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어차피 투표권도 없었지만 과학고에 들어갈 준비를 하느라 유세도 제대로 못 보고 어느날인가 대통령이 바뀌었다는 사실만 인지했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노란색을 자주 사용했던 노사모 정도. 취임하고 얼마 안 되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는 둥 이런 소리가 들리며 한동안 시끄럽다가 각종 부동산대책이 나오면서 집값이 무섭게 오르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반쯤 농담이지만, 우리집이 아마 강남에서 계속 살았으면 집값으로만 몇억은 그냥 벌었을 거다)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든지, 말 많고 요리조리 머리굴려가며 언론들과 싸움놀이한다든지 하는 부정적인 평가가 주변에서 많이 들려왔다.
하지만 나중에 와서 보니 그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무대뽀로 밀어붙이는 삶을 살아왔던 점, 바보에서 시작해도 끝까지 밀어붙이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 소통을 중요시했던 점, 무엇보다 그 어떤 정치인도 섣불리 내걸지 못한 도덕성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내세웠다는 점 등이 그러한 요소이다. 특히 자신의 소신과 고집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부정적인 평가와 동시에 긍정적인 평가도 함께 받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대외적인 이유도 물론 있었지만 경제가 어려워지고 국민들이 원하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노무현의 지역주의·권위주의 타파와 관련된 긍정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사실 나는 아직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등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런 개념들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말을 접하게 될 때면 더욱 혼란스럽다. 분명히 알고 있는 건 지역주의가 여전히 팽배해있다는 점이고, 김대중과 노무현이 김영삼과 이명박과 다른 계열의 정당에서 나와 그 시기를 현 정권 및 여권에서 '잃어버린 10년'으로 부르고 있다는 정도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까지는 익숙해도 아직 그 전에 각 정당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각 정당이 가지고있는 비전, 소속 정치인들의 관심사나 성향도 잘 모른다. 역시 분명히 알고 있는 건 거의 언제나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정도에 이명박은 한나라당 계열, 노무현은 (언젠가 탈당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열린우리당 계열이라는 정도?
이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도, 얼핏 인터넷 뉴스를 돌아다니면서 박연차 회장과의 비리 혐의 문제로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워낙 바쁜 학업 중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는지는 거의 모르던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정확히 종강 다음날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이 자신이 가장 내세웠던 도덕성에 상처가 생기고 주변인들이 자꾸 소환되자 자격지심 혹은 그 성질머리(?) 때문에 자살한 것이라고도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저인망 수사 등을 근거로 들며 보수 언론에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혐의 사실을 흘림으로써 사실상의 표적 수사를 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오면서, 온라인 지인들의 여러 글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2005년인가 2006년 여름에 대통령과학장학생 신분으로 청와대에 불려가 노무현과 점심을 함께한 적이 있었다. 식사하기 전에 짤막한 연설을 하였는데, 참 말 앞뒤가 줏대없이 생뚱맞다는 느낌을 받았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지?'뭐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의 정책들 대부분은 취지는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욕하기만 했다. 당시엔 몰랐는데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었고, 어찌됐건 당시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충분히 자격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자질이 나쁘다면 그건 그런 사람을 뽑은 국민들의 잘못과 그러한 사람을 배출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그가 아주 똑똑하게 굴지는 못해도 나름대로의 고집있는, 소신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더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선 같은 사람으로서, 권력의 정점에 있었을 때 같은 자리에서 직접 볼 수 있었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움과 애도를 금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대통령이기 때문에 지는 책임도 큰 만큼 이번 수사에서 확실하게 결론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선 어느 정도 시일을 둔 뒤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할 것이다. 노무현이 무죄인지 유죄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역사의 심판을 반드시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전두환 같은 사람이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유족들에겐 힘든 과정이 될 것이고 그런 점에서는 나도 아쉽고 슬프다.1
민주주의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역시 국민들이 정치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견제 장치가 얼마나 잘 마련되어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기본적인 원리를 다시금 깨달았다.2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정치적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제서야 나는 왜 사람들이 조중동을 보수언론으로 보는지, 한겨레 등을 좌파(혹은 진보)언론으로 보는지, 언론사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점차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3 투표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대통령을 잘못 뽑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도 역사와 현실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IT 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소통이 한없이 자유로워지고 소통의 양이 무한대로 증폭되면서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는지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변화들이 과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지금까지의 인류가 그나마 최선책이라고 생각해 적용하고 있는 사회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노무현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괴롭고 슬프겠지만, 또한 누군가에게는, 아니, 대한민국에게는 사회적 성숙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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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망상일지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내가 만약 대통령 정도 되는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통령은 사실 자기 손으로 무엇을 직접 이루어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은 말과 글을 통해 하나의 나라를, 또는 여러 나라를 움직일 수 있다. 권력의 정점에 있다는 말은 곧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무언가 이루어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과 수십명이 모인 학교 동아리조차 회칙 개정안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한 나라에 존재하는 수많은 입장들을 조율하여 움직이려면 얼마나 어려울까?
