같은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설득당했느냐에 따라 리더에 대한 평가와 감정은 완전히 반대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마지못해라도, 어쩔 수 없이라도 명백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인정받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때에 따라서는 나의 의견을 관철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논리나 권위로 무장하여 상대방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기보다는, 소위 핑계를 댈 수 있는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줘가면서 대화를 이끌어나가면 상대방이 보다 기분 좋게 동의하게 만들 수 있다.
나의 의도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을 겪어봐야 하고, 그 와중에 오해도 받아보고 실수도 해보고 하면서 배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요즘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주로 IT 분야에서 감정이 별로 섞이지 않은 건조한 의사소통을 주로 해왔던 것 때문에 많은 부분을 배우고 또한 고생하고 있기도 하다. 다행히도 내 여자친구와 나는 서로 그러한 면을 이해하고 그때그때 맘에 안 들었던 부분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표현 방식의 차이에 의한 마찰보다는 그러한 차이를 배움으로써 얻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여기에는 심리적 거리낌을 극복하는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 많이 느낀다. 우리는 논리적 인간이 아니라 감정적 인간이다. 처세술, 설득하기 등의 내용을 담은 많은 책들이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 것 같다. 감정을 잘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은 명확한 논리로 설득하는 것보다 한발 앞서 해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