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Posted
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지난 주에는 두 개의 모임이 있었다. 하나는 Kaistizen님의 소개로 SK 아이미디어의 김용오 이사님을 만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Tatter&Friends MT였다. 간단히 후기를 정리하자면 학교 안에서 보여지는 바깥 세상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숙제 내고, 학점 따고,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하고.. 이런 일상적인 고민들과는 다른, 비즈니스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고, 기업들은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우리가 만든 것이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지, 앞으로 IT가 흘러갈 방향은 어떤 것일지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SK 아이미디어의 캠퍼스 미팅

(딱히 모임에 붙여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일단은 이렇게 적는다.) SK 계열로 새로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게임 개발사인 SK 아이미디어의 이사를 맡고 있는 김용님이 KAIST 전산과 학생 몇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인재 구하기'와 함께 회사 소개 등을 했던 자리였다. 이런저런 잡담도 하고, 그 회사가 어떤 인재를 바라고 있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일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즐거운 회사지만, 출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차없이 혹독한 회사가 될 것이다"라는 게 가장 기억에 남았다.

사실 그 이사님보다는, 함께 왔던 소프트웨어 개발경력 15년차이셨던 분(명함은 받았는데 따라오신 두 분 중 어느 분인지 기억이..-_-;;)과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었다. 개발경력 15년이라면 30대 중후반부터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대부분 관리직으로 넘어가는 현실을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경우다. 네트워크, 모바일, 게임 등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가진 분이었다. 최근의 이공계 기피와 관련해서 여러 이야기들을 해주셨는데, 이제 사회는 어떤 직종을 하더라도 편하게 살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며, 다만 기본 baseline의 높낮이 차이가 있을지라도, baseline이 상대적으로 낮은 IT나 공학 관련 업종은 그만큼 사람들의 spectrum이 크기 때문에 KAIST 학생 정도라면 그 spectrum에서 상위에 올라설 능력이 충분히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baseline과 삶의 질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의사는 본인이 행복한 게 아니라 그 가족들이 행복한 거다"라는 이야기도 했다. 현재 철밥통으로 여겨지는 공무원 사회조차 빠르면 10년 내에 지금의 형태로 유지될 수 없을 것임을 보고 있다고 했다. Kaistizen님의 경우도, 병특으로 몇 군데 업체에서 일해보고 느낀 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일정 수준의 회사들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깨달았을 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이젠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직 내가 연구를 하게 될지, 취업을 해서 살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이 사회는 본인의 능력으로 '신분'을 바꿀 수 있는 곳이고, 따라서 KAIST라는 베이스를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곳이라는 얘기였다. 그 예로 그 개발자 분은 삼성전자 임원을 들었는데, 물론 임원이 된 후에도 삶은 계속 피곤하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오른 후에도 계속되는 경쟁이 있겠지만, 그 사람의 능력이 그만큼 인정받았다면 그런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거였다. 넓은 spectrum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나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Tatter&Friends MT

지난 4월 14일 TNF 포럼이 만들어진 후로 처음 있는 MT였다. TNC/TNF 합쳐서 16명 정도(laziel님 소개로 미니보드 개발하시는 분도 오셨다)가 연세대 정문에 모여(마침 리처드 스톨만의 강연회가 있었기 때문인데, 숙제-_-때문에 못 간 것이 아쉽다.) 경기도 양평의 한 펜션으로 이동했다. 즐거운 잡담과 놀이 분위기도, 또 심각하게 태터툴즈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밖에서 바베큐 파티도 하고, 사람들과 함께 적분게임, 베스킨라빈스 등의 놀이도 하고, 또 모닥불을 지피고 둘러앉아 심각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온라인에서만 서로 보다가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재회의 기분도 느껴보고, 태터툴즈 1.1 발표와 관련한 이야기들도 하고...

태터툴즈로 '무언가'를 해보려면 우선 블로고스피어의 전체 참여자의 절대 수치가 늘어야 한다—현재 나타나는 시스템적인 문제들 중 상당수는 시간과 인원수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사용자의 입맛에 맞추려고만 하다보면 정작 우리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표류할 수도 있다—설령 쓰기가 어려워도 그걸 감수할 만한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명품 자동차를 사는 사람은 그 자동차가 가진 세세한 기능이나 장점들을 다 인식·사용하지 않는다—단지 그렇다는 느낌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태터툴즈가 (실제로 다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무한한 확장이 가능한 publishing platform으로 인식되도록(실제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사용자 지원 부분을 갈아엎을 필요가 있다, 나는 패러다임이 변하는 이 시기에 내 아들이 '아빠는 그때 뭐했어요?'라고 물었을 때 자신있게 대답할 만한 것을 하고 싶다…….

모닥불에 둘러앉아 각자 돌아가면서 말한 것들이다.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블로깅 툴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또한 현재와 과거를 바라보지 않고 항상 그 다음을 보는 것. Blog 다음은 무엇이 될까? Blog를 이용한 커뮤니티의 발전? 그 다음은? 나로서는 정말 느끼고 배울 것이 많았던 대화였다.

돌아오는 길에, 노정석님의 차를 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거 전설적인 해킹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셨고, 보안업체 Inzen의 설립에 참여하기도 하셨으며, 한때는 자동차 경주에 푹 빠져 레이서 생활까지 한, 매우 특이한 경력을 가진 분이다. 지난 LiveBlog 때 처음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TNF를 통해 계속 연을 맺어왔는데, 이때 좀더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다면 다른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한 분야에 1~2년 정도 투신했던 것이, 많은 것들을 잃긴 했지만 반대로 자신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부터, '앞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하는 질문도 남기셨다. 또한 세상은 소위 '공부 잘하는 사람들'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까지, 가장 어려운 게 사람 공부라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이른바 비즈니스를 해온 분으로서 자본주의에 기반한 사회 시스템에 대해 상당히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시지만 딱 드러나는 것 같다.)

*

가끔은 학업에서 벗어나(....덕분에 이번 PS 숙제는 말렸다! 하하-_-)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보다 넓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학교 안에서 당장 다음 학기 무슨 과목 듣지 이런 고민을, 숙제 듀 걱정하고...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무엇을 위해서 그것들을 하는지 되짚어보고, 내가 세상에 가치있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지 잘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