한편으론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러이러한 부분에 신경써서 정책을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농수산업의 과학화, IT 인력들의 창의성 발휘 환경 구축, 중공업의 고도화, 예술·문화계 진흥, 인문학 활성화와 자연과학과의 융합 연구, 대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닌 중소기업들이 커갈 수 있는 경제 생태계 형성, 환경 감시 체제 강화, 친환경 산업 육성, 러시아·중국과의 외교관계 강화, 동남아와 남아메리카에 대한 해외원조 확대로 위상 강화, 공공도서관 전문화, 세금 운영의 투명성 확보, 각종 공공 통계 및 공공기관 정보를 이용하기 쉬운 형태로 가공하여 제공하기, IT 기술을 활용한 국민들과의 소통 및 의견 취합--포탈사이트에 익명보장 정책제안 코너를 만들어 인기 상위 100개와 비인기 랜덤 100개를 뽑아 브리핑 받는다든지, 악성댓글 엑기스 뽑아먹기와 같은?--민영 의료서비스의 공공재화, 국가 기록 관리 강화 등등등 뭐 그동안 소소하게 느꼈던 것들을 계속 생각해서 쓰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로는 역시 대북 관계와 같은 것이 있겠다. (뭐, 보면 알겠지만 공돌이 아니랄까봐 좀 편향되어 있긴 하다. ㅋㅋ)
하지만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한들 그것을 실제 실행에 옮기는 실무자들이 이를 잘못 이해·해석한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이 없을 것이다. 이명박의 녹색 성장도 그 자체로는 매우 바람직한 구호이지만 뭔가 실제 진행되는 것들을 보면 건설경기 활성화가 목적인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또한 실무자들이 충분한 능력이 되지 않으면 어딘가에서 들리는 말처럼 연구 제목에 '녹색'이란 단어만 들어가면 돈 따오기 쉽다 하듯 세금을 눈먼 돈으로 쓰고 말 수도 있다.
대통령이란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도움이 필요할 터인데, 막상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명박은 그 문제를 낙하산 인사로 일부 풀고 있는 듯하다. 동시에 대통령의 권력에 기대어 뭔가 이익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컨택해올 텐데 그것들 중 실제 국정에 도움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가려낸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노무현도, 이명박도 이런 어려움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말 대통령은 똑똑하고 체력 강하고 주관이 철저한 그런 사람이 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란 자리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왜 대통령을 하였을까?<br/> 이명박은 왜 대통령을 하였을까?
초심으로 돌아가는 이 질문에 온전하게 답할 수 있어야 명분이 설 것이고, 대통령직을 훌륭하게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현재의 검찰 수사가 얼마나 심하게 진행되었는지, 혹은 사건의 진위가 어디까지 정확하게 밝혀졌는지 등에 대해선 잘 모른다. 이미 결론이 났다면 더 할 필요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보는 정도다. ↩
아쉽게도 현 이명박 정부는 사회·기술·문화의 흐름으로 인한 소통의 방식과 개념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아무래도 사람은 자기가 접하는 정보에 따라 그 편향이 달라진다. 요즘은 부모님과의 정치적 입장에서는 약간의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기도 하다. 나는 주로 인터넷과 온라인 지인들을 통해 여러 정보를 접하지만, 부모님은 동아일보와 TV 뉴스를 통해 주로 정보를 접한다. 보통 어떤 대원칙이나 논리적인 부분을 이야기할 때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데, 어떤 특정한 사건을 두고 평가할 때는 미묘하게 말투나 분위기가 엇갈리는 경우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