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오늘은 아마도 가장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이브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외국에서 보내는 첫 크리스마스인데다 영국 킹스칼리지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에 직접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아래 동영상부터 보시라.
오늘 나는 저기서 솔로로 부르는 첫 장면을 불과 10m 앞에서 봤다. 이건 작년 동영상인데, 제대 쪽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가능했던 이유는 이렇다: 동서로 길쭉한 킹스칼리지 채플의 구조에서 제대와 가까운 자리(east side)는 100여석 정도, (화면에는 나오지 않지만) 제대가 가운데쪽에서만 조금 보이도록 가려진 중앙 오르간 벽 뒷편(west side)에는 600석 정도의 자리가 제공된다. 줄선 순서대로 입장하기 때문에 제대 근처에 앉으려면 새벽부터 일찍 줄서야 하는데, 나는 오전 8시 40분에 갔음에도 이미 자리 배정 인원의 거의 끝부분이었다. 그래서 합창단을 직접 보는 건 포기하고 있었는데, 위의 작년 동영상과 달리, 올해는 합창단의 입장 성가를 제대 쪽이 아닌 맨 뒤쪽에서 시작하였다! 운 좋게도 맨 첫곡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추가] 나중에 찾아보니 TV용으로는 따로 녹화를 미리 해두고 여기는 좀더 잘 알려진 캐롤들이 들어가는 듯. 오늘 예배 때는 현대적인(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캐롤들이었다. 시작 곡은 같으나 입장 방향과 곡 구성이 다른 것.
기다리는 줄에서 우리 일행 뒤에 어떤 아저씨와 그분 아들이 있었다. 교수님이 말을 붙이셔서 함께 이야기하다 알았는데, 그 아들이 얼마 전까지 합창단에 있다가 변성기로 지금은 합창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여기 합창단은 7살부터 들어갈 수 있는데 기숙학교(boarding school)로 학업과 합창연습을 병행하고, 변성기가 오면 합창에서는 빠지지만 학교에는 계속 머물 수 있다고 한다. 그 아이는 합창단 친구들이며 줄선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들이 많은지 인사한다고 계속 왔다갔다 했다. 지금 나와있는 합창단 CD에 그 아이도 참여했다고 하고, 아마 최근의 동영상 등에도 모두 함께 불렀을 듯. 작년쯤인가 한국 소년이 여기 들어갔다고 해서 뉴스에 잠깐 떴던 것 같은데 그 친구도 알고 있었다. (위에 동영상 틀어놓고 글쓰면서 보니까 그 한국학생도 중간중간 나온다. 오늘 본 학생은 동영상에서 한국학생과 마주보는, 제대 방향 바라봤을 때 왼편 첫줄 중간쯤에 안경낀 학생 같은데... 맞나 모르겠다)
아래 팁에도 적었지만, 제대와 가까운 안쪽 자리에는 들어가지 못했어도 여전히 소리 울림은 너무 멋있었다. 동영상이나 음악으로만 듣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꼭 이런 '클래시컬'한 음악이 아니더라도 음반도 들어보고 같은 곡의 라이브 공연을 가본 사람들은 아마 그 차이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리고 동영상은 어느 정도 편집된 거라 같이 부르는 소리보다 합창단 소리 위주로 들려주는 것 같은데, 실제로 사람들이 다함께 부를 때 채플 전체가 울리는 그 느낌은 가서 불러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노래의 장르가 이 소년합창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그래도 동영상의 몇몇 곡은 실제로 현대식 버전으로 부르기도 함), 나름대로 성당에서 청년성가대로 활동하고 이런저런 특송이나 공연에 참여해본 나로서는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다. 노래를 듣는 것도 멋지지만, 실제로 부를 때 자신의 음역 파트에서 소리가 맞아들어가면서 스스로 흡입될 때의 그 희열 또한 멋진 경험이기 때문이다. 첫 곡의 시작 솔로를 맡은 아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꼈을 때, 그리고 다함께 부르기 시작하면서 각 파트가 제 자리를 찾고 목소리가 안정됨을 느꼈을 때 그 부르는 아이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 많은 시간 연습하면서 힘들기도 하겠지만, 합창을 제대로 해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아닐런지. 솔로로 연주하거나 노래 부를 때와는 다른, 합창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다른 부분들이 분명 있다. 가족들이나 성가대 사람들과도 함께 보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그 점은 아쉬울 뿐이다.
사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하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도 있고 이번엔 좀 조용히 쉬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해서 캠브리지에 머물고 있는데, 다른 인턴 친구들은 다들 햇빛의 땅(...) 캘리포니아로 가족들 만나러 유럽 대륙으로 떠나서 조금 썰렁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예배 참석 한방으로 그 모든 썰렁함을 날려버리고 합창에 대핸 여운이 꽤 오래 갈 것 같다.
참석자 Tips
ps. 페이스북에도 적었지만, 이거 함께 보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줄서서 말동무하며 기다려주신 교수님과 교수님 사촌동생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D