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일주일 째 온통 뉴스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소식 뿐이다. 기분좋게 자전거 타고 퇴근한 다음 샤워까지 싹 하고 단골 커피집에서 커피를 한잔 사다놓고 마시다가도 뉴스를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 지난 주일이었던 부활절에도 평소 같으면 청년회 월례회의 후 신부님과 함께 전체 회식이라도 했을 텐데 추모하는 뜻에서 각 소공동체별로 자체적으로 식사 자리만 가졌다.
이번 사고를 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너무나 많다. 우선 어린 학생들이 대거 희생되었다는 점, 구조와 대피 안내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선장과 선원들,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들. 무엇보다도 국가와 정부, 나아가서는 이 사회 전반에 대해 어린 학생들부터 어른들까지 한꺼번에 신뢰를 잃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런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여러 개의 안 좋은 요인---대개 그 개별 요인으로는 큰 사고가 될 가능성이 적은---들이 확률적으로 모이면 사고가 나는 것이다. 다만 이 사고 수습 과정을 보면서 우리나라 정부는 정부대로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걸 불신하고,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정부를 의심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민간잠수사 행세를 했던 홍모 사기꾼 같은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아주 점입가경이다.1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감정적인 것인지, 정모씨 말마따나 국민성이 미개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2, 여하간 사고 이후 뉴스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정부를 옹호하고 그 모든 노력을 인정해주고 싶어도, 기술적으로 구조 작업이 어려운 점은 이해하더라도, 사고 수습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모습은 모든 사람들의 신뢰를 잃기에 너무나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이었다. 게다가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정부의 행태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경우 알게 모르게 압력을 행사한다든지 하는 모습은 그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는 커녕 더욱 나락으로 빠뜨리고 있다. 설령 똑같이 한명도 생존자를 구조하지 못하는 결과를 보였다고 할지라도 일사불란하게 구조 작업을 지휘하고 모든 과정과 어려움을 소상히 설명하고 그런 자세를 사고 당일부터 보였다면 지금만큼 불신의 벽이 높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일부 사람들의 몰지각한 언행으로 이런 짤방이 나돌 정도가 되었으니. 과연 내가 이런 일을 당한 입장이 되었을 때 어디까지 국가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분명히, 이 상황을 통제하고 수습할 수 있고 그래야 하는 건 국가인데 그 국가에 의지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다. 이런 국가를 만든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일까? 일부 정치집단의 무능함으로 봐야 할까?
한편으로는 별 것 아닌 일에 사람들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예를 들어, 나는 유족들 옆에서 총리가 의전용 팔걸이 의자에 앉아서 라면 좀 먹었다든가 이런 것까지 문제삼는 건 좀 지나치다고 본다. 총리의 입장에서보면 공무 수행 중에 주변 수행원들의 배려로 그리한 것인데... 물론 유족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행동이 정부의 구조 의지를 깎아먹는다고 해석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물론 나도 개인적인 정치적 입장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의 모든 언행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또 대통령이 직접 찾아와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면접촉까지 한 상황에서 청와대로 찾아가자는 것도 현실적인 접근은 아닌 것 같다.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심정적인 공감도 가고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책임자 추궁하겠다' 이러면서 은근히 한발 빼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현 대통령의 모습이 별로 마뜩치 않긴 해도, 대통령이라고 해서 뭔가 대단히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말보다 행동으로 다른 나라의 구조 지원을 좀더 일찍 받아들인다든가 이런 기지를 보여줬다면 약간의 플러스가 되었겠지만.
사실 나는 정부의 대응 문제보다 이 사고의 '구도'가 사회에서 느끼는 부조리함과 너무나 닮아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난다. '말 잘 듣는' 학생들과 구조에 총력을 다한 서비스 승무원들은 배에 남아있다가 수장되고 더 많은 정보와 권한을 가진 선장과 선원들은 도망쳐 전원 구조되는 이 모순적인 모습은 우리나라의 부조리한 부분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가슴아프게 보여준다. 이른바 교과서적인, 상식적인 행동을 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희생되었다는 점과 모든 잠재적 위험과 상황을 알고 먼저 도망쳐나온 선장·선원들은 전원 구조되었다는 이 극명한 대비... 위기의 순간에 다른 사람들보다 빠른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도망칠 여건(돈이 많다든지)이 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빨리 위기를 빠져나가고 정작 항상 제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뭔가 역사적으로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3 막말로 북한하고 전쟁이 났는데 방송으로 '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집에 계십시오'라고 안내가 나온다면, 이젠 사람들이 이 말을 믿고 따를 수 있을까? 재벌총수들과 대통령부터 비행기 타고 외국으로 도망치지는 않을까 먼저 의심하게 되지 않을까?4
사회에서도 보면 하라는 대로 말 잘 듣는 사람들은 '순둥이' 취급받으면서 오히려 더 많은 일을 떠안게 된다든지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이익을 나름대로 챙기며 '약게' 행동하는 사람들에 비해 손해를 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약삭빠른 선장·선원들과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켰던 다른 사람들... 그 결과가 단순히 좀 손해보는 정도가 아닌 목숨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제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이 다름아닌 우리가 지켜줘야 할 학생들이었다는 점에서 이 사고는 너무나 슬프다. 그리고 충격이 크다. 아무리 '어른들의' 사회가 부조리하고 부패해 있어도('세상은 원래 이런 거야'라고 체념했더라도) 자라나는 어린이나 학생들에게만큼은 사회는 원리 원칙대로 살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곳임을 보여주고 싶은 게 어른들의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사건이 다른 사건들과 달리 특히 더 사회적인 후유증이 길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겉으로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람들은 놀러가고 웃고 떠들고 하겠지만, 책임을 저버린 약삭빠른 자들와 항상 제 자리를 지키며 말 잘 듣는 자들 사이에 형성된 불신의 구도는 생각보다 크고 깊은 상처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케이블 종합편성 채널인 MBN 인터뷰에서, 홍가혜 씨가 해양경찰이 민간잠수사들의 구조 협력 요청을 막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모두를 분노케 했다가 뒤늦게 사기 전력이 다수 있는 사람이었음이 밝혀지고 해당 발언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속영장까지 받게 된 해프닝이다. 결국 MBN은 보도국장이 직접 뉴스에서 머리 숙이고 사과를 해야 했다. ↩
정몽준(글쓰는 시점 현재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자 서울시장 예비후보) 씨의 막내아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과 총리가 내려와 최선을 다하겠다 하는데도 유족들이 항의하고 물세례한 장면을 두고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며 비아냥댄 사건. 나중에 정몽준 씨가 직접 나서서 철없는 행동이었다며 사과 설명을 발표하였다. ↩
물론 대통령도 사람이고 재벌총수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생존하고자 하는 욕구는 당연히 있을 것이고, 이들의 목숨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이 사회로부터 받은 권한과 사회를 통해 얻은 부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그냥 도망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이 사회의 안전을 위해 도움을 주는 모습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