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이전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한 후 했던 생각들을 적었는데, 이번 추모 기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드는 생각들이 있어 다시금 정리해보려고 한다.
어머니께서 하신 이야기 중에 와닿았던 부분은, 언론과 대중들의 모습이 성서에 나오는 빌라도 앞의 대중들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막상 앞에 있을 때는 맘에 안 든다고, 쳐죽이라고 그렇게 난리를 치다가 정말 죽고 나니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모습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그런 분위기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고인이 잘 했던 부분들이 새롭게 조명받으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살아있을 때 잘하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울 뿐이다.
문제는 현대 사회처럼 정보가 넘쳐나고 개개인의 생활이 바쁜 시대에 여러 시각을 공평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는 언론들에도 있다. 지금 노무현에 대한 추모 열기는 현재의 이명박 정부가 소통에 미숙하다는 단점이 노무현의 소탈했던 모습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면서 더욱 강화되는 느낌도 있지만, 정말로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 그가 잘 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때문인 면도 크다. 특히 IT 쪽으로 상당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접근했던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나 스스로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사용한 경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얼핏 청와대 업무시스템인 이지원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물론 노무현이 했던 정책들 중 실패한 것들도 있다. 집값 잡는다고 하다가 오히려 더욱 올려버린 점, 행정수도 공약 때문에 스스로 발목잡혔던 점, 빈부격차의 심화 등등. (이 부분에 대해선 보수언론들의 시각이라는 반론도 있으니 댓글 참조.) 그러나 그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IT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참여에 익숙해지고 이것이 대의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 쉽게 묻혀진 것 같다. 지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하고 있는 일을 사실은 노무현이 먼저 했던 것이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 하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해야 하는데 그러한 공정한 시각보다는 사회 기득권층 대다수의 입맛에 맞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것 때문에, 또한 노무현이 그러한 기득권적 배경을 별로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언론들이 더욱 그를 잡고 겁없이 흔들었고 그런 언론들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대다수의 국민들(나를 포함해서)은 노무현이 '대통령 답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만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의 측근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점 자체는 분명히 잘못하였지만, 왜 노무현에게는 그 부담이 배로 전가되고 노무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말 많이 해쳐먹은 다른 전직 대통령들이나 비리 세력들은 어째서 멀쩡하게 살아있는지, 그러면서도 영결식에 멀쩡히 참석하는 모습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이 역사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최소한 지금까지의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서라도) 더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고위 정치인들 내지는 권력자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지식정보화 사회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했던 인물이고, 또한 처음으로 가장 소박하고 소탈하게 살고자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측근 비리 문제가 불거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만한 정치인들 중에서는 가장 도덕성을 중요시하고 비리도 적은 편이었으며 스스로도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더 높아지고 감시도 강화될 것이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IT기술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인식 변화가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대통령과 정부들은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이번 학기에 한국문화사 수업을 통해 나라기록관 답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으로, 가장 많은 기록물을 남긴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다는 점, 나라기록관 사업을 시작하고 공공기록 관리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게 된 것이 노무현 집권 기간이었다는 점은 노무현이 그만큼 스스로 투명성과 역사의 평가에 대해 신경쓰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1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노무현을 우상화·영웅화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도 사람이기에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정책 모두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추모 열기는 대내외적으로 여러 상황이 복잡하고 어려운 가운데 어려운 환경 속에 성장하여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일종의 역할모델로서 노무현에 대한 심정적 동질감 때문에 약간은 더 심하게 나타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그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나쳐서 그의 잘못까지 무조건 덮어버리려는 정도까지 가면 안 된다는 말이다.
예전에 광우병 촛불집회를 보며 썼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의 이명박 정부를 보면 정보기술이 가져오는 근본적인 사회 패러다임 변화에 거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보가 더욱 투명하게 유통될수록,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이 자유로워지고 그 비용이 0에 수렴할수록, 숨길 것이 많은 사람들이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겐 인터넷과 IT기술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억제할 수 없는 사회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언제쯤 다시 노무현처럼 그런 면을 이해해주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것, 혹은 떠나야 했던 것은 비통한 일이지만, 노무현이 잘했던 것, 못했던 것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평가해주리라 생각한다. 과연 이명박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지금 잘 알려지지 않은 이명박이 잘한 일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또한 이명박 다음에는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가게 될지도 궁금하다.
조선이 세습왕권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길게 왕조를 유지하고 버텨왔던 것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뛰어난 기록 문화와 역사에 대한 두려움, 권력 감시 체제를 이념적으로 강화하여 세운 국가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기록물 관리는 노무현이 시작